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올려라 (노이즈 오프, Noises Off) 영화

"막을 올려라"는 한국에서는 "노이즈 오프"라고도 자주 불리우는 연극이 원작입니다. 내용은 연극을 상연하는 극단의 이야기입니다. 그 연극의 내용은 커다란 집안을 무대로 오해와 비밀, 임기응변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벌이는 대소동을 다룬 이야기인데, "피가로의 결혼"이나 "세빌리아의 이발사" 같은 저택 소극(笑劇, farce) 입니다. 상황이 점점 커지면서 내용이 점점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이야기니 만큼, 이 영화는 사소한 문제가 어떻게 어마어마한 대파국으로 번져나가는지 보는 것이 맛입니다. 따라서 이야기가 구성된 형태나, 내용에 대해 아무런 아는 것 없이 보는 것을 추천할만합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의외로 터져나가는 사태를 즐기는 가장 좋은 조건일 것입니다.


(저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소동)

"막을 올려라"의 바탕이 되는 특징은 저택 소극이 두 겹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영화속의 극단이 상연하는 연극 자체가 저택 소극입니다. 이 이야기는 빈집에 몰래 들어온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자기 말고 다른 사람도 빈집에 몰래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생기는 소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거실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다락방에 있고, 다락방에 있던 사람이 거실로 나오면, 거실에 있는 사람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자꾸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서로 영문을 몰라서 당황하고 오해하는 꼬인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 연극을 상연하는 극단의 배우와 기술진들이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저택 대신에 무대와 무대뒤라는 제한된 공간을 저택처럼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코메디에서 배우들이 방을 들락거리며 펼치는 것 대신에, 무대위로 출연하고 무대뒤로 들어오는 것을 써먹었습니다. 점점 배우들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정상적으로 연극을 상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억지로 억지로 버티며 공연을 강행하려하다보니 별별 고생을 해야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난리가 나는 것이 또다른 대소동이 되어 줍니다.


(무대뒤편: 큰일났다!/큰일나도 일단 나가서 공연은해야지!)

그리하여, "막을 올려라"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영화속의 연극 자체가 하나의 대소동이고, 그 연극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무대 뒤 사연이 또하나의 긴박한 대소동이 되어 두 이야기가 동시에 합쳐지면서 웃긴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무대 위의 극중극과 무대 밖의 갈등이 겹쳐져 사건이 더욱 얽히는 이야기는 일단 좋은 줄기가 되는 아이디어 입니다. 이런 대소동 이야기에서는 소동을 더 해괴하게 얽고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벌여야 합니다. 그런데 두 겹으로 이야기가 뭉쳐 있으니 더 사건을 혼란스럽게 많이 일으킬 수 있습니다. 벌어지는 사건의 양이 많다보니 사건이 우수수수 쏟아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이 많으니까 속도를 높여서 발빠르게 신속하게 넘어갈 수 있어 졌습니다. 또 그래서 번쩍번쩍 재치있게 터져나오는 동작과 대사들로 신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습니다. 빠르게 대사를 주고 받으며 리듬을 타는 것은 이런류의 농담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덕분에 이 영화에서는 말하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반면에 심각한 문제거리가 있기도 합니다. 두 겹으로 이야기가 섞여 있다보니, 줄거리와 사람들의 감정을 선명하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각본을 대충 만들었다면 실패할 위험도 컸습니다. 자꾸 무대 뒤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반목하는 모습을 다뤄야 하니까, 무대 위 공연에서 사람들이 맡은 배역의 성격은 잘 들어오지 않기 쉽습니다. 반대로 무대 위의 꼬이고 얽히는 사연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 사연이 복잡해서 무대 뒤의 싸움은 뭘 두고 벌어지는 일인지 잘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혼란한 와중에도 최대한 노력 해보려는 크리스토퍼 리브)

"막을 올려라"는 이런 점을 멋있게 극복한다 할만 합니다. 이 이야기의 각본은 두 겹으로 얽힌 이야기를 점점 심하게 꼬이는 과정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두 겹으로 꼬인 이야기를 세 단계로 쪼개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 두 겹의 이야기 중에 첫번째 껍질의 이야기를 하고, 2단계에서는 두 겹의 이야기 중에 두번째 껍질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3단계에서는 두 겹의 이야기가 섞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드럽게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서서히 꼬이다가 거대한 혼란으로 휘몰아친다는 점도 잘 느껴집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3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막에서는 배우들이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부드럽게 저택 대소동 이야기를 공연하고, 그래서 연극 속 대소동의 내용을 보여 줍니다. 2막에서는 갈등이 심각해져서 공연중에 무대 뒤에서 싸우는 모습을 중심으로 보여줍니다. 3막에서는 연극 내용과 무대 뒤에서 싸우는 내용이 뒤섞이며 난장판으로 뒤집어지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결말로 이끌어갑니다.

이 단계별로 줄거리도 선명하게 잡아냈습니다. 1막에서는 배우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고, 2막에서는 리허설을 마친뒤 실제 공연이 시작되는데 그와중에 서로 싸웁니다. 그리하여 3막에서는 싸우다가 원수가 된 사람들이 공연을 한답시고 난리만 치는 것이 내용입니다. 이런 구성 방식은 좀 심심하면 헤겔의 변증법까지 들먹일 수 있을 만큼, 복잡해 보일 수 있는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단순하게 보여줍니다. 충분히 좋은 각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소동 연극 공연중에 잠깐 출연진과 제작진이 모여하는 이야기)

3막 중에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부분이면서, 영화다운 맛이 잘 살아나는 부분은 2막입니다. 2막은 1막에서 보여준 공연이 무대에서 상연되고 있다는 상황이 배경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서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1막에서 보여주었던 이야기가 상연되고 있는 상황이 멀리서 들려오는 배우들의 목소리와 관객들의 웃음소리로 들려 올 뿐입니다. 배우들은 조용히 무대 뒤에서 대기하면서 자기 차례가 되면 나갈 준비를 해야하고, 여러가지 무대장치나 기술진은 무대효과를 조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서로 반목하고 있는 배우들과 기술진들이 무대 뒤에서 다투고 싸웁니다. 공연중이니까 큰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말하지 않고 몸동작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몸으로 치고 받으며 분노를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낭랑하게 멀리서 들려오는 공연중의 소리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서로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그러면서 위협하고 판토마임으로 사정을 설명합니다. 자연스럽게 영화는 수십분동안 슬랩스틱 코메디 무성영화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무대 뒤편의 슬랩스틱)

이 부분은 슬랩스틱 코메디는 무성영화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단순하게 웃기면서도 액션도 풍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포감과 긴장감이 잠깐 서릴 때도 있습니다. 복잡한 줄거리와 갈등관계가 순전히 시각적인 화면과 영상만으로 표현되는 멋이 재미 있으며, 자빠지고 넘어지는 액션 자체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아 신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커스에서 광대들의 공연은 왠만큼 숙달된 광대가 아니고서야 지나치게 어려운 동작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실패하면 NG내면 됩니다. 그리고 될때까지 다시 찍어서 갖다 붙이면 보기 좋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보통 배우들이 상당히 어려운 동작들을 해내게 할 수 있습니다. "막을 올려라"에서도 이 슬랩스틱 코메디 부분의 멋은 꽤 그럴싸합니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모습은 진짜 같습니다.

이 영화의 1막과 2막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무대 뒤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1막과 2막이 영상에 있어서도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는 점은 상당히 아름다운 점입니다. 1막에서는 진짜 같아 보이는 세트가 있고, 아무도 없는 리허설 중인 극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2막에서는 나무판자가 드러나는 세트 뒷면만 보이고, 사람이 가득한 공연중의 극장이 있습니다. 1막은 이런 대소동극 답게 엄청나게 많은 대사들이 만담식으로 운율을 맞춰서 와르르 쏟아져나오면서 정신없이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2막은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해야하는 배우들을 보여주고 있고 대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소리와 화면 모두 연습과 실제 공연이라는 상황에서 명백히 대조를 이룹니다.


(말 소리 없이 정신없이 싸우기)

배우들의 연기에는 많은 연습의 노력이 엿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끝없이 많은 대사들과 두겹으로 되어 있는 줄거리,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에 도전해야하는 넘어지고 자빠지는 동작을 전부 다 해내면서 버텨야 합니다. 배우들은 많은 연기거리들을 모두 다 잘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사실 대사 연기는 소극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만담스러운 운율 맞추기 대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심심하기도 합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비교적 만담 대사가 없는 기술진 역할의 줄리 하거티 같은 경우에는 나름대로의 현실감과 배우의 말투, 개성도 뚜렷하게 담아내면서도, 수많은 대사들의 운율을 잘 보여줘서 웃겨 줍니다. "에어플레인" 시리즈의 여자 주인공으로 친숙한 이 배우와, 이 이야기의 해설자겸 관찰자격인 마이클 케인은 만담스러운 운율에만 빠져 있지 않고 그런 느낌을 재미로 활용하면서도 실감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중앙의 줄리 하거티와 공연의 출연진, 기술진들)

다만 마이클 케인의 경우에는 당황하고 허둥대는 감정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을 장악하고 월등한 실력으로 연극을 이끌어나가는 강력한 연출자 역할에 마이클 케인은 훌륭했습니다. 배우들이 서로 싸우고 기술문제가 자꾸 꼬여서 망해가는 상황에 절망하고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분도 잘 해 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각본 한 켠에는 일이 꼬여만 가고 있으니 어쩔줄 몰라하며 미쳐버릴 것 같은, 가슴타는 약한 심정도 들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인물은 약간은 빠지는 면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유성영화 녹음 때문에 골치 ㅆㅓㄲ는 감독역인 더글라스 폴리 만큼만 혼란스럽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케인)

"위기의 주부들"에서 새롭게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니콜렛 셰리던과 역시 최근에 "위기의 주부들"에서 모습을 보이기도한 명배우 캐롤 버넷은 제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니콜렛 셰리던은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줄곧 시선을 끌만큼 아름답거니와, 종종거리는 걸음걸이를 배역의 여러 상황에 무척 잘 어울리게 표현했습니다. 캐롤 버넷은 나이차이가 많이나는 동료 배우와 사랑에 빠진 나이든 배우 역할입니다. 캐롤 버넷이 나이 차이를 쉽게 극복할만한 연애의 설득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코메디 연기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토퍼 리브와 술취한 배우를 연기한 덴홀름 엘리엇은 적역에 기용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배역의 비중이 작아서 그렇지,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뭔가 혼자 해보려고 하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배우의 시련과 건실함을 충분히 잘 담아냈습니다.


(니콜렛 셰리던)

"막을 올려라"는 우스운 공연과 그 공연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를 흥겨운 소동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2막 부분의 슬랩스틱 코메디에서 넘어지고 자빠지는 연기에 너무나 공을 들인 나머지, 배우들간의 감정반목이 좀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대사를 안하고 몸으로만 때워야하는 부분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오해하고 짜증내는 세세한 사연은 화면 연출이나 편집을 통해 잘 담아낼 수도 있었을 듯하여 아쉽습니다.

그외에는 대체로 이런 혼란스러운 코메디만의 즐거운 맛이 서려 있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지나갑니다. 정어리 요리 접시 처럼 사소하지만 끝없이 이리저리 짚고 넘어가며 끝까지 계속 등장해서 사람들 눈에 밟히는 소재를 끼워 넣은 것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모두 떼거리로 몰려 나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하면서 놀라며 끝을 맺는 결말은 "세빌리아의 이발사" 때부터 줄줄이 이어진 모범적인 것입니다. 이중으로 겹친 이야기 구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서로 다른 각도로 세 번이나 맛볼 수 있는 것은 독특합니다.

특히 이 영화의 대단원은 "프렌즈"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들 중에 가장 웃긴 이야기로 꼽히는 "710 The One WIth The Holyday Armadillo"의 훌륭한 선배라 할만합니다.


(문제의 정어리 요리)

그 밖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동료 박사 역할로 전세계 관객들에게 몹시 친숙해진 덴홀름 엘리엇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영화입니다.

연극은 1982년 영국에서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직도 자주 상연됩니다. 작년에도 서울에서 공연된 바 있습니다.

연극판에서는 엉망진창 대소동으로 그냥 막을 내립니다. 영화판에서는 나래이션과 브로드웨이 배경설명을 살짝 섞어서 결말 이후의 상황을 조금 더 보여 줍니다.

"막을 올려라"는 TV방영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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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살인무도회 (클루 영화판, Clue, 1985) 2007-10-07 09:40:52 #

    ... 연스럽게 움직여서 시선을 교묘하게 유도하는 것 따위도 적재적소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것에 가까운 "노이즈 오프 Noises Off" http://gerecter.egloos.com/3051364 같은 영화와는 명백히 차이가 납니다. 영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소동이 점차 더 커지면서, 장면 속에는 연극이나 소설, 그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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