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레이드 Charade 영화

"샤레이드"는 괴도 뤼팽 시리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가 그 내용입니다. 한 귀부인이 죽은 친인척과 관계가 있는 범죄 음모에 갑자기 휘말리는데, 거기에 어떻게 괴도 뤼팽도 같이 얽혀 모험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멋쟁이 신사인 괴도 뤼팽은 괴도 뤼팽인 만큼 신분을 바꾸며 귀부인에게 정체를 숨기고 접근하고, 당연하게도 괴도 뤼팽과 귀부인은 점차 정이 들어갑니다. "샤레이드"에는 오드리 헵번이 귀부인 역할을 맡았고, 캐리 그란트가 괴도 뤼팽 같은 역할을 맡았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많은 괴도 뤼팽 시리즈처럼 파리 시내가 중심입니다.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이 연기하는 여자 주인공은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던 중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냥 부자집 아들인 줄 알았던 남편이 상당히 거대한 음모에 관련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자 주인공은 점차 뭐가뭔지 오락가락하며 정부기관과 살인자들이 오가는 혼란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샤레이드"가 재미있는 점은 사람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이야기이고, 상당히 살벌한 분위기를 유지해 나갑니다만, 정작 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의 인물은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죽고 다칠 때는 음습하고 어두운 범죄물 처럼 되어 있습니다만, 이런 사건을 바라보는 오드리 헵번의 표정은 "어머, 깜짝이야!" 하면서 코메디물처럼 행동합니다. 웃기냐, 심각하냐 둘 중에 하나로 굳이 나누어 보자면, "샤레이드"는 확실히 웃긴 쪽입니다. "살인 무도회 Clue"나 "달콤 살벌한 연인" 같은 살인사건을 대소동의 재료로 삼을 뿐인 코메디극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드리 헵번이 캐리 그란트를 미행하면서 의심하는 장면은 "남자 셋 여자 셋" 같은 시트콤에서 오해한 주인공이 남자 친구를 미행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감기 조심 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레이드"는 악당들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두운편인데다가, 살인사건이 묘사된 방식도 결코 장난스럽지 않습니다. 우스꽝스런 비명소리를 지르다가 "꽈당-"하고 자빠지며 퇴장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고, 죽을 때는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가 죽습니다. 살인자는 나쁜 사람으로 확실히 몰리고, 주인공의 고민은 진지하게 표현될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샤레이드"는 즐거운 희극과도 같은 웃음을 주는 면이 있으면서도, 주인공이 말려든 사건의 분위기가 상당히 무겁게 실려가며 재미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직접 주고 받는 사건들은 명백한 코메디로 되어 있으며, 그녀를 둘러싼 음모와 협잡들은 살짝 진지한 추적과 연쇄살인이 되어 서로서로 감싸고 돕니다.

이런 조화는 이국적인 싸움들이 그저 신나게 이어질 뿐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둘 다 다루려다가 망할 위험이 있기에 이런 시도는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샤레이드"에는 이 구별되는 두 요소가 혼란스럽게 왔다갔다하지 않도록 잘 잡아서 유지 시켜주는 두 중심점이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캐리 그란트의 인물입니다.


(캐리 그란트와 오드리 헵번)

캐리 그란트의 인물은 정말 괴도 뤼팽 같은 사람입니다. 부유한 신사이며 파리에서 활동하는 듯 합니다만, 어딘지 정체를 알 수 없고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여자 주인공에게 한방에 매력적으로 보입니다만, 마냥 날라리 바람둥이 같다기 보다는 상당히 중후해 보이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여유를 잃지 않고 농담꾼이기도 합니다만, 제임스 본드나 레밍턴 스틸에 비해서는 훨씬 더 어둡고 무서운 면도 숨겨져 있어 보입니다. 이리 보면 말쑥한 정장 차림의 정의의 사도입니다만, 저리 보면 탐욕과 잔인함이 서려 있는 인정사정없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내 본명은 ABC요."라고 밝힙니다만, 그 드러난 정체라는 것이 진정한 본모습인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결백하다" 때가 생각나는군. 프랑스에서 이짓하는 게 얼마만이던가.)

이런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각본과 연출이 꽤나 훌륭한 편이고 캐리 그란트는 이런 모습에 아주 잘 부합합니다. 캐리 그란트는 범죄의 음모에 얽힌 인간들과 직접 몸싸움을 벌이며 사투를 합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얻은 단서 때문에 다시 오드리 헵번 곁에 와서 친한 친구가 되어 줍니다. 캐리 그란트의 인물은 이렇게 중간에서서 이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코메디 분위기를 왔다갔다 움직이며 연결하고 있습니다. 범죄물에서 결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문득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툭툭 털어버린다음 슬쩍 꾸미고 오드리 헵번 앞에 나타나 코메디를 합니다. 캐리 그란트의 인물 자체가 계속 정체를 바꾸고, 계속 위장을 하는 인물이니, 이렇게 이중적으로 모습을 바꾸며 "샤레이드"의 두 측면을 오가는데 무척 적합하다는 점은 각본의 탁월한 점입니다. 그래서 "대체 이 자식, 정체가 뭐야?" 하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어내며 점차 영화속에 빨려들게 하는 재미를 살려 줍니다.

우선 이런 무서운 범죄자 같지만 한켠으로는 의리의 주인공 같아 보이는 면이 있는 배역을 캐리 그란트는 잘 맡아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범죄자쪽으로 확 기울어진 역할로 "의혹 (서스피션) Suspicion"에서 맡은 역할도 훌륭했고, "몽키 비즈니스" 류의 많은 코메디 물에서도 가끔 악동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을 잘 섞어 보여 준 바 있습니다. 특히 캐리 그란트는 사소한 것을 농담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에서 화려한 솜씨를 보여줍니다. "샤레이드"에는 옷입고 샤워하는 장면이 한 장면있는데, 인상적이기는 합니다만 자칫 터무니 없어 보일 수도 있는 각본을 그 정도로 재미있게 보여 준 것은 캐리 그란트의 재주라 할만 합니다.


(이게 캐리 그란트 코메디의 위력이오.)

"샤레이드"의 영화를 엮어주는 또다른 요소는 영화의 그럴싸한 음악입니다. 유럽에 온 미국인들이 겪는 이국적인 이야기이니 만큼, 유럽 배경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의 음악은 민속적인 색채가 상당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음률이 묘해서 장난스러운 클럽 음악으로 편곡되기도 하면서, 신나고 긴장감 있는 활극의 배경음악으로도 손색이 없게 바뀌기도 합니다. 단조로 이어지는 곡조는 이 영화의 어두운면에 어울리고, 재미있고 흥겨운 타악기 리듬은 즐거운 코메디와 활극에 부합합니다.

이런 음악은 영화의 몇몇 멋드러진 연출에서 신나게 위력을 발휘합니다. 정체를 숨긴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 오드리 헵번이 대치하는 막판의 극장 앞 장면은 단연 기억에 남습니다. 달려가는 오드리 헵번과 캐리 그란트의 모습이 극장의 기둥 사이로 휙휙넘어가게 되어 있는데, 기둥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 도망가는 속도감을 멋지게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기둥에 사람이 가릴 때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줘서 긴박한 재미도 드러냅니다. 괴도 뤼팽 시대 파리를 무대로한 활극에서 항상 나오기 마련인 창문과 지붕을 뛰어다니는 추격전 장면도 잘 꾸며져 있고, 음악이 전적으로 부각된 파티 게임 장면은 살짝 일탈스러운 느낌을 강조하면서 주인공들간의 감정 교류도 부드럽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음흉한 게임)

"샤레이드"의 많은 부분은 확실히 괴도 뤼팽 이야기에 원류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물건"이 드러나는 순간의 갈등 묘사는 "수정마개"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고, 2차대전 참전 용사들이 전쟁통에 숨긴 물건이 등장인물들과 얽히는 부분은 괴도 뤼팽 시리즈가 1차대전 무렵의 유럽 전쟁들과 얽히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장례식 장에 의심스러운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면, 주인공이 대체 저 사람들은 다 무슨 관계일까 의심하며, 호기심을 생기게 하는 부분도 이무렵의 추리 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드리 헵번)

그러나 한 가지 선명한 차이점이 "샤레이드"에 독특한 묘미를 마지막으로 더해줍니다. 괴도 뤼팽 이야기는 "초록 눈동자의 아가씨" 나 "뤼팽, 결혼하다" 외에는 여자 주인공에 비해서 확실히 뤼팽 본인의 비중이 훨씬 큽니다. 그에 비해 "샤레이드"는 캐리 그란트 보다는 갑자기 사건에 빠진 오드리 헵번의 비중이 크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오드리 헵번의 시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의 인물은 심각한 부분과 코메디 부분을 잇는 모양이 캐리 그란트 만큼 부드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막판 액션에서는 조금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로마의 휴일"을 그대로 계승하는 장난스럽고 엉뚱한 오드리 헵번의 모습들에는 특유의 재치가 여전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코메디 연기력을 보여주는 월터 매튜와 함께 하는 장면들은 별 일 없는 대사와 상황이지만 사람을 웃음짓게 합니다. 갑자기 만난 캐리 그란트에게 빠져드는 모습을 표현하는데서는 오드리 헵번의 묘한 연기가 돋보입니다. 게다가 "파리의 아메리카인" 연기에 더할나위 없는 오드리 헵번의 멋진 말투는 언제보다 그럴싸한 들을 거리가 되어 줍니다. 현대가 무대이니 만큼 지방시 옷자랑도 만만찮고, 그녀가 국제 회의에서 통역을 맡은 장면을 볼작시면, 오드리 헵번 개인기로 확 다 밀어 붙이는 위력이 있습니다.


(통역)

그 밖에...

고전 뮤지컬 영화계의 기린아라 할 수 있는 스탠리 도넌이 제작과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음악은 맨시니가 맡았습니다.


(60년대 유행에 충실한 시작장면)

박중훈 팬이라면 누구나 선명하게 기억하는 "찰리의 진실"이 "샤레이드"의 리메이크 판입니다. "찰리의 진실'에는 캐리 그란트 대신 마크 웰버그가 나오고, 오드리 헵번 대신 탠디 뉴튼이 나옵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작가인 피터 스톤은 이 영화 각본을 팔려고 했는 7개의 영화사들에서 모두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걸 소설로 써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러자 7개의 영화사가 모두 판권에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캐리 그란트는 딸 뻘 나이인 오드리 헵번을 꼬시는 역할로 나온다는 점 때문에 출연을 꺼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본가들이 오드리 헵번 쪽에서 먼저 캐리 그란트에게 관심을 보이고 접근해 오는 것으로 내용을 뜯어 고쳤다고 합니다.

"샤레이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참여하지 않은 최고의 히치콕 영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제임스 코번도 나옵니다. 제임스 코번이 나오는 진정한 제임스 본드 아류작이라 할만한 플린트 시리즈도 언젠가 한 번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미국내에서 저작권자를 찾을 수 없는 영화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이트 http://www.thevoiceofreason.com/2005/Serial/Charade/index.html 같은 곳에서 누구나 다운로드 받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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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cter.egloos.com/4782770 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부류의 영화 중에서도 특히 스탠리 도넌이 감독을 맡았던 "샤레이드" http://gerecter.egloos.com/3046929 에 큰 영향을 받은 내용입니다. 전쟁 중에 숨겨진 금괴를 찾아다닌다는 초점과 의문의 사건에 빠져드는 여자 주인공이라는 내용부터가 일치하며 ... more

덧글

  • FAZZ 2007/03/12 14:25 # 답글

    역시 뭐든지 성공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것일까요? 햅번님은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
  • 게렉터 2007/03/13 13:49 # 답글

    FAZZ/ 어떤 글을 보면, 각본가인 피터 스톤이 실의에 빠져 있는데, 아내가 소설로 출판하라고 권하며 힘을 주기에, 난생 처음으로 소설을 출판하게 되었다는 뒷이야기도 보입니다.
  • Koolkat 2007/03/18 20:13 # 답글

    만치니가 아니라 헨리 맨시니라고 읽는 답니다. 링크신고합니다.
  • 게렉터 2007/03/20 10:27 # 답글

    Koolkat/ 감사합니다. 요즘에 자꾸 실수하는 것이 "마이클 케인"과 "마이클 키튼"의 이름을 헷갈리게 쓰는 것과, 사람 이름을 괜히 이탈리아식으로 쓰는 짓입니다. 바로 고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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