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금검 龍門金劍 The Golden Sword 영화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날. 갑자기 어느 저택 앞에 복면을 쓴 수수께끼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말도 없이 갑자기 이상한 물건을 집 주인에게 전해주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물건인지는 궁금하게하면서 안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집주인은 이 사람들을 따라 집을 나가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이후 10년간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온갖 모험을 벌이게 됩니다.


(정패패)

이것이 "용문금검"의 도입부입니다. 이 "온갖 모험"에 들어가 있는 모험들은 지금의 중국 북부 지방과 서부 지방의 험난한 곳들을 돌아다니고, 도둑으로 몰리고, 의외의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납치당하고, 탈출하고, 강제 결혼에 휘말리고, 다시 납치 당하고, 미지의 싸움 잘하는 아마조네스들의 성에 오게 되고 등등입니다. 10년 동안 벌어지는 여러 사연들을 다루고 있으니, 갑자기 어느 밤의 수수께끼로 시작한 이야기 치고는 상당히 무리가 갈만큼 방대한 내용입니다.

적절한 방법은 10년전의 실종 사건은 "10년후" 하는 자막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그냥 의문투성이의 신비로운 도입부로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2시간도 안되는 영화면서도 이야기가 서서히 연결되는것처럼 연출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실종 사건 때문에 아버지 찾아다니는 이야기였다가, 중반에는 그것과 거의 상관 없는 그냥 떠돌이의 모험담이다가, 후반에는 갑자기 다시 실종 사건에 직결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전혀 10년 동안에 벌어진 일 같아 보이지 않고, 그냥 한 하루 이틀 내지는 일주일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섞어 보여주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이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갖은 노력을 다한 느낌이 거의 나지가 않습니다.


(정패패)

어떻게 보면 10년간의 멀고먼 모험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었던 숙명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장대한 자연 경관을 가진 국경지방 일대를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홍콩 영화입니다. 끝없는 사막이나, 푸르른 초원, 삭풍이 몰아치는 눈 덮힌 벌판 같은 것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면을 과감하게도 그냥 세트 촬영을 해버렸습니다. 말인 즉슨 바닥에다 가짜눈 깔아 놓고, 벽에다가 눈쌓인 산 그림 그려 놓은다음에, 엄청나게 추운 지방의 산속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트 촬영이라도 신기한 미술을 도입하거나 세트에 규모를 어느 정도 줬다면, "그레이트 레이스 The Great Race (대경주)" 같은 영화처럼 나름대로의 묘미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나마 세트도 작고 단촐합니다. 실감이 거의 나지 않고, 머나먼 지역을 떠돌아다닌다는 느낌도 잘 안납니다. 그래도 추운 산속은 좀 낫지, 사막으로 넘어가는 유목민 지역은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의 선인장 코너 보다 못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웅대한 사막)

그와중에 이 영화 최대의 문제점은 영화에서 빠르게 대충 넘어가야 할 부분과 중요하고 오래 다루어야 할 부분이 조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고 흥미로울 장면은 설렁설렁 넘어가버리고 아무 필요 없는 장면을 지루하게 오래 다루고 있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어떻게 숙명적으로 만났는가 하는 부분은 몇 프레임 되지도 않게 "어쩌다보니"하면서 넘어갑니다. 너무나 비밀스럽고 꿈속의 공간 같은 "용문궁"은 끈덕지게 안보여주다가 아무 고난도 역경도 없이 나중에 갑자기 초라한 화면으로 팍하고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반대로 집안 사람들이 "배달된 물건 보려고 걸어가는 뒷모습" 같이 아무 필요 없는 영상을 장시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남녀 주인공이 "길이 엇갈린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굳이 화면으로 알려주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말달리는 장면을 교대로 여러번씩 보여준 뒤 또 거듭 보여주면서 상당한 시간을 때우기도 합니다.

그런 결과로 "용문금검"은 결말에 이르면 덫에 걸립니다. 바로 뜬금없는 "후반 신파극"입니다. "용문금검"은 결말부분에서 왠만한 21세기 한국 트래쉬 무비 못지 않은, 급작스럽게 감동적인 희생과 눈물의 가슴아픈 사연으로 돌변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경쾌한 모험과 웃음이 들어간 흥겨운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끝날 무렵에는 갑자기 튀어나온 처음 나온 낯선 인물이, 문득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눈물겨운 이야기로 돌변합니다. 그래서 정작 대단원에서는 놀랍게도 주인공들은 나오지도 않아 버립니다. 이 부분은 꼭, 주인공 배우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영화를 다 완성 못하게 되어 아무렇게나 대강 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정패패)

다른 부분도 부분 부분 부족한 데가 많습니다. 음악은 그냥 "충격적인 장면에서 충격을 더하는 효과음"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어서 아예 없는 수준이라 논외로 할법합니다.

초반에 사람들이 잔치하는 장면을 보여주느라 잠깐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황매조 뮤지컬의 전통이 흐르면서도, 빠른 음악과 북방민족 토속적인 신나는 춤으로 되어 있기에 특이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음악과 춤이 보기 좋게 영화에 잘 어울어지도록 보여주고 있지를 못합니다. 노래와 춤도 좀 싱거운데다가 그냥 춤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번갈아가면서 무심하게 카메라로 찍어 놓은게 다 입니다. 배우들의 노력에 비해서는 꽤 아까워 보이는 장면입니다. 후반부에는 장면을 연결하기 위해 화면 확대, 축소 장면을 남발하기도 했는데, 엉뚱한 곳에 너무 자주 쓰인 것은 둘째치고 카메라의 초점을 잘 못맞추는 실수도 있습니다.

한편 가장 중요한 인물인 남자주인공을 맡은 고원은 심신과 유희열의 분위기가 감도는 사람인데, 의리있고 도전적인 배역에 잘 안맞는 것부터 문제 입니다. 게다가, 극적으로 극단적인 감동과 슬픔을 연기할 때는 정말 어색하기도 합니다. 수십년만에 부모를 만나 감동하는 장면이, 그냥 싸이월드에서 초등학교 동창 미니홈피 발견한 것 보다도 못하게 되어 있는 등 아무 감정도 없이, 정말 부실합니다.


(정패패)

싸움 장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 대부분의 싸움이 고수와 하수의 일방적인 싸움이라서 긴장감부터가 적은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고수를 멋있는 배우를 고용하려고 하다보니, 고수 역할은 무술은 잘 못하지만 허우대가 좋은 배우가 연기하고 있고, 하수 역할은 반대로 무술을 잘하는 배우가 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수의 움직임은 하수보다 더 엉성하고, 반대로 무술에는 훨씬 익숙해 보이는 사람이 눈빛 부터가 엉성한 상대배우 앞에서 쩔쩔매야 합니다. 어색해 보이고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초반의 분위기 조성 액션은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현란하게 하면서, 후반의 결정적인 결투는 실망스럽게도 몇 번 건들건들하고 말아 버립니다. 그러는 통에 극적인 면도 부족해졌습니다.




(고수의 뛰어난 실력을 표현하는 방법은 이거 하나 뿐인가. 사진출처는 gotterdammerung.org )

폭풍우 치는 밤 갑자기 나타난 수수께끼의 인물들과 실종된 사람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시작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물론 장점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10번 만에 네 놈들을 다 죽여 주겠다"라고 장담하고 격투하는 부분은 표현이 좀 부족해서 그렇지 호언장담하는 아이디어는 흥미로웠습니다. 낚시대로 칼잡이를 꼼짝못하게 하는 싸움 장면은 너무 짧아서 그렇지 소재도 재미있고 표현도 좋았습니다. 정패패가 나이 어린 개구쟁이 연기를 하는 부분은 정패패가 좀 끼워진 조연이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합니다만, 배우의 연기 도전을 즐기는 기회가 되어 줍니다. 고수와 하수의 일방적인 싸움이 이어지는 터라 긴장감은 적어도 나름대로 악당 "용문궁" 조직이 대단해 보이고 무서워 보이는 느낌은 꽤 잘 살아났습니다. 환상적인 상상력과 역사적인 현장감이 스리슬쩍 섞인 무협지 느낌은 나름대로 있습니다. 천하를 무대로 하는 드넓은 규모를 제대로 살려본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기묘한 요새인 용문궁 안쪽으로 한발짝 한발짝 기어들어가며 서서히 비밀을 밝혀내는 짧은 추리물 같은 이야기로 한다든지 했다면, 같은 내용으로 좀 더 쉽게 영화를 완성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밖에...

외팔이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 무협지/SF/환상 물 소설을 자주 쓰는 작가인 예광 원작입니다. 예광이 원작을 쓴 위슬리 시리즈의 영화판 중에 하나를 머지않아 한 번 다뤄보겠습니다.

감독을 맡은 나유는 이소룡 영화 몇 개에서 감독을 맡아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만, 60년대에는 스파이물이나 국제 범죄 이야기 같은 것에 많이 참여 했습니다. 이런 영화 중에서도 하나 꼽아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항간에 떠도는 전설 중에는, 쇼브라더스를 때려 치우고 골든하베스트로 옮긴 나유 감독이 은퇴한 정패패를 설득하려고 미국에 갔다가 실패한 뒤, 빈 손으로 올 수 없어서 신인 발굴해서 데려온 사람이 이소룡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좀 쓸데 없는 상상입니다만, 갑자기 신파극으로 바뀌는 마지막 장면에 집중하면, 제헌절날이나 개헌 논의가 돌 때 한 번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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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arlowe 2007/02/16 17:39 # 답글

    정패패의 표정이 참 다양하군요. 이소룡과의 관계로만 기억했는 데, 좋은 배우 같네요.
  • 게렉터 2007/02/17 10:32 # 답글

    "무협의 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홍콩 영화만의 무술 영화 계보 첫번째 원류라 할 수 있는 "대취협"을 비롯한 몇몇 명작들에서는 정말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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