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보다 치명적인 Deadlier Than The Male 영화

비행기 안에 변장한 여자주인공 특수 요원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한 뒤에, 비행기 문을 열고 과감하게 공중에서 뛰어내립니다. 여자주인공은 낙하산을 펼쳐 어느 따뜻한 바다에 내리게 되는데, 그러면 여자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던 동료가 비키니차림으로 모터보트를 타고 나타나 여자주인공을 태워 갑니다. 이 장면은 2000년작 "미녀삼총사 Charlie's Angel" 영화판의 시작장면이기도 합니다만, 그 보다 34년 먼저 나온 1966년작 "남자보다 치명적인 Deadlier Than The Male"의 시작장면이기도 합니다.




(시작 장면)

제목을 보나, 포스터를 보나, 강조한 특징을 보나 이 영화는 특수요원인 이 여자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게 좋을 법합니다. 그런데, 시작장면이 지나고 잠시 넘어가고나면 갑자기 더 주인공스러운 주인공이 튀어나옵니다. 진짜 주인공은 제목과 달리 남자 주인공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 자는 불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휴 드러몬드라는 보험 조사원으로, 특수요원 여자 주인공들이 저지르는 일을 조사하고 막으러 다니는 것이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그리하여 영화가 진행되어가면, 첫장면의 화려한 시작에 비해서 이 여자주인공들의 특수작전들을 볼 기회는 급격해 줄어들어갑니다.

드러몬드는 말만 보험 조사원이지 하는 짓은 더도 덜도 아닌 제임스 본드 흉내입니다. 여자들에게 엄청나게 인기많은 늙수레한 독신남으로 여유있게 농담을 읊조리고 멋있게 정장차림으로 싸돌아다니며 자동차 좋은 것을 자랑합니다. 격투에서부터 외국어까지 온갖 일에 능통하며, M비슷한 늙은이 상관에게 지시를 받고, 임무 수행차 이국적인 해변을 관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독특한 활약을 보여주고 신기한 멋이 강한 쪽은 여자주인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남자주인공에게 제임스 본드 폼잡기를 시키다보면서 부각시키다보니, 영 재미거리를 제대로 못살리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반대로 여자 주인공들의 활약은 꽤 재미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숀 코네리 흉내란 이런 것이오.)

아쉬운 것은 남자주인공쪽이 제임스 본드 흉내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이국적인 장소를 돌아다니며 멋쟁이들과 부자들, 정부 고관들과 상대하는 화려한 영화로 내용을 꾸려낸 영화가 아닙니다. 마지막 부분과 중간중간에 그런 흉내만 좀 냈습니다.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내용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어두운 밤 도시의 뒷골목에서 암흑가의 악당들과 추격전을 벌이고 격투를 하는 것입니다. 깊은 밤 도시의 한 구석을 지나치는 택시, 몰래 주인공의 뒤를 밟는 두목의 하수인, 주인공이 지친 채 돌아와 몸을 누이는 조그마한 아파트 같은 것들이 있는 느와르 영화스러운 이야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어둡고 그늘진 느와르 영화 흉내와 밝고 화려한 제임스 본드 영화 흉내를 별 상관없이 번갈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도입부를 비롯하여 중간중간 잠깐씩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의 특수작전이 특징적으로 이목을 끕니다. 이 특수작전은 좀 비현실적인 장난 비슷한 신기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국적이고 신나는 모험담에는 어울립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그늘진 느와르 영화 흉내와는 바로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도시의 밤을 다룬 부분은 화려하고 현란한 부분 사이사이에서 시간을 때우는 지루한 버티기 장면으로 보일 위험이 큽니다.


(밤에 나타난 위험한 여자 주인공)

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는 공상적인 장난같은 성격이 무척 강한 영화입니다. 그중에서 최악인 것은 주인공 조카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드러몬드는 느긋하고 실력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드러몬드의 조카라면서 방정맞고 촐싹대는 젊은이가 한 명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주인공 앞에서 철없는 농담따먹기하는 조연으로 주로 활약하며, 주인공과 대조적으로 한심한 실수를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별 이유도 없이 "배트맨과 로빈"처럼 주인공하고 같이 싸돌아다니는 조수 역할을 해줍니다. 말인 즉슨, 악당한테 한 번 붙잡혀가서 주인공이 조수 구하러 가는 장면이 있다는 뜻입니다. 대체 왜 그럴듯하고 늠늠해 보이는 제임스 본드 스러운 주인공이 왜 자기 조카를 데리고 다니면서 악당들과 싸우는 것인지 명확히 알 길은 없습니다.

발랄한 이야기에서 좀 촐싹대는 조연이 있기로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만은, 문제는 막판에 이 조카가 갑자기 어떤 이유도 없이 나무 작대기 하나 들고 기관총을 든 악당의 특수요원들을 다 제압해버리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앞에서 여자친구를 어떻게 해볼까 하는 점에 인생을 걸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중간에는 바보스럽게 미인계에 헬렐레하다가 죽을뻔하기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순간적으로 아무 사연도 없이 갑자기 진지하게 혼자 난리를 치며 코만도가 되는 겁니다. 이 사람이 경찰서나 MI6에 결정적인 순간에 신고를 해서 일을 해결했다든가해도 이정도로 황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왼쪽이 주인공 조카)

주인공 조카가 이따위로 활약할지니, 과연 악당들의 바보스러움이 어느 정도일지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악당두목은 자기의 성에서 주인공과 대결을 하는데, 그 많은 특수요원 부하들과 경비병은 부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주인공과 갑자기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1대1 대결을 하는 짓을 문득 왠지 모르게 해버립니다. 악당 주인공의 무서움도 멍청함으로 화하고, 깊숙한 악당의 성의 고립감이라든가 중과부적의 위험한 느낌도 산산히 다 깨어져 버립니다.

악당두목의 바보스러움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덕분에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거리였던 여자주인공들의 활약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흉내를 위해서 드러몬드가 여유부리며 멋있는 자동차 모는 장면은 꼭 넣어야 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대립구도로 명확하게 잡아 낼 수는 있었을 겁니다. 남녀주인공이 서로 쫓고 쫓기면서, 장군 멍군을 주고 받는 치열한 대결구도로 끌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특수작전을 펼치는 여자 주인공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미꾸라지처럼 도망치고, 남자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다른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방법으로 여자 주인공들을 바짝 쫓으며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활약하게 한다면 꽤 재미있을 수 있었을 겁니다.


(만난 남녀주인공)

그런데, 이 영화는 마지막에 악당 두목을 따로 등장시키는 통에 이 여자 주인공들의 비중이 확 쪼그라들어 버렸습니다. 여자주인공들이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거물이 아니라, 그냥 악당 부하 1,2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등장하는 시간도 왠지 남자주인공 조카보다도 적어집니다. 그런 마당에 악당 두목이 무섭고 치밀하기는 커녕 영구스러울 뿐이니, 도무지 영화의 진지한 분위기는 없어져 버립니다. 여자 주인공도 힘없어 보이는데다가, 아슬아슬함이나 긴장감대신 허무맹랑함이 감돌기만 합니다.

그런고로,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치밀한 사실감이 아니라, 공상적인 상상력이 힘을 쓰는 환상적인 요소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보스런 마지막 1대1 대결장면만해도, 진지한 결투라는 점을 무시하고, 신기하고 이상한 것을 지켜보는 재미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멋진 면은 있습니다.


(거대한 체스판)

이 결투에서 주인공과 악당 두목은 사람 크기만큼 거대한 체스판을 뛰어다니며 싸움을 벌입니다. 즉 체스의 말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기사 말 뒤에 숨고, 여왕 말 옆에서 총탄을 피하며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마치 체스의 말들이 주인공들의 동료나 적이 된 것처럼 거대한 체스판을 넘나들며 싸운다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여러모로 상징적인 표현을 하기에도 좋았습니다. 좀 더 현실감이 날만큼 체스 말이 건물 기둥만큼 거대했고, 악당이 단지 바보짓을 하다가 영구처럼 퇴장하지만 않았다면, 이 장면은 뭘로 보나 꽤 신기했을 겁니다.

여자 주인공들이 미인계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활약하는 모습들과, 이들이 활용하는 여러가지 비밀무기도 군데군데 재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마비 독약을 이용해서 무표정한 마비된 희생양의 표정과 비웃는 악당들의 표정을 번갈아 보여주는 부분은 꽤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는 진지한 회의나 의견 교환 장면은 모두 "전문적"인듯 보이려고 흉내내는 어조에만 젖어있습니다. 그래서 외려 진지하거나 사실적인 느낌이 살지 않습니다만, 대신에 반대로 특수 무기를 사용하고 특수 작전을 펼치는 기이한 연기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은 꽤 좋습니다. 악당스러운 표정에 소질이 있는 엘케 좀머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미인계를 쓰는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좀 재미없고 별 내용도 없는 남자주인공의 추적장면 사이사이에 이런 여자주인공들의 테러와 폭파장면 같은 것들이 흥겹게 끼어들어서 흥미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한 여자 주인공들: 엘케 좀머 - 실비아 코시나)

음악은 그 사이에서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주인공 조카 혼자 맨몸으로 나타나서 갑자기 악당 군단을 모조리 제압하는 팔랑거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음악은 제임스 본드 배경음악 분위기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가사까지 비슷합니다. 이런 음악은 조금은 심각한 면도 있고, 세계평화나 국가 정보전과 직결된 거창한 분위기를 낭만적으로 느끼는데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하게 발랄하고 싱거운 이 영화의 음악치고는 좀 과한데가 있게 느껴집니다. 조금은 농담 같은 느낌을 살린다든가 좀 더 명랑한 분위기의 다른 음악을 배치하는 것이 효과는 더 좋았을 것입니다.


(발랄한 여자주인공들)

그리하여 이 영화에서는, 괜히 진지해하고, 여자주인공들의 비중이 흐지부지되는 중반부보다는 시작장면과 마지막 부분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작렬하는 낭만적인 모험담 분위기가 유쾌한 면이 있고, 줄기차게 이어온 관능적인 미인계 분위기를 최후로 발산하는 "옷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폭탄"이란 소재도 결말에 잘 어울립니다. 영화 전체에 걸쳐 여자주인공들의 성격을 표현하며 이어온 복선을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활용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수법이라고는 해도 결말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정도면 아쉬운 면이 있어도 충분히 흥겨운 영화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방법 뿐이오.)


그 밖에...

사실 드러몬드 시리즈는 소설 원작이고, 무성영화 시대부터 영화가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은 느와르 영화 분위기로도 제작된 바 있는 "하드보일드 탐정물"에 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읽어본적은 없습니다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미국 서부 도시의 밤거리에서 위험한 여자 주인공의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가난한 사립탐정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영국 소설이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흥겨운 제임스 본드 영화 아류작으로 꾸미면서, 게다가 제임스 본드 영화와는 꽤 다른 여자 주인공들이 주인공보다 더 인상적인 내용까지 끌어들이다보니 여러가지 안어울리는 요소들이 많이 나온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 주인공을 맡은 엘케 좀머는 "어둠 속에 총성이 (핑크팬더 2)"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로 이야기한 바 있고, 당대의 인기 배우였습니다. "계속하여 Carry On" 시리즈에도 한 번 나옵니다.

이 영화는 1969년에 속편, "Some Girls Do" 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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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디어몹 2007/03/27 09:19 # 삭제 답글

    곽재식 회원님의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되었습니다.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 rumic71 2007/03/27 18:00 # 답글

    이것이 그 유명한 엘케 소머의 출연작...(유명한?)
  • 게렉터 2007/03/27 20:26 # 답글

    rumic71/ 여러모로 유명하다 할만하지 않겠습니까. 유명한 이탈리아 공포 영화 주연으로도 활약해 주었고, 국가적인 행사로 벌여서 다소 황당한 면도 많았던 1980 미스 유니버스 서울 대회로 갑자기 미스 유니버스 가 엄청난 행사로 주목받은 직후, 1981년인가에 미스 유니버스 대회 진행도 하고 했으니 말입니다.
  • 궁금합니다. 2008/07/09 06:46 # 삭제 답글

    이 영화도 그렇고 '조난요원'같은 영화가 제 취향에 딱 맞을 것 같은데
    dvd도 안팔고 어디 구할 수가 없네요...
    어디서 판매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 게렉터 2008/07/09 10:02 # 삭제 답글

    인터넷 DVD판매 사이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 입니다. 홍콩에서 운영하는 이 사이트 http://yesasia.co.kr/global/deadlier-than-the-male-us-version/1004400217-0-0-0-en/info.html 의 경우 제 경험으로는 주문후 1개월 정도 안에 도착했습니다.
  • 궁금합니다. 2008/07/09 10:10 # 삭제 답글

    휴...역시 외국사이트군요....영어의 압박이...쿨럭...
    빠른 답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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