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스버그 Gettysburg 영화

끝없이 계속 되는 기나긴 영화인, 1993년작 "게티스버그 Gettysburg" 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벌어졌던 게티스버그 전투의 3일간을 차근차근 보여주려는 영화입니다. 미군이 참전한 모든 전쟁 중에 비교도 안될만큼 가장 막대한 사상자를 낸 전쟁이자, 민간인 피해 역시 미국 역사상 비할바 없이 극심한 전쟁이 남북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남북전쟁 승패의 전환점이자, 가장 중대한 일대 결전이 게티스버그 전투인 만큼, 소재 자체는 누구나 호기심을 생기게 할만한 것입니다.


(게티스버그 영화 포스터)

게티스버그 전투는 남군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니, 북군측의 링컨이 냉큼 내려와, 민주주의라는 말을 들먹이는 나라에서는 남아공에서 북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들먹이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 어쩌고 하는 연설로 멋을 부렸던 것입니다. 이 전투는 게티스버그라는 북군측의 한 시골마을의 낮은 산 일대에서, 남북의 대군이 결집하여 싸운 것 입니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지키고 버티는 북군을 향해 공격하러 길가던 남군이 맹렬히 달려들었다가 패한 꼴입니다.

이 전투에 대해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체로 주절주절 재미 위주로 왜곡해서 도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비록 북군이 장비와 병사 숫자에 대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남군의 사령관 리 장군의 멋진 전술과 용맹하고 늠늠한 남군 병사들의 끝없는 힘으로 북군을 다 박살내기 직전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장을 내려는 마지막 순간에 힘이 부족했고, 끝장이구나 하면서 버티는 북군에게는 의외의 행운이 뒤따랐다는 것입니다. 그와중에 남군의 지레 겁먹고 투덜거리는 패배주의자 롱스트리트 장군이 리 장군의 말을 듣지 않고 실수를 저질러서 안타깝게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군이 북군을 격파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게되고 아까운 목숨만 엄청나게 잃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그냥 재미로 하는 전설 비슷한 것일 뿐이고, 조금만 진지하게 알아보면 그냥 뻔한 결론이 나와 버립니다. 역시 북군측이 숫자도 많고 장비도 좋았고, 더군다나 방어하는 입장에서 유리한 지형을 미리 점거한 채 탄탄히 대비하고 있었으므로, 그냥 이겼다는 것입니다.


(한때 남부의 배반자로고 욕먹었던, 롱스트리트 장군)

한 수 접고 들어가서, 남군 병사들 확실히 북군 보다는 더 용맹해서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게티스버그에서 패했다고 해서, 남군이 전쟁에서 이길 기회가 생기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미국땅은 여전히 끝도 없이 넓고, 북군측의 인구는 남군측의 몇 배였으며, 경제력은 몇 십배였습니다. 남은 병력과 물자도 북군이 많았으니, 그랜트 장군이나 셔먼 장군이 게티스버그 전투가 끝난 다음날 바로 게티스버그 전투 만한 피해를 남군에게 줄 수도 있는 노릇이고, 꾸역꾸역 장기전으로 끌어서 북군이 이길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한 마디로, 양측 저력을 다 평가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 앞뒤 냉정히 따져보면, 게티스버그 전투는 남군이 지는게 당연한 싸움입니다.

이 영화 "게티스버그"의 문제점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근원이 있습니다. 역사대로 차근차근 읊어가다보니, 별달리 극적인 요소가 없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하면 "북군이 너무 많고, 고지를 점령하는 것은 힘듭니다" 라고 다들 말합니다. 그리고, 진짜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힘들어서 실패합니다. 단순하고 밋밋하게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게티스버그 전투의 고유 특징을 따로 발굴한 면이 강한 것도 아닙니다. 게티스버그 전투는 커다란 싸움치고는, 그저 길가다 우연히 만나서 즉흥적으로 싸운 꼴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류의 특징들을 이야기거리로 삼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승패가 자명한 밋밋한 싸움이라고해도 여러가지 수단으로 이야기에 극적인 느낌을 줄 수는 있습니다. 무모한 줄 알면서도 끝도 없이 싸우는 집념이나 처절함, 슬픈 느낌 같은 것을 살릴 수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람보 1편" 같은 것이 예입니다. 아니면, 반대로 무모하거나 냉정한 공격에 대한 비판으로 전쟁의 허무함을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아벤고 공수군단", "갈리폴리" 같은 영화들은 이런 느낌을 잘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용감하게 싸우는 병사들의 모습은 여느 군국주의 용사 못지 않으면서도, 비판적인 느낌 역시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아니면, 강한 쪽에 더 초점을 맞춰서 조금씩 지쳐가며 점점 두려워하게 되는 심리적 위기를 다룰 수도 있습니다. 적군이 별별 괴이한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 경악하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줄루", "죽음의 고지 햄버거힐", "북경의 55일"은 이런 분위기가 강합니다.


(실제 전쟁 무렵에 나온 게티스버그 전투 그림)

"게티스버그"는 이 중에서 어느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남군도 멋있고, 북군도 똑같이 멋있게 그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냥 적당히 멋있는게 아니라, 영웅이 득실거리고 명언과 감탄이 난무하는 모양으로 꾸미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쪽이 너무 고생하거나, 어느 한쪽을 너무 괴물같이 극단적으로 그리는 모습은 배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극적인 이야기를 일부러 꾸미지도 못했고, 그로서 놀랍고, 감격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는데도 실패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긴긴 영화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것입니다. 다 합해봐야 잠깐 치고 받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두 부분은 꽤 멋집니다. 북군 체임벌린의 피터지는 방어와, 게티스버그 전투의 절정인 피켓 돌격이 그것입니다. 이 두 부분은 특별히 각본을 지어내고 연출을 꾸미지 않아도, 그냥 역사상 사건 자체 만으로 어느 정도 흥미가 동하는 장면이 되기에 이 영화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빛납니다.


(게티스버그 전투 그림)

체임벌린의 방어은 꽤 멋지고 신기합니다. 체임벌린은 인물을 잘 만들었습니다. 체임벌린은 대학교수 였다가, 전쟁발발후 장교가 되어 싸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보다도 고생하며 싸우는 지휘관입니다. 체임벌린은 별별 악전고투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았고, 마침내 승전을 맞고, 훈장도 타고, 여든이 넘도록 천수를 누린 그야말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게티스버그 전투의 기록에서도, 체임벌린은 끝까지 버티면서 남군의 날카로운 공격을 저지했습니다. 체임벌린은 총알이 다 떨어져 싸울 방법이 없자 막판에는 총검을 세운 뒤 맞돌격으로 저항하는등 그야말로 피터지게 버텨낸 일화를 남겼습니다.

따라서, 그냥 대충 따지면, 체임벌린은 엄하고 고지식한 학자로, 무슨 임진왜란 때 의병처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날뛴 열혈투사로 생각하기 좋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그렇게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체임벌린은 대학에서 학생 가르치다가 갑자기 전쟁터에 온 탓으로 전쟁에 좀 적응되지 않는 듯한 사람 입니다. 살벌한 전쟁터 분위기에서 좀 인간적인 느낌을 많이 갖고 있기도 하고, 같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동생 걱정을 많이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명예나 격식, 의전과 제식을 지나치게 따지기보다는, 그냥 민간인에 가깝게 행동합니다. 체임벌린을 연기한 제프 다니엘스의 연기도 매우 좋습니다. 표정과 말투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공격을 맞이할 때, 초조해하고 겁먹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는 모습을 큰 과장 없이 속속들이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인간다운 체임벌린이 끝없이 몰려드는 적을 막느라 정신없이 고생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처럼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평범한 사람 같은 주인공이 그렇게 뛰어다니며 설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끝까지 침착하게 버틴 결과, 보통 학자가 역전의 용사인, 훈장 받은 "체임벌린"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 경험이 없는 시민이 어떻게 전쟁터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공을 세운 용사로 살아남는가 하는 모습을 상당히 와닿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 전체에서 체임벌린 쪽의 이야기는 조금이나마 농담거리 비슷한 것이 있는 이야기라서 감정의 완급이 잘 조절되어 있다는 점도 좋은 부분입니다. 외려 너무 현장감이 있는 인물이라서, 멋있는 영웅과 고전적인 서사시처럼 되어 있는 이야기와 안어울리는 느낌이 간혹 날 정도입니다.


(강의하다말고 전장에 뛰어들게된, 체임벌린)

다른 부분인 피켓 돌격은 그야말로 물량 공세로 밀고나가는 장면입니다. 수만명의 남군 병사들이 고지를 향해서 일제히 줄지어 저벅저벅 걸어옵니다. 총탄이 날아들고, 포탄이 떨어지며, 그래서 걸어오던 남군들 중 상당수는 픽픽 쓰러져 죽어갑니다. 그렇지만, 걸어오는 이 사람들의 걸음걸이에는 멈춤이 없고, 적진까지 들이 닥치겠다는 만용 같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포연이 자욱한 가운데, 총탄이 빗발치고, 그 와중에 들판을 수많은 군사가 끝도없이 달려드는 그 모습은 이 영화의 완연한 절정장면 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남북전쟁의 핵심은 게티스버그요, 게티스버그의 핵심은 피켓 돌격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만큼, 이 대규모 돌격은 예부터 장관이라 불리어왔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막대한 숫자의 엑스트라를 기용하고, 소도구, 의상, 특수효과 화약 등등을 한도 끝도 없이 퍼부어서, 이 피켓 돌격의 장관을 꽤 비슷한 느낌으로 재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촬영 자체가 게티스버그와 펜실베니아 일대에서 찍혀서, 정말로 피켓 돌격의 장중한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 패배하는 전투에서 누구보다 용맹하게 선두에 서서 목숨걸고 부하들을 이끈 아미스테드 장군의 모습은 와닿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피켓 돌격에서 병사들이 다 죽을 때까지 지치도록 싸우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아미스테드 장군을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남군 장교다운 굳건한 표정, 귀족정신, 병사들을 격려하고 사랑하는 자애로운 모습, 예절과 신사도를 배우 리처드 조던이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제작진이 물량을 퍼부어 한 동안 이어지는 피켓 돌격의 모습이 그럴싸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착하고 의지있는 노인 장군이 끝까지 노력함에도 어쩔수없이 중과부적으로 결국에는 실패하고야 마는 모습은 관객들을 안타깝게 만들만도 합니다.


(용감하고 불쌍한 영감으로 나온, 아미스테드 장군)

이 영화는 이상이 한계입니다. 이런 멋진 부분들만큼, 무미건조하고 썰렁한 부분이 많습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던 두 부분이 차지하는 몇십분을 빼면 전체 4시간 21분의 긴 영화 중 나머지는 조금은 엉성합니다. 전술에 고민하고 만감이 교차할 전투 전후의 묘사가 참 심심하고도 기나길게 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모든 장군들이 전투 장면 이외의 시간에는 서로 연설하고 시적인 대사 읊기에 불타고 있습니다.

틈만 나면,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버지니아는 저 멀리에 있고, 저들은 여기에 있다. 링컨은 저 넘어에 있고, 역사는 어제 있으며, 하늘은 푸르고, 땅도 푸르다. 바람이 부니,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고. 신의 뜻은 나의 의지로..." 이런류의 대사를 끝도없이 주절주절 서로서로 돌아가며 읊어 댑니다. 모두가 다 이런 시 읊기로 하나 같이 대사를 메우고 있으니, 인물들이 뚜렷하게 살지를 않습니다. 비열한 놈도 있고, 멍청한 놈도 있고, 경망스러운 사람, 무뚝뚝한 사람도 있는게 흥겨운 모습일텐데, 다들 멋있는 연설만 하려 들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등이나 다채로운 감정을 내뿜는 부분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지겨운 부분도 꽤 많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나 많은 대사들을 조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 귀절 같은 대사들은 아름다운 운율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상황에도 맞지 않는데 억지로 대사 자체로 겉멋부렸다는 느낌이 많습니다. 그래서 좀 허황되고 낯뜨겁게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연설에 감화되어" 인생을 바꾸는 "사이비 도덕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등장하는 어린이 같은 인간"도 꽤 나옵니다.

특히 리 장군 같은 사람은 상당히 아깝습니다. 이 사람은 북군이 두려워하고, 남군은 모두가 믿고 따르고 존경하고 숭상하는 위대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멋있는 대사, 시적인 표현 엄청나게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뭘 그리 잘하는지 보여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틴 쉰이 연기하고 있으니, 보기에는 좀 대단해 보이기는 합니다. 그게 유일해서, 마틴 쉰이 얼굴값, 목소리값만 할 뿐입니다. 행동과 지시에 우러러 볼만한 것은 없습니다. 리 장군이 진 다음에 "다 내잘못이요"라고 겸허히 체념하는 부분 한 군데외에, 리 장군이 정말로 뛰어나다는 점을 묘사하는 대목은 전무할 지경입니다.

이 영화는 가만히 보면, 자주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측의 가장 큰 패인으로 지적되는 롱스트리트 장군을 별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 부터 리 장군이 잘못 생각했다"는 투로 나가는 성향이 꽤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줄거리만 보면, 리 장군이 바보 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대사나 사람들이 받는 느낌을 표현할 때는 리는 위대한 인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생깁니다. 사람들이 리를 존경하거나, 리가 스스로 대단한 척 하려는 장황한 대사들이 헛소리 같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아직까지도 워낙에 존경받는 위인인 리 장군이기에 함부러 그렇게 이야기를 위해 꺾어댈 수 없겠다는 한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나폴레옹을 다루는 많은 영화들처럼, 의기양양하던 리가 패배하면서 점점 괴로워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들춰내는 구성이 더 와닿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할만한 신사의 모범으로 추앙받았던, 리 장군)

좀 더 살펴보자면,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초점인 대규모 군중 장면도 사실 역효과가 있습니다. 막판 피켓 돌격을 워낙 장엄하게 잘 꾸미려고 하다보니, 돈이 부족해서 다른 전투 장면들은 상대적으로 좀 싱겁고 작게 표현해 버린 것입니다. 게티스버그 전투는 둘째날의 싸움도 대단한 혈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그냥 중대 두 세 개가 각개전투 훈련 한 번 하는 듯한 느낌 밖에 안납니다. 전투 묘사 자체도, 전장식 소총이나 남북전쟁시기 대포 포병의 고유한 분위기를 별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냥 행사할 때 축포 쏘는 듯한 느낌에 그쳤습니다.

장교급 이상의 이름있는 배우들은 연기를 열심히 하는데 비해서, 대부분의 병사 엑스트라들은 연기와 지휘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뛰어든 병사의 느낌이 아니라, 무거운 소품을 들고 일당 받을 때까지 돌아다니는 지친 엑스트라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느끼는 공포감이나 광기 혹은 명예나 혈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냥 시키는데로 무표정하게 왔다갔다할 뿐입니다.

남북군 어느 한쪽에 특별히 치우치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지상 최대의 작전" 같은 실화 재연 영화의 재미를 좀 더 노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한 사건을 보는 이야기로 꾸몄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갖가지 사건이 긴박하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장군들의 전쟁영웅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이 영화의 음악 역시, 너무 "감동주려는 명예로운 음악" 일변도로 계속 반복되어서, 좀 재미가 없는 편입니다. 돈도 없겠다, 이름난 역사속의 장군들이 주르륵 나와서 차례로 돌아가면서 멋부리는 문장만 자랑하는 이야기로 빠지겠다, 싶으니, 이 영화는 그렇게 처절한 혈전을 다뤘으면서도 핏방울 몇 개도 잘 안보이는 것입니다.

끝으로 좀 더 건질만한 것들을 찾아본다면, 워낙에 긴 영화라서, 군데군데 사이사이에 조그만한 이야기거리들이 빠지지 않고 구색을 넓게 갖추고 있다점이 눈에 뜨입니다. 남북전쟁에서 두드러졌던 유럽 선진국들의 참관장교에 대한 묘사나, 전쟁에 대해서 관심도 없어서 그냥 구경거리로만 여기는 시골 사람, 흑인 병사, 3년 제대 제도, 소년병의 군악대 복무, 깃발에 대한 중시, 기록에 남아 있는 인물들의 명대사 등등 남북전쟁을 대표하는 다양한 소재들이 조금씩 조금씩 흩어져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각지역의 억양으로 말하는데, 가끔 너무 가짜 흉내스러운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만, 이 역시 언급할만은 합니다.


그 밖에...

이 영화의 전후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 비슷한 것으로 "신의 영웅들 Gods And Generals"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1만 3천명에 달하는 남북전쟁 애호가들이 직접 게티스버그에 자발적으로 와서 그날의 옷과 장비를 재현하는 일을 즐거이 했다고 합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벅스데일 장군을 연기한 배우는 실제로 벅스데일 장군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한편 리가 등장하자 환호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마틴 쉰이 나타나자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계획에 없던 것이었는데 그냥 찍어서 쓴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 영화가 길어서 하루에 2번 밖에 상영하지 못했지만, 개봉했을 때 흥행 10위권에 당당히 진입했습니다. 원래는 TV미니시리즈로 만들려다가 영화로 개봉해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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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arlowe 2007/05/10 13:38 # 답글

    남북 모두 미국이라, 악역으로 그리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좋은 악역은 좋은 영화를 위해 (좋은 영웅보다 더!) 필수적이지요.
  • 이준님 2007/05/10 14:20 # 답글

    1. TV 시리즈로 나온판도 있지요. 마봉춘에서 며칠간 정규프로 안하고 돌렸습니다. 물론 이 판은 영화판에 없는 장면들이 추가되었지요. 마틴쉰이나 뷰포드 장군역을 한 배우나-아. 그러고 보니 헐크에서 그 장군으로 나오는군요- 공통된 이야기가 편집만 잘 했으면 걸작이 될수 있었다고 하지요. 우리나라도 아주 잠깐 극장에 걸린걸로 압니다.

    2. 남북전쟁 매니아인 CNN 사장이 적극적으로 제작에 개입했지요. 이 아저씨는 카메오 출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연출이 이렇게 간게 제작사의 책임이 큽니다.(신의 영웅들" 역시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제작을 한거고 그 연작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3. 사이비 동화책의 어린이가 아마 영국 관전장교 프리멘틀 대령인가보군요. 사실 "마음을 바꾸"는게 아니라 원작에 보면 첨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_-;;; 이 사람은 실지로 "남부의 승리를 예언한" 종군기를 영국에서 출판합니다.(출판된지 몇주후에 남부연합은 공식적으로 항복합니다.)
  • 이준님 2007/05/10 14:27 # 답글

    4. 사실 원작자체가 주인공 3명 (리, 롱스트리트, 쳄벌레인)의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원작을 상당히 반영"했던게 지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뭐 사실 원작보다 더 남부 중심적입니다. -_-;;;) 그리고 원작 역시 꽤나 지루하다면 지루하지만 이쪽 부분의 매니아들에게는 꽤 재밌게 보이는 이야기지요,. 원작인 킬러 엔젤은 실지로 퓰리쳐 상까지 수상한 걸작 고전입니다. (이 작가의 전직이 무려 sf 였다는게 안습이지만)

    5. 원작이 사실 여러 연대기로 구성하려 했다는 냄새가 무척 나지요. 리가 자주 이야기하는게 "잭슨이 살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걸~"이라는 거나 (실제로 원작에서 롱스트리트와 프리맨틀이 잭슨의 기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시적 멕시코 전쟁때 사다리 육탄돌격 스토리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거지요. (물론 영화판은 모두 생략했습니다.)
  • 이준님 2007/05/10 14:32 # 답글

    6. 게티스버그의 패배의 책임이 롱스트리트에게 있다고 하기는 그렇지요. 사실 진짜 비난받았던 이유는 그가 "게티스버그의 패인은 리에게 있다"라는 걸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주 터키 대사등의 벼슬을 역임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한때는 남부에서 왕따 비슷하게 살았지요(이 사람의 후일담에 대해서 극적인 이야기가 원작에 있지요)

    7. 작가 사후에 아들이 뒤를 이어서 쓴게 프리퀄인 "신의 장군들"입니다. 이건 리-잭슨-쳄벌레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게티스버그 전야까지의 남북전쟁사를 그립니다. (역시 TV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로버트 듀발이 리를 맡았습니다.) 후속작인 "라스트 풀 미져"는 게티스버그 이후 남부의 항복까지를 그렸고 그랜트-리- 쳄벌레인을 주인공으로 하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1차 대전 발발 직전에 사망한 쳄벌레인이 마지막으로 게티스버그를 바라보면서 후대의 전쟁이 처절할거라는 걸 예상하는건 의미심장합니다.(작가의 또 다른 작이 1차 대전을 소재로한 작과 게티스버그 연작의 외전격인 멕시코 전쟁 당시의 신임장교 리를 그린 작품, 그리고 엘앨라메인을 소재로 한 작이 있지요)
  • 이준님 2007/05/10 14:36 # 답글

    PS: 앞부분의 챔벌레인의 연설은 "인간의 길"이라는 소설에서 그대로 배꼈습니다.

    원작은 관전장교중에 프러시아나 프랑스 장교도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생략된 프리맨틀과 롱스트리트의 대화중에서 앞으로 전쟁에서 공격위주의 전략은 학살극을 이론적 분석이 있습니다. (이건 피켓의 돌격에 대한 강한 암시입니다.)

    롱스트리트로 나온 배우가 플래툰의 그 사람인건 중간에서 알았지요. 쳄벌레인의 동생도 유명한 아역배우이고, 잠시 앞에 나온 뷰포드는 군인 전문 배우로 악명이 높고(정확하게는 이라크 전 찬성 시위로) 아미스타드는 "듄"에서 던컨으로 나왔지요
  • FAZZ 2007/05/10 17:24 # 답글

    tv시리즈로 계획되었다가 영화로 바뀔 정도면 첨부터 그 물량이 장난이 아니었단 소리군요
  • 게렉터 2007/05/14 01:22 # 답글

    marlowe/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악역 비슷한 인물이 거의 아무도 없습니다. 그나마 최강의 기병대장이 악역을 맡을만도 한 위치인데, 이 양반이 악역이 되는 것은 리 장군이 악당으로 나오는 것 못지 않게 힘들었을 것입니다. 게티스버그 전투에서는 활약도 적은 사람이라 이야기를 끼워 박기에도 무리고 말입니다.

    이준님/ 언제나처럼 자세한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길"에서 연설을 가져왔다는 것은 꽤 놀라운 정보입니다. 롱스트리트는 리 장군이 "It's all my fault." 이후로 정말로 남탓을 별로 안했는데, 자기는 리 탓을 많이 하고 다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욕먹은 구석이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위대한 리와 반대 위치에 서면서 나쁜 롱스트리트로 몰린 느낌 비슷하게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거의 전혀 아닌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나, 다른 영화 속 대사 같은 것 보면, 롱스트리트를 게티스버그의 헛점으로 꼽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 있는 듯 합니다. 저는 천우신조가 아닌한, 어차피 이길 수 있는 전투가 아니었고, 롱스트리트의 잘못은 폭풍우치는 날 물잔 쏟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글쓰면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한글자료 중에는 남북전쟁 관련 이야기가 인터넷에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아는 재미위주의 무용담 중심으로 간략하게 남북전쟁 이야기를 한 번 연재해 볼까 하는 생각마저 울컥 들 정도 였습니다.

    FAZZ/ 물량도 물량이지만, 저는 분량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보다 더 긴 영화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고, 21세기 들어서 본 영화중에는 가장 길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경아 2007/05/17 03:14 # 삭제 답글

    이준님/ CNN 사장이라면 혹시 테드 터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호오.. 남북전쟁 매니악인줄 몰랐는데, 이 사람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해서 재밌네요.
    제가 사는 곳에선 이 사람을 모르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지라..^^ 재밌어서 또 엉뚱한 답글 답니다.
  • jagsjj 2007/05/19 00:53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남북전쟁에 대해서 좀 흥미가 있어서, 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리장군의 최악의 전투였습니다. 당시 남군의 최고사령관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그 중요한 순간에 리장군이 그렇게 상태가 안좋았던 것은 스튜어트가 없었던 것이 컸습니다. 물론 스튜어트가 그렇게 나돌아다니게 된 것도 결국 리장군의 책임이긴 하지만

    롱스트리트는 그랜트와의 친분으로 공화당의 직을 얻는 등, 남부의 '악역'이 될만한 짓을 막판에 했지요. 하지만 전쟁 중에 롱스트리트만큼 믿음직한 군단장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바위같이 듬직했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뇌리에는 리장군이 너무도 위대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티즈버그에서 롱스트리트를 희생양으로 삼곤 했지요.

    저는 오히려, 게티즈버그를 말아먹은 진정한 남군 장군은 힐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째날에 헤스 사단이 움직이도록 경솔하게 허락한 점이나, 둘째날에 이웰과 롱스트리트에 비해서 매우 형편없는 전투 지휘하며, 셋째날에 피켓 대공세에 자신의 2개 사단이 참가함에도 롱스트리트와 부대 조정 등의 협조를 전혀 하지 않은 등.... 사실상 '집 나간 탕아' 스튜어트와 롱스트리트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힐이 제대로 삽질한 것 같습니다.



  • jagsjj 2007/05/19 00:59 # 삭제 답글

    참고로 피켓 대공세 직전에 리장군에게 환호하는 장면은 실제 전투 때는 없었습니다. 리장군은 부하들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환호하지 말도록 지시하였죠. 대신에 병사들은 묵묵히 모자를 들어서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령관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 지나가던이 2007/05/21 03:49 # 답글

    링컨의 그 유명한 연설은 사실 당시 사람들에겐 매우 짧은 것이었습니다. 링컨앞에선 연설자가 무려 2시간 이상을 연설해대는데(당시엔 장광설이 인기..)링컨이 멋을 부리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청중은 링컨이 연설을 끝마친 다음에도 왜 말을 안하나? 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하니까요. 물론 링컨의 연설이 그 당시에도 유명해지기는 합니다. 바로 앞에서 연설했던 사람이 내가 2시간 연설한 내용을 대통령은 몇분이내에 핵심만 추려 전달했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라더군요.
  • 게렉터 2007/05/21 17:47 # 답글

    jagsjj/ 감사합니다. AP힐 말씀이십니까? AP힐은 남북전쟁 전체에 걸쳐 충실히 활약한 내역들을 보면,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AP힐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라도 없잖은 이상, 롱스트리트와의 부대 조정이나 헤스 사단에 대한 허락 같은 것은 AP힐 선에서 쉽게 관리할 수 없었던 부분 아닌가 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롱스트리트의 지휘/요청이나 리 장군의 작전계획에서 미리 설명되어야만 AP힐이 조심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제 진짜 생각은 게티스버그 전투는 천행이 있었으면 남군이 어떻게 잠시 이길 수도 있었겠지만, 왠만하면 아무리 잘해도 결국은 패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지나가던이/ 워낙 유명한 연설이라서 별별 낭설이 다 도는 이야기입니다. 한 때 무슨 "여러분이 모르는 상식" 같은 글 시리즈에서 기차타고 오면서 생각해서 편지 봉투 같은 곳에 메모했던 연설이라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상식"이 아니라 "당신이 잘못알고 있는 잡식" 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만.
  • 게렉터 2007/05/21 17:47 # 답글

    jagsjj/ 감사합니다. AP힐 말씀이십니까? AP힐은 남북전쟁 전체에 걸쳐 충실히 활약한 내역들을 보면,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AP힐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라도 없잖은 이상, 롱스트리트와의 부대 조정이나 헤스 사단에 대한 허락 같은 것은 AP힐 선에서 쉽게 관리할 수 없었던 부분 아닌가 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롱스트리트의 지휘/요청이나 리 장군의 작전계획에서 미리 설명되어야만 AP힐이 조심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제 진짜 생각은 게티스버그 전투는 천행이 있었으면 남군이 어떻게 잠시 이길 수도 있었겠지만, 왠만하면 아무리 잘해도 결국은 패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지나가던이/ 워낙 유명한 연설이라서 별별 낭설이 다 도는 이야기입니다. 한 때 무슨 "여러분이 모르는 상식" 같은 글 시리즈에서 기차타고 오면서 생각해서 편지 봉투 같은 곳에 메모했던 연설이라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상식"이 아니라 "당신이 잘못알고 있는 잡식" 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만.
  • 스페셜 2010/03/10 17:15 # 삭제 답글

    저두 오늘 게티스버그랑 신의영웅들봤는데요 마지막에 3부작이라고 해서 라스트풀메져(정확한 의미는모르겠조 마지막으로충분한?)
    암튼 이거나오던데요 아직 라스트풀메져는 영화로 안나 왔나요
    네버 검색해보니 브루스월리스 나온거 있던데 그건 아닌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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