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 Hercules, Ercole (1983) 영화

헐크역으로 친숙한 루 페리뇨가 덩치에 맞게 헤라클레스역으로 출연한 영화가 있습니다. 신화 속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이런 헤라클레스나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옛날부터 이탈리아에서 자주 만들어지면서, 흔히 검과 샌달 이야기 Sword and Sandal 로 불리웠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우람한 근육과 신비로운 분위기의 대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보기도 했습니다만, 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기마련인 상상속의 괴물들을 좋아해서 이런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1983년판의 이 영화 "헤라클레스"는 한 가지 특징 때문에 종종 기억을 뚜렷하게 남겼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흔히 떠올리는 상상속의 괴물 그대로가 아니라 기계 로봇과 헤라클레스가 싸우는 영화인 것입니다.


(포스터)

1983년판 "헤라클라스"에는 꿈틀거리는 히드라나 정말 말과 사람 같아 보이는 켄타우로스가 안나옵니다. 대신 히드라처럼 생긴 구리 재질 인듯한 로봇과 켄타우로스 처럼 생긴 알루미늄 재질 인듯한 로봇이 나옵니다. 생생한 괴물을 기대한 사람은 실망을 했고, 진지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은 이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 수록 줄거리가 너무 엉켜버리기 때문에 실망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 영화는 흥행성적은 나빴고, 평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꼭 영화에 공룡처럼 생긴 괴물이 나와야 재미라는 고정 관념에 대한 기대만 버리고 본다면, 신기한 볼거리는 적잖이 있는 영화입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점차적으로 인기를 얻어서 곧 좋아하는 사람도 꽤 있게 되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로봇 괴물들은 "터미네이터"나 "공각기동대"처럼 실재감이 강하고, 현실적인 존재가 뚜렷한 로봇과는 아주 다릅니다. 이 괴물들은 박진감 넘치는 동작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고, 복잡한 줄거리 속에서 갈등의 요소가 되면서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의 로봇들은 무섭지도 않고, 차갑고 강력한 느낌도 적습니다.


(헤라클레스의 집을 공격하는 로봇 괴물)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로봇들은 자동인형들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몇 백년전의 시계장치나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반짝이는 수공예 휴대장치 같은 멋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로봇들은 극적인 위협성을 가진 활극의 괴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술관에서 감상할만한 조소 작품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신나는 모험 이야기가 아니라,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그야말로 신화적인 전설풍으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사실, "헤라클레스"는 흘러간 시절의 검과 외계 행성 이야기 Sword and Planet 에 속한다 해도 거의 무리가 없는 영화인 것입니다.


(케르베로스인 듯하지만 히드라로 불리우는 로봇 괴물)

시작부터 "헤라클레스"는 본격적으로 SF스러운 요소들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빅뱅을 보여주더니, 곧 태양계에 생명이 생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헤라클레스"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판도라의 항아리"라는 한 우주선이 폭발되는 모습입니다. "헤라클레스"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원시생명체나 유전자 조작기술에 관한 물질이 잔뜩 들어 있는 외계인의 비행체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 태양계 행성들 사이에서 폭발해 흩어지게 되면서, 지구에 희로애락을 가진 생명과 인간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암시해 줍니다.

1983년판 "헤라클레스"는 한 때 여기저기서 유행한 적 있는, 고대인과 접촉한 외계인이라는 SF 소재를 듬뿍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인에게 널리 퍼져 있는 신비로운 신화들은, 사실, 외계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고대인들이 외계인의 신기한 과학 기술을 보고 놀라서 감탄한 이야기가 시초가 되었다는 겁니다. "헤라클레스" 영화 속에서, 제우스나 헤라와 같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지구 궤도에서 지구의 인간을 관찰하고 있는 거대한 거인 덩치의 외계인입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맞서 싸우는 괴물들은 외계인들의 기술 수준을 갖게 된 어떤 과학자가 투입한 로봇 입니다. 이런 현대적인 SF물의 검과 외계행성 이야기는 "신에게 도전하려 했던 인간" 운운하는 고대 유럽, 서아시아권 신화 전설 분위기와 기이하게 어울리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SF 요소들을 사실적이거나 현란하게 묘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런 배경들을 장황한 SF로 설명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신화와 환상 장면 연출처럼 신비롭게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뿌옇게 빛나는 화면들이나 고요한 분위기, 사람이 아무도 안사는 듯한 광막한 느낌이나, 머나먼 우주에서 영롱히 반짝이는 은하와 성운을 배경으로 하는 밤하늘을 자주 활용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말투는 천천히 위엄있게 되어 있고, 목소리는 종종 메아리 효과와 함께 그럴듯하게 어울립니다. 이런 연출들은 상당히 흥미롭고, 고전주의 앵그르 화풍으로 SF소설 삽화를 그린 듯한 꿈결같은 느낌을 잘 살리는 편입니다.

이상과 같이 신과 괴물들이 볼만하게 표현 된 데 비해서, 다른 부분은 못만든 부분이 많습니다. 도시와 성의 모습은 무척 초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틀란티스의 도시는 모형 티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모형으로 보일 뿐이고, 때문에 이 도시에서 무슨 거대한 일이 벌어지는 장면은 실감은 커녕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먹기도 어렵습니다. 전체 줄거리는 더 엉성한 부분인데, 헤라클레스와 그를 둘러싼 신들의 위세 다툼을 제외하면 일관성 있게 움직이는 인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이달로스가 짧게 출연하지만 인상적인 편이고, 키르케가 꽤 재미있는 인물이기는 한데, 데이달로스는 너무 출연 분량이 짧고, 키르케는 극중 인물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위한 해설자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특히 키르케의 최후는 좀 비웃을만도 합니다.


(업그레이드 하여 헤라클레스와 모험 중인 키르케)

줄거리 자체가 "고대인의 신화 속 외계인"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잡탕이 된 것도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모험담이라기보다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속의 이야기거리들이 잡다하게 이리저리 막 섞여 있는 것입니다. 신화 속 내용만큼 헤라클레스의 불패신화, 무적전설이 잘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까운 부분이지만, 또 재미있는 부분만 후다닥 추출되어서 보여주는 것은 경제적이기도 합니다. 보고 있으면 헤라클레스의 12가지 모험이 차례로 소개되기를 기대하게 되어서 아쉽긴 하지만, 마굿간 청소 장면만 짤막하게 뽑아내서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제물로 바쳐지는 카시오페아)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일관성있고 전개가 재미있는 영웅 서사시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야기 전개는 그냥 신기한 장면들을 얼기설기 연결하는 것 뿐입니다. 억지로 연결을 하려다보니 중간중간에 해설자의 해설을 통해서 사이사이 벌어진 일을 설명하고 넘어가 버립니다. 그게 심하다 싶을 때는 사실상 해설자 역할을 하는 키르케를 통해서 해설을 하게 합니다. 특히나 최후의 결전과 결사적인 탈출 장면은 너무나 싱거워서 무척 누추해 보입니다. 주연배우 루 페리뇨는 대사가 잘쓰여진 부분에서는 연기가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에서는 참 엉성하기도 합니다. 악몽같은 "Damn you!" 를 비롯해서 "쾌걸 춘향"중에서 신경안쓰고 대사 막쓴 것을 연상시키는 아주 바보스러운 대사와 행동도 꽤 많습니다. 결국 모로보나 거꾸로보나, 80년대 이후의 촬영기술로 어떻게 신화적인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가, 그리스 신화와 검과 외계 행성 이야기를 어떻게 겹치는가 하는 면에 이끌리게 되는 영화라 할만합니다.


그 밖에...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루 페리뇨는 한국 사이트에는 종종 "루 페리그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릴 적 꿈이 헐크나 헤라클레스 같은 힘 센 용사가 되어서 자기를 괴롭히는 애들을 물리치는 것이었는데, 헐크는 해봤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헤라클레스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TV에서 "헤라클레스의 모험"이었던가, "헤라클레스의 대모험"이었던가 하는 제목으로 방영해 준 적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통칭, "The Adventure of Hercules"라고 불리우는 영화는 1985년에 나온 "헤라클레스"의 속편 입니다.

IMDB에 들어가보면, User Comments에 "The Worst Movie Of All Time!!!!!!!!" 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정식 개봉된 그리스 신화 이야기로 범위를 좁혀도, 헤라클레스가 나와서 헛짓만 줄기차게 하는 이탈리아의 막만든 영화들 중에 더 심한 것이 많습니다.

"보디 더블" "캐리" "드레스드 투 킬" 등등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피노 도나지오가 음악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서 만든 음악은 너무 정석대로인 신나는 오케스트라 곡이라서 영화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가히 반전스러운 이 영화의 가장 어처구니 없는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헤라클레스의 적들이 나란히 줄지어 오다가 헤라클레스가 천천히 밀어붙이는 통나무에 일렬로 나란히 뭉게지는 장면입니다. 왜 아무도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서 피하지 않고 일렬로 대오를 지키다가 당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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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07/01/10 02:30 # 답글

    > 고대인의 신화 속 외계인

    '우주선장 율리시스' 생각나는 컨셉이로군요. 한번 보고 싶어집니다.
  • 게렉터 2007/01/10 13:43 # 답글

    잠본이/ 비슷합니다. 다만, 우주선장 율리시즈 처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고 살짝 그런듯한 느낌만 드리우고 있습니다.
  • 토끼 이빨한 녀석 2007/02/09 00:56 # 삭제 답글

    이걸 보니 옛날 생각나네요
    어렸을때 tv루 본거 같은데
    이거 볼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컴터루...
    Adventures of Herucles
    IMDB 거기 들어가보니까
    영화 정보가 나온거 같긴 한데
    영어루 되어있어서.. 어떻해야 할지
    다운받구 싶은데...
  • 토끼 이빨한 녀석 2007/02/09 00:57 # 삭제 답글

    제 멜주소 입니다
    sat6tr@nate.com
  • 씽씽 2007/06/21 09:54 # 삭제 답글

    제가 이 영화 어렸을때 너무 재밌게 봤던영화였는데요...
    기억이 조금씩 나네요.. 어렸을때 봤어도 몇장면은 생생하네요.ㅎ
    극중에서 카시오페아역으로 나온 여자는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랍니다 ㅎㅎ;;
    영화보고 어찌나 그리워했던지 어린나이에 ㅋㅋ
    혹시 카시오페아역으로 나왔던 여자 이름이라도 알수 있을까요??;;
  • 게렉터 2007/06/21 13:03 # 답글

    그럴때는 http://imdb.com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잉그리드 앤더슨 이라는 배우 입니다. 참고 링크 ( http://www.imdb.com/name/nm0026820/ )
  • 씽씽 2007/06/21 15:50 # 삭제 답글

    정말감사해요.. 드디어 이름이라도 알수있게됐습니다...^^;
    안되는영어실력으로 뒤져봤지만.. 이 배우는 별로 안유명한가보네요 ㅎ (그런느낌이..;;ㅋ)
    아무튼 좋은정보얻아가구요.. 행복하세요^^
  • rumic71 2010/03/11 22:55 # 답글

    다...다이달로스의 슴가! (펑) 이카루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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