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 퀸 Barbarian Queen 영화

"바바리안 퀸"은 "데스스토커 Deathstalker"와 함께 연주하면 딸림 화음이 될만한 영화입니다. 라나 클락슨이 "데스스토커" 다음으로 주인공급을 맡은 영화면서, 또다시 싸구려 영화계의 황제, 로저 코먼이 제작자로 나섰으며, 이번에도 물가 싼 아르헨티나에서 찍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이 검과 마법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중세 이전의 살벌한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빌미로 자극적인 다양한 노출장면에 영화의 상당한 가치를 두었다는 점도 같고, 전체적인 평가에서 "트래쉬 무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같습니다.


(주인공을 연기한 라나 클락슨)

"바바리안 퀸"은 시작부터 단번에 좀 이상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영화를 찍은 배경이 아르헨티나의 산속인데다가 현지 세트는 짚과 나무가지로 된 벽이 얄팍한 집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뭘로 보나 이곳은 열대 지방인듯 합니다. 일부 열대지방에는 아직도 창칼 휘두르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 나름대로 이런 배경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주요 등장인물들의 복장은 중앙아시아나 동유럽의 유목민족 풍입니다. 때문에 안어울려서 이상합니다. 게르만족이나 노르만족 문화를 다룬 이야기나 대표적인 흥행작인 "코난" 시리즈등등이 대체로 중앙아시아 비슷한 벌판을 무대로 삼고 있기에 이런 영화의 복장을 그대로 "바바리안 퀸"이 모방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부터 이 영화는 롯데월드에서 찍으면서 배경이 16세기 독일이라고 주장하는 요즘의 TV 재연 프로그램같은 누추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바바리안 퀸"의 줄거리를 결말까지 밝혀 보면 이렇습니다. 마왕의 약탈 때문에 결혼식을 앞두고 부족이 전멸당한 족장 쯤에 해당하는 인물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복수를 결심하고, 약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산넘고 물건너 마왕성으로 떠나는 데 그 과정에서 마왕의 졸개들을 처치하고, 마왕에게 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마왕성에서 마왕을 몰락시킨다는 것이 영화 내용입니다.


(열대지방의 부족)

복장이나 소품의 누추함은 별개로 하고, 초반의 내용에서 이상한 점은 주인공들의 감정의 표현하는 심각한 조울증 묘사입니다. 주인공은 부족이 통째로 학살 당하고 노예로 잡혀 가서 미친듯이 슬퍼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존자인 친한 사람 한 명을 발견하자 방긋 웃으며 하하호호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험난한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가는 길에 괴로워하고 엄청나게 우울해하는 묘사가 이어지고, 어쩌다 좀 쉴 순간이나 좋은 일이 벌어지면 또 갑자기 "두 시의 데이트" 라디오 손님들처럼 흥겹게 웃고 즐거워 합니다. 울다가 웃다가 하는 순간이 정말 후다닥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도, 초반부는 결코 지루하지 않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서 엄청나게 장면 전개를 빨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넘고 물건너 마왕성까지 가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산에서 걸어가는 장면, 5,6초 정도, 물에서 노젓는 장면, 6,7초 정도를 보여주는 식으로 매우 빠르게 연결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열대의 고향에서 가죽을 두르고 말을 타고 여행을 하는 추운 지역 장면으로 갑자기 바뀌기도 합니다. 부족 전체가 전멸당한 상황에서 배는 어떻게 구하고, 말은 어디서 구했는지 무척 궁금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고속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에서 그런 것 쯤은 좀 이상해도 잊어 버려준다면, 나름대로 핵심만 잘 짚어서 이야기 줄거리를 전달해 주는 TV 재연 프로그램스러운 재미는 충분합니다.


(산넘고 물건너)

연출면에서도 형편 없는 와중에 실력이 엿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영화의 칼싸움 장면은 그렇게 심하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배우들이 칼싸움을 잘 하는 장면은 보여주고, 엉성한 장면은 매우 빠르게 화면을 전환해서 다른 각도의 모습을 연결해서 보여줍니다. 이런 전환이 칼을 휘두루는 충격과 힘에 맞도록 잘 잘려져 있기 때문에 칼싸움하는 장면이 어처구니 없지는 않고 나름대로의 박진감까지 있습니다. 사람에게 칼을 찌르고 피가 튀는 특수효과는 그에 비해 아주 조잡해서 플라스틱 칼들고 놀이터에서 장난하는 듯 하지만, 대신에 군중 장면등에서는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해서 뭔가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중에서, 초반의 약탈 장면은 정말 약탈을 하는 듯한 파괴감을 전달해 주기도 합니다.


(약탈)

이야기가 중반으로 넘어가면 재미거리가 되면서 가장 시선을 끄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마왕성에 침입하려다가 붙잡힌 주인공을 마왕의 고문 기술자가 고문하는 장면입니다. 피튀기거나 잔혹한 장면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참 기억에 남을만한 고문입니다.

바로 고문인 즉슨 "바바렐라"에 등장하는 해괴망측한 음탕한 방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주인공을 맡은 라나 클락슨의 몸을 보여주면서 배우를 활용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별 생각이 없이 그랬는지 아니면 어릴때 옆 집 사는 유태인 어린이에게 맞은 기억이 있는 제작진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고문 기술자를 유태인을 연상케하는 복장으로 출연하게 해 두었습니다. 이 친구가 고문하면서 하는 행동, 대사, 고문 도구들은 "바바렐라"의 악명 높은 장면보다 훨씬 빈약하고 가난한 소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인상을 남기는 힘은 있다는 면에서는 비슷한 효과를 줍니다.

결코 좋은 장면은 아닙니다. "바바렐라"는 전체적으로 신비롭고도 웃을만한 꿈으로 되어 있기에 그 부분도 나름대로는 들어맞았습니다. 하지만, 종족이 멸망당한 후 복수에 나선 "바바리안 퀸"에서 이 고문장면은 좀 비웃음을 살만한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주인공이 탈출하면서 이 고문기술자를 이상한 화학물질 구덩이에 처박아서 녹여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분위기가 끝없이 이상해지지는 않습니다.


(고문 기술자)

주인공이 탈출하고나면 이 영화는 막판에, 주인공이 마왕을 무찌르게 하기 위해 대단한 거사를 치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왕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감격하여 함께 일어서서 싸우고, 주인공과 친한 사람이 검투사로 살아 남아 있어서 검투사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와 동시에 마왕의 궁녀로 끌려간 주인공의 동료 중 하나가 암살도 좀 해주는 것입니다. 이정도면, 요인암살, 내부분열, 외부공격이 어울린 괜찮은 반란책으로, 히틀러 암살작전이나, 5.16 정도는 될 겁니다.

그런데 이 반란작전이 시작되는 부분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엉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왕에 불만 품은 사람들을 이끄는 반란군 대장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반란군 대장은 주인공에 대해, 부족이 몰락하고 빈손으로 나타난 주제에 무조건 싸우자는 주장만해서 좀 싫어하는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당연히 주인공이 주장하는 반란계획도 실패가능성이 큰 개죽음 당할 일이라고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럴듯한 이야기이고, 연기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영화 끝나는 시각이 조금밖에 안남게 되면, 한참 토론을 하다 말고, 갑자기 여자 주인공이 어디선가 나타나 "이제 그만하세요. It's enough." 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마법 주문과 같은 한 마디, "이제 그만하세요."에 반란군 대장이 홀려버린 것인지, 엄청난 감동을 받으면서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알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싸우지요." 해 버립니다. 정말 어떠한 변화도 없이 단지 다음 장면에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갑자기 반란계획에 결사 반대 하던 사람이 문득 싸우겠다고 해버리는 겁니다.


(섣불리 행동하다가는 개죽음입니다! / 우리는 지금 당장 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마법의 한마디: "이제 그만 하세요.")

(와아 만세 싸우자!)

전체를 따져 봤을 때, "바바리안 퀸"은 그래도 "데스스토커"보다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은 훨씬 더 줄어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이 그나마 좀 더 매끄러운 편인 영화입니다. 반란이 성공하면서 끝을 내는 결말도 나름대로 결말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극적인 장면이나 신기한 괴물, 특이한 마법 같은 것은 "데스스토커"보다 적어서 확실히 더 낫다고 하기에는 갈등의 소지가 있는 영화입니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 적당한 아이디어 였던데다가 연출 상의 기술이 나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확실히 열대 지방으로 배경을 굳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냥 과감하게 중세풍의 검과 마법 이야기를 포기해 버리고 아예 "불을 찾아서"나 "공룡 100만년 One Million Years B.C."과 같은 정말로 원초적인 선사시대 풍의 이야기로 만들었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볼거리가 되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그 밖에...

이 영화는 2편까지 제작되었습니다. 2편은 "바바리안 퀸2: 제국녀의 역습 Barbarian Queen2: The Emperess Strikes Back"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라나 클락슨이 살인 사건의 희생자로 죽은 이후, 그녀의 대표작으로 가장 꼽히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의 살벌한 남녀 대결구도와 "레드 소냐"가 "Xena: The Worrior Princess" 아이디어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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