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하드 3 Die Hard: With a Vengeance 영화

"다이하드 3"는 90년대 중반에 나온 걸작 액션 블록버스터이면서, 가장 멋진 뉴욕 시내 관광 영화 중에 하나로 손꼽힐만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신문과 잡지를 오가던 이야기들 중에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정체성을 잃어 버렸으며 많이 부수기만 하는 영화라는 안 좋은 평이 많이 나돌았습니다. 물론, 흥행 성적은 시리즈 중 단연 최고였고 지금은 전체적으로, 액션 영화의 한 교본이 된 "다이하드" 1편과 맞먹을 만한 명작으로 꼽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다이하드 3"는 마치 "더 록"처럼, 처음 보면 그냥 지루하지 않은 정도의 신나는 영화에 머물지만, 보면 볼 수록 그 정교한 기술들과 가치가 빛나 보이는 것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뛰고 구르고 돌아버릴 정도로 꼬이는 하루)

"다이하드 3"에는 편견이 개입될 소지가 꽤 있어 보입니다. 우선 흑인과 백인 한 사람씩이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갈등을 겪으며 고생을 한다는 것이 50년대에 나온 "흑과 백" 이후로 반복되어온 너무나 진부하게 보일 수 있는 틀이었습니다. 막나가는 백인, 차분한 흑인이라는 설정은 "리쎌웨폰" 시리즈와 똑같습니다. 애초에 이런 이야기는 흑인과 백인의 인종갈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거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작가, 학자들이 40년 세월동안 "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헐리우드 영화의 한계 때문에 오히려 인종주의를 드러낸다"라며 나오는 영화, 소설마다 헛점과 부작용을 찾아 지적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영화는 오히려 인종 차별적인 한계가 더 잘 보이는 역설적인 소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 있기도 합니다.

액션의 형식에 있어서도 "다이하드 3"는 안좋게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다이하드 3"는 "스피드"가 완성한 감점표현의 여유 없이 긴박한 액션만을 줄줄이 연결하는 영화 형식을 모범적으로 답습한 영화였습니다. 폭발물에 능한 악당이 나오는 데다가, 양민의 생명을 담보로 협박을 벌이며, 주인공 경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 한 복판을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야 합니다. "스피드"와 비슷한 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액션에 개성보다는 유사한 점과 진부한 점이 먼저 눈에 보일 것이고, 자칫 드러날 수 있는 실수들과 헛점들은 크게 보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개봉된 90년대 중반 한국에는 직배영화 소동이 가라앉은 후 "영화 읽기" 류의 유행이 오가면서, 이런식의 돈 많이 들여서 폭파 장면 많은 액션 영화를 비아냥 거리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를 "아무 생각 없는 액션 블록 버스터 영화"로 비하 해 부르는 말이 어구로 굳어진 시기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전에 나온 많은 헐리우드 영화와 닮은 점이 수두룩한 영화가 나왔는데, 그나마 별 심각한 문제의식 대신 웃음이 들어간 영화고, 게다가 돈 뿌리는 폭파장면까지 많으니, "다이하드 3"는 당시에는 일단 안 좋은 시각으로 평을 받을 소지가 다분했던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

그러나, 결과는 멋집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이하드 3"는 존 맥클레인 형사가 갑자기 폭파 협박을 벌이는 이상한 범죄자와 맞서기 위해, 온 뉴욕을 돌아다니며 생고생을 하는 긴 하루를 다룬 영화 입니다. 우연히 존 맥클레인 형사의 일에 휘말려 같이 뛰어다니게 된 제우스라는 전기전자 기술자가 같이 주인공으로 참여합니다.

"다이하드 3"는 "스피드"의 성과를 그대로 이어 받아서 인물들의 사정 설명이나 감정 표현 장면들은 최대한 줄이고, 액션 장면 사이사이에 드러나도록 나누어 배치 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영화 전체를 액션 장면으로 가득 채운 영화입니다. 꼭 "스피드"처럼 도입부 자체를 급박하게 바로 액션으로 끌어다 붙입니다. 첫번째 폭발이 1분대에 벌어지고, 5분이 되기 전에 문제의 존 맥클레인 형사가 나타납니다. 빌딩에 불나는 영화인 "타워링"에 불이 나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고, "타이타닉"에 타이타닉 배가 나오고, 빙산과 충돌할 떄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비교될만합니다.


(술 덜 깬 브루스 윌리스 등장)

시간이 빠른 것도 빠른 것이지만, 더 좋은 면은 연출입니다. "다이하드 3"의 시작 장면은 뉴욕의 바쁜 아침을 보여주는 짤막한 뮤직 비디오로 되어 있습니다. "Summer In The City" 라는 흥겨운 록큰롤과 함께 펼쳐지는데, 복고적인 리듬감이 대도시이지만 대전, 구미, LA, 시애틀에 비해서는 20세기 초중반의 전통이 살아있는 뉴욕과 어울립니다. 화면 전환의 흥겨운 구성과 미술적인 감각으로 충만한 영상 자체도 이 노래에 어울리는 최고의 뮤직비디오로 꼽기에 아쉬움이 없을만큼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면, "다이하드 3"의 가장 멋진 점이 솟구쳐 나옵니다. "다이하드 3"는 수많은 조역들, 단역들, 작은 배역들이 하나하나 감정과 생각, 개인적인 생활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무대로 마치 재난 영화처럼 온 도시가 뒤집어지는 난리가 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과 감상을 잡아내는 것은 영화의 재미를 돋구는데 결정적입니다.


(뉴욕의 아침 풍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상상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대한 도시에 감자나 종이와 같은 자원들이 아침에 배달되고 하루동안 도시가 돌아가는 일상과 함께 이런 자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면서 어떻게 가공되고 어떤식으로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하루가 끝나면서 쓰레기통이나 폐기물 처리장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도시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개개인 저마다가 갖는 사연들과 그 위상을 표현해 보고, 도시문명의 교묘한 협업과 분업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이하드 3"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세계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그 꿈을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영화라 할 만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경찰관, 지하철 승객, 택시 기사, 전자제품 수리기사, 백화점 이용객, 금융회사 직원, 건설기사, 학교 선생님, 학교 안가는 어린이들, 대기업의 중역, 심지어 거지에게 돈 던져 주는 지나가는 사람1 까지 수많은 도시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짧게나마 어떤 사연이 있는 공감할만한 감정을 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은 온 도시를 뒤짚어 없는 폭탄 테러 음모가 퍼져나가면서 차근차근 묘사됩니다.


(도시와 다이하드)

그러면서도 "인디펜더스 데이"나 "딥 임팩트"처럼 TV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차례로 보여주는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감정과 그 행동들이 하나하나 주인공들의 이야기의 원인이나 결과가 되고, 좋은 연출을 통해 긴박함을 조성하거나 재미있는 웃음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장면은 존 맥클레인을 견제하기 위해 악당이 통신을 마비시키려 하는 장면입니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시민들에게 당혹스런 공포감을 불러오려 합니다. 이 장면은 따분하고 나른하게 낮 방송을 진행하는 라디오 DJ와 격식을 차리고 허세를 부리고 있는 어느 회의중인 임원들을 잡고 넘어갑니다. 이 사람들의 모습에서 1,2초만에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는가하면, 911 긴급 통화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의 외침을 통해 긴박함과 사건의 거대한 양감을 말 한마디로 화려하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곧 사건이 전해진 학교의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동요하는 장면이 벌어지며, "여기가 뒷문"이라는 풍자적인 유머를 통해 이 상황을 겪는 경찰들의 심정도 재미있게 묘사 됩니다.

주인공에서 촉발된 사건의 소용돌이가 도시를 훑고 지나가서 도시 저편에 있는 동료 경관들이 겪는 문제까지 연결되는 과정이 공황에 빠져가는 도시 정경 묘사와 함께 흥미롭게 융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동료 경찰의 절망)

이러한 연결과정은 영화 중반에서, 주인공들, 악당들, 조연 경찰들의 세 지역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면서 더욱 심각하게 벌어지고, 도시 전체를 이야기에 담는 구조도 더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꽉 짜여진 상황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다이 하드 3"는 전화와 무전기로 끊임없이 세 곳을 연락하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런 방법은 잘못하면 뭔가 억지로 연결시키는 듯 보일 수도 있고, 왔다갔다하는 이야기가 헷갈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이 하드 3"에서는 처음 액션부터 전화가 매우 중요한 중심소재로 부각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전화와 통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야기 전개가 어색해지지 않을 뿐만아니라, 서로 떨어진 곳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훌륭한 접착제가 되어 줍니다. 어린이를 학교에서 구출하는 경관들과 배안에 잡입한 존 맥클레인 형사, 폭탄을 제거하려는 기술자를 번갈아 보여주는 절정장면은 이런 면이 힘을 발휘하는 부분입니다.

"다이하드 3"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서 도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뉴욕이라는 구체적인 배경도 잘 활용되어 있습니다. 할렘, 지하철, 마천루,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센트럴파크, 허드슨강을 잇는 다리들, 항구들까지 뉴욕의 주요한 볼거리들을 하나하나 잘 연결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차이나 타운이나 한국인 사회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요소들까지 한마디 말이나, 스쳐지나가는 상황속에서 짚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교통이 복잡하고 사람들이 시끌벅적한 도시 정경은 교통난과 인파를 헤치고 지나가는 주인공들 묘사를 통해 영화의 중요한 갈등요소, 액션요소로 활용되었습니다. 지하철 폭파 장면에서 지하의 폭발 - 지상의 연기 바람 - 빌딩 안의 구경꾼들 - 옥상의 악당 처럼, 땅속에서 하늘로 차례로 시점의 높이를 상승시키며 장면을 연결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연출이 뉴욕 정경을 멋지게 담아내는 장면도 많습니다.


(할렘가)

전체적인 액션의 연결도 공간을 잘 살리도록 이루어져 있습니다. 존 멕클레인과 제우스가 뛰고 기고 달리는 공간은 대체로 어퍼 맨하탄 지역에서 로어 맨하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거주 구역에서부터 빌딩 숲이 빽빽한 중심 업무지구로 점차적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공간의 이동은 영화에 점층적인 느낌을 강하게 부여하면서, 하루동안 도시가 뒤집어지고 거대한 모험을 겪는 상황을 드러내는데도 효과적입니다.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면, 이제는 뉴욕이 항구라는 점을 이용해서 점차 "물에 가까운 방향"으로 공간을 이동시키는데 이것도 좋은 전환이었습니다. 분수의 4갤런 물에서 시작해서 대서양 바닷물로 심상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악당의 계획은 다소 황당 무계한데가 있지만, 이 악당과 대결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서히 음모를 밝혀내는 추리극이 적당히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로또 번호 모른다고 사람죽이는 것처럼 좀 심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덤프 트럭 도난 사건, 지하철 폭파 사건, 국민학생 인질극, 하나 같이 같은 액수의 동전을 준비해 주머니에 넣어둔 악당 부하들 등등의 별 상관없어 보이는 단서들이 정신없는 액션 장면들 사이에 하나하나 조립되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를 끌만합니다. 특히, 건설 기술자들과 트럭 기사가 등장하는 부분의 작은 반전은 꽤 재미있습니다. 만약, 사이먼이 서울에 나타나 한강다리를 다 폭파해버렸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래도 교보문고에서 책을 산 뒤에 김포공항에서 비행기타러 가는 길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월스트리트 지하철역: 브루스 윌리스 개인기)

각본에서 추리극보다 몇 배는 더 훌륭한 것은 영화 전체에 세세히 틈틈히 켜켜히 구석구석 요목조목 박혀 있는 웃음들입니다. 쓰레기통 폭탄 장면이나 브루스 윌리스가 정신병자 흉내를 내는 장면처럼 아예 코메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면들도 있고, 팝콘을 먹으며 창문에 몰려 있는 회사원들이나 소송걸거라고 으름장 놓는 깐깐한 택시 승객처럼 풍자적인 부분들도 있습니다. 존 맥클레인과 제우스의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는 마디마디가 만담으로 되어 있어서 배우들의 코메디 실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 외에도 경찰이 없다고 말하는 어린이나, 열쇠뭉치에서 4번 열쇠를 찾다가 급해서 문을 부수는 장면처럼 가벼운 코메디 요소가 극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러한 웃음장면들은 일부러 농담만 하는 것도 아니고, 농담전문 인물이 노골적으로 웃는 시간을 때우는 방식도 아닙니다. 다만 자연스러운 액션과 이야기 전개 속에서 자주, 풍성한 웃음을 전해주는데, 이것이 이야기 전체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진지함과 긴박함을 유지하는 범위내에서 짤막짤막하게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동안 고생하는 이야기의 분위기에 큰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커다란 액션과 꼬인 상황에서 열받은 사람들의 웃음이 잘 조율되어 있는 것은 "다이 하드 3"가 이런 것을 시도한 많은 다른 영화들이 흉내내기 어려울 만큼 잘 해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경찰은 자네 잖아. 자네가 폭탄 집어.)

배우들은 이 영화의 특징에 맞도록 작은 배역들도 모두 연기가 좋고 연출도 이런 연기를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탄 전문가인 기술자를 연기한, 케빈 챔벌린은 전형적인 안경 쓰고 운동에 재능없어 보이는 기술자로 되어 있고 비중도 별로 크지 않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인물은 선명한 개성을 드러내는 무진장 의리 있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구체화 됩니다. 괜히 인물이 입체감이 있어 보이고, 좀 멋있어 보입니다. 비슷하게, 아이들을 껴안고 주저 앉는 장면의 콜린 캠프 연기는 한 순간일 뿐이지만 감정이 뚜렷하며, 어린이 배역들도 제몫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잭슨과 브루스 윌리스가 서로 소리를 높이며 싸우면서 웃기는 부분들은 두 사람의 장단이 잘 들어 맞아서 재미있고, 후반부로 갈 수록 욕이 많아지는데 이것 역시 억지로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사와 감정 속에 담아내서 웃음거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전체가 "브루스 윌리스가 술 덜깨서 머리 아파 죽겠는 이야기"로 되어 있어서 브루스 윌리스의 꼬인 표정 연기 주특기를 잘 살리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뒤집어진 지하철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기어나오는 장면은 브루스 윌리스의 개인기에 거의 모든 걸 걸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개인기는 분명히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배우의 노력에 비해서 좀 싱거운 악당 역할입니다. 물론 제임스 본드 악당 두목처럼 변태에 바보는 아니지만, 아주 인상적인 악역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두명은 꼬질꼬질하고 구겨진 옷에 온몸에 기름때, 먼지, 피를 묻히고 싸돌아다니는데 비해서, 악당들은 전부다 건장한 청년들이 늠늠한 모습을 하게 되어 있어서 대조적인 느낌을 잘 살립니다. 주인공들의 고생하는 상황도 그만큼 부각되고, 악당들의 존재감도 보기에는 그럴듯해 집니다. 다만 정말 아쉬운 것은 제레미 아이언스의 짝꿍으로 되어 있는 악당이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그냥 무서운 표정만 짓고 서 있기만 한다는 점일 겁니다.


(깔끔한 악당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두 군데에 큰 헛점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스파이더맨이라고 다리에서 배로 뛰어내리려는 장면과 마지막 결판 액션 장면입니다. 앞부분의 것은 이렇게 막나가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나름대로 충분히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길어서 줄이고 나가기 때문인지, 이 짓에 뛰어드는 그 미친 마음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갑자기 왜저러나" 싶어 보일 뿐이고, 그리고 나서도 별로 다치지도 않는 모양새를 보면 너무 가짜 같아 보입니다.

결판 액션은 권선징악을 위해 첨부된 것입니다. 뉴욕 이야기를 했으니, 서울 이야기 뒤에 분당이나 일산이야기를 곁들이듯 업 스테이트와 캐나다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긴 했습니다. 낮동안만 이야기를 진행했으니 야간 장면이 필요할 듯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빠르게 연결된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동떨어진 느낌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싸움 자체도 "존 맥클레인 초특급 명사수이기 때문에 권총만 쓸 수 있으면 아무도 못이긴다"로 되어 있어서 허황됨의 도가 지나치다는 면도 있습니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판이면 상황을 보건데 FBI나 군대쪽에서 사람을 끌어와서 그냥 싹 정리해도 될 텐데, 굳이 존 맥클레인의 영웅적인 단독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온 뉴욕을 시끌벅적하게 했던 전체 영화와 걸맞지 않습니다.


(안 깔끔한 주인공)

그러나 이런 엉성한 부분이 있음에도, 영화 전반부의 몇몇 부분들은 각본과 연출이 기차게 어울리는 명장면으로서 길이 기억될만 합니다. 할렘가의 존 맥클레인 머리통에 농구공을 한 번 튀기는 묘사는 사소한 잠깐의 연출이지만, 폭력적인 분위기와 긴장감을 높이면서 사실적인 표현이기도 하며, 브루스 윌리스와 사무엘 잭슨의 개인기를 펼칠 무대를 마련해 주는 멋진 전주곡 역할도 다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사무엘 잭슨이 "이보쇼. 내 말 믿어요. 업드리쇼." 라고 한 뒤에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업드리는 장면은, 작은 유머와 폭발적인 액션의 다리가 되어주는 훌륭한 모습입니다.

폭발 장면과 당황하는 장면에서 손에 든채 흔들리는 카메라로 촬영한 수법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비롯한 다른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될만큼 아주 모범적으로 적절히 활용되었습니다. 장난스럽게 한 방울의 혼합 폭약이 폭발하는 장면을 앞에서 미리 보여줘서, 나중에 빨간색 물감 섞이는 장면 따위로 사람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는 수법도 완성도가 높습니다. "더 록'에서 악당 부하 한 명을 희생시켜서 초록색 고무공 같은 구슬을 엄청나게 무시무시하게 보이게 한 것이나, "킬 빌"에서 인물들의 잔인한 과거사를 한 번 보여줘서 고등학생이 나와서 두리번 거리는 장면이 겁나보이게 한 것과 통합니다.


(업드리쇼.)

음악 역시, 장중하고 코다가 강한 오케스트라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국가주의풍의 선곡을 한 것은 도시와 사회, 공무원을 다루는 이야기에 너무 안이한 선택이었지만, 음악이 삽입된 위치나 연주를 들어보면 이 역시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와 함께 어울린, 자동차를 탈취할 때 금괴로 유리창을 깨는 연출 같이 보기 좋은 장면들은 여러 번 봐도 즐겁기 그지 없습니다.


그 밖에...

악당 두목이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 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엘비스 듀란이라는 실제 라디오 방송국 아나운서라고 합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는 검둥이가 싫어요 I hate niggers" 라는 표지판을 걸고 있는 장면은 실제로 할렘가에서 촬영했습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실제로 촬영할 때는 동네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하기 위해, "나는 인간이 싫어요 I hate everyone" 라는 표지판을 걸고 있게 하고 찍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서 "나는 검둥이가 싫어요"로 바꾸었답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사무엘 잭슨은 말콤 X를 참조해서 제우스라는 인물을 영화 속처럼 꾸미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국 개봉판에서는 등급을 맞추기위해 여러 부분 잘리고 고쳐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자막 올라갈 때 보면, 이번에도 뉴욕의 한국인은 당연하게도 슈퍼마켓 주인입니다.

분위기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따져보면서 "식스틴 블럭스"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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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닥슈나이더 2006/12/21 15:57 # 답글

    저도 다이하드 3 2번정도 본것 같은데요.... DVD를 아직도 소장못하고 있습니다...
  • 아마란스 2006/12/21 21:02 # 답글

    이상하게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입니다.
    몇십번은 봤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이나 공중파에서 하면 또 그것만 보게 된단말입니다.
  • DAIN 2006/12/22 00:10 # 답글

    돈을 잡고 왼쪽으로 빙빙 돌아라~ 돈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빙빙 돌아라~ 나름 괜찮은 영화인데 말이죠.
  • oIHLo 2006/12/22 00:57 # 답글

    이 영화를 다 잊어버렸습니다만, I hate niggers. 표지판은 계속 기억나더군요.
    역시... 이거 그대로 걸고 찍었으면 총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_-
  • 게렉터 2006/12/22 14:01 # 답글

    닥슈나이더/ 저는 예전에 2장짜리 VCD가 나왔을 때 바로 샀던 영화입니다.

    아마란스/ 코메디로 쿵짝이 잘 들어 맞는 두 주인공들의 힘도 상당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DAIN/ 그 곡은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으로 미국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북군들이 개선 행진을 하면서 군가로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oIHLo/ 지나다님의 이야기에 ㅏ르면 미국에서 일부 공중파 방송은 방송판에서 "I hate everyone"으로 틀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 rockthrow 2009/08/11 10:30 # 삭제 답글

    로또번호 모른다고 사람 죽이는거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들이 진짜 경찰이 아니라는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인가 동료경찰과 주고받는 대화중에 뉴욕경찰의 반은 자기 배지넘버에 건다면서 '매주 똑같애. 6991에 걸지' 라고 하던

    동료가 있었는데 그 엘리베이터에서 맥클레인 뒤의 사람이 달고있던 6991넘버의 뱃지가 엘리베이터 반사면에 비친 것을

    맥클레인이 본 거지요. 그리고 로또 운운하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총질을 해댑니다. 지하 수로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앞 트럭에 타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이봐 웬 정신나간 친구가 썰매를 끌고 수로에 들어왔다는데 혹시 봤나?' 하다가 빵빵빵...

    배로 무모하게 뛰어내리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때의 제우스는 자기 조카들이 다니는 학교에 폭탄이 있다고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터지기 전에 막으려고 그렇게 무모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맥클레인이 어설프게 까불지 마라고 했지만 한스에게 직접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도 했으니까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2년 반이나 지난 포스팅이지만 댓글 달아봅니다.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지요.

    "그놈 핏줄을 알거든." 요 대사가 생각나네요.
  • 게렉터 2011/05/11 08:32 #

    저도 배지 번호하고 일치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원래 배지 주인은 그 앞장면에서 살해 당하는 것 같던데 정말 불운한 사람이지요. - 그렇습니다만, 두들겨 패면서 물어 보는 정도도 아니고, 그걸로 바로 그자리에서 살인까지 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뉴욕 경찰 전원이 전부다 로또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 으이구 2011/05/11 00:06 # 삭제 답글

    대가리가 나쁘니 영화도 못보는구나
  • 게렉터 2011/05/11 08:28 #

    지능개발에 투자할 수 있게 좀 도움이라도 주십시오.
  • Casker 2011/10/26 19:07 # 삭제 답글

    배지 번호 이야기:

    그러니까 그 번호의 배지는 원래 맥클레인의 동료가 가지고 있던 배지인데, 엄한 사람이 그 배지를 달고 있으니 '이놈이 내 동료를 죽였다'고 판단한거죠...?
  • 게렉터 2011/10/30 20:40 #

    그 배지 번호를 단 사람이 맥클레인의 동료라는 것이 나오는 장면은 기억 나지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 나왔던 대로 그저 "복권 번호인데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처리한 듯 묘사되지 싶습니다만.
  • Casker 2011/10/31 15:07 # 삭제 답글

    영화 초반부, 맥클레인이 처음으로 등장해서 할렘가로 이동중인 차 안에서의 대화입니다.

    존 맥클레인: 어제 복권 당첨번호가 뭐였지?

    동료들: 4667

    존 맥클레인: 여전히 자네 배지번호에 거나, 릭?

    릭키 월쉬: 6991. 매주 그렇지.

    존 맥클레인: 6991. 행운의 번호로군.

    조 램버트: 뉴욕 경찰 절반은 자기 배지번호에 걸지.


    이후에 릭키는 독일인 악당 오토에게 총을 맞아 죽죠. 그리고 오토는 릭키의 시체에서 배지를 꺼내 자기 가슴에 답니다.

    그 배지를 엘리베이터에서 보고 맥클레인이 악당들을 죽이고요. 엘리베이터안에서 맥클레인의 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존 맥클레인: 어제 밤 복권 번호 알아요? 복권들 사요, 복권? 복권들 안사시나보네?

    우리 마누라는 10년동안 매주 같은 번호만 두 장씩 사는데, 하루는 '좀 다른 번호도 사보지 그래?' 하고 물었더니

    '아냐, 이게 내 행운의 번호라구'랍디다. 그 티켓이 여기 있는데... (안주머니에 손을 넣는척 하며 총을 쏜다)


    단순히 '복권 번호인데 모른다'는 아닌것 같아요. 복권 이야기를 꺼낸건 악당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수작이고,

    자기 동료의 배지를 다른 사람이 달고 있다는데서 '이놈이 내 동료를 죽였다'고 판단한게 맞는것 같습니다.


    저 맥클레인의 입담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에요. 브루스 윌리스의 팬이 되게 한 영화이기도 하고요. :-)
  • 게렉터 2011/10/31 17:54 #

    릭키 월시는 그 시점에서 살아 있는 거 아닙니까? 악당이 달고 있는 배지는 6991 (릭키 월시의 것)이 아니라, 그 주의 당첨번호 였던 4667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VCD로 나왔을 때 당장 사서 갖고 있기는 합니다만, 최근에 본 지는 좀 지나서 혹시 제 기억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여쭙습니다.
  • Casker 2011/11/02 10:08 # 삭제 답글

    아니요, 악당이 달고 있는 배지는 릭키 월시의 '6991'번이 맞습니다. 독일인 악당이 릭키를 죽인 이후에 존 맥클레인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확실하고요.

    오랜만에 이 영화 생각이 나서, 다시 한 번 돌려보며 등장인물들 대사의 워딩들도 꼼꼼하게 확인한거니 믿으셔도 됩니다. :-)
  • 게렉터 2011/11/08 15:03 #

    지적 감사합니다. 본문 중에도 수정하겠습니다. 괜히 애꿎게 생각했네요. 보면서도 릭키 월시 인물에 큰 관심이 없다보니 잘 모르고 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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