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늪 The Edge of Hell (Rock 'n' Roll Nightmare) 영화

시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저의 대학 시절 이었습니다. 계절은 생동하는 봄이었고, 따스한 봄바람과 생동감 가득한 초록색이 세상을 들뜨게 하던 어느 싱그러운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우연히 한국 중부지방의 한 도시의 기차역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침 저는 그런 역전에 생기기 마련인 시장통의 "비디오 가게 문닫을 때 생기는 중고 비디오 쌓아 놓고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때만해도 DVD가 지금보다 널리퍼지지 않은 때요, 외국에서 영상물을 주문해서 사오는 것도 낯선 때여서, 저는 뭔가 재미난 즐길 거리를 발견할까 싶어 한 번 흘깃 쌓여 있는 비디오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마침, 제일 앞 줄. 제일 앞에 널브러져 있던 비디오 테입이 있었습니다. 뭔가 혐오스런 악마의 그림을 그려 놓았고, "충격, 공포" 등등의 문구가 빨간 글씨로 마구 새겨져 있던 것이었습니다만, 한눈에 어디 다른데 쓰였던 그림을 마구잡이로 대강 가져와 갖다 붙인 것임을 뻔히 알 수 있는 매우 조잡한 표지였습니다. 비디오 테입의 영상을 헛되이 표현하는 표지의 수많은 느낌표 !!!! 들과 "문제작!!" "화제작!!" 등의 어구에 저는, 경쾌한 웃음과 싱거운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 이거 얼마입니까?"

저는 가게 안쪽을 향해 공손히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마치, "그렘린" 영화에 나오는 모과이 파는 중국 상인을 연상케하는 기이한 분위기의 늙은 아줌마가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비디오 테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모르겄네... 얼마 하면 될랑가..."

저는 만원짜리 지폐와 오천원 짜리 지폐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3천원에서 4천원 정도의 가격이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고개를 돌리시며,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음성을 실어 말씀하셨습니다.

"오백원만 주시고 가져 가셔요."

그리하여, 저는 문제의 비디오 테입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저녁에 잡혀 있는 약속을 기다리며 빈 시간을 때워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침 아침에 산 비디오 테입이 생각나, 이걸 보기 위해 비디오가 있는 학교의 어학실습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무 "어학 자료"를 보겠다고 체크 해 놓고 학생증 맡기고 들어가서는, 저는 어학 실습실의 십 몇 인치 쯤 되는 작은 TV를 통해 비디오 테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화, "지옥의 늪 (The Edge of Hell, Rock N' Roll Nightmare)" 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준 엄청난 충격은 참으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지금까지 돈 주고 산 모든 비디오테입, DVD 중에서 단연 최악의 저열한 졸작 중의 졸작, 트래쉬 중의 트래쉬 무비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지옥의 늪의 최신판 표지)

"지옥의 늪"과 "긴급조치 19호"와의 차이에 비하면, "긴급조치 19호"와 "살인의 추억"은 그냥 동급의 평범한 영화일 뿐입니다. "지옥의 늪"과 "갈갈이 패밀리와 흡혈귀 드라큐라"를 비교하면, "갈갈이 패밀리와 흡혈귀 드라큐라"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시민 케인"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거의 신비로울 정도로 너무나 끝없이 못만든 전율의 트래쉬 무비. 어떠한 종류의 아름다움도, 조금의 이야기도, 한톨의 가치도 발견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허무맹랑한 영화. 그 무한히 작렬하는 저열함의 눈부신 힘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신화적인 체험까지 하게 해주는 눈물과 허탈함의 영원한 일대기적 도전인 듯한 영화. 그리하여 가히 장승업이 지붕위에서 술먹다가 호프집에서 공짜로 주는 뻥튀기 안주를 먹고 싶어하는 기분에 비할법한 영화가 바로, 이 "지옥의 늪"이었던 것입니다.


(영화 속 록밴드 멤버들 모습)

그리하여 지금부터, 지금까지 제가 본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여,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지금까지 태어나서 제가 본 모든 영화의 반전에서 받은 충격을 다 합한 강도의 충격보다 더 강한 충격을 한 방에 준 충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나, "사실은 모든 것이 연극이었다" 정도의 반전은, 눈 앞까지 몰려오는 카트리나 허리케인 앞에서 나비가 나풀나풀 날개짓 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옥의 늪"은 어느 평화로운 가족을 보여 주며 시작합니다. 시작 장면을 보게 되면, 이 영화의 화질과 촬영이 안 좋고, 배우들이 연기도 못하는구나, 하는 사실을 2,3초만에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준비하던 가정의 어머니는 갑자기 오븐이 괴물로 변하는 바람에 괴물에게 잡혀 먹어 버립니다!

엄청난 충격을 줄만한 장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오븐 변신 괴물이 참으로 누추하게 대강 만들어져 있는데다가, 배경 음악, 소리 등등도 무척 조잡해서 거의 감흥이 없습니다. 그나마 그 누추한 연출과 꾸밈새 조차도 다른 영화에서 대강 베껴온 기색이 역력하여 울적한 느낌마저 줍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지옥의 늪"이 경지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문제는 바로 이 잡스러운 시작장면이,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 비해서 상대도 안될 정도로 "잘 만든" 이 영화 최고 수준의 질을 자랑하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지옥의 늪"은 단지 못만든 영화일 뿐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영웅본색"보고 감동받은 중학생 두 명이 BB탄 총과 형님 레인 코트를 빌려서 핸드폰 카메라로 "영웅본색 - 코리안 스토리" 라는 6분짜리 you tube 용 영화를 만들었다고 칩시다. 이런 영화는 못만들었지만, 그냥 못만들었네, 하면서 나름대로 웃긴점이나 재밌는 생각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옥의 늪"은 처음 부터 못만든 느낌을 준 뒤에, 기묘한 지루함과 약간은 재미있어 질 것 같은 기대감을 살짝살짝 낚시질 하듯 내밉니다. 그렇지만, 그런 인내를 과격하게 뭉게 버리면서, 점점 상상을 깨고 못 만들어 버립니다. 영화 상영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대체 이게 뭔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경악과 추레함에 대한 충격을 단계적으로 주면서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게 합니다. 그러한 시공을 초월하는 점층법을 통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저열하다는 감흥을 전해주는 기막히게 해괴한 위력이, 바로 이 영화 "지옥의 늪"에는 담겨 있습니다.


(진정한 주인공 등장)

시간은 흘러흘러 10년 후. 이 영화를 언급하는 많은 인터넷의 글들이 지적하듯이, 말만 10년 후지, 집은 하나도 안 바뀌어 있습니다. 자동차는 똑같은 곳에 주차되어 있고, 잔디는 똑 같이 깎여 있습니다. 어쨌거나 10년후랍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일단의 록밴드 연주자들이 떼거리로 나타납니다. 연기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드라이아이스나 연막탄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라고 대답할법한 이 사람들은, 무명 록밴드인데, 연습할 곳을 찾아 여기까지 흘러들어 온 것입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깁니다. 말이 되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싼 집에 가난한 사람들이 입주해 놓고 월척 낚았다고 좋아한다. 하지만 사실, 그 집에는 악마나 귀신이 깃들어 있는 무시무시한 저주가 있으니... 이런 전형적인 무서운 이야기 설정이, 연습 장소를 구하는 록 밴드들에게 어울어지다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법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느새 코메디계에서 위상을 정립한 정 선생의 옛 명언을 인용하면, 만만의 콩떡입니다. 이 록밴드가 이 집에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눈 하나 달린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서 기분나쁘게 지켜보면서 희생물을 노리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괴물은 여러분이 지금 신고 있던 양말을 벗은 뒤에 양말을 손에 씌우고, 거기다가 매직펜으로 눈을 그려 넣으면 바로 만들 수 있는 품질입니다. 정말 참 조잡합니다.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이 "지옥의 늪"의 기막힌 점은 그 절묘한 품질 관리에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말씀드린 곧이 곧대로, 정말로 양말에 눈 그려 넣은 것으로 괴물을 표현 했다면, "괴물"이 아니라, 그냥 기괴한 "양말"로 보일 겁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겁니다. 저절로 움직이는 마네킹이나 사람이 없는데도 움직이는 구두, 옷 같은 것이 괴이 하듯이, 그냥 양말이 악마의 장난이랍시고 돌아다니면 저예산일지언정 뭔가 이야기가 될 법할 겁니다. 하다못해 뭔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의 상징적인 느낌이라도 날것입니다. 하지만, "지옥의 늪"은 이 양말에 뭔가 나름대로 페인트 칠을 하고, 조금씩 장식을 해서, 참 기막히게 오직 "못 만들었다" 라는 생각만 들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못만들어서 웃기고 튀어 보려고 이렇게 했구나"라는 생각이 안들고, 오직 순수하게 "못만들었구나" 하는 느낌만 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눈 하나 달린 괴물을 못 만들었다는 생각에, 관객이 쓸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 괴물이 나타날 때 마다 그저 실소를 머금을 뿐, 더이상 추함을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옥의 늪"은 그렇게 만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이 눈 하나 달린 양말 괴물이, 갑자기 담배를 입에 물더니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으며 히죽거리고 몸을 떨며 웃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 어떤 각오를 깨는 듯한 저열함의 돌파. 더 못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라는 각오를 층층이 깨뜨리는 파괴적인 유치함. 다리에 힘이 빠질 정도 입니다.

어쨌거나, 귀신들린 집에 희생자들도 들어왔고 괴물도 나왔습니다. 한 사람씩 죽어 나간다면 나름대로 "13일의 금요일 42탄" 같은 잡다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럭저럭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옥의 늪"은 그런 평범하고 최소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길을 걷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갈 때, 경부 고속도로로 가지 않습니다. 대신에,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서 임진강을 건너고 휴전선을 돌파해 북한으로 잠입한 뒤, 삭풍이 몰아치는 시베리아를 돌파해 북극을 지나고 캐나다와 미국의 대평원을 횡단한 후에는 아마존의 정글과 볼리비아의 내란 지대를 지나며, 결국 남극 대륙의 끝없는 빙원과 호주의 끝없는 사막, 거대한 태평양을 지나서 지구를 반대로 한 바퀴 돌아 부산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죽는 배역)

이제부터, "지옥의 늪"은 갑자기, 아무 상관도 없는 에로 장면을 난데없이 계속 보여 줍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하다못해 "찍히면 죽는다"처럼 어떤 성적 매력이 자극적인 긴장을 유지하고 그것이 호기심을 이끌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유지하는 형태가 아닙니다. 그냥 뜬금없습니다. 이런식으로 나가서 좀 황당하고 지겹다 싶으면 관객은 마음을 고쳐 먹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마음을 비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포털 사이트 "포토 뉴스"에 떠오른 자극적인 사진을 보는 마음으로, 그 에로 장면 자체를 즐기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옥의 늪"은 그 바닥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아무 생각없이 여자 등장 인물이 마녀로 변신하는 장면이라든가, 남자 등장 인물의 배를 뚫고 에일리언 튀어 나오듯 괴물이 나와 사람죽이는 장면이 끼어 듭니다. 깜짝 놀라는 충격이라도 있을듯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희한한 리듬으로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또 좀 정성들여서 마녀 분장, 배에서 튀어나온 에일리언을 튀어나오는 특수효과를 만들었다는 것이 아까운지, 길고 긴 시간 오랫동안 천천히 보여주는 통에 짜증과 번뇌만 더 커질 뿐입니다.

마침내.

마침내.

이 지루한 저열함의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밴드 멤버들이 죽게 됩니다. 이제야 영화가 끝나기 직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의 정석처럼, 주인공과 괴물은 일대일 대결을 합니다. 괴물의 모양새가 얼마나 초라한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을 곁들일 이유조차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괴물과 주인공만 남음 막판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괴물이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지 자신의 한맺힌 사연을 이야기해주지 않겠습니까. 일제시대 때 일본군에게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라든지, 아니면 시어머니에게 살해 당한 가련한 며느리의 한 맺힌 귀신이라든지, 뭐라도 사연이 있고, 그러면 최소한 잠깐의 극적인 맛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 일행들)

우리의 괴물은 말합니다.

"핫핫핫! 나는 바로 사탄이었다!"

문제의 사연인 즉슨, 바로 괴물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아무 사연이 없었으면, 이유없이 엄습해오는 수수께끼 같은 순수한 악마라는 느낌이라도 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굳이 굳이 괴물이 직접 등장해서 자기 입으로, 그것도 나름대로 무서운 목소리를 흉내내고 기이한 효과를 담아 자기가 "사탄"이라고 소개를 하는 겁니다.

주인공은 사탄이 자신의 밴드 멤버들을 몰살 시켰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두려워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에 펑하고 연기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옥의 늪" 최고의 명장면,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로 주인공이 외칩니다.


(악~ 너무 무서워!)

"나는 사실 안드로메다에서 왔다!"

그리고, 이 록밴드 리더는 갑자기 히맨 과 같은 중세 전사의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아- 아-

"네 놈을 찾아 우주를 헤메며 긴 세월을 보내왔다. 정체를 숨기고 다닌 끝에 드디어 지구에서 네 놈을 만났구나. 선과 악의 대결을 이제 끝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안드로메다에서 온 우주 전사와 사탄이 갑자기 치고 받고 싸우는 겁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쿼바디스 도미네.

그냥 허무한 사탄일 뿐, 아무 사연도 없는 것이었군. 하고 실망할 순간에 갑자기, 안드로메다를 들먹이며 경악의 도를 뛰어넘고 새로운 차원으로 통하는 폭발적인 실망감을 주는 이 "지옥의 늪"의 파괴적인 강렬함. 떨리는 주먹. 벅차오르는 심장. 흐르는 눈물. 이것이 바로 "지옥의 늪"인 것입니다.

황당함과 충격이 가실새라, 사탄과 록밴드 리더는 고무로 만든 방석 같은 것을 초능력 무기랍시고 던지며 싸우고, 뭐가 뭔지 꿈도 꿀 수 없는 희한한 형태의 장풍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사탄이 퍽 하고 죽습니다. 이렇게 충격적인 반전인 탓에, 나름대로 영화가 해괴한 맛이라도 느낄 수 있을 성 싶으면, 갑자기 의미없이 나래이션과 정지 영상으로 이루어진 지루한 에필로그가 뒤이어져서 겨자씨만한 영화의 가치마저 암흑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비디오의 보급 때문에, 비디오 테입 대여점을 통해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VOD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지옥의 늪"은 매우 낮은 질의 영화를 만들어도 어떻게든 비디오 테입으로 유통시킬 수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캐나다에서 후다닥 만들어서 미국 시장까지 함께 포괄하며 닥치는대로 뿌리면, 옆에 꽂혀 있는 비디오 테입 집어가려다가 잘못 집어간 사람들의 경우만 모아도 대강 제작비는 회수 될거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에는 80년대에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문화를 중심으로 급속히 유행한 바 있는 "록 음악은 악마의 노래다"라는 주장이나, 데스메탈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소재에 비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물론 록 음악에서 유행한, 환상물, 괴기물, SF물과의 연관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얼마나 영화를 못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인류학적이고 과학적이고 고고학적인 자료입니다.

이 영화에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Thor!" 라는 사람 (이름 꼬락서니를 보십시오.) 은, 캐나다의 무명 록 가수로, 엑스트라 단역 배우 부터, 스트립 댄서까지 온갖 잡다한 일을 닥치는 대로 다하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지옥의 늪 Rock N' Roll Nightmare"의 제작에도 관여했고, 이 영화 직전에는 "좀비 나이트메어 Zombie Nightmare"라는 못지않은 대졸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좀비 나이트메어"는 "괴기과학극장 3000 Mistery Science Theater 3000"에 소개되고, 티아 커리 (Tia Carrere 티아 카레레)가 출연한 영화이기도해서 훨씬 더 알려졌습니다.

"지옥의 늪"을 본 사람들 중에는 이 영화의 끝없는 저열함을 웃음거리로 삼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미국과 캐나다의 록밴드들 중에는 유머 감각을 발휘해서 자기 밴드 이름을 "Rock N' Roll Nightmare"라고 붙이거나, 자기가 만든 노래 제목을 "Rock N' Roll Nightmare"라고 붙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Thor!" 도 "Thor!"라는 이름으로, 이 "지옥의 늪"의 영감을 이어가는 메탈-우주 전자-악마-환상 분위기의 신화적인 앨범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막힌 사실은, 이 영화가 최근에 DVD로 다시 나왔는데, 비슷한 시대에 나온 다른 영화들과 비견해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영상과 음향 화질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한국 영화의 잊혀진 명작들이나, 필름 보관이 잘 안되어 있어서 화질이 나쁜 명작 영화들을 저 지옥의 늪 가장 깊숙한 곳에서 비웃듯이 화질과 음향이 정말 좋습니다. "지옥의 늪"은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 영화 밖에서도 카뮈의 소설을 능가하는 부조리함으로 자신의 신화적인 저열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

Thor! 관련 웹사이트
http://www.thorcentral.com/mp_redesign/html/discography.html


그 밖에....

그때까지 제가 본 가장 못 만든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다보니, 제가 돈 안주고 보게 된 영화들 중에는 더한 것들도 꽤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그 아름다운 봄날 오후. 저는 나오는 길에 어학 실습실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바로 비디오 테입을 버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호기심이나 옛생각이 날 때 볼 기회가 있을 듯 하여 비디오 테입을 버린 것이 아깝기도 합니다. 특히 이런 영화는 이런 낡은 비디오로 보는 것이 정말 제맛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지옥의 늪"은 영화를 다 본 뒤에 쓰레기통에 비디오 테입을 집어 던지는 그 짜릿한 즐거움이 정말 정말 큰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 추가정보 - 좀 더 살표 보니, 이 Thor! 라는 양반은 헤비메탈 계에서는 나름대로 공연도 좀 하고, 음반도 꽤 낸, 활동 다운 활동을 한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미스터 캐나다와 미스터 아메리카 를 동시에 획득한 첫 보디빌더라고 자랑하는 기록도 꽤 보이고, 차력 쇼같은 것을 잘한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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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배트맨 영화판 (배트맨 66, Batman: The Movie, 1966) 2007-09-30 11:5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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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cdc 2007/02/07 18:16 # 답글

    신화적인 저열함...저도 맛보고 싶어지는군요;; 무섭지만요!;
  • FAZZ 2007/02/07 18:50 # 답글

    옆에 꽂혀 있는 비디오 테입 집어가려다가 잘못 집어간 사람들의 경우만 모아도 대강 제작비는 회수 될거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바다건너 저런일도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정도면 허허허
  • marlowe 2007/02/08 14:48 # 답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탐 시즈모어가 출연한 [Zyzzyx Rd.]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작년에 미국내 개봉영화 중 최악의 흥행성적을 거두었습니다.
    6일 동안 단관 개봉해서 번 수익이 총 30달러. (하루에 한 명 정도 들어온 셈이군요.)
    [Zyzzyx Rd.]의 IMDB 평점이 5.1/10인 데, 소개하신 [Rock 'n' Roll Nightmare]는 3.0/10이네요.
    이 영화가 영화관 개봉을 했더라면, 어떤 성적이 나올까 궁금해집니다.
  • 이준님 2007/02/08 23:40 # 답글

    안녕하세요. 링크 타고 왔습니다. 링크 신고합니다
  • 게렉터 2007/02/09 15:16 # 답글

    dcdc/ 정 호기심이 생기신다면 유 튜브에서 사람들이 잘라 올린 충격 영상을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FAZZ/ 우리나라에서는 스크린쿼터 때우기 영화라는 특이한 형태가 맞먹을만합니다.

    marlowe/ 지직스 로드라... 제목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분위기를 잡는 듯 합니다.

    이준님/ 반갑습니다. 이 블로그는 링크는 무제한 허용하고 있습니다.
  • fancol9 2007/02/23 17:40 # 삭제 답글

    안년하세요^^. 우뢰매가 절 여기로 데려다 줬네요.

    참 오랫만에 글 읽다 낄낄거려 봅니다.

    재밌는 블로그를 찾은 것 같습니다. 다른 글들도 자근자근 읽어봐야 겠네요. :)
  • 게렉터 2007/02/24 16:08 # 답글

    fancol9/ 감사합니다. 사실 별로 웃긴 글이 많은 곳은 아닙니다만, 가끔 코메디 영화 이야기는 각별히 잘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반 2008/06/12 11:00 # 답글

    조용해야할 일터에서 몰래 읽다가 저두 모르게 "푸흐흡" 했습니다.

    게렉터님은 영화배우백윤식 같이 정색하고 웃음을 주는 글재주 또한 탁월하시군요^^
  • 게렉터 2008/06/16 08:45 # 답글

    이반/ 이 영화 보다보면, 정말 허탈한 웃음 안 흘릴 수가 없습니다.
  • 먹통XKim 2013/10/19 12:12 # 답글

    난 이건 재미있게 봐서리 비디오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표지도 올렸는데

    http://blog.naver.com/muktongx/130178188374
    낚시질?
  • 게렉터 2013/11/03 22:21 #

    이걸 황당하게 웃긴 영화일거라고 생각하고 보면 막판에 막나가 미쳐 돌아가는 부분은 그나마 못만들어서 웃겨 재밌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봐도 그전까지는 정말 지루하고, 얼핏봐서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어렵고해서, 저는 여전히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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