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나름대로 멀쩡하게 살던 주인공 마츠코가 인생이 슬슬 꼬이기 시작해서, 결국 패가망신 한뒤 폐인이 되어, "혐오스런" 몰골로 죽는 것이 줄거리 입니다.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세상 사람 저마다 인생에서 느낄 법한 쓸쓸한 무의미함을 가볍게 보여준 뒤에, 무료하게 인생을 보내고 있는 반백수 젊은이를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젊은이가 자기에게 "마츠코"라는 고모가 있음을 알게되고, 그 고모가 죽었으므로,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서서히 마츠코의 일생에 대해서 알아가며 조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냥 고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고 마구 과장된 색채와 조명, 화려한 뮤지컬과 섞어서 펼쳐집니다.


(쇼를 한다)

이렇게 주인공의 죽음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이 조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내는 방법에는 몇가지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로, 이렇게 하면, "아니 그 사람이 왜 이런 꼴로 죽었는가" 하는 추리물 비슷한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누가 죽였나?" "어떻게 죽었나?" 하는 그야말로 추리물 같은 이야기를 도입해서, 어떻게 저 사람이 저렇게 되었는지, 영화를 보는내내 계속 궁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인생을 풀이하면서, 하나 둘 그 사연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호기심을 글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죽은 사람의 모양이나 마지막 유언 같은 것을 수수께끼로 삼으면서 호기심을 끌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서 "로즈버드~" 라는 말을 남겼다면, 대체 "로즈버드"란 것이 뭔가 궁금하게 하면서 시선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다른 이점은, 이야기가 단순히 시간순으로 배열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조사와 관찰, 증언과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서 맺고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참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람의 시점으로 돌아와 버려서 안타까운 마음을 키울 수도 있고, 조사하는 상대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은..." 운운하며 이야기를 시작해서, 지루한 사연을 가볍게 떼어 먹고 막바로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하다못해, 단순히 화면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입을 빌어 때울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성룡과 이소룡을 합친 듯한 무예로 17대 1로 싸워서 이겼지."라고 회상하는 사람이 말하게만 하면, 굳이 놀라운 무예 장면을 직접 찍지 않고도 내용을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직접 만나니 어색한 사람으로부터 이야기 듣기)

이 영화에도, 두 가지 장점이 적절히 활용되었습니다. 추리물에 관한 요소는 강렬하게 드러나 있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왜 마츠코를 살해했나" 하는 의문은 영화의 잔재미로 계속 이어지는 호기심이 됩니다. 그리고, 시체로 발견된 마츠코의 모습에 비해, 회상 장면 처음의 아리따운 마츠코의 모습은 심하게 대조되기에 "어떻게해서 저렇게 되었나" 하는 궁금증도 이야기의 흡인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자르고 붙이는 편리함도 요소요소 효율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단적으로 이 영화에서는 마츠코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노래하는 장면 비슷한 것이 몇 장면 있기는 하지만, 과연 노래를 특별히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만한가 하는 것은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의 증언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게 되니까, 나름대로 중학교 음악 선생님을 할만한 재능은 충분한 꽤 건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전해 줍니다. 그 외에도 주요한 사건만 뽑아도 족히 20년 정도에 걸치는 인생사에서, 전환점 혹은 단적인 인상을 줄만한 며칠간만 뽑아서 보여주면서도 앞뒤 연결이 자연스러워진 이점도 있습니다.


(전후생략)

좀 더 특출나게 재미난 부분들은, 몇몇 중요한 장면들을 기억하는 사람, 관찰하는 사람의 시점 차이에 따라 두 번, 세 번 다른 각도, 다른 해석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츠코가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나는 순간이나, 마츠코의 집 벽에 써 있는 낙서, 마츠코의 이상한 얼굴표정 버릇, 마츠코가 벽에 붙여 놓은 연예인 사진. 등등은 보는 사람, 기억하는 순간이 다른 방향에서 같은 것을 여러 번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일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관점을 보여주는가하면, 인간 세상 여러 사건들이 사람 사이에 펼쳐지는 양상을 보여주기에도 좋습니다. 사건의 영향이나 원인이 하나 둘 씩 더 드러나서 이야기가 재구성되는 밝혀내는 재미가 있다는 점도 곁들여 집니다. 벽에 쓰인 낙서같은 것은, 단순히 여러번 보여주기에 강조되는 효과도 강합니다.

이 영화의 과감한 개성이 이목을 끄는 부분은 과감무쌍한 색채왜곡과, 코메디 영화에서 많은 부분 배워온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인 묘사들입니다. 이 영화의 색채와 조명효과는 "델리카트슨 사람들 Delicatessen" 등등의 영화에서 쓰인것과 흡사한 느낌을 줍니다. 원색을 강조해서 환상적인 장면을 강조해주는 효과도 있고, 붉은 빛이 난무해서 쓸쓸하고 고즈넉한 저녁놀 분위기와 불안감이 동시에 살아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대각선 각도, 어안렌즈 처럼 굴절해서 보는 영상 같은 것들이 담긴 장면이 많아서, 멀쩡한 모습이 기괴하게 왜곡되는 부분도 꽤 됩니다. 색채왜곡이 이런 모습과 통해서 암울한 기이함에 좀 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왜곡)

한편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묘사들은 일단 간결하고 인상적으로 쉽게 심상과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다 더해 장면들의 분위기를 잡을 때, 뮤지컬 쇼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잔재미를 흩뿌려 줍니다.

거품경제가 극치에 달하던 일본 도시 뒷골목 환락가의 정경을 노래와 춤으로 한방에 전달해버렸습니다. 이런 연출 방법은 지루할 수 있을 만한 대목을 자극적으로 포장해 넘어갈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번쩍거리는 화면의 현란한 미술효과로 볼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가출한 주제에 돈떨어지니 수년만에 가족에게 돈빌리려고 하는 장면에서 흥겨운 유원지 노래가 섞여듭니다. 이 부분은 그런 식으로 뮤지컬, 미술효과가 뻑적지근해서 재미가 더해진 예로 적당할 것입니다. "해피 웬즈데이" 노래처럼 주인공의 초라한 행복감을 망상처럼 꾸며서 보여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류의 밝은 노래들은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외려 주인공의 불쌍한 처지에서 뭔가 행복을 찾아 보겠답시고 버둥거리는 느낌이 되기도 합니다. 아예 반어적인 서글픔을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꽤 암울하고, 적적한 이야기를 도리어 정신없이 알록달록한 코메디 쇼 수법으로 담아내는 것은 사실 이상한 것을 골라서 하기마련인 공포영화에서 자주 시도 되던 것입니다. "흡혈 식물 대소동 Little Shop Of Horrors (1986)"은 상징적이거니와, 다양한 저예산 영화 및 트래쉬 무비에서도 비슷한 것들은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류의 그야말로 코메디로 확 기울어지는 영화들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그런식으로 연출을 하면서도, 결코 은은하게 어두운 느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에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펑크 음악이나, 사이키델릭 음악에 서려 있는 좀 비판적이고 퇴폐적인 푸념조 느낌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코메디 뮤지컬 수법들이 서글픈 느낌에도 결국에는 도움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진부한 인물과 틀에 박힌 사건으로 이야기가 흘러갈때는, 과감한 연출로 그게 무슨 정형화된 틀의 패러디 인냥 가볍게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조금 멋을 부려서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 신파극"스러운 그 닳은 부분을 슬며시 감추는 경제적인 수를 쓸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팝, 식스, 스퀴시, 어 오, 시세로, 립시츠!)

요컨데, "빅 피쉬"나 "로열 테넌 바움" 같은 영화 정도로 좀 울적한 느낌 속에서 환상적인 장면들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러나, 정신병적으로 미친듯이 요란한 화면들은 거의 "물랑 루즈" 급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적당한 조화 덕분에, 이 영화는 이상의 여러 영화들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결코 부족할 것이 없을만큼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이런 과감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여기에, 사람에게 칼질하기, 부녀자 구타하기, 퇴폐 영업에 대한 다양한 간접 묘사등등으로 선정적인 볼거리를 심어 놓았습니다. 이런 내용들도 헛돌지 않고, 이야기에 자극성을 주면서 적절히 섞여 있습니다.

한편, 이 이야기의 갈등과 사건은 "서서히 파멸해가는 여자 주인공" 이야기로 일단 중심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대개 밝은 결말의 영화에는,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배우가 남자 주인공 배우에게 보호되거나, 구출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비극적인 이야기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망하거나 한 맺힐 듯 구박 받는 이야기가 흔한 듯 합니다. 출연료 꽤 될 듯한, 미인 여자 주인공이, 사소하게 뭔가 잘못 휩쓸리기 시작해서, 결국 요상한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는 처절하고 슬프게 보입니다.


(이런 영화에서는 머리가 헝클어지기 시작하면 죽을때가 다가오는 징조)

고전부터 전통이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현대 사회의 타락상을 상징하기 위해 유흥가와 퇴폐 업소를 거쳐가는 것으로 이야기로 범위를 좁힌다면, 70년대 말부터 80년대를 휩쓴 소위 "호스테스 영화"들이 생각납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와 자극적인 장면을 뒤섞은 흥행작 한국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를 필두로, 3편까지 나온 그 속편들, 기타 아류작 트래쉬 무비들이 같은 줄거리를 써먹고 있습니다. 좀 멀쩡한 연애담과 섞인 탓에 약간 줄거리가 들쭉날쭉하는 듯 보이는 "가시를 삼킨 장미"와 그 친구 영화들도 그 일파일 것이고, 80년대에 잡다하게 쏟아지던 인신매매 소재 영화들도 갈등 구조와 비극의 수법이 비슷합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근작 "나쁜 남자"나 중세의 괴기스러운 풍속을 강조한 "이조여인잔혹사" 등도 한 덩어리로 묶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조롱당하고, 범죄와 엮이고, 몸도 마음도 상하는 이야기 전개는 요즘에는 유행이 시들한 옛 영화의 그 모습 그대로 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그래도 사랑하는"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 였지만, 큰 연기 없이도 실감나는 배우의 모습과 더불어 꽤 그럴싸했습니다. 반면에 병든 동생과 얽힌 이야기는 좀 심심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마츠코의 삶과 요목조목 잘 연결되어 있어서 그저 썰렁한 내용으로 주저 앉지는 않았습니다.


(니카타니 미키)

이 영화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와 차이나는 점은, 이런 주인공이 겪는 불행에 주인공도 주인공대로 큰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투적인 구도라면, 주인공은 비극의 여자 주인공이기에 착하고 순수한데 세상의 악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인공을 대충 봐도 그다지 행복하고 밝게 인생을 살만한 인물로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주인공답게, 생긴 것은 착하고 연약하게 생겼고, 목소리도 맑고 부드럽습니다. 그렇지만 순간순간 주인공은 절도를 저지르고, 기회주의자면서 죄책감도 없고, 질투심은 넘치며, 별 이유도 없이 친족을 살인미수하려 하는가 하면, 도덕 관념이나 준법의식도 희박하고, 그저 흔들면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는 수동적인 인간인 주제에 삶을 개척해나가는 용기도 없고, 불효막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니, 우선은 주인공이 무턱대고 착하고 무한대로 고결하지 않아서 좀 더 진짜인물 같고, 또 부족함과 열등감이 섞인 모습이 공감하기 쉬운 실제처럼 보이는 이점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악역이 복잡해져서 비극이 더 막막해 진다는 것입니다. "나쁜 남자"는 나쁜 남자가 나쁜 남자고, "에미" 같은 영화에서는 인신매매단이 썩은 놈들입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돈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흉악한 사장 아들 따위의 자본주의 사회 쓰레기들이 악역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츠코는 이런 명확한 악의 상징 때문에 인생이 그 꼴이 된 것은 아닙니다. 설령 악당급 인물들이 마츠코의 삶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고 해도, 마츠코는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츠코는 자멸하는 면이 있습니다. 자업자득이요, 자승자박입니다. 마츠코로서는 자기가 곧 악당이니, 악당을 물리쳐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집니다. 관객으로서는 비극적인 절망감도 더 가깝게 다가 오게 됩니다. 서점에 갈 때마다 "나쁜 남자"를 만나고, 등하교 할 때마다 인신매매단과 마주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대체로 단점을 갖고 있고, 과거 언젠가 지금껏 후회하는 결정을 내린 기억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신의 잘못된 점이 어느날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굳이 흉악한 사장 아들의 마수에 붙잡히지 않아도, 관객 역시 마츠코 신세가 되기가 멀지 않다는 그 감정이입에 좋은 것입니다.


(망해서 떠나는 모습)

각본에서 기술적으로 훌륭한 점은, 이런 마츠코 보다 더 흉악한 짓을 하는 놈들을 자주 등장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객이 마츠코도 나쁘고 문제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절절히 알지만, 그러면서도 무심코 마음 한구석에서는 마츠코에 대해 측은함과 동정심을 느끼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마츠코는 돈도 훔치고, 사지육신 멀쩡한데도 불법영업으로 먹고살고, 거짓말도 자주 합니다. 그런데, 바로 뒤따라 이유없이 사람에게 발길질하고, 올챙이적 모르고 야비하게 배반하고, 뼈빠지게 부려먹고 돈 떼먹고, 마약밀매 배후에서 칼부림하는 놈들이 나옵니다. 그 대조덕분에 어쩐지, 마츠코는 그다지 사악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자연히, 마츠코가 망하거나 맞을 때에는 그저 불쌍해 보입니다. 여기에는 영화 전체에 걸쳐 마츠코 역이 단연 가장 아리따운 배우이고, 그 상대역이 대체로 그보다는 추레한 모습이라는 단순한 효과도 톡톡히 한 몫 할 것입니다. 덩치나 팔다리의 가는 정도도 마츠코에 비해 상대역이 훨씬 굵직굵직해서 마츠코는 왠지 피해자스러운 모습으로 꾸며두었습니다.

그러자니, 망해가는 인생 불안해 하면서, 외로움을 잊고자, 연애에 집착하는 그 모습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습니다. 되는 일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데, 외롭기까지 할 때. 그럴 때 우울함을 느끼는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입니다. 이때,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이비 종교에 귀의한다거나, 한 번 강연에 300만원씩 떼 먹는 날라리 "자신감 회복 커리큘럼" 따위에 돈을 날리며 침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마츠코는 원초적인 외로움에 더하여, 어떻게든 자신의 인생이 뭔가 극적이고 그럴싸하고 중요하고 폼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자 연애에 달라붙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양은 사람이 발버둥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그 외로움 자체를 강조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전체 줄거리에서 보면, 이런 구성 덕분에, 마츠코는 "새 삶을 시작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나자빠지는 모습이 잘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에그, 거기서 조금만 이렇게 하지, 왜그랬어." "아니, 이제라도 차라리, 마음 고쳐먹고 저렇게 하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번에도 또, 이번에도 또 하는 그 안타까운 마음은 점점 커지면서, 더욱 영화에 빠져든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저 숟갈에 든 것은 너무 짜지만, 그래도 아직은 기회가 많건만)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비롯하여, "오즈의 마법사"로 대표되는 현실도피적인 화면을 자주 활용했습니다. 놀이공원의 모습이나, 뮤지컬 장면의 몇몇 연출과 고전적인 음악은 줄곧 "오즈의 마법사"와 이음새가 있고, 마츠코의 빨간 구두처럼 직접적인 인용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도피적인 화면들을 소외 받는 인물들에게 연결하는 것은 전형적인 방식으로 제몫은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또 그만큼 식상한 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인물들의 관계나, 몇몇 음악의 영어 대사들을 보면, 이런 류의 소재를 끌어다 붙이면, 이런류를 좋아하는 팬들이 자연히 따라 붙을 거라고 생각한 안일한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희극과 비극이 조화되는 그 느낌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70, 80년대 통속 비극의 전통을 꿰뚫는 이 영화의 중심과 딱맞게 들어맞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잡지 "판타스틱" 창간호에 실린 듀나의 소설 "너네 아빠 어딨니?"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주인공 어린이들이 꽤나 개판인 상황에서 여유롭게 "오즈의 마법사"를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음악과 밝은 심상이 어두운 이야기에 끼이는 형국과 닮은 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이 영화의 구체적인 배경에 견주어 보면, 가끔은 전체의 재미를 무시하고라도 몇몇 기교와 소재를 의무적으로 박아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 영화스럽게)

끝으로, 이 영화에서 무척 보기 좋았던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묘사하면서 따라가는 구체적인 시대상 묘사 였습니다. "여자 주인공 망해가는 비극"은 단순히 개인적인 비극풍으로 꾸미는 것이 많기 때문인지, 보통 시대상이나 역사는 배제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인신매매나 무작정 상경한 시골 청소년 같은 다분히 시사적인 소재를 다룰 때에도, 그 시사적인 상황 자체만을 소재로 쓸 뿐, 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회가 변화고 세상이 움직인다는 역사는 잘 묘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거품 경제의 화려한 일면이나, 90년대 아이돌 스타의 활약 등등을 "몇 년 몇 살때" 라는 자막과 함께 곁들였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때마침 틀어주어서 대강 때우고 넘어가는 장면이 있는가하면, 유명한 "석유 파동 휴지 사재기 소동" 사건 때, 무의미하게 가득 쌓여 있는 휴지를 보여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보스러운 모습을 처량한 박탈감으로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사람이 사회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구체화시키는 효과도 있고, 커다란 사회적인 사건들 사이에서 그저 별볼일 없이 한 사람의 "혐오스런 마츠코"로 전락해 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초라하게 대비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누가 마츠코를 죽였나?" 하는 데 해답을 주는 결말도 빠드려서는 안될 내용입니다. 비극적인 결말이라 반대이기는 합니다만, 오 헨리의 "되살아난 개심"스러운 반전 효과가 허탈한 서글픔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점차 비극으로 빠져들어 온 마츠코의 대미에 잘 어울리는 내용이기도 해서, 장중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한 눈에 사건이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멀리서 바라 보는 광경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시점 속에, 한 번 공격당하고 뒤에, 잠시 시간을 두고 뒤 이어 한 번 더 공격당합니다. 그 뒷 장면들이 별 필요 없게 느껴질 정도 였습니다


그 밖에...

주인공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는 "역도산", "전차남" "바람의 검: 신선조" "링 라센" "링 2" "카오스" "링" 등의 영화에 출연하여 한국 관객에도 상당히 친숙한 배우 입니다. 연합뉴스 인터뷰를 읽어보면, "역도산"을 찍기전에, 송해성 감독과 설경구의 전작인, "파이란", "박하사탕", "오아시스", "실미도"를 다 보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녹차 TV광고에 10년 이상 출연한 것도 코리아나 채시라,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 스럽다 할 것입니다. 니카타니 미키는 이 영화 촬영의 경험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년"이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나카타니 미키가 밝힌 바에 따르면 감독을 맡은 나카지마 테츠야는 "직업으로 연기를 하는 여배우에게 굳이 칭찬을 하는 것은 오히려 실례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연기자에게 상당히 각박하게 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카타니 미키에게도,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따위로 할 바에야 죽어라" 라든가, "내가 실력이 그 정도라면 배우짓 때려 치우겠다" 등등의 폭언을 했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나카지마 테츠야는 2001년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가을 특별편에서 "마마 신발매"라는 매우 정신 없는 에피소드를 각본, 감독 다 맡았은 적이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왠만한 벅스 버니 애니메이션보다도 훨씬 더 방정맞으며 비현실적이고, 동시에 상당히 정신병적인 느낌이 감돕니다.

야마다 무네키의 소설이 원작인데, 이 사람은 츠쿠바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제약 회사에서 농약을 개발하는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써 왔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판권계약 등으로 돈은 제일 많이 벌었지 싶고, 데뷔작이자 인기작인 추리소설 "직선의 사각"도 꽤 유명합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소설판은 좀 더 암울하고, 어두운 부분의 묘사가 구체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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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08-14 09:10:10 #

    ... 적으로 일부로 색을 짜낸 듯한 느낌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알록달록한 소품들과 의상들의 색깔이 화면을 번쩍거리게 물들이는 느낌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http://gerecter.egloos.com/3200556 이나 "사쿠란" 같은 영화와 맞먹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애초부터 일부러 현실감을 무시하고 공상적이고 "꾸며낸 가짜"라는 느낌을 ... more

덧글

  • 이준님 2007/05/29 20:48 # 답글

    1. 겉 형식이 이런 류의 소설 "아무개가 죽었다(혹은 찌질해졌다)->그녀의 일생을 거꾸로 되돌아본다"류의 작품은 80년대 특선방화류에서도 물리도록 나온 소재이기도 하지요. 어떻게 보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도 이런 공식으로 진행된 작품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국영방송 TV물 "금요일의 여인"(이것도 일본 작품 날로먹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_-;;)에서도 적어도 두 작품이 이런 구도로 선정성을 발휘합니다. (하나에는 무려 선우은숙씨가 주인공이었지요.)

    2. 인신매매 소재 영화면 나영희씨의 "매춘"류가 대표적이겠군요. 막상 인신매매 자체를 다룬 박영규 주연의 괴작(선정성은 두번째고 도대체 말이 안되는 구성으로 흘러가는) 인신매매는 그야말로 볼거리 -_-;;만 나열한 것이지요.

    3. 문제는 이런 상투적인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괜찮은 작품으로 승화하는가인데 이 작은 그런 면에서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상투적 스토리를 가지고 성공하는 것도 역량이지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여배우에게 저런 식으로 하면 소속사에서 가만 있지 않을듯)
  • 게렉터 2007/05/30 20:46 # 답글

    이준님/ 사실 인신매매물 많이 나오던 1980년대만 해도 감독이 여자 배우에게 AA했다더라, BB했다더라, 혹은 CC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꽤 돌지 않았습니까.

    "금요일의 여인" 말씀해주시니 기억납니다만, 왜 예전에 KBS에서 "여성문제" 라는 제목으로, "폭력남편" "고부갈등" 등등의 각각의 주제로 대체로 "여자 망하는 이야기"를 아주 자극적인 이야기만 줄줄이 모아서 상징적인 극화시리즈를 꾸며 주었던 것 떠오릅니다. 노출강도도 요즘 "사랑과 전쟁"에서 심한 부분만 모아 놓은 듯이 심했다고 기억합니다만, 혹시 이준님 블로그에 글 하나 써주실 생각 없으십니까. 남겨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이준님 2007/05/30 22:24 # 답글

    게렉터님//예, 포스팅 하겠습니다. ^^
  • jade 2007/06/01 16:08 # 답글

    어으 제목때문에 보고싶지 않았는데 되려 왜 이런 영화를 안봤을까 싶게 나름 강렬했던 영화였어요. 보고나서의 기분이 결코 좋지는 않았지만요
  • 게렉터 2007/06/03 09:03 # 답글

    이준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jade/ 이 영화는 결말이 좀 과해서 약간 더 비틀거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외려 결말이 비참하고 비극적인 면만 강조하면서 잡다한 설명없이 잘랐다면 반대로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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