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팬더의 역습 (핑크 팬더 4) The Pink Panther Strikes Again 영화

흔히 "핑크팬더의 역습"이라는 번역 제목으로 불리우는 이 1976년작 영화는 피터 셀러즈가 클루조 경감으로 나오는 핑크팬더 시리즈 4편으로 통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핑크팬더라는 제목의 연원이었던 핑크팬더라는 별명의 다이아몬드가 나오지도 않고, 클루조 경감의 숙적격인 대도둑도 나오지 않습니다. 클루조 경감이 더이상 예전 같은 형사-경감도 아닌 더 높은 직책을 맡고 있으며, 예전의 상관과 동료들은 전혀 다른 위치로 출연합니다. 말만 놓고 보면, "핑크팬더"가 뭔가 역습한다거나 한다고 볼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뮌헨 옥토버페스트에 등장한 클루조 경감)

이 영화의 내용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평범하게 있을 법한 이야기로 시작해서는, 가면 갈수록 터무니 없이 황당해지는 점층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클루조 경감 때문에 미치고 환장하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결국 말그대로 미쳐버려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있을 법한 일로 출발한다고 볼만합니다. 사람이 너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며 살다보면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점차 사건이 이상해지더니, 문득 중반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무슨 7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 악당 같은 황당무계한 아이디어로 세계 정복을 시도하는 공상적인 이야기로 변해버립니다.

이런 이야기 줄기에 비춰 볼 때 아쉬운 점은, 이렇게 막나가는 이야기의 점층법을 도리어 스스로 줄어들게 하는 요소가 몇 군데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중간에 결정적인 전환점 부분이 너무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라서, 잠시 이 영화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방해합니다.


(세계정복을 위한 특수무기)

이 영화는 그냥 사소한 절도-납치 사건 비슷한 형사, 탐정을 소재로한 코메디로 출발하면서, 마지막에는 지구의 운명을 건 초대형 결투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자꾸만 갈수록 어림없는 생각이 점차로 제시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면서 사태가 이상하게 확대되어 가는 것이 줄거리의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그러나, 두 극단적인 상황이 만나는 부분이 안타깝게도 좀 안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남자배우가 여장해서 웃기는 시간 때우기스러운 지루할듯한 코메디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어리둥절한 이야기가 마구 펼쳐지는 느낌에도 도움이 안되고, 클루조 경감의 개성과도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이 영화에 나오는 클루조 경감이 결국은 단순한 영구로 전락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클루조 경감이 웃기는 형태는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한계 때문에 자꾸만 실수하고 헛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대단한척 진지하게 노력하고 뭔가 멋있는 듯 보이려 하지만, 실패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몇몇 부분에서 클루조 경감이 후반부에 지구의 운명을 두고 싸울 수 있는 정도로 격상시키기 위해서, 이런 평범하다는 점이 특징으로 드러나는 것을 스스로 막아 버리고 있습니다.


(클루조 경감의 영구스러움)

이해될만한 보통 사람의 한계를 살짝 과장하는 클루조 경감이 아니라,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주 멍청하고, 너무나 무능하고, 사고를 심하게 잘치는 지옥에서온 골치거리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클루조 경감이 특이하고 이상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사람이라면 저런 실수도 할만하다는 공감이 있으면 더 웃길 수 있었던 부분이, "저 인간은 원래 영구니까 저러고 있구나"하는 단순히 멍청한 사람 조롱하는 비웃음으로 가라앉아 버립니다. 평범한 사람의 한계를 과장해서 웃겼던 소재를 평범하지 않은 바보로 너무 몰아버린 이 모양은, 영화판 "빈"이나 "쟈니 잉글리쉬"의 한계를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실수로 웃기는 부분과 이상하고 어처구니 없는 바보짓으로 웃기는 부분이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좀 급작스레 왔다갔다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점점더 괴상해 질수록, 그런 괴상하는 일을 경험하는 주인공의 성격은 분명하게 잘 묘사되어야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줄거리가 흡인력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런면에서 부족하기에, 그냥 클루조 경감의 전통적인 개인기로 웃기는 부분과 작가가 짜서 넣은 황당한 이야기로 웃기는 부분이 나뉘어져서 이리저리 쪼개져 있고, 별로 잘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마 샤리프 등장)

그렇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웃기고 활기찬 영화기는 합니다. 일단 잘 이어지지 않는 두 요소가 그래도 각각은 나름대로 상당히 웃긴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게 불켜는 스위치였다는 것입니까.)

클루조 경감의 진지한척 하지만 사실은 별볼일 없는 태도는 그게 강조된 부분에 한해서는 참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피터 셀러즈의 연기는 경감에서 승진 했다고 더욱 거들먹거리는 클루조 경감을 희극적으로 흠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트레드밀 전원 스위치와 방의 전등 켜는 스위치를 착각하는 부분은 훌륭합니다. 참 있을만한 일을 실감나게 표현하면서도, 그 한심한 웃긴 과장도 풍성합니다. 이런 부분은 커다란 사건도 아니고 특별히 심하게 기이한 동작이나 표정이 끼어 있는 부분도 아니지만, 어느새 사람을 빙그레 웃게하고 관심 갖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합니다.

클루조 경감이 영구로 활약하는 부분도 부분부분 흥미롭게 되어 있는 데가 있습니다. 이 부분의 기반은 널리 알려진 논리학, 수사학 역설을 하나 이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화제거리가 안되는 사람"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화제거리가 안된다"라는 점이 그 자체로 좋은 화제거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화제거리가 안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상에서 가장 화제거리가 안되는 사람은 그 사람보다 조금은 화제거리가 될만한 사람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진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화제거리가 안되는 사람"이기에 그것이 또 좋은 화제거리가 됩니다. 이런식으로 계속 이쪽저쪽으로 생각을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클루조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형사"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너무나 엄청나고 중대하고 위험한 일이어서, 이렇게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도리어 무척 유용하고 화려하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런 역설에 바탕을 두고 짜인 이야기는 그 뼈대가 튼튼한 셈입니다. 거기에 사소하고 발빠른 동작, 몇 가지 비밀무기와 상당히 종류가 다양한 살인 방법 등등과 어울어져서 한동안 호기심을 끌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갑니다. 이로써 중간중간에 제임스 본드 영화 패러디를 하는가 하면, 전 지구의 모든 특수요원들과 수십 대 1로 맞서 줄줄이 싸우는 괴이한 사건이 흥겹기 그지 없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 여유롭게 어울리는 모습도 잘 연출되어 있습니다.


(제임스 본드 패러디 상황)

클루조 경감역의 피터 셀러즈 외에 연기가 눈에 뜨이는 다른 배우는 클루조 경감 다음으로 큰 비중의 인물을 연기하는 허버트 롬 입니다. 허버트 롬은 사실 "스파르타쿠스"나 "엘 시드" 같은 영화에서 이것 보다는 진지한 역으로 먼저 명망을 날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실 희극적으로 감정을 보여주고 농담을 웃기게 읊조리는 역할은 그다지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과장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허버트 롬은 풍부하고 다양한 대사들을 잘 소화해 내고 있고, 좀 맛이간 사람의 정신나간 모습을 터뜨려야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과장된 연기가 잘 어울리는 부분도 많기도 합니다. 부딪치고 당하고 하는 넘어지고 구르는 류의 연기도 성실하게 하고 있으며, 훗날 수많은 영화와 만화에 인용되는 "칠판 긁는 소리로 사람 고문하기"도 재미있게 선보입니다.


(클루조 경감의 충격에 대하여 정신과치료를 받는 모습)

끝으로 아쉬운 점을 조금 더 덧붙여 본다면, 조연 연기자들이 비중을 갖고 활약하는 경우가 거의 전혀 없이 다들 아주 분량이 작다는 점과 음악이 좀 덜 재미있어졌다는 점을 꼽겠습니다. 조연들의 배경이나 상황은 저마다 특징적인 면이 있는 풍성한 상황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잠시 웃길거리 하나둘 정도로 사용되고 말았습니다. 음악은 좋은 편입니다만, 아주 유명한 주제곡을 사용하는 영화치고는 조금은 심심합니다. 대신에, 다양한 영화의 패러디를 핑크팬더 애니메이션으로 줄줄이 보여주는 시작 장면은 소소한 재미거리가 됩니다.


그 밖에...

이 영화에는 이집트 특수 요원으로, 명배우 오마 샤리프가 깜짝 출연합니다.

이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핑크 팬더 애니메이션으로 패러디 되는 것들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배트맨, 킹콩, 사운드 오브 뮤직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아내인 줄리 앤드루스의 대표작입니다), 드라큘라, 사랑은 비를 타고 등입니다. 각각 1,2초 정도로 짧게 보여주고 넘어갑니다.







(애니메이션 시작 장면의 핑크팬더와 클루조 경감)


덧글

  • Koolkat 2007/04/07 10:23 # 답글

    게렉터님은 굉장히 핑크팬더의 팬이시군요. 저 역시도 이 영화 볼때마다 정말 저거저거...하면서 보는데 반갑네요.^^
  • kisnelis 2007/04/07 10:36 # 답글

    이 영화가 시리즈 4편이었군요.
    정말 좋아해서 티비에서 할 때 녹화해두고 틈틈이 돌려봤는데...비디오테입이 늘어나서 이젠 못 보게 됐네요. 티비판에서 클루소 경감역을 배한성씨가 해서 훨씬 더 재밌었거든요(상상이 되실듯~ 코맹맹이소리)
    내용얘기를 하자면 전편에서의 경감이 클루소 때문에 미치고 환장해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그래서 클루소가 경감이 되고 4편에 전경감이 정신병원에서도 클루소를 보고 또 발작하여,
    병원을 탈출, 지구를 정복하려 하죠. 근데 지구정복의 선결조건이 바로 클루소 암살.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인데, 배한성씨 목소리 더빙판은 찾기 힘들겠죠?...
  • 게렉터 2007/04/08 00:07 # 답글

    Koolkat/ 별로 대단한 팬은 아닌데, 60,70년대 코메디 영화들을 하나 둘 글을 쓰다보니, 핑크팬더도 4편까지 다루게 되었습니다. 1,2편에서 주인공급으로 등장하는 피터 셀러즈, 데이빗 니븐,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엘케 좀머 같은 배우들은 상당히 좋아합니다.

    kisnelis/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방송사 자체제작 연속극 같은 것은 정 안되면 방송사에서 비디오테입이나 DVD를 비싼값에 구입하는 수도 있는데, 더빙판은 그렇게 팔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알음알음으로 녹화한 것을 디지털로 떠놓은 사람을 찾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멕시코의 미국영화 TV방영 스페인어 더빙판은 이래저래 구할 길이 없지는 않은 것을 보면, 이부분도 어떻게 저작권 문제하며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봅니다.
  • FAZZ 2007/04/08 23:20 # 답글

    실제로 스타워즈가 저 핑크팬더의 부제들을 따랐을까요? 아님 우연일까요? 은근히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
  • 게렉터 2007/04/10 13:42 # 답글

    FAZZ/ Strikes Back 이나 Strikes Again 은 속편 제목으로 상당히 자주 쓰이는 것이기는 합니다. 일전에 "Deadlier Than Male" 영화를 소개하면서, 드러몬드 시리즈를 이야기해 드린 적이 있는데, 이 시리즈 중에 제목이 "Bulldog Drummond Strikes Back"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47년에 영화로 나온 것이 있고, 더 오래된 것으로는 같은 제목으로 1934년에 영화로 나온 것도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