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총성이 (핑크팬더 2) A Shot In The Dark 영화

1964년작, "어둠 속에 총성이"는 보통 "핑크 팬더" 시리즈 2편으로 불리우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정작 핑크 팬더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핑크 팬더" 시리즈의 주인공인 클루조 경감과 그 친구들이 나오는 영화일 뿐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저택 추리극입니다. 방과 복도가 많은 저택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저택 안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탐정이 사람들을 거실에 모아놓고 마지막에 일장연설을 하면서 범인을 밝히기도 하고, 자주 그렇듯이 꼭 온 집안의 전기가 나가는 장면도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클루조 경감이 그 탐정이니 만큼, 이 영화는 무서운 음모가 아니라 익살과 농담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범인은 여러분 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 영화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웃음은 당황하는 클루조 경감의 모습에서 나옵니다. 클루조 경감은 진지하고 날카롭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자꾸만 예기치 못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갑부인 거물의 저택에서 일어난 수수께끼같은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클루조 경감은 이 골치아픈 사건을 해결해야만하는 프랑스 경찰의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하며 멋있게 담배를 피우려는데 옷에 불이 붙어버린다든지, 위풍당당하게 사건현장으로 들어서다말고 자빠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소하고도 어설픈 실수와 사고들이 클루조 경감 주변에는 끊이지 않습니다. 클루조 경감이 한껏 대단한척하면서, 명탐정인척 하지만, 주변에서는 자꾸 우스꽝스러운 한심한 문제를 드러내고 맙니다. 클루조 경감이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에서 웃긴 과장과 함께 진솔한 겁먹는 모습이 무척 재미있게 잘 드러납니다. 피터 셀러즈의 코메디 연기도 훌륭하고, 긴박하고 장중하게 사건을 진행하다말고, 슬며시 느릿느릿 사소한 실수에 엉켜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구성 방식도 재미있습니다. 이런 피터 셀러즈의 연기는 어려운 일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꾸미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감정과 실력의 한계를 갖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과장하고 있는 것있는 것이기에, 꽤 흥겨운 웃음이 됩니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십시오.)

실수에 당황하는 약한 모습 연기와 함게, 거기에 맞물려 있는 반대 방향의 허풍이 강한 모습도 못지 않게 재미있습니다. 클루조 경감은 어림없어 보이는 자신의 한계를 감추고 대단한 척 하기 위해, 쓰잘데 없는 무모한 자신감에 불타오르려 합니다. 그러면서 괜히 큰소리치고 과장된 어투로 확신에 차 있는 듯한 말투로 대사를 합니다. 그 어처구니 없는 확신과 무모한 거짓 수작들은 웃음을 줍니다. 단서를 늘어 놓으며, 중간중간 강조한답시고 "사실! Fact!" 이라고 외치는 그 표정과 목소리는 위력적인 코메디언의 기본기를 잘 보여 줍니다. 겁먹어서 놀란 주제에 "반사적인 가라데" 운운하며 큰소리치는 동작과 표정, 목소리가 어울릴 때는 순간적으로 웃음을 끌어올립니다.

클루조 경감의 이러한 당황과 허풍을 계속해서 강조하기 위해서 "어둠 속에 총성이"는 추리극에 연애이야기 하나를 끌어다 붙였습니다. 클루조 경감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에게 홀딱 반해 버리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괜히 무작정 이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고 밀어 붙이게 됩니다. 사사로운 감정때문에 억지를 쓰는 모습은 인간적인 실수입니다. 그리고 그걸 가려보자고 상관과 부하에게 막무가내로 오직 망할 뿐인 수사작전을 자신감있게 제안하는데, 이 역시 웃음을 이끌어 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피터 셀러즈의 코메디 활약상은, 훗날 로완 앳킨슨이 "블랙애더" "미스터 빈"등등에서 선보일 청출어람의 좋은 스승감입니다.


(용의자에게 반한 탐정)

그러나 "어둠 속에 총성이"의 이런 코메디들은 영화에 어울려 나오면서 조금 부족한 데가 생겼습니다. 그 깔려 있는 바탕은 이 영화의 웃음들이 거의 모두 클루조 경감 혼자 보여주는 1인극이라는 것입니다.


(클루조 경감 등장)

클루조 경감의 몇몇 동료들이 나름대로 웃긴 소리를 조금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농담의 상대가 된다거나, 웃긴 상황을 주거니 받거니 해주는 상대는 없습니다. 여자 주인공은 그냥 옆에 같이 앉아 있을 뿐 특별히 웃기는 일에 협조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그냥 일상적으로 행동할 뿐입니다. 오직 클루조 경감 혼자 넘어지고 걸리고 부러뜨리며 웃기려고 합니다. 처음에 영화를 보기 시작할 무렵에는, 사건이 흥미롭게 제시되면서 하나둘 등장하는 이 허무맹랑한 실없는 웃음거리들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방법이 그거 하나다 보니까 아쉽게도 끝까지 그렇습니다. 그냥 소소한 웃음을 주는 실없는 웃음만 계속 나올 뿐인 것입니다.

이런 아쉬운점이 더욱 문제가 되는 까닭은, 때문에 클루조 경감을 장황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클루조 경감은 여러가지로 웃기기 위해서, 문제의 저택, 경찰서, 길가, 자기 집, 그리고 나체주의자 공동체까지 여러 지역을 왔다갔다해야 합니다. 걸리고 꼬이는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다양한 배경을 이래저래 싸돌아다녀야하는 것입니다. 특히 나체주의자 공동체는 거의 아무 상관없이 강제로 끼워져 있는 배경입니다. 그렇게 클루조 경감이 계속 나돌아다니다보니, 정작 추리극의 다른 인물들은 다 잊혀져 버립니다.


(핑크 팬더는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시작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어둠 속에 총성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름대로 선명한 배역을 가진 선명한 배우들이었습니다.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극에 딱 어울릴 법한, 뚜렷하게 성격이 다른 다채로운 사람들이 있엇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들 중에 누가 범인일까요?" 하면서 나타나 주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여러가지 모습들과 그 묘사가 꼭 감춰진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느낌도 있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클루조 경감의 코메디와 어울릴 수도 있을법해서 상당히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클루조 경감이 나돌아다니는 통에, 영화가 끝날때 까지도, 이 사람들은 제대로된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누가 범인일까 의심하면서 각각의 성격에 빨려들게 하기 좋은 재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예 저택에 누가누가 있었더라 하는 점마저도 제대로 기억시키지 못할 정도에 그친 것입니다.


(그때 이 집안에 누가누가 있었다고요?)

웃기느라 희생했다고 하기에는 확실한 모자람이 보입니다. 시작 장면에서, 저택의 상황을 음악과 함께 세트를 크게 지은 연극 도입부처럼 멀리서 한 눈에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살인 장면의 전후사정을 천천히 길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현장을 관객에게 목격하게 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관객에게 살인사건의 순간을 보여주면서 사건에 대해 호기심을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관객 스스로 의심하고 추리하게 유도하는 기회도 만들어 줍니다. 관객에게 이 흥미롭고 인상적인 상황을 목격하여 기억하게 한 뒤에, 그 기억을 살려가면서 이야기거리를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별 상관 없이 웃기는데 전력하느라, 이 시작장면의 가치가 거의 다 날아가버리고 잊혀지게 되어버렸습니다.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저택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의심과 저택에 있던 사람들끼리의 감정을 잘 전달했을 때 굉장히 재미있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꽤 좋은 형식이라서 클루조 경감이 얽혀서 대소동의 난장판으로 혼란스럽게 망해 먹기에 그럴싸한 갈등 구도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역시 저택의 사람들 중에 비중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에 갈등과 감정을 살리지 않고, 그냥 어물쩡 줄거리만 말해주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클루조 경감이 자기 입으로 두세번 해설을 해줘야만 사연이 분명해질 정도로 부실하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시간을 맞추세.)

"어둠 속에 총성이"는 클루조 경감이 활약하는 코메디를 살리기 위해서, 상당히 재미있을 수 있었던 저택 추리극 이야기거리를 부실하게 처리한 영화라고 할만합니다.

우스꽝스러운 실수로 연결되는 코메디가 계속됩니다만, 그 와중에 꽤 박력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영 앤 이노센트"나 "나는 비밀을 안다" 같은 영화처럼, 이 영화에는 영화속에서 벌어지는 공연이 절명의 아슬아슬한 순간의 긴장감을 높이는 배경음악처럼 사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점점 빠르게 움직이는 스페인 춤을 구경하는 모습을 비춰줍니다, 음악과 춤이 빨라지면서 긴장감이 높아가는 동안, 서서히 권총을 꺼내어 조준해 죽이려하는 살인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담아내면 효과는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뿐입니다. 영화 전체의 이야기가 절정으로 올라가면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못됩니다. 그냥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재미난 볼거리 정도로 그칩니다.

역시, 이 영화에서는 그보다야 클루조 경감을 연기하는 피터 셀러즈의 기묘한 프랑스 억양 대사로 웃기는게 재미거리입니다.


그 밖에...

이 영화의 원작은 헨리 쿠니츠가 쓴 연극 대본입니다. 이것을 핑크 팬더 시리즈로 급하게 개조한 것인데, 영화에서 코메디 때문에 추리극이 묻히는 느낌이 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이 영화에는 헨리 쿠니츠의 연극 대본에 적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안 나온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핑크 팬더 1편이 완성되기도 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셀러즈가 주인공이고 블레이크 에드워즈가 감독을 맡는 여섯편의 핑크 팬더 시리즈의 기틀이 잡히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나타난 것도 바로 이 2편, "어둠 속에 총성이" 때 부터입니다.

클루조의 자빠지는 웃음들 때문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이 영화의 인물들과 내용은 "살인무도회 Clue"와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총성이"와 달리 "살인무도회"는 저택 추리극의 정수를 추출해서, 그 자체로 신나게 웃긴 저택 소극(笑劇, farce)을 꾸며 줍니다.

블레이크 에드워즈는 40년대에서부터 90년대까지 줄곧 감독과 작가로 활약한 사람입니다. 많은 코메디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 걸작으로 자주 칭송받는 영화들이 오드리 헵번 주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잭 레몬 주연의 "술과 장미의 나날 Days of Wine and Roses" 입니다. 헨리 맨시니가 음악을 맡도록 같이 일한 일이 많은 데, 이것은 꼭 세르지오 레오네와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업과 흡사하다 할만합니다. 블레이크 에드워즈는 1969년도 부터는 줄리 앤드루스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살인무도회 (클루 영화판, Clue, 1985) 2007-10-07 09:40:50 #

    ... 고 보자면, 이 영화만 해도, 결정적인 이야기의 핵심을 핑크팬더 시리즈 중 가장 인기있는 1960년대 영화인 "어둠 속에 총성이 (핑크팬더 2) A Shot In The Dark" http://gerecter.egloos.com/3061699 에서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그 영화는 원작이 연극으로 "라이어" 시리즈로 불리우고 있는 연극과 같이 배치할 ... more

덧글

  • 이준님 2007/03/20 18:16 # 답글

    1. 뭐 핑크팬더는 "마지막 장면"이나 "잘 들여다보면 분홍색 퓨마가 보이는 보석"등으로 우정출연은 자주 하지요.

    2. 피터 셀러즈의 타국 억양 연기는 1인 3역에 빛나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일겁니다.

    3. 핑크 팬더 마지막 시리즈는 클루조 경감의 "사생아"가 경감이 되서 펼치는 작품이지요. 무려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 viperwine 2007/03/20 19:44 # 답글

    개인적으로 팬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이상하게 그로테스크하지만 그 그로테스크함이 핑크빛이랄까요. 그 '나체촌 시퀀스'는 최고였습니다. ^^;
  • 게렉터 2007/03/21 13:56 # 답글

    이준님/ 사실 "핑크 팬더"는 1편에서 보석을 일컫는 별명이었고, 시작장면의 분홍색 표범은 상징적으로 웃기려고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편에서는 클루조 경감은 단독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살짝 비중 약한 주연 내지는 조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피터 셀러즈가 거기에 짜증을 내는 데다가, 클루조 경감 인물이 인기를 끌어서 클루조 경감이 주인공이 되는 시리즈를 찍어낸 것이 이 시리즈 입니다.

    그러다보니, 1편의 속편인것처럼 하고 싶은데, 1편은 클루조 경감이 주인공이 아니었으니, 대강 때려 잡은 제목이 "핑크 팬더"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중엔느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나오고 하면서, 보석과는 상관 없이 도둑/범죄자인 분홍색 표범 자체를 핑크 팬더로 일컫게 되었습니다.

    피터 셀러즈 억양 연기의 또다른 걸작인 "5인의 명탐정"에 관한 글을 곧 올리려고 합니다.

    viperwine/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핑크팬더 시리즈 최걸작으로 꼽습니다. "그로테스크함이 핑크빛이 랄까"의 다른 예로는 쌍둥이 같은 영화인 "5인의 명탐정 Murder by Death"과 "살인무도회 Clue"를 꼽을만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 미디어몹 2007/03/21 18:03 # 삭제 답글

    곽재식 회원님의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되었습니다.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 아롱쿠스 2007/03/22 00:10 # 삭제 답글

    난 만화 '핑크팬더'가 더 좋아요...

    달려간다 우리친구 핑 핑크팬더~~!
  • 게렉터 2007/03/23 15:26 # 답글

    아롱쿠스/ 애니메이션판은 1960년대 핑크팬더의 유행으로 1960년대말부터 TV방영도 시작된 시리즈였습니다. 최초의 감독은 루니튠즈의 작업으로 명망 높은 Friz Freleng 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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