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Transformers, 2007) 영화

불교에서는 흉악하게 생긴 귀신, 괴물로 인도 신화 전설 속의 "아수라"라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참혹하거나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광경을 "아수라장"이라고 하는 관용어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인데, 아수라들 중에는 왕이 있습니다. 인도의 신화 전설에는 이 아수라왕이 현재 인도 남서부땅인, 카르나타카 주 일대를 지배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인도 남서부이지만, 데칸 고원 지역이라서 지대가 높아서 날씨가 비교적 시원하고 비가 적은 지역입니다. 요즘에는 이곳에 있는 "방갈로르"라는 신도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요즘 방갈로르의 세태를 풍자하는 장면이 짧게나마 들어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왔으니, 바로, 2007년작인 "트랜스포머" 입니다.


(번뇌속에서 방황하는 중생들)

방갈로르가 유명한 까닭은, 우선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소프트웨어 수출국인 인도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딸려 있는 더 중요한 이유는 미국 회사의 고객 서비스를 맡은 외주 업체들이 방갈로르에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트랜스포머"에는 비록 아주 간단한 농담장면이지만, 매우 인상적인 장면에서 바로 이런 면이 포착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랫만에 집에 와서 DVD플레이어를 돌리려고 한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잘 돌아가던 것이 갑자기 이상한 에러를 내면서 DVD를 인식을 못합니다. 한참을 DVD리모콘을 붙잡고 고생해 보지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여러분은 DVD플레이어 회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화를 해 보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업무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하는 발랄한 녹음이 들려옵니다.

주5일차 근무에, 9시 출근 6시 퇴근이 세상의 표준이니, DVD플레이어 회사 사람들도 퇴근하고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입니다. 보통 퇴근후 심야나, 휴일에 빈둥거리면서 DVD를 보지, 평일 낮에 일하다말고 갑자기 DVD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DVD플레이어 때문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는 일도 심야나 휴일에 자주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공교로운 시간차 때문에 그럴때마다 DVD플레이어 회사 담당자는 퇴근하고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90년대에 유행했기에 요즘에 그런소리하면 무척 나이든 티내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머피의 법칙"의 좋은 예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장나면 아예 직접 수리기술을 익혀라)

DVD플레이어 회사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들 퇴근하고 집에 가는 시간에 출근해서 일하는, 야간전담, 휴일전담 요원을 고용해서 배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고용하기란 쉽지 않고, 따라서 인건비도 좀 더 많이 줘야 합니다. 애초에 고객상담 업무 자체가,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만 바가지로 얻어 먹는 일입니다.

더우기 고객상담 업무라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는 일도 아니고, 좋은 옷입고 멋있는 사람들 만나면서 분위기 잡을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 한 골치아픈 불평불만과 해결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이상한 문제를 계속 풀어나가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정보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반 같은 일이라서 여간해서는 일하는 사람이 보람이나 성취를 느끼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자칫 내가 멀쩡하게 잘 커서 학교 다 잘마치고 나서, 여기서 허구헌날 전화통 붙잡고 뭐하는 인생을 살고 있나, 삶의 회의를 느끼기 쉬운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좋은 상담원을 구해서 배치하기란 워낙 어렵습니다.


(이번 영화는 E.T.와 1941을 섞은 줄거리에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것 같은 것들이 뛰어다니는 것으로 만들어 주게. / 대신에 제작비는 영화 세 편 찍을 만큼 주셔야 됩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90년대 후반, 주로 전자, 전산, 정보, 통신 업종에서 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유행하게 됩니다. 지구가 뱅뱅 도니까 시차를 이용하는 작전을 써보자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밤과 주말에 전화 받아줄 사람을 찾기 힘들면, 미국이 밤일 때 낮인 나라에 있는 협력회사가 대신 전화를 받아주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낮에 평화롭게 일하는 현지 사람들이 미국인들이 심야에 거는 전화를 상쾌하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회사들은 미국 반대편에 있으면서, 미국 사람들이 거는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영어를 쓰는 나라들을 찾아봤습니다. 결론은 2천만명이 영어를 사용하는 인도였습니다. 이 숫자는 캐나다나 호주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도의 정보통신 신흥도시인 방갈로르에 속속 미국 회사들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인도가 시차 때문에 전화를 잘 받을 수 있다는 점 보다도 더욱 중요한 점은 역시 인건비가 싸다는 것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인도의 인건비 수준은 미국의 10분의 1이 채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런 귀찮은 일들을 적은 돈을 받고 할 수 있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훨씬 쉽게 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과학기술 분야를 연마한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업부 중에서 잔손이 많이 가고 골치아픈 일들을 많이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컴퓨터 회사들로부터, 통신 회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체들이, 태평양과 인도차이나 반도를 건너 수만킬로미터가 떨어진 인도에 전화 상담과 관련업무를 배치했던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 인도-미국의 경제협력이 90년대 이후 폭증했습니다. 덕분에 인도와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 기착지로 인천국제공항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의 일등공신: 인도인들에게 밀려 해고되지 않으려면, 밤새도록 모델링하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렌더링하는 길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갈로르의 아메리카인" 스러운 현지 전화 상담은 부작용이 점차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전화를 걸었을 때 처음 답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좀 낯선 인도 억양이라는 점부터 약간은 불리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언어의 차이는 좀 심각해 질 때도 있습니다. 보통 고장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이고, 사람마다 상황이 다른지라, 말이 어렵고 표현이 미묘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같은 영어라도 서로 의사소통이 안될때가 많습니다.

"CD가 튄다"라는 말이 CD가 개구리처럼 기계에서 튀어나온다는 말인지, "화면이 깨진다"라는 말이 모니터의 액정에 금이 가면서 파편이 흩날린다는 말인지 얼른 착각하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보다 문화적인 것이 개입되면 상담은 더 골치아파 집니다. 예를 들면, "이태원 쪽에서는 신호가 잘 잡히는데요, 남산쪽으로 올라가면, 8번 채널이 이상하게 나오거든요. 만화영화에서 둘리 얼굴이 막 빨간색으로 나와요" 라고 물어본다면, 이태원은 어디있고, 남산은 정말로 "산"인지 얼마나 높은지, 8번 채널은 어떤 방송인지, 둘리의 원래 색깔은 어떤지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인도인과 미국인이 고장을 해결할 때는 짜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외계인이나 랩터가 나와야 재미있다네. / 초록색 불빛 신호와 특공대가 나오면 더 재밌죠.)

좀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감정 문제였습니다. 대부분 전화를 주는 본사와는 직접관계가 없이 상담업무만을 해주는 인도 현지 회사 사람들이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쓸데없는 후환을 피해서 아무래도 유연한 대처를 하기보다는 틀에 박힌 원리원칙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책임감이 부족 하기도 쉬웠고, 반대로 고객에게 불필요하게 고자세로 나가는 수도 있었습니다. 상황이 좀 안좋아지면, 상대방 쪽에서 짜증을 내거나, 기분 나빠한다고 해도, 거기에 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너는 태평양 건너서 욕해라, 나는 서천 천축국에서 유유자적이니라" 라면서 가볍게 무시하는 일도 왕왕 있었습니다. 한편, 미국 쪽에서도,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는데, 갑자기 만리타국의 구석으로 연결되어, 다른나라 사람인듯한 목소리가 나오면, 어딘지 후줄근하다는 편견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구석에 있는 후진국에서 돈 조금 밖에 못받는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는데, 뭘 얼마나 알겠으며, 뭘 얼마나 잘 해결해 줄지 의심스러워한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IBM 등 인도에서 전화상담을 받는 회사들의 주변에서 궁시렁 거리는 불만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인도의 발전으로 임금이 폭발적으로 오르면서, 돈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러한 인도 현지 회사의 업무를 분할해 놓는 것이 과연 좋은가 하는 회의적인 이야기가 돌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인도에서 다시 철수하는 회사들도 몇 있지 싶습니다.


(이제 그만 좀 철수합시다/한 번만 더 찍자고. 이번에는 마이클 빈처럼 보이게 해볼수 없을까. 응?)

"트랜스포머"에는 전화 상담 교환원이 인도인이라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인도인 전화상담원 이야기를 폭발적인 유머로 잘 옮기고 있습니다. 그 웃음의 원형은 "나홀로 집에"에서 "특근 After Hours"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들에 많이 나왔던 "무신경한 상담원, 무심한 경찰" 등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벌어지는 상황 자체가 훨씬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화면으로 묘사되어 있고, 바로 이렇게 요즘 새롭게 등장한 새로운 세태를 농담 속에 잘 잡아내서 녹여 놓은 부분이 있다는 점이 특색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이 외에도, 부쩍 늘어난 미국내 히스패닉 인구라든가, 남녀와 가족간의 역할, 웹과 전자상거래, 휴대전화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내용들을 일부러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은근한 코메디 속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다세포 소녀"에서는 반 아이들이 일제히 휴대전화 카메라로 체벌장면을 촬영하려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너무 주장과 시각을 내세우는 시사풍자인냥 포장하려고 해서, 효과가 도리어 약해졌습니다. "트랜스포머"는 그런면에서 더 지혜롭게 영화를 만들어서 보다 부드러운 코메디를 짜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긴 영화라서 안 힘들줄 알았더니)

웃자고 넘어가는 이야기 하나하는 동안 무척 길게 읊었습니다만, "트랜스포머"는 그 중심에 이렇게 은근하면서도 흥겨운 코메디를 심지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와 시간의 철학을 다루는 "빽 투 더 퓨처"나 종교적인 성스러움을 소재로 삼은 "인디아나 존스 1편, 3편"의 핵심에 코메디가 심궈져 있었던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트랜스포머"를 막상 비교해보면 그런 걸작 영화들의 기막힌 진지함과 코메디의 배합에는 다소 떨어지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트랜스포머"는 이야기의 인물과 갈등구조 자체를 이런 이야기를 풀기에 쉽게 해놓아서, 완벽하지는 않아도, 진지한 이야기와 가벼운 웃음을 연결하는 기본은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지구를 찾아온 외계 로봇 일행들의 태도입니다. "트랜스포머"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난 대목은 매우 진지하고 엄숙한 외계 로봇들이 어쩔 수 없이 사소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상사와 맞부딪히는 구도 입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왕의 명령과 세상의 예의범절에 인생을 바치는" 듯한 중세의 용감한 엄숙한 장군이, 타임머신을 잘못타고 21세기 어느 야산의 예비군 훈련장에 온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문제 있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 이야기가 진지해 보이지. E.T. 라든가,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라든가/ 어머니가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 이야기가 진지해 보입니다. 더 록 이라든가, 아마겟돈 이라든가.)

이 영화에서는 지구인들은 대체로 방정맞고 누구나 농담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선과 악의 대결을 벌여, 우주의 운명을 건 싸움을 대비하는 초특급 근엄한 외계 로봇 일행들이 나타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나오는 코메디를 잘 짚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엄마에게 들킬까봐 몸을 숨기는 대장" 처럼 신나게 웃길 수 있었습니다.

또 반면에, 그러면서도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로, 신화 속의 천사와 악마의 대결을 장황한 수식어구로 읊조리는 것도, 나름대로 어울리게 보였습니다. 만화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정의의 이름"이나, "지구의 평화" 같은 엄청나게 육중한 표현을 1회 방영분 마다 여러번 부르짖는 것과 비슷합니다. 너무나 확연한 악인과 선인의 구도에 외려 동화같은 운치가 있는 듯한 모양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운운하는 대사나, 절정장면의 건물 옥상에 있는 신전 장식과도 같은 조각상의 모양은 그런 종교 신화적인 동화에 어울립니다. 이런부분들은 "마스터 돌프 (히맨 영화판, 마스타 돌프, Masters of the Universe)"나, "최후의 스타파이터"와 같은 왕년의 SF영화들과 비슷한데, 이런 영화들보다 좀 더 많은 사람과, 많은 기계가 나와서, 더 화려하게 많이 부수고, 더 요란한 영화인 모양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엄)

물론 "트랜스포머"를 모든 외계인 이야기의 정점인 "E.T."와 비교한다거나, 선명무쌍한 선악구도를 유지하면서 더우기 그것을 바탕으로 더 진지한 질문과 갈등을 일구어내는 명작들과 비교한다면, 이 영화는 약한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사회를 보는 외계 로봇의 시각은 민족자결주의나 사회진화론과 충분히 연결시킬 수 있을만한 갈등을 품고 있었습니다. 비스무레하게 흘러가는 대사도 꽤 있습니다. 그런 재료가 있었으니, 외계 로봇 대장인 옵티머스 프라임이 거의 한산도의 충무공만큼 심각한 태도로 읖조리는 말들은 조금은 더 설득력있게 꾸밀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정말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외계 로봇들의 진지함이란 것을 표현하는 장식 정도에 그칩니다.

설령 갈등구도나 줄거리야 그저그렇게 한다고 해도, 대사나 연출을 좀 더 가다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밋밋하게 설명만 하는대신에, 대신에 조금씩 가다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라든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처럼 대사나 장면을 좀 더 아름답고 시적으로 꾸밀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트랜스포머"에는 후반부로 갈 수록 장중하고 감개무량한 음악이 흐릅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음악이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악마군단"이나 "이너스페이스"만큼 순간적으로라도 정말로 진지한 감정을 유려하게 잡아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랬다면, 아마 그 감개무량한 음악들이 제 몫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괜히 고조 할아버지의 유산이나 가훈을 운운하는 지금의 이야기는 사연이 충실하지 않아서 좀 싱겁습니다.


(고조 할아버지 이야기에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

음악이 비는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음악과 음향은 아주 훌륭합니다. 총소리나, 로봇이 변신할 때 나오는 음향처럼 SF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충실한 부분은 더할 나위 없습니다. 거기에 처음으로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질 때 들려오는 신나는 록큰롤이나, 로봇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숨바꼭질을 벌일 때, 소리효과가 커졌다 사라졌다하면서 웃음과 긴장감을 주는 대목도 매우 좋습니다. 이런 것들 중에서도, 영화에서 순간순간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와 배기음은 최고 입니다. 되돌아보면 영화를 즐겁게 즐기게 해주는 흥분을 더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정말로 아쉬운 느낌이 많이드는 것은, 외계 로봇들의 모양입니다. 의외로 이 영화는 제목과 달리 변신 로봇이나 "로봇"이라는 느낌이 그다지 결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보통 외계인 영화나 서사시속의 환상적인 존재들이 나오는 영화들과 거의 같습니다. 모양 자체도 좀 부족합니다. 로봇들의 모양은 그 관절이나 연결 부위를 너무 복잡한 장식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오히려 개개의 개성이 잘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악당 로봇들은 사납고 징그럽게 만드느라 노력한 나머지, 헬리콥터로 변신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심심합니다. 그래서 막판의 현란한 결투에서는 어느 로봇이 누구인지 자칫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제작이라면 역시 루카스나 코폴라를 본 받을 만하지./ 제작은 브룩하이머 선생님을 빼놓아서는 안될것입니다.)
(숀 코네리는 제임스 본드 때보다는 인디아나 존스 때가 나았지./ 하지만 숀 코네리의 최고 걸작은 더 록 아니겠습니까.)
(역시 2차대전 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 아닌가?/ 진정으로 미국인의 가슴에 충격을 준것은 진주만 공습이었지요.)

변신 장면도 실제로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로봇으로 변하는 그 기계적인 느낌은 별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터미네이터 2"의 액체인간이 변신하는 모습과 더 가까워 보입니다. 변신할 때에 "변신!" 이라든가 "트랜스폼!" 하는 구호를 안 외친다는 점도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범블비 로봇이 나자빠져 있을 때에도, 그슬린 R2D2 느낌을 준다거나 찌그러져 망가지는 키트를 보는 심정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실려가는 E.T.나 쓰러진 킹콩을 보는 감상에 좀 더 가깝습니다. 다만 변신하는 소리와 그 중량감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신기하기는 해서 적당히 그 몫은 하고 있습니다.

로봇의 모양이 좀 아쉬운 대신에, 로봇이 아닌 자동차일 때 모양은 아주 멋집니다. 영화 중간에 배경이 라스베가스 인근의 사막으로 이동하는데, 이 때 황량한 붉은 사막을 질주하는 자동차 행렬은 데스밸리에서 찍은 그 어느 자동차 광고 못지 않았습니다. 그외에도 이 영화에서 각종 첨단 무기들은 그 양감과 운동감을 보기 좋게 표현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항공모함 함대의 위풍당당한 순항 장면조차도 잠시 엑스트라처럼 지나가는 수준인데, 헬리콥터들이나 탱크의 움직임도 보기 좋고, F-22 전투기의 기막힌 모습들은 어느 로봇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 입니다. 이런 것들과 커다란 로봇들이 한데 어울려, 사람과 부서지는 건물들과 함께, 대낮의 햇빛속에 달려가는데, 바로 눈앞에서 선명한 디지털 상영으로 뭔가가 폭발하는 그 절묘한 모습은, 역시 가슴 밑바닥을 두드리는 맛이 있습니다. F-22를 비롯한 첨단무기들의 위용과 착하고 용감한 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시종일관 도덕관과 국가관에 자신감이 넘치는 큼직 큼직한 광경들이 이처럼 이어지는데, 이런 면에서 미국의 건국기념일에 개봉된 영화로서, 선전적인 느낌도 적잖이 견지하고 있습니다.


(랩터)

이 영화는 중동의 미군기지, 미국 동부의 워싱턴DC, 미국 서부의 어느 교외의 세 지역을 번갈아가면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세 지역의 사람들이 동시에 외계 로봇과 관련된 이상한 일들을 겪습니다. 그렇게 세 이야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별개로 진행해서 도대체 무슨일인지 조금씩 궁금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 사람들이 이 사건 때문에 한 군데에서 만나게 되고, 세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런 구성은 거대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에 좋기 때문에, "1941"이나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에 멋지게 활용된 바 있습니다. "트랜스포머"에서도 이야기를 오밀조밀 지겹지 않게 연결하는데에 그런 이야기 방식에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세 이야기는 중심인 미국 서부 교외 지역 이야기 외에, 나머지 이야기는 비중이 어색하게 비틀비틀 오락가락합니다. 특히 워싱턴 DC의 엔지니어들은 후반부에는 슬그머니 퇴장해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세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진 후에도 비슷한 문제는 있습니다. 영화의 위기감을 위해서 누구하나 죽어야할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흑인 비스무레한 조연"이 나자빠지게 해 놓은 부분 같은 것은 인물을 재미없게 해버리는 안일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조금은 방만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충분한 흡인력을 갖는 것은 역시, 가벼운 코메디를 섞어 넣는데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많은 배우들의 재주와 세세한 대사 덕택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허둥지둥이면서도 이해가 갈법한 주인공은 충실하고, 코메디 배역인 주인공 어머니등은 탁월합니다. 그 외에도 비중이 작은 주인공 친구역할 등등도 여느 명배우 못지 않게 훌륭합니다. "나무를 타려고" 따위의 코메디 대사는 사소한 듯해도 무척 그럴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나오다가 중간에 안나온데.)

수없이 많은 폭파장면, 달리기 장면, 추격전 장면 등등을 최대한 신나게 담아내기 위한 기술적인 노력들은 눈물겹습니다. 이 영화에는 몇몇 예외 장면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가만히 정지된 채로 멈추어 있는 화면이 없습니다. 좌에서 우로 화면이 흘러가거나, 우에서 좌로 화면이 흘러가거나, 빙빙 돌거나,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아래쪽에서 위로 확대되거나 합니다. 사소한 대화 장면이나 멀쩡한 풍경보여주기 장면도 항상 움직이며 운동감과 공간감을 전해주려고 합니다. 이런 화면의 움직임이 거대한 로봇들이 날뛰는 장면들로 연결되면서, 보다 힘있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로봇 사이를 정신없이 내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값을 합니다. 이 정도라면, 부족한 부분과 신나는 부분의 합이, 보다보면 조금 아쉽고, 또 보고나면 조금 흥분될 정도로 잘 섞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봇의 크기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수법)



그 밖에...

인도에 전화상담 기지를 만드는 것처럼, 요즘에는 연변의 조선족들에게 한국과 중국의 전화상담을 모두 맡게 하는 회사들도 꽤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의 내용을 표현할 수 있다면, 우주선이나 전투기가 나오고 발사버튼 두들기면서 하는 게임도 영화로 옮길 수 있겠다 싶습니다. "폭스레인저" 같은 것을 원작으로 해서, 주인공이 좁은 우주선에 탄채로 온갖 우주의 이상한 지역을 파고 들어가면서 갖가지 기괴한 괴물들을 하나 둘 물리치는 이야기를 꾸밀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일루전 블레이즈"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고, 그 기가막힌 불타오르는 주제곡을 다시 써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핑백

덧글

  • SoGuilty 2007/07/12 13:04 # 답글

    깊이 쑤셔주신 (?) 리뷰 잘 읽었습니다 =)
  • 2007/07/12 13:4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cdc 2007/07/12 14:13 # 답글

    이런 유쾌한 분석(과 신경전?;)이라니! 잘 읽었습니다 :)
  • 닥슈나이더 2007/07/12 16:22 # 답글

    역시... 깊이가 다르군요.... 저와는.......
  • 슈리 2007/07/12 16:32 # 삭제 답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원작트랜스포머 세대이신가봐요. 중간에 '변신' 구호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 잠본이 2007/07/12 23:56 # 답글

    '프리미엄 서비스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에서 뒤집어졌었죠 OTL
  • 게렉터 2007/07/16 21:23 # 답글

    SoGuilty, dcdc/ 감사합니다.

    닥슈나이더/ 깊이 보다는 길이...

    슈리/ AFKN이나 세계 각국의 위성/케이블 채널 재방송으로도 많이 돌았으니, 귀에 남은 사람들이 꽤 되리라 생각합니다.

    잠본이/ 그런데 정말 비슷한 경우 당할 때가 있어서 더 재미났습니다. 사실 "아무 생각 없는 블록버스터"라는 것들에 생각의 가지수는 더 많은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역사와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일 수록 그 "역사"라는 생각 한 가지만 엄청나게 깊은 경우가 많은 것 처럼 말입니다.
  • 파란날개 2007/08/18 21:50 # 삭제 답글

    센스가 최강이시네요.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를 같이 두고 이야기 쓰신 것 보고 엄청나게 웃어댔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__)
  • 게렉터 2007/08/26 21:28 # 답글

    파란날개/ 감사합니다. 감독 성향에 관한 이야기는 본문중에 최대한 하지 않는 것으로 영화 글을 올리고 있어서, 그런 류의 이야기는 사진에 붙이는 농담 자막이나, "그밖에..."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