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이중인간 영화

파천황의 과학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도덕적인 노력을 펼치는 늙수레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젊은 대학원생들이 그런 그를 따르면서 때로는 불만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동질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우리는 시키는데로만 할 뿐 죄가 없다"는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이 늙수레한 학자의 비도덕적 행동에 대한 공범이 됩니다. 결국 공범 중 하나는 이 늙수레한 학자가 적으로 지목하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게 되고, 다른 사람은 간호사 출신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학자의 비도덕적 행태를 견디다못해 덤벼듭니다. 얼마전 한국을 소란스럽게 했던 사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1975년에 개봉된 한국 공포영화 "공포의 이중인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프랑켄슈타인과 비슷한 과학자의 실험과 그로 인해 태어난 되살아난 인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무섭게 나온 공포의 이중인간의 모습. 막상 보면 전혀 무서운 영화가 못된 영화였습니다.)

"공포의 이중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화중에 유명한 것은 역시 1967년에 개봉된 "프랑켄슈타인은 여자를 창조했다 Frankenstein Created Woman" 이라는 영화입니다. 아름다운 여자의 몸에 살인자로 처형된 남자의 정신을 집어 넣어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알려진 해머 영화사의 전형적인 공포 영화이며, 한국에서도 이 영화의 한 장면이 "괴기랜드" 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에 소개되기도 하여 최근까지 꽤 친숙한 영화입니다.

"공포의 이중인간" 역시 아름다운 여자의 몸에 상습 폭력배, 살인자인 남자의 정신을 집어 넣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빚어내는 정체성 혼란문제나, 평등에 관련된 상징이나 암시 같은 것들은 "프랑켄슈타인은 여자를 창조했다"과 같은 정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건의 구체성이나 문제의식은 가끔 더 "공포의 이중인간"이 더 진솔한 면도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빠른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배우의 육체적인 매력을 드러내는데 아낌없이 치우치는 정도도 대체로 "프랑켄슈타인은 여자를 창조했다" 수준입니다. 그에 비해 줄거리 전개는 "공포의 이중인간"이 훨씬 황당무계하고 억지스럽습니다. 여기서는 김옥진이 수잔 덴버그처럼 이중인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포의 이중인간"은 그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에 보기에는 상당부분 특색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첫번째는 이 영화속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공포영화스럽지 않은 요소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재미있는 장면, 그럴듯한 볼거리, 괴이한 상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무리하게 억지로 이야기를 연결시킵니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은 이런 무리하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연출이나 연기로 가려서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공포의 이중인간"은 대사와 설명으로 이런 부자연스러움을 나름대로 해괴한 논리로 설명하려합니다. 그렇게 설명하는데 정말 억지로 억지로 노력합니다. 이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폭소를 가져오는 코메디 요소로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폭풍우치는 어느 밤, 외딴 저택으로 되어 있는 깊은 산속의 정신 병원에 갑자기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길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미친 박사는 묻습니다.

"어떻게 오셨소?"
"간호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여기까지는 무서운 척 하다가 갑자기 안 무서워지는 많은 공포영화 수법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미친 박사가 묻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 밤에 굳이 갑자기 나타난거요?"

이 신비로운 간호사 지망생 여인은 대답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빼앗길까봐요."

이 대사가 간들어지는 어투의 전형적인 70년대 성우의 후시 녹음 연기로 너무나 당당하고 멀끔하게 담기면 관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부분은 군데군데 참 많습니다. 썰렁하게 실험에 어떤 사람을 쓰지 말자고 대화하는 부분도 참 허무하고, 결정적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목부러져"는 정말로 조금은 웃기려고 집어 넣은 부분입니다. 좀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만, 본시 적지 않은 공포영화들이 이렇게 좀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면이 개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 부분을 그렇게 가소롭게 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냥 비웃기에는 흥미롭습니다. 70년대 성우 연기로 하지 않고, 동시녹음으로 하기만했어도, 은근히 웃음을 주는 가운데 나름대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을 겁니다.

사실 이 영화가 이렇게 이상하게 꼬인 가장 큰 원인은 미친 박사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는 이유가 환상적으로 터무니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실 약간은 반전일 수도 있습니다. 밝혀보면 이렇습니다. "공포의 이중인간"의 미친 박사는 결코 과학적인 도전이나 명성 때문에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많은 영화나 소설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시 살려보려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유는 황당하게도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숨겨놓은 약탈 보물을 찾기 위해서, 죽은 일본군 장교를 되살려서 "물어보려고" 입니다.

이게 대관절 무슨 짓입니까. 심지어 이 영화에 속에서도 미친 박사의 대학원생도 한심하고 황당했는지 따집니다.

"아니, 박사님. 그러면 그냥 산을 샅샅히 뒤지는 연구를 하시는게 낫지 무슨 보물을 찾는데 죽은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하셨습니까?"

사실, 후반부 장면에 주목해서 보면, 이 미친 박사는 정말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만큼 완전히 맛간 놈입니다. 조울증 환자에 정상적인 판단력도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해괴한 강박증을 갖고 있으며, 제대로 변태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박사가 칼부림하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말 관객을 어리벙벙하게 만들만큼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의 기상천외함을 보여줍니다.


(포스터만 보면 그래도 꽤 박력있는 공포영화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때문에 저는 "공포의 이중인간"의 어처구니 없는 연구 목적이나, 이상하게 억지로 설명하는 분위기는 나름대로 재미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포의 이중인간"이 완전히 실패할 때는 이런 부분보다는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무서운 장면"을 끼워 넣기 위해 아무 생각도 없이 마구잡이로 답답한 장면들을 잡아 넣은 부분들입니다.

그때문에 가장 피를 본 인물은 이 영화의 중심 괴무인 "이중인간"입니다.

이중인간은 아름다우면서 키도 훤칠한 배우라서 잘 어울리는데다가 영화속의 각종 다양한 야릇한 장면에서 좋은 모습으로 잡혀 있습니다. 연기력이 안정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포 영화의 그늘드리우는 조명에서 눈을 부릅뜨고 해괴한 표정을 짓는 몇몇 장면들은 꽤 그럴듯하기도 합니다. 간호원의 침대 위에서 옷섶을 풀어헤칠때나 그 쏟아지는 폭우속에서 맨바닥에 속옷차림으로 엎어져 있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중인간은 부분부분 "프랑켄슈타인"영화의 괴물을 흉내내게 되어서 비틀비틀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정말 화끈하게 멍청하게 보입니다. 뭔가 사람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넣으면 더 "프랑켄슈타인 괴물"처럼 보일 테니까 아무 상관없이 갑자기 놀부 박속에서 도깨비 나오듯 불량배 두 명이 튀어나와서 얻어 맞고 사라집니다. 이것도 정말 성의 없이 막 집어넣은 연출입니다. 그나마 터프하게 보이려고 괜히 음료수를 병뚜껑 열어서 안 마시고 병째로 깨서 마시는 것은 그냥 웃고넘어갈만합니다.

나름대로 정성들여 만들었고 음흉한 느낌은 맥박을 빠르게 할 정도 입니다. 하지만 실험 장면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실패 장면입니다. 이곳은 정신병원이고, 실험자체도 영혼 운운하는 뇌과학 내지는 주술적인 실험입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상당히 아방가르드하게 표현된 실험과정까지도 정신의학이나 마법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데, 실험 과정은 그냥 "프랑켄슈타인"의 시체 짜집기 되살리기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큰 동작들과 외과수술이 복잡하게 벌어지는 분위기로 꾸며져 있습니다.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의 미친 박사는 탐욕에 눈 먼 미친 박사인데, 이 부분에서는 그냥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원래 "공포의 이중인간"의 미친 박사는 제정신이 아닌 단순한 변태인데, 신의 생명창조 능력, 과학의 한계 운운하는 복잡한 고뇌를 겪는 과학자로 갑자기 돌변해서 전혀 안맞고 있는 것입니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만드려고 노력한 미친 박사의 실험 장면)

"공포의 이중인간"은 바보스러운 장면이 많고 못만든 부분도 수북수북 울릉도에 눈 내리듯 쏟아지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산속 외딴 성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옛 공포 영화의 분위기는 세트가 잘 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체 분장 같은 것은 지나치게 역겹게 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그런데로 사실적이라서 좋은 편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사건만 놓고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고 흥미롭게 연결되고 있어서 지루한 느낌이 없고, "자신이 살인하고 있는 순간을 거울로 비춰보고 뭔가 깨닫는다" 같은 강렬한 연출이 적절한 시점에 잘 박혀 있는 장점도 건져내려면 건져낼 수 있습니다.

같은 재료로 어떻게 방향을 바꾸어서 만들었다면 더 괜찮은 것이 나올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을 하게되는 영화입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신기한 장면과 이상한 인물들을 잔뜩보면서, 덤으로 여럿이서 웃으며 보기에도 좋은 영화입니다.


그 밖에...

일본군이 나오는 회상장면에서 일본군들은 미군 마크가 커다랗게 찍힌 트럭을 타고 다닙니다. 영화 찍을 때 빌린 트럭에 일본군 마크를 함부로 칠하자니 돈이 아까웠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 노획물자를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 두가지 중 첫째는 핵심소재인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과정입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려면 산 사람 한 명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 어떻게 영혼이 오고가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도무지 납득이 안가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인물의 복장입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옷을 벗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는가하면, 갑자기 자동으로 어느새 옷을 순간적으로 입고 서 있는 장면도 많습니다.

막판에는 상영시간을 때워 넣으려한 흔적이 역력히 보입니다. 아무 쓸데 도 없는 구출 장면을 아주 길게 보여주는 것과, 갑자기 지금의 가양대교 근처에서 고려말에 이조년, 이억년 형제가 보여준 고사를 따라하는 것은 아주 뜬금없습니다.

복구한 필름이지만 원래 없는 것이었는지 복구실패 한 부분인지, 중간에 건너뛰며 날아가버린 장면이 몇군데 있습니다. 심의 때문인지 변태스러운 장면이 앞뒤만 남아있고 확 잘려나간 부분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미친 박사를 연기한 이예춘은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영화입니다. 이 분은 악역연기로 명망 높으셨는데, 요즘에는 이덕화의 아버지로도 친숙합니다.

이중인간을 연기한 김옥진은 이 영화가 첫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참 고생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웹의 영화 DB들에는 남자 배우로 되어 있습니다. IMDB에는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필름도, DVD도, VHS도 없어서 지금껏 볼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한국 영상 자료원 고전영화관에서 1월달 마지막주 일요일에 상영이 예정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복원했지만 필름질은 그다지 좋지 않아도, 추운 겨울 가볍게 나들이 나가서는, 웃음이 많은 친구, 연인과 함께 즐긴다면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임을 호언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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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보박사 2007/03/02 12:00 # 삭제 답글

    두번째 사진의 저총은 MP40이 아닙니까?
  • 게렉터 2007/03/02 13:53 # 답글

    바보박사/ 저 시절만해도 적당히 이야기하면 국방부의 지원을 직접 영화에서 받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총들이 실전에서 사용하는 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MP40 보다는 M3 계열이나 닮은 미군 무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rumic71 2007/09/05 18:13 # 답글

    김옥진낭자가 든 총은 그리스건이 맞는 것 같고... 오른쪽 총은 스페인제 MP40짝퉁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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