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커플 영화

우선 흥미로운 원작의 설정을 먼저 살펴 보고 싶습니다. "환상의 커플"은 골디 혼과 커트 러셀이 나오고 게리 마샬이 감독한 영화, "환상의 커플 Overboard" (MGM,1987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내용인 즉슨 오만방자하고 야박한 백만장자가 한 시골 건축기술자와 다투게 되는데, 이 백만장자가 기억상실증을 겪게 되면서 건축기술자가 백만장자에게 보복하기 위해 신분을 거짓으로 가르쳐주고 하인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입에 안맞는 건 안마셔요.)

호사스러운 요트 항해와 도시의 정숙한 펜트하우스에 어울릴 인물이 거친 시골 생활을 헤메는 모습이 중요한 웃음거리가 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TV연속극판에서 상당히 효율적인 수단이 되었는데, 백만장자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인물을 소재의 중심에 내세워서 호기심과 특이함을 돋구면서도, 막상 극을 풀어 갈때는 시골생활과 소도시 정경을 편안하게 잡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딱히 "전원일기" 이상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묘사는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고 능숙하게 내용을 풀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카이스트"의 시즌2 라든가, "요조숙녀", 최근의 "눈의 여왕" 초반부 같은 TV쇼들이 뭔가 독특하고 깊이 있는 소재를 다룬답시고, 작가도, 연출자도, 배우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용을 대강대강 꾸미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런 TV쇼들은 자칫 그냥 전문가들의 심각한 세계를 그려냈다는 제작진의 허영에만 빠져 허황된 낭만주의로 자멸해버리고 말아 버릴 수 있습니다. 많은 TV연속극들이 사치스런 옷과 소품을 보여주기 위하여, 유통업계의 거물이나 노련한 금융계 경력자를 다루면서, 오직 "신상품 기획안" 서류철과 미국사람과 악수하는 장면 이외에는 아무런 보여줄 거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상의 커플"은 아예 그런 세계와는 동떨어진 시골과 소도시로 내용을 가져갔기 때문에 별 고생없이도 자연스럽게 독특한 인물과 재미난 상황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원작 "환상의 커플"과 차별점을 주면서 TV연속극판 "환상의 커플"을 치솟아 오르게 하는 것은 이러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남해군 일대를 피로 물들이는 주인공 배우, 한예슬입니다.


(한예슬)

우선 한예슬은 배역 선정이 또렷합니다. 적지 않은 TV쇼와 영화들은, 그저 출연료 많이 준 여자 주인공에게 좋은 것을 다 주기 위해서 여자 주인공은 아름답고, 착하고, 꿋꿋하고, 용기있고, 재미있고, 가련하고, 지혜로운 별별 멋진 점들이 마구 몰려 있는 인물이 될 때가 있습니다. 김희선이나 데미 무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가 허망하게 망해버렸던 많은 TV쇼와 영화들이 빛나는 예시입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 "환상의 커플"의 조안나는 악함의 두 가지 요소인 예의 없음과 이기적임의 겸비하여 광고하듯 드러내는 비도덕적인 인물입니다. 한예슬은 선명하게 악담을 내리 끊는 말투와 살짝 눈꼬리가 올라간 얼굴로 이런 인물을 큰 미화없이 그대로 펼쳐냅니다. 이렇게 배역에 걸맞도록 배우를 맞춰 넣은 것은 "쾌걸 춘향"에서 박시은과 한채영의 배역이 가끔 서로 뒤바뀐듯해보이는 걸리적거림을 넘어서는 장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예슬은 굳건히 다져진 코메디 연기에서 저력을 발휘합니다. 그녀는 "환상의 커플"에서 자기가 잘 하는 것을 그대로 맡아서 야금야금 잘 해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옥탑방 고양이"에서 정다빈의 역할을 연상케 할만큼 능숙합니다. 한예슬의 인물은 사방에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냉담한 어조의 무심한 말들을 뿌리고 다니는 인물이면서도, 어처구니 없게도 막상 현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짜장면이라든가 전기담요와 같은 아주 원초적인 것들 뿐이라는 대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인물의 유치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소한 집착을 끌어 내기도 하며, 또한 쉽게 놓치고 지나가는 일상의 문제를 부풀려 중요한 문제로 발견해내기도 하면서 다양한 웃음을 만듭니다.

물론, 파괴적으로 세상에 맞서면서 독선적으로 하고 싶은 짓이라면 억지로 끝까지 밀어 붙이는 이 주인공은, 다 박살내는 시원함과 거침없는 느낌이 신나기도 하고, 즐거운 사람으로서 구경하기 좋은 극중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안드는 세상의 꼬라지들)

한예슬은 흔히 "토슬이" "뽑슬이" "끌슬이"라 불리우는 장면들에서 별것 아닌듯 보이지만 튼튼한 코메디 연기의 기초를 보여줍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베르사유 궁전을 상상하는 모습에서는 화려한 연출과 무심한 듯한 진지함, 은은히 깔려드든 멍청함이 삼박자를 이루어 절묘한 웃음의 조화를 이룹니다. 더우기 한예슬은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나타내는 고유한 걸음걸이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는 자세를 항상 견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노골적인 농담 대사 없이도, 배역 설정과 각본상의 인물이 잘 어울린 결과로 몰입감을 높이고 재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작업복 바지를 입고 추레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걷는 그녀의 뒷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기도 하며, 아리따운 좋은 옷들이 동원되지 않아서 그렇지 무척 다양한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차림새를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 한예슬은 이 TV쇼에 자주 삽입되는 편인 달리기 장면을 잘 소화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뛰어납니다.

TV연속극판 "환상의 커플"은 또 한예슬의 인물에 맞추어 욕심을 내지 않고 타협적으로 내용을 굽혀 들어간 부분도 나쁘지 않은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한예슬은 골디 혼 보다는 연기의 폭이 좁고, 여자주인공의 모습 자체도 훨씬 더 어리고 미숙한 연령대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환상의 커플" TV연속극판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한예슬을 골디 혼 흉내를 시키도록 몰아붙이는 대신에, 그냥 여자주인공을 훨씬 퇴행적인 인물로 끌어 갔습니다. 밥먹는 것에서부터 잘 때 이불 덮어주는 것 까지 하나하나 모두 남자주인공이 뒤에서 돌봐주어야 하는 인물로 꾸며서, 그녀의 어려보이는 모습이 도리어 유리해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남자주인공을 통해 보호 본능을 느끼게 하고 이리저리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여자주인공을 만드는 것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끝도 없이 다루어 왔던 제작진들이 쉽게 제조해 낼 수 있는 구도의 이야기여서 품질 유지를 잘 해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환상의 커플"은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 의지해 잘 풀려나가는 모양을, 맨날 한 것처럼 백만장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짜장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대폭 방향전환을 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진부하다는 인상도 가릴 수 있게 됩니다.


(꽃다발과 나상실의 대결)

한예슬 다음으로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 배우는 여자 주인공, 조안나의 잊혀진 남편, 박빌리를 연기한 김성택입니다.

분명한 인물과 화려한 농담거리가 가득 주어진 한예슬에 비해 김성택에게는 가시밭길과도 같은 난제가 주어졌습니다. 한예슬처럼 마구잡이로 비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해서도 안되고, 오지호처럼 비교적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교류를 표현하는 상대방이나 주고 받는 대사를 통해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이 부족하면서도, 이야기의 흐름 전환에는 거의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부담도 있습니다. 김성택에게 주어진 대사는 유치원 구연동화에서 "어린이 여러분"께 교훈을 읊어줄 때나 사용할 법한 기이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재미교포라는 미명하에 흘러간 외국 TV쇼 더빙판 같은 말투를 멀쩡히 남해의 위락 시설 단지 사장으로 활동하는 인물이 사용해야만 합니다.

김성택은 이런 대사들을 힘겹게 짚고 넘어가면서 위태위태 합니다. 그러나 위태위태하면서도 그래도 크게 망하지 않고 즐거이 볼만한 인물을 구성해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중심을 잡고 버티는 가운데, 김성택은 박빌리의 뼈저린 중심 매력인 슬랩스틱 코메디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김성택은 일그러지는 표정과 자빠졌다 일어나고 기어다니고 뒤집어지고 놀라고 숨는 역할을 합니다. 별 재미가 없을 만한 각본으로 주어진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김성택은 무척 성의 있게 온몸을 바쳐 해내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 사지육신 멀쩡하고 인상 좋은 사람이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엎어지는 그 대조의 재미도 스스로 잘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김성택은 오지호와는 달리 극후반부가 되기 전까지는 그저 혼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왔다갔다하며 정탐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라서 정상적인 TV드라마 배우로서는 상당히 어려울법한 원맨쇼를 하게 됩니다. 대화보다는 혼잣말이 많고, 누군가와 함께 다니기보다는 혼자 방황해야 합니다. 이런 역할에서 김성택은 주어진 배역 비중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간간히 끼어드는 정말로 진지한 감정 연기에서는 또한 기타를 잡은 조지 해리슨처럼 실력 발휘를 하는 재주까지 보여 줍니다.


(김성택)

한예슬의 화려함과 김성택의 성실함에 비하면, 오지호의 코메디 연기는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되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웃음의 내용 때문에, 오지호는 열받고 화내는 모습을 웃기게 표현하는 역할을 대거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들에서 오지호는 소리만 크게 지를뿐 한예슬이나 김성택과 맞먹을만한 웃음을 뽑아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지호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을 연기하는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골디 혼의 배역을 한예슬에게 주면서 퇴행적인 인물로 몰아간 것처럼, 커트 러셀의 배역을 오지호에게 주면서 훨씬 더 선량한 인물로 바꾼 시각이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오지호는 굳은 턱선이나 강건해 보이는 몸집은 커트 러셀과 닮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훨씬 더 국군 홍보 포스터에 나올법한 모습에 가깝습니다. 오지호는 제트 여객기를 비상착륙 시키는 역할은 커트 러셀처럼 그대로 해낼 수 있겠지만, 아마 2013년의 LA에서 한쪽눈에 안대를 하고 농구 코트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커트 러셀처럼 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 무모한 장면에서 누가 커트 러셀을 따르겠습니까만은.) 오지호는 오히려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정의를 지키며 의지에 불타는 서부 영화의 주인공들과 좀 더 가깝습니다.

오지호는 서부 영화 속의 버트 랭카스터나 록 허드슨처럼 칭얼거리는 여자 주인공들 옆에서 떡 벌어진 어깨로 서 있는 남자 주인공과 비슷하게 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특유의 사람 좋아보이면서도 장난스러운 씨익 웃는 웃음이 곁들여지면 정말로 성실하게 형님의 삼형제를 키우면서 첫사랑에 불타는 유능하고 굳건한 시골 기술자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왔다갔다 하는 옛사랑 때문에 정신 못차리고 휘둘리는 모습을 집어 넣어서 사람이 순박하다는 것을 이야기 내용으로서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지호)

그리하여 오지호가 맡은 남자 주인공은 드라마 구도를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한예슬의 인물은 사방에 무자비한 듣기 싫은 소리만 하고 다니면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은 욕을 먹거나, 시비가 붙어 흥분한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열받은 시민들에 의해 갖가지 소송에 휘말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TV연속극의 여주인공이고 겉모습이 꽤 아름답기 때문에, 극중에서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하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는 친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가운데, 오지호가 강인하지만 선한 인상으로 한예슬에게 욕하는 역할을 대신한 후에, 또한 측은히 여기는 역할로 마무리까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다른 등장인물들도 한예슬에게 비슷한 친근감을 느끼는 모양새를 잡아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야기의 세부적인 내용을 쌓아 올리는 데도 오지호의 인물은 공이 큽니다. 이 이야기는 한예슬이 어떻게 되든지 이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아 가야만 이야기가 발전해 나가게 됩니다. 오지호가 서부 영화 남자 주인공스럽게 실력 있는 일솜씨와 듬직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에, "환상의 커플"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전통적인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애보고 빨래하는 구도"로 정착시켜 버립니다. 조안나라는 여자 주인공에 어울리는 모양도 아니고, 결코 개성적인 모습도 아니어서 좀 답답하기까지한 방향이고 별로 발전적인 상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가장 간단하게 상상해서 편하게 끌어 맺을 수 있는 각본 재료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제작진으로서는 건축하청업자의 경기 고민이나 미국 부동산 재벌의 한국을 보는 시각 같은 이야기보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침밥을 6시에 하느냐 7시에 하느냐로 1주일동안 신경전하는 이야기를 훨씬 더 잘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한예슬 엄마, 오지호 아빠 이야기 구도에 무리가 없어집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는 해도 뭔가 이상한 걸 해보려고 하다가 잘 안풀리니까 갑자기 출생의 비밀이나 뒤늦은 고부간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야 차라리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오지호의 인물이 여자 주인공의 안착을 도와주는 대표적인 부분은 조안나와 어린이들의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들은 대한민국 4천만의 대표자로 선거를 통해 똘똘해 보이는 사람 이백몇십명을 골라 여의도에 앉혀 놓고는 서로서로 뭔가를 말로 납득시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한심한 말싸움이나 철없어 보이는 격투극을 매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곤 합니다. 그런데, "환상의 커플" 세계에서는 한예슬이 냉랭한 어투로 몇 마디 하면, 초등학생들이 그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그 옳고 그름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경외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끝없는 애정을 품어버립니다. 이러한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어린이들과 한예슬의 끈끈한 관계는 트랩 대령과 마리아와 별다를바 없는 한예슬과 오지호의 남녀주인공상 때문에 그 분위기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이들)

"환상의 커플"에서 얼른 생각나는 아쉬운 점들을 꼽아 본다면, 일단은 가끔은 과해보이고 가끔은 부족해 보이는 음악을 짚어 보고 싶습니다. 아주 나쁘지는 않고, 다양한 변주들은 재미있을 때도 많지만, 음악은 지나친 희화화로 굳어져 있어서 옥상가옥, 옥하가옥 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가사는 좀 더 상황이 안좋아서 "니가 먼저 내 옆구리 푹 찔렀지" 보다 조금 나은 정도 입니다.

"환상의 커플"에는 악한 주인공의 적수로서, 그다지 선하지는 않되 그래도 평범한 남자 주인공의 옛 연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투, 표정에서부터 한예슬과 좋은 비교를 이루고 있는 박한별은 이 역할을 잘 해내고 있고, "꽃다발"과 "나상실"의 대결을 잡는 몇몇 장면들은 이런 악인이 주인공이고 평범한 사람이 적인 묘한 구도 속에서,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거짓을 잡아내는 다채로운 재미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주인공 연적의 역할이 매우 비중이 적어지는데다가 중반 이후에는 갈등의 중심에 억지로 겨우 끼어들게 할 뿐이라서 충분히 활용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또, "환상의 커플"에는 공실장과 강자라는 개인기 코메디용 인물을 좀 남발할 때도 많습니다. 한예슬의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한 코메디만 무조건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까, 시간이 빌 때는 이 인물들이 나와서 개인기를 펼치게 하는데, 이 사람들이 잘 하긴 합니다만, 무절제해 질 때도 있고, 또 내용전개를 위해서 "미친 사람이 무심코 한 짓 때문에 우연히 이렇게 저렇게 되었다"라거나 "공실장이 탁월한 시각으로 눈치를 해서 모든 것이 해석되었다"와 같은 억지를 부릴 때도 많아서, 아무리 코메디가 많아도 실은 진지한 이야기인 TV쇼 내용이 지나치게 가벼워져 버릴 때도 있습니다.


(박한별)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환상의 커플"은 원작의 이점을 옮기기 쉬운 한도내에서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억상실증과 여기에 얽힌 자신의 정체 탐구, 시골 기술자 똘마니가 된 백만장자라는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갈등과 긴장감을 이리저리 엮어 먹을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탐구하는 수수께끼는 흥미로운 단서와 복선들을 엮을 수 있으며, 악인이 선인으로 변화하는 고전적이고 교훈적인 갱생이야기의 분위기도 노골적이지 않게 적절히 드리울 수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는 따뜻한 분위기도 분명하게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혹은 "누가 누구의 아들이다"라는 사실을 "친구가 알았다, 어머니가 알았다, 아버지가 알았다, 애인이 알았다, 마침내 여자주인공까지 그 사실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먹는다." 처럼 넓히고 벌려서 질질 끌며 긴긴 에피소드를 때워 버리는 답답한 수법을 벗어나 있습니다.


(시장 풍경)

튼튼한 연출도 "환상의 커플"이 가진 소중한 매력입니다. "환상의 커플"에는 "여름향기", "겨울연가"나 "1부는 해외 현지 촬영 2부은 한국으로" TV쇼들처럼 작정하고 멋진 장면 보여주려고 시간 들이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무의미한 멋부리기에 자아도취되어 재미없는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잘 하고 있다는 제작진의 착각을 끌어들이는 함정이기도 하고, 가끔 뜬금없이 이야기 전개를 끊는다거나 한 가지 감정에서만 헤메게 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반면에 "환상의 커플"은 의식적으로 멀리서 보이는 경치를 잡고 있지는 않아도 바닷가에 있는 장철수의 집이 꽤 멋져 보인다는 점은 드러납니다. 주제곡과 함께 주인공이 시민들과 대화하는 자료화면 나열 하기 뮤직비디오 장면 없이도, 소도시의 시장은 활기차게 부각되고, 시골정경은 평화롭게 늘어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해변의 빨간 등대, 흰 등대 장면처럼 중요한 순간에 두드러지는 미술감각을 끼워넣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물속에서 눈을 뜨며 기억을 되찾을 때처럼 멋부릴 때 짧게 장중해지는 감각도 적절합니다. 지난 14부에서 물속의 한예슬은 아주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난무하는 폼잡기 가운데 허망한 뒤끝일 뿐이었던 "하프 라이프"의 물속 데미 무어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쓰러지는 한예슬을 붙잡아주는 초반 오지호의 모습은 "태평양 횡단특급"에 실린 "태평양 횡단특급"의 남녀주인공들을 생각나게 할만큼 재미나고도 훌륭하게 표현되었고, 쿵쾅거리는 세탁기 앞의 한예슬을 괴물과 맞서는 용사처럼 표현한 장면도 멋집니다. 물론, 요들송을 부르며 알프스에 서 있다가 "요런 꼬라지"를 읊는 장면은 두 번 칭찬해도 좋을만큼, 연기와 연출이 잘 어울린 훌륭한 부분입니다.


그 밖에...

최초 기획에서는 남녀 주인공들로 김현주와 지진희가 구상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잘 어울렸겠지만 지금과는 모습이 꽤 달랐을 겁니다.

한예슬은 왜 자신이 조안나를 연기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제작진 앞에서 10여분간 일장 연설을 하며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한예슬을 주인공을 뽑은데는 이 연설이 꽤 큰 근거가 되었다는 후일담이 신문과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원작 "환상의 커플"의 판권을 구입해서 만든 TV쇼인 만큼, 적어도 시작 장면과 끝 장면에 원작에 대한 자막하나 정도는 넣어 주는 것이 좋은 관습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연출자와 협력회사들의 이름들이 주르르 자막으로 올라갈 때, 원작 작가인 레슬리 딕슨의 이름도 하나 끼워 넣어주면 좋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1999년판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프리키 프라이데이" "저스트 라이크 헤븐"의 작가로, 결코 원작자로서 이름이 표기되었을 때 이 TV쇼에 누가 될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끝이나가는 지금까지도 소파를 "쇼파"라고 하는 단어발음들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뭐 크게 어색하지는 않으니 넘어가 봅시다. 적지 않은 방송 작가들과 그 보조자들에게 국어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문화가 떠돌때가 있고,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이야기 할 때는 영화속 세계의 고정관념에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공영방송이라는 MBC의 홈페이지 등장인물 소개란에서, 굳이 끝 없는 말줄임표들과 "똘아이" "칠랠래 팔랠래" "끝장" "윗짱깐다" "만땅" 이란 어휘를 쓰지 않고는 장철수라는 사람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입니까.


(먼나라 이웃나라)

덧글

  • 무늬 2006/11/27 15:03 # 답글

    많은 생각 안 하고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 FAZZ 2006/11/27 17:14 # 답글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저도 몰아서 볼 생각입니다.
  • 미디어몹 2006/11/27 17:21 # 삭제 답글

    곽재식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등록되었습니다.
  • 게렉터 2006/11/28 12:27 # 답글

    무늬/ 그렇습니다. 뭔가 많이 걸고 넘어지려고하면, 한도 끝도 없이 걸리는 게 있을 법도 하니 말입니다.

    FAZZ/ 초반 에피소드들은 그냥 그럭저럭입니다만, 차곡차곡쌓여서 중반쯤가면서 확연히 재미있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 까나리 2006/11/28 13:53 # 답글

    한참 잼있게 보고 있는데, 종반부라니 매우 아쉽습니다. 그리고 글 상당히 잘 쓰시는군요 ^^
    잘 읽었습니다.
  • 게렉터 2006/11/29 10:02 # 답글

    까나리/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이 TV쇼는 중반부부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 진 것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 정시퇴근 2006/11/29 21:59 # 답글

    초반엔 좀 어설픈 느낌이 강하긴 했는데..중반 이후 부터 한예슬 뻔뻔스런 연기 탄력을 받으면서 급격히 재미있습니다...

    이제 2회밖에 안남아서 좀 아쉬운..
  • 게렉터 2006/12/01 13:14 # 답글

    동의 합니다. 한예슬이 본격 코메디로 뛰어들면서 제 실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 블라블라 2006/12/01 15:33 # 삭제 답글

    어쩌다가 검색해서 여기에 우연히 들어오게 됐습니다. 상당히 장문의 감상문 잘 읽고 갑니다.
    그런데 이 곳 분들은 왜 '드라마'라는 말 대신에 'TV쇼'라고 표현하시는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 게렉터 2006/12/03 10:55 # 답글

    블라블라/ 그냥 드라마라고 하면, "그 영화는 드라마가 강하다"와 같은 말을 할 때의, "극적인 심적 갈등 요소"로 사용할 때와 혼동 될 우려가 있어서, TV드라마 라는 말이나 연속극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TV쇼"는 더 짧아서 사용하는 면도 있고, 보통 "드라마"라고 하면, 시트콤이나 단막극 시리즈에는 잘 쓰이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아울러 통칭하기 위해 "TV쇼"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 이니 2010/12/26 11:06 # 삭제 답글

    오지호와 한예슬의 캐릭터 역활 연기는 다른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만큼 좋은 본보기를 만든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앞으로 이런 연기를 요구하기엔 이제 무리도 있겠거니와 다시 해본다해도 환커만큼의 활약을 기대하긴 어렵지않나 싶기도 합니다.
    허나 이런 기념비적인 환커로 인해 이들에게 다시 한번 이런 역활들을 기대한다는건 역시나 팬심은 어쩔수 없지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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