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학교 동창회 Class Reunion 영화

내셔널 램푼(National Lampoon)의 이름을 달고 제작된 1982년작 영화 "별난 학교 동창회 Class Reunion"은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笑劇, farce)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소극은 거대한 저택을 무대로 하는 것이 많은데, 이 영화는 한 가지 특징이 있으니, 무대를 그냥 저택이 아니라, 폐교가 되어 방치되어 있던 학교 건물로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10년만에 동창회를 하는 친구들옛 학교에 갖혀 동창회날 하루저녁 동안 체육관, 강당, 식당, 복도, 창고, 탈의실 등등을 오가면서 대소동을 펼치는 내용입니다.


(옛 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동창회)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밤의 무도회"나 "졸업 파티"시리즈로 불리우는 "Prom Night" 시리즈에 영향을 받은 면이 상당히 있습니다. 물론 공포영화로 볼 수 있는 "졸업 파티" 시리즈와는 달리, 이 영화는 공포는 커녕 놀래키는 장면 하나 없는 발랄하고 우스꽝스러운 대소동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재미거리는 전혀 다릅니다. "무서운 영화"나 "영 프랑케슈타인"처럼 공포물을 패러디해서 웃기는 많은 코메디 영화들보다도, 이 영화는 더욱더 순수한 코메디 쪽에 가깝습니다.

좀 더 기원을 살펴 보면, 추리물과 얽인 이야기를 꺼내 볼 만합니다. "싸이코"를 필두로 한 몇몇 영화들이 음침한 분위기로 칼질하는 연쇄살인마 이야기를 공포물로 써먹기 좋다는 것을 제시한 이래로, 칼 든 연쇄 살인마는 공포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리따운 10대 청소년들의 자태를 보여주면서 줄줄이 연쇄살인을 펼치는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와 그 아류작일 것입니다. 한편으로 또다른 대표적인 갈래는 다리오 아르젠토가 감독을 맡은 영화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살짝 무거운 추리물 형태로 난도질하는 살인마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입니다.

주인공이 연쇄살인마가 누구인지 추리하고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공포물을 펼치는 이야기와, 청소년들이 죽어나가는 이야기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도 몇몇 나왔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두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으면서 뭔가 추리라든가 반전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추리물의 다른 형태를 이용했습니다. 바로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작가가 자주 써먹었던 시골의 외딴 저택을 무대로하여, 저택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살인범이 있는 이야기를 응용한 것입니다. 먼저, 외딴 저택이나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학교에서 살인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이 학교나 집 안의 누군가가 살인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한정된 공간에서 도망가고 쫓고 죽이고 살리는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보스럽지만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묘사된 살인마)

코메디인 이 영화, "별난 학교 동창회"는 바로 이런식으로 나온 칼질 공포물 이야기의 줄거리와 흡사합니다. 학교에 오랫만에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를 기회로 10년전에 놀림을 달해 한맺혀 정신나간 옛 급우가 일을 벌이는 겁니다. 이 광인은 동창회를 배경삼아, 급우들을 하나 둘 죽이려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나가는 길을 자물쇠와 쇠사슬로 봉쇄한 상태에서, 갖힌 사람들은 서로 뭔가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예상치 못한 긴긴 밤동안 옛일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양한 소동을 일으킵니다.

이 영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중심은, 이런 상황이 코메디에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택을 무대로 벌어지는 추리물을 공포물 줄거리로 삼았다는 출발점에 장점이 많은 것입니다. 저택을 무대로 하는 추리물과 저택을 무대로 벌어지는 소극이 여러모로 배경과 인물 구성이 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가로의 결혼"이나 "오스카" 같은 소극과 닮은 점을 잘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대소동 이야기의 형태로 흘러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한정된 배경을 무대로, 그 배경을 최대한 다채롭게 활용하는 재미를 보여주고, 짧은 시간과 공간에서 사건을 겪는 여러가지 사람들의 특이한 개성들을 저마다 뽐내게 해주었습니다.


(과학실의 동창생들)

세부적으로 내용을 살펴봐도 이 영화는 잘 짜여진 데가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보기 재미있는 것은 실제 학창시절 학생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꽤 현실적인 인물들과, 어처구니 없이 황당무계한 괴상한 초현실적인 인물들이 잘 섞여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런 류의 패러디 형태로 보일 수 있는 영화들은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상황을 보여주면서 웃음을 끌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천발의 총알이 마구 쏟아져도 결코 죽지 않는 주인공이라든지, 폭탄이 터져도 얼굴만 좀 그슬리고 머리 모양만 곱슬머리로 바뀌 뿐인 모습이 나옵니다. "총알탄 사나이"나 "스파이 하드"를 보면 갑자기 사람이 날아다니게 된다든가, 초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등장한다든가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인물들은 자주 활용됩니다. 흡혈귀와 비슷해 보이는 동창생이 나오는가하면, 입에서 불을 뿜고 장풍을 사용하는 동창생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림없는 춤과 노래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장황하게 늘어놓는 장면도 있고, 마지막 결말의 연출 역시 살인, 복수 이런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장난스러운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학교 복도에서)

그런데 이 영화의 멋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도, 기묘하게 현실감 있는 느낌을 잘 짜넣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창회"라는 형식을 빌어서 이 영화에 아주 많은 등장인물을 출연시켰다는데 바탕을 둡니다. 그래서 많은 인물중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과는 별 상관없는 현실적인 인물들도 나오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인 인물들의 비중을 더 크게하고 주인공 역할을 맡도록 했습니다. 이 영화에 중심이 되는 밥, 신디, 개리, 버니, 휴버트 같은 인물들은 현실에서 벌일 수 없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주인공급 인물들은 공중부양을 한다든가 갑자기 100톤 망치를 두드려맞고 납작하게 짜부라져서 걸어다니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이 주인공들은 이런류의 영화에 나오는 "학창시절의 괴짜"라는 느낌을 강하게 살렸습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인물이기는 하되, 장난스럽고 웃기고, 특이한 사람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이 영화속의 현실적인 주인공들과, 비현실적인 조연들이 별로 어긋나지 않게 잘 어울립니다. 맨날 어떻게하면 더 잘난척 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지만, 불가능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적당히 공감하고 감정이입할만한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면서도, 그 이상하고 괴상한 성격은 잘 부각시켰습니다. 그래서, 관에서 자는 드라큘라 백작 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과도 어울어지게 한 것입니다.


(학교 건물의 계단에서)

이 영화에는 다양한 학창시절의 인간 군상들이 적당히 과장되면서도 다양하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에 만능이라서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친구, 수많은 학생들에게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한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미모의 친구, 많은 학생들과 두루두루 친하면서 재잘거리는 수다가 뛰어난 친구,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비중없는 친구, 사고치는 친구, 맨날 음흉한 짓만 궁리하는 친구, 인생 포기하고 대강 때우면서 사는 친구. 등등이 폭넓게 등장하고, 저마다 비중을 잘 나눠 갖고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 줄거리가 흘러가는 모양을 보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외토리 비슷한 친구가 위기를 맞아서 점차 영웅으로 활약해 가는 형세입니다. "라이터를 켜라"부터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까지 언제나 남용되는 이야기 형국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어울리도록 외토리 친구는 점차 사람들의 영웅으로 부상하고, 잘난척하고 폼 잡던 친구는 점점 위선을 드러내는 형태로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묘하게도, 이런 이야기 와중에서도 영웅이 되어가는 외토리 친구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코메디와 농담의 비중은 잘난척하는 위선자 쪽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형태입니다.


(넌 기억이 안나서 이름표를 준비못했으니, 그냥 이렇게 써줄께, 제리. / 제리가 아니고 게리 인데.)

그러다보니, 또 코메디물 특유의 멋스런 개성이 생겼습니다. 상당수 영화들은 학창시절에 인기있었던 친구는 사실은 비겁한 위선자 악당이고, 반대로 인기 없었던 친구는 진정한 우리의 친구라는 판에박힌 흑백논리 공상으로 치닫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에서 벗어나버리는 것입니다. 둘 다 그냥 인간적인 장단점을 갖춘 정감있는 옛친구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10년만에 친구들이 만난 동창회 분위기에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면서 결코 이런 내용이 주제를 표현한답시고 드러나지 않고, 그냥 사람들을 비춰주는 비중과 대상의 양과 같은 간접적인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배우들은 뛰어납니다. 가장 많은 농담을 소화하는 게릿 그래험은 좋은 코메디를 보여주고, 프레드 맥카렌이나 미리암 플린 같은 배우들은 어림없는 코메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공감갈만한 감정을 군데군데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의 연기는 사실성을 무시하는 패러디 코메디 형태의 이 이야기 속에서도 10년전 학창시절을 추억하면서, 사람마다의 재미난 성격을 드러내는 그 인간적인 감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프레드 맥카렌이 10년전 짝사랑하던 친구를 생각하면서 혼자 춤을 추는 장면은 우스꽝스런 소품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진짜같아 보이고, 동창회장 입구에서서 옛친구들을 웃음을 머금고 맞이하는 미리암 플린의 모습은 정말 동창회장 입구에서 등록일 맡는 친구 그대로로 보입니다.


(10년전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옛 학교에서 혼자 춤추는 주인공)

따지고들면 한계는 명백한 영화입니다. 줄거리에 대단한 반전이나 엄청난 흡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지하고 뿌리 깊은 주제를 보여주는 영화도 아닙니다. 기막힌 연출력이나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영화도 아니며, 특징적으로 개성적인 독특한 농담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많은 동창생들이 강당에 모여 있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주인공들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는 실용적이었습니다. 학교를 떠도는 주인공들의 사실적인 이야기는 본류 이야기로 이어지며 진행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사이사이에 강당에 모여 있는 동창생 무리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하나씩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한 명 한 명의 어림없는 짧은 웃긴 장면 하나씩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에어플레인" 에서, 주인공들의 줄거리 무용담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승객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농담거리를 풍성하게 비춰준 구성과 충분히 맞먹을만 합니다. 코메디의 내용을 봐도 풍성한 싱거운 우스갯소리 속에, 베트남 때의 병역기피부터 마약문제에 이르기까지 약간은 의미심장한 것이 군데군데 끼어있는 것도 조화로운 편입니다.


(모두가 사랑에 빠졌던 학교 최고의 아리따운 여학생)


그 밖에...

동창회의 흥겨운 춤장면에서 록큰롤 음악을 연주해 주는 사람은 진짜 척 베리입니다.


(척 베리 등장)

이 영화는 "내셔널 램푼" 시리즈 중에서 "동물 농장 (애니멀 하우스의 악동들, Animal House)"의 성공 뒤에 뒤이어 나옵니다. 내셔널 램푼은 하버드 대학의 유서 깊은 코메디, 풍자 모임인 하버드 램푼에 연원을 두고 그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것으로, 주로 70,80년대에 유머 잡지를 발행해서 명망을 드 높였습니다. 90년대부터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만, 내셔널 램푼의 "휴가 대소동 (Vacation)" 시리즈는 우리에게도 꽤 친숙합니다. 이 페이지 http://lampoon.rwinters.com/Lampoon1970.htm 에서 내셔널 램푼 잡지의 표지그림을 주욱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학교 이름은 리지 보든 고등학교(Lizze Borden High School) 로 되어 있습니다. 리지 보든은 20세기 초의 살인 사건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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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살인무도회 (클루 영화판, Clue, 1985) 2007-10-07 09:4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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