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아내 Dream Wife 영화

"꿈의 아내"는 약혼자가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심통이난 남자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열받아서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여자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새 약혼자가 부키스탄이라는 나라의 공주이기 때문에, 외교적인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보좌역이 선임됩니다. 갈등은 예전의 약혼자가 두 사람의 보좌역을 맡게 되면서 더 커져버립니다.


(외교 전문가와, 공주와, 홧김에 결혼하려는 사람)

제2차 세계 대전이 세상을 바꿔 놓은 것 중에 대형 항공기, 핵무기, 전자기술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지역적으로 대상을 좁혀서 본다면, 유럽에서는 평화에 대한 열망이 자리잡았다는 이야기를 할수도 있을 것이고, 중국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성장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일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만, 미국이 겪은 일 중에서는 여성 구직의 폭발적인 확대를 주요한 문화 변혁으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953년작 "꿈의 아내"의 구상 자체는 바로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로 풀어 내려는 것입니다. 영화 속의 대사 대로라면 "자유를 얻은" 미국의 여자들과 아직 그러한 변화를 겪지 않은 부키스탄의 공주를 대비시키고,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역할 변화에서 온 낯선 느낌과 "옛날이 좋았지" 하는 투덜거림을 과장해서 웃음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친 혈기에 끓어오르는 연설과 투철함을 보여주면서 웃기려고 하기도 합니다.


(낭만적인 저녁을 꿈꾸고 있는 주인공)

그렇지만, 막상 "꿈의 아내" 영화를 보면, 그러한 사회적 변화의 양상에 대한 내용이 심각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남녀의 성역할이나 여성과 직업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거나 반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여자 친구가 자기에게 너무 소홀한 것 같으니까 울적해 하면서 칭얼내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꿈의 아내"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만, 결국 중심갈등은 좀 썰렁한 한 번 튕겨 보는 사랑의 줄다리기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의 줄다리기 이야기는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는가 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중간 부분은 거의 부키스탄에서 온 말도 안 통하는 공주를 두고 주인공이 다양한 애정행각에 빠져보려는 시도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의 상당한 시간은 사랑의 줄다리기와도 상관 없고, 양성 평등에 관한 사회적 변화에도 별 상관 없이, 그냥 이상한 중세풍의 나라에서 온 부키스탄 사람이 미국의 소위 "선진 문명"과 갈등을 빚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자동 판매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더듬더듬 단어를 발음하는 공주를 귀여운 어린애 놀리듯 볼거리로 삼는 겁니다.


(부키스탄 왕궁)

부키스탄 공주를 현실감 없는 무슨 램프에서 나온 지니처럼 취급해서 생동감이 없다는 것도 문제고, 제3세계 국가를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세계로만 너무 몰아 붙이는 것도 현실적이고 공감가는 인물을 만드는데 실패하는 요소입니다. 부키스탄 공주는 미국에서 온 남자 주인공에게 한 눈에 반해 막바로 결혼을 결심하는 인물이고, 그러면서 엉망인 영어로 중얼중얼하면서 미국인들이 설파하는 가치관에 손쉽게 훈련되고 세뇌되는 그냥 힘없고 멍청한 사람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주인공을 졸졸 쫓아다니는 부키스탄 공주 일행을 남자주인공을 졸졸 쫓아다니는 강아지와 비슷하다고 묘사해 보여주는 장면까지 있습니다.

이런 단순 무쌍한 인물을 이용해도, 그냥 흥겨운 아라비안 나이트 풍의 웃긴 대소동으로 꾸미고 넘어가면 나름대로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갈등의 바탕을 두는 것은 그래도 여성관에 대한 생각과 40, 50년대 문화 변화에 대한, 비교적 사회적인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직업과 갈등을 심각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 제3세계의 석유와 미국 정부 - 기업과의 관계, 외교 전략을 다루고 있는 나름대로 아주 정치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까지 합니다. 두 가지 요소가 서로를 방해해서 자꾸만 한쪽이 어설픈 가짜 이야기인듯 보이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까닭은 두 가지 장점 때문입니다.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남자 주인공을 맡은 캐리 그란트의 활약입니다.


(50년대의 예의는 엘레베이터에 여자가 있으면 남자는 모자를 벗는 것)

캐리 그란트의 인물은 애정관계에 대해서 아무 묘사도 없이 그냥 영화 상영 시간에 따라, "지금은 좋아할 시간, 이제부터는 싫어할 시간"으로 뒤바뀌는 아주 뚝뚝 끊어지는 막만든 인물 비슷합니다. 유능하고 말솜씨 좋은 여유만만한 "캐리 그란트" 스러운 사업가로 등장했지만, 막상 영화 속 내내 하는 행동이라고는 무슨 어린애 소꿉장난 같은 이상한 장난같은 모험과 질투가 전부 입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캐리 그란트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와 다양한 표정 변화들은 무척 성의 있고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으며, 몇몇 연기들은 이 재미 없는 인물의 한계를 뚫고 꽤 재미있기도 합니다. 캐리 그란트가 바쁜 약혼자와 잠시간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낭만적인 저녁을 준비하며 꿈에 부푸는 장면과 실망하는 장면은 그런 연기를 잘 살려주는 연출로 되어 있습니다.

막판 쯤에 나오는 격투 난장판 장면에서는 옛 슬랩스틱 코메디의 영감을 받아서, 캐리 그란트가 무술만 안한다 뿐인지 정말 성룡 영화에 도전하려는 듯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결말 부분에서 자기 욕을 신나게 하는 것을 들으며 오히려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 역설적인 설정은, 잔재미가 있는 각본에 캐리 그란트의 표정 연기가 어울어져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장면입니다. 한편 여자 주인공을 맡은 데보라 커는 흑백화면에서 더 아름답게 보이고, 입맞춤의 달콤함을 지진을 느끼는 것으로 표현하는 부분등등에서는 아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싸움)

또다른 이 영화의 볼만한 점은 그래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유행을 잘 걸고 넘어가는 영화의 소재입니다. 제대로 연결은 안되어 있어서 역효과가 크고, 너무나 단순무쌍한 묘사로 편협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은 한계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권 신장, 석유 문제,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은 미국 등등의 시사적인 문제를 당시의 시사적인 시각으로 짚어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이야기 전체에 색깔을 넣어주고 있고 이야기 거리를 두텁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점은 19세기 제국주의의 말미와 변천을 깔고 있는 "게임의 여왕" 같은 이야기나, 20세기 중반 코메디 산업의 정착을 다루는 "거울속의 이방인" 같은 이야기와 비슷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민감하고 특이한 주제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지 못할 바에야 이렇게 큰 욕심없이 만들어 버린 것이 차라리 나아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억지로 "한반도"스러운 주장을 강제로 집어 넣으면, 뭔가 거창하고 흥분만 넘칠 뿐, 아무 이야기거리도 안되는 이야기를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바에야, "꿈의 아내" 처럼 그냥 포기하고 만들기 편한 손쉬운 고정관념에서 헤메는 이야기로 대강 꾸려 만든 것이 그나마 주제와 소재를 짚고 넘어가면서 배우들의 개인기라도 잘 펼쳐지는 이야기를 만드는 방편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데보라 커와 캐리 그란트)


그 밖에...

미국이 제3세계 국가를 휩쓸고 다니면서 어떻게든 자원확보와 영향력 확대를 위해 힘쓰던 시기에 나온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가상의 나라 "부키스탄"이 해괴한 곳으로 왜곡되어 있기는 해도 나름대로 멋진 모습도 있고 그래도 전통과 권위가 있는 곳으로 나옵니다. 그에 비해, 이 영화가 나온 지 53년 뒤에 한국에서 나온, 머스트 해브 로 시작하는 이상한 광고는, 실제로 존재하는 친숙한 이웃나라들을 싸잡아 무슨 추레함의 화신으로 생각하며 불태운 바 있습니다.

시드니 셀던이 방송, 영화 작가로 활약하던 젊은 시절에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이국적인 여자 배역을 설정하고, 멀쩡하게 생겼지만 약간 한심한 남자 주인공과 아주 엄청난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분위기는 나중에 시드니 셀던이 만드는 TV쇼 "내 사랑 지니 I Dream Of Jeannie"와 통하는 듯 하기도 합니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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