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 시리즈 - 카지노 로얄을 중심으로 영화


1. 자동차

현대 정몽구 회장이 여러가지 비리나 부정부패에 관련된 의혹으로 곤혹을 당했을 무렵, 정몽구 회장측을 지지하거나 변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의 주장 중에는 "정부가 자동차 산업 같은 중요 기간산업에 이렇게 많이 방해하면 큰일 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제기 하던 예시로 자주 언급되던 것이, 영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입니다.


(1탄: 007 살인번호)

영국은 한때는 산업혁명의 발상지요, 기계문명의 핵심이었으며, "세계의 공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분명한 공업 선진국입니다. "MG로버" 자동차 회사는 이러한 영국 공업의 번성기인 19세기에 자전거 회사로 출발해서 1900년대초부터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고 100년여간 자동차를 만들어 오던 곳이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에 정부가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을 펼쳤던 그 사람들은, "MG로버"가 노사 문제에 간섭을 심하게 당하고,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서 자동차 공장을 지방 이곳저곳에 억지로 나뉘어 짓게 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설명이야 어찌되었거나, 결국 "MG로버"는 최근 새롭게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회사에 인수되면서 영국에서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세상에 이제는 더 이상 정말로 "영국차"라고 할만한 자동차는 안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영국 신문들은 쓸쓸한 전환점이나 상처 받은 대영제국의 자존심 같은 식으로 보도 하기도 했습니다. 품질에 있어서 충분한 검증을 받지 못하는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영국, 미국의 몰락한 자동차 회사들을 사들이면서 세계 시장 석권을 노리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탄: 007 위기일발)

영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은, 그나마 경쟁력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최고급 자동차 롤스로이스와 애스턴 마틴에서 찾아 볼 수도 있습니다. 롤스로이스는 주문생산, 수작업 생산을 하는 사치스런 자동차의 대표이며 제임스 본드 영화에도 등장했습니다만, 70년대에 도산했고 90년대에 BMW에 팔려 버렸습니다. 애스턴 마틴은 보다 가볍고 빠른 차종쪽에서 역시나 유명한 회사였지만, 포드 사에 팔렸습니다. 더우기 포드 사에서는 올해 들어서 장사 안되는 이 애스턴 마틴 사업을 다시 팔아치우기 위해 살 사람을 알아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요즘의 영국 자동차 산업은 그나마 환경 관련 기술에서 앞서나간 영국 기술을 받아 들이고, 유럽 생산-판매 기지의 역할을 시키기 위해, 토요타나 포드 같은 회사의 주문생산 공장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2006년에 개봉된 "007 카지노 로얄"에서는 한때는 현대 엘란트라와 닮은 것으로 유명했던 포드 몬데오의, 2007년형이 등장합니다. 이 자동차는 아마도 지금까지 역대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왔던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 중에서 가장 수수한 차량으로 기록될 듯 합니다. 그리고 제임스 본드는 곧 가벼운 웃음을 주는 사연과 함께 자신의 차를 전통적인 "제임스 본드의 차"로 명망 높은 애스턴 마틴 DB 시리즈로 바꿉니다.


(3탄: 007 골드핑거)

40여년전부터 이어진 영국 첩보원 영화 시리즈, 007은 PPL 을 개척한 영화로도 유명했습니다. 이 영화시리즈는 영국 자동차 산업의 이러한 흥망성쇠에 따라, 영국 루츠 그룹의 자동차에서 시작해서 40년간 사브, GM 과 같은 여러 자동차 회사의 지원을 받았고, 그 회사들의 차를 등장시켰습니다. 제작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BMW와 계약을 하고 영화를 만들다가, 지난 영화부터 포드와 계약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영국 첩보원"이 타는 영국차 아닌 "영국 차"라는 애스턴 마틴을 다시 등장시키기에 이른 것입니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 애스턴 마틴은 포드 몬데오와의 대조를 통해 그 어느 때 보다 "애스턴 마틴"이라는 점이 대조적으로 부각되는데, 여기서 요즘 영국자동차의 처지라든가 포드 사의 애스턴 마틴 매각 계획을 충분히 느낄만 합니다. 이런 점은 21편까지 이어진 긴 역사를 가진 시리즈 영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독특한 재미거리의 한 단면일 것입니다.


(4탄: 007 썬더볼작전)



2. 옛날 제임스 본드 영화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영국 첩보원 이야기입니다. 007, 제임스 본드라는 말은, 첩보원에 대해서 스카치 테이프나 호치키스처럼 보통명사가 된 고유 명사의 예로 꼽을 만 합니다. 여기에서 아예 처음부터 뭔가 틀어진 점이 보입니다. 우리는 제임스 본드를 첩보원의 대표로 여기고 있지만, 애초에 제임스 본드는 첩보원이 아니라 첩보원을 잡는 수사관, 방첩요원이었습니다. 제임스 본드는 적지에 잠입해서 정보를 빼오는 진정한 첩보업무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007 영화는 첩보원 영화로 기억되고 있으며, 제임스 본드 영화는 "스파이 하드" "오스틴 파워즈" "에이전트 코디 뱅크스" "캐논 볼" "쟈니 잉글리쉬" "턱시도" 심지어 "캐치 미 이프 유캔" "더 록" "사랑도 번역이 되나요?"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화들에게 첩보원 영화의 기준으로 직접,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만, 제임스 본드 영화는, 흔히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와닿을 설정이라든가 줄거리 따위는 제멋대로 바꾸면서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곤 했던 "잠시 시간 때울 때 무슨 술을 먹는가?" 같은 점에 영화의 사활을 걸었다는 특징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5탄: 007 두 번 산다)

제임스 본드 영화는 냉전의 대립구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21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중에서 공산당 때려잡자 구도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은 냉전 최후의 발악기이던 80년대 중반에 나온 "007 리빙 데이 라이트" 정도 뿐입니다. 007 영화들은 많은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개봉되었으며, 반대로 몇몇 이야기들은 반공 분위기가 팽배하던 유행을 탈 때 한국에서 개봉에서 약간 조정을 겪기도 했습니다.

소련과 미국의 대립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삼는 것으로 이야기를 넓혀보면, "007 위기일발"이나 "007 옥토퍼시"를 꼽아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 역시, 심각한 군사 대립 상황이 갖는 평화의 위기를 소재로 삼으면서 냉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 반공 구도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소련과 미국의 대립을 악용하는 악당들로부터, 세계화를 지향하는 정부 기구와 지역적인 테러리스트와의 대립을 다루는 구도로 바뀌어 간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피어스 브로스넌 시절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냉전 몰락으로 테러리스트를 억지로 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런 생각과는 달리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원래의 적이 옛날부터 주로 테러리스트들이었던 것입니다.


(6탄: 007 여왕폐하대작전)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냉전 구도를 일부러 피해다녔던 것도 아닙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을 성공적으로 제임스 본드에 안착시킨 "007 골든아이"는 냉전이 끝나면서 첩보원들의 삶도 바뀌었다는 점을 매우 크게 부각시킵니다. "007 골든아이"의 주제곡 장면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영화와 시각예술의 묘를 잘 보여주는 멋진 것이었습니다. 도입부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소련에 잠입한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주제곡 장면의 뮤직 비디오로는 소련의 몰락을 상징화해서 보여주고, 이후에는 냉전 이후의 제임스 본드와 MI6 사무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본드의 등장과 변화한 시대상을 소재로 삼겠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007 골든아이"의 전편인 "007 살인면허"는 냉전과는 별 상관없이 그냥 마약상과 싸우는 이야기였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 역시 베트남전 영화나 아프가니스탄 내전과는 상관 없이 사립탐정인 레밍턴 스틸로 잘 알려진 배우 였습니다. 그랬습니다만, 사람들이 "007은 냉전 대립 구도의 상징"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으니까, 마치 007 시리즈가 냉전 대립구도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추억하면서 영화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줄거리나 배경 설정에 별 갑갑한 제약 없이 자유롭게 그때 그때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영화속 역사에 완벽히 잡혀있을 수 밖에 없는 "스타워즈" 시리즈나 "해리포터" 시리즈와 다른 점입니다. 제임스 본드 시작의 시기를 다루는 "007 카지노 로얄"에서는 이런 자유가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데 좋은 바탕이 되기도 했습니다.


(7탄: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주제곡 장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임스 본드 영화는 영화 제작진을 관객들이 눈여겨 볼 수 있는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는 선정적인 장면이 많고, 사회적인 환기는 부족한 단순한 오락 영화로 치부 됩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블록 버스터 영화들이 시작 장면에서 주연배우와 제작사, 감독 정도의 이름만 보여준 뒤 사람들이 극장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나갈때 한데 뭉뚱그려서 주욱 다른 제작진의 이름을 쏟아 붓고 말아버리는 것과 달리, 제임스 본드 영화는 관객들의 기대가 가장 고조되는 시작 장면에 차분하게 제작진의 이름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의 원작자, 로알드 달이 "007 두번 산다"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낭만적인 주제곡을 영화의 매우 큰 요소로 삼고 있기 때문에 주제곡 장면을 짤막한 초현실주의 뮤직비디오로 꾸미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8탄: 007 죽느냐 사느냐)

또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제임스 본드에서 전통적으로 여자 주인공은 들러리 역할에 불과했고, 갈 수록 양성 평등 주의의 성장과 함께 여자 주인공의 역할이 확대되었다는 분석도 되짚어 볼만합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에는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보여주고 지나가는 여자 단역들이 워낙 많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자 주인공에 대해서까지 이런 "제임스 본드 여성관의 변화"라는 주장이 널리 퍼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여자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면, 43년전인 1963년에 나온 시리즈 2편 "007 위기일발"부터 여자 주인공의 비중은 무척 높았습니다. 제임스 본드와 맞설 만큼 능동적이고 강인한 여자 주인공을 소재로 삼는 영화도,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007 옥토퍼시" 는 물론이고 "007 골드핑거"에서도 충분히 "007 네버다이"의 양자경 배역과 맞먹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의 비중에 대해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만한 부분은 오히려 "007 골든아이"나 "007 언리미티드"입니다. "007 골든아이"는 제임스 본드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와 여자 주인공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집니다. "007 언리미티드"는 영화 전체가 여자 주인공의 사연과 정체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가 짜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그다지 계승되지도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007 어나더 데이"에서는 다시 "007 뷰 투 어 킬" 시절로 되돌아간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느끼하지 않고 현실적인 제임스 본드"라고 선전된 최근작 "007 카지노 로얄"은 오히려, 착하고 가녀린 제임스 본드에게 기대는 여자 주인공상으로 완전히 굳어져 있습니다.


(9탄: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계속되면 계속될 수록, 원작 "소설"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그 결과 황당해지고 유치해졌다는 주장도 아직 떠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역시 거의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직접 조언했던 제임스 본드는 시리즈 1편인 "007 살인번호"에서부터 제임스 본드 영화는 소설과 현격히 달랐으며, 3편인 "007 골드핑거"부터는 원작과 꽤나 거리가 멀어집니다. 5편인 "007 두 번 산다"부터는 제목과 몇 가지 재미있는 점만 원작에서 따오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며, 오히려 후기작인 "007 유어 아이즈 온리"나 최근작 "007 카지노 로얄"이 원작 이야기를 많이 받아 들인 부분이 있습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원작이 잘 팔린 책이긴 했어도, "장미의 이름"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꽤 알려진 활극 소설이었고, 대중에게 인기있는 미국 대통령으로 전설적인 케네디 대통령이 좋아한 소설로 회자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명작으로 추앙받지도 않았고, 영화 개봉 이전까지는 위력적인 베스트 셀러도 아니었습니다. 제임스 본드와 MI6의 활약이 이처럼 널리, 오랫동안 이어진 이야기가 된 것은 역시나 영화의 공입니다.


(10탄: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결국 누구나 동의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의 특징들은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이 한껏 멋을 부린다는 내용과 그러면서 해외 여행이나 여름 바캉스 때면 꿈꾸기 마련인 이국적인 풍광과 호사스런 경치,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빠르게 전개 되는 호기심을 끄는 활극의 줄거리 속에서, "절대 지지 않고 죽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을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 지루하지 않게 이런 볼거리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제임스 본드 영화는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의 겉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최후의 반전이나 주인공의 격투 실력 못지 않게 주인공이 묵는 호텔이나 어느 회사의 시계를 차고 있는가에 눈이 가는 영화입니다.

그리하여, 제임스 본드 영화가 철지난 영화가 되어 이제는 한물 갔다는 평가는 정말로 섣부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는 냉전이 끝나고, 다른 영화들에서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높아지고, 현실적인 액션이 유행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퍼지고, 복잡한 수수께끼 줄거리가 인기를 끌고하는 와중에서도 잘만 팔렸습니다.


(11탄: 007 문레이커)

피어스 브로스넌은 엄청난 출연료를 받는 거액의 인기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고, 그가 처음 출연했던 "007 골든아이"는 역대 제임스 본드 영화들 중에 가장 많은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다음으로 출연한 "007 네버 다이"는 그것을 능가하는 흥행 수익을 올렸고, 다음으로 출연한 "007 언리미티드"는 그것을 다시 능가하는 흥행 수익을 올렸으며, 그 다음으로 출연한 "007 어나더 데이"는 다시 또 옛 기록을 깨는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최악의 망한 흥행으로 악명높은 티모시 달튼 시절의 제임스 본드 영화와는 흥행 기록상으로는 비할바 아니며, 개봉 될 때마다 흥행기록이 좋아지기만한 제임스 본드 배우로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유일합니다. 최근 개봉작인 이 네 편의 영화들은 미국 개봉당시 "타이타닉"과 맞붙어야 했던 "007 네버다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영화들이 첫 주말 흥행기록 1위를 당당히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2탄: 007 유어 아이즈 온리)

이렇게 제임스 본드 영화가 변치 않는 인기를 구가하는 가운데 정말로 대대로 이어진 것은, 주인공의 말 버릇, 타고 다니는 자동차 모델, 마시는 술 종류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보는 시각이라든가 이념과 사회에 대한 시각에서 제임스 본드 영화는 거의 아무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007은 그런 것과는 상관 없는 이국적인 향취에서 강점을 유지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007 카지노 로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 전혀 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를 표방했다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에 다른 어떤 제임스 본드 영화들보다 치중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비록 익숙하게 자리잡은 피어스 브로스넌과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다니엘 크레이그 때문에 많은 팬들이 의아해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007 카지노 로얄"은 말로만 007을 들어봤거나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관객들보다는, 도리어 제임스 본드 영화에 관심이 있었거나, 적당히 즐겨오던 사람들에게 더욱 큰 재미를 줄 수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007 카지노 로얄"은 범인이 누구냐하는 것이나, 제임스 본드가 마지막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이야기는 미리 알고 봐도 별로 재미가 떨어지는 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작 장면이 어떻게 되어 있고, 제임스 본드가 언제 어떻게 술을 마시느냐 하는 점은 정말로 심각한 스포일러가 됩니다.


(13탄: 007 옥토퍼시)



3. 본드, 제임스 본드

제임스 본드 영화는 처음 시작하면, 나선 강선이 새겨진 총열과 총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총구의 중앙에 제임스 본드가 걸어옵니다. 제임스 본드는 문득 몸을 돌려 총을 쏘고 그러면 화면이 피로 물듭니다. 이 장면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1편부터 21편까지 한결같이 이어진 것입니다. 매우 유명한 장면이라서 수없이 많은 곳에서 활용되었으며, 특히 "크레이지 보이 - 홍콩 소동"에서는 총구에 등장한 첩보원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자기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전율의 패러디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제임스 본드 영화 고유의 총구 장면은 "샤례이드", "바바렐라", "공군대전략", "마지막 황제"등의 제목 장면을 디자인 하기도한 모리스 바인더의 작품입니다. 이 장면은 제임스 본드 이야기가 일상적인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죽이고 살리는 이야기이며, 첩보원의 이야기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동시에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턱시도를 입고 여유롭게 등장하지만 몹시 실력 있고 순발력 있는 전문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은, 거의 슈퍼맨처럼 지구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고, 절대 패하지 않는 인물이면서도, 또한 제임스 본드가 초능력 영웅인 슈퍼맨이나 원더우먼과 달리, 지금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나타냅니다.

제임스 본드는 "환상세계"에나 존재하는 꿈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 어디인가에 있는 사람으로서 매우 뛰어난 "환상적인" 실력자라는 것입니다. 사춘기 소년이 영화를 보면서 커서 슈퍼맨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겠지만, 제임스 본드처럼 되고 싶다는 망상은 품을 수 있을 법한 위치로 제임스 본드의 현실성과 환상성을 조절한 것입니다.


(14탄: 007 뷰 투 어 킬)

총구 장면은 제임스 본드 영화의 빠질 수 없는 요소로서, 영화의 분위기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총구 장면은 특정한 사건이나 사실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그냥 소개 장면일 뿐, 제임스 본드가 정말로 총을 쏘는 것도 아니고, 화면에 보이는 총구가 어떤 이야기거리가 되는 무슨 총의 총구인것도 아닙니다. 그저, 미술적인 운치가 있고, 상징적으로 분위기를 조장하는 내용일 뿐입니다. 이런 영화 처음, 총구 장면의 분위기는, 제임스 본드 영화가 첩보원 영화이지만, 복잡한 첩보전 내용 보다는, 그 형태를 빌어 여러가지 멋진 장면과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내는 시각적인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과 상통합니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 영화는 "앨리어스"처럼 정체가 밝혀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이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이중 작전을 펼치며 묘한 잠입작전을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복잡한 꼬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총구 장면이 어떤 사건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기묘한 복선도 아니며, 단지 표현주의적인 미술품이듯이, 007 영화에서 카리브 해나 알프스 설원의 아름다운 휴양지를 풍경화처럼 감상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입니다.


(15탄: 007 리빙 데이 라이트)

제임스 본드 영화가 그 고유한 즐길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무성의하게 처리된, 여러가지 사회적인 시각, 정치적인 양상 때문에 제임스 본드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조차도 대부분 인정하는 007 영화의 절대적인 강점은 그 위력적인 음악입니다.

일단 몬티 노르만과 존 배리가 만들어낸 제임스 본드 영화 주제곡 자체가 멋진 명작입니다. 21편의 영화 모두에 이어져 내려온 이 음악은 발랄하고 경쾌한 음악은 아니면서도 긴장감이 있고 신나며 힘이 넘칩니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성숙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재즈 곡조에 중심을 두고 있는 곡이라서,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은 영화 군데 군데에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흥미롭게 사용되었고, "007 골든아이"의 탱크 추격전 장면에서 활용된 것과 같은 예는 이 오래된 곡이 유행을 따라만든 블록버스터 액션에서도 아주 잘 들어 맞는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좀 과장하면, "브이 포 벤데타"에서 차이코프스키의 곡이 힘을 발휘한 것과 비슷한 가치를 자랑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 영화는 총구 장면과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이국적인 낭만이나 관능적인 분위기를 불러오고 했던 주제가 장면에서도 음악을 다시 한 번 과시합니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주제가를 그냥 배경음악으로 깔고 마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영화 시작장면에서 관객들이 감상할 시간을 주면서 들려줍니다.

톰 존스, 루이 암스트롱, 낸시 시나트라, 폴 매카트니, 티나 터너, 듀란 듀란, 아하, 마돈나. 이 모든 사람들이 007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습니다. 폴 매카트니의 "Live Or Let Die"는 비틀즈 이후 폴 매카트니의 성공적인 대표곡 중 하나이고, "Back In The U.S. 2002" 앨범의 실황 녹음은 기막힌 연주로 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듀란 듀란의 "A View To A Kill"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주제가의 비중 때문에 마돈나는 "007 어나더 데이" 영화 중간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역대 최고의 주제가로 가끔 평가되는 "You Only Live Twice" 는 곡도 곡이지만, 영화에 주제가가 기여한 바가 매우 큽니다. 아시아 국가에 대한 터무니 없는 환상과 정말 아무 갈등도 없이 그냥 본드가 안내하는데로 걸어가다가 적이 보이면 무기만 쏘는 허무한 내용으로 "007 두번 산다"는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주제가 "You Only Live Twice"가 멋지고, 잘 사용된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가 한껏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장점들은 그냥 무시하고 보게 되면서, 지극히 낭만적인 노래와 함께 이국적인 향취를 즐기는 제임스 본드 영화만의 멋을 북돋우었습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꽤 왜곡된 재미를 줍니다.


(16탄: 007 살인면허)

"007 카지노 로얄"은 크리스 코넬이 부른 "You Know My Name"을 주제가로 하고 있습니다. 이 곡은 괜찮은 곡이었지만, 전작들의 명곡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본론에서 배경음악으로 섞여 들면서 멋을 부리는 부분도 미약합니다.

그렇지만, "007 카지노 로얄"은 마지막 끝나는 부분을 비록해서 여전히 배경 음악에서 개성을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적지 않은 액션 영화들이 빠른 리듬의 장중한 오케스트라 곡이나, 헤비매탈을 사용하는 것에서 답답하게 머물고 있으며, 몇몇 한국 영화들은 조잡한 전자 음악으로 이런 헐리우드 배경음악을 흉내내려다가 형편없는 결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007 카지노 로얄"은 제임스 본드 영화답게, 비교적 완만한 곡조의 복고적인 낭만주의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음악이 액션 블록버스터의 배경음악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특히나, 경치 보여주기에 적당한 비중을 기울이는 영화 특성에도 이런 배경음악은 잘 어울립니다.


(17탄: 007 골든아이)

제임스 본드는 바텐더에게 항상, 보드카 마티니를 달라고 하며, 젓지 말고 흔들어서 달라고 합니다. 항상 마시는 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이런 술자리를 자주 즐겨 왔다는 뜻이기도 하며, 확고한 자신만의 취향이 서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느긋하게 휴양을 즐기는 영화 분위기에도 일조하고, 유능한 첩보원으로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고 있는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의 허영과 동경에도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술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은, "영어로 전화를 받는 유능한 악역" 같은 TV드라마 인물이나,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하는 사람 보여준 다음 스테이크 먹기" 장면을 보여주는 부자 인물 묘사보다는 훨씬 개성적인 설정입니다.

물론, 보드카 마티니로 자신의 확고한 성향과 익숙함으로 잘난척을 하는 제임스 본드는 이후 간접적으로 전세계의 술마시는 사람들에게 끝도 없이 막연한 허영심을 불어 넣기도 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의 맥주를 파는 가게에 가서 이상하게 나온 KGB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나, 소위 칵테일 바라는 곳에서 모든 맛을 새콤달콤한 설탕맛으로 덮어버리는 괴이한 음료를 마시며 어림없는 값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임스 본드가 낳은 부작용의 희생양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원조라할만한 "젓지 말고 흔들어서" 보드카 마티니를 만들어 마시는 제임스 본드의 술먹는 취향 설정은 더 눈에 뜨입니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가 직접 말로 농담을 하는 부분이 부족한 대신, 행동과 상황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조금씩 끼어들어가 있습니다. 그러한 웃음 중에서 제임스 본드 전용 술인, 보드카 마티니에 대한 농담이 가장 재미있다 할만합니다.


(18탄: 007 네버다이)

로저 무어는 제임스 본드 배우의 연기란,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만 말할 줄만 알면된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물이 자기 정체를 숨기고 교묘하게 잠입하는 많은 다른 첩보원들과는 달리, 제임스 본드는 태연자약하게 자기 이름을 밝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피어스 브로스넌 시절의 제임스 본드를 시작할 때, 영화 제작진들이 영화를 선전하는데 사용한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 시절의 제임스 본드 영화 선전 광고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은 관객들 앞에 나와 "본드, ... 그 다음엔 뭔지 아시죠?"라고 했습니다. 베짱 좋게 자기 이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은, 자기 자신의 명예에 대한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기도 하면서, 그만큼 영웅주의적인 당당함을 드러내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말도 안되는 베짱과 잘난척의 화신인 영국 첩보원을 현실 세계에 등장시킨다는 점을 응용해서 마치 벨 에포크 시대의 괴로 뤼팽 분위기를 낸 것입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모습과 제임스 본드의 특징을 배합해서,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괴도 뤼팽 분위기를 역시 현실적인 면과 허상이 결합되어 있는 007 영화속에서 잘 엮어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이름을 읊는 장면은, 자랑스럽게 범죄에 대한 예고장을 뤼팽 이름으로 보내던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이나, 자신의 상징으로 Z를 새기던 쾌걸 조로의 기억과 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전통을 올해, 오늘의 현재에 불러올 수 있는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19탄: 007 언리미티드)

물론 남성 정장 패션의 한 교범 자리에 올라선 "007 골드핑거"의 양복 정장 차림이나, 로저 무어 이후, 총구 장면에서부터 확고한 한 개성으로 자리잡은 호사스런 턱시도 역시 007 영화의 눈여겨 볼만한 요소 입니다. 휴양지에서 쉬는 옷차림의 어울리는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살인과 음모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더욱 번쩍거리는 치장과 허세에 젖어드는 여유 만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영화의 의상들은 최근의 피어스 브로스넌 TV광고처럼, 유능한 사람의 겉모습을 과시하는 꾸밈새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사에 선명하게 기록된 PPL인 체코의 호텔과, 롤렉스와 오메가 시계 역시 언뜻 사소해 보일 지언정, 간과해서는 안될만한 점입니다.



4. 카지노 로얄

"007 골드핑거"에서 유람 영화 느낌을 냈고,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 "007 문레이커"에서는 SF활극 분위기를 냈으며, "007 리빙 데이라이트"에서는 다소 람보스러운 화력전 분위기를 내는 등 제임스 본드 영화는 계속 변해 왔습니다. 액션 측면에서 보면, 최신작 "007 카지노 로얄"은 "야마카시"와 "XXX"를 직접 계승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동작은 경쾌하고 빠르면서도, 신체적인 위협을 살리는 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첫번째 액션 장면과 두번째 액션 장면은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둘 다 이런 특성을 살리는데잘 맞춰져 있습니다.

주인공 배역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 배우들 중에서는 가장 맷집 좋고 험상 궂은 편입니다. 피어스 브로스넌과는 대조적이지만 숀 코네리나 티모시 달튼과는 닮은 면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007 카지노 로얄"이 타협을 잘 한 부분은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설정하면서 굳이 피어스 브로스넌 흉내를 내려하지 않고, 그냥 다니엘 크레이그에 어울리는 인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티모시 달튼이 로저 무어 흉내를 썩 잘 냈음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이 어울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티모시 달튼 팬 이외에는 별 인기를 끌지 못했던 과거를 극복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007 카지노 로얄"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살벌하고 잔인한 편이며, 좀 더 반항적이고, 좀 더 과격합니다.


(20탄: 007 어나더 데이)

"007 카지노 로얄"에 서려있는 색다른 특징은, 바바라 브로콜리 혹은 특정 제작진의 반영이 아닌가 싶은 묘한 취향입니다.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한 영화나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한 영화에서 찾아 볼 수 있을 법한 단역 인물들이나, 기타 배우들의 행동이 군데군데 눈에 뜨입니다. 여자 주인공과의 관계 묘사나 쓸쓸하면서도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부풀리는 이야기도 비슷하게 통하는 분위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고문 장면을 비롯해서 약간씩 변태스러울 수도 있는 화면 구성도 선명합니다. 저는 이런 요소들을 그다지 즐겁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보다 분명한 단점을 찾아 보자면, "007 카지노 로열"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막상 카지노에서의 작전은 다른 작전들에 비해 힘이 부족한 편이며, 무척 심각했던 도입부와 전반부에 비해서는 안이하고 가짜같은 전형적인 본드식의 허황된 계획들이 좀 안어울리는 면이 있습니다. 애정 표현에 관한 묘사는 좀 진지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갑자기 전혀 다른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로맨틱 코메디로 흐르기도 합니다.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여자 주인공과 악당 두목의 존재감이 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충분한 상영 시간을 두고, 장면장면에 공을 들였으며, 그 속에서 중요한 시점마다 제임스 본드 영화의 내려오는 요소들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속편이면서 주제곡 한 번 틀어줄 때 외에는 아무런 전작의 장점을 계승하는 맛이 없다 할만했던 "미션 임파서블 3"나 "슈퍼맨 리턴즈"와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그리하여, "007 카지노 로얄"은 새로운 주인공과 새로운 액션을 내세우면서도, "제임스 본드의 첫번째 이야기"를 다룬다는 그 특징을 결코 포기 하지 않고 살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화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즐길거리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세상이 변해오는 가운데 계속 이어지는 이 시리즈 영화를 보아온 관객들에게, 처음 이 글에서 이야기 했던 애스턴 마틴 자동차를 볼 때 느낄 많은 감상과 같은 독특한 기분을 선사해 주기도 합니다.


(21탄: 007 카지노 로얄)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 긴 길이를 떠올리게 할만큼, "007 여왕폐하대작전"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제임스 본드가 특별한 일을 겪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 전체에서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따지는데 진지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007 카지노 로얄"은 같은 방식으로 쉽게 이어나갈 수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긴 시리즈 중에서 한 번 모험을 감행해 본 독특한 일탈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몇몇 분야 전문가들의 솜씨를 익숙한 분위기 속에서 쉽게 조립해서 만든 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들에 비하면, "007 카지노 로얄"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훨씬 어려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일일 연속극은 100시간치라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가끔 15초짜리 광고를 잘만들기 위해서 그보다 훨씬 고생해야 하는 것과 상황이 닮아 보입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번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는, 주인공 다음으로 인기 있는 인물로 부상한 Q를 다루지 못했고,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핵심으로 활약하는 머니페니를 다루지도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007 카지노 로얄"에서 악당 두목의 배후라든가, 매티스에 얽힌 이야기를 담지 못한 부분이 있는만큼, 아마 다음 영화에서는 혹여, "007 카지노 로얄"에서 바로 뒤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오는 또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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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6/12/20 21:20 # 답글

    아니, 리빙 데일라이트조차도 본드와 KGB가 손잡고 작전을 펴지 않습니까.
  • 게렉터 2006/12/21 13:55 # 답글

    rumic71/ 말씀대로, 결국 끝까지보면 그런식으로 연결됩니다.
  • marlowe 2006/12/23 00:29 # 답글

    적어도 1, 2탄은 원작과 거의 똑같지 않은가요?
    1탄에서 닥터 노를 스펙터의 고위간부로 설정하고, 2탄에서 스메르슈를 스펙터로 교체한 점을 제외한다면요.
    그리고, 007 시리즈의 흥행성적은 물가상승과 투입제작비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내리막길이였죠.
    여름철 블록버스터들을 피해서, 12월경에 개봉하는 것도 그 때문이구요.
  • rumic71 2006/12/23 18:09 # 답글

    <License to Kill> 때에는 확실히 시기 때문에 손해를 본 점이 있습니다만... 다른 경우는 글쎄요.
  • 게렉터 2006/12/24 08:59 # 답글

    물론 3,4편이 나올 무렵에 제임스 본드 시리즈 한편이 나오면 그게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이 되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피어스 브로스넌 시절의 흥행은 티모시 달튼 시절보다는 모든 면에서 비할바 없이 화려했고, 부침이 있었던 로저 무어 시절보다도 전체적으로 좋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미국내 흥행기록으로 봐도 "007 어나더데이"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마이너리티 리포트" "엑스맨" "터미네이터3" "XXX" "매트릭스3" "미션임파서블3" 등보다 더 좋았습니다.

    marlowe님께서 말씀하신대로 007 시리즈의 1,2편은 상대적으로 다른 편에 비해 원작과 비슷한 면이 많은 것은 맞습니다. 죄송스럽게도 제가 두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다가 "영화랑 많이 다르네"하고 그냥 접어버려서 정확한 설명은 드리지 못합니다. 다만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의 자료를 참조해보면, 여러모로 중요하게 다른 점도 많이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1,2편이 원작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3편 이후로는 정말 원작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 때문이라는 점은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 표현이 부족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위의 글에 쓴 내용의 초점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 marlowe 2006/12/24 17:35 # 답글

    게릭터님/ 3편부터는 정말 그렇죠. 007 공식이 완성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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