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시티 Dark City 영화

"다크 시티"라는 제목은 말 자체가 "느와르" 영화라고 할때의 "느와르"라는 말을 영어로 옮긴 듯합니다. 이 영화는 미래스러운 외계인과 기억조작을 소재로하고 있으면서, 영화 분위기는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 어두운 밤, 도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는 40, 50년대 느와르 영화풍을 한껏 풍기고 있습니다. 컴컴한 방안에서 하나 켜진 전등아래로 인물들은 출현하며, 음험한 범죄자 분위기의 중절모쓴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여자주인공은 어김없이 클럽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여자 주인공)

기억조작과 가상현실을 이용해서 자아와 존재론에 대한 모험을 하는 영화는 이런 예가 적지 않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흔히 SF판 느와르 영화로 불리우기도 하고, "13층"의 수십년전 미국 분위기는 "다크 시티"의 모습과 매우 흡사 합니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적당히 낭만적으로 포장하는데 이런 느와르 영화의 전통이 쉽게 써먹을만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자아에 대한 주인공의 고독한 곡절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와르 영화 분위기가 녹아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도시 뒷골목을 배경으로 갑자기 주인공 혼자 엄청난 비밀을 알아내서 조직과 싸우게 되는 이야기가 되다보니, 범죄조직이나 경찰조직과 사건을 두고 갈등하는 느와르 영화 분위기가 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크 시티"는 시작하자마자 외계인이 초능력과 기억조작 능력으로 주인공을 비롯한 인간들에게 마구 가상현실을 뿌려댄다는 이야기를 밝혀 버립니다. 이것은 데카르트스러운 깨달음의 이야기가 장엄한 극복의 순간이 되는 "매트릭스"나 80년대판 환상특급의 "104. 판매용 꿈 Dreams for Sale" 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면이 있습니다. 관객들은 명확한 사연은 알지 못하지만, 이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이 가상현실속을 헤메고 있을 뿐인 인생무상의 인물들임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크 시티"는 전체적으로 영국 경험론스러운 분위기를 군데군데 드러냅니다.


(중절모 쓴 악당들)

주인공이 마지막에 외계인에게 하는 대사는 버클리나 흄 같은 사람이 대중 강연에서 할법한 말을 연상케하며, 여자주인공과 면회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애틋한 분위기는 보다 우화적으로 이러한 경험론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범죄 영화스러운 끈끈하고 절박한 감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장면이 하는 이야기를 살펴 볼작시면, 불교 경전에서 "선재, 선재"를 읊는 마음의 평화와 통합니다. 아이디어는 꽤 재미있고, 컬러 화면이 아까울 정도로 심하게 느와르 영화 분위기인 이 영화 속에서 확실히 독특한 맛이 살아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상현실을 어느 정도 미리 밝혀 두고, 이야기를 펼친 탓에 손해를 보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거대한 대결을 벌이는 막판 상황입니다.

이야기 말미에 "다크 시티"는 기독교적인 구원자 이야기처럼 변해 버립니다. 땅이 떨리고 하늘이 울리며, 세상을 뒤바꾸는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이런 이야기가 암담하고 건조하면서도 낭만적인 땀에 절은 감정이 풍성한 앞부분의 느와르 영화 분위기와 흐름에서 어긋나는 것부터 문제가 됩니다. 게다가 인과율과 실체개념에 대한 부정으로 가득차 있던 경험론적인 분위기가 "진리와 구원"으로 뻗어나가는 이 장대한 순간과 좀 어긋나는 면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막판 대결은 깨달음의 이야기 분위기가 훨씬 강했던, "매트릭스"의 액션과 "트루먼 쇼"의 연출방식을 어설프게 따라한 듯하게 보일 정도 입니다. 사실 구체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런 영화들과 관계없이 나름대로 스스로 "다크 시티" 영화속에서 지어낸 것인듯 합니다만, 워낙 이야기 분위기가 "다크 시티"보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쪽으로 선회하다보니, 꼭 아류인듯해 보이는 부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멜리사 조지)

한편 초반부에서 아쉬운 부분은 가상현실을 밝히는 이야기 때문에, 영문을 모른채 살인범으로 몰린 고전적인 "누명 쓴 주인공"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욕조에서 일어났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죽어 있고, 자기가 죽인 것 같습니다만, 도대체 자기가 누구이며 뭘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입니다. 사람이 죽어 나갔으니 경찰이 추격을 해오고 있고, 그러다보니 일단 도망치고 봅니다. 도망을 치고 있지만, 누구를 탓해야 하며 어디서부터 해결해나가야할지도 난감하고, 게다가 자기 스스로가 극악무도한 살인범일 가능성이 있으니, 스스로에 대해서도 믿음이 없어 경악할 일 투성이라 불안감은 넘쳐납니다.

"누명 쓴 사나이"는 물론이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도 필적할만한 아이디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상현실이니까 다 헛수작일 뿐이겠지"하고 넘어가니까 아무래도 긴장감은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갈수록 이야기가 거대한 세계를 바꾸는 한 명의 핍박받는 영웅으로 몰아가다보니, 나약한 사람이 조직을 이리저리 따돌리며 혐의을 벗는다거나 안전지대로 탈출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런 "도망자" 이야기는 충분히 활용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두가지 요소가 좀 안섞이는 덕에, 문제의 외계인들은 어떨때는 거의 세상을 창조하는 신화적인 초능력자였다가, 필요에 따라 좀 덜떨어진 얼치기 초보 경찰처럼 행동하는등, 좀 오락가락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긋난 요소들이 섞여 있는 덕에, 반대로 "다크 시티"는 확고한 영화표현상의 개성을 지니는 점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느와르 영화스러운 화면을 사용하고 있지만, 화면 전환과 이야기 흐름은 아주 빠르고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느와르 영화 조명)

"구운몽"은 8선녀가 등장합니다만, 전적으로 성진행자와 양소유를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보다가 재미없어서 자는 사람도 뭔소린지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만, 그 복잡할법한 이야기도, 결국 남자 주인공의 시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와 여자 주인공의 시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둘로 나뉠 뿐입니다. 그런데, "다크 시티"는 정신과 의사의 시각과 외계인들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남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곁들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만해도 네 사람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데, 거기에 사립 탐정, 여자 주인공, 여자 조연 갖가지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코 적지 않은 무게로 중시됩니다.

아마도 "로스트" 같은 TV쇼가 지금처럼 막나가지 않았다면, 에피소드가 끝날 때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면서, 정작 다음 에피소드에는 다른사람의 시각을 주인공으로해서 뜸을 들이며 지나가면서 서서히 이런 거대한 음모를 파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식으로하면 각각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사람의 시점을 돌려치면서 긴긴 시리즈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근래에 케이블TV에서 방영된 "몬스터" 같은 애니메이션/만화나, 스테이지마다 주인공, 종족을 바꿔가며 진행하는 컴퓨터 게임들이 그런 방식입니다.


(쫓는 자의 시점)

하지만 "다크 시티"는 하나의 장편 영화이며, 따라서 아주 자주 시점과 화면을 바꾸면서 이야기를 보여주게 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장면 전화를 끊어 먹을 뿐만아니라, 이런 장면 전환의 리듬에 맞춰서 액션이나 대화, 주인공의 행동을 묘사할 때도 빠르고 역동적인 화면 바꾸기를 계속 이어나간 것입니다. 덕분에 사건 전개는 줄기차게 긴박감이 살아있고, "스피드" 이후의 액션 영화 흐름을 연상케할만큼, 음악과 어울리면서 등장인물들과 배경의 모습들은 번쩍번쩍거리며 교차합니다. 이런 구성은 비록 누구에게나 아름답다거나, 전체 이야기와 완벽하게 들어맞다는 평가를 듣지는 않을 지언정, 충분히 쓸모있고, 적당히 개성적인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끝으로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덧붙이겠습니다. 이 영화속의 제니퍼 코넬리는 두 곡이나 노래를 부르면서, 옛 느와르 영화속의 리타 헤이워드나 로렌 바콜 정도는 한 팔, 한 다리를 묶어놓고 대결해도 가볍게 제압할 정도의 매력을 내뿜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바쁜 흐름때문에 노래들이 "가족오락관" 노래 퀴즈 보다도 짤막하게 끊겨 버려서 무척 아쉽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느와르 영화 여자 주인공의 정통에 부합하는 조연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의 초반과 후반 활약이 없다시피하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굳이 기독교적인 이야기로 끝을 해석한다면, 악당과 주인공편의 중간에 놓여 있는 학자는, 사파로 취급되는 "유다복음"속의 가롯유다 비슷한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년기의 끝"과는 완전히 정반대 처지에 놓인 외계인과 인간의 관계에서, 영혼 어쩌고 하는 부분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자유의지론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한편 사립탐정이 니체 편이었다면, 영화의 결말은 사르트르나 에리히 프롬 풍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제니퍼 코넬리)


그 밖에...

제니퍼 코넬리의 애띤 모습이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모습의 제니퍼 코넬리는 한국에서도 정말 인기가 많았는데, 의외로 데이빗 보위 나오는 그 영화 말고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가 이 "다크 시티"이기도 합니다. "로켓티어"보다도 많이 퍼져 있습니다.

키퍼 서덜랜드는 "24"와는 완전히 다른 좀 맛간듯해 보이는 학자 역할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기괴한 상황 변화속에서도 키퍼 서덜랜드는 이번에도 항상 "무적"입니다.

이 영화의 세트는 이후 "매트릭스"에 상당부분 재활용 되었다는 이야기가 IMDB에 나와 있습니다. 제니퍼 코넬리와 멜리사 조지의 -앨리어스의 마이클 본 부인말입니다.- 아름다운 자태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지, 저는 "매트릭스"는 엄청난 인기를 끄는데 이 영화는 좀 묻혀져간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이었던 앤드류 메이슨과 미술을 담당했던 마이클 맥게이는 각각 "매트릭스"의 제작자와 미술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채 2초가 지나지 않아 화면이 바뀌는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성탄절 특선으로 올려 보려고 했는데, 좀 빨랐습니다.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 좀 지루할 법 하시거든, 화면을 흑백으로 만들어서 한 번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정말 옛날 필름 느와르 느낌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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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닥슈나이더 2006/12/12 10:48 # 답글

    이 영화 재미있죠...^^;;

    제니퍼 코넬리~~~!! 최고죠..^^;; 세트가 메트릭스에 쓰였다는건 처음을았습니다..

    아마... 메트릭스에서 전화기와 트럭씬에서 쓰였던 곳이 바로 거긴것 같군요.....
  • returnet 2006/12/12 12:15 # 삭제 답글

    다크시티라면 남자를 주인공으로한 축축한 영화가 있지 않았던가.. 그 영화를 TV에서 볼때는 이미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 등등에서 세기말적 관념론을 팍팍 뿌린 뒤라서 그닥 감흥이 없었지..
  • 게렉터 2006/12/13 12:14 # 답글

    닥슈나이더/ 영화 전체가 내용으로도 분위기로도 많이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returnet/ 이게 그 영화입니다. 매트릭스 보다는 먼저 나왔고, 공각기동대 보다는 복고적인 점이 멋인데, 역시나 헛점들도 많다 보니 두 영화들 처럼 화제거리가 되는데는 실패.
  • poolside 2007/03/03 11:32 # 삭제 답글

    "매트릭스"의 액션과 "트루먼 쇼"의 연출방식을 어설프게 따라한 듯하게 보일 정도.... 라는 말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다크시티가 이영화들 보다 먼저 제작되었으니 따라했다면 매트릭스나 트루먼쇼가 따라했겠죠.. 그리고 제니퍼 코넬리의 두곡은 본인이 부른것이 아니라, anita kelsey라는 가수가 부른곡을 제니퍼 코넬리가 립싱크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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