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소냐 Red Sonja 영화

지금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한때 자신이 찍었던 영화들 중에 가장 추레한 영화로 "레드 소냐"를 꼽았습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터미네이터"를 흥행시킨 직후라서 "레드 소냐" 영화 출연진 중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았고, 영화 자막에서도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극중 역할은 별볼일 없는 편이고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레드 소냐"는 "코난" 시리즈에 영향을 준 "코난" 만화판에서 코난 친구로 나온 인물인 전사 여자 주인공 "레드 소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인 것입니다.


(이 아이(?)는 18년후 캘리포니아의 38대 주지사가 됩니다.)

"레드 소냐"의 내용과 결말은 이렇습니다. 마왕이 마법 구슬의 힘으로 세상을 위협하자 주인공이 마왕을 물리치러 길을 떠나고 길을 떠나는 와중에 동료 두세명을 만나서 마왕의 성에 도착해서는 마왕을 없앤다는 것입니다. 마왕은 모습은 꽤 근엄하지만 영화속 악당들이 저지르는 영구스러운 짓들을 저지르는 사람입니다. 죽는 방식도 전형적이고, 권선징악의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서 이상한 짓도 서슴치 않습니다.

이 마왕은 원래부터 무시무시한 군대를 거느리고 런던 탑보다 큰 성을 가진 두목이었습니다. 거기다 마법 구슬을 얻어서 세상을 파괴할만한 힘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결투에서는 "마법 구슬을 뺏기면 안돼~" 할 뿐, 막상 마법 구슬의 힘으로 주인공들을 물리치지는 않습니다. 마법 구슬로 대량학살, 도시 파괴 같은 짓은 심심풀이로 하면서 왜 정작 자기 목숨 지킬 때는 안 쓰는 것입니까? 게다가 마법 구슬을 빼앗기고 난 뒤에는 기초 체력이 부족한 것인지, 부하들도 부르지 못하고 그냥 평범한 30,40대 아주머니의 힘밖에 안 보여주는 듯 해서 허망한 최후를 맞이할 뿐입니다.


(마왕)

그래도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구구한 설명을 할만한 여지가 있긴 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왠만한 이야기라서야 들판에서 나뒹굴며 살아온 칼든 주인공 두세사람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대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매끄럽게 맺어지기 어려우니 이해할만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도 그 뜻 만큼 세상을 바꾸는데는 실패했는데, 덴마크에서 온 모델과 오스트리아에서 온 보디 빌더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대마왕이 이정도 이상한 짓은 해 주어야 공정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마왕의 멸망과정보다 "레드 소냐"에서 더 실패한 부분은 끼여 있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소냐)

아놀드 슈월츠제네거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은 사실상 "코난"시리즈의 "코난"인데 설정이 꼬이는 것을 우려해서 이름만 "칼리도어 Kalidor" 라고 해 놓은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공이 위험에 빠졌을 때 갑자기 나타나서 구해주는 역할을 몇 번 하는데, 전체적으로 왜 그러고 다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인물입니다. 차라리 신비로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으로 해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될만큼 아무 이유없이 주인공의 동료 역할을 하면서 괜히 세계 최강 무적 용사인 척만 한 없이 하는 인물이라서 무척 가짜 같습니다. 중간에 나름대로 여자 주인공에게 자신의 정체나 행동 동기에 대해 구구하게 설명을 하긴 하는데, 말 그대로 구구합니다.

이런 남자 주인공을 가지고 억지로 갑작스런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시키자니 어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두 사람이 호감을 느끼는 장면은 후다닥 칼싸움 장면이 뒤이어지지 않았다면 한심하기 이를 때 없을 것이고, 그 뒤로도 옳은 장면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남녀 주인공은 사람 죽이고 살리는 연기나 칼질하는 연기는 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이야기 속에서 연애를 표현하는 부분은 둘 다 연기가 무척 어색합니다.


(물도 안주고, 비료도 없어도, 사랑이 싹튼다.)

이렇게 엉성한 이야기와 엉성한 인물들이 설치는 이야기이고 그 내용에는 온갖 편견과 진부함이 가득하지만, "레드 소냐"는 비슷한 정도로 엉성한 이야기와 엉성한 인물들이 설치는 다른 진부한 이야기들보다는 꽤 재미있게 보입니다. 그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은 이야기 전체에 시각적이고 미술적인 면들이 상당히 흥미롭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전체적인 촬영이 황량한 중앙아시아 풍의 자연 경관을 멋드러지게 담아내고 있고, 말타고 달리는 장면들은 전부다 무척 흥겹게 잡혀 있습니다. 마왕과 싸우는 한 맺힌 전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어둡게 먹구름이 낀 날의 음습한 느낌이 시종일관 어느 걸작 영화 못지 않을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나오는 악당이 천둥번개로 파괴하는 도시를 지평선 저 멀리에서 보는 모습은 짤막해도 서정시적인 느낌이 풍요롭습니다.

악당 쪽과 주인공 친구들 쪽 모두 복장들도 재미있습니다. "레드 소냐"는 중앙아시아 유목민 풍의 문화를 중심으로하면서, 중국 만주족 문화와 일본 문화 등등이 잡탕으로 마구 섞여서 중세 유럽식으로 마무리된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물들의 모습, 칼, 투구, 갑옷, 옷차림 등등은 그래서 상당히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국적인 고대와 중세의 향취가 물씬 풍깁니다. 환상적인 느낌도 적당히 서려 있고, 괴이하고 불길한 느낌도 살아 있습니다.


(소냐의 검술 스승과 소냐 )

장면장면의 연출이 보기에 훌륭한 부분도 많습니다. 주인공의 한맺힌 과거를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대신에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목 보여주기 전에 짤막하게 제시하는 구성도 좋고, 화웅 앞에서 뜨거운 술을 받은 관우를 연상케하는 문지기 깡패와 싸우는 부분도 멋집니다. 특히 한 명 쓰러뜨린 후에 깡패 떼거리와 대치할 때의 으시시한 위협감은 비죽비죽 솟아나온 무기들과 얼굴을 가리고 말없이 다가오는 존재들의 묘사때문에 훌륭한 편입니다.

장면들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마왕이 마법 구슬을 탈취하는 부분입니다. 흰색 천으로 된 옷을 입은 여자 신관들과 검은색 갑옷을 입은 남자 군인들이 싸움을 벌이는 장면들은 나름대로 사실적으로 복장을 지정해 두었으면서도 거의 장예모가 만드는 색깔 자랑하기 무협 영화들과 같은 그럴듯한 시각적인 효과를 줍니다. 그에 앞서 나오는 배경음악 없는 조용한 원구도를 이용하는 의식 모습과, 신전을 기어오르는 마왕 군단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도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왕이 신관의 잔당들을 처형할 때, 하나도 잔인한 화면은 안 보여 주면서도, 음향과 좌우 대칭 구도를 멋지게 활용하는 연출은 압권입니다. 자칫 유치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무심한 병사들의 모습만 화면에 보이는데 감정이 치솟는 소리만 울려퍼지고 이것이 간접적인 움직임을 통해 묘사되는 모습은 신화의 장면을 묘사한 근대 유럽 화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제네바 협정과는 아주 거리가 먼 포로 처리)

비교적 사소한 것들도 재미거리 들이 더 있습니다. 검과 마법 이야기에서 단골로 나오는 현실 감각 없는 귀족, 왕족이 여기에도 나오는데, 이 아역배우의 연기나 액션연기는 나쁜 편이 아닙니다. 막판에 감동적일 수 있는 부분이 허겁지겁 넘어가는 억지 전개와 부족한 연기에서 흐지부지 되는 것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보면 이 아역배우의 연기가 가장 좋은 편이라 할만합니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칼싸움 장면과 음악도 좋은 편입니다. 검술은 이런 영화에 어울리는 힘있는 방식이 표현되었고, 음악은 말 달리는 서부 영화에 쓰일 법한 곡조를 서사시적인 오페라풍으로 완성시켜서 들을만합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는 거대한 괴수가 얼마전까지 돌아다닌 듯한 느낌을 주는, 거대 동물의 뼈가 벌판에 나뒹구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룬 이탈리아-그리스 영화 같은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자체로 신비롭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감흥이 현실적인 주인공들의 행동과 직결되는 다리 건너기 장면은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리)

이러한 재미거리들이 어림없는 이야기를 보완해 주는 데는 아마도 영화 전체가 1시간 30분이 채 되지 않는 짤막한 길이라는 점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야기 줄거리가 전개되는 사이에 지루한 느낌이 없는 편이고, 재미있을 법한 줄거리만 골라서 짚고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복잡한 내용과 묵직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먼 옛날, 먼 초원 지대의 흥미로운 옛 이야기로 깔끔하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레드 소냐의 사실상의 컴퓨터 게임판인 Palace사의 "바바리안: 궁극의 전사". 한국에서 훨씬 더 흥행한 Psygnosis사의 "바바리안" 게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HOL웹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그 밖에...

여자 주인공을 맡은 브리짓 닐슨은 덴마크 모델이었다가 이 영화에서 사실상 미국 영화에 처음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코브라" "록키" 4편, "비버리힐스 캅" 2편 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실버스타 스탤론과의 짧은 결혼 생활로 유명해 지기도 했습니다.

마왕을 연기한 샌달 버그만은 "코난"시리즈의 코난 여자 동료를 연기한 적이 있습니다. 제작진은 애초에 그녀에게 주인공 소냐 역을 부탁했다고 합니다만, "가버네이터"의 친구들은 초록동색이요, 유유상종인지, 그녀는 자기는 마왕 역에 더 어울린다고 스스로 주장하여, 마왕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았고, 영화는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제목이 "레드 소냐"라서 저는 처음 이 영화가 TV에 방영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 소련 사람의 인생역정을 다루는 영화라든가 소냐라는 소련 첩보원이 나오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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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6/12/28 16:54 # 답글

    실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 요한 2006/12/28 21:11 # 답글

    중학 시절, 학교에서 단체 관람 시켜 주었던 당시 나름대로 블럭버스터였죠^^
  • 게렉터 2006/12/29 12:33 # 답글

    rumic71/ 린다 해밀턴이 살벌하게 교육된 KGB 첩보원으로 나오는 영화 "암호 속의 여인들 Secret Weapons"을 본 기억이 남아 있던 때라 그런 생각을 했지 않나 짐작하고 있습니다.

    요한/ 예, 재미 없지는 않은 영화입니다. 중학생에게 단체 관람 시켜주기에는 약간 ABCDEFG하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뭐 학교 단체관람에서 이상한 영화 보게 되어서 단체로 강한 인상 받는 것도 나름대로 학창시절의 꼭 있어야할(?) 추억 중에 하나라고 봐야 하는 것일지.......
  • shuha 2008/01/25 11:22 # 삭제 답글

    린다 헤밀턴과 실베스타는 원래 결혼까지 했었는데 이 영화를 찍는 동안에 아놀드와 바람이 나서.. 이혼했다는 후문이.. 아놀드와 실베스타는 실제로도 친했다고 하더군요; (람보vs 코만도) 나 찍어주지..
  • 레드소냐빠 2009/01/31 10:32 # 삭제 답글

    아역 연기자는 어니 레이어스 주니어더군요. 태권소년 어니로 방영됐던 드라마의 주인공. 어린 놈이 참 무술을 잘하던데 성인이 된 요즘도 액션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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