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요새의 세 악인 隠し砦の三悪人, The Hidden Fortress 영화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감독을 맡은 1958년작 영화로, 두 친구와 두 친구가 만난 한 무사를 중심으로 한 모험담입니다. 일본 전국시대 무렵이 배경으로, 무슨 껀 수 없나 싶어 시골에서 전쟁터로 온, 무지렁뱅이 농부 두 친구가 우연히 금덩이를 하나 발견하게 되면서, "숨은 요새"에 숨어 있는 공주 일행과 엮이는 것이 모험의 발단입니다.


(바위 산 속 숨겨진 비밀요새를 발견한 두 친구)

이 영화의 멋진점은 거칠고 무정하고 더러운 중세 전쟁 분위기가 살짝 감돌면서도, 전체적으로 웃기고 신나는 모험담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중세의 전쟁이 적잖이 소재로 활용되는 영화입니다만, 화려한 귀족 사회의 모습이나, 웅장한 군사들의 위용 같은 것은 거의 전혀 없습니다. 대신에 굶주리고, 비위생적이고, 야비한 사람들을 그려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두 사람은 몰골부터가 거지꼴인데다가, 무식하면서도 꽤나 얍삽한 인간들이고, 두 사람이 마주치는 귀족이나 무사들의 모습도 대부분 닳고 찌든 모양입니다. 이런 의상과 소품들은 일단 현대 문명에 대비되는 중세의 모습을 잘 가져와 볼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꽤 사실감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무슨 모험이 이렇게 고달픈 길인가)

여기에, 시골에서 온 두 친구라는 인물들이 더욱 생동감을 더 합니다. 이 사람들은 그냥 고향 친구로, 조금 탐욕스럽고, 조금 비겁한 인물이면서도, 꽤나 인정도 있는 인간들입니다. 무엇보다도, 맞을까봐, 죽을까봐 굉장히 겁내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난리가 난 전쟁통의 모습이나, 냉철하거나 낭만에 불타는 귀족들의 모습에 대비되면서, 이야기를 지켜보는 현대의 시민들에게 상당히 공감을 줍니다. 누가 칼끝을 목에 대고 위협하면, 의기있게 눈을 똑바로 뜨는 모습보다야, 벌벌떨면서 목숨만 살려줍쇼라고 합니다. 그런 모습이, 훨씬 평화로운 삶을 사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 와닿기 쉽지 않은가 합니다.

그러면서, 이 두 사람은 글자도 읽을 줄 모르고, 굶기를 밥먹듯하여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가난해 빠진 사람들입니다. 둘 다 그런 주제에, 항상 두 사람은 서로 아웅다웅하고 고생하고 욕먹고 무시당합니다. 그런 모습은 한편으로는 무척 한심해 보이기도 하면서, 도덕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줍니다. 이런 것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모습과 겹쳐지는 덕에, 호오가 교차하고, 가소로움과 측은함이 얽혀있는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서, 역시 경제수준과 교육수준이 일천한 옛 시대의 느낌을 꾸밈없이 가져온다는 생동감도 주고 있습니다.


(티격태격 한심한 두 친구)

두 인물이 더욱 더 훌륭한 것은, 두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의 코메디 연기가 매우 출중하다는 것입니다. 정통 코메디는 결코 아니고 그 웃길 수 있는 양이 풍성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누추한 모습의 두 사람은 한심하고 치사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조금씩 살짝살짝 사람을 웃기려고 하는데, 그 꼬락서니가 참 실감납니다. 두 사람은 땅파고 흙먼지 뒤집어쓰고 도망다니고 무서워서 숨고 하는 일들에서 느낄만한 감정을 진짜같이 와닿게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사이사이에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 등으로 웃긴 느낌을 과하지 않게 조금씩 집어 넣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한낱 기계덩어리 관찰자들을 이야기 중심에 참여시켜서, 거대한 서사시와 사소한 감정을 조화시킨 "스타워즈"의 직계 조상이라 할만합니다. 코메디를 살리는 과장은 없습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멍청하고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기보다는, 시대 상황 자체를 풍자하는 듯한 느낌도 납니다.

또 약한 두 사람의 시점을 중요하게 다루다보니, 대비되어 진지한 역할을 하는 공주, 무사 같은 사람들이 더 진지해 보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반대로, 의리와 충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에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줘서, 탐욕이나 허황된 일확천금의 꿈을 보여주는 것도 잘 먹혀 듭니다. 멀리서 갑자기 황금덩이가 제발로 뛰어들어 오는 놀라운 광경은 옛 우화스러운 환상적인 맛까지 있습니다.


(전쟁 다 끝나고 전쟁터를 헤메는 두 친구)

그러니 만큼, 이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전쟁터에 와서 이상하게 꼬여버린 탓에 오직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 꿈꾸고 있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밥도 못먹고 집에도 못가면서 비척비척 들판과 산길을 헤메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금덩어리를 발견하고, 여러가지 근방의 정황을 듣고, 이상한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고, 숨은 요새를 발견하고 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부분에서는, 금덩어리가 어디서 난 것인가, 갑자기 등장한 저 이상한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숨은 요새는 누구의 요새이고, 거기에 누가 숨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을 하나둘 보여줍니다. 그렇게 해서 관객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며 흡인력을 주고, 이야기의 복선들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중반부 부터는, 공주를 숨긴 채, 적진을 몰래몰래 돌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부분의 모양은 독일군 점령지를 돌파해 나가는 2차대전 스파이 영화나 특공대 영화와 매우 비슷합니다. 조심스레 검문소를 통과하고, 위장한 신분으로 너스레를 떨고, 긴장한 사람들의 눈빛을 보여주며 고단한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영화에서 다룰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거리들을 하나 둘 모범적으로 짚어가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특히, 최대의 위기를 맞아, 심리를 역이용해서 빠져나가는 부분은 연기도 뛰어나서 무척 통쾌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에서는 두 친구들은 조연급으로 빠지고, 일행을 이끄는 지혜로운 무사가 주인공으로 나섭니다. 듬직한 모습도 좋거니와, 힘있는 목소리와 의지넘치는 모습이 연기도 꽤 뛰어납니다. 또한, 비루먹은 두 친구에 비해서, 늠늠한 사람이어서, 서서히 더 큰 비중의 주인공으로 나서도 자연스럽습니다.


(신분을 속인 호위무사와 공주의 적진 돌파)

싸움 장면들도 잘 만들어진 편입니다. 칼싸움이나 격투 장면이 그렇게 많은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초반부에는 엑스트라를 잔뜩 동원해서 난리통을 헤메는 두 사람의 모습을 꽤 규모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 엑스트라들을 좁은 공간에 바글거리게 몰아넣어서, 괜히 더 복잡하고 사람이 많고 더 혼란스러운 느낌을 강조하는 방식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반부 부터, 무사가 중심인물로 나서면서, 창칼을 무기로 하는 결투 장면들이 하나 둘 등장하는데, 이 역시 상당히 잘 만들어진 편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가며 싸우는 부분은 나무 사이로 뻗은 길과, 흙먼지, 묘기 같은 칼 휘두르기, 말타기 모습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그래서 속도감과 타격감이 표현됩니다. 서부영화의 말달리는 모습과 닮은 면도 있고, 말을 달리며 싸우는 장면 사이사이에, 빠르게 움직이는 말발굽의 모습을 사이사이에 끼워넣어서 빠른 속도의 긴장감을 높이는 화면도 눈에 잘 들어 옵니다.

창을 들고 싸우는 결투 장면에서는, 둘러친 병사들의 놀라는 모습이 조금씩이지만 눈에 뜨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대1 결투의 실력이 굉장히 대단한 무예라는 기분이 나게 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휘두르는 창칼이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파괴적인 무기라는 느낌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창칼이 일부러 빗맞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세워 놓은 휘장과 천막을 맞아 찢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창날 끝이 정말로 물건을 쪼갤 수 있다는 힘과 살벌한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무사)

또 한가지 짚어보고 싶은 것은, 전국시대 고유의 시대 상황도 재미거리로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두 주인공과 병사들 무사들의 모습이 대립되어 있고, 좁은 영토를 영주들이 나눠갖고 있는 것이 갈등의 중요한 소재로 잘 쓰였습니다. 중세 사극다운 1대 1 대결과, 승패의 명예를 중시여기는 분위기가 선명하면서도, 동시에 조총 부대의 탄환이 날아다닙니다. 주막의 상업이 강조되기도 하는 묘한 시대상도 잘 드러나서, 더 다채롭고 개성있는 이야기를 끌어 내고 있습니다. 서부 영화 음악 분위기가 나는 북소리가 선명한 힘있는 음악도 적절합니다.

이 영화는 흥미로운 인간 관계에 비해서 결국에는 권선징악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전형적인 위기와 해결 방법을 밟아가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많이 본듯한 것이기는 합니다. 중간의 "불 축제" 장면은 일본 전통문화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경거리는 됩니다만, 좀 더 음악과 춤의 흥겨운 느낌을 더 멋지게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버릇없는 공주" 인물의 연기가 결정적인 몇몇 부분에서 내용에 비해서 부족한 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맛들 때문에 오히려 예스러운 고전으로는 영화의 가치는 충분히 대단합니다. 누구하나 서로서로를 믿지 못하고, 싫어하고, 의심하면서도, 조금씩 인간적인 정이 서려 있는 "숨은 요새의 세 악인"들의 모습은 고달픈 옛 전쟁터의 정경에 잘 어울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문 앞에서 조총 사격)


그 밖에...

예고편 동영상:


조지 루카스는 이 영화에서 두 명의 힘없는 관찰자 인물이 이야기의 흐름에 줄곧 관여되는 구조를 "스타워즈"에서 모방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토호 영화사에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주는 것을 작정하고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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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eiquni 2007/06/04 14:15 # 삭제 답글

    연개소문이나 대조영 류의 사극이 한창 인기인데... 그닥 재미가 없는 이유는 리얼리티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대나 복식이나, 말투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닳고 낡음의 리얼리티가 제대로 구현이 안 되는거죠.
    금방 꺼내서 번쩍거리는 연개소문의 투구와 갑옷을 보면서 설익은 코스프레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 면에서 구로자와 아키라가의 사극들과 많이 대비가 되네요.
    배경과 소품이 진짜 그때 그 시절 이야기 같은게 인상깊더군요.
  • 게렉터 2007/06/04 14:20 # 답글

    동의 합니다. 그나마 태조 왕건 무렵쯤 해서는 말투의 리얼리티도 버려 버린 듯 하고, 주몽 쯤에서는 복식의 리얼리티까지 버려버린 듯 해서 좀 되돌아가는 느낌의 사극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 火神 2011/01/02 15:31 # 삭제 답글

    벌벌떨면서 목숨만 살려줍쇼라고 합니다. 그런 모습이, 훨씬 평화로운 삶을 사는 우리 관객들에게는 더 와닿기 쉽습니다--->벌벌떨면서 목숨만 살려줍쇼라고 합니다. 그런 모습이, 훨씬 평화로운 삶을 사는 나에게는 더 와닿기 쉽습니다
  • 게렉터 2011/01/03 21:12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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