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마스터 The Beastmaster 영화

얼마전까지만 해도 케이블 TV를 켜면, 어느 영화채널은 무조건 "대한민국 헌법 제1조"나 "두사부일체"를 방송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정말 무슨 이상한 세뇌공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값싼 영화들을 죽어라 반복해서 케이블 TV에서 틀어댔던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방영하는 날과 방영하지 않는 날을 달력에 규칙적으로 표시하면 그게 무슨 모스 부호 암호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상상한 적이 있을 정도 였습니다. 80년대, 미국 케이블 방송국에 비슷한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이 영화 "비스트마스터" 입니다. 끝까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되, 누구나 한 번씩은 본 영화가 된 것입니다.


(마녀들이 모인 악당의 소굴)

"비스트마스터"를 케이블 TV방송국 HBO에서 어찌나 많이 틀어 댔는지, 사람들은 HBO가 "야, 비스터마스터 한다. Hey, Beastmaster's On"의 약자라고 푸념섞인 농담을 만들 정도 였습니다. 이 문제의 영화는 보면 이상한 구석이 꽤 많아 보이는 영화이면서 긍정적이고 즐거운 모험담과 암담하고 음험한 이야기가 잘못 엉켜 뒤죽박죽이된, 검과 마법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무려 9백만 달러라는 터무니 없는 제작비를 들인 영화고, 완전히 망해서 커다란 적자를 보았지만, 한편 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어 속편과 TV시리즈까지 만들어진 이상한 영화가 된 것입니다.

"비스트마스터"의 중심 내용은 제목 대로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동물들을 조종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마왕을 물리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신비함과 현실감을 동시에 갖추는 소재로 활용되어 온 것입니다. 2천년전쯤부터 유행한 주몽의 고구려 건국 전설 중에는 주몽이 물을 만나 길이 막히니까, 하백의 자손임을 들먹이면서 물고기들과 거북이의 도움으로 물을 건너 적병을 피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의 중요한 능력으로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이 이야기되었고, 근현대로 넘어오면, "정글북" "타잔"등등의 많은 이야기들이 이런 소재를 삼았습니다. 이 영화 "비스트마스터"의 뿌리라고 할만한 SF소설 "비스트 마스터 The Beast Master"도 마찬가지 입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벌어지는 아기 바치기 희생 의식)

SF소설 "비스트 마스터"에서 소재 몇 개를 빌려와 시작하는 영화 "비스트마스터"는 시작은 꽤 으시시한 분위기로 출발합니다. 마야 문명을 원천으로 삼고 있는 듯한 이 세계는 사악한 종교의 지배와 아기를 희생물로 바치는 의식이 치러지는 곳입니다. 도시 한 복판에는 정말로 커다란 멕시코 피라미드까지 있습니다. 마왕이 부리는 사술은 섬찟하고 기괴하며, 그 부하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보기 싫은 모습으로 생겼습니다. 화면도 어둡고 내용도 참담하며 사람을 자주 죽입니다. 이후 주인공 마크 싱어가 근육 자랑을 하며 등장할 때까지를 보면, 내용은 꼭 "코난" 시리즈의 한 모습 같습니다.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종족의 거칠고 자극적인 싸움과 모험담인 듯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스터마스터"는 중간에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상쾌하고 발랄한 모험담으로 돌변합니다. 황야에서 자기 혼자 주인공이 칼춤 추는 장면을 한 15초에서 30초 정도 보여준 뒤, 갑자기 주인공은 뭐가 좋은지 혼자 싱글벙글하며 즐거운 떠돌이 검객인 척하는 것입니다. "비스트마스터"는 암담한 부분의 연출이 꽤 분위기가 그럴싸했기 때문에 이러한 돌변은 손해보는 면이 많습니다. "인디아나 존스"나 "빽 투 더 퓨처" 같은 공상적이고 신나는 활극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이 영화는 자꾸만 아주 심각하고 무서운 인물들을 터무니 없는 바보짓을 하게 하며,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왔다갔다 하게 하면서 사건을 연결하지 못하는 면이 많습니다. 덕분에, 꽤 성의있게 녹음된 듯 보이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발랄하기만 해서 재미없어졌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혼자서 칼춤추기)

영화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보자면, 주인공이 들어올 때 마다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보초들이나, 까마귀 만한 크기의 독수리가 머리 굵은 어린이를 채서 날아가는 장면 같이 이상한 장면도 있고, 열심히 설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칼춤 추다 실수하는 듯 보이는 검술 장면도 답답합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마왕이 지배하고 있는 황야의 성벽 도시의 묘사 입니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이야기 내용을 거의 다 언급해 보겠습니다.

이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친 도시면서 가운데에 거대한 마야 문명 양식의 피라미드가 가운데에 있는 이국적인 곳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거친 황야에 홀로 자리잡은 환상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묘사가 너무 초라해서, 그냥 성벽과 피라미드 밖에 없는 놀이공원처럼 보입니다. 그나마 피라미드는 축소 제작한 크기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화끈하게 잘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도시 시민들은 엑스트라로 나와서 가만히 서서 구경하고 있다가, "와!"하고 환호성을 딱 두 번 지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벽, 성문등을 만들어 놓은 모양을 보면, 나름대로 돈을 들이긴 한 것 같아서 제작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멀리서 보면 썩 좋은 모양)

모양보다 더 이상한 것은 도시 운영 방식입니다. 이 영화에서 어떨 때는 도시에 들어가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경계가 삼엄한 곳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무슨 "지상 최대의 작전" 앞부분 장면처럼 난리를 처야만 잠입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주인공이 빨리 등장해야 하면, 경비병은 아무도 없고 그냥 정문으로 들어오면 되는 것으로 바뀝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막판 쯤에는 찍는 사람이 의욕이 없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신나게 싸우며 자기 코 앞에 다가올 동안 도시를 지배하는 마왕은 막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고 구경만 합니다. 악당들은 그냥 가만히 서서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다가 칼 맞아 죽고, 또 칼 맞아 죽습니다. 잠깐 전위적인 예술 같아 보일 정도로, 정말 그냥 멀뚱멀뚱 주인공이 칼질하는 거 구경하며 기다리고 서 있다가 자기 앞까지 오면 맞아 죽습니다. 그게 한 두 번도 아니고, 그 높은 피라미드를 올라가는 동안 계속 펼쳐지고, 화면은 그 이상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서 관객에게 보여 줍니다.


(주인공이 싸우는 동안 갑자기 하던 일도 멈추고 앉아서 구경만 하기)

너무 마왕이 허무하게 망하기 때문인지, 다 끝난 마당에 괜히 묵시록의 기사들을 연상케하는 무시무시한 기마병 부대가 쳐들어오기도 합니다. 이 기마병 부대는 놀랍게도 "발을 헛디뎌서" 대부분 궤멸 당합니다. 몇 안되는 잔존병력이 죽는 부분은 살짝 더 말이 되긴 하는데 하지만 이부분은 묘사가 좀 우스꽝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들은 멋지냐 하면 그것도 썩 괜찮지는 않습니다. 일단 우리의 "비스트마스터"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싸돌아다니다가 위기를 만나면 어디선가 나타난 동물이 아슬아슬하게 구해 준다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을 멋지게 활용하는 장면도 없고, 동물들을 이용해 독특한 꾀를 부리는 장면도 여자 주인공 희롱할 때 한 번 빼고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적 앞에 뚜벅뚜벅 걸어갔다가, 적이 "무섭지?" 하면, "앗! 어떡하지." 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독수리나 호랑이가 나타나 적을 처치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유일한 예외는 족제비를 활용하는 얍삽이들인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웃기는 조연 캐릭터와 똑같이 행동하는 데다가 너무 족제비만 남용됩니다. "비스트마스터"가 아니라 "족제비 마스터"가 어울릴 지경입니다.


(발 한 번 헛디뎌 8할이 전멸하는 바보 군단)

소재의 멋진 아이디어에 비해 모양이 이상한 것들도 많습니다. 가장 불쌍한 것은 미친 전사들입니다. 마왕 부하들이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가 귀에 이상한 벌레를 집어 넣어서 뇌를 미치게 만듭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미쳐서 무조건 다 잡아 죽이는 괴력의 전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장도 나름대로 재수 없게 생겼고, 귀에 벌레를 넣는 기괴한 모양도 그럴듯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불쌍하게도 이 공포의 전사들은, "미친 전사"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영구가 낙랑18세 노래하듯 돌아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정말 정말 바보스럽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줄거리상 죽어야할 때는, 내려오는 문에 동시에 정확하게 달려들어 일제히 깔려 죽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 영화속의 가장 무시무시한 괴물은 날개 괴인 종족입니다. 사람을 말 그대로 갈아마시는 것들인데, 나름대로 비중있는 존재들이며 행동 자체는 살범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꾸며 놓은 모양은 "영구와 땡칠이"의 프랑켄슈타인 괴물 분장 정도 입니다. 더군다나 사람을 갈아마실 때의 동작은 어딘지 5,6세 어린이들이 보자기를 두르고 슈퍼맨 흉내를 내는 듯한 초라함이 쓸쓸히 느껴집니다. 많은 등장 인물들이 허벅지를 일제히 노출하고 있는 복장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보면 현실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마법적인 분위기에도 원시적인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영화에서 무척 중요한 동물들의 연기 연출이 대부분 아주 어색한 것도 심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동물인 족제비와 주인공이 대화하는 장면은 그냥 족제비 목조르며 뒤흔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을 갈아 마시는 날개 괴인들)

대다수 성룡 영화 같은 그냥 경쾌한 활극이라면, 이런 여러가지 바보짓들을 그냥 재미있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비스트마스터"에는 출생의 비밀이 얽힌 숙명적인 비극이 심각하게 얽혀 있습니다. 갑자기 일가 친척들이 나와서 나는 네 삼촌이고 너는 네 사촌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심각한 이야기는 그래서 설득력도 적고 지루해 보일 듯 합니다.

그래서 "비스트마스터"는 중반부 이후의 영웅적인 밝은 이야기보다는 괴기스러운 앞부분이 더 재미있습니다. 사악한 주술로 왕의 혈통을 끊기 위해 뱃속의 태아를 소의 뱃속에 옮긴다는 설정은 추악한 것에 대한 공포심을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평민으로 살아가는 왕자가 동물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천리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자기 눈을 뽑아서 다른 곳에 달아 놓고는 보는 바를 알려주는 눈 없는 마법사라든가, 윤곽선이 보이는 뒷모습의 몸은 아름다운 젊은 여자이지만 돌아서면 추한 얼굴의 노파로 되어 있는 마녀도 흥미롭습니다.


(영구스런 춤사위의 미친 전사들)

배우들의 연기가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이야기 거리들을 좀 통일된 분위기로 가꾼다든가, 최소한 바보스러운 짓을 하는 장면들과 이해조차 힘든 뒤뚱거리는 엉터리 장면들을 좀 가다듬었어도 이야기가 더 재미 있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아마 그런저런 단초가 있었기에 그나마 속편, TV시리즈 같은 인기나마 이어졌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밖에...

조금 섬짓한 묘사와 노출 장면을 넣어 성인영화로 만들었습니다만, 케이블 TV, TV 방영 때 어린이들이 보고 무척 좋아한 영화입니다.

캐나다에서 제작된 TV시리즈판은, 뉴질랜드에서 많은 부분 촬영하면서 자연경관과 동물 보여주기에 주력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이 TV시리즈가 영화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많아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막강한 동물인 검은 퓨마/표범은 호랑이에 검은색 칠을 해서 찍은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바로 티가 납니다.

TV쇼 "V"에서 남자 주인공 격으로 나온 마크 싱어가 주인공을 맡았고, "판타즘" 시리즈의 감독으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돈 코스카렐리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마왕 역을 맡은 립 톤은 "멘 인 블랙"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의 상관을 연기했으며, 많은 영화들에서 마왕 비슷한 역할로 자주 나왔습니다. 이 영화에서 자신이 배반하는 왕이름이 "제드"인데, "멘 인 블랙"에서는 자기가 "제드"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여자 주인공을 맡은 타냐 로버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배우일 듯 합니다. "미녀 삼총사"에서 줄리 로저스로 나왔으며, "007 뷰 투 어 킬"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았고, 현대를 배경으로 한 "비스트마스터"라 할 수 있는 "쉬나"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습니다.

세계 케이블 TV 방송국 끼리 어떤 암흑의 맹약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 한국 케이블 TV에서도 많이 방송해 줬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진료 차례 기다리다가 케이블 TV에서 봤습니다.

덧글

  • FAZZ 2006/12/21 14:40 # 답글

    V이외 마크 싱어가 나온 영화류는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군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왠지 땡깁니다. ^^
  • 게렉터 2006/12/22 14:02 # 답글

    FAZZ/ 마크 싱어는 V에서 말은 험프리 보가트 처럼 하고 행동은 아놀드 슈월츠제네거처럼 하는 인물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놀드 슈월츠제네거쪽을 슬쩍 흉내내다가 갑자기 빽 투 더 퓨처의 마이클 J 폭스 같은 분위기도 내고 막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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