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타고 휘파람 불고 Career Opportunities 영화

제니퍼 코넬리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과시하던 시절이던 1991년. 제니퍼 코넬리는 "백마타고 휘파람 불고"라는 종잡을 수 없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된 "Career Opportunities"라는 영화에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 했습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저택 소극(笑劇, farce)으로, "피가로의 결혼"처럼 커다란 집 안에서 사람들이 숨고 튀어나오고 오해하고 속이면서 웃음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무대가 그냥 저택이 아니라, 거대한 대형 할인 매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룻밤 동안 이 대형 할인매장에 갖힌 남녀주인공들이 겪는 사건들이 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입니다.


(대형할인매장의 제니퍼 코넬리)

이 영화의 패착은 영화의 재미거리가 1980년대 무렵에 줄줄이 망했던 다수의 뮤지컬 영화와 통한다는 점입니다. 흥겨운 유행가 음악에 맞춰서 주인공들이 널찍하게 가다듬은 무대를 가로지르며 춤을 춥니다. 꼭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나돌아다니기 마련인데, 적당히 흥겨운 음악과 커다란 세트에서 선남선녀들이 계속 노래에 맞춰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재미를 돋구려 했습니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만, 남녀 주인공 배우들의 모습과 흥겨운 배경음악으로 대부분을 때우려고 하는 점은 명백합니다.


(남녀 주인공의 롤러스케이트)

두 남녀 주인공을 만나게 하고 엮이게 하기 위해서 이 영화는 무척 어림없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활이 불안한 가난뱅이 남자와 지나친 부모의 간섭이 싫은 반항적인 부잣집 여자가 만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서로를 이상하게 여기지만, 결국 서로가 가지지 못한 점에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꽤나 꿈 같은 이야기인데도, 이 영화에서는 세세한 묘사란 거의 전혀 없습니다. 처음에는 쳐다보기조차 어려운 공주님 같이 여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자진해서 좀 얼빠진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는 산만한 내용이 무리하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무능하고 의욕없는 인간이었던 남자주인공은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코만도처럼 총든 악당과 싸웁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이 아무 꾸밈없이 엉성하게 이어집니다.

단지 현실감을 잃어버린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그냥 재미난 한 두 가지 장면을 대강 번갈아 보여주는데 멈춰버리다보니, 재미난 주변 이야기거리들을 날려 버리는 점도 많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이 저택을 배경으로한 하루밤의 대소동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단순한 이야기거리는 남녀주인공들이 같이 소동을 겪으면서 관계가 변한다거나, 성격이 변하는 것이라 할만합니다. 소동을 겪으며 변해가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이야기거리 였습니다.


(주인공들의 낭패)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러지도 않습니다. 소동은 그냥 두어번 자빠지는 것일 뿐인 싱거운 액션들로 나타나는게 다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냥 문득 남자 주인공에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와 떼돈이 생기는 행운이 있을 뿐이지, 아무런 소동과 연관된 변화나 심경을 흔드는 사연은 없습니다. 또 이 영화에는 뭔가 진지한 성격을 드러낼 것만 같은 남녀 주인공의 가족들이 중반까지만해도 얼굴을 자주 들이 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특이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려나가 없애버린 것인지 갑자기 중반이후에는 뚝 끊기면서 주인공 가족들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가 안나오게 된다는 괴이한 점도 있습니다.

한편, 무서운 권총 강도라면서, 하는 짓은 오직 영구스러울 뿐인 악당은 가장 한심한 인물들입니다. "나홀로 집에" 도둑들처럼 똑똑한 도둑, 멍청한 도둑, 2인조인데 그런 성격이 쓰잘떼 없을만큼 둘 다 아무 재미없이 한없이 멍청하기만 합니다. 하는 일이라고는 주인공들에게 위기를 주고 싶은 부분에서 그냥 각본대로 총들고 "손들었!" 할 뿐입니다. 그외의 장면에서는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이렇게 서 있다가 망해야지 하고 결심이라도 한냥 아무 짓도 안하고 주인공들에게 당할 날만 기다립니다.


(손들었!)

결국 이 영화에서 그나마 신기하게 살아날만한 부분은 남자 주인공의 개인기였습니다. 말 많고, 허풍선이이며, 가볍고, 경망스럽고, 그러면서 소심한 주인공이 끝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이 영화의 웃길 거리였습니다.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프랭크 월리는 그런데로 코메디 연기를 잘 해내고 있는데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척 하는 표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좀 불쌍하고 어려 보이는 구석이 강해서 나름대로 재미없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성공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남자 주인공은 단순히 말하는 대사의 양만 많을 뿐입니다. 표정이나 독백으로 표현할만할 부분을 마치 관객에게 말하는 것처럼해서 대사의 양을 늘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드러내는 말로 중얼거립니다. 때문에 좀 흥미를 끌 뿐이지, 그 내용이나 어휘 자체에 큰 웃음거리가 끼어 있지는 않습니다. 말하는 양에 비하면 상당히 싱겁습니다.


(어쩌면 좋을까나)

그래도 심하게 망한 영화고 지상에서 사라져야할만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망한 뮤지컬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좋은 점이 분명히 보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그렇게 방만하고 허망하게 예산을 날리지 않았습니다. 현란한 작곡과 어마어마한 연주를 사용하지 않은 대신에 흥겹게 들을 수 있는 유행가를 그대로 잘 깔았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부분은, 돈잡아 먹는 괴물이라 할 수 있는 공상적이고 요란뻑적지근한 세트를 짓지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돈을 왕창 날린 영화도 아니었고, 도리어 영화의 모양새가 가볍고 경쾌하게 되었기도 합니다.


(무대가 되는 대형할인매장)

이 영화의 배경은 환상적인 초대형 세트가 아니라, 그냥 현실속의 대형 할인 매장입니다. 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면 밤에 비어 있는 백화점을 무대로 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때 쌓여 있는 물건들을 이용해 찰리 채플린이 마음껏 갑부 행세를 해봅니다. 똑같은 아이디어를 한 밤의 대형 할인 매장에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대형 할인 매장은 백화점 보다 지붕이 높아서 더 크고 화려하게 보여줄 수 있는데다가, 훨씬 넓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물건도 훨씬 많아 보입니다.

게다가 여러 층으로 되어 있지 않고 한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뛰어다니고 이동할 공간도 충분하고, 롤러스케이트 타고 내달릴 수 있는 거대한 세트 역할로 제격입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기에도 훨씬 좋아 집니다. 여러모로 주인공들이 백화점을 독차지 하는 장면에 비해 대형 할인 매장을 독차지 하는 이야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가 나온 시기가 미국에서 월마트가 케이마트와 시어스와 경쟁하며 성장해 나가던 대형할인매장의 성장기라는 점을 돌이켜 보면, 이 영화의 배경은 꽤 보여줄 만한 내용입니다.


(매장 입구)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존재인 제니퍼 코넬리가 있습니다. 제니퍼 코넬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어조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엄청나게 이상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아무 다른 내용없이 그저 여자 주인공 미모로 영화를 때워버리려는 이상한 느낌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적당히 강약을 조절합니다. 그래서 쓰러질만큼 매력적이고 성격이 자신만만한 부자집 아씨의 화려함을 나름대로는 보여 줍니다.

그래서 그녀의 몸매는 아름답게 보이고, 대사들이 허무맹랑해 질 때가 있을 때에 비해서 목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인구에 회자된 악명높은 말타기 장면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노골적인 노출장면 없이도, "돈 존슨의 정오의 열정 The Hot Spot"같은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 법합니다.


(말타기 장면)

영화의 상영시간이 83분으로 짧은 덕분에, 이런 제니퍼 코넬리의 비정상적으로 유혹적인 인물과 프랭크 월리의 떠벌이 인물을 차례로 한 번씩 강조하기만 하면 영화는 끝에 도달합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이래저래 그렇게 지루하다거나 아주 볼거리가 없는 영화는 아닌 것입니다. 영화의 단초에서 살짝 엿보이는 "일본이 세상을 지배할 때"를 두려워 하며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미국 사회의 모습은 인상에 남습니다. 온갖 물건들이 넘쳐나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보물 창고나 진배 없는 대형 할인 매장의 밤을 묘사한 이야기들이 소재 자체로 흥미를 끄는 면도 있습니다. 아마 이런 것들을 가볍게 즐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제니퍼 코넬리의 꽃피던 모습을 보는 기회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여러가지 형편없는 점에 비해서 무척 신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Career Opportunities)

그 밖에...

"돈 존슨의 정오의 열정"과 이 영화에서 제니퍼 코넬리의 역할이 목적한 바에 비해 완전히 부합했기 때문에 "로켓티어"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비슷한 역할로 자주 활약했습니다.

대부분 졸작으로 평합니다만, 제니퍼 코넬리 팬을 중심으로 국내외에 이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많습니다.

저택에서 소동을 벌이며 아이들이 도둑 2명과 싸우는 이야기는 "나홀로 집에"와 매우 비슷합니다. "나홀로 집에"와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사람이 존 휴즈 입니다.

덧글

  • 닥슈나이더 2007/03/17 16:10 # 답글

    극장에서 봤는데 말이죠...^^;;

    제니퍼 코넬리가 가장 풍만할때 찍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예산으로 성공한 나홀로 집에의 컨셉을 그래도 차용한 영화로 기억 되고 있습니다... 저에겐...

    첨 극장에서(동시상영극장) 봤을때.... 나홀로 집에랑 설정이 왜이리 비슷해~!! 였다는......

    중요한건.. 91년도의 대형 할인매장은 우리나라에 없어서 공감할 꺼리가 부족했고

    외국의 문물이었다는 거죠..^^;
  • 잠본이 2007/03/17 16:40 # 답글

    다른 영화 보러 씨네하우스(...!) 갔다가 예고편만 본 기억이 있는데 한국어제목이 하도 황당해서 대체 누가 지은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hansang 2007/03/17 20:29 # 답글

    저도 과거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던 영화죠. 비디오 출시 제목은 황당 그 자체였지만...
  • 게렉터 2007/03/18 13:00 # 답글

    닥슈나이더/ 말씀하신대로, 당시 대형 할인매장 문화는 매우 미국적인 문화로 그 무렵 한국 보도 등을 보면 "미국에서만 가능한 미국다운 고유의 문화..."어쩌고 하는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요즘 이마트니 홈플러스니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잠본이/ 저는 황당한 제목과 영어 제목을 보고 꼭 봐야겠다고 결심한 영화였습니다.

    hansang/ 최근에 심야 케이블TV에서 다시 봤는데, 이상하게 저는 다시 보니까 왠지 더 재미있었습니다.
  • 2007/03/19 10:0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경아 2007/03/19 12:50 # 삭제 답글

    타겟!!
    여길 배경으로 찍은 영화군요.
    이젠 그냥 타켓이 아닌 수퍼타켓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시어즈(Sear's)는 대형매장보단 Macy's, Norstrom, JC Penny 같은 백화점에 가깝습니다.(하긴 시카고에 사는 이모는 시어즈를 대형매장 이용하듯 하긴 합니다만..)

    제니퍼 코넬리의 당시 모습을 사랑하는 분들은 내용과 관계없이 이 영화를 좋아하시겠네요.

    이상 영화와는 전혀 무관한 댓글이었습니다.^^
  • 게렉터 2007/03/20 10:32 # 답글

    경아/ 이런 덧글 역시 영화 덧글만큼 반갑습니다. 경제지에서 90년대에 미국 소매업계에서 "시어즈의 고객이 월마트로 넘어가는 현상"이 상당히 관심을 끌며 보도 되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바닷물 색깔 들먹이는 말을 남용하면서, 블루오션 레드오션 거리는 주제였습니다. 그 무렵에 부합하는 소재다 싶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 FAZZ 2007/03/20 16:08 # 답글

    미국의 장점, 아니 북미의 장점은 단층으로 넓게 쓴다는 것이죠. 굳이 2층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는.
    캐나다 있었을때도(잠시) 2층은 장사가 잘 안되는 편이더라구요.
    그나저나 제니퍼 코넬리의 가슴만 보이는 스크린샷이군요 ^^
  • 게렉터 2007/03/21 13:57 # 답글

    FAZZ/ 호주나 뉴질랜드도 그렇고, 한때는 러시아나 중국도 좀 그런 식으로 건물을 지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2010/06/05 00:43 # 삭제 답글

    솔직히 제니퍼 코넬리 아니었으면 안 봤을 영화...

    커서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데보라 역을 했었을때의 얼굴이 남아있긴한데 전 어릴때가 더 예쁜 것 같네요. 그렇다고 제가 로리콘은 아닙니다만;;
  • 게렉터 2010/06/07 22:00 #

    제니퍼 코넬리는 대체로 "페노미나"에서부터 이 영화 "백마타고 휘파람불고"까지가 미모의 절정기 아니었나 합니다. 이 영화는 사실 제니퍼 코넬리 하나로 다 때워서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는 회자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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