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걸즈 Dreamgirls 영화

가수들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계속 노래하는 장면이 거듭해서 나오는 영화가 "드림걸즈"입니다. 똑같은 노래를 계속 한자리에서 부르는 것은 아니고, 다른 무대, 다른 의상, 다른 처지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으로 무럭무럭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동네 무대에서 실력을 선보이려는 어린 도전자들의 무대이고, 마지막에는 역사적인 대성공을 거둔 명망 높은 음반사의 핵심 가수가 은퇴공연을 하는 무대입니다. 점점 발전하고 또 쇠락하는 이들의 공연은 계속 반복되어 펼쳐집니다. 그 노래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공연과 공연의 짧은 틈 사이에 인물들간의 갈등이나 사연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짤막하니 끼워져 있습니다.


(드림걸즈 콘서트)

그런즉 "드림걸즈"가 연출된 모양을 보면, 가수들의 홍보 영상과 비슷합니다. 조성모의 "가시나무"나 윤종신의 "애니"의 경우를 보면, 지어낸 이야기를 갈등과 사연을 알 수 있도록 무성영화로 보여주고, 노래는 배경음악으로 깔았습니다. 그에 비해, 신승훈의 "엄마야"나 김건모의 "스피드"는 노래 부르고 공연하는 가수의 모습을 그냥 영상으로 연결했습니다. 단순한 공연 실황과 다른 점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섞는 다양한 편집기술과 특수효과를 가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좁은 공간이지만 울긋불긋한 벽지와 다양한 소품이 있는 무대장치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가 하면, 겨울에 서울에서 했던 공연과 여름에 부산에서 했던 공연을 번갈아 섞어서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드림걸즈"는 뒤쪽의 방식으로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모타운 으로 대표될만한 60, 70년대 소위 "흑인 음악" 의 성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들려오는 노래들은 리듬 앤 블루스 와 소울 곡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노래들은 꽤 듣기 좋고,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솜씨도 풍족합니다.


(블루스 한 곡 불러 볼까나)

그런데, "드림걸즈"는 이렇게 연결되는 노래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끼워 넣는데는 완전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드림걸즈"는 가수들이 어떻게 흥하고 망해가는지 일대기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속에서 음악사의 전개를 비추어낸다는 또다른 이야기거리까지 군데군데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인물들이 성공을 거두었는지, 어쩌다 인물들이 망해가는지, 혹은 그런 흥함과 망함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표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와중에 역사적인 관점 역시 덩달아 줄어들어 갑니다.

모타운 이야기를 꼭 굳이 다큐멘터리 영화나 당시상황 재연 TV쇼 처럼 차근차근 설명해 줄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노래잘하는 동네 친구 세 사람이 어쩌다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거물이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의 묘사라든가 감정적인 표현은 집어 넣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 사람들 스스로나 주변사람들이 느끼는 열광 이나 실망, 새옹지마의 인생사가 표현될 것 입니다. 새로운 음악을 도입하거나 자신의 솜씨를 홍보려는 여러가지 노력이라든가 행운, 혹은, 그런 방식이 준 충격, 그것도 아니라면 뛰어난 제작자나 매니저와의 만남 같은 것들을 재미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과정의 고민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드림걸즈"는 뚜렷한 이야기거리가 부족합니다. "노래 잘 하는군" "이 사람들은 소울을 갖고 있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두명 나오고, 그걸로 첫곡에서 둘째곡 부르고 둘째곡에서 셋째곡 부를때마다 인기는 급등해 갑니다.


(인기 폭발 드림걸즈)

"드림걸즈"가 그러면 이런 갈등구도를 아예 포기한 것인가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드림걸즈"에는 갈등구도와 과정묘사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명확하게 있습니다. 왕년의 인기가수 제임스 썬더 얼리와 그 코러스로 시작한 드림걸즈들의 갈등이 있고, 드림걸즈의 매니저가 도전적이고 의욕적인 소규모 사업가에서 부정부패와 권위주의로 가득찬 거물이 되어가면서 빚는 갈등도 있습니다. 삼각관계도 하나 들어가 있는가 하면, 출생의 비밀 이야기와 구성원 간의 성격차이가 빚어내는 갈등도 있습니다. LA교포들 사이에 옷 보따리로 팔던 상인이 미국 전국 의류업계에 한국 옷 팔려고 도전하는 듯한, 흑인기획사의 백인음악시장 도전기도 섞여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이 복잡한 문제를 헤쳐나가는 드림걸즈의 역경은 충분히 과정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거리들은 주인공과 인물들의 비중이 심하게 오락가락하는 통에 잘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왕년의 인기가수와 신인 드림걸즈의 갈등과 관계 묘사를 할 때는 왕년의 인기가수를 맡은 에디 머피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활약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중반쯤 되면 갑자기 에디 머피는 잊혀지고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갑자기 얼굴을 들이밉니다. 그러다가 또 사라졌다가 갑자기 또 갈등을 해결할 감동의 대단원이 다가올 때쯤 되면 또 지나치게 심각하게 얼굴을 들이 밉니다.

매니저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매니저와 기획사 사장 쯤을 겸한 제이미 폭스의 인물이 문득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됩니다. 수완 좋고 공격적이고, 성실하면서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의욕적인 인물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사람은 시작 즈음에는 에디 머피에 비해서 훨씬 비중이 적은 배역 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는데 착한 사람일 때는 막 그냥 착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단순한 나쁜놈으로 변신해 버립니다.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번뇌하는 이야기를 보여줄만한 비중으로 커졌으면서도, 왠지 다른 갈등의 조건에서 그냥 악당이 되어주느라 좀 왔다갔다해버리는 겁니다.


(에디 머피)

그 중에서도 인물 비중이 가장 심각하게 뒤척거리는 부분은 비욘세가 맡은 인물과 제니퍼 허드슨이 맡은 인물 두 사람입니다. 제니퍼 허드슨이 맡은 인물이 여러가지 갈등에 종류별로 많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고, 노래 부를 때 개인기도 가장 많이 보여 줍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드림걸즈의 두목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꼭 이 사람이 주인공인것처럼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후반에 이르면, 갑자기 제니퍼 허드슨의 역할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왠지 비욘세의 노래와 춤을 계속 보여주는데 치중합니다. 비욘세의 인물이 겪는 고민과 갈등으로 중심이 이동해 버립니다. 모양새를 보면, 제니퍼 허드슨의 이야기가 멀쩡하게 잘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비욘세 이야기를 꼭 넣어야겠다는 의무감에 강제로 밀어넣어 박은 듯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두 인물을 표현하는 관점이 오락가락하는데, 이것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한 듯 합니다.

결국 "드림걸즈"에 묘사된 고민거리와 다툼들은 실감이나 입체감이 적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고민하는 장면" "다투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고 각본에 적혀있고 감독이 시키니까 갑자기 그러는 듯 합니다.


(세 친구)

여러사람들의 다양한 많은 갈등들을 한꺼번에 엮어내는 방법도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단순한 수법으로는, 갈등들을 그 중에서 중요한 것과 거기에 딸려오는 사소한 것들로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갈등에 관계된 한 명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입니다. "라이온 킹"에서는 아기사자 심바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반란, 인생관의 변화, 형제간의 열등감, 하이에나 문화 등등을 주인공 심바가 아버지 잃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곁가지 배경 묘사처럼 보여 주었습니다.

또다른 방법으로 여러 갈등을 엮어내는 길을 찾아 본다면, 관찰자/조정자에 해당하는 사람을 한 사람 설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만의 관점으로 여러 사람들의 문제를 관찰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의 변화를 보고 느끼는 것을 설명하듯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스터 액트 2"는 주인공 수녀의 시각에 초점을 둡니다. 그래서 학교의 여러 학생들이 겪는 문제와 갈등 해결 과정을 차근차근 돌아가며 차례로 주인공 수녀의 관점에서 짚어 나가는 겁니다.


(주인공은 누구?)

"드림걸즈"의 경우라면, 주인공으로 그냥 제니퍼 허드슨의 인물에 무게를 싣는 방법이 가장 손쉬워 보입니다. 가장 실력있어서 "드림걸즈"의 중심이 된 주인공이 어떻게 드림걸즈를 데뷔시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토사구팽 당하고 다시 재기하는 그 우여곡절의 과정을 보여주면 어떻겠습니까. 그 과정을 그냥 차분하게 리더 중심으로 따라가면서 펼치는 것도 재미있었을 법 합니다. 그 방법이 안된다면, 비교적 변함없는 인물인 작곡가 씨씨를 관찰자로 둘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씨씨가 드림걸즈들과 몰려다니며 성공을 경험하고, 나중에 이들이 와해되는 불씨들을 하나하나 보게 합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마지막으로 서로 뭉치게 하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다양한 갈등들을 짚어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림걸즈"는 인물들의 비중과 성격에 일관성이 좀 줄어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또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게 의미없는 희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언제는 갑자기 이 사람이 주인공인듯하다가, 어느새 저 사람이 주인공인듯한 뒤집히는 이야기들 덕분에 노래 장면이 더 다양해진 것입니다. "드림걸즈"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제니퍼 허드슨의 막 밀어 붙이는 개인기 쇼를 볼 수도 있고, 그러면서 비욘세의 비욘세 춤도 풍성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솔로곡이 많은가하면 중창곡도 많고, 빠른곡만 있는 듯하다 싶으면 느린곡도 몰려 있습니다.


(다양한 노래들)

그래서 정말 좀 아쉬워 보이는 부분은 무대위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무대 밖의 사건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인물들 사이에 사랑한다는 이야기나 미워한다는 이야기를 서로 노래로 불러서 표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꼭 전통적인 오페라나 뮤지컬의 표현 방식 같습니다. "드림걸즈"는 이런 장면들에서 영화 표현에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다만 무대에서 보여주면 그럴듯할법한 장면을 그대로 옮기는 듯할 뿐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제니퍼 허드슨의 인물 에피가 다른 멤버들과 잠시 결별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제니퍼 허드슨이 멤버 개개인과 말다툼을 하고 갈등을 빚다가 홀로 남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명이 부르는 노래인데, 각각의 멤버들과 번갈아가며 제니퍼 허드슨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흘러갑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배우들이 하나 하나 차례로 퇴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제니퍼 허드슨 혼자 남아 구성진 독창을 보여주게 되어 있습니다. 제니퍼 허드슨이 다른 배우들과 겨루다가 떠나 보내는 모양이기 때문에 이 부분의 노래에서 제니퍼 허드슨의 노래와 개인기는 다른 배우들보다 훨씬 강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 둘 퇴장할 때 마다 제니퍼 허드슨의 과장된 목소리 표현은 점점더 요란해져가며, 막판에 혼자 남아 그야말로 시원하게 꺾고 구부려 줍니다.

이 부분은 만약 관객이 앞에 있는 무대였다면, 제니퍼 허드슨이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갈 때마다 객석의 흥분은 고조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혼자서 무대를 휘저으며 주인공이 날뛰게 되면 그 노래 실력 때문에 감동의 도가니로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냥 빈 무대에서 썰렁하게 부르는 노래로 표현되었을 뿐입니다. 노래는 분명히 점점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화면과 연출은 배우들의 숫자가 줄어드니 오히려 그러한 강조를 살리지 못하고 점차 쇠락합니다. 더구나, 이 부분에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보기 위해서 화면을 배우들 얼굴 표정 비추는 것으로 메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이 하나 둘 퇴장해가는 것이 잘 보이지 않고 얼굴만 커다랗게 보입니다. 그리하여 혼자 남게되어 애간장을 사르는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 화면으로는 잘 살지 못했습니다.


(다 덤벼봐라)

이런 한계는 전체적인 연출에 사실적인 느낌을 넣으려고한 영화 전체의 방향에 바탕이 있는 듯도 합니다. 이 영화 "드림걸즈"는 화려한 무대를 펼치는 뮤지컬 형식의 영화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무대 위와, 정치와 문화가 변해가는 세상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나 "온 더 타운"을 볼작시면,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상이 바로 노래의 무대로 변하고 노래의 무대가 그대로 시사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환경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영화가 표현하는 공간은 현실 세계 보다는 무대 세트에 가깝게 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이런 영화들은 상당히 현실적인 표현에 붙잡히기 보다는 자유로운 연출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다양한 표현을 통해서 인물과 춤을 강조하거나 현란한 화면을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에 쉽게 연결해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드림걸즈"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교적 사실적인 소품과 배경으로 화면에 담고 있습니다. 야외촬영 분량도 많고, 인공적인 미술 장식 역시 무대 밖의 상황을 묘사할 때는 배제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장면 외의 묘사는 상대적으로 심심하게 되었습니다.


(무대에 들어가기 전에)

결국 사실적인 묘사와 극적인 화려함 양쪽 모두에서 조금씩 부족해졌습니다. 중반까지만 해도 진지한 흐름으로 관조되고 있던, 흑인 민권 운동이나 흑인 소수 민족 문화의 발전 과정은 후반으로 넘어가면 그냥 슬그머니 없어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민권운동의 면면이나 망해가는 디트로이트의 정경은 별로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잠시잠깐의 자료화면에 그칠 뿐입니다. 감정에 깊이 빠진 사람을 묘사하는 방법을 위하여, 주인공들의 얼굴을 보여주며 시계 방향으로 카메라가 빙 한 바퀴 돌아가는 것. 그것 하나를 너무 남발한 면도 있습니다.

노래 장면에서는 반대로 무대 장면에서만은 뭔가 화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복고풍 느낌을 완전히 잃어버릴 때도 있는듯 합니다. 한편, 많은 노래가 나오고 변해가는 역사를 묘사하는 배경치고는, 전통적인 블루스나 재즈, 록클롤이나 디스코 음악의 비중이 없다시피한 것도 좀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제니퍼 허드슨의 화려한 솜씨를 과시하는데 너무 치우친 나머지, 어떨때는 노래의 아름다움이나 조화가 희생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는 어울려 있는 영화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기보다는, 문득 TV쇼에서 기인이나 달인을 보여주는 묘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노래 녹음)

"드림걸즈"는 리메이크 앨범처럼, 요즘 유행에 맞도록 여러 부분이 장식된 채로 흘러간 옛 노래 분위기의 공연을 한껏 맛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아주 매끄럽지는 않지만, 대체로 성공했다가 울적해지는 줄거리는 연결되고 있고, 노래 자체는 왠만한 편집 음반들의 모음곡들에 비해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은 대부분 적역을 맡았습니다. 특히 에디 머피는 상당히 진지한 인물을 맡았으면서도, 주특기는 살립니다. 인상을 팍 쓴채로 슬쩍 흰 이를 드러낸 미소를 슬그머니 띄우는 그 감흥을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는,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그다지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코메디도 블랙코메디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조금이나마 흥을 돋구고 가벼운 미소라도 전해주는 작은 부분들은 에디 머피의 이 실력에 상당히 기대고 있습니다. 한편 대니 글로버는 연기할 내용도 대사도 몇마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믿음직한 인물을 연기해주는 괴력을 보여 줍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다른 내용 없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 자체를 중심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부분만은 모든면에서 훌륭합니다. 갈등과 아슬아슬한 쇼의 긴장감, 출연진의 떨리는 마음과 흥분, 관객의 즐거움, 사실적인 비정함과 화려한 흥겨움이 한꺼번에 어울려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무대에 중심을 두고, 사실적인 표현에도 신경을 쓰는 영화가,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실적인 일"을 다루자니 잘 된 것인 듯 합니다. 이 부분의 즐거움은 거의 "빽 투 더 퓨처"의 마지막 기타 연주 장면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 밖에...

"드림걸즈" 영화의 "드림걸즈"는 "수프림즈 Supremes" 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두는 면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프림즈 보다는 수프림즈의 얼굴마담을 맡게 되는 것으로 영화에서 묘사된 다이아나 로스 개인이 훨씬 더 유명한 듯 합니다.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속사인 모타운이 발굴한 가수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어린이 시절의 마이클 잭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보다보면 "쟤 마이클 잭슨 어릴 때 같다" 싶은 어린이가 바로 눈에 뜨입니다.

에디 머피의 인물과 연기가 그럴듯했기 때문에, 저는 에디 머피 인물의 비중을 좀 더 늘이고 시종일관 제임스 썬더 얼리와 드림걸즈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는 식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칵테일"에서 두 바텐더를 맡은, 브라이언 브라운과 톰 크루즈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에디 머피는 브라리언 브라운처럼 선배 역할을 하고, 드림걸즈들은 톰 크루즈 처럼 후배 역할을 하게 하면, 이야기 흐름도 비슷하거니와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배역을 맡은 제니퍼 허드슨은 TV쇼 "아메리칸 아이돌" 경연대회에서 막판에 탈락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많은 오디션 끝에 겨우겨우 이 영화에 기용되어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구보다 주연에 가까운 인물입니다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여우조연상 후보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수상까지한 그녀는 정신없이 울먹이는 수상소감을 읊었습니다.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지만 막판에 실패했다가 다시 벼락 성공을 하는 그녀의 이야기에는 입지전적이고 낭만적인 면이 확실히 눈길을 끄는데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틀즈의 인기를 위협하는..."이라는 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설명합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60년대에 인기 가수들 중에 이런 설명이 붙는 가수들이 열몇팀 씩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반대로 아무도 비틀즈에는 상대가 안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 있는 한 비틀즈 팬이 보기에, "Please Please Me" 앨범이 나왔을 때 부터, "Let It Be" 앨범이 나올 때까지 기간 동안에는 단연 비틀즈의 시대였습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이아나 로스 노래 아무거나 하나 말해주세요"고 하면 좀 머뭇거리는 사람이 꽤 있겠지만, "비틀즈 노래 아무거나 하나 말해주세요"라고 하면, 하다못해 "Yesterday"라도 꼽을 겁니다.

왜 "스윙걸'즈'"이고, "드림걸'즈'"인데, "훌라걸'스'"입니까?

핑백

  • 게렉터블로그 : 주제곡이 좋은 TV 외화 시리즈: 번외편 2007-09-08 23:57:00 #

    ... (1등 발표전에 뜸들이는 거 저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최근에 " 드림걸즈 http://gerecter.egloos.com/3021167 " 영화에서도 풍자된 모타운 과 한 시절의 자웅을 겨루던 곳 중에 스택스 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첫 소속 밴드로 키운 초창기 연주팀 ... more

덧글

  • 쥐돌 2007/06/03 16:16 # 삭제 답글

    저도 드림걸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어요. 심지어 극장에서 두 번이나 볼 정도로;
    스토리 면에서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중간에 말씀하신 제3의 관찰자에는 저도 동감.
    씨씨가 관찰하면서 나레이션이 끼워들어갔더라면 좀 더 '역사'에 근접하게 비춰지는
    그런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저 저에겐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되는
    그런 드림걸즈네요.ㅋㅋ

    게렉터님 블로그 정말 재미있네요 :)
    기숙사 사느라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오는데 그 꿀 같은 일요일의 시간을
    블로그 구경하느라 모두 쏟아 붓고 있어요!

    자주 오겠습니다 ;)
  • 게렉터 2007/06/04 14:26 # 답글

    쥐돌/ 감사합니다. 음악이 중요하고 번쩍거리는 무대를 내세운 영화이니 역시 극장에서 보는 편이 더 좋았을 영화였을 것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