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대로 Hollywood Boulevard 영화

"할리우드 대로"는 1976년작 초저예산 영화이며, 꽤 재미있고, 볼만한 영화입니다만, 전체적으로 트래쉬 무비의 틀을 갖추고 있는 영화입니다. 음향은 후줄근한 후시 녹음으로 추레하고, 화질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자극적인 볼거리를 위해서 갑자기 무모한 코메디 장면과 허망해서 웃기지도 않을 공포영화 같은 이야기를 넣기도 했고, 대체로 이야기가 대강대강 이어지기는 합니다만, 막판 즈음에 결말을 짓기 위해 상상하기 힘든 어림없는 이야기를 하나 들먹이기도 합니다. 물론 선정성으로 볼거리를 주기 위해서 갑자기 노출장면을 군데군데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상당히 그럴듯한 모양인 것은, 이 영화의 내용 자체가 "트래쉬 무비를 찍는 영화 제작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번 환상적인 영화를 찍어 보자고)

주인공 중심으로 줄거리를 이야기해 보자면,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캔디" 라는 한 젊은 사람이 영화 배우가 되려고 LA에 오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러면서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진탕 고생하고 좀 피폐해 지고, 목숨까지 날릴 위기를 겪는 다는 것입니다. 아무 배경도 없고, 특별히 뛰어날 것도 없는 사람이면서, 갑자기 영화를 하겠다고 나타났으니, 당장에 하룻밤 인기배우가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연스럽게 주인공은 처음 영화로 자동차 극장에 동시상영용으로 걸리는 초저예산 싸구려 영화부터 출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여러부류로 인간 답지 않게 살아가는 영화 바닥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동시상영 용 초저예산 영화를 다루고 있는데 잘 어울리도록, 이 영화 자체도 어떻게 보면, 두 영화의 동시상영인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두 편의 싸구려 영화를 찍으며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 속에서는 차례로 두 편의 영화에 대해서 다루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영화는 "여감방 The Big Doll House" 이나 "나찌 일사 Ilsa, She Wolf Of The SS"로 대표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자-감옥 물이고, 두 번째 영화는 2050년을 배경으로 외계인과 미래 자동차가 나오는 SF물입니다. 이 영화 자체만 봐서는, 영화 속 영화들인 두 영화의 구체적인 줄거리를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부류의 영화에 나올법한 자극적인 장면들은 영화속 영화를 제작하면서 "이런 이런 장면을 찍는다"라는 핑계로 조목조목 다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런 영화들을 얄팍한 취향에 편승해서 후다닥 급조해서 만들때 비웃을 만한 조잡한 장면들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류의 싸구려 영화를 두 편 보는 효과는 적당히 주고 있습니다.


(내러티브의 기표가 비주얼의 아방가르드함이라는 기의와 만나는 그 헤게모니의 전환을 이해 하겠는가, 친구?)

그러다보니, 영화의 이야기는 무척 비웃을 만큼 웃기면서도 의외로 진지한 데가 있어졌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편집과 효과가 도무지 맞지 않고, 결코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이 난무하는 어림 없는 영화를 찍습니다. 누가봐도 조롱할만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 않은 부분이 심각하게 부족한 조악한 영화를 찍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화를 찍으면서도, 찍느라 고생도 하고, 고민도 하고, 그 와중에 고통도 많이 받습니다. 그 따위 조잡한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그 안에서 서로 알력이 있는가 하면, 서로서로 키가 큰 도토리를 먹겠다고 다투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자니, 저마다 부푼 꿈을 꾸며 영화판에 와서는 초라하게 명멸해 가는 좌절감은 상당히 잘 드러나 있습니다.

누구나 인기배우가 되고 싶고, 걸작 영화로 이름을 드날리고 싶고, 거장 감독으로 존경을 받기를 꿈꾸며 영화계에 발을 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능력으로 보나 운으로 보나 쉬운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그 꿈이 달콤하고 거창했지만, 그러니 만큼, 대부분은 망할 영화나 "우주괴물과 지구소년의 초능력 도박대결 7편" 같은 영화를 찍으며 먹고 살아야 합니다.


(제 말만 믿어요. 이번 껀만 잘되면, 초인기 배우가 될 거라니까요.)

어처구니 없는 영화를 만드는 그 어처구니 없는 모습은 더욱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 못만든 영화를 비웃는 느낌을 한껏 부풀리고 있습니다. 중간에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자기들이 만든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며 제작진끼리 잡담하여 영화보는 부분은 정말로 "괴기과학극장 3000 MST3K" 같은 싸구려 영화 전문 코메디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 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웃기면서도, 또, 그렇게 웃겼기 때문에 그런 비웃음만 당하는 영화를 만드는 나락에 빠진 사람들의 좌절감과 애환이 더 살아나는 오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Mystery Science Theater 3000 같은 분위기)

때문에 이 영화는, 후에 나오는 "에드 우드" 같은 영화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눈에 뜨입니다. 등장인물 배우들이 영화를 찍는답시고 비슷하지도 않은 가짜 스폰지 괴물을 무섭다고 연기도 잘 못하는데 노력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냥 웃깁니다. 그렇습니다만, 먹고 사느라 고생하면서 언제라도 한 번 인기 얻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런 짓에 매달리는 현실과 배경을 같이 담아내면 우울한 느낌이 서립니다. 이 영화는 아무것도 모른채 뛰어드는 사람들과 날강도 같은 협잡꾼들과 그 속에서 물들면서 썩어가는 영화판의 모습을 비판하는 효과도 조금 갖게 됩니다. 이런 어두운 코메디는 꽤 웃기면서도, 점점 젊은시절 이상한 짓만 하면서 헛꿈을 쫓느라 시간보내는 심각한 면을 다루는데 일정 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끝까지 이런 면에 주목해서 결말까지 애잔하게 밀고 나갔다면, 아마도 이 영화는 주인공을 감독에서 배우로 바꾼 "에드 우드" 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군데군데 그런 중심 뼈대에서 마구 벗어납니다. 대표적으로, 결말을 10분 정도 남겨두고, 갑자기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칼질하는 연쇄 살인마가 나오는 공포 영화로 돌변합니다. 물론 너무 부실하게 제작되어 조금도 무섭지는 않습니다. 이야기 어조의 변화도 급작스럽고, 백주대낮에 펼쳐지는 코메디 분위기였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무서운 척 하는 것도 아주 이상합니다. 범인의 정체나 죽이는 방법 묘사도 아무런 이유없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무척 가짜같이 조잡한 것이며, 쓰잘데 없는 칼질과 도망치는 묘사도 긴장감 없이 엉성한 편집속에 진행되기에, 전혀 목숨건 상황 같지 않게 손발이 안맞도록 싸움을 묘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 자체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그럴싸해보인다고 할 수 있는 영화포스터)

그외에도 티셔츠 입은 여자 배우들에게 물뿌리는 장면을 어떠한 이유도 없지 장시간 보여준다든가, 고이 잡담하는 장면을 괜히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면서 잡담하는 장면으로 연출하는 등등 삼천포로 빠지는 구석은 많습니다.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부분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록밴드들의 연주를 보여주면서 시간을 보내는 심심한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진정한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고 하니 또 부족한지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영화가 도약을 해 버립니다. 그나마 아이디어만 보면, 재치있고 웃음을 남기는 결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출연진과 소품이 부족하고 인물간의 편집 안배가 부실해서 비는 느낌이 많이 날 뿐입니다.


(영화 내적으로는 조금의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나오는 장면. 영화 외적인 이유야 백번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다른 부분에 비해 배우들의 연기는 상당히 출중합니다. 딕 밀러 처럼 언제나 조역으로 충실하게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거니와, 주연인 캔디스 라이얼슨도 영화 내용에 비해 결코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상한 상황에서 몰려드는 코메디를 연기하는 흥겨움이 조금 부족한 듯 해서 그렇지, 3류 영화를 찍는 사람들의 사정을 연기하는 부분들은 충분히 볼만합니다.


(딕 밀러)

음악도 무척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이미 나와 있는 곡들을 배경음악으로 활용했습니다. 좀 처량하면서도 소박한 포크 음악 풍의 음악들과 소박하게 밝은 록큰롤 음악들이 자주 나옵니다. 이 음악들은 이런 블랙 코메디의 세계를 헤메면서 영화로 성공해보겠다는 사람들의 모습과 잘 어울립니다. 사소한 트래쉬 무비 장면에 역설적으로 "1812년 서곡"이나 "니벨룽의 반지" 에 나오는 어처구니 없이 장중한 음악을 사용할 때도 있는데, 이것도, 영화 장면 자체의 박력 아닌 박력에도 도움이 되며, 그 반어적인 음악 때문에 조롱하는 듯한 느낌도 있어서 꽤 잘 맞아 듭니다.

이 영화는 커다란 장면이나, 돈이 많이 드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다른 영화의 장면들을 대거 활용하고 있습니다. 총쏘는 장면은 주인공이 총쏘는 장면을 찍는데, 총 맞아서 엑스트라 10명이 죽는 장면은 엑스트라 10명을 동원하려면 돈이 드니까, 엑스트라 10명이 죽는 다른 영화의 장면을 잘라다 붙이는 것입니다. 이 영화 속에는 그런 장면들이 아주 난무할 정도로 많습니다. 절반쯤은 다른 영화 필름을 그대로 잘라와 붙인 것으로 메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장면들은 결코 부드럽게 연결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연결이 "아무렴, 이렇게 폭파장면 같은 거 찍을 때 어색하게 남의 영화 장면 끌어다 붙이는 것이 트래쉬 무비 답지" 하는 느낌은 아주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영화 장면과 연결한 것이 비웃는 재미가 있어서 상당히 웃기다는 점을 강조하고, 그래서 코메디 분위기를 내는데도 성공할 정도입니다. 물론 내용전달은 되는 최소한의 품질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엉뚱한 영화의 군인들 죽는 장면과 짜집기 되는 총격 장면)

영화가 엉뚱한 이야기로 빠지는 부분은 분명히 코메디로 처리해버리고, 특수효과가 꼭 필요한 곳은 더하고, 보다 양질의 음향기술, 촬영기술을 사용했다면 훨씬 더 멀쩡한 영화가 될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트래쉬 무비에 관한 트래쉬 무비를 만들면서, 이정도로 출중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 자체가 개성이 됩니다. 그런 독특함은, 이 영화의 품질이 낮아서 더 가치를 더하는 점이라 할만합니다.


그 밖에...

이 영화는 조 단테가 감독을 맡아 불과 10일만에 촬영을 끝내는 초고속 급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제작비도 불과 5만 몇천 달러로 끝냈다고 합니다.

이 바닥의 절대 거물인 로저 코먼이 손을 댄 영화인데, 조 단테에게 로저 코먼이 로저 코먼의 다른 영화들의 장면을 잘라 끼워 쓰도록 허용을 해줘서,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조 단테는 이 영화 속 이야기와는 달리, 결국 흥행감독으로 두둑히 돈을 벌정도로 성공했습니다. 조 단테가 감독을 맡은 영화 중에, 코메디물과 공포물을 합치면서 옛날 싸구려 영화들에 대한 애정이 좀 더 화려하고 안정적으로 영화화 된 것으로는 역시 "그렘린" 시리즈, 특히 "그렘린 2"를 꼽을만 합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소화성 장의사 (Zombie vs. Ninja 판) 2007-09-05 13:59:49 #

    ... 무비들 중에는 이런식으로 이상한 재조합 영화들이 몇편 있고, 게중에는 장면을 조금만 잘 끌어다 때워서 만든 꽤 괜찮은 영화도 있습니다. "헐리우드 대로 http://gerecter.egloos.com/3223074 " 같은 영화에서 이런 작업들이 언급도 되고 표현도 잘 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이런식으로 홍콩 무술 영화, 한국 권격 영화를 트래쉬 ... more

덧글

  • 지나가던이 2007/06/17 02:39 # 답글

    그렘린을 참 재밌게 본 사람으로써 관심이 가는군요.
  • 게렉터 2007/06/20 13:10 # 답글

    지나가던이/ 트래쉬 무비 팬이라면 아주 감탄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정상적인 재미도 주면서, 트래쉬 무비 다운 향취도 결코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 천용희 2011/10/12 15:54 # 답글

    1. 속편에서는 로버트 패트릭이 나오죠...뭐 이 양반 다이하드2 전까지는 코먼쪽 사단 인물이었습니다.

    2. 기획자체가 일종의 내기였죠. 존 데이비슨이 코먼에게 가서 당시 뉴월드 최저예산도 안 되는 제작비로 10일만에 다 찍을 수 있다니까는 코먼이 그건 안 될텐데 하면서 거부하려다가 존 데이비슨이 제대로 도발을 한 덕택에 일종의 내기가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감독은 3명이었죠. 존 데이비슨(크래딧에는 프로듀서로만 기록), 앨런 아커시, 조 단테, 이렇게 3명이 열심히 짜맞추고 돈 절약을 위해 필리핀에서 찍은 영화들 장면 붙이고 하면서 만든게 이 영화입니다.
  • 게렉터 2011/10/13 12:46 #

    내기로 기획된 영화라는 말씀은 또 놀라운 정보 입니다. 영화 보면서 부분 열심히 기술 좋게 찍었는데, 왜 이렇게 전체 모양으로는 계속 막나가고 또 막나갈 까 이상스러웠는데, "내기"라니 그럴만하다 싶다는 생각 듭니다.

    매번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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