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티드 The Departed 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판인 "디파티드"는 범죄조직에 위장 잡입시킨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형사가 범죄자인척 행세하면서 적진에 합류하고, 정보를 빼내서는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려 한다는 것 입니다. 좀 싱거운 예만 들어보아도, "목포는 항구다"에서부터 "미스터 소크라테스" 까지 적지 않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서로 안 어울리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특이한 갈등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 소재를 다루었습니다.


(악당들)

"디파티드"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마치 첩보영화처럼 "들키면 어떡해"하는 조마조마한 분위기 입니다. 침투한 조직의 우두머리는 뛰어난 실력과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라서 금방이라도 주인공이 첩자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듯 합니다. 주인공은 꼬리를 조금씩 밟히면서 의심을 사기도하고, 그런 와중에 얼버무리는 거짓말들을 늘어 놓으면서 가까스로 변명을 하면서 위기를 보면하기도 합니다. 관객들을 긴장하게 되며, 과연 주인공은 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벗어나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 하게 됩니다. 독일군복을 입고 독일군인척하면서 정보를 빼내는 많은 2차대전 배경 영화들이 이런 들키지 않기 위해 고생하는 이야기를 다루었고, TV쇼 "앨리어스"는 거의 매 에피소드마다 계속 이 방법만 써먹었습니다.

많은 첩보영화들은 이렇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한 고생을 해야하는 주인공을 외롭고 우울한 사람들로 묘사했습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첩보전의 중심에 끼어든 사람이기에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고, 주인공은 겁에질린 고독한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흔히 "어차피 혼자사는 인생"이라는 말로 요약되곤 하는 숙명적인 인간의 개인성을 드러내기에도 좋고, 홀로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심각한 감정들을 경험하는 주인공을 극적으로 보여주기에도 좋습니다. "이중간첩"이나 "쉬리"만해도 사실은 이런 내용을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디파티드"는 첩보 영화가 아니라 범죄와 싸우는 경찰 이야기인 탓에, 이런 주인공의 외롭고 고달픈 처지는 더 독특하게 강해졌습니다.


(첩보전)

주인공들은 결국에는 나라와 나라, 조직과 조직이 다투는 거대한 속임수판에서 아군에게조차 환멸을 느껴야 이야기가 더 심각해 집니다. 자신이 인간적인 가치를 폄훼당하고 단지 작전의 소모품으로만 취급당한다는 사실에서 쓸쓸함을 느끼게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외로움은 커지고, 거대조직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느낌도 조금씩 생겨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첩보 영화는 보통 2차대전을 끝낸다든가, 세계평화를 위한다든가 하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쉬리"의 한석규와 송강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제 한 몸 아까운 줄 모르고 날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첩보원이 된 것일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전환점을 위해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 발생해야만 합니다. "쉬리"에서는 아끼는 사람이 몇명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일이 발생해야 했고, "여명의 눈동자"에 나온 주인공들은 천인공노할 전쟁범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범죄자들 사이에 끼어든 경찰 이야기로 다루면서 비교적 희생정신이나 사명감 없는 사람들을 이런 고난에 빠뜨릴 수 있게 됩니다. 보단 현실적이고 현장감이 넘치는 상황에서 첩보영화의 심각한 의심, 혼란, 공포를 주인공에게 선사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살벌한 일본제국 대본영의 비밀작전 부서가 아니라 칠성파가 뒤를 봐주고 있는 나이트 클럽을 배경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꾸밀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보다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 속에서, 장렬한 사명감보다는 피곤한 직업으로서 이런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들 때문에 "디파티드"에서 우리는 보다 가깝게 이러한 "들킬까봐 겁나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첩보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단한 총솜씨나 특수장비를 지니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반대로 "디파티드" 같은 이야기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런 저런 까닭에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고난과 역경, 혼란은 과장된 난리처럼 보이지 않고 있을 법한 일, 경험할 법한 상황으로 보이면서도, 더욱더 심각한 위협으로 와닿게 됩니다.


(잭 니콜슨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디파티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러한 현장감을 활용해서 현대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그려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퍼져 있는 범죄 문제, 계층 문제와 이민자 사회의 뿌리를 보여 주려는 면이 있는 것입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온갖 장면에서 쉼없이 성조기 모양이 화면에 잡히면서 사회와 국가가 내세우는 가치관에 의심을 품게 합니다. 같은 효과를 위해 중반부 이후에 접어들면 메사추세츠주 관공서의 찬란한 건물이 계속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의 대립은 이 영화가 다루는 조직 구도의 핵심이고, 수많은 대사와 행동들에서 이런 내용들은 지속적으로 환기됩니다.

아쉬운 점은 이런 미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다지 잘 담겨 있지도 않고, 첩보전에 가까운 잠입 경찰 이야기와 큰 상관도 없다는 점입니다. 일단은 이야기 자체가 원형적인 고독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와 함께 거의 신화적인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현실비판적인 사회문제 요소를 표현하기에 쉽지 않다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마치 사랑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해야할 "봄날은 간다"에서 갑자기 영동 고속 국도를 오가다 느끼게 되는 주말 정체의 짜증남을 다루는 듯한 어색함이 있습니다. 또다른 이유로, 21세기 보스톤을 무대로 삼기에는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의 대립이 시사적으로 좀 유행이 지난 문제가 되어버린 탓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영화의 배경을 30,40년대로 잡는다거나, 아니면 아예 무대를 LA로 하고, 한국계-중국계 암흑조직의 대립으로 했다면 차라리 더 분위기가 살아났을 겁니다.


(마틴 쉰과 맷 데이먼)

"디파티드"는 결말에 이르면서 외로움과 갈등에 번민하던 주인공들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야기로 치닫게 됩니다. 같은 소재를 다룬 "페이스 오프"나 비슷한 혼란을 다루었던 "뮌헨"은 이런 이야기를 꽤 볼만하게 풀어낸 바 있습니다. 악당 편에서 잠입해 있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악당들로부터 우정과 친근감을 느끼기도 하고, 원래 자신의 편이었던 정의의 집행자들에게 반발심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과연 자신이 지금 악인인지 선인인지 헷갈려하며, 어디에 자신의 진짜 존재가 있는지, 누구의 말을 믿으며 어디서부터 자신의 인생관을 다시 세워야 할지 몰라 절망하는 장면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분/정체성 Identity"이라는 단어까지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파티드"는 마지막 마무리는 약한 편입니다. 우선 약간씩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쁜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사람일 뿐이고, 착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나쁜 사람들에 대해서는 추한 모습과 지저분한 습성들을 주로 잡아서 보여주고, 착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인간성을 드러내는 고민이나 나약하고 불쌍한 모습을 곁들입니다. 때문에 별로 정체성의 위기를 밝힐 만한 소재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도입부에서는 꼭 더 주인공 같아 보였던 맷 데이먼이 사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비해서는 좀 미적지근한 인물에 불과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억지로 이전투구와 일장춘몽의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영화는 좀 무리하게 막판 파국을 설정해 넣었습니다. 팽팽하게 무시무시한 악의 왕으로 활약했던 악당 두목은 좀 허무하게 휘둘립니다. 별다른 큰 상황 변화 없이도 갑자기 커다란 사고를 치는 인물이 한둘이 아닙니다. 천천히 갈등하는 인물들을 다루었던 초반부와 중반부에 비해서, 결말무렵에 가면 "놀랐지롱?" 하면서 깜짝깜짝 정체를 밝히는 인물들이 우수수수 쏟아져서 분위기도 많이 달라집니다. 이런 모양새는 한 발의 총질, 몇 마디 말에 고민과 의심이 넘쳤던 중반의 진지함과 어긋나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적당한 역할을 해왔던 여자주인공은 결정적인 일을 "우연히 재미로" 일을 저지른다는 방식으로 억지로 결말에 끼워졌으며, 그나마 사건 자체에는 아무 영향도 못끼치는 초라한 모양새로 줄어들어 그냥 "토라진 표정"만 보여주고 말아버립니다.


(맷 데이먼과 잭 니콜슨)

연기를 보자면, 거의 두 문장 마다 한 번 꼴로 등장하는 엄청나게 많은 욕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다수 인물들이 "튜브"의 권오중 역할을 방불케 할만큼 욕을 달고 사는데, 아쉽게도 적지 않은 배우들이 별로 욕을 대사 속에 잘 섞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이 영화에서는 살벌하고 거칠면서 불안한 분위기 내고 싶다"라는 의도만 억지로 비쳐 나올 뿐, 말이 재미있다든가 자연스러운 분노나 천박함을 담는데는 실패하는 때가 많습니다. 잭 니콜슨, 알렉 볼드윈 이나 몇몇 단역들만이 성공적일 뿐, 욕을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삼아야하는 마크 웰버그 조차도 다른 연기에 비해서 욕은 썩 잘한다고 할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주 잠깐 나오는 선량한 주인공 모습이나 진지한 정의감 표현 장면, 튼실하고 성실한 임무 수행을 연기할 때는 이래저래 헛점이 보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저런 혼란과 고민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아하는 모습은 아주 잘 해내고 있습니다. 그 연장에서 불안해 하면서 몸을 떨고 말을 더듬는 모습도 격정적인 감정에서 잘 살아났습니다. 여자주인공과의 정신과 상담 장면은 별달리 중대한 것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살짝 미쳐버릴 것 같은 감정 연기에 힘입어서 차분한 실감과 치솟는 열정이 풍성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물간의 감정교류마저 표현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틴 쉰)

이 영화는 인물이 고민하는 모습과 갈등하는 모습을 중반에 길게 할애하는 탓으로 자칫 초반은 지루하게 보일 위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다양하게 시점을 바꾸고, 여러 사람의 일들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빠른 화면 전환으로 여러가지 시간의 일을 다루는 등, 매우 속도감있게 장면을 넘기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잡아서 보여주는 화면들을 차례로 이어 붙이고, 게다가 빠른 록큰롤에서부터 오페라 음악까지 끝없이 바뀌는 배경음악들이 쉬지도 않고 현란하게 뒤따릅니다. 때문에 막상 벌어지는 일은 느릿느릿 진행되더라도 긴박한 박자 감각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대학과 역사적인 관공서가 풍성하면서도 도시의 많은 부분이 쇠락한 슬럼가풍인 보스턴 정경 역시, 축축한 도시 뒷골목을 중심으로 짧게나마 잘 잡혀 있습니다. 비중이 큰 편은 아니지만 총격전 장면도 과장 없이 파괴력을 나타내는 튼실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막판 결전에서는 흔한 액션 영화처럼 총알로 화면을 가득 덮어버리지 않고, 사실적인 듯 자제 해 묘사 하면서도 자동 소총의 충직한 파괴력을 잘 보여 줍니다. 이런 연출들은 전체적으로 쓸데 없이 낭만적인 폼잡기 장면 없이, 팍팍한 세상사의 밑바닥과 사건과 상황에 중심을 두고 갈등을 다루는 영화 분위기에도 어울립니다.


(보스톤)

"디파티드"는 직접적으로 현실 사회와 밀착될만한 요소들은 억지로 겨우 설명만 되고 있는 듯 하고, 고독감에 대한 묘사에 비해서 정체성 고민에 대한 내용은 그다지 살고 있지 않습니다. 두 주인공 중에 어느 한쪽만이 강조되고 있으며, 중대한 두 주인공의 상관이 퇴장 직전까지도 은근히 분위기를 잘 잡아주었던데 비해 막상 마지막은 "갑자기 이렇게 되니 도리없다"면서 황급히 처리되어 버리는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줄거리속에, 속고 속이면서 둘러대고 변명하는 구도와 이에 뒤이어 속임을 당하는 점을 다시 역이용해서 속이는 내용은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잘 담겨 있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들이 서로의 인생을 걸고 대결을 하면서 원수 같이 여기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막상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모르고 만나지도 않는다는 점은 배경이 되는 현대 도시 문명의 특징과도 잘 부합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들키면 어떻게 하나"하는 조마조마함은 인물들의 심각한 고생담과 함께 좋은 재미거리가 되고 있고, 쟁쟁한 제작진의 연출과 연기는 이런 재미를 살리는데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결말 직전까지만해도, 미션 임파서블 가면 벗기 쇼에나 나올만한 극단적인 주제를 정말 도시 한구석에서 일어 나는 듯한 느낌으로 잘 담아낸 면은 눈에 뜨일만합니다.


그 밖에...

쥐 흉내내기 장면, 아랫니에 피가 흥건한 채 느긋한 대사를 읊는 장면들은 악당연기 할 때의 잭 니콜슨의 파괴력을 만방에 과시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잭 니콜슨의 쓰레기 같은 농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중국계 범죄자들이 분위기를 좀 깰 만큼 말과 연기가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에서 살펴봐도 마이크로 프로세서 운운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불법도박이나 마약, 불법복제품 거래 같은 것을 다루는 것이 더 좋아 보일 법 했습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f로 시작하는 문제의 욕이, 이 영화에 총 237번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38초에 한 번 꼴입니다.

덧글

  • FAZZ 2006/12/03 11:53 # 답글

    무간도 트릴러지를 너무 재미있게 감명깊게 봤던지라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됩니다. 근데 영화관 갈 시간이 없으니...OTL

  • 닥슈나이더 2006/12/03 12:44 # 답글

    저는 혼자.. 보러갑니다... 잠시후~~!!
  • 닥슈나이더 2006/12/03 21:36 # 답글

    핫... 아닙니다...ㅠㅠ;;; 혼자 보러가서... 프레스 티지 보고 왔습니다...ㅠㅠ;;;
  • 게렉터 2006/12/04 11:36 # 답글

    FAZZ/ 시리즈 영화, 원작-리메이크 비교나 감독의 성향을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저는 좀 피하는 면이 있습니다. 비교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떠도는 다른 좋은 글들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닥슈나이더/ 혼자 보러 가신다면, 인터넷에서라도 같이 가시는 사람을 모아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꼭 만나서 "같이" 앉아 보지 않더라도, 같은 시간대에 같은 영화를 보는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또다른 재미를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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