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살 金菩薩 The Golden Buddha 영화

"금보살"은 1966년작 홍콩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영화가 막 나와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제임스 본드 영화에 영향을 받은 플린트 영화나 맷 헬름 영화 같은 것도 나오던 시기에 같이 나왔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황금으로된 작은 불상 하나가 단초가 되어,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주인공이 숨겨둔 보물을 두고 이국적인 장소를 무대로 악당들과 쫓고 쫓기는 모험을 벌입니다.

(문제의 금보살)

1960년대에 나온 고전적인 제임스 본드 아류작의 진수를 보여주는 "금보살"은 사실 줄거리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는 꽤 다릅니다. 멋있고 실력있는 특수 요원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대활약을 펼치는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금보살"의 주인공은 싱가포르로 출장가던 홍콩의 회사원이며, 악당들도 그냥 돈만 노릴 뿐 뭐 크게 세계의 운명이나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금보살"의 이야기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나 "39계단"과 같은 형태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사건에 휘말려 커다란 조직의 음모에 휩싸이고 악당들과 대결하며 낯선 곳을 두루두루 돌게 되는 추격전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금보살"은 40년대, 50년대에 명작들이 많이 나왔던 "평범한 사람이 큰 사건에 휘말리는 모험담"의 내용을, 60년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연출과 화면으로 보여주는 형태입니다. 좀 더 여유롭고 좀 더 명랑하며, 이국적인 풍광을 화사하게 담아내는가하면, 신기한 기계장치들과 아름다운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당시 유행하던 밝은 파스텔톤 색감이 가득한 깔끔한 미술로 표현됩니다. 비행기안 - 호텔 - 방콕시내 - 방콕외곽 - 기차역 - 아유타야 - 아유타야 유적지 - 지하 비밀기지 - 보물이 숨겨진 장소로 점점 깊숙하고 낯선곳으로 차근차근 배경이 이동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차례대로 점점 깊어져가는 사건에 휘말리는 구성은 흥미를 끌고, 그것을 보여주는 편안한 멋이 있는 장면들은 이목을 잡아 놓습니다.

이런저런 재미거리가 있는 가운데, 새로 영화를 보면 단박에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그 그럴듯한 음악입니다. 음악의 곡조는 물론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비롯한 다른 영화들에서 부분부분 가져온 데가 있어서 사실 막연히 좋다고 말하기에는 문제가 좀 많습니다. 인터넷의 자료들을 보면 "대탈주"의 음악을 가져온 부분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연주도 훌륭하고 곡조도 좋은 편입니다.

일관되게 관객을 끌어들이는 주제음악이 없다 뿐이지, 관악기 소리가 멋진 브로드웨이 풍의 음악부터, 현대적인 라틴음악, 재즈, 기타와 베이스 연주가 멋진 연주곡까지 다양한 배경음악들이 들려옵니다. 이런 음악들은 평범한 회사원이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는 호기심을 이어가는 이야기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국적인 곳을 유람하는 007 분위기라는 점을 확실하게 잡아 줍니다.


(이렇게 정다운 형식의 함정이라니)

다음으로 좋은 부분은 재미있는 미술적인 요소들입니다. 막판에 이르러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닥터 노" 비밀기지가 펼쳐집니다. 이야기가 차근차근 기이해져 왔기 때문에 이정도로 환상적인 공간이 등장해 주는 것도 대체로 맞아드는 느낌이 납니다. 기지는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대신에 크고 보기 좋게 되어 있고, 요란하게 "멋있는 현대 건축"이라며 선전하는 미술관이나 호텔 같이 아름답습니다. 물론, 듀나가 클리셰 사전에서 "비밀 조직의 디자이너"에서 언급한대로, 도대체 악당들이 이 지하 비밀 기지를 건설하면서 어느 업체에 이 화려한 실내장식을 맡긴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이렇게 낭만적인 여행의 형식으로 된 첩보물, 모험물에 나오는 악당만 보여줄 수 있는 즐거운 볼거리일 것입니다.


(악당 두목)

동작과 상황, 위기와 동기를 보여주는 부분에서 부분 부분 연출력이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여유로운 저녁 식사 시간의 쇼 무대에 악당과 주인공만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금불상이 놓여 있다는 점은 위기와 여유가 교차되는 장면으로 "나는 비밀을 안다"나 "영 앤 이노센트"를 연상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긴장감을 끌기 마련인 술잔에 약타서 웃으면서 먹이는 부분은, 정석대로 미리 관객들에게 술에 약을 탔다는 점을 보여줘서 "먹으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는 감상을 잘 살립니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웃음도 들어가 있고, 업치락 뒤치락 하는 느낌도 짧은 시간안에 재빨리 뒤바뀌어서 꽤 괜찮습니다.

문신 기술자에게 가서 "문신 새기는 것"으로 암호를 전달 받는 이야기 역시 기이함, 이국적인 감흥을 잘 살리는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디어의 원조는 아마도 중국 고전에서 찾아야 할 것이겠습니다만, 후에도 "최가박당" 같은 다른 영화에서 사용되어 재미거리가 된 바 있습니다. 아유타야 유적지에서 다수의 불탑들이 일열로 늘어선 모습과, 주인공을 쫓는 다수 악당의 많은 숫자가 연결되어 화면에 담기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불탑사이를 뛰어다니며 추격전을 벌이는데, 짤막해서 아쉽긴 합니다만, 이 역시 "호소자6" 등등의 훗날 많은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되기에는 모자란 면도 많이 있습니다. 일단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액션 장면입니다. 살인 시도나 죽음의 위기 같은 것이 좀 부족한 편인데 그나마 전부 다 무술 대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평범한 회사원"이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이지 않았습니까. 마땅한 무술대결을 시킬 수가 없으니, 이 영화에서는 놀랍게도 "이 회사원의 '취미'가 권법 수련이었다"라고 말로 설명하는 것으로 때워버립니다.

억지스럽기도 하거니와 평범한 회사원이 모험에 휘말리는 느낌이 많이 날아갔습니다. "이창" 같은 영화는, 잠깐 동안의 시작 장면 동안 모든 것을 탄탄히 다졌습니다. "이창"에서는 주인공이 기자이고, 모험심이 강해서 관찰력이 뛰어나고 비범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보여줍니다. 거기에 비하면 "금보살"은 꽤 모자랍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무술 장면 자체도 정말 심하게 허무맹랑하다는 것입니다. 동작 자체가 느릿느릿 장난치는 것 같습니다. 옳은 격투 장면이 전혀 없이 다들 초보 프로레슬링 견습생 후보 보다 훨씬 누추한 싸우는 시늉의 형태만 비슷하게 보여 줄 뿐입니다. 그나마 진짜로 때리지 않고 가짜로 때린다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카메라에 드러납니다. 나름대로 진지한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확 망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코 신나고 멋진 격투 장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악당두목과 부하들의 유니폼 맞춰 입기)

악당 총 두목이 아무 하는 짓이 없다는 것도 문제 입니다. 정체를 숨긴 것은 재미거리입니다. 그 부하들이 "007 골드핑거"의 옷차림 비슷해 보이는 것이 나름대로 신기하면서도 그럴듯한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정작 악당 총 두목자신은 관객들 끌어 보려는 프로레슬링 선수 같은 복장을 예복으로 입고 다닙니다. 회사원이 이국적인 곳을 돌아다니는 대모험이었는데, 그 악당 총두목의 모양새만은 TV유치원 하나둘셋 같은 곳에서 "충치 악마" 같은 것으로 출연할만한 어릿광대인 것입니다.

모양도 모양이고 행동도 초라합니다. 그나마 약간이라도 호기심을 끌만한 행동은 전부다 "007 두 번 산다"에 나오는 행동들입니다. "007 두 번 산다"가 나오기전에 나온 영화이긴 합니다만 사실 또 "007 두 번 산다"의 악당이 하는 행동이 뭐 딱히 옳은 행동인것도 아니니 어설픈 줄거리 연결의 빠지기 쉬운 함정에 걸려 들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악당 비밀기지에서 주인공이 탈출하는 장면은 가장 무기력합니다. 갑자기 순간적으로 경비병들이 무기 다 버리고 문 활짝 열어 젖힌 뒤에 맨손으로 제발로 차례로 한명씩 한명씩 걸어들어 옵니다. 그러더니 들어오는 순서대로 하나둘 주인공들에게 두들겨 맞고 쓰러져 기절해 버립니다. 황당한 장면으로 연결되어서 싱겁고 가짜같다는 느낌이 너무 심합니다.

그러나 "금보살"에는 끝까지 조금씩 조금씩 재미난 부분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을 살해하고 보물을 갈취하려는 악당들을 "악당들이 '악당'들이다"라는 점을 이용해서 처리하는 것이 "인간시장"스럽습니다. 30년후쯤에 나올 컴퓨터 게임 "에코퀘스트"와 똑같은 방식의 "기둥 돌려서" 암호 풀이 장면이 있는 것도 시선을 끕니다. 어린이의 장난을 이용해서 미행을 따돌리는 장면은 익히 돌던 아이디어가 잘 화면으로 살아났고, 웃음과 재치가 살아 있는 수미쌍관식 마지막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세트 촬영을 했기 때문에 창밖의 경치가 그림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우습습니다만, 그래도 열차 장면 역시 여행하고 이동하는 심상을 잘 살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의 좋은 연기와도 어울렸습니다. 주인공인 장충은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이런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건실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괜히 무술의 달인인척 하면서 이상하게 촬영되어 있는 격투장면만 빼면 괜찮습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달리고, 쫓기고, 속고, 속이고, 싸우며, 즐기는 흥겨운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되어 줍니다. 유채색 색감이 밝은 화면과, 밤에서 낮으로, 다시 밤으로 차근차근 흘러가는 잘 연결된 모험의 시간을 보여주는 조명 속에서 주인공은 흥겹게 돌아다닙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의 유행을 타고 나와서 부분부분 겉보기에 본드 유행은 엿보입니다만, 실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절대적인 영향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볼만한 영화입니다.


그 밖에...

60년대 여객기에서는 비행기안에서 태연자약하게 담배를 뻑뻑 피워댄다는 점을 새삼확인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와 시리즈로 묶일 수 있을 법한, 쇼 브라더스 영화사의 영화로 "철관음"이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성룡과 허관걸의 초기작에 참여했고, 이소룡을 발굴한 것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나유 가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나유는 참 긴 시간동안 수많은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연출을 놓고보면, 성룡이나 이소룡 영화보다는, 무술 영화가 인기를 끌기 전에 작업한 영화들이 훨씬 났습니다. "금보살"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무슨 엄청난 걸작은 아니지만 꽤 연출력이 엿보입니다. "금보살"에는 나유 감독이 직접 배역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60년대 제임스 본드 아류작들에 대해서 간단한 나열들을 보고 싶으시다면 일단 이 페이지 http://www.dvdtalk.com/reviews/read.php?ID=13406 를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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