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스 The Killers 영화

1946년작 "킬러스"는 두 명의 껄렁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이러 나타나면서 시작합니다. 이 자들의 껄렁함을 음산하게 잡아내어서, 이 자들이 도대체 왜, 어떤 사람을 죽이러 하는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합니다. 이런 도입부가 지나가고 나면, 보험 조사관 한 명을 등장시켜서 버트 랭카스터와 에바 가드너가 얽힌 뒷 이야기를 차례 차례 조사해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고 있는, 그림자로만 묘사되는 어둠의 악당들)

"킬러스"에 나오는 범죄 한 탕을, 그냥 이래저래해서 이렇게저렇게 되었다라고 시간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면, 사실 좀 사소하고 가벼운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경찰청 사람들"이나 "실제상황" 시리즈 같은 것의 당시상황 재연 에피소드 하나로 싱겁게 마무리지어질만한 내용입니다. 그나마 너무 자극적이라고 자주 욕을 얻어먹기도 하던 "경찰청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비해서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사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킬러스"는 반대로 시간을 거슬러 왔다갔다하는 이상한 수법으로 내용을 보여주면서 재미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 보험 조사관이 버트 랭카스터가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대화하면서, 바로 이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버트 랭카스터의 옛 사연들을 하나씩 하나씩 회상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민 케인"이나 "커리지 언더 파이어"처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본 각자의 시각에서 주인공은 조금씩 특징적인 면모가 드러나고, 조금씩 살짝살짝 이야기의 파편이 나오면서 짜맞추어 나가야지 전체 사연을 알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니 저 사람은 저랬다던 인물이 왜 이 사람이 보기에는 이런 모습이 되어 버린 것인가?" 내지는 "그렇게 살았다는 사람이 왜 이런 신세로 발견되었는가?" 하는 호기심을 계속 생기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증언들을 토대로, 그럴듯한 진상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에도 종종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짝살짝 드러나는 인물의 삶을 엿보면서, 비록 사소한 사실이라 해도 흥미를 갖고 지켜 볼 수 있게 됩니다.


(잘못 걸렸다가는 패가망신 시킬 것 같은 사람으로 출연한 에버 가드너)

하나 둘 펼쳐지는 내용을 보면, 역시나 남자 주인공은 뭔가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조금씩 꼬인 끝에 어둠의 세계에 발이 빠진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런 내용은 나름대로 울적한 도시 생활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으로 잡혀 있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아직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지못한 이민2세, 3세들의 처지를 반영하는 면도 있습니다. 물론 옛 시절의 느와르 영화라 불리우는 만큼, 인물에 대한 회상을 들려주는 사람들이 각각 나래이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에바 가드너가 연기하는 거짓과 매력이 위험하게 어울린 여자 주인공도 주인공의 앞길에 함정을 파버립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대부분의 장면에서 시간적인 배경이 밤인 것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느와르 영화 수법대로 어두운 그림자를 등장인물들의 얼굴에 드리우고 가끔은 대조적으로 빛나는 전등불빛 아래 사람들이 오가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더러운 짓을 하지 않게 하면서도, 불길하고 암담한 범죄물의 맛을 잘 살려 냅니다.


(잠 못 이루는 주인공)

특히나 어두운 밤, 홀로 자리에 남아 괴로워하고 있는 주인공역의 버트 랭카스터는 과장된 모습으로 선명하게 대사와 내용을 표현하면서도, 이런 밤 분위기 연출과 어울려 상당히 진솔한 패배감과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군 부대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다가 영화에 출연한 버트 랭카스터의 실질적인 데뷔작이 이 영화, "킬러스"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는 "지상에서 영원으로"나 "진홍의 도적"에서 거둔 성공이 어느 정도는 예견될 정도로 그럴듯 합니다.

궁금함을 자아내도록 어둠 속에서 두 명의 폭력배가 등장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문득 나타나 어떤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곧 한가로운 식당의 시민들을 위협하는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난리 치거나 부수는 장면이 없이도, 호기심을 끌어내고 "누구하나 죽는 것은 아닌가" 싶어 긴장감이 생깁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실제적인 연기를 어울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흡인력 있었던 도입부에 비해서 "킬러스"는 나머지 부분에는 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도입부, 조용한 식당을 겁나게 위협하는 악당들: "스웨덴 놈 어딨어?")

"킬러스"의 결말은 충분히 흥미롭고, 나름대로 적당한 추리극이 될만큼 수수께끼 풀이를 하는 면도 있습니다. 사실 뜬금없이 조용한 마을에 들이닥친 껄렁패 이야기를 설명하기에는 꽤 잘 들어 맞는 멋진 수수께끼 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뭔가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망해버린 남자 주인공에 관한 내용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범인을 찾고 의문을 밝히는 활동적인 탐정 놀이가 아니라, 시대상의 어두운 일면이나 인간의 좌절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분위기를 바꾸자니, 막판에 갑자기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끝도 없이 높아지면서, 남자 주인공의 비중은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악역이 매우 중요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가장 중요했던 남자 주인공의 감정과 비참함은 나오지도 않고 잊혀져 버립니다. 어쩔 수 없이, 결말에서 활약하는 여자주인공의 감정 변화는 에바 가드너가 상당히 열정적인 연기로 매력을 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맞는 대단원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데가 있습니다.

그 결과로 맨 마지막에 덧붙은 장면들은 이런 이야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밝고 명랑한 모험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되어 있습니다. 보험 조사원들이 나쁜 놈들과 싸운 끝에 일망타진한 정말 경찰청사람들 이야기처럼 된 것입니다. 마지막의 급작스러움은 실은 모두가 망하는 서글픈 멸망 이야기를 급격히 시점을 바꾸어 억지스럽 가벼운 헤피엔딩으로 어떻게든 포장한 듯하게 여겨지기 까지 합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흥미를 끌며 사람을 끌어 들여간 중반부 까지의 이야기에 비해, 본격적으로 수수께끼를 밝히는 후반부의 이야기가 좀 지겹게 느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찰스턴)

수많은 조역들 중에는 버트 랭카스터의 감방 동료 출신 친구를 연기한 빈스 바넷이 특히 훌륭한 편입니다. 평생을 감옥에 들락거리며 범죄를 저지르며 살다가 이제는 노인이 되어 지친 후회에 빠져서 조용히 지내고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어떤 당당한 자부심 같은 것도 아주 조금 비춰내는 인물 묘사가 볼만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조역들이 연기가 출중합니다. 조연들의 역할 덕분에 남자 주인공이 옛날 애인을 저버리고 새 애인에게 빠져드는 순간이 더욱 설득력있게 잡혀졌고, 이것이 남자 주인공과 가장 친한 친구가 그 버림 받은 애인과 결혼해, 남자 주인공과는 대조적인 소박하지만 안락한 가정을 꾸리는 곁가지 내용을 자연스럽게 꾸며내고 있습니다. 비록 결말부분에 잊혀지기는 하지만, 이런 친구의 삶은 그 아쉬운 대조로서 점차 망해가는 주인공의 처지를 더욱 와닿게 해 줍니다. 그 외에, 중간의 권투 장면은 길이도 아주 짧고 바로 승패가 갈리는 싱거운 것이지만, "분노의 주먹" 이전까지는 충분히 최고급으로 분류될만큼 훌륭한 기술을 보여 줍니다. 경기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타격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옛 애인)


그 밖에...

헤밍웨이 원작입니다.

1964년에 돈 시겔 감독, 리 마빈 주연으로 다시 영화로 만들어진 적도 있습니다. 이 때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된 로널드 레이건이 악당으로 출연합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권투 장면을 위해서 버트 랭카스터는 두 달 동안 권투 훈련을 받고 영화를 찍었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권투 장면을 진짜 권투 선수하고 찍어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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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고전 흑백 느와르 영화 목록 2014-10-05 00:1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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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몹 2006/12/04 17:31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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