블루문 특급 Moonlighting 영화

글렌 고돈 캐론 Glenn Gordon Caron 이라는 사람은 "레밍턴 스틸"의 112 에피소드인 "높이 나는 스틸 Steele Flying High"에 제작자군으로 참여 했습니다. 이것은 작가나 제작자군으로 "레밍턴 스틸"에 참여한 그의 9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글렌 고돈 캐론은 이후, 114 "스틸의 마음 Hearts of Steele" 과 115 "스틸을 멈추기 To Stop a Steele" 두편의 각본에 참여 한 뒤 레밍턴 스틸에서 손을 털게 됩니다. 일을 시작한지, 4-5년만에 드디어 "레밍턴 스틸"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거래하는 사람들을 바꾸고 다음 TV쇼를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1980년대 중후반을 장식하며, "레밍턴 스탈"을 가볍게 능가하는 인기를 끈, "블루문 특급 Moonligting" 입니다.


(블루문 특급 시작 장면)

남녀가 연애 구도를 유지하면서, 코메디와 범죄물 이야기를 섞는 이야기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위 "부부탐정"에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습니다. 토미와 터펜스가 등장한 이 이야기는 20년대 말, 30년대초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양한 농담들을 담아낸 인물들이었습니다. 에르큘 포와로 다음으로 등장한 아가사 크리스티 주인공들인 이 부부는 에르큘 포와로와는 참 많이 다른 인물입니다. 에르큘 포와로는 재치와 중후함을 겸비한 채 인자한 듯 하면서도 근엄한 날카로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토미와 터펜스는 소시민적인 태도로 주고받는 수다가 넘쳐나며 좀 어설프고 그래서 가끔은 살짝 얍삽한 술수를 부려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유쾌한 인물들입니다.

토미와 터펜스, 이 부부 탐정들은 20년대에 등장해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말년작이라 할 수 있는 "운명의 문"에 까지 등장하면서, 1973년까지 활약했습니다. 그러니 "레밍턴 스틸"의 레밍턴과 로라가 나타나기 채10년이 되기 전까지 이들은 영업중이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녀 탐정 연애 코메디)

유명한 추리물 속의 내용을 따라하며 사건을 해결한다거나, 홍보용으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레밍턴 스틸"과 "부부 탐정"이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한편 "블루문 특급"과 "부부 탐정"이 닮은 부분을 찾아낸다면, 탐정 사무소에 의뢰인이 찾아 오지 않고 파리만 날리는 이야기 배경이라든가, 두 "자칭 탐정"이 둘 다 별로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 추리나 모험도 재미있겠지만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두 인물이 주고 받는 대화로도 재미를 주려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 선상에서 "블루문 특급"은 "부부탐정"의 토미와 터펜스 이상으로 인상적인 인물들인 데이빗 에디슨과 매들린 헤이즈가 나옵니다. 이들은 토미와 터펜스 만큼 웃음을 준다는 점을 제외하면 상당히 성격이 다릅니다. 이 두 주인공이 달빛이 쏟아지는 LA의 밤거리에 등장하면서 "블루문 특급"은 그 독특한 개성을 드러냅니다.


(LA의 밤거리)

흔히 "메디"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매들린 헤이즈는 성공한 모델로 여유만만한 생활을 편안하게 할만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돈을 갑자기 날리게 되어 남은 것이라고는 집, 자동차, 그리고 자기 소유로 되어 있던 뭐해먹는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탐정 사무소 뿐이었습니다. 메디가 탐정 사무소를 처분하려하자, 탐정 사무소의 대표였던 데이빗은 메디에게 탐정 사무소가 정말 좋은 것이라면서 계속 영업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다가 메디는 탐정일에 발을 들이게 되고, "블루 문 탐정 사무소"로 간판을 바꿔달고는 1989년 5월 14일 종영될 때까지 66에피소드에 이르는 사건들에 휘말리게 됩니다.

글렌 고돈 캐론을 비롯한 제작진은 여자 주인공 메리 역으로 시빌 셰퍼드 Cybill Shepherd 를 섭외했습니다. 그녀는 미스 틴에이지 멤피스가 된 후, 정말 극중 주인공처럼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붙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경력을 이어나갔고,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로버트 드니로, 조디 포스터의 틈바구니에서 잘 활약했던 배우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약간씩 활약이 줄어들다가 자동차 부품 거래 업자와 결혼하면서 고향에서 조용히 살게 됩니다. 이혼 후, 그녀는 3,4년만에 다시 TV로 돌아오고, 드디어 "블루문 특급"에서는 가장 중요한 여주인공 배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시빌 셰퍼드)

시빌 셰퍼드는 큰 키와 늘씬한 체구이면서 결코 약해 보이지 않는 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한눈에 주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인상을 갖게 해주는, 도회적인 정장이 잘 어울리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살짝 나이들어 보이는 얼굴에는 좀 억센 인상마저 약간 서려 있었습니다. 또박또박 대사를 발음하는 선명한 목소리에는 가끔 낮은 목소리가 약간 서려서 정치인이나, 거대 단체의 대변인, 노련한 아나운서를 연상케하는 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시빌 셰퍼드는 그런 모습과 전혀 어색함 없이 반대로 매우 순박하고 약하며 어린 연기를 해 내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에게 장난치듯이, 상대역이 놀려대면 거기에 발끈하는 모습도 잘 보여줬고, 엄마가 사지 말라는 만화책을 샀다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 듯한 사소한 죄책감이나 갑자기 치솟는 의협심을 표현하는 데도 능했습니다. 시빌 셰퍼드의 가늘고 균형잡힌 목과 길게 뻗은 다리를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도록 "블루문 특급"은 편편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여자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선택한 사람은 어디서 뭐하다 온지 별로 분명하지 않은 30대초반이면서도 이미 절반정도 대머리화가 진행된 초보 배우였습니다. 그 무렵 시작된 80년대판 "환상특급 Twilight Zone"의 첫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다는 것 정도가 유일하게 내세울만한 경력이던 이 사람은, 바로 브루스 윌리스였습니다.


(브루스 윌리스)

브루스 윌리스는 축축 늘어지면서 별 생각없이 툭툭 튀기는 껄렁한 말투로 건들건들하며 돌아다니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그가 연기한 데이빗 에디슨은 그런 말투에 걸맞게 상당히 장난스러우면서도 좀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가끔은 좀 얍삽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인물이며, 항상 여자 주인공에게 "험한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을 알려주마"라는 투로 건방진 척 합니다.

그렇지만 딱히 이 사람도 그다지 성숙된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항상 세상 만사에 대해 약간의 짜증과 냉소를 달고 사는데, 이것도 염세주의에 빠져 있다기 보다는 그냥 건들건들하며 폼잡다 보니 그렇게 된 사람이라는 것이 브루스 윌리스의 주름많은 얼굴 속에 잡혀 듭니다. 록큰롤과 블루스 곡조를 흥얼거리거나, 가끔 기분이 동하면 아예 혼자 난리부루스를 추며 제멋에 겨워하기도 하는 노래 연기도 썩 잘한 브루스 윌리스는, 데이빗 에디슨 역에 잘 어울렸습니다.


(데이빗)

브루스 윌리스의 강점은 이렇게 인상 찌푸리고 특유의 껄렁한 말투로 이야기하지만, 정확히 말의 내용을 전달하며 다양한 어감과 어휘로 폭넓게 농담을 담아내는 정통 코메디 연기도 훌륭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떫은 감 잘못 먹고 혀 깨문 뒤 떫은 맛 씻으려고 물 마시다가 뜨거운 물에 천장 데인 듯한 표정, 그리고 어딘지 편두통과 관절염이 위궤양과 신경통에 융합된 듯한, 브루스 윌리스 만의 찡그린 인상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러면서도 또 코메디에 어울리는 과장된 표정 변화와 사람 좋게 실실 웃는 모습도 충직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는 겉늙은 느낌을 주는 대머리도 제몫을 한다면 제몫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브루스 윌리스와 시빌 셰퍼드의 기용으로 "블루문 특급"의 분위기가 풀려 나오게 됩니다. LA 도시 뒷골목의 어두운 사건과, 깊은 밤과 젖은 거리의 분위기와 연결되는 느와르 영화 분위기에 두 남녀가 티격태격하며 다투고 말싸움 하는 가운데 다양한 언어유희와 재담이 흘러넘치는 스크루볼 코메디가 겹치는 것입니다. 제목과 설정은 느와르 영화에 대한 환상을 부르는 분위기인 "블루문 특급"은 초기 에피소드부터 스크루볼 코메디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두 사람의 연애 구도에 빠져 들게 되자, 나중에는 그냥 거의 연애 코메디만으로 밀어 붙이는 분위기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메디와 데이빗)

코메디에 대해서는 브루스 윌리스의 천재적 재능 하나가 화려하게 작렬하는 부분도 자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브루스 윌리스는 술 취한 사람 연기에는 지상 최고 수준의 재능을 갖고 있으며, 술 먹고 난 다음날 술 덜 깬 사람 연기에는 천상의 솜씨를 갖고 있습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필름 끊긴채 눈을 비비면서 도대체 어젯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스스로 궁금해 하면서, 머리 아파 괴로워 합니다.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시청자 스스로가 겔포스나 여명808을 먹고 싶은 느낌이 드는 듯 합니다. "블루문 특급"에서는 이런 장면을 자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업이 거의 안되는 사무실이라서, 사건이랍시고 겨우겨우 맡게 되는 사건이 여러모로 묘한 것 뿐이라는 점도 이야기 전체 구도를 코메디에 맞추는 기능을 하며 도움을 줍니다.


(에디슨 탐정)

한편 느와르 영화 분위기를 풍기는 데, 일등 공신은 역시 멋진 배경 음악입니다. "블루문 특급"은 항상 알 자로가 부르는 듣기 좋은 현대적인 재즈 주제곡이 LA의 밤 정경과 함께 흐르며 시작합니다. 심야 가판대에서 신문을 보는 행인들, 야식이나 안주로 쓰일 반죽을 하는 요리사 등의 모습이 좋은 사진 작가의 솜씨로 잡혀 교대로 펼쳐집니다. 여기에 알 자로가 직접 쓴 가사가 들려옵니다. 쇼가 시작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80년대 풍으로 선곡되었지만 역시나 복고적인 느낌 또한 물씬 풍기는 끈끈한 블루스, 소울, 재즈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105 "다음 들으실 곡은 살인 입니다. The Next Murder You Hear" 에피소드는 기막힌 도입부 장면 연출과 라디오를 활용해 매우 그럴듯하게 현대 LA에 느와르 영화 독백 나래이션을 집어넣은고 있습니다. 아마 이 에피소드도 느와르 영화 분위기가 잘 살아 있는 대표작일 겁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느와르 영화 분위기의 정수이자, 초기 "블루문 특급" 에피소드 중 최인기작은 204 "꿈 장면은 벨을 두 번 울린다 The Dream Sequence Always Rings Twice" 일 것입니다. 제목부터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를 흉내내는 이 편은, 꿈장면을 빌어 정말 흑백 화면에 1940년대를 배경으로, 느와르 영화 같은 이야기를 거의 에피소드 대부분을 할애해 가며 보여 줍니다.


(젖은 밤거리)

이 이야기는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망한 40년대 클럽에 주인공들이 나타나며 시작합니다. 아내 뒷조사하는 사소한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곳에 들른 것인데, 여기서 40년대에 일어난 느와르 영화 소재 같은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습니다. 시빌 셰퍼드와 브루스 윌리스는 이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충돌로 또다시 티격태격합니다. 그날 각자의 집에서 자면서 두 사람은 자기가 상상한 문제의 살인사건 진상을 꿈으로 경험합니다. 살인 사건 속의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은 물론, 메디와 데이빗, 시빌 셰퍼드와 브루스 윌리스 입니다.

이야기는 유부녀 클럽 가수와 트럼펫 주자의 불륜이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메디의 이야기는 좀 진지한 편이고, 데이빗의 이야기도 대충 진지한 편이지만, 장난스러운 내용이 군데군데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두 이야기의 상반된 시점과 반복되는 사건은 사람의 성격과 관점을 부각하는 재미를 주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한 사건을 두 번 울궈 먹을 수 있는 효율적인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거의 "블루문 특급"계의 "라 쇼몽"이라 할만한 에피소드인 것입니다.


(밤의 LA행인들)

꿈장면 둘 다에서 시빌 셰퍼드가 부르는 멋진 재즈를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노래 모두, 스탄 게츠와 앨범을 내기도 한 시빌 셰퍼드가 그냥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두 곡 다 듣기 좋지만, 낮은 목소리의 풍성함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시빌 셰퍼드의 멋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은 메디의 꿈에 나오는 "Blue Moon"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라 피체랄드가 부른 녹음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이 시빌 셰퍼드 노래는 엘라 피체랄드와 비겨도 그렇게 약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노래를 부르는 장면 자체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춰내기에 훌륭한 연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편, 데이빗의 꿈은 정말 느와르 영화처럼, 브루스 윌리스가 느와르 영화 독백 나래이션을 합니다. 후에 "씬 시티"에서도 완벽히 과시합니다만, 껄렁한 말투지만 분명히 단어가 살아나는 그의 느와르 영화 독백 나래이션은 요즘 도시 분위기에 어울리기도 하면서, 옛 느와르 영화의 명배우들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쓸쓸하고도 감상적이며, 격정적이면서도 냉소적인 느낌이 잘 살아납니다.


(밤에 더 바빠지는 주방장)

시빌 셰퍼드의 인물, 메디의 꿈 속에는 약간의 반전이 있기도 합니다. 대단한 반전은 아닙니다만, 분위기가 줄곧 진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뻔하게 예상되지도 않고, 사건 흐름보다는 인물들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게되는 느와르 영화의 분위기 때문에 의외성도 좀 살아납니다. 이런 감정들은 느와르 영화의 모범적인 수법을 그대로 따와서 연출되어 있으며, 옛 영화에 감명 받은 적이 있다면, 그야말로 보는 재미가 넘쳐 납니다.

"블루문 특급"은 자주 이렇게 영화나 미술에 전통을 두고 있는 과시적인 연출 방법을 도입합니다. 107 "우편으로 살인이 발송되었습니다 The Murder's in the Mail" 에피소드는 이야기 전체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참여한 영화의 이야기와 장면 구성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런가하면, 브루스 윌리스와 시빌 셰퍼드를 동원한 노래 장면이나 개인기 장면이 많기도 하고, 306 "멀베리 가의 거물 Big Man on Mulberry Street"편에는 아예 스탠리 도넌이 참여해 만든 "사랑은 비를 타고" "브로드웨이 멜로디"를 방불케하는 길고 거대한 춤장면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코메디와 연애 이야기를 한껏 강조한 덕택에 "블루문 특급"이 자칫 두 남녀의 말싸움으로만 때우며 단조로워 지는 위험을 극복하게 합니다.

이런 연출상의 특징 때문에, "블루문 특급"은 이후 많은 TV쇼들에게 영향을 끼친면도 적지 않습니다. 꽤 많은 에미 상 후보 기록을 세우게 된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밤 거리)

브루스 윌리스의 인물, 데이빗의 꿈 속에는 황당 무계한 웃음 거리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데이빗의 시선으로 포착된 시빌 셰퍼드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더 진하게 나타나 있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질다 Gilda" 영화 속의 유혹적인 모습을 배워 오고 있어서 시빌 셰퍼드의 매력이 좀 더 끈끈하게 샘솟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살짝살짝 왜곡되어 농담 소재가 되어 버립니다. 브루스 윌리스의 독백 나래이션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라면 무조건 맞아든다는 점을 소재로 삼기도하고, 한없이 폼잡기에 치우치는 느와르 영화 주인공들의 버릇을 웃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즉 시청자들이 거실의 TV앞에 앉아서 가상의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는 웃음이 많은 것입니다.

소위 "제 4의 벽"이라고 하는, 이 관객-무대-배우가 있는 현실과 극속의 인물과의 보이지 않는 경계는 "블루문 특급"에서 파격이 필요할 때 농담 소재가 됩니다. 무슨 판소리도 아닌데, 극중 인물인 메디와 데이빗이 시청자들에게 말을 거는가하면, 심지어 촬영 스텝들과 이야기 해버리는 장면이 나와 버리기도 합니다.

넓게 보면,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선 보였던, "시청자들이 이미 아는 내용을 길게 말로 설명 하려고 하면, 말 하기 전에 상대방도 다 알아들어 버리는 초능력"도 이런 부류의 웃음에 속할 겁니다. 시청자들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줄기차게 언급하는 인물이었던 "하늘이시여"의 주인공 동생, 팬들을 주인공들의 친구로 이름 언급하는 것 등등도 비슷한 부류입니다. 이와 매우 비슷하게 "블루문 특급"에는 계속 언급되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내용이 뭐였는지 결코 안가르쳐 주는 "안셀모 사건"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야식 먹는 사람들)

그 연장선상에서 "블루문 특급"에는 환상장면이나 꿈장면을 이용해서 기묘한 표현을 보여주는 부분도 꽤 많습니다. 204 "꿈 장면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에피소드는 거의 꿈으로 도배된 에피소드이고, 그외에도, 사이사이에 주인공의 감정을 희극적으로 과장하여 짧은 환상이나 짧은 꿈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자주 있습니다. 이런 장면 역시 독특한 웃음을 줄 수 있는 소재를 LA 탐정 사무소의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끼워 넣어서 재미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짧게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204 "꿈 장면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에피소드는 메디와 데이빗의 티격태격 구도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메디는 명망 높은 모델이자 부유한 소유주이지만, 의외로 무너져 내리기 쉬운 어린애 같은 순수한 이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항상 놀려대는 데이빗은 메디의 부하에 불과하여 좀 비뚤어지고 야비한 듯 하지만, 알고보면 철없음과 유치함에 쩔어 있는 인물인 것입니다. 예의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브루스 윌리스의 행태 연기와 시빌 셰퍼드의 늘씬한 모습은 조금 위험한 방법으로 맞아 떨어져서 자극적인 대사와 장면을 만들어내고 이로써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블루문 특급" 전체에서 항상 쓰이는 수법으로 전체 이야기에 종종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전화하는 사람들)

두 사람은 둘 다 장사 안되는 탐정 사무소를 이끌어 가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영부영 어설프게 힘들이다가 말도 안되는 방향으로 사건이 치달아가는 일을 자주 겪습니다. 두 사람은 끝없이 싸우지만, 데이빗은 솔직한 성품에 탐정일에 인생을 바쳐온 사람이고, 메디는 순수하며 아름다운 부자임을 서로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정들고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면도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블루문 특급"이 이어지는 TV쇼인만큼, 당연히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 서로 통할 듯 말 듯 하면서 계속 안 이뤄지며 이야기를 질질 끌고 나갑니다.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조바심 나게 해서 더 몰입하게 하려는 수법입니다. 또 동시에, 그만큼 이 느와르 영화스러운 도시 세계에서 두 사람이 진심으로 맺어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블루문 특급"은 3년이 넘어가는 후반부 시리즈가 되도록 이 "이뤄질듯 말듯"을 오래 끌고 나가서 시청자들을 지치게 했고, 뭔가 재미있는 장면을 삽입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파격적인 환상 장면, 꿈 장면, "제 4의 벽"을 깨뜨리는 장면 등등을 너무 남용해 버렸습니다. 중반부에 이르면 이미 느와르 영화 분위기나 범죄물 분위기는 많이 삭아 없어집니다. 후반부로 갈 수록 점점 이야기는 도시의 밤에 벌어지는 살벌한 사연을 낭만적이고도 유쾌하게 그려낸다는 초반 분위를 잃게 됩니다.


(메디)

업친데 덥친 격으로 시빌 셰퍼드는 임신을 하게 되어 연기가 어려워지게 되고, 브루스 윌리스는 세계에 브루스 윌리스를 세운 "다이 하드"를 찍니 어쩌니 하면서 영화 쪽으로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블루문 특급"은 고전영화들을 배워 온 현란한 연출과 넘쳐나는 스크루 볼 코메디 풍의 대사들이 있기에 많은 작업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럴만한 여유는 없어지고 이야기들은 점점 더 시간 때우기가 되어 갔습니다. 배우 들의 시간이 없어지면서 여러 마찰이 생기기도 했고, 인기도 떨어지면서 결국 "블루문 특급"은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 하드", "다이 하드2", "다이 하드3"의 브루스 윌리스가 되었고, 시빌 셰퍼드는 화려한 매력을 천하에 과시한 매들린 헤이즈 역으로 이름을 아로 새긴 뒤, 아직까지 잘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렌 고돈 캐론은 한국 관객에게는 원판 "러브 어페어"보다도 더욱 친숙한, 1994년 워렌 버핏, 아네트 베닝판 "러브 어페어"를 감독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헤이즈 탐정)

한국에서는 KBS를 통해서 심야에 방영되었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방영되었기 때문인지, 인기 자체는 "레밍턴 스틸" 보다도 오히려 적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제곡 장면의 낭만적인 밤 모습, 듣기 좋은 음악들의 느와르 영화 풍은 심야 프로그램에 매우 잘 맞았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말 "달빛"처럼 한 번 보고도 결코 그 느낌을 잊지 못하는 멋진 모습을 남겼습니다.


그 밖에...

204 에피소드는 시작 장면에서 오손 웰즈가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오늘밤, 우리 방송 역사상 매우 커다란 '후진'을 이룩할 겁니다. Tonight, broadcasting takes a giant leap... backward." 그리고 오늘 에피소드는 요즘과 같은 컬러 영상과 스테레오 음향의 시대에, 흑백 화면과 모노 음향으로 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시도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텔레비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오손 웰즈의 그다운 근엄한 목소리로 말합니다만, 어딘지 말하는 모습이나 시선이 좀 힘겨워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오손 웰즈 등장 부분 유튜브 클립)

슬프게도, 오손 웰즈는 이 에피소드가 첫방송되기 불과 5일전에 사망했습니다.

혹시나 나중에 압력을 받아 컬러로 방영될까봐 제작진을 촬영 자체를 흑백 필름으로 촬영해 버렸다고 합니다.

에바 마리 세인트가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로 나옵니다. 그녀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도 출연했는데, 403 에피소드에서 마침 비행기의 추격을 받는 장면에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배경음악이 흐르기도 합니다.

브루스 윌리스를 찾아내기 전까지 3000명 정도의 오디션을 보았다고 합니다.


("블루문 특급" 주제곡 장면 유튜브 클립)


(204에피소드의 노래 장면 유튜브 클립)


(204에피소드의 느와르 영화 독백 유머 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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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닥슈나이더 2006/11/10 22:18 # 답글

    이것도 구하고 싶은데 말이죠...ㅠㅠ;;;

    지르고 싶어도 못지르는 이기분...ㅠㅠ;;
  • FAZZ 2006/11/10 22:22 # 답글

    아 정말 저 시절때가 좋았는데 말이죠.
  • 게렉터 2006/11/10 22:41 # 답글

    닥슈나이더/ 블루문 특급 DVD는 비교적 최근에 발매된 편이니 더 쉽게 구하실 수도, 더 비싸게 구하실 수도 있으리라 추측합니다. CNTV였던가,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 얼마전에 재방영했더랬습니다.

    FAZZ/ 어떻게 보면, 80년대의 범죄, 마약, 쌍둥이 적자 문제 등등이 구체화되어 암울하게 지적되기전 마지막 긍정적인 환상에 차 있는 TV쇼들이 "블루문 특급"무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Justin 2006/11/11 11:50 # 삭제 답글

    참으로 신선한 시도가 많아서 어린 시절에 볼 때에는 굉장히 재미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흑백이라던가, 뮤지컬이라던가 여러가지 재미난 시도가 있어서 즐거웠고, 특히 낭만적인 주제가는 일품이었죠.
    개인적으로 참 인상깊었던 것은 시리즈의 종영을 알리던 마지막 편이었습니다. 더이상 만들 수 없다면서 세트가 철거되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드라마의 엔딩이란 참 인상깊었었습니다. 반가운 작품의 친절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 게렉터 2006/11/13 10:27 # 답글

    Justin/ 감사합니다. 어두운 살인 이야기와 느와르 분위기를 끌고 나가면서 좀 초현실적인듯한 가벼운 분위기도 유지하는 것도 매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rumic71 2006/11/14 15:35 # 답글

    브루스 아저씨는 머리가 있는 게 오히려 위화감이 드는군요 ^^
  • 게렉터 2006/11/16 10:44 # 답글

    rumic71/ 사실 이 때부터 살짝 대머리스러웠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나 숀 코네리의 과거 모습을 봐도 비슷합니다.
  • sid 2007/01/30 22:40 # 삭제 답글

    재미있는 정보가 많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알 재로 주제곡은 듣기만해도 눈앞에 도시 야경이 훤히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죠.^^
  • 게렉터 2007/01/31 12:41 # 답글

    sid/ 굉장히 좋은 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레밍턴 스틸"과 비교하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말그대로 "여기"에도) 많은데, "레밍턴 스틸"의 주제곡도 좋으면서 분위기가 두 시리즈의 분위기가 다른 만큼 확 달라서 들어볼 수록 재미있습니다.
  • af 2007/06/13 11:50 # 삭제 답글

    파격과 충격의 연속이었져.. 이제는 지겨운 패러디, 오마쥬 등등이 당시엔 정말 신선했져. 정말 재미있었더랬습니다.
  • 게렉터 2007/06/13 14:11 # 답글

    af/ 남녀 주인공들이 시청자들에게 말을 건다든가, 진지한 이야기 진행을 하고는 극 제작자와 대화를 한다든가 하는 연출은 지금봐도 여전히 예가 많지 않을 정도 입니다. "3차원 입체 영화" 운운하는 에피소드는 상당히 신기한 기분도 주고 말입니다.

    오랫만에 볼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이 TV쇼는 시작장면과 노래가 정말정말 좋고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casey 2007/06/20 05:00 # 삭제 답글

    이 새벽에 갑자기 문라이팅 필 꽃혀서 돌다가 여기까지 왔어요.좋은 포스트 입니다..

    정말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에요.. 잊을 수 없는.. ~ 아..~~아~~
  • 게렉터 2007/06/20 13:12 # 답글

    casey/ 감사합니다. 미국에서 DVD가 정식발매되어 있으므로 과감하게 구입하시려면 구입하실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 칼리토 2007/11/26 00:27 # 삭제 답글

    시즌 1의 오프닝을 잊지 못하다가 유튜브 덕분에 행복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 시즌의 오프닝은 에피소드의 컷을 연결한 것이어서 오히려 문라이팅의 분위기를 살리는데는 실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도시의 나이트라이프와 문라이팅 로고가 교차하던 그 모습..초등학교 시절에 본 것임에도 너무나 오래, 진하게 남네요. 게렉터님이 바로 그점을 강조해주셔서 너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 게렉터 2007/11/28 11:17 # 답글

    칼리토/ 시즌3만 해도 시작장면을 너무 짧게 해서 멋이 덜 삽니다. 시즌1 이 말씀하신대로 무척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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