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팬더의 복수 (핑크 팬더 5) Revenge Of The Pink Panther 영화

"핑크 팬더의 복수"는 피터 셀러즈가 나오는 "핑크 팬더" 시리즈 5편이라는 것 외에는 보석 "핑크 팬더"와도 전혀 관련이 없고, 보석을 노리는 주인공 클루조 경감의 숙적 대도둑과도 아무 상관 없으며, 심지어 제목이 "핑크 팬더의 복수"지만 복수와도 별 상관 없습니다. 복수 비슷한 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중심 소재도 아닐 뿐더러 여러모로 진짜 복수 같은 복수는 아닙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분위기와 비슷하고 "007 두 번 산다" 줄거리와 닮은 것입니다. 거대 범죄 조직이 영웅적인 명성을 드날리는 주인공을 노리고, 주인공은 이국적인 지역을 오가면서 조직의 위협을 피해가며 싸우고, 그리하여 마침내 악당을 분쇄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의 시작 장면 핑크 팬더 애니메이션)

이 영화가 제임스 본드 아류작과 다른 것은 주인공이 특수 무기나 뛰어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중심 줄거리는 로알드 달이 각본을 쓴 "007 두 번 산다"와 꽤 비슷합니다. "007 두 번 산다"와 같은 속임수를 쓰는가 하면 잠깐 홍콩에 간다는 점도 같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하는 일과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다릅니다. 주인공인 클루조 경감은 대체로 심하게 무능한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든 실수 투성이입니다. 뭔가 열심히 대단한척 돌아다니지만 실은 엉성하기 그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괜히 허세만 부리면서 싸돌아다니다가 겁먹고 당황하고 하는데, 그 와중에 코메디 영화다운 기묘한 우연과 어처구니 없는 의도치 않은 역효과로 악당을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변장하고 홍콩에 온 일행)

"핑크 팬더의 복수"에서 주인공은 너무나 영구 같은 짓을 많이 하는 나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만큼 이상한 일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그 덕분에 실상은 매우 한심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악당들의 두려움과 당국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클루조 경감은 그 실체인 실수투성이 모습은 살짝 감추고, 자기 스스로도 슬쩍 잊고는, 프랑스 경찰의 상징이자, 파리 시민의 영웅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세계적인 마약 조직의 프랑스 지부인 소위 "프렌치 커넥션"이 이 영웅을 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거대 범죄조직이 경찰의 거물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자꾸만 클루조 경감을 공격하려하는 것입니다.

클루조 경감은 이들의 공격을 역시, 예기치 않은 우연과 엉거주춤한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의외의 사건으로 요리조리 피하게 됩니다. 이런 헛웃음을 짓게 하는 사건들은 주인공을 연기한 피터 셀러즈의 일견 당황하면서, 일견 당황하지 않은 척 하려는, 그 초조하면서도 굳은 표정과 어울어 집니다. 덕분에 영화에서 클루조 경감이 저지르는 실수들은 웃음을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클루조 경감은 그런 난리를 치면서도, 사람들이 "클루조 형사님"이라고 부를 때 마다, 별별상황에서도 꼭꼭 "형사님이 아니라 클루조 경감님"이라고 부르도록 매번 지적합니다. 슬쩍 감춘 듯 하지만, 속으로는 이리저리 오가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잘난척 하고 싶은 마음 같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피터 셀러즈는 속속들이 웃기게 연기합니다.


(클루조 경감의 초특급 멋있는 전용 자동차, 실버 호넷)

이야기 줄거리 자체가 다른 영화와 닮은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만큼 이 영화는 여러 영화들의 패러디에도 충실한 영화입니다. 일단 "프렌치 커넥션"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만큼, 무시무시한 대형 범죄 조직과 그 피말리는 추격을 다루는 영화들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즉 진지해야할 사람들이 한심한 일들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중후한 조직의 거두는 엉덩이가 뜨거워서 폴짝거려야 하고, 프랑스 대통령은 훈장을 달아줄 때 장난스레 자빠질뻔 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이 영화는 "대부" 시리즈를 농담으로 삼기도 하고, 유행하던 이소룡 영화들의 간접적인 영향을 조금씩 비추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결과로 이 영화는 시사적이고 현재감있는 느낌이 좀 강해졌습니다. 결코 어떤 특정한 사회 비판 대상이 있는 영화는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최신 유행을 따르는 여러가지 배경 속에서 뭔가 잘 적응 못하고, 어딘가 한 군데 부족한 클루조 경감과 그 일행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이 사람들이 오락가락하고 넘어지고 떨어지고 고생하는 장면들을 보여 줍니다. 그러는 통에 이 영화는 한물간 어설픈 어릿광대들이 정말 지금 요즘 벌어지고 있는 심각하고 커다란 사건에 뛰어든 느낌을 좀 주고 있습니다.


(클루조 경감과 변장용 소품 앵무새)

이런 면에서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음악입니다. "핑크 팬더" 주제곡이야 헨리 맨시니의 대표적인 걸작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핑크 팬더" 주제곡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더욱 개량했습니다. 1978년작인 이 영화에 걸맞는 유행을 따르도록, 디스코 풍으로 음악을 좀 고친 것입니다.

처음 익숙한 주제곡이 들려올 때 부터, 흥겹고 빠른 곡조로 들려와서 반갑고도 신기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그후로도 영화 전체에 걸쳐서 군데군데 재미난 디스코 리듬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원곡이 무척 훌륭할 경우에 새로운 판을 만든답시고 다르게 곡을 바꿔 녹음하면 신기하긴 해도 원곡의 묘미가 많이 날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RMM Tropical Tribute to the Beatles" 같은 앨범은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분명 비틀즈 원곡의 멋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음악은 충분히 새로운 느낌과 유행을 잘 전하면서도 그다지 이질적인 느낌없이 원곡의 느낌도 잘 살리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자 그대로,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방법을 써서, 디스코텍을 엿보려는 클루조 경감)

한편 이 영화의 다른 특징을 찾아 보자면, 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웃기는 부분이 꽤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클루조 경감의 집사인 카토는 항상 좀 어리둥절하고 뭘 모르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일본인 내지는 중국인인 동양인이고, 이소룡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의 동양인 답게, 가장 큰 역할은 클루조 경감의 무술 연습 상대이기도 합니다. 카토에 관한 이 영화의 코메디들은, 카토를 두메산골에 있다가 서울 구경온 시골사람처럼 삼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한양의 한량들이 낄낄대며 시골사람을 놀려먹는 듯한 웃음거리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카토를 고용한 사람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인 클루조 경감은 카토를 노비 부리듯 좀 멸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클루조 경감은 카토보다 더 한심하면 더 한심하지 결코 나을게 없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클루조 경감이 카토를 얕잡아보고 마구 대하는 모습은 그만큼 클루조 경감을 더욱 바보스럽고 한심하게 해주는 코메디 효과가 있기는 합니다. 맨날 "노랑 피부"를 운운하면서, 카토에게 훈계하고 짜증내는 클루조의 모습은 동양인을 놀림거리로 웃기면서, 동시에 자기꼴도 모르고 어줍잖은 인종주의에 빠진 클루조 경감을 풍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동양인을 비웃으며, 동시에 인종주의도 코메디로 활용하는 부분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다는 점은 가끔 맞아들때가 있습니다.


(클루조 경감이 없을 때 카토가 한 일)

하지만, 좀 쉽사리 웃음거리를 이어나가고자 이런 소재들을 좀 남용한 듯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냥 황인종과 동양인을 단순히 비아냥 거리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요즘도 한국 TV 코메디 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본사람은 혀 짧고 발음 딸린다"는 조롱이나, "피부가 까마니까 후진국 사람 같다"는 식의 그냥 인종 차별 모욕 비슷한것이 적잖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피터 셀러즈와 버트 궉이 흥겹고 발랄하게 내용을 펼치고 있고, 이야기 줄거리의 중심은 이런 면에서 비껴가고 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영화를 망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일하게 그저 사람 출신으로 웃겨보려고 하다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카토가 웃기는 부분이 제대로 살아나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하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볼작시면 프랑스인을 놀림거리로 삼는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일단 클루조 경감의 어림없는 영어 억양 자체가, 좀 가볍고 밝은 분위기로 표현된 "일본 사람은 혀 짧고 발음 딸린다"는 코메디 입니다. 게다가 프랑스 경찰의 무능함이라든가 쓰잘데 없어 보이는 허례허식 혹은 방종으로 치닫는 사교 문화 같은 것들 프랑스의 모습으로 하면서, 의외의 상황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르 몽드 1면에 등장할 정도의 영웅호걸 취급을 받는 클루조 경감)

이런 것들이 함께 섞여 있는 정점은 클루조가 카토가 벌여 놓은 퇴폐업소에 들어서는 장면입니다. 어느 나라에나 기반이 약하고 가난한 외국인 체류자들은 불법적인 일에 걸려들기도 하고, 유흥업소의 좋을 것 없는 일로 빠지는 일이 잦습니다. 한국영화나 TV연속극에서 가끔 부산 퇴폐영업소에 러시아인들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 영화는 프랑스 파리의 중국계가 문제거리인 퇴폐업소를 잘도 꾸미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그냥 음흉하고 어이 없는 일을 벌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고, 이를 통해서 경찰의 영웅과 그 충성스러운 집사인 카토가 참 아무 생각도 없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70년대 파리의 향락 산업이나 외국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같은 것을 나름대로 그려내고 활용한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줄거리에서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진지한 사회적인 내용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느낀다면 이 부분은 과장된 편견과 그 비판이 좀 불안하게 섞인 부분입니다.

카토는 말없이 등장해서 항상 황당무계한 전환점을 만들어 버리는 아주 특이한 인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꼬인 요소들 때문에 멍청한 헛소리를 해대는 좀 모자란 노비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조정하고 카토의 성격도 조절했다면, 더 흥미있는 코메디를 꾸밀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카토가 벌인 일의 여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클루조 경감"에 대한 미칠듯한 분노를 겨우겨우 극복해낸 드레퓌스 역으로 허버트 롬이 나오고, 꼭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처음에는 악당 편이었다가 마지막에는 주인공 편이 되는 여자 주인공으로 다이안 캐논이 나옵니다. 허버트 롬의 비중은 작은 편입니다. 허버트 롬은 홍콩 시내를 휘젓는 막판 소동을 위한 복선으로 조금씩 이야기에 참여하는 정도 입니다.

한편 암흑 조직 두목의 비서 역할을 하는 다이안 캐논은 사실적인 연기는 잘 하고 있고, 배역도 어울립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서 코메디 연기는 좀 부족합니다. 클루조 경감은 상식에 어긋나는 괴이한 웃긴짓을 하며 더듬더듬거리며 말합니다. 그런데 다이안 캐논은 여기에 어울려야할 코메디 상대 치고는 그냥 무미건조하게 진짜처럼 대사를 읊는 듯 합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뭘 잘 모르는 알쏭달쏭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던 엘케 좀머 보다 모자라 보입니다.


(다이안 캐논)

"핑크 팬더의 복수"는, 치밀한 거대 암흑조직과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듯한 클루조 경감의 대결 이야기를 104분 동안 진행합니다. 다른 영화들을 따라하는 듯한 당연한 이야기이고, 어찌보면 단조로울만도 한 이야기인데다가, 조금씩 무리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쫓고 쫓기고 착각하고 속이는 이야기가 계속 연결되어 끝까지 따라가며 흘러 가기는 합니다. 회의를 듣는 장면을 시작부분에 잠깐 집중해 보여줘서, 여자주인공이 내막을 안다는 점을 알려주는 복선 표현은 효과적이었고, 중분부에 나오는 번쩍이는 디스코텍 조명을 배경으로 정체를 알 수없는 암살범이 튀어나오는 부분도 힘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줍잖은 변장, 얼토당통 않은 특수 무기 등으로 실소를 자아내게 해서 웃음을 이끌어 내는 몇몇 순간순간이 탁월한 것이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변장에 쓰는 가짜 앵무새 소품을 선보이는 것이나, 클루조 경감 전용의 배트모빌 자동차라 할 수 있는 "실버 호넷"은 무척 웃깁니다. 피터 셀러즈 고유의 프랑스 억양 흉내내기 코메디나 가짜 이탈리아말도 재미있는 편입니다.


(피터 셀러즈가 세상을 떠난 후,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클루조 경감의 모습)

홍콩에서 찍은 장면이 있는 영화치고, 홍콩의 특색은 거의 살아나지 않고 있는 점은 좀 심심합니다. 겨우 인력거 정도를 보여주는 안이한 수법에 머물 뿐이라서 제작비도 아깝습니다. 다행히 문득 중국 전통 음악풍의 곡조를 살짝 끼워 넣어 발랄하게 연주하는 음악이 흥을 돋구어 줍니다.


그 밖에...

피터 셀러즈가 생전에 출연한 마지막 핑크 팬더 시리즈 영화입니다.

다시 언급하게 됩니다만, 다이안 캐논은 캐리 그란트의 아내이며, 앨리 맥빌의 위퍼 판사 배역으로 한국에서도 꽤 친숙한 편입니다.

홍콩에서 추격전을 촬영하는 중에 카토가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달아나는 장면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홍콩 경찰이 이것을 실제 오토바이 절도라고 생각하고 카토 역을 맡은 버트 궉을 체포해 버렸다고 합니다. IMDB Trivia에 있는 이야기인데, 영화라고 설명하고 풀려나기까지 상당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덧글

  • 2007/04/13 21: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07/04/30 12:33 # 답글

    비공개/ 지나치게 늦은 답변 죄송합니다. 언급하신 영화는 통칭 핑크 팬더 3편으로 불리우는 "The Return Of The Pink Panthe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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