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렐라 Barbarella 영화

평화롭게 우주를 주유하고 있던 우리의 바바렐라는 지구 대통령의 특수 임무를 받습니다. 임무인즉 머나먼 외계 행성에서 듀란듀란 박사를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이 외계 행성은 마왕이 다스리는 이상한 나라인고로, 이야기는 나름대로 검과 외계행성 이야기 분위기입니다. 그렇거나말거나 바바렐라는 끊임없이 사소하고 무의미한 농담을 조금씩 섞어가며 듀란듀란 박사와, 마왕 그리고 마왕에 대한 저항세력 등등이 등장하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꿈의 방으로 들어서는 바바렐라)

"바바렐라"의 이야기 모양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의 같습니다. 주인공이 사실성이나 논리와는 거리가 먼, 신비하고 상징적인 세계를 한 단계 한 단계 가지각색으로 살펴 본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개념을 들먹이는 우화적인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는가하면, 공상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기이한 볼거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바바렐라"의 주인공은 10세의 영국 어린이가 아니라, 그 미모가 절정을 달리던 무렵의 제인 폰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바렐라"가 펼쳐내는 "이상한 나라"의 첫번째 목적과 마지막 목적은 제인 폰다의 아리따운 자태를 좀 노골적으로 화면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왜곡되는 정도는 꽤 심해서 "TV유치원 하나 둘 셋"에 끼워 넣어 보여주면서 우주 저편 세계에 대한 꿈과 상상을 키우기에는 큰 문제가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제인 폰다는 화려하게 물결치는 금발을 필두로 몸의 윤곽을 드러내는 다양한 옷차림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음흉하고 야릇한 농담들을 종종 주고 받습니다. 그리하여 "바바렐라"의 세계는 서사적인 느낌을 갖고 있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느낌을 풍성하게 자아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심각한 철학적인 고민거리라기보다는 가볍고 경쾌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잡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미래의 특이한 세계를 독특한 미술감각으로 보여준 "브라질 (여인의 음모)" 과도 다르고, 도리어 사실주의 표현법으로 환상 세계를 표현하는데 공을 들인 "스타워즈 에피소드1"이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도 아주 다릅니다.


(문제의 행성에 처음 떨어진 바바렐라)

단적인 것은 색채입니다. "바바렐라"는 무채색과 탁색 계통의 색깔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상의 것이 아닌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소재를 어딘지 상징적인 느낌이 들게 심각하게 표현할 때 많이 활용하는 수법입니다. 실제로 20세기초에 유행한 초현실주의 회화들이 그러하고, "블레이드 런너"나 애니메이션 시리즈 "우주선장 율리시즈 Ulysse 31, 宇宙傳說ユリシ―ズ31" 도 비슷하게 색채를 활용했습니다. 회색 빛과 푸른 빛, 살짝 어두운 조명, 밤하늘과 같아 보이는 행성의 하늘, 색채가 선명하지 못한 옷과 기계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바렐라"는 화려한 금발로 치장된 바바렐라와 선명한 흰색 날개를 갖고 있는 파이가를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는 시종일관 가볍고 농담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바로 그런 주인공들이 가볍게 마왕이 다스리는 기묘한 어두운 세계를 미끌어져 나가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주인공과 이야기의 밝고 가벼운 분위기와 화면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세계의 어두운 분위기는 이렇게 미술적인 감정이 잘 살아있는 수법으로 부드럽게 연결됩니다. 금발과 붉은 장화를 입고 있는 밝은 표정의 주인공은 또한 밝은 회색 사슬로 되어 있는 촘촘한 갑옷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밝은면과 어두운면 어느쪽으로도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표현하는데 플라스틱 튜브들과 유리 벽들이 많은 투명, 반투명한 소재를 많이 사용한 것도 신비감을 더합니다.


(여왕과 마주한 바바렐라)

신화적인 소재 자체를 전면적으로 사용한 부분도 재미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온 행성이 미로로 뒤덮혀 있어서 주민들이 미로 구석구석에 퍼져서 헤메며 살고 있다는 것은 꼭 단테의 작품이나 불교에 나오는 별세계 묘사 같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위저드리"나 "울티마 언더월드" 같은 게임과 비슷하기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지구 주인공이 마왕과 맞서서 끝없는 미로를 헤멘다는 그 모습은 훗날의 "라비린스" 같은 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한편 미로의 끝에 솟아 있는 거대한 성으로 된 도시와 이 도시가 퇴폐적인 도덕관으로 물들어 있다는 연출은 유태교, 기독교등의 중동 종교의 느낌이 나고, "메트로폴리스"나 "모던 타임즈"와 같은 고전을 연상케하는 면도 있습니다. 마왕이 잠자는 동안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꿈의 방" 같은 소재는 그림동화 풍이고, "악의 기운"이 검은색 액체처럼 표현되어 마치 기운 자체가 아메바 같은 생명체처럼 꿈틀 거리는 모양이나, 거대한 성의 이곳저곳을 비밀통로들이 어지럽게 연결하고 있어서 거기에 숨어든 저항군이 있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선풍기로 바람을 일으켜 항해하는 돛단배, 보이지 않는 열쇠 와 같은 논리적인 농담들이 끼어 있는 모양도 보기 좋습니다.


(미로로 뒤덮힌 행성)

(비밀통로에 숨어든 저항군)

신화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기술적인 면도 나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연인 천사 파이가는 그 날개와 날개짓이 충분히 그럴듯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뒤에 나온 "플래시 고든 (제국의 종말, 1980년판)" 의 날개보다는 훨씬 낫고, "천사와 사랑을 Date with an Angel"과 비겨봐도 부족함이 없으며 "도그마"의 모습에 비하면 좀 가짜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극에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닙니다. 우주선이나 움직이는 탈것들의 묘사는 그 움직이는 모양은 다소 누추합니다만, 그렇다고해도 가만히 정지해 있을 때, 그 겉모습은 환상적인 다른 배경과 무척 잘 어울리는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움직이는 인형들이나 새장 속의 새들도 좋습니다. 둘 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막 등장해서 앞뒤 연결관계에 좀 도움이 안되는 뜬금없는 허망한 소재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교한 특수효과를 쓰지않고는 상당히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을 연출기법으로 때워서 표현해내고 있는 모양이 볼만합니다.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쓰지 않고, 인형이 사람을 뜯어 먹으려고 덤벼든다거나, 조그맣고 아름다운 새들 수십마리가 사람을 살짝 쪼아대서 죽이려하는 광경등은 감독 말을 알아 듣고 연기하는 인형이나 새가 없는 다음에야 찍기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기묘한 장면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모습과 두 개, 세 개의 인형/새 들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법 등등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효과는 충분합니다.


(파이가)

신화적인 면 외에 "바바렐라"가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흐느적거리고 몽롱한 약각은 퇴폐적인 몽환적인 분위기입니다. 어지럽게 교차하는 색채처럼 전형적인 사이키델릭 분위기를 이용하는 것도 있고, 공허한 눈동자의 사람들이 떼로 주인공을 쳐다보는 장면을 적절한 음악과 이용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도 합니다. 몇몇 사람들의 행동이나 손을 들고 "사랑 Love!" 이라고 소리내는 동작이 좀 우습게 희화화된 것도 분명히 이런 몽환적인 분위기에 일조합니다. 가장 상징적인 부분은 이 시절 60년대 문화의 한 상징처럼, 누워 있는 여자들이 남자가 헤엄치고 있는 병에 연결해 파이프로 연결해 피우는 물담배 시샤의 거대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연출들은 주인공의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가 결코 모범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방향으로 해괴하기 때문에 인물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 외에 "바바렐라"에서 결코 간과하면 안될만한 부분은 이 영화의 좋은 음악입니다. 처음 시작과 함께 들려오는 "바바렐라" 주제가는 톰 존스가 라스베가스 무대에서 공연하기 좋은 노래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짧고 우스꽝스럽게 넘어가는 "Drag Me Down" 같은 곡도 만약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록큰롤의 명수가 불렀다면 꽤 인기를 끌만한 곡입니다. 취한듯한 분위기와 꿈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신비로운 음악도 잘 구성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영화의 밝은 느낌과 신비스러운 어두운 느낌을 60년대 록큰롤의 한 양상으로 잘 포착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시샤 피우기)

멀고 먼 세계의 외딴 행성을 헤메는 일탈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끈적끈적한 농담에 섞여서 나름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뮤직비디오 세트로도 부족함이 없는 세트와 다양한 치장들은 보기 즐겁습니다. 그러면서도 분위기는 가볍고 경쾌하고, 아니타 팔렌베르그와 존 필립 로는 잘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으며, 제인 폰다는 아름답습니다. 농담들은 심하게 웃기는 것은 없는 편입니다만, 코메디 연기들은 성실하고, 단역과 조연들의 연기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바바렐라와 그녀의 시선을 비추는데 집중하고 있고, 그래서 막판에 갑자기 양전자 대포를 쏘아대면서 난리와 파국이 벌어지는 장면의 연출이 아주아주 누추하다는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점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와닿지 않습니다. 괜히 서사시 느낌을 너무 넣으려고 했던 "플래시 고든"보다 "바바렐라"는 낫습니다. "다세포 소녀"는 음악 사용에는 실패하면서도 현실 비판에 대한 목표가 너무 높고,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어우르려다가 헛점을 많이 드러냈습니다. "바바렐라"의 인기와 가치는 그런 다른 영화들과 비교 대조에서 두드러지리라 생각합니다.


(우주선에서 내리는 바바렐라)

그 밖에...

십 몇년 쯤 전에 NHK BS2 였던가, 외국의 어느 위성 방송 채널에서 우연히 본 것이 처음으로 본 것이었습니다. 그냥 추레한 특수효과의 고전 SF겠지 싶어서 봤다가, 나름대로 무척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고, 어쩌다가 마음속에 그 인상들이 한동안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지금 따져보니, 제가 DVD 발매 소식을 듣고 기다렸다가 나오자마자 사들인 유일무이한 DVD가 "바바렐라"입니다. 뭐 그 정도로 좋은 영화라고는 결코 자신있게 주장할 수는 없는 영화고, 많이 좋아하는 영화도 아닙니다만, 꼽아보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만, DVD는 뒤표지의 설명부터 맞춤법도 틀리고 내용도 이상한데다가, 안에 깔려 있는 한글 자막도 꽤나 엉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DVD의 제목은 "바바렐라"인데 자막에서는 "바브렐라"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성의 없어 보였습니다.

이 영화가 이후 일부 록 밴드들에게 미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글리터 록 밴드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고, 듀란듀란, 프린스와 함께 카일리 미노그, 자미로 콰이도 이 영화를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핑 교수로 나오는 사람이 한 시절을 풍미한 인기 프랑스 판토마임 배우 마르셀 마르소입니다.

감독을 맡은 로저 바딤은 이 영화를 찍고 상영하는 동안 아홉살 연하, 제인 폰다의 남편이었습니다.

프랑스판 만화에 원작을 각색해 만든 영화입니다. 내용과 중심 줄거리의 분위기를 옮긴 것은 원작을 잘 따온 부분입니다. 그러나 또한 음악, 미술 표현과 그 어울림의 영화의 공입니다. 만화를 여행가서 몇 편 본 것 밖에 없어서 믿을만한 생각은 아닙니다만, 저는 만화보다는 영화가 훨씬 낫게 느꼈습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배트맨 영화판 (배트맨 66, Batman: The Movie, 1966) 2007-09-30 11:51:43 #

    ... 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만화 연출의 표현력을 한껏 발휘하는 애니매이션 들이나, 어림없는 내용 속에서도 기묘한 세계와 화려한 색채를 보여준 " 바바렐라 http://gerecter.egloos.com/2955449 ", "탱크 걸" 같은 영화들과 견주어 보면, 이 영화가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길이 보이는 듯 합니다. (펭귄맨의 잠수함) ... more

덧글

  • 잠본이 2007/01/24 11:04 # 답글

    명작이나 걸작이라기보단 괴작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묘한 매력을 풍기는 영화입니다.
    (어릴때 일본 책을 그대로 베낀 능력개발의 SF영화 백과류 등에서 이런게 있다 하고 나온걸 봐서 존재는 알았지만 저도 실제로 본 건 BS2 방영시였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니 생각난 건데, CLAMP가 '이상한 나라의 미유키'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미유키가 TV로 바바렐라를 보다가 그 비슷한 나라로 빨려들어가 고생하는 얘기를 그려냈죠. 처음 봤을 때는 참 깨는 생각이다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구조가 비슷해서 끼워맞추기도 수월했던 듯.;;;

    두번째 사진의 의상은 나중에 더티페어의 의상에 영감을 준 바로 그거로군요.(원작소설 삽화에서만 나오고 애니화되면서 딴 옷으로 바뀌지만)
  • 게렉터 2007/01/29 10:53 # 답글

    잠본이/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이상한 나라의 미유키"가 "바바렐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화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안 본 것이라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좋은 정보 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러스메이어 2007/05/22 14:46 # 삭제 답글

    지구상 최고 섹시 무비 '바바렐라'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도 최근에 국내에서 발매되었답니다.
    스틸컷이나 포스터 사진등 빵빵한 책자와 함께요.
  • 게렉터 2007/05/27 16:04 # 답글

    러스메이어/ "러스메이어"란 이름이 참 묘합니다.
  • dd 2010/05/13 20:28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ㅎ
  • 게렉터 2010/07/25 23:35 #

    감사합니다.
  • 원한의 거리 2010/07/15 13:50 # 삭제 답글

    어찌 보면 누추하고 자꾸 제인 폰다의 옷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찣고 조각내겨 벗겨내는 데에만 열중하는 추악한 영화같기도 하지만 왠지 60년대 히피스러운 분위기도 제대로 들어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참 이중적인데....

    아니타 팔렌베르그가 연기한 블랙퀸은 등장이 참 멋져서 기대했는데 생각만큼의 활약은 없어서 조금 섭섭한 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흐느적거리면서도 카리스마있는 분위기는 정말 잊혀지질 않는군요. 바바레라라을 향해 손짓하며 "Hello, Pretty-Pretty"이라며 인사하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는 광경이었습니다.
  • 게렉터 2010/07/25 23:36 #

    저는 NHK 위성방송에서 처음 보고 처음부터 정말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