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의 탈출 This Gun For Hire 영화

"백주의 탈출 This Gun For Hire"은 1942년에 나온 옛날 느와르 영화로, 베로니카 레이크와 알란 라드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베로니카 레이크는 느와르 영화에는 몇 편 출연하지도 않았으면서도 그 티끌하나 없는 금발을 화려하게 뽐내며 느와르 영화 주인공으로 인상을 강하게 남겼고, 이 영화에서 사실상 데뷔한 알란 라드는 훗날 범죄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강렬한 모범이 되었습니다.


(포스터)

이 영화의 내용은 마술사, 살인청부업자, 경찰, 대기업 중역의 네 주인공이 별로 상관 없는 것처럼 등장해서는, 살인청부업자가 저지른 살인 한 건과 그 결과를 놓고 사람들의 관계가 서로 얽혀 가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마술사와 경찰은 서로 약혼한 사이 비슷하고, 살인청부업자와 대기업 중역은 살인을 청부하고 일을 저지른 관계와 관련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 가면서 이것이 경찰과 살인청부업자의 관계, 마술사와 살인청부업자의 관계, 마술사와 대기업 중역의 관계 등등 서로서로 다른 방향으로 다양하게 짝지어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다채로워집니다.


(마술사)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 영화의 재미있는 부분에, 이렇게 관계가 꼬이면서 복잡해 지는 것이 큰몫을 차지 하는 편은 아닙니다. 이런 관계의 연결은 묘하게 복선들이 엉키는 것이 맛일 텐데, 이 영화는 그 와는 반대로 우연과 억지를 좀 남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물들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사실 그렇게 아주 절절히 와닿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네 명의 주인공들이 서로서로 저마다 사건에 참여하는 그 모습 덕택에, 살짝만 억지를 부리면 다양한 사건과 특이한 상황을 만들기 쉬워진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네 명이나 되고 서로서로 마구 갈등관계가 엉켜있으니, 대강 화면속에서 대사를 주고 받게 하면, 재미있을 법한 상황이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생각나는대로 끼워넣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두 가지로 구분되는 재미있는 상황들을 계속 엮어나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추적과 도망 이야기인 활극이고, 두번째는 우울하고 냉혈하면서도 기이하게 낭만적인 범죄자의 모습입니다.


(살인청부업자)

추적과 도망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몇몇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운이 좋아서", "공교롭게도" 라는 핑계로 인물들을 대강대강 짜맞추어 나열하는 모양입니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은 하필이면 열차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 바람에 다른 사연으로 연결되고, 공교롭게도 여자 주인공이 상원의원으로부터 특이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여자주인공은 갑자기 꿋꿋하고 용감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범죄자가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몰래 이동하는 내용과, 인질을 붙잡고 탈주극을 펼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계속해서 호기심을 돋구고 긴박한 느낌을 생기게 합니다.

이런 내용들의 연출은 "39계단"이나 "해외첩보원"과 흡사한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팔목에 상처가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팔목 상처를 눈에 보이게 하는 시각표현으로 대사 없이 화면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주인공의 등장과 신분을 알려줍니다. 한편 말 없이 몰래하는 행동을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서, 관객을 커다란 화면속에 펼쳐지는 영상에 집중하도록하기도 하고, 거기에서, 그 조마조마한 몰입감을 높이기도 합니다.


(431 분의 1의 우연: 무궁화호 6량 열차 기준)

만약, 살인자가 "너를 죽이려고 했는데 오늘은 13일의 금요일이라서 재수 없을까봐 봐준다"라고 대사로 중얼거리면, 이것은 연극이나 소설과 딱히 큰 차이가 없는 표현일 것입니다. 하지만, 살인자가 권총에 손을 대고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하는 모습을 보여 준 뒤에, 살인자의 눈이 달력을 보는 것을 보여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달력의 날짜가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것을 화면에 나오게 하고, 마지막으로, 살인자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총에서 손을 떼는 식으로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화면이 바뀌고 편집을 통해 크게 확대한 장면과 멀리서 보는 장면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묘미입니다. 관객은 등장인물의 모습 하나하나를 유심히 능동적으로 보게 되고, 스스로 머리속에서 심리를 상상하게 되면서 더욱 깊이 영상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 영화에는 사람들의 손동작과 시선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배우들을 화면에 담았고 등장인물들이 나타나는 구도를 조절하며 배치해서, 이런 연출의 재미를 살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총격, 살인, 도주, 위장 같은 활극을 잘 이끌어가는 편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역시 장면을 위해서 네 주인공의 이야기를 억지로 짜맞추었다는 바탕입니다. 경찰이 살인청부업자를 쫓고 있는데, 별 필연성이 없는 사건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보니, 아슬아슬한 느낌이나 집요한 느낌을 나게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경찰역은 초반에는 꽤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처럼 나오고, 영화 자막에도 남자 주인공급으로 언급됩니다. 그러나 별로 하는 일이 없이 작은 비중이라는 점은 좀 이상합니다. 아예, 그냥 살인청부업자와 마술사 이야기만 주인공으로 다루면 차라리 나을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아서 이래저래 경찰은 배경을 꾸며 주기 위한 들러리로 영화 마지막에 사이렌을 울리면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무능한 모습으로 활약할 뿐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 영화는 도망자가 자기 스스로 다른 사람을 추적하면서, 스스로 또 추적당하는 이중으로 쫓고 쫓기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꽤 재미있는 소재라서 전체 이야기는 결코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쫓기면서 쫓는 중)

추적과 도망 이야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 영화의 단연 인상적인 부분은, 이 영화의 범죄자 주인공인 살인청부업자 입니다.


(범죄자 주인공)

일단 이 살인청부업자는 무진장 냉혹한 놈입니다. 사람을 꺼림없이 잘도 죽이거니와, 보통 남자 주인공 범죄자는 잘 저지르지 않는 여자 죽이기도 잘 합니다. 심지어 이 인간은 노인과 어린이마저도 사소한 문제를 위해서 죽여버리는 인간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 살인청부업자는 이렇게 흉악한 놈이면서, 이런 흉악함에 어울리는 또다른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인간이 하는 짓거리를 호기심을 갖고 지켜 보게 합니다. 이 인간은 신기하게도 말그대로 냉혈한인지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 악랄한 악당은 기묘하게 변태적인 재미에 즐거움을 탐닉한다든가, 아니면 추하고 경박하게 웃다가 화내다가 하는 모습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초능력 영웅과 싸우는 악당들이 심심하면 "세계는 내 것이다!" 한 뒤에 우하하하하 하고 웃는 장면은 그 단적인 극치일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살인청부업자는 웃는 일도 없거니와, 일에 성공했다고 뿌듯해 하는 표정도 거의 없습니다. 항상 무표정하고 어딘가 비아냥거리는 느낌과 불만이 어려 있는 표정으로 굳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죽인다고 위협하기)

감정을 잃어버린 듯한 이 살인청부업자의 모습을 몸집이 작고 인상이 날카로운 알란 라드가 잘 꾸며 냈습니다. 작은 몸집에 무표정한 얼굴로 거침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그 모습은 자연스럽게 "어쩌다 이 인간은 이런 성격이 되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고, 뜻대로 일을 저지르고 다니면서도 항상 음침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러다보니, 그 모습에는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외로움이라든가, 뭔가 억울한 느낌과 열등감에 사로잡힌듯한 불쌍한 인간이라는 울적한 느낌마저 슬며시 깔리게 됩니다.

도덕과는 아무 상관없이, 정상적인 사회규범에 벗어나서 사는 일탈적인 인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런 완전히 사회에서 벗어난 모습 때문에 외롭고 울적한 느낌이 풍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살인청부업자는 영화속 살인청부업자의 역사적인 한 표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좀 더 키가 컸다면 마른 느낌이 더 초췌해 보이는 느낌도 줄 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알란 라드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알란 라드의 모습은 착하고 활기찬 여자 주인공이나, 전형적인 욕심쟁이 비겁자 악당인 대기업 중역 등과 대조를 이루면서 더욱 확실해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름이 비슷한 알랑 들롱이 몇 십년 후에 보여주는 범죄영화 속 모습의 선배이며, 훗날 홍콩 느와르 영화속 살인청부업자에 끼친 간접적인 영향도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비정한 모습과 그 속에 언뜻언뜻 실감나게 드러나는 흔히 "우수에 젖은 눈빛"이라는 말처럼, 그런 인물이 외려 인간의 어두운 모습과 쓸쓸함을 더 극적으로 재미있게 잡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알랑 들롱과도 비슷하고 숀 코네리와도 비슷해 보이는 알란 라드)

그러고보면 이 영화는 느릿느릿 감상적인 분위기와 실없는 농담 따먹기가 많은 옛날 느와르 영화보다는 오히려, 8,9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를 생각나게 하는 면도 많습니다. 일단 달리고 총을 쏘는 액션에 상당히 할애한 면이 크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비슷합니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은 보호하고 사랑스러운 천사 같은 존재로 묘사되어, 어두운 세계에서 사는 남자주인공이 기묘하게 보호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면이 드러나는 것도 상당히 자주 반복된 구도입니다. 요컨데, 이 영화는 신선한 주인공과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추격전 이야기가 옛날 느와르 영화의 고즈넉한 낭만에 잘 어우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들자면, 이 살인청부업자를 지나치게 멋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 갖다 붙인 "살인청부업자가 가족에게 사랑을 못받았다"라는 전형적인 범죄자 과거를 읊어대는 장면이 가장 눈에 뜨입니다. 내용이 그냥 판에 박힌 듯한 흔한 것이고, 앞뒤 장면에서 워낙에 무표정하고 쓸쓸했던 남자주인공이 갑자기 장황한 감동적인 연설로 자신의 과거사를 읊조리는 모습은 좀 분위기를 깨뜨리고 연결되는 느낌을 끊어버리는 듯 합니다. 더군다나 부녀자와 어린이도 다 잡아죽이는 놈이 하는 이야기치고 그렇게 크게 설득력이 있는 내용도 아니며, 표정-동작-손 을 보여주어서 내용을 전달하던 영화가 문득 기나긴 대사로 상황을 처리하는 것도 좀 어긋나게 느껴졌습니다.


(클럽에서 마주친 나머지 주인공 두 명)

또한가지 눈에 뜨이는 것은 태평양전쟁 발발 무렵에 개봉된 영화인 탓에, 전쟁선전 부분이 무리하게 끼어들었다는 점입니다. 아무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전쟁이나 애국 같은 소재와 선전 연설을 영화 줄거리의 일부를 갖다 붙여 버렸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확실히 내용의 흐름을 약간 꺽어버리기도 합니다. 특히, 여자주인공이 이 흉악한 악당을 설득한답시고, 갑자기 "이 전쟁은 우리 모두의 전쟁입니다." 어쩌고 하면서 조국의 안보와 국방을 위해 도와달라고 설득하는 부분은 순간적으로 참 어색합니다. 그나마 큰 문제가 없는 까닭은 이것도 나름대로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예스런 맛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 느와르 영화에서 볼만한 빅밴드 재즈 클럽을 무대로 악당과 주인공들의 마주치는 모습이라든가, "시민 케인"의 연출을 상상하게 하는 대기업 회장실의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는 그 신화적인 느낌도 같이 어울려 보기 좋습니다. 작은 배역이지만 고집불통 갑부 영감 역할을 기막히게 보여준 로저 이모프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그 밖에...

알란 라드와 베로니카 레이크는 이후 쌍으로 많은 영화를 흥행시켰습니다. 베로니카 레이크는 당시 인기 배우들 중에서 거의 가장 키가 작은 배우여서, 키가 작은 알란 라드와 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키가 작은지 잘 표시가 안나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 레이엄 그린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제3의 사나이" 작가로도 친숙한 그레이엄 그린은 "권력과 영광" 같은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고, 카톨릭 작가로 이름이 있던 까닭에 관련된 책들이 한국 성당 근처에서 자주 박혀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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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게렉터 2007/04/05 15:34 # 답글

    오늘 이글루스는 SD로 수정할 때마다 쓰잘 데 없는 "/"가 태그 뒤에 자꾸 달라 붙는 것이 불편합니다.
  • 이준님 2007/04/05 15:51 # 답글

    1. 베로니카 레이크의 머리는 유명한게 2차 대전 연간에 베로니카식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다가 군수공장에서 머리카락이 끼이는 일이 자주 벌어졌지요. 결국 전시 선전의 일환으로 "단발"을 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단발을 하지요. 이런 스토리는 80년대 모 반공동화에서 "북한의 만행과 통제 사회"를 고발하는 것으로 패러디 됩니다.

    2. 권력과 영광은 "권세와 영광"이라고 하는게 정확한 번역이지요. 바로 "주기도문"에서 따왔거든요 -_-

    3. 어색하지만 전쟁 운운 하는건 40년대 많은 조선작가들에게도 나오지요. 유치진의 "대추나무-왜 싸워"가 비참한 농촌 현실을 고발하다가 "제국의 식민지 만주에서 잘 살아보자"라고 어께춤 추는거나 -해방후에 이 작을 전면 개작하는 바람에 파문이 일었죠. 정비석의 모 단편도 "차가 고장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승객간의 따스한 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홍콩에서 제국 거류민들도 억류때 침착했다"라는 이야기가 갑자기 나오는 거나 같은 이치이지요. -해방후에 이 문단을 뺐습니다. 뭐 이야기 구성과 무관하지만요. 역시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 게렉터 2007/04/07 10:05 # 답글

    이준님/ "권력과 영광"은 해누리기획 판 번역 제목인데, 사실 "권세"라고 해도 결정적인 뜻차이는 없는 만큼 종교적인 느낌을 좀 가미하는 것이 저도 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40년대 한국영화를 봐도 끝나기 한 5분전까지 아무 상관도 없다가 갑자기 "일본제국의 국가시책에 열심히 협조하자"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면, 70,80년대 한국영화들 중에 지원급 타먹고 실적, 서류 꾸미는데 도움 주려고 아무 상관없는 초자연적인 공포물, 액션물로 진행하다가 갑자기 막판에 "이 모든 것은 이북 간첩들의 음모와 특수무기였다~" 이러면서 끝나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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