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하드 4.0 Live Free or Die Hard 영화

"다이 하드 4.0"은 명작 블록버스터 영화 "더 록"과 비슷한 구도로 흘러 갑니다. 분위기 안맞는 농담을 읊조리는 거칠고 총잘쏘는 늙은이와, 이 늙은이와는 삶이 정반대인 기술자 젊은이가 티격태격하면서 테러리스트와 맞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니콜라스 케이지와 숀 코네리는 서로 비중이 막상막하이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저스틴 롱 보다 훨씬 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 록"과는 반대로, 젊은이가 범죄자 쪽이고, 늙은이가 더 착하고 더 웃깁니다.


(사실 인상으로보면 범죄자처럼 생긴 양반은...)

이 영화 속에는 예고편에서 선 보인 날아오는 자동차에 깔리는 위기를 피하는 장면이라든가, 전투기와 싸우는 것 같은 기막힌 장면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그 운동감과 충격감을 절묘하게 전해주면서, 화면 연출과 컴퓨터 그래픽의 화려한 조화를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전투기와 싸우는 장면은 수직이착륙기가 고도와 속도를 자유롭게 바꿔가며 숨막히게 움직이는데, 그 절묘한 모습은 "트루 라이즈"의 기념비적인 명장면을 능가할 정도 입니다. 전투기의 외형 자체는 "트랜스포머"의 F-22 보다는 조금 덜 아름답고, 난데 없이 대강 달랑 전투가 한 대만 툭 튀어나오는 것이기에 앞뒤 이야기와 연결되는 맛은 좀 떨어집니다. 하지만, 주인공 존 맥클레인 형사가 겪는 시련의 극치를 표현하기 위해서 효과는 충분한 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전투기가 나오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그때까지 어떤 적 보다도 빠르고, 크고, 힘센 이 전투기가 마지막 악당급으로 나오니 결코 싱겁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묘사는 명작 SF애니메이션에서 우주선이나 로봇이 화려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넘어설만한 것이라서 대단한 박력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 좀 더 잘 융합되어 있는 것은 터널에서 자동차에 깔리는 위기를 겪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엘레베이터나 대중교통수단 같은 평범한 일상적인 소재가 갑자기 치명적인 위기와 난리로 돌변하는 재난영화 같은 묘미를 살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블록버스터에서 전통이라면 전통을 떠올릴만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상황이 악화되어 점점더 살아날 길이 없어 보이도록, 덮쳐오는 점층법도 잘 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의 악당들은 정보 체계와 통신을 장악하여 테러를 저지르는데, 바로 이런 소재와 이 장면은 찰싹 결합되어 있습니다. 악당들이 정보를 조금씩 조작하는 것이 그때그때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시각적으로 착착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투기 장면은 일상적인 느낌이 거의 전혀 없어서 현장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서로 좋은 보완이 되어 줍니다.


(월스트리트 지하철 장면과 비슷한 느낌으로 연기하면 되는 거요?)

이 영화에서 화면 연출과 미술 표현들은 주인공의 위기들을 이처럼 빠르고 아슬아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장엄하고 커다란 사건을 묘사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풍경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로 닥쳐오는 전기 정전을 보여주는 부분은 신화 속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서 느낄 법한 감흥을 전해주고, 길이 꽉막힌 도로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주인공의 시선을 묘사한 장면 역시 전쟁장면을 그린 회화 같은 멋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가스 폭발 장면이나 충격이 잘 표현된 자동차 수십대의 교통사고 장면도 평균 이상이라 할만합니다.

어지럽게 교차하는 컴퓨터 화면들과 다양한 통신 장면들도 나름대로 왠만한 GUI 설계자들의 데모 못지 않게 빠르고 화려해 보이도록 대강 갖추어져 있는 편입니다. 사실적인 것은 아니고,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나 "해커스" 같은 영화가 보여줬던 모습에 비하면 유행에 잘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잡한 장난 같아 보이는 몇몇 TV쇼에 비하면, 인터넷과 화상통신이 일상화된 요즘에 꾸민 화면 치고 꽤 그럴싸한 편입니다. 미국 대통령들의 영상을 하나의 문장이 되도록 짧게 끊어 편집해 놓은 것은 유튜브 스러운 예술작품의 느낌이 풍부합니다. 국가, 정부를 운운하는 이 미국 독립기념일 개봉 영화의 분위기에 착달라 붙기도 하면서, 동시에, 고위 정치인에 대한 엷은 비아냥 거림도 스며 있습니다. 특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사를 마지막으로 연결해 갖다 붙인 부분은 짧고 뻔한 듯 해도, 그 반어적인 향취는 역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음악도 충실합니다. 아쉽게도 Lovin' Spoonful 노래 같은 압도적인 힘을 주는 감동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Fortunate Son" 같은 곡은 듣기 좋고, 장조와 단조를 제멋대로 절묘하게 넘나드는 배경음악은 최고 수준입니다. 배경음악은 화면 자체의 동작과 주인공들의 시선, 발자국 하나하나에 걸맞도록 움직임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표현되는 듯한 느낌인데, 곡조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정도로 영화의 동작 하나하나를 잘 살려 줍니다.


(이럴때 어떤 음악이 나오면 좋겠는가?)

한편 악당들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다면, 여러 영화속 악당을 얼기설기 짜집기해 잔뜩 모아놓은 형태라서 꽤 좋아 보이는 부분도 있고, 꽤 엉성해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영화 속 악당들은 해커들을 잘 조직한 뒤 정보체계와 통신을 장악해 사고를 치려는 놈들입니다. 이런 류의 악당들은 20여년전에 나온 "슈퍼맨 3"를 비롯해서 많은 영화, TV쇼에서 "해커" "보안" "뚫었다" "빼돌렸다" 같은 단어를 들먹이면서 자주 나왔던 것입니다. 뭔지 알기어려운 기술에 빨리 적응하면 그만큼 힘을 쓸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의식을 표현하는 맛이 있어서, 신기한 악당을 그리는데 꽤 도움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대부분 악당들은 "정보를 손에 쥐면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라는 말만할 뿐이지, 정말로 모든 것을 장악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아서 좀 허풍 떨고 뜬 구름 잡는 듯한 면이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패스워드" 같은 영화에서 해적 방송을 크게 한 번 때리는 것 정도 였습니다. 그 뜻대로 "모든 것을 장악하는 정보"가 넘어가기 전에, 벌써 주인공이 악당을 제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이 영화에서는 처음 부터, 악당들이 정보를 장악해서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뒤흔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 나왔던 사생활 추적이라든가, "패스워드"에 나온 해적 방송, "슈퍼맨 3"에 나온 금융조작, "쥬라기 공원"에 나온 조명-전력 조정 등등 정보통신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가지 다 모아서 한 꺼번에 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보기에 따라서는, 진부한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조합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서 좀 가소로워 보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또 보다보면, 그게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니까 그만큼 힘있고 정말로 정보사회 범죄의 극을 보여주는 재난 묘사의 느낌이 있어서, 나름대로 볼만한 광경이 되기도 합니다.


(정보통신이 이거면 족한 거 아냐)

오히려 악당이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많은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많은 악당처럼, 매우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사소한 데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악당들이 온 나라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이 대란을 꾸민 근본적인 이유가 좀 허망하고 어찌 보면 단순무쌍 소박합니다. 악당들은 다국적인 듯 보이며, 자기들끼리도 인정사정 없는 흉악한 냉혈한들입니다. 그러면서도 기술과 장비, 위계질서와 조직력, 정신력까지 더할나위 없는 임전무퇴의 태세입니다.

이런 류의 조직이 FBI, 미군, 미국 정부를 갖고 놀듯 뒤흔드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아보면, 좀 조악합니다. 악당 자체를 "스피드"의 악당처럼 좀 문제가 있는 인간 한 명 정도로 축소시키든지, 아니면, 나름대로 거창한 명분이나 기막힌 이유를 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 입니다. 하다 못해 이유없는 막나가는 미친 짓이라는 식으로 하는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야기에서는 대단한 음모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게 일을 꾸며놓고 겨우겨우 온갖 고생해서 실체를 알고보니, 줄거리 상으로도 별 것 아니고, 눈으로 보기에도 별 것 아닐 뿐입니다. 처음에는 미국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느니, 온 미국에 전기와 수도 공급을 중단시키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며 거창한 장면들을 보여 주었는데, 막상 음모가 밝혀지면 눈에 보이는 것은 선풍기 세 대에 컴퓨터 한 대 뿐이라서 눈에 보이는 것만 봐도 부족합니다. 너무 심심하니까, 그걸 두고, 저스틴 롱과 정부 요원들이 "이럴수가. 이럴수가. 큰일이다. 막아야한다." 하면서 혼자 엄청난 음모라고 떠드는데, 상당히 어색해 보입니다. 외려 악당들이 괜히 주인공을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시간 끌다가 바보처럼 다 망하는 것은 차라리 오랫만에 반갑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악당 총두목치고 참 없어보인다)

비슷하게, 악당 배역들의 특성과 연기력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악당 총 두목은 후반까지, 왜 저 특별히 싸움도 잘 못하는것 같고, 인상도 그다지 더럽지 않은 녀석이 두목을 맡았는지 얼른 어울리지 않습니다. 후반부가 되면, 이 녀석의 정체가 공개 되는데, 이 녀석은 정체가 공개되고 나면, 더더욱 정체와 안 어울리는 짓을 합니다. 자기 기술이나 실력을 자랑하기 보다는, 그냥 잭나이프 들고 돈 뺏는 뒷골목 깡패 같은 협박이나 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뒷골목 깡패 제압하듯이, 홍콩 갱영화나 "시티헌터" 같은 일본 만화 식으로 최후를 맞이 할 뿐인 것입니다. 자기 주특기나, 자기만의 명대사, 고유의 표정 같은 것 등등 아무것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매기 큐나 다른 부하 배우들도 비슷합니다. 매기 큐는 SF우주탐사물의 여자 대원처럼 "명령 복창 하기"가 역할이 전부일 뿐인 얼굴 마담 배역에서 그냥 헤메고 있을 뿐입니다. 중반부에 들어서면 무술을 잘한다는 특징을 내세우면서 양자경 동생인냥 하는데, 좀 잘하면서 발 좀 휘두른다 뿐이지, 딱히 누구 하나 제대로 제압하지도 못하고 짧게 퇴장할 뿐입니다. 그 밖에 벽타기와 서커스 같은 운동신경을 자랑하는 악당들도 다수 나오는데, 신기하게 좀 뛰어다니기만 할 뿐, 막상 끝까지 보면, "덕분에 잘안죽고 조금 더 오래 버틴다"는 점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럴싸한 몸놀림으로 처음에는 꼭 독특한 사연을 보여줄 법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보면, "맥가이버"나 "A특공대" 같은 TV쇼에서 점퍼 입고 기관단총들고 악당 저택에서 괜히 왔다갔다하다가 초반 한방에 쓰러져 버리는 불쌍한 경비원 악당들과 꼭같습니다.


(성이 Q 라는데 불만있나? / 아뇨아뇨. 저도 Long 인 걸요. 왜 우리 영화가 잘되면 매표소 앞에서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하여간. 예. 아이고...)

그러고보면, 사실 존 맥클레인을 돕는 맷 패럴과 "마법사 Warlock" 역시 부실한 데가 있습니다. 일단, 맷 페럴은 존 맥클레인과 티격태격해야 재미거리가 될 법한 위치인데, 너무 고분고분하고 배경도 성격도 불분명한 인물이라서 재미가 확 줄어들었습니다. 비중은 훨씬 작은 "마법사"는 반대로 등장 자체는 꽤 흥미로운 인간입니다. 존 맥클레인과 티격태격도 꽤 잘 합니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고비에서 이 사람은 존 맥클레인이 "'hey, listen' 한 다음에 한 번 더 말한다" 라는 것 때문에, 갑자기 전향을 해 버립니다. 이 "마법사"는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농담의 소재가 되거나, 전향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하는 많은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었기에 좀 더 아쉽습니다.

비슷한 인물 구도를 사용한 "더 록"의 굿스피드나 워맥 같은 인물과 견주어 보거나, "다이 하드 3"의 존 맥클레인, 제우스와 견주어 보면 뚜렷하게 모자란데가 보입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용해서 더 영화를 재미있게하고, 싸움에 더 이입하게 하는 힘이 확실히 덜 합니다. 그래도 맷 패럴, "마법사" 둘 다 배우의 연기는 충분히 출중하고, 작은 농담거리 대사들 하나하나가 잘 짜여져 있어서 그나마 존 맥클레인에 대한 조연 역할을 잘 해준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맷 패럴의 자동차 시동 걸기 장면 같은 곳에서는 "코메디 해주는 조연" 역할을 무척 성실히 잘 해주었습니다.


(다이 띄우고 하드 입니까? 다이하드 붙여서 입니까?)

이런 부족한 부분들은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틀에 걸쳐 벌려 놓은데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는 "기나긴 하루", "힘겹고 고생스런 어느 하룻밤" 정도로 짧은 시간에 사건을 밀도 높게 나열하곤 합니다. 이 영화는 워싱턴 D.C. 를 중심으로 미국 건국무렵의 유서 깊은 동부 주들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범위가 워낙 넓다보니, 이런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영화가 마무리 되지 못하고 이틀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24시간 안에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면, 밤이 흐르고,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모습을 이용해서 그 시간 흐름을 명백하게 영화 속에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들이나, 지친 주인공들의 모습도 훨씬 쉽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들이 조금씩 다치고, 피칠과 상처가 점점 많아지며, 옷차림이 헤지고 더러운 넝마가 되어가면, 그 망가지는 모습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범위에 들어맞지 않아서, 브루스 윌리스는 다쳤다가 갑자기 어느새 좀 나은 듯 보이고, 옷이 걸레쪽이 되었다가 어느새 좀 수선된 듯 보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면에서 일단 놓치고 들어간 덕에, 인물들이 겪을 사건들과 감정들도 그만큼 헐겁게 표현된 듯 합니다.

이 영화에는 밤-낮-밤-낮 의 차례로 대체로 네 번 정도로 무대가 바뀝니다. 첫번째는 뉴욕 일대에서 존 맥클레인과 매튜 패럴이 만나는 것으로, 이 부분은 화려한 블록버스터인 영화 전체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게 옛날 느와르 영화 처럼 되어 있습니다. 고독하고 거친 주인공이 어느날 밤, 의문의 인간을 찾아다니고, 냉소적인 농담을 중얼거리는 가운데 거기에서 더 큰 위기와 더 큰 의문과 마주친다는 것입니다. 화면의 모습도, "세븐"이나 "식스틴 블럭스" 처럼 푸른빛이 감도는 무채색 계통의 색상을 썼고, 어두운 밤거리에 새어 나오는 불빛들의 모습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필립 말로우 같은 탐정에 비해서 총알을 엄청나게 많이 쓴다는 것을 빼면, 정말 흑백영화 시절 분위기와 통하기도 합니다.

두번째는 FBI에게 인계하기 위해 워싱턴 D.C. 에서 벌이는 이야기 입니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악당들의 테러가 벌어지고, 혼란스러운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악착 같이 주인공들이 살길을 생각하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두 주인공이 가장 고생을 많이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끊임없이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긴박하고 화려한 재미를 줍니다. 세번째로 주인공들이 사소하나마 반격을 하기 위해서 발전소로 건너가서 악당들과 싸우기 시작하고, 끝으로 다시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 악당들과 마지막 추격전을 벌이면서 자동차 액션을 벌이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가까운 거리로 무대를 축소하거나, 처음부터 주인공들이 헬리콥터등을 타고 이동하도록 했으면 어떤가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워싱턴 D.C.의 이야기를 아침에 하고, 발전소 이야기를 오후 무렵에 한 뒤, 마지막 추격전을 저녁 무렵에 하도록 했다면, 좀 더 쉽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니면 아예 반대로 이야기를 더 크게 벌리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대도시, 대평원의 시골 농장, 서부의 황야, 록키산맥, 마이애미 해변 등등 배경이 뚜렷하게 대조되는 지역들을 종횡무진 날뛰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필립 말로우가 이런 총을 쓰지는 않겠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지금 이야기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엮여 있는 편입니다. 먼저 제시된 작은 복선들을 가지고 다음 이야기로 하나 둘 넘어가고 있고, 그 복선들의 양도 다채롭게 많은 편입니다. 가끔은 다음 장면을 위해서 관객들이 암기할 수 있도록 복선을 들이미는 통에 약간은 억지광고를 하는냥 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전투기 한 대만 출동하는 장면이나, 차량 추적 장치 같은 대목은 그 예로, 조금은 납득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제대로 안 짚고 넘어가는 다른 영화들보다는 월등하고, 악당들이 고용한 컴퓨터 기술자들 사이의 미묘한 표정 차이처럼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종종 있습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복선과 그 결과들이 얽힌 모양은 나쁘지 않습니다.

또 이 영화에는, 온 나라에 걸친 위기와 독립기념일이라는 국경일을 소재로 삼아서, 안보나 국가에 대한 인식을 환기 시키는 소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화끈한 선전물은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대소동과 추격전 속에서 오묘하게 주제와 엮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거창한 분위기를 좀 잡아주고, 크리스마스 영화에 눈이 내리고 캐롤이 울려퍼지는 것처럼 개봉한 날짜와 어울리게 분위기를 까는 정도 입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영웅론"도 말만 약간 멋있을 뿐, 전체적으로 그 주장이 감동을 주는 형태는 아닙니다. 조조와 유비가 번개 치는 날 이야기한 영웅론에 비하면 단조로운 이야기에, 어색한 결론이라고 폄하할만도 합니다.





(마누라가 나날이 더 미워하기 때문에 머리가 더 빠지는 것인가, 머리가 나날이 더 빠지기 때문에 마누라가 더 미워하는 것인가)

하지만 대신에, 이 영웅론은 이 영화의 주역인 존 맥클레인 형사와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한껏 멋을 부리는데 그 효과가 있습니다. 브루스 윌리스는 어림없는 장면에서 좀 맛간 사람처럼 허탈하게 낄낄대는 장면이나, 단순무쌍하게 설치면서도 사람 열받게 하는 농담을 계속 주워섬기는 말투에서 다시 한 번 왕년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신세한탄과 욕을 섞어서 중얼 거리면서, 기관총을 갈겨대는 헬리콥터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 같은 것은, 수십년 동안 이 짓을 해온 배우의 장인정신이 우러나온다고 할만합니다.

이런 양반이 종횡무진 뛰어다니면서, 수천발의 총알이 사방에 작렬하는데, 그 총소리와 폭발음의 녹음이 훌륭하고, 폭발장면의 화염과 충격파 묘사가 섬세하여 이정웅이나 듀안 핸슨의 작품 같은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바쁘게 이동하는 가운데 하나 둘 바뀌는 자동차 차종도 볼거리인데, 권총 한자루에서 경찰차, 초대형 트럭까지 점차 덩어리가 커집니다. 그러니, 늙은 형사 한사람이 설치는 이야기면서도 그 한사람이 뿜어내는 터져나오는 기세가 과연 흥을 돋구는 것입니다.


그 밖에...

3편까지 "다이 하드" 시리즈에서 FBI 국장급 인물들은 사람 짜증나게 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해주고, 비중은 차이가 있어도 충분히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FBI 대장은 그저 성실하고 착하기만해서 나오는 시간이 꽤 길어도 좀 재미가 없습니다. 이 FBI 대장은 자기 직속부하에게 심심하면, "무슨 수로든 뭘 해놔!" 라고 소리치는데, 이 직속부하는 그때마다 또 군말없이 별별 어려운 일들을 하러 갑니다. 영화에 나타나있지는 않지만, 상사에게 불만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왕에 대통령, 국가 이런 소재 많이 써먹고 있으니, "다이 하드 3"에서 이름을 자랑했던 체스터 A. 아서도 한 번 언급했으면 재밌지 않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4편과 3편의 맥클레인 형사 동료가 싸움 못하는 기술자 배역이라는 공통점을 짚어 보면, 독특한 인물설정이나 코메디 개인기에서 "다이 하드 3"의 사무엘 잭슨이 얼마나 멋졌는지 돌이켜볼만 합니다.

중간에 나오는 대통령 편집 영상 장면에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역사적인 연설들의 일부분도 꽤 많이 나와서 귀를 기울여 볼만합니다. 자막 번역에 대해서는 좋고 나쁘고 이야기 할 거리가 꽤 많은 편인데, 일단은 "nuclear" 한가지만 짚어 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nuclear"를 "원자력"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핵무기 체계에 대한 위협도 같이 이야기한다고 보는게 맞지 싶습니다. 국가적인 위기에 대한 핵심적인 언급인 만큼, "nuclear"의 직역인 "핵"이나 "핵시설" 정도로 번역하는게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핑백

덧글

  • SoGuilty 2007/07/18 11:28 # 답글

    Long Q... ㅎ;
    24에서 뛰는 잭바우어 생각하다가 이거 보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잭바우어는 하루동안 이만한 사건 다섯개 해결하는데 맥클레인은 이틀동안 이런 새퀴들 하나 못 잡나.. 싶더군요. 역시 형이 아저씨가 돼가면서 힘이 딸리나봅니다.
    그게 아니면 다이하드가 의외로 리얼(?)이고 24가 슈퍼인지도 모르겠군요.
  • 나르사스 2007/07/18 11:48 # 답글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납니다. 다이하드는 낚이는 한이 있어도 한번은 봐줘야...
  • 닥슈나이더 2007/07/18 13:02 # 답글

    최고입니다.... 최고의 명장면은...

    헬기 차로 맞춘다음에......

    we got a lucky shot.... 이라고 말하면서 누워서 웃는 장면이죠... 딱~!! 다이하드 입니다...
    (대사는 틀릴 수도 있습니다...ㅠㅠ;; 저의 막귀로 자막사이에서 들은 대사니까요..)
  • 게렉터 2007/07/21 02:08 # 답글

    SoGuilty/ 24에서 워낙 강렬히 인상을 남기는 "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르사스/ 1,2,3편 모두 멋진 영화였으니 말입니다.

    닥슈나이더/ 그 직전에 욕하면서 차몰고 나갈때도 멋졌습니다.
  • FAZZ 2007/07/21 10:18 # 답글

    그러고 보니 DIEHARD를 원래 붙여 쓰는게 영어 단어에 있다고 어서 들은거 같은데 말입니다.
    영화에서는 DIE HARD라고 일부러 띄어쓴다고 하는거 같더군요
  • 게렉터 2007/07/23 12:02 # 답글

    FAZZ/ 붙여쓴 diehard "완강한 저항자" 특히, 나이 들어서도 끝까지 버티는 늙은 보수주의자를 비아냥 거리는 말인데, 이번 포스터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비디오 커버나 기타 등등에는 "다이하드"로 붙여쓴 것 "다이 하드"로 띄어 쓴 것 혼란스럽게 통용되고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