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정글 The Asphalt Jungle 영화

1950년작, "아스팔트 정글"은 쇠락해 가는 도시의 한 켠에서 저녁이 저물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도시의 암흑가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을 하나 둘 보여주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날 밤에 벌어질 한 탕의 큰 건수에 모두 말려들며 연결됩니다. 그리고 각자 어떤 결말을 맞는지 말로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욕심, 분노, 두려움의 불안한 세 감정 중 하나, 혹은 뒤섞인 세 감정 모두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견 현실을 냉랭히 바라보는 영화인듯 하지만, 실은 느와르 영화스러운 밤 풍경 아래에서 범죄와 그와 어울려 춤추는 희로애락들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딕스)

범죄자들 중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언급해 보자면, 우직하고 무뚝뚝하지만 아주 살짝 순박한데가 있는 딕스, 노련한 변호사이자 암흑가의 거물인 에머릭, 착실하게 자리잡아나가고 있는 불법 도박 업자인 코비, 그리고 범죄를 기획하고 제안하며 설계하는 명성 드높은 사기꾼인 "선생님 Doc" 혹은 리덴슈나이더가 있습니다. 각각 스털링 해이든, 루이스 칼렌, 마크 로렌스, 샘 자페가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흘러가 엮이는 방향을 살펴보자면, 선생님이 범죄를 꾸미기 위해 코비와 접촉하고, 코비를 통해 에머릭을 소개 받고, 에머릭의 지원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딕스를 고용하는 형태입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연히, 화목하게 대동단결해서 멋지게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신나는 모험을 하며 속도감 넘치게 도시를 싸돌아다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욕심은 불쌍하기까지한 처절한 상황으로 치닫고,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허망하고도 치졸한 집착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오델로"처럼 폭발적인 비극이라기보다는, 꼬이고 안풀리는 인생에 짜증을 내면서 순간순간 터져나가는 장면이 있는 비극입니다. 모든 사건은 이런 분위기에서 인물들의 좀 거지 같은 추한 면을 약간씩 드러내게 합니다. 한편으로 그런 가운데에서도 또 이상한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위엄을 지키려하는 암흑가다운 낭만도 약간 비춰 줍니다. 이렇게 나약한 모습과 그 나약한 모습을 견디고 가리려는 모습, 그 양면이 조금씩 차분히 다뤄지고 있는 덕택에 모든 인물들은 인간다운 칠정과 오욕의 덩어리로서 축축한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선생님)

가장 재미있는 인물과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셋 있습니다. 암흑가 거물 에머릭 역의 루이스 칼렌, 착실한 도박업자 코비 역의 마크 로렌스, 오갈 때 없어서 잠시 딕스에게 의탁한 까닭에 일을 지켜보게 되는 아가씨역의 진 하겐 입니다.

에머릭은 겉으로는 최강의 거물로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사실은 매우 위태로운 인물입니다. 에머릭은 그런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급작스러운 절망감이나, 주변의 시선과 비웃음을 의식하게 되어 괴롭게 되는 애처로운 처지, 그런가운데 끝까지 품위을 지켜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코비는 비록 암흑가에서 범죄 비슷한 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름대로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모든 사람과 착하게 잘 지내려고 애를 쓰는 인물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의지와 성실함이 좌절되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자 주인공에 가장 가까운 아가씨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의탁할 데도 없고 잘 풀리는 일도 없어서 겁먹고 슬픔에 빠져서 허둥거리고 휘청거리는 연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가씨)

에머릭은 근엄한 체구와 표정, 말투를 갖고 있지만, 결코 단지 모범적인 존경심만을 불러올 인상은 아닌 까닭에 표현이 출중합니다. 에머릭은 손녀딸 뻘 되는 여자와 바람이 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바람난 관계는 그다지 악랄하게 부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그 구도 자체만으로 이 에머릭이라는 인간의 꾸물거리는 욕심과 허영이 비칩니다. 덕분에 이 인물은 노골적으로 비난받고 있지도 않고, 오히려 적당히 불쌍한 느낌을 주면서도 또한 결코 비판적인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껄끄러운 인물로 남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반에 등장하는 이 사람이 억지로 태연자약한척 하는 부분은 도리어 사건의 긴장감을 더합니다. 이 사람 바로 앞에는 무척 긴장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기에 오히려 사건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에머릭이 반대로 태연자약해 하는 모습은 인물의 꼬인 상황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사태의 긴장감을 더욱 높여 줍니다. 이런식으로 그려지는 에머릭 성격의 입체감은 인물의 현실감을 돋구고 감정의 깊이를 더 진짜처럼 관객에게 전해 줍니다.

말이 많고 누구에게나 친하려는 듯한 성격으로 보이는 코비와 여자 주인공격인 아가씨는 둘 다 약간은 연극에 가까운 연기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감정의 격양에 따라 부풀려서 읊습니다. 코비는 다채롭게 변하는 이 사람의 표정이 현실감이 있는데다가, 말이 많은 성격 때문에 이런 극적인 어투가 어울립니다. 반면에 아가씨는 약간 현실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과장된 어투가 인물이 처한 상황에 어울리는 듯 합니다. 좀 술취해서 감정이 격해지고 때문에 두려움과 슬픔을 곱절로 느끼는 이 사람의 감정과 격정에 차 떨리는 말투가 무척 잘 어울리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코비는 가볍고 평범한 인물인 탓에 가장 불쌍한 처지가 현실적이로 이입되는 인물이며, 아가씨는 "속눈썹 떼기" 장면 같은 몇몇 결정적인 장면으로 애이불비가 아닌 비이불애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코비)

이렇게 한 건의 범죄와 얽힌 많은 인물들의 울적한 사연과 배경을 이야기 해 주는 이 영화는 이런 사연들의 현실감있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 많은 등장인물들의 숫자를 무척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스팔트 정글"에서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들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수법으로 이야기의 관점을 풍부하게 하고 사건 전개를 어색하게 꼬이게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연을 전달합니다.

예를 들면, 에머릭이 암흑가의 거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쓸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유행한 조직폭력배 이야기들 중에 성의 없이 만드는 것들을 보면, 주로 덩치큰 양복 입은 부하 두 명을 항상 옆에 서있게 하는 수법으로 이러한 내용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덩치 큰 부하 두 명 세워두기"는, 좀 재미없고 따분한 수법임은 물론이요, 이 사람이 어떤식으로 자리잡은 거물인지, 누구와 친하고 어떤 인간과 적대적인지 다양한 배경을 전달하기는 힘이 듭니다.

"아스팔트 정글"에서는 딕스와 선생님이 대화하는 장면을 끼워 넣습니다. 선생님이 딕스에게 에머릭이 얼마나 거물인지 물어보면, 에머릭이 답해줍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선생님 다운 판단력으로 그런 에머릭의 현재 상태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추정해서 딕스에게 또다시 답해줍니다. 자연스러운 다른 인물의 대화속에서 관객들까지 에머릭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들을 보다보면,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다룬답시고 각자 개인기 하나씩 할 시간 배정해줄 뿐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아스팔트 정글"은 풍부한 인물을 십분 활용해 모든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돌려가며 들려주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에머릭)

다양한 인물의 시각으로 사건을 조망하는 까닭에 영화는 한 사람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방법을 취하기도 쉬워집니다. 그래서 영화속 등장인물들이 하는 일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얼마나 울적한 짓인지 객관적으로 조망하기에도 좋아집니다. "아스팔트 정글"에서는 한 사람이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거나, 뭔가 조금이라도 이익을 취하겠다고 속임수나 계략을 꾸미다가 가차 없이 실패하고 들통나서 허탈할 정도로 비아냥거림을 받을 듯한 묘사가 군데 군데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이 영화에서 인간의 나약함이 어떤식으로 죄나 악과 연결되는지 보여주며, 그 모습이 그만큼 처량해 보인다는 것을 잘 밝혀 줍니다.

이렇게 비극적이고 비정한 상황에서 저마다의 불안감과 절망감, 한낱 희망에 대한 부질없는 허망한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어두운 밤과 대조적인 전등 불빛을 배경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구성은 느와르 영화의 정통을 가져온 듯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명과 시각적인 심상, 소음과 사람 목소리의 건조한 충돌을 살리기 위해 배경 음악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어둠과 불빛사이를 지나다니는 덕분에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작도 좀 더 박진감 넘치게 보이고, 불빛을 받은 사람의 표정은 더욱 기괴해 보이며, 음침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얼굴 선들이 더욱 또렷하게 살아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가끔 화면 전체에 가득차도록 잡아내는 땀흘리는 사람 얼굴 장면으로 더욱 강조됩니다. 조명이 어두운 쪽과 밝은 쪽에 배치 된 사람들은 그림자를 뚜렷히 드리우는 덕에, 현재의 배경이 어두운 밤이고 그 밤에 하나 작은 등을 켜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상황도 잘 전달 됩니다.


(주크 박스 앞의 춤)

이런 연출방식이 가장 극적으로 살아나는 부분은 역시나 막판에 나오는 주크 박스 앞의 춤장면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잊혀질만하면 한 번씩 언급되는 누추한 욕망이 다시 한 번 되돌이켜 집니다. 주크 박스에 집어 넣을 동전을 테이블위에 쩔그렁 거리며 올려 놓을 때 돈에 모든 걸 걸고 이 미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심상을 단번에 돌이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나면, 오히려 환상적인 대조 효과를 주는 신나는 음악이 울려퍼지고, 모든 것을 잊겠다는 듯 찰스톤, 자이브, 막춤이 펼쳐집니다. 그 음악을 따라 화면은 부드럽게 움직여 또다시 불안감과 절망감을 담아내는 소재를 화면 한 구석에서 자연스럽게 포착해버립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허탈하고 반어적인 결론이라서 나름대로의 장중함이 있기도 합니다.

"아스팔트 정글"의 주인공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딕스입니다만, 스털링 해이든은 딕스의 무뚝뚝한 연기에만 어울릴 뿐, 이 인물의 다양한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딕스와 함께 다니는 아가씨 역이 보조해 주고 있기에 그나마 주인공 다운 영화의 다양한 감정들을 많이 다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사건만을 중심에 놓고 보면,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선생님"입니다. 독일계 늙은이인 선생님은 훗날 백윤식이 보여주는 듯한 노련하고 경험 많은 사기꾼 인상을 잘 표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윤식이 고수다운 멋을 뿜는 느낌이 좀 더 강하다면, 이 사람은 평생 범죄계에만 있었기 때문에 생긴 어쩔 수 없는 음침함과 약간의 변태스러움을 표현하는데 더 능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느낌은 이 사람이 사악한 악당이라는 단순한 성격과 연결되기보다는, 나름대로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제 희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쩔 수 없이 그와 어울려 슬며시 드러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범죄와 그 여파들의 중심 대표로서도 손색이 없어서, 통일된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마를린 먼로)

이런저런 내용들을 합해서 보면, "아스팔트 정글"은 한 사건을 중심으로 많은 인물들을 다루되, 이런 인물들 사이의 대조적인 느낌과 통하는 일반적인 느낌을 동시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인물들의 처지와 겉모습은 대조적으로 하고, 느끼는 감정과 성격에서는 공통점을 주는 구도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도 덕분에 사람이 도시에서 겪게되는 타락이라든가 좌절, 희망, 우울,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모든 인간이 겪을만하고 고민해 볼만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같이 와닿는 고민을 전해주는 덕에, 이 이야기는 범죄자들의 이야기이지만, 관객들은 마치 범죄자의 편이 된 듯, 과연 범죄가 성공할 수 있을지, 범죄자들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게 됩니다. 때문에 진지한 감정을 차분하게 다루면서도 영화는 계속 흥미를 잃지 않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밖에...

마를린 먼로가 작지만 의미있는 배역으로 나옵니다. 끝날 때 자막을 보면, 11번째로 나오는 이름인데, 범죄자로 입건된 사람만 7명이요, 이것을 수사하는 경관측 주요 인물만 2명이니, 이정도면 이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배역인 셈입니다. 이 영화는 단역이 아닌 배역으로 마를린 먼로가 출연한 서너번째 영화쯤 되며, 대체로 이 영화에서 영화 배우로서 사람들의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진 하겐의 초기 출연작이자, 비중있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진 하겐은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에서 목소리 안좋은 무성영화 인기 여배우로 한국에서 가장 친숙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걸작에서는 기막힌 코메디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존 휴스턴은 많은 명작들로 명망이 높은 사람입니다. 요즘 유행과 연결지어 생각해 본다면, 제임스 본드 영화 패러디 영화라 할 수 있는 1967년판 "카지노 로얄"에서 감독을 맡았으며 직접 M으로 출연하고 있기도 했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력을 언급해 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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