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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말. 미국에 앤 웨스트폴 이라는 한 학생은 컴퓨터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이 학생은 학교 수업 중에 프로그램을 배워서 이런 저런 계산 프로그램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재미삼아 만들었는데, 수준이 상당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프로그램과 실력은 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되었고, 한 토목 건축 회사에서 그녀에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 (TRS-80 기계의 모습) 그녀는 이 회사에 TRS-80 기계로 돌리는 프로그램을 짜주었는데, 1980년에는 그 프로그램을 들고, "서부 컴퓨터 전시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전시회에서 그녀의 부스는 오토메이티드 시뮬레이션스 Automated Simulations 라는 회사의 옆자리였는데, 이 회사에서 일하는 존 프리맨이라는 남자가 그녀의 부스를 구경하게 됩니다. 동서고금 언제 어디서나 갑자기 일어나듯, 젊은 청춘남녀는 눈이 맞고 말았고, 존 프리맨은 앤 웨스트폴에게 좀 가까운 곳에서 살면 더 자주 만날 수 있지 않겠냐고 꼬드기게 되어, 앤 웨스트폴은 존 프리맨의 "오토메이티드 시뮬레이션스"에 입사하게 됩니다. 이 회사가 바로, 70년대말과 80년대에 걸쳐 많은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던 중견 기업, "에픽스 Epyx" 가 됩니다. 에픽스는 80년대 비디오 게임, 컴퓨터 게임의 성장세를 타고 코모도어와 아타리 계열 기계용 게임을 발표하면서 급격히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존 프리맨은 회사 창립자 중에 한 사람이었고, 앤 웨스트폴은 훌륭한 프로그래머 였으므로, 두 사람은 에픽스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픽스가 커지면서, 에픽스에서는 직원과 임원들 서로간에 여러 계파 싸움과 견재, 내부 부서간 알력 등등이 불거지면서 상당히 복잡한 모양이 되어 갔다고 합니다. 결국 1981년, 존 프리맨과 앤 웨스트폴은 여기에 염증을 느껴 회사를 나가서 자신들만의 회사인 "프리 폴 어소시에이츠 Free Fall Associates"를 차렸고, 에픽스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하여, 80년대에 걸쳐 두 회사는 어떻게 보면 서로 경쟁하며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에픽스의 창립자 중 한명인 존 프리맨과 프로그래머이자 그의 부인인 앤 웨스트폴) 에픽스는 화려한 성공을 거둔 게임들을 흉내내어 좀 더 간단하고 약간의 새로운 요소를 덧붙인 아류작들을 많이 만든 편이었습니다. 에픽스는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던 류의 게임 중에 집에서 하면 재미있을 만한 게임들을 꼽아서, 그와 비슷한 것을 집에서 하는 게임 풍으로 만들던 것이 초창기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83년에 나온 "점프맨 Jumpan" 같은 게임은 동키콩과 흡사한 형태의 게임으로 흥행했고, 울티마나 위저드리류의 게임이 끼친 영향이 많이 엿보이는 롤플레잉 게임을 좀 더 저비용으로 싸게 만들어서 성공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에픽스는 우연찮게 스포츠 게임 분야에서 상당히 새로운 물결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스포츠 게임은 "퐁" 같은 게임의 전통이 있듯, 진작에 정착된 분야였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 게임의 경우에는 1980년대 초반에 이미 현재의 야구 게임과 별 다를바 없는 체계가 잡히게 됩니다. 투수나 타자 역할을 맡아 게임을 진행하고, 공을 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수비수를 전후좌우로 조종하게 되고, 버튼을 누르면 송구하게 되는 그 구성은 30년이 넘게 지나오는 지금까지도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감독 역할을 맡아 전략 게임으로 즐기게 되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이후 야구 게임은 화면과 음성을 얼마나 더 진짜같게 대용량으로 꾸미느냐, 혹은 얼마나 더 진짜 선수들을 자료로 많이 담아내느냐 하는 양적인 발전에 머물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소위 스포츠 게임이라는 것은 간단한 동작 조작으로 즐기는 아케이드 게임의 형태이면서도 실제 선수, 실제 팀을 조종한다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런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임들이 주로 나온 것입니다. ![]() ("거리의 야구" 표지 모양) 그런데, 에픽스는 "하계 올림픽 Summer Games" 과 "동계 올림픽 Winter Games"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여기에 새로운 변화를 어느 정도 유행시키게 됩니다.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은 야구 게임이나 축구 게임에 비해서, 지극히 단순한 달리기, 원반 던지기 같은 내용을 다루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별 게임이 안될만한 것도 어떻게든 게임의 형태로 투사하면서 여러가지 현실 소재를 아케이드 게임 형식으로 조작 가능한 모양으로 꾸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임 자체가 단순하다보니, 뭔가 좀 재미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배경이나 선수의 모양에 적당한 아름다움과 일정 수준의 웃음과 감정을 싣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은 80년대 중반에 나온 "동계 올림픽"에서 완연히 굳어집니다. 조종하는 선수가 흥분하고 즐거워 하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느낌을 만화에서 살짝 들여왔습니다. 또, 배경 그림을 용량이 허락하는 내에서 충분히 충실하게 그려내서, 스포츠와 어울리는 경치 좋은 곳에서 그 분위기를 즐기는 여유로운 느낌을 주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얼굴 표정이 거의 안보이거나 얼굴이 보인다해도 표정 변화가 없었던 기존의 게임에 비해서, 조종하는 선수들이나 등장 인물들에게 웃음이 날만한 동작을 주었습니다. ![]() (동계 올림픽의 시원한 배경) 그래서 게임 자체는 더 단순해졌고, 게임에 등장하는 팀이나 인물들의 자료의 사실성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도, 좀 더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경쾌한 게임을 만들어나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에픽스의 마지막 흥행작인 "캘리포니아 게임스 California Games" 시리즈에서 극단적으로 완성되었고, 이렇게 분위기와 여유, 웃음을 즐기는 스포츠 게임은 후에 EA가 만드는 걸작인 "스키냐 죽음이냐 (죽음의 스키, Ski or Die)", "해변의 왕 (해변의 배구, Kings of the Beach)"으로 훌륭하게 계승되기에 이릅니다. ![]() (EA의 "해변의 왕"에 나오는 공격 잘하고 좋아하는 선수들의 모습) 이 "동계 올림픽"과 "캘리포니아 게임스" 사이에서 이런류의 에픽스 스포츠 게임의 성격을 잘 표현해준 것이 바로, 1987년에 IBM PC/DOS, 애플II, 코모도어 64로 나온 "거리의 야구 Street Sports Baseball" 입니다. 이 게임은 야구 게임이면서도, 국가 대표 대항전이나 프로리그를 모델로 하는데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대신에 완전히 대조적으로, 골목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것을 내용으로 삼아버린 게임이었습니다. 따라서, 게임 자체의 배경그림은 무리하게 대형 스타디움과 수만명의 관중을 표현하는 것을 화끈하게 포기해버렸습니다. 대신에 익숙한 동네 정경을 작은 아이디어들로 표현했습니다. 또 실제 선수의 얼굴을 표현하거나 얼굴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개성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특히 게임 중의 아이들을 표현할 때 풍선껌을 부는 모습의 애니매이션을 넣은 것은 절묘했습니다. 그리하여, "거리의 야구"는 마치 만화 속 찰리 브라운과 그 친구들이 공터에서 하는 야구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듬뿍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게임 조작이나 선수들의 특성 분류는 당시에도 10년가까이 이어져 내려온 야구 게임의 굳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해서 익숙한 재미 역시 잘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그 만화풍의 그림체가 단순한 형태로도 충분히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과 배경을 충실히 보여 줄 수 있어서, IBM PC의 CGA 비디오 보드만으로도 그 분위기를 잘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코모도어 64 보다는 IBM PC/DOS에서 상대적으로 더 유행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 (투수와 타자를 조종하게 되는 것이 기본) "거리의 야구"의 태생적인 약점은 당연하게도, 다른 야구 게임과 달리 유명 프로 야구 팀들, 선수를 직접 조종하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당연하게도 "거리의 야구"는 이런 약점을 강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장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리의 야구"에 나오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재미있는 선수들, 아이들을 관리하고 유지하여 팀을 운영하는 리그 설정 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아이들의 성격과 모습, 성적과 기록이 계속 남아서, 마치 정말로 그런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친숙해지고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도록 하여 게임에 몰입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처음부터 그 그림에서 풍겨나오는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설렁설렁 야구 놀이를 하는 것을 사람들이 즐길 뿐, 복잡하게 선수들을 관리하고 리그를 조작하는 것은 별로 탐탁찮게 여긴 점이 치명적이었습니다. 또, 야구 게임 자체의 조작은 매우 단순했고, 맨홀 뚜껑과 타이어를 베이스라고 치고 게임을 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등, 누구나 미소를 띄우며 공감할 수 있는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그에 반해, 리그 설정은 그저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만으로 되어 있고 조작자체도 별로 재미없게 되어 있는데다가 볼거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그걸 하고 싶게 하는 유인이 없었습니다. ![]() (주차장에서 야구하기) 그래서 별로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만, 아쉬운대로, 이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코모도어 64 버전의 설명을 기준으로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에서 부터 아래의 차례로) 빅: 자신을 돈 존슨(...) 같다고 여기고 있지만, 수비할 때 보면 그냥 장님 같을 뿐이다. 데이비드: 방망이를 휘두를 때는 비행기가 항로를 변경해야 할 지경이다. 약점은 수비. 줄리: 남자애들은 "'여자애치곤' 꽤 잘 던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잘한다. 약점은 선구안. 보조: 힘이 세지만, 느리다. 티나: 언젠가 빅 리그를 꿈꾼다. 빠르다. 다나: 장타에 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케빈: 우우우우쉬이이이이! 아무도 그가 달릴 때 앞에 나오지 못한다. 가장 빠르다. 랄프: 어깨도 약하고 잘 치지도 못한다. 그러나 결코 실책을 범하지도 않고 달리기도 빠른편. ![]() (위에서 부터 아래의 차례로) 브래드: "탄도 투구"를 통해 공을 미사일로 바꾸는 능력을 지녔다 할 수 있다. 멜리사: 투구하는 체력이 풍부하고 항상 진지하게 열심히 야구를 한다. 키티: 타율이 높게 잘 치고, 슬라이딩을 잘한다. 그러나 실책이 많다. 밥: 모든 면에서 적정 수준인 만능 선수. 킴: 재미로 야구를 하는 여유로운 친구. 실책이 많지만 그만큼 갑자기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마법": 놀랍도록 잘한다. 잘치고, 잘달리고, 잘던지고, 실책도 없는 믿을 수 없는 실력의 최상의 실력자. 부치: 조잡하게 던지고, 의욕없이 야구를 한다. 하지만, 공을 매우 잘 잡는 수비의 실력자. "레이더": 공이 항상 어디로 갈지 알고 있는 노련한 선수로, 이 동네에서 상대팀을 열받게 하기로 악명 높다. "거리의 스포츠" 시리즈는 거의 같은 시기에 야구 이외에도 몇 개가 나왔습니다. 대체로, 본격적으로 "길거리 농구"를 잘 표현한 "거리의 농구 Street Sports Basketball"가 가장 평이 좋은 편이고, "거리의 축구 Street Sports Soccer"가 조금 덜 평가 받는 편입니다. "거리의 야구"에는 야구장의 크기와 담장, 나무 등의 장애물이라는 지극히 동네 야구 스러운 요소 때문에 보통 야구와 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는 특징이 조금 있었습니다. "거리의 농구"는 이와 비슷하게 다른 보통 농구게임과 다른 규칙, 환경이 더 확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 ("거리의 축구" 게임 표지) 에픽스는 "캘리포니아 게임스"로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일본계 회사인 "데이타 이스트"의 미국 법인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카라테 게임을 표절했다는 것인데, 소송이 이어지면서, 에픽스는 상당히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계속 게임들은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는 없었기에 큰 문제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랬건만, 혼란의 와중에 방만하게 이것저것 문어발식 확장을 하다가 갑자기 자금 사정이 압박을 받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캘리포니아 게임스"의 성공직후인 1989년에 에픽스는 사무실을 작은 곳으로 옮기고 법정관리와의 싸움에 들어가게 됩니다. 에픽스는 결국 파산의 늪에서는 벗어나게 됩니다만, 그러는 동안 확연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결국 1993년 마지막까지 남은 8명의 직원과 함께 다른 회사에 흡수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 (에픽스의 흥행대작, "캘리포니아 게임스"에 나오는 점수 평가 장면) 하지만, 에픽스가 보여준, 스포츠 게임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은 후대의 많은 게임들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게임스"등의 몇몇 흥행작은 21세기인 지금에도 닌텐도 DS, PSP, Wii, 여러 휴대전화 게임등으로 변형, 이식되면서 꿋꿋이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영향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공로자들이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은, 어쩌면, 급격히 산업이 팽창하던 1980년대 컴퓨터 산업계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쓸쓸한 장면이었다 할 것입니다. 그 밖에... 여러가지 제목으로 불리웠고, 국내 컴퓨터 잡지 등에서도 "길거리 야구" "거리의 스포츠: 야구" 등등 서로 다른 번역제목으로 혼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체로, "거리의 야구" 내지는 "동네 야구"로 통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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