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포 소녀 영화

"다세포 소녀"가 처음으로 발을 잘못 내딛은 부분이, 만화가 원작이라는 이유로 "만화 같은 연출"이라고 굳어진 수법들을 남용했다는 데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세포 소녀"에는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언행이 난무하며, 합성된 컴퓨터 그래픽 효과와 캐릭터 상품점의 선물들처럼 포장된 소품들이 가득합니다. 교실을 중심으로한 세상은 가상적인 공간으로 원색이 극명하게 알록달록하며, 심심할 때마다 뿅뿅거리는 코메디 효과음들이 스피커를 울립니다.


(알록달록 무쓸모 고교)

이렇게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남발한 부분들은 물론 철저히 환상적인 세계를 꾸미고 그 안에서 어떤 전위적인 발랄함을 보여주는 재미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에 이 영화는 "다세포 소녀" 원작 만화가 갖고 있는 코메디 효과에 치중하고 있는 부분도 많고, 개성이 있는 부분을 따져봐도 전위적인 환상 세계를 꾸민 치장이 보기 좋다기 보다는, 원작 만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농담들이 흥미롭습니다. 때문에 "다세포 소녀" 영화가 시각적인 현란함과 환상적인 효과에 도전한 부분들은 제대로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이러한 "다세포 소녀"의 환상적인 세계 꾸미기는 원작 만화의 개성을 갉아 먹는 면이 있습니다. "다세포 소녀"의 웃긴 요소라는 것은 현실 세계의 문제를 바탕으로 현실 세계의 여러 문제점들을 미친듯이 부풀려 폭발시켜 버리는 것들입니다. 여기에서 일어난 극적인 일탈과 인물들이 도덕을 뒤집어버릴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판 "다세포 소녀"가 묘사하는 세상은 그 자체로 현실 세계와는 상관 없는 기묘한 별천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현실이라는 고정관념을 한 쪽에 둘 수 있어야만 웃음을 줄 수 있는 "다세포 소녀" 만화판의 재미를 날려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멀쩡한 교실에서 갑자기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모든 반 학생들이 조퇴하겠다며 나가버린다면 당황스러운 일이 되지만, 초록색 벽지와 보라색 리본으로 치장된 TV유치원 세트 같은 곳에서야, 갑자기 그 중앙에서 아기공룡 둘리가 튀어 나온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게 됩니다. 뭐 실제로 막판에는 거의 그 비슷한 것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만.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

더군다나 그나마 환상세계를 꾸미는 재주들도 몇몇 부분에 꽤 크게 구멍이 난 부분이 있습니다. 박자감각없이 무조건 4, 5초 간격으로 울려퍼져서 상당히 난잡한 코메디 효과음들은 꽤나 어색합니다. 적지 않은 뮤지컬 노래들이 영화에 끼어들어 있는데, 노래 곡조가 대강대강 흘러가긴 합니다만, 가사와 어울리는 재미도 부족하고 진실함도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연주가 가끔 확연히 질이 떨어집니다. 특히 도입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해야 할 "무쓸모 고교 주제곡" 장면은 시각상의 연출이 꽤 화려 했던 데에 비해 음악에 참 힘이 없습니다.

저는 김동률의 노래를 많이 들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람회 1집의 "여행"에서 그가 "생生 브라스"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세포 소녀"의 도입부 노래에서 그 브라스의 초라한 음색은 정말 불쌍할 정도입니다. 이 노래에서 "무!쓸!모!"하고 동기가 지날때 마다 경쾌하게 소리치는 엉성한 노래 솜씨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생기게 합니다. 거기에는 화음도 없고, 강약도 없습니다. 무척 실없지만 꽤나 중요했던 농담을 화려한 뮤지컬로 승화시켰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걸출한 도입부와 비교해보면, "다세포 소녀"의 부족한 점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비현실적 연출)

원래부터가 장편 극영화로 꾸미기 어려웠던 단편 만화시리즈를 원작으로 한만큼, 전체 줄거리의 한계점도 뚜렷합니다. "다세포 소녀"는 꼭 기승전결을 맺을 것처럼 시작했던 이야기가 그냥 흐지부지 되고 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외눈박이"의 인생역정, "두눈박이"와 "안소니"의 사연, "콩쥐팥쥐 연극 이야기" 등등은 발단과 전개 부분이 제시되었다가 그냥 대강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원작에서 굉장한 재미를 선사했던 "축구부 주장" 이야기들과 "미스테리 동아리" 이야기들은 그냥 그런게 있다는 점만 언급되고 흔적만 남아 있어서 오히려 이 작자들이 왜 나왔는지 의아함을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사이사이에 끼어든 농담들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그나마 중심 줄거리로 잡고 있는 것은, 인터넷 스타가 된 여자 주인공 이야기와 극도의 터무니 없음을 달리는 이무기 전설 이야기 입니다. 일단, 후자의 이무기 전설 이야기는 "다세포 소녀" 고유의 가히 아노미 적이라 할만한 유머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등장인물들의 성격들과도 조금의 상관도 없는 그냥 뜬금없는 환상적인 사건일 뿐입니다. 한편, 전자는 여자주인공을 맡은 김옥빈의 개인기를 보여 줄 수도 있고, 여자주인공 인물의 갈등과도 적당히 연결되어 있어서 그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다른 무쓸모 고교 등장인물들과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체의 중심 줄거리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이 연기가 부족하며 코메디 연기는 좀 심각하게 연마가 덜 되었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김옥빈이나 이켠과 같은 배우들은 할 일은 하고 있지만, 코메디에 거의 참여가 없으며, 두눈박이를 연기한 이은성은 갑자기 쓸데 없이 교훈적인 설교를 하게 되어 있는 인물을 맡는 통에 빛을 잃었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초반에 잠깐 깜짝출연한 조정린 보다도 실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안소니를 연기한 박진우만이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안소니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낭만과 감정 폭발에 휘둘리는 코메디 인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인물이 제대로된 이어지는 줄거리에 잘 참여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기만 했다는 점은 아까웠습니다.


(안소니)

"다세포 소녀"는 화려하게 꾸민 기이한 세계를 보는 재미를 적당히 주는 가운데, 원작의 몇몇 위대한 웃음거리들을 그대로 복제한 부분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만화 같은 연출"이라고들 짧게 이야기하고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만, 만화가 원작인 것과 상관없이 "슈퍼맨"은 스프링튀어오르는 소리 효과음 대신에 웅장하고 위엄있는 주제곡을 사용했고, "딕 트레이시"는 아무리 빨간 바지 입고 노란 코트 입은 사람들이 걸어다녀도 음험한 느와르 영화의 배경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세포 소녀"는 효과음을 솎아내고 괴상한 종교 집단 춤장면을 포함한 지금의 뮤지컬 장면 대신에 더 실력을 과시할 만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조금은 더 나아졌을 겁니다.


그 밖에...

"무쓸모 고교"의 외관은 경기상고 인듯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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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AZZ 2006/11/28 13:00 # 답글

    확실히 영화보다는 CATV의 드라마가 더 호평을 받고 있더군요
  • 게렉터 2006/11/29 10:02 # 답글

    케이블TV 판은 이야기만 들었지 본적이 없어서 비교하는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기도 했는데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긴급조치 19호' 능가"라는 악평에 비해서는 저는 그나마 재미있는 면도 즐긴 편입니다.
  • shuha 2008/01/25 11:28 # 삭제 답글

    이은성양의 팬이라.. 이영화를 극장까지 가서 봤습니다만, 원작을 원래 좋아해서 그렇게 나쁘진 않았습니다. 원작에서 살려낸 개그 코드들 '엄마의 피라미드' 라던가, 화장실에 빠진다던가, 하는 스토리들이 만화에서 영화로 바뀌면서 상당히 퍽퍽하고 썰렁한.. 만화에서 배꼽 잡을 일들이 영화에선 ...그래서? 정도로 마무리 안되는 개그가 되어 버렸다는게 기억에 남더 군요. 특히 김수미 이무기 등장씬은... 그냥 김수미 출연시켜서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인기좀 얻어보자 하는 꼴로 밖엔... 그래도 10년쯤 뒤엔 이 영화가 분명 '컬트' 로서 가치를 인정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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