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명탐정 Murder by Death 영화

"5인의 명탐정"은 외딴 곳에서 고립된 채 벌어지는 저택 추리극을 소재로 한 패러디 코메디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추리 소설의 탐정인 에르큘 포와로, 마플 여사, 더실 해미트가 쓴 추리 소설의 탐정인 샘 스페이드, 얼 데어 비거스가 쓴 추리 소설의 탐정인 찰리 챈, 그리고 더실 해미트 소설에 나오는 닉과 노라 부부와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에 나오는 토미와 터펜스 부부를 합성한 듯한 부부의 변형 인물이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는 각각 밀로 페리에, 마블스 여사, 샘 다이아몬드, 시드니 왕, 딕과 도라 찰스턴 부부로 나옵니다. 이 중에 도라 찰스턴은 탐정으로 거의 활약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동료 한 명씩과 함께 등장합니다. 그래서 2인조 다섯쌍의 유명 탐정 팀이 떼거리로 나와서 한 저택에 갖혀 살인극을 추리한답시고 저택 소극(笑劇, farce)을 펼치는 것입니다.


(범인은 이 사람들 중에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을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는 않은 것을 짐작 안하는 바가 의심스럽다.)

이 영화의 가장 멋드러진 점은, 어림없는 웃음거리라는 형식을 잘 활용해서, 신기하고 호기심을 생기게하는 추리극의 요소들을 대량으로 풍부하게 부려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정교한 결론이나 진짜같은 인물의 심리묘사, 범죄동기의 현실감과 살해방법의 실제감 같은 것은 다 포기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도 하지 않고, 그냥 멋있고 신기한 발단, 도입, 설정들을 잔뜩 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설명하고 풀이하는데 대한 걱정 없이, 추리 영화의 신기한 요소를 마구 등장시킨 것입니다. 음습한 사연이 깃든 저택, 호사스럽고 괴팍한 백만장자, 난데없이 닥치는 살인음모, 갑자기 사라지는 주요 인물, 호언장담하는 살인 예고, 무시무시한 죽음의 위기,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기이한 살인 방법, 등등 여러가지 흥미진진한 요소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느와르 영화 추리극답게)

비록 장난으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이런 추리극의 사건과 음모들은 웃기면서도 제대로 분위기를 잡아 줍니다. 호기심을 생기게 하며,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런 어마어마하게 터무니없는 음모가 벌어지는지 자꾸 궁금하게 합니다. 대소동의 즐거운 느낌이 있으면서도, 음험한 살인사건의 무대라는 외딴 저택의 어두운 심야 분위기 역시 잘 살아나 감도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리극 분위기에는 일단 좋은 음악이 한 몫하고 있습니다. 데이브 그러신이 맡은 음악은 선명한 곡조라든가 감상적인 선율은 없지만, 짤막짤막하게 영화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멋진 배경이 되어 줍니다. 공포물과 같은 불안한 느낌과 기괴한 느낌이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줄기차게 신나는 대소동이라는 희화화된 느낌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다섯 명이나 되는 탐정들이 등장해서, 추리물 다운 이상한 사건들을 계속해서 쉴새없이 겪는 빠른 영화입니다. 이 발빠른 흐름의 신나는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살인극이라는 분위기 자체의 천천히 조마조마한 사건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계속 뜸을 들이고 또 들이는 끌어가는 느낌을 내는데 음악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음악보다 더 좋은 것은 배우들 좋은 모습입니다. 이 영화에는 인종주의를 과장해서, 농담 소재로 활용하는 것도 많은데다가, 몇몇 인물들을 장애인으로 설정하거나 살짝 변태스러운 짓을 시킨 뒤 부끄럽게 해서 웃기려는 부분도 꽤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인물 표현이 부족하면 웃음거리가 아니라, 그냥 단순무쌍한 이상한 놈 욕하고 비웃는 것으로 전락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면 과장과 편견을 동시에 비웃는 묘한 느낌에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있습니다. 중국계 늙은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농담 소재로 삼습니다. 이 때, 과장되게 틀린 영어로 웃기고, 중국인은 무조건 영어를 못해서 깔보기 마련이라는 그 편견을 풍자하면서 또 웃기는 것입니다.


(시드니 왕을 연기한 피터 셀러즈)

말인 즉슨, 중국계 탐정 시드니 왕을 연기한 피터 셀러즈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피터 셀러즈는 여러 영화에서 갖가지 성대모사스러운 연기를 주특기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중국계 영어도 훌륭합니다. 이 영화에 과장되어 있는 중국식 영어 발음과 표현을 태연자약하게 읊조리는 것이 재주가 좋습니다. 그렇거니와 이 영화에서 가장 농담으로 많이 등장하는 별별 상황에서 가짜 중국 속담을 마구 남용해서 황당무계한 비유를 들먹이는 대사도 재미있습니다. "대화란 신혼여행에서 TV와 같은 것이다. 즉 불필요한 것이다." 따위의 속담을 진지한척 들먹이는 코메디가 무척 유려합니다.

다른 배우들도 희화화에 적역입니다. 데이빗 니븐은 닉 찰스를 연기한다고 하기에는 "부부탐정"의 토미스러운 면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인생이 토미 스러운 데이빗 니븐은 호사스럽고 정중하며 여유롭고 부유한 취미 탐정가에 잘 어울립니다. 마블스 여사를 연기하는 엘사 렌체스터는 배역이 아주 작습니다만, 그래도 소설속에 묘사된 마플 여사에 어울리는 면이 있습니다. 에르큘 포와로를 패러디하고 있는 제임스 코코의 연기는 에르큘 포와로의 미식가 취향과 식욕을 과장해서 웃기려고 합니다. 웃기는 양은 적어도, 역시 코메디언답게, 사소한 일에 놀라고 당황하는 표현이 좋습니다.


(데이비드 니븐과 매기 스미스가 연기하는 부부탐정)

배역 선정 자체로 재미있는 사람은, 형사 콜롬보 역할로 친숙한 피터 포크가 연기하는 샘 다이아몬드 입니다. 샘 스페이드 대신 샘 다이아몬드라니 이름부터가 싱겁게 웃깁니다. 피터 포크는 형사 콜롬보에서도 큰 차이가 안 나는 모습으로, 어두운 뒷골목의 피곤에 쩔어 있는 느와르 영화 탐정에 잘 어울립니다. 그러면서도 피터 포크는 특유의 부정확하게 흘리는 발음과 작은 몸집으로 좀 구부정하게 걸어다니는 태도로 어딘가 꾀죄죄하고 빈 데가 많은 듯한 인물을 연기합니다. 이게 샘 다이아몬드라는 느와르 영화 탐정을 과장해 웃기는 일로 잘 이어집니다.

이 샘 다이아몬드에게는 충직한 비서를 연기하는 에일린 브레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비서라는 직함은 별 상관도 없고, 사실은 느와르 영화 속의 음모를 품은 여자 주인공 역을 해주기 위해 옆에 서 있어 줍니다. 샘 다이아몬드는 좀 한심해 보이는 주제에 이 비서를 상대로 여러가지 여자주인공 앞에서 멋있는척 하는 냉소적이고 씁쓸한 탐정역할 흉내를 냅니다. 그렇게 흔히 "하드 보일드"물이라는 이야기를 풍자합니다. 과장된 무심한 남자스러운 폼잡기가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드러내면서 웃음을 주는 것입니다. 이 역시 꽤 멋집니다. 영화 마지막 쯤에 이르면 억지스럽고 설득력 없는 추리소설들을 비아냥 거리는 대사가 등자하는 데, 이것도 이러한 풍자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억지로 느와르 영화 여자 주인공 역할을 떠맡는 에일린 브레넌)

결점을 찾는다면, 앞뒤무시하고 괴상한 도입부와 호기심을 끄는 사건만 마구 벌여 놓은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결말을 맺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모든게 흐지부지 되는 결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교한 수수께끼 풀이는 애초부터 포기했다고는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막판 절정 다운 대소동이나 시끌벅적한 난리를 한 번 벌일 수는 있었을 겁니다. 그런 기회를 놓치고 개인기로 대강 때우면서 마무리하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영화보는 재미를 북돋워 주는 것들은 더 있습니다. 이런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저택 세트가 탄탄하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택 세트의 화려하고도 널찍한 모양이, 특별한 과장 없이도 다채로 색상으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양은 깊은 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외딴 장소의 신비로운 느낌을 잘 살립니다. 옛날 자동차나 배우들의 의상도 좋습니다. 웃기려고 만든 시드니 왕의 중국옷을 제외하면 보기 좋게 멋집니다. 이런 세트 속에서 다양한 특징을 가진 배우들이 북적북적하면서 계속 활약하는 모습은 적당히 즐겁습니다.


(낸시 워커와 알렉 기네스)

덧붙여, 슬랩스틱 코메디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알렉 기네스와 낸시 워커 역시 칭찬해 마땅합니다. 낸시 워커는 비중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과 뭔가 심술 궂은 사람 같아 보이는 표정 연기 한방으로 단박에 인물을 드러내는 위력이 있습니다. 한편, 음험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고딕 소설 속의 집사 역할을 알렉 기네스는 잘 해냅니다. 예의바르면서도 무서운 집사 역할을 연기하는 알렉 기네스의 모습은 훌륭합니다. 알렉 기네스는 그런 겉모습과 반대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와 멍청한 짓을 계속 반복하는 것으로 웃음을 줍니다. 하는 짓이 과장된 바보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꼭 진짜 그 사람이 진심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듯한 현실감을 주는 솜씨를 알렉 기네스는 보여줍니다. 그런 놀라운 기술로 알렉 기네스는 영구 코메디를 훌륭히 해냅니다.

이 영화는 서서히 기이한 일들이 하나둘 벌어지며, 밤12시에 저택안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는 예고가 울려퍼집니다. 그렇게 달려오는 점층법으로 시작합니다. 그에 비하면 결말은 싱겁게 맺는다고 생각될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인상적으로 여긴 것에는 비중이 적었던 듯한 두 사람의 개인기 활약이 막판에 터져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밖에...

이 영화는 톰 스톱퍼드 Tom Stoppard가 대본을 쓴 연극인 "The Real Inspector Hound"에 어느 정도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 연극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대본을 쓴 연극 "쥐덫"의 패러디를 염두에 둔 코메디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브라질" "태양의 제국"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각본가로도 유명하며, 훌륭한 극작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래저래 많이 언급된 듯 한데, 대학로 공연에서 원작자 표기를 구석에 숨기는 이상한 습성때문인지, 톰 스톱퍼드 희곡의 국내 공연 정보는 잘 검색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1948년에 발매된 보드게임 "클루 Clue"의 영향이 군데군데 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저택 구도와 등장인물의 설정 자체도 "클루"스럽게 짜여진 부분이 있거니와 몇몇 대사들 역시 "클루"의 인용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나온 뒤 10년 후에, 진정한 "클루"의 영화판인 "살인무도회 Clue"가 나옵니다. 이 영화는 거물급 인기 배우들은 더 적음에도 불구하고, 결말까지 이야기가 긴장감있게 치솟으며 훌륭하게 펼쳐집니다.


(클루를 연상하게 하는 시작장면. 저 그림은 "아담스 패밀리"의 창조자인 만화가 찰스 아담스가 맡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데이브 그러신은 "구니스"에서부터 "굿바이 마이 프렌드 The Cure"까지 많은 영화에서 작업했습니다. 음악 자체로 두드러지기보다는 영화 분위기에 잘 녹아드는 작곡을 오랫동안 선보였습니다. 각본은 코메디의 달인인 닐 사이먼이 맡았습니다.

마블스 여사로 등장하는 엘사 란체스터는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대표작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서 여자 괴물 역할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밀로 페리에로 등장하는 제임스 코코는 많은 코메디 영화에서 활약했는데, 80년대판 "환상특급 Twilight Zone"에서 극작가 역할을 재미있게한 에피소드(118. Act Break)도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최근 "24"에서 필립 바우어 역으로, "더 퀸"에서는 프린스 필립 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제임스 크롬웰의 데뷔작입니다. 또 도라 찰스턴으로 등장하는 매기 스미스 역시 최근까지 해리포터 시리즈의 맥고나골 교수 역 등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명배우입니다. 매기 스미스가 이 농담 같은 영화 바로 다음에 찍은 영화가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전통적인 저택 추리극으로 진지하기 이를데 없는 "나일 살인 사건 Death On The Nile" 입니다.

IMDB Trivia 에 따르면, 알렉 기네스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스타워즈"의 대본을 읽어 봤다고 합니다.

"5인의 명탐정"은 TV방영제목으로 비디오 출시판의 제목은 "5인의 탐정가"라고 합니다. 이 영화의 후속으로 속편격인 "카사블랑카의 살인 The Cheap Detective" 가 곧이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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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arlowe 2007/03/21 18:45 # 답글

    KBS에서 방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원어로 다시 보고 싶군요.
  • 잠본이 2007/03/21 21:09 # 답글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아직 보지는 못해서 아쉽군요.
  • dcdc 2007/03/21 22:48 # 답글

    어렸을 적에 이 영화를 보고 참 두근두근했었지요. 이제는 하나도 내용이 기억이 안나지만 ^^; 언제 꼭 찾아봐야 겠습니다.
  • 게렉터 2007/03/23 15:22 # 답글

    marlowe/ KBS 더빙판에서는 피터 셀러즈의 엉터리 중국인 흉내가 많이 죽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분장, 의상, 표정연기의 묘미는 여전했습니다.

    잠본이/ 추리물을 즐겨 읽으신다면 상당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살인무도회 Clue"와 연달아 보셔도 재미있을 겁니다.

    dcdc/ KBS판에서는 마지막 웃음소리 장면이 더빙에서 풀려나면서 더욱 신비스럽게 강조되어 멋지게 잘 살아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블랙 2007/03/23 17:16 # 답글

    살해당한 인물로 나온 사람이 바로 '트루먼 카포티'였죠.

    마지막의 해결장면에서 추리가 나올때마다 인물이 계속 변하는 '알렉 기네스'는 참으로 압권이었습니다.
  • 게렉터 2007/03/24 15:13 # 답글

    블랙/ 맞습니다. 깜짝 출연이면서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진과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업과도 겹치는 면이 유명합니다.
  • yu_k 2007/12/16 11:31 # 답글

    안녕하세요, 검색을 통해 들어왔다가 결국 포스팅 핑백 신고하고 갑니다^^
    멋진 리뷰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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