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을 사랑해요, 앨리스 B. 토클라스 I Love You, Alice B. Toklas 영화

1968년작, "그대를 사랑해요, 앨리스 B. 토클라스 I Love You, Alice B. Toklas"는 당시 유행하던 히피 문화에 대해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전형적인 줄거리로 꾸민 영화입니다. 때문에 내용은, 당시 히피족들이 속세의 부와 속박을 벗어버리고 평화롭게 놀고 먹는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생관과 사회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것입니다. 굉장히 무겁고 심각한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풍자와 농담이 가득한 경박한 코메디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는 대체로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되 약간의 유머와 활달한 분위기를 섞는 정도입니다.


(변호사 피터 셀러즈와 멕시코인 고객들)

이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사람은 핑크 팬더 시리즈로 가장 흥행한 명망 높은 코메디언 피터 셀러즈 입니다. 경력이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무렵에 있던 피터 셀러즈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부유한 변호사 입니다. 착하고 사근사근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의 규범을 잘 따르고 나름대로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별문제 없이 사귀어온 여자 친구도 있고, 부모 형제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데다가, 변호사 사무실도 잘 돌아가고 있어서 누구 못지 않게 사회에 잘 자리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삶이 좀 재미없고 답답한 면도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소한 불만도 있기에 어딘가 약간 투덜대는 듯한 태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피터 셀러즈는 몇몇 재미난 대사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런 사람을 사실적으로 잘 연기합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히피족의 삶을 다루는 방법은, 당연히, 이 사회의 틀대로 잘 살던 사람이 서서히 히피족 문화에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언급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자동차를 타다가)

(이 자동차를 타게 되니)

주인공은 사소한 우연으로 히피 풍으로 요란하게 색칠한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면서 히피 문화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친지의 장례식을 맞이 하여 히피족 생활을 하고 있는 어린 동생을 만나면서 좀더 히피 문화에 근접하게 되고, 거기에 대해 불만도 좀 품게 됩니다. 그러다가, 동생과 같이 지내던 낸시라는 히피족을 알게 되는데, 이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가 가장 아름답던 무렵의 리 테일러-영 이기 때문에 조금씩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낸시가 준 "대마초 브라우니 과자"를 맛보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히피족들에 대해 약간은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서 대마초나 비슷한 약물들이 악마 처럼 묘사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별로 무겁지 않게, 스스럼없이 가벼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약 복용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마약의 정신적인 효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괴한 느낌을 주는 것도 분명해서, 오히려 현실적인 듯한 느낌이 드는 대비효과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별것 아닌 그냥 알약이며 가루 조금이고, 멀쩡한 사람들이 쉽게 접하지만, 막상 그 효과는 해괴하다는 점이 보이므로 대조되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히피족 개개인의 면면 역시, 누가봐도 추악한 거지꼴일 뿐인 폐인은 아무도 안나오지만, 반대로 진정으로 히피 생활을 통해 삶의 번뇌를 초탈하고 진정한 평화를 얻은 사람도 거의 안나오고 있습니다.


(초탈, 자유, 해방)

이 영화는 이렇게 히피족들의 사상이나 문화적인 지향점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내용은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는 현실적인 문제점과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예들은 히피 문화가 유행하던 시절에 번번히 언급되었던 내용이라서 그저 정석대로 입니다. 가장 많이 언급되던 예를 들면, 히피족들이 주장하는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위해서, 필요한 식량과 자원은 히피족들처럼 여유롭게 놀며 살아서는 결코 얻기 어렵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그러다보면 히피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빌어먹는 반거지일 뿐이라거나, 모아 놓은 재물을 그저 깎아 먹기 뿐인 시한부 쾌락생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변호사 주인공을 내세워서 히피 문화와 맞부딪히게 하고있기에, 이런 문제를 노골적인 지적없이도 충분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많이 이야기되던 다른 현실적인 문제들도 여러가지 짚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랑과 평화로만 사는 삶을 위해서, 인간적인 소유욕을 버리고 기초적인 사회성에 대한 집착에서 과연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짚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히피족의 이상을 향해 다가가기에는 단순히 규칙을 거부하고 약물에 젖는 것만으로쉽게 극복되지 않는, 보다 뼛속깊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진정한 자유를 위해 히피 생활을 하는 것이 사실은 그냥 단순한 현실도피에 대는 핑계거나, 말초적인 욕망에 갖다 붙이는 장식일 뿐이라는 관점도 담고 있습니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앨리스 B. 토클라스 요리선생님.)

한편 도인 즉 구루(guru)라 불리우던 사람들의 일면도 언급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혜자 정도의 문장만 멋있어 보이는 이상한 말을 중얼중얼하면서, 도통한 스승인냥 행세하는 한심한 사기꾼 같은 인간들에 대한 묘사도 간접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런 사람을 노골적인 사기꾼으로 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위한 불교 선문답" 정도를 자기만 아는 우주의 진리인냥 떠드는 그 초라한 모습을 그냥 보여주고, 거기에 지나치게 감동해 따라다니는 히피족들을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그 한심함이 드러나고 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명예니 성공이니, 재산이니 투쟁이니 다 접어 버리고, 그냥 자유롭게 놀고 먹고 지내면서 서로 서로 웃는 얼굴로 유유자적 지내면서 사람에게 삶의 안식과 행복감을 주는 약물의 힘도 마음껏 누리자" 정도로 히피 문화를 요약하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라 할만합니다. 이 영화는 끝까지 보면, 지나치게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로서는, 이런 삶에 대한 충동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는 점도 표현하고 있어서 나름대로 히피 문화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히피 리 테일러-영 과 만난 피터 셀러즈)

그런데 그냥 이런 내용을 밋밋하게 담은 영화라면, 너무 모범적인 다큐멘터리나 갑갑한 교육용 공익 영화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 지루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지루함을 막기 위해서인지 상영시간이 92분 정도로 그다지 길지도 않은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우려에 비해서는 월등히 재미있는 편인데, 역시 거기에는 세세한 연출과, 편집이 재밌는 부분이 있다고 할만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의 반전에 가깝게 꾸민 후반부의 절묘한 절정 부분입니다. 약물 복용의 사이키델릭 분위기를 한껏 살려 해괴한 몽환적인 분위기로 갑자기 치닫는데, 그 모습이 일단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현실적인 장면을 기회삼아, 영화 속에 그때까지 등장했던 모든 인상적인 장면들과 복선들이 총출동하면서, 풍성한 화면을 만듭니다. 다채로운 분위기를 구경하고, 영화가 지금껏 묘사한 모든 이야기들을 관객들은 다시 돌이키게 됩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화려하게 빠르게 넘어가는 장면전환을 이용해서, 화려하게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를 왔다갔다해버리는 이상한 방식으로 시간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해서, 히피족처럼 살고 싶은 충동과 히피 문화에 대한 거부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느낌까지 표현해버립니다. 이 부분은 20년 후에 나오는 "예수의 마지막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의 결정적인 장면과 충분히 맞먹을 정도 입니다. 환영속에서 등장인물들끼리 갑자기 역할을 바꾸고, 다른 시간과 공간의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어떻게 보면, "알고보니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라는 신라시대 조신의 꿈에서부터 내려오는 상투적인 수법의 변용 정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매체의 편집, 몽환적인 효과를 버무려서 시간 진행을 오묘하게 꾸며 놓은 이 부분은, 분명히 심심해 보일 영화에 강세를 주고, 전환을 줍니다.


(히피 피터 셀러즈)

화면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을 부분 부분 표현한 재주가 좋은 부분도 많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길을 잃고 한참동안 헤메고 있다" 라는 것을 대사나 설명 없이 시각적인 화면만으로 표현하는 박자감각이 넘치는 배치는 대표적입니다. 중간에 가볍게 넘어가는 막간 장면 정도이지만, 길가를 지나가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침흘리며 바라보는 주인공의 친구를 묘사하는 부분도 효과가 좋습니다. 사람의 시선을 부드럽게 따라가는 듯한 화면 이동에, 잘 섞여 드는 혼잣말 대사, 그리고 그 연기도 출중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약을 먹으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느낌"을 표현한 부분도 기술이 뛰어납니다. 보통 이런 부분은 기껏해야 특수효과 장비로 화면이 흐물거리게 하는 느낌을 주고, 주변 사람들의 대사 녹음에 메아리 효과를 추가하는 정도로 때우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점점 빨라지는 박진감 생기는 화면전환에다가, 커졌다가 작아지는 이상한 소리, 남녀노소 바꿔가며 바뀌는 사람들의 비교대조되는 표정을 이용해서 훨씬 현실적인 관찰이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부정적인 느낌은 더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임드 딘과도 연기해 보고, 커크 더글라스와도 연기해 보고, 피터 셀러즈와도 연기해 보고, 아카데미상도 타고 그래도 이게 제일 맛있구나.)

음악도 좋습니다. 사실 오랫만에 이 영화를 돌아본다면, 음악이야 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그럴싸한 대목입니다. 60년대에 한참 유행하던 싸이키델릭한 인도풍의 곡조가 평범한 다른 배경음악들과 구석구석 아주 잘 엮여 있습니다. 거기에, 당시 포크 풍이 섞여든 보다 평범한 영화 배경 음악들 중에도 간간히 재미난 들을 거리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밝은 음악속에서 상황이 엮여드는 모양이 장단이 신나기도 하고, 모든 진지한 내용들을 일단 조금은 편안하게 지켜볼 수있게 하는 면도 있어서 효과가 꽤 그럴싸합니다.

평범한 시각이지만 문화적인 내용을 정면으로 다루는 내용에, 부분부분 재미난 연출이 과할 것 없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 속에 알차게 담겨 있다고 요약할만합니다.


그 밖에...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로 조 반 플릿이 나옵니다. 조 반 플릿은 고전시대부터 오래동안 활약해온 명배우입니다만, "O.K. 목장의 결투"와 "에덴의 동쪽"에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가장 쉽다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에서 모두 케이트 라는 사람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왕년의 인기배우 리 테일러-영의 사실상의 데뷔작인데, 데뷔부터 여주인공 역할입니다.

"Alice B. Toklas"는 요리책 저자인데, 이 영화에서는 대마초 브라우니 과자를 요리하는 일과 관련지어 언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중 한 명이 폴 마주르스키 인데, 예전부터 배우, 감독, 각존 여러 작업을 많이 해오고 있고, 지금도 활동중인 사람입니다. 근작중에 한국에서 흥행한 예를 들자면, 1994년판 "러브 어페어"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 히피 정신과 비슷한 문화현상을 들자면, 도교나 불교 계열 신흥종교가 제일 먼저 떠오를만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서 히피 문화 만큼 문화 저변에 파급효과가 컸던 현상을 꼽아보라면, 저는 70년대말의 민족주의 유행이 생각납니다. 히피 문화와는 전혀 다르지만, "동아리" "모꼬지" "새터" 같은 말을 만들어서 대학가에 사용하고, 탈춤과 사물놀이를 배우며 자랑스러워하던 그 시기의 흐름은 순기능이며, 역기능이며, 이상이며, 한계며, 비슷하게 주목할만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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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김 정민 2007/08/07 11:45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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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 2007/08/10 17:09 # 답글

    스팸필터 파괴용? 시험용?
  • 손보아 2008/01/10 17:27 # 삭제 답글

    외계 또는 검은 정장의 집단 보낸 메세지일수도 있지요
    미래를 내다본 무당(또는 허경영)이 정신이 덜 돌아온 채로 휘갈겨 쓴 메모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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