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3 Spider-Man 3 영화

"스파이더맨 3"는 뉴욕의 빌딩숲을 무대로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왠만해서는 도시를 위협하는 악당들과 맞서싸우거나 재난에서 시민들을 구출하는 이야기가 중심이어야 할 듯 합니다만, "스파이더맨 3"는 스파이더맨 주변에 얽힌 사적인 치정과 복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스파이더맨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초능력, 초능력 비슷한 능력을 얻게된 사람이 공교롭게도 계속 등장하므로, 그냥 뺨 때리고 법정 소송 하면서 끝낼 이야기를 빌딩 부수고 지하철 다니는 길을 두들기는 커다란 싸움이 됩니다.


(스파이더맨 3)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무척 아까운 부분은, 이야기의 핵심이 이런 치정과 복수 이야기인데도 주인공 스파이더맨의 고민이나 번뇌가 펴지다가 말았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스파이더맨이 사랑때문에 고민하는 부분은 딱히 별 이상한 사연이 없어도 충분히 설득력 있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별볼일 없는 젊은이 두 사람이 대도시에 와서 자리잡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명은 갑자기 우연히 스파이더맨이 되어 삽시간에 영웅 대접을 받게 된 상황입니다. 두 사람은 거리가 멀어지고 갈등을 빚을만 합니다. 실제로 "스파이더맨 3"의 앞부분은 즐거운 남자 주인공과 답답한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꽤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위로하려 하지만 잘 되지 않고, 아쉬운 이별을 하고, 복수심에 불타고, 남자 주인공과 멀어진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와 가까워지고 하는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와닿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공감할만하고, 주인공을 맡은 토비 맥과이어의 연기도 좋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은 충분히 전달될만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자연스럽게 말이 되고, 심지어 진지한 감정을 담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어물쩡 날려 버립니다. 초능력 악당과 결투하게 하기 위한 다른 이야기거리와 연결하게 하기 위해, 그냥 "정신병 괴물"의 소행으로 몰아 붙여 버렸습니다.

갑자기 겉멋에 빠진 주인공이 껄렁거리며 돌아다니고, 그 모습을 가소롭게 여겨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불쾌해 하는 모습은 꽤나 웃기고 신납니다. 주인공의 모습도 좋거니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유쾌하게 진행되는 뮤직비디오나 뮤지컬 같은 연출도 재미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그런식으로 사람의 심경이 변하고, 사람의 행동이 변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기에 재미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풍자적이면서 사실적이고, 유쾌하면서도 심각하기도 한 내용입니다.


(심각하게 변했어!)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남자주인공의 심경변화를 인간적인 고민이 아니라, 우주괴물의 정신공격이라고 해버립니다. 그래서 그 우주괴물만 물리치면, 사랑, 우정, 경력의 고민들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상징적인 수법과 환상적인 느낌을 살린다면, "눈의 여왕" 같은 동화처럼 멋지게 될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선악, 정사, 호오를 단순하게 나눠서 "악의 본체"를 두들겨 파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말았습니다. 이야기거리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저는 옛 구미호 전설이나 여우에게 홀리는 전설이, 바람피다가 패가망신한 남편이 부인에게 들킨 뒤, 부끄럽고 무서워서 핑계대다가 탄생한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말로 바람피우는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과의 정이나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미호 이야기만해버리면, 그냥 요괴사냥과 귀신이야기가 됩니다. 차라리 옛날이야기나 실감나는 도시전설이라치면, 그와중에도 나름대로 숨은 의미가 느껴집니다만, 특수효과가 넘쳐나는 액션대결의 분량이 많아지면, 영화판 "퇴마록"에 슬며시 가까워질 우려가 큽니다.


(고층빌딩에 매달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스파이더맨)

그렇게 주인공의 갈등이 어긋난데는, 이 영화가 다루고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가 된 듯도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스파이더맨3를 괴롭히는 악당이, 세 명이나 나옵니다. 악당들의 모습에 특별히 강렬함이 없다는 점은 그래도 출신이 특이한 사람들이다보니 대강 넘어갈만합니다. 이 악당은 세 명 다, 나름대로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씩 있어서, 거기에 얽힌 감정과 칠정오욕이 사연으로 소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악당을 그냥 비웃을 만한 악당이 아니라, 사연이 있고, 입체적인 인물로 꾸미기 위한 시도였던듯 보입니다. 거기까지는 할만한 일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서, 스파이더맨의 대부분의 싸움이 그냥 사사로운 결투로 점철되어 버렸습니다. 대도시에서, 낯선 시민을 건물과 기계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사고에서 구해내는 도시사회의 스판덱스 유니폼 영웅물의 이야기가 잘 살아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주인공 앞자리에 앉는 사람부터, 주인공의 직장 경쟁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사고들로 전부 주인공 중심으로 엮여드는 모습은 급하게 사연을 엮으려고 짜맞춘 듯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의롭고 착한 이야기를 하려고, 복수와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꾸며서 억지로 억지로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도 상당히 어색한 구석이 있습니다. 팍팍한 도시 시민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감동적인 인의를 행한 중세의 수도사나 승려 일화에 더 걸맞을 분위기입니다. 그러다보니, 세 사람과 번갈아가며 스파이더맨이 격투를 벌이는 내용은 가끔 너무 길게 느껴지고 좀 지루하기도 합니다.


(대사 많아요? / 엄청 많죠.)

그런 문제점이 정점에 이르는 부분은 "사실은 안죽었다"를 반복하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흩어져 있는 복수, 감정싸움 이야기를 극적으로 끼워 맞추기 위해서, 상투적인 수법을 좀 남용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었는 줄 알았는데, 지옥에서 돌아왔다" 같은 연속극에서 비판 많이 받던 수법이 등장하는가 하면, 어김없이 "기억상실증" 까지 나와버립니다. "기억상실증"이 나오다보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긴 대사 하고 원한 품고,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긴 대사하고 착해지는 사람도 당연히 나옵니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안죽은" 사람이 두 명이나 등장하고, 그 중에 한 명은 감정이 넘쳐흐르는 죽음을 세번이나 반복합니다. 악당 한 명은 무슨 노틀담의 꼽추 콰지모도 처럼 한 맺힌 사람으로 무게 잡아 놓고는, 옆에서 장기 둘때 훈수하는 영감 같은 말 한마디 듣더니, 갑자기, 경쾌하고 발랄한 조이 트리비아니스러운 착한 친구로 변해버립니다.

이미 한국영화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이후로 계속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죽을 때 천천히 죽으면서 유언 길게 하기"도 이 영화에서 꽤 과합니다. 정말 정말 죽기 전에 말 길게 합니다. 농담도 하고, 진지한 말도하고, 감개무량한 말도 하고, 주인공이 반성할 시간도 줍니다. 오페라를 보다보면, 죽는 장면을 노래로 꾸미다 보니, 죽으려고 누워서 노래 한곡을 완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오페라 모양으로 되어 있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끄는 시간은 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런 다같이 반성하고 감동하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악당에서 악당 아닌척 돌변하는 인물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일 강력한 악당이 한참 신나게 싸우다 말고, 자기 동료 하나 자빠지고 나니까, 갑자기 초등학교 선생님이 싸운 어린이 강제로 악수 시키듯 고해성사를 해버립니다. 이 장면은 어색하기도 하거니와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는지 그 기나긴 싸움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빈 느낌이 납니다. 아니 그럴꺼면, 죽고 부수기전에 미리 반성해도 되었을거 아닙니까. 이 녀석은 구밀복검 이중인격자로 관객들에게도 잘 들키지 않을만큼 치사한 녀석이어서 동료가 죽어서 싸움에 승산이 없어지니 일부러 반성한 척 하고 살짝 몸을 피한 듯도 합니다.


(마지막 결투)

이 영화에서 좋은 부분은 무리없는 액션 연출과 적당히 살아난 복고풍 뉴욕 분위기 입니다. 이민자들과 어울려 사는 조그마한 낡은 아파트와 교통체증, 그늘을 드리우는 초고층 마천루 같은 시각적인 심상들은 켜켜히 틈틈히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낡은 문에 관한 이야기는 뚜렷한 맺음이 없어서 좀 허하긴 하지만, 충분히 좋은 소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서 호기를 부려보는 호화판 프랑스 식당이나, 규모에 비해 꽤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클럽도 옛 영화 속 뉴욕 분위기 같은 느낌으로 잘 어울립니다.

이런 부분들은 옛날 오 헨리가 무슨 일이 또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수 없는 거대도시를 신비한 아라비안 나이트 처럼 꾸민 그 정서를 잘 살립니다. 그래서, 50, 60년대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을 자랑하던 때의 느낌을 도시 한 편에서 거미처럼 빌딩벽에 거미줄을 치는 스파이더맨의 신기함과 어울리게 합니다. 심상들이 이야기와 아주 딱 떨어지는 수준은 아닙니다. "슈퍼맨"에서 고층빌딩 옥상 정원에 날아다니는 초능력 영웅이 겹쳤던 멋은 없습니다. 그러나 껄렁해진 주인공이 도시를 쏘다니는 부분 등등은 확실히 이런 도시 심상과 이야기가 교차되어 표현되어서 더 재미있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주인공을 브로드웨이 쇼의 가수로 등장시켜서, 상당히 예스러운 무대와 노래, 음악을 자주 등장시킨 것도 이런 느낌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브로드웨이 가수를 연기하는 던스트 양)

조금씩 서려 있는 주인공의 과학소년스러움, 주인공 친구 해리의 연기는 배우들이 힘을 발휘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리는 상당히 뛰어나서, 이 양반이 애초 모양대로 어두컴컴하면서도, 나름대로 멋있게 "우정은 없어졌지만, 사랑을 위해서 출격한다!" 따위의 대사를 하면서 무섭게 나갔으면 더 좋았을지 싶습니다. 처음부터 같이 돌격하면서, 쌍으로 나타나줬다면, "최가박당 4"편에서 맥가와 허관걸이 아이스하키장에서 "우리는 최가박당이다!"를 외치는 정도의 감격은 충분히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은 그에 비하면, 각본에서부터 극적인 연기거리는 조금 부족했고, 주체가 되어 사건을 끌고나가는 부분도 작고 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쓸쓸해하는 감정 연기는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긴 이야기 중간중간에 자잘한 재미거리가 들어가 있어서 지루함을 씻어주는 부분도 주목할만 합니다. 전체 흐름에는 별달리 도움되지 않는 곁가지입니다만, 식당 지배인과 신문사 편집장의 코메디는 순간적으로 훌륭합니다. 식당 지배인 코메디는 사랑에 대한 슬픈 이야기의 힘을 돋굴 정도로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분량은 적어도 제가 제일 웃기거든요.)


그 밖에...

이블 데드 시리즈로 업계를 풍미한 우리의 브루스 캠벨이 다시 깜짝 출연합니다. 매우 연기 솜씨가 좋아서 무척 감탄했습니다. 아무 역할은 없습니다만, 윌리엄 대포도 뚜렷이 산사람으로 얼굴을 들이밉니다. 갑자기 무슨 고스트버스터즈 영화로 돌변하는 것은 아닌가 문득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스파이더맨의 공동 창시자인 스탠 리는 토비 맥과이어에게 스파이더맨 칭찬하는 영감으로 등장합니다.

IMDB Trivia에 따르면, 현재까지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인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에서 대강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인간 몸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탄소 원자가 모래의 규소(Si) 원자로 바뀌면서 샌드맨이 탄생한 듯하게 꾸민 것 같습니다. 탄소, 규소 둘 다 같은 4족 원소이니, 바꾸면서 분자구조를 비슷하게 유지하는게 이론상 가능해서, "규소로된 모래나 돌 같은 괴물 생명체"는 예전부터 SF물에 자주 나왔습니다.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에도 한 번 나옵니다.

덧글

  • rumic71 2007/05/15 15:55 # 답글

    브루스 캠벨은 편수를 거듭하면서 점점 비중이 커져서, 6탄쯤 가면 괴인역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냐는 조크도 있었죠. (스탠 리 영감님도 매 편마다 비중이 늘고 있고...)샌드맨에 대해서는 말씀하신대로 슬쩍 자리 모면하고 빠져나간 게 아니냐는 해석에 저도 공감이 가는 중입니다.
  • marlowe 2007/05/15 18:44 # 답글

    캠벨은 4탄에서 미스테리오로 나올 거라는 루머도 돌더군요.
    3탄까지 보면서, 얘네들이 쌍동이일까, 아니면 복제인간일까 하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 충격 2007/05/15 20:03 # 답글

    안녕하세요. 저랑 거의 똑같게 느끼신 것 같아서 트랙백 걸어봤습니다. 신고합니다. ^^
  • 게렉터 2007/05/17 01:35 # 답글

    rumic71/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스파이더맨의 숨겨진 아버지쯤으로 나온다던가 해도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marlowe/ 직업을 계속 바꾸거나 하는 것은 아닐지...

    충격/ 트랙백 글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말씀들 다 해주셔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시무언 2007/05/21 06:46 # 삭제 답글

    어디선가는 부르스 캠벨의 인생 성공 이야기라는 설도 있습니다^^ 레슬링 사회자->극장 지배인에서 프랑스 출신이라고 속이는 식당 주인으로^^
  • 게렉터 2007/05/21 17:48 # 답글

    시무언/ 그렇다면, 다음에는 뉴욕 시장 쯤으로 나왔으면 반갑겠습니다.
  • 잠본이 2007/05/27 14:00 # 답글

    > 다만 스파이더맨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초능력, 초능력 비슷한 능력을 얻게된 사람이 공교롭게도 계속 등장하므로, 그냥 뺨 때리고 법정 소송 하면서 끝낼 이야기를 빌딩 부수고 지하철 다니는 길을 두들기는 커다란 싸움이 됩니다.

    ......마블 코믹스의 본질을 한문장으로 짚어내셨군요 (원래 그런 얘기거든요 OTL)
  • 게렉터 2007/05/27 16:08 # 답글

    잠본이/ 그래도 영화판에서는 초능력 상대를 좀 어렵게 어렵게 등장시키는게 좋을지 싶은데, 이 영화에서는 한 영화중에 세 명이 줄줄이 계속 등장하니 좀 심했다 싶었습니다. 만화책에서도 왠만하면 한 편 안에서는 악당이 한 명씩만 솟아나는게 이야기를 풀기에 더 편안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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