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리처드 도킨스의 신작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은 종교에서 신이 존재한다며 내세우는 증거들이 모두 엉터리라는 주장을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말미쯤에 이르면, 거기서 나아가 종교와 신을 믿는 것 자체가 사회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악한 일이니 점차 없애나가야한다는 이야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 쉽게 구할 수 있는 책들 중에는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이후로 간만에 리처드 도킨스가 정성을 기울여 장황하게 쓴 책입니다.



후반부까지의 내용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할 기독교를 중심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에 대해 부정하는 것입니다. 책의 앞부분에, "세상에는 과학, 기술, 정책, 경제체제, 정치인, 연예인, 정당, 나라에 대한 온갖 비판과 비난은 자유롭게 되는 반면에 종교라는 분야는 이상스럽게도 매우 신성시여기며 비판과 비난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나서, 이 책에서는 그런 예의범절은 무시하고 종교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마치 영화감독이나 정부부처장관을 비난하듯이 똑같은 태도로 비난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책은 작정하고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며 지금까지 사회 관습에 비하면 약간은 반항적인 어투로 신과 종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책은 "구약성경를 읽어보면 야훼 라는 존재가 얼마나 사악하고 제멋대로이며 치사한지 알 수 있다"라는 정도의 어조를 중심으로해서 가끔 조금씩 더 과격한 이야기를 짚는 수준입니다.

다루는 내용을 한정하고, 비판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서, 이 책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신을 주로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사람의 말을 듣고 있고, 죽고나면 사람에게 천국과 지옥으로 가라고 명령하며, 사람을 지켜보고 대화한다는 류의 생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범신론이나 자연신론이 있고, 그것은 이 책이 이야기하려는 범주가 아니라고 하여 분명히 분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곁들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론자들과의 다툼에서 이런 범신론 류의 "신"을 들먹인 것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선전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선전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아내와 애 둘 낳은 뒤에, 갑자기 바람나서 새살림차린 두번째 아내와 함께)

본론으로 넘어가면, 책 내용은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자신이 들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바위를 만들 수 있는가?" 류의 철학적인 수준에서 신이 있다는 주장이 틀렸다고 하고, 또 스콜라 철학류의 신학에서 말하는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반박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기적을 본 사람들이 있고, 또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있으니 신이 존재한다는 류의 이야기도 회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존재를 상상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그런 선함의 어떤 극치점을 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라는 주장은, 그런 선한 존재가 설령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사람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 보내는 일을 한다거나 인간이 성호를 그으면 기뻐하는 그런 종교인들이 믿는 것과 같은 존재라는 데는 아무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러 사람들이 하늘에서 나타난 신비로운 형상을 보았다거나, 갑자기 병이 나았다는 근거에 대해서는, 이런 일은 환각이나 착각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고 있습니다. 설령 환각일 확률이 낮은 사건이라고 해도, 설마, 하늘을 날아다니고 여우로 둔갑할 수도 있으면서 수십만 천사,악마들을 조종하고 비를 내리는 힘이나 지구와 같은 행성을 만들어 내는 어마어마한 초능력자 같은 것이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 특이한 쇼를 보여주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환각이라는 이야기가 더 가능성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삼신할미신 에게 지리산 정기을 받아 초능력을 갖게 된 천년묵은 여우입니까? 아니면, 눈속임 마술을 익힌 서울시민 입니까?)

이상과 같이 이 책의 내용은 누천년 동안 계속되어온, 소위 "무신론"과 "회의론"의 재미있는 일화, 재담 등을 모아 놓은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스피노자가 언급한 범신론 정도만해도 이미 본격적인 기독교에 대한 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역사상 흥미로운 예화들과 "신을 믿는 것"이라는 행동에 대한 예리한 지적은 꽤 많았습니다. 이 책은 이런 것들을 읽기 좋게, 논리 순서대로 차근차근 모아서 정리해서 부드러운 읽을 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보면, 외려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도, 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볼 문제제기를 차근차근해 준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읽을 거리가 될 수 있을 법 합니다.

서점에는 "우리 종교 4급 교주님은 왼손으로는 장풍을 쏠 수 있고, 오른손으로는 불장풍을 쏠 수 있다" 라든가 "꿈에 남북통일이 된 뒤에 곽씨 성을 가진 도령이 아시아의 황제가 되는 예언을 보았다" 라는 책은 구석에 처박혀 썩고 있어도, 의외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려서 다양한 신학이론들에 대해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책들은 부족합니다. 이 책은 비록 그런 신학의 여러 측면들의 부실한 부분을 비판하기 위해 나온 책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신학의 여러 분야에 대해 다채로운 문제제기를 하고 다양한 소재를 보여주는 역할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자신의 종교에 대한 성찰을 가다듬기 위해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뻔히 나오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욥기"의 역설적인 일화조차도, 별다른 설명이나 고민이 의외로 그다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의 이런 가치는 충분합니다.


(종교를 소중히 여길수록, 한번쯤은 생각하며 스스로 종교 안에서 답을 구해봐야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흥미로운 옛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것이니만큼, 반대로 이 책에는 참신하고 개성적인 주장은 부족하기도 합니다. 만약, "회의주의자들의 사전" http://user.chollian.net/~jeank/skeptic/contents.html 같은 웹사이트에서 "신"이나 "노아의 방주" 같은 항목들을 주욱 모아서 정리해 놓는 다면, 이 책의 내용을 대체로 때울만 할 정도 입니다. 버트란트 러셀이나 버나드 쇼 같은 사람들이 남긴 재치있는 말과 흥미로운 지적들을 이것저것 소개하는 것에 매우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습니다. 그나마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이야기가 착실하게 연결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이 역시 다른 진화론 책에서 많이 언급된 내용 그대로일 뿐입니다.

이 책을 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보고, 그에 대한 많은 논란과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이 본다면 했던 소리 또 듣는 느낌이 좀 많이 날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기원전부터 "괴력난신"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설을 정설로 여기며, 신에 대한 숭배나 사후세계에 대해서 유치하게 여겨온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입장에서 본다면 이 책의 앞부분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간단하고 단순한 내용을 여러 각도의 다양한 풍자와 일화로 보여준다는 정도로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아예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으로 범위를 좁힌다고 해도, 이미 조선후기의 안정복 같은 사람이 쓴 "천학문답" 등의 글에서, 이 책과 유사한 방법으로 기독교의 창조론, 삼위일체론 등등의 의심스러운 점이 논박되어 있습니다.

다만, 비교적 최근에 수행된 "여러 사람이 간절히 기도 해주면 정말로 병이 낫는데 효과가 있나?" 같은 실험의 결과를 실은 것이나 그와 비슷한 신문, 잡지, 인터넷등에 가끔 떠도는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요소요소에 몇 가지 집어 넣은 것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이사이에 잘 들어가 있어서 항상 재미를 불러 옵니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에 대해 격하게 비아냥 거리는 태도로 나가고 있는데, 이것은 예절이나 호오의 문제를 젖혀두면, 자극적이라서 독자가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계속 유지하고 있기는 합니다.



점차 후반부로 갈 수록, 이 책은 신이 있고 없고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종교 자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신이 있건 없건 간에, 그래도 종교는 인간의 삶의 평화를 주는 가치가 있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이 책은 성경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모순된 부분과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잔인한 일화들, 성경에 나오는 현대인의 상식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나옵니다. 예를 들자면, 전쟁에서 이긴 뒤에 신의 뜻을 내세우며 상대방 주민들을 모두 학살한다든가, 여자의 인권은 무시하고 물건처럼 여기며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내용을 지적합니다.

그 다음으로 이 책은 "종교가 도덕에 도움이 되는가?" 라는 물음으로 출발하여, 도덕과 종교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은 신이 존재하지도 않고, 종교란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러고나면, 그런데 도대체 세상에 왜 종교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인데, 여기에 대해서, 이 책은 인간의 습성과 진화론적인 관점의 추정으로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불나방"과 종교인을 비슷한 것으로 비유합니다. 나방이 달빛을 따라가는 습성은 나방이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부작용으로 멀쩡한 불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일까지 생겨버렸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종교를 믿는 것도, 사람이 사회와 문화를 만들고 살아가는 습성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라는 식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앞 부분의 신과 종교에 대한 비판과 어울리면서 넘어오면, 이 부분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부분이라 할만합니다. 종교와 진화론을 연결 지어 설명해 버리는 대목에 이야기가 이르니, 진화론의 영향과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펼쳐진 책 앞부분과 연결되면서, 어떤 극적인 느낌마저 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책 말미의 이야기를 위해서, 이 부분을 마치 "종교란 그냥 불나방이 자살하는 습성만큼 하잘것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처럼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꼭 "진화론과 과학이 드디어 상대도 안되는 점수차이로 종교를 이겨서 저 멀리 사라지게 해 버리고 말았다"는 대결관점으로 강하게 밀어 붙이는 듯한 느낌을 풍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신은 없고, 종교의 이득도 없다는 점을 이야기한 뒤에, 이 책은 나머지 부분에서 종교는 이득이 없을 뿐 아니라, 해악이 많고, 심지어 세상의 많은 악에 대해 대부분 원인이라는 주장을 하며 끝이나고 있습니다. 책은 안락사, 낙태와 같은 논란의 여지와 윤리적 고민이 많을 수 있는 정치적인 쟁점을 소재로 하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논박하기도 하고, 최근의 "테러와의 전쟁"과 신자유주의, 네오콘 등의 정치문화사조 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끌어와서 문제를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앞부분에 비해서, 이런 뒷부분의 이야기는 좀 시사적인데가 있어서 성격이 다르기도 합니다. 그렇기도 합니다만, 이 부분에는 대체로 두 가지 정도로, 좀 눈에 띄는 헛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종교계로부터 부당하게 비난을 많이 받은데 대한 반감이 불거져 나온 것 때문에 그렇게 몰아간 것 같아 보인다는 생각도 잠깐 듭니다. 또 최근의 몇몇 시사적인 문제의 원인을 그저 종교 문제로 단순화해서 생각하는 식으로 어떤 사상적인 주장이 너무 커졌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조금은 생깁니다.



첫번째 헛점은, 스스로 언급한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인 이유를 슬쩍 무시한 것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삶에서 권위자가 전해주는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우선 빨리 믿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습성에 따라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종교를 믿어서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퍼졌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종교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이러한 종교와 인간과의 관계는 슬쩍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 발전, 도덕등 모든 좋아 보이는 덕목과 종교와의 관계는 은근히 가리고 있습니다.

살인이나 비슷한 흉악한 죄를 저지른 죄인을 눈 앞에서 붙잡았는데, 이 죄인을 왜 묵비권을 행사하게 하고 변호사를 임용하게 해서 무죄추정원칙 아래 세 번이나 재판을 받게 해주어야 하는지 감정적으로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당장에 처죽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 살인마를 왜 인간적으로 대해줄 필요가 있는지 상상하는데는 깊은 생각과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비슷하게, 자기보다 멍청하고, 자기보다 힘없고, 우리나라 사람보다 못생겼고, 우리나라 사람보다 못살고, 우리민족보다 더럽고, 우리민족보다 사악한 어떤 인간에 대해서 왜 평등하고 동등하게 생각해야하는지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럴때, 개인적인 입장을 벗어난 존재를 떠올려 본다든가, 세상의 선과 정의를 상징하는 어떤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생각해 보는 것은 선악 판단에 도움이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이야기나, 알라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경전의 글귀는 보다 직접적인 충고가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종교인이라는 나비들이 그저 불을 향해 달려드는 자살한다고만 생각했지, 별빛을 보고 방향을 가늠하는 항법을 갖고 있기도 하다는 점을 은근슬쩍 숨긴 것입니다. 인간의 특징 때문에 종교를 믿기 쉽게 되었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인간이 종교를 믿는다는 성향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덕목들이 바로 종교를 통해 연결되고 있기도 하다는 점은 그냥 넘어간 것입니다.



아주 원초적인 예로, 수없이 많은 각양각색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자기가 처벌 받을 위험이 전혀 없어도 범죄를 저지르면 안된다"라는 덕목을 퍼뜨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이나, 악한 성격의 흉폭한 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따르게 하기란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에 "언젠가는 신이 거기에 대한 응분의 벌을 내릴 것이다"라는 것은 꽤 써먹을만한 주장입니다. 삼국의 정치문화 발전과 불교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역사적으로 종교는 인간 사회에 효율적인 도구가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긴 하지만, 잠시 반대편으로 시각을 돌려보면, 이런 생각은 즉시 다음 처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종교에 그런 이점이 있다고 하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터무니 없는 규정을 강요하고, 왕이나 귀족에게 무조건 충성하라고 하는가 하면, 전쟁과 학살, 고문과 저주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을 살펴보면 종교가 끼친 해악이 훨씬 크므로, 종교는 역시 무가치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두번째 헛점이자, 가장 큰 비약인 듯 느껴지는 부분이 드러납니다. 이 책은 말미에서 갑자기 종교의 해악을 강조하기 위해 종교의 가장 나쁜 부분만 뽑아내어 그것을 종교의 전부인냥 가정하여 종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시화호 바닥에 가라앉은 폐수 한 숟가락을 떠서 보여주면서, 한반도에 있는 모든 물은 절대 마셔서는 안된다고 하는 형국이라 할만합니다. 이 책 스스로 그런 비판을 자기도 알고 있고, 그래서 최대한 정상적인 종교인들을 소재로 했다고 언급은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반대편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일단 이 책에서는 스스로도 언급한 도덕관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종교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학살이 저질러진적도 있고, 종교가 이상한 도덕관을 전파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류의 다른 분야처럼, 그런 부분은 개선되고 있고, 그런 문제는 점차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고 어울리는 방향을 향해 개량되고 있습니다. 종교도 변하고 있습니다. 터키나 이라크 국민 대다수는 이슬람 신자지만 이 나라들은 더이상 칼리프가 다스리지 않습니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카톨릭 교도가 많지만 이 사람들이 종교재판을 걸어 사람을 고문하지는 않습니다. 교황령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규모 입니다. 독일인 중에 각종 기독교도의 비중은 꽤나 높습니다만, 지금 마녀사냥을 벌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문학과 미술이 발전하는 것처럼 종교도 발전하는 것입니다.

옛날 의사들은 병을 치료한답시고 사람 피를 뽑고 고압전류를 마구 흘려대다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거대한 비행선은 안락하게 사람들을 날게 해 준다고 해놓고 공중폭파되어 수백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의학이 사기이고, 과학은 사람에게 해악만 끼치는 존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쓰나미는 불교도와 이슬람교도에게 내린 신의 저주라는 주장을 펼치는 종교인"이나, "성추행을 하면서 엄청나게 무서운 지옥에 대한 기억을 주입하는 신부"만을 주요한 예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잔혹한 지옥묘사라든가, 자연재해에 당한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은 현대 종교에서 상당 부분 부정되거나 개선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책에는 저자에게 추레한 편지를 보낸 한심한 종교인들의 글을 소개하면서 이들을 비아냥 거리기도 했는데, 이 역시 재미난 비아냥거리는 되지만 역시 근거가 되기에는 약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교회의 권위나 독실한 신자를 욕하는 양아치들을 찾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류의 인간들이 바로 무신론자라고 몰아 붙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로마 교황청의 말을 목숨걸고 따르고, 이스라엘을 미워하며, 예배 보러 가서는 라틴어로 말합니다)

이 책에서는 약물이나 사형제도에 관해서 종교의 완고함을 문제시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이 책이 지적하는 기독교 종파와 사회 문제에 대해 견해가 다른 종교도 얼마든지 있고, 심지어 기독교 종파 내부적으로도 사회와 상황에 변화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발전해나가고 변화해나갈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몇몇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의 책임을 일부러 종교에 떠넘기는 과장을 하는 부분도 꽤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책에서는 "무신론이 학살이나 전쟁의 원인이 된 경우는 없다. 하지만 종교가 학살이나 전쟁의 원인이 된 경우는 무수히 많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후기에 무신론에 근거했던 유학자들과 조선 정부가 그 무신론과 유신론이 양립할 수 없음을 이유로 내세워서, 카톨릭 교인들을 사형에 처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카톨릭 교도 처형은 무신론에 꼭 관계되어 있다기보다는 종교 교인들에 대한 정치적인 세력 다툼의 이유가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안정복의 "천학문답"에도 종교는 핑계일 뿐, 그것을 내세워 원초적인 세력 싸움을 하게 된다는 관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종교의 해악에 해당하는 반대 부분에 옮겨 둘 수도 있습니다. 즉, 종교의 책임으로 보이는 사건이 사실은 전적으로 종교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테러나, 십자군 전쟁의 엄청난 잔혹극이 모두 종교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동 문제는 민족주의나 아랍권 내의 정치적인 주도권 다툼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많습니다. 특히, 무종교적이고 무신론적인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중동문제를 종교 교리와 믿음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주의나 석유를 둘러싼 각국의 정세 싸움으로 보는 관점이 더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십자군 원정도 동서교역로의 확보라든가 아랍제국의 성장과 분열에 관한 정치적인 원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탈레반을 종교로만 이해한다면 왜 인질극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고, 거기에 대응도 할 수 없습니다. 공산당과의 싸움과 주변국 정세, 긴 내전 http://gerecter.egloos.com/3298435 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종교 보다 얼마나 크게 볼지 작게 볼지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 말미에서는 이런 다른 요소들을 덮어둔채, 그저 종교가 인류의 수많은 악의 근원인것처럼 몰아 붙인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안정복이 기독교에 대한 연구를 담아 놓은 "천학고")

이렇게 흘러가는 가운데,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은, 이 책에 슬며시 나오는 "종교가 해악이 별로 없어 보이는 상태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악이 별로 없는 상태에 머문 종교인이라도 할지라도 이는 곧 극단적이고 전투적인 종교로 가는 관문이 되므로 싸잡아 뿌리뽑아 같이 나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당장 말 자체의 구조부터, "산불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인간은 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라든가, "사람이 감전 되어 죽을 수 있으므로 지상의 모든 발전소는 전력생산을 중단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과 별 다를바 없게 느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변화하며 발전하는 다양한 종교와 종교인에 대해 맹목적인 혐오감을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동성애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데, 왜 욕을 먹거나 증오를 받아야 되느냐면서, 동성애자를 저주하는 종교인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왜 혼자 소나무에 서낭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인 할머니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여야 합니까. 서낭신을 믿다가 결국에는 서낭신에 반항하는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서낭 사상의 전파를 위한 종교 전쟁을 일으킬 것이 틀림 없다는 이유로 이 사람을 욕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은 우울증과 마약을 퍼뜨리고, 에이즈를 몰고다니게 된다며 비난하는 것과 다를바 없지 않습니까. 서낭신을 믿는게 권장할만한 일이라기보다는, "해악이 없는 종교인도, 해악이 있는 종교인이 있기 때문에 일단 나쁘다"라는 주장이 그만큼 위험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책에 잠깐 언급되는 "동물을 사랑하자" 같은 내용을 읊조리고 있으면, 독자로서는 상당히 납득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맺힌게 많았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 비하면, 굳건하게 밀어붙이는 생각의 탄탄한 체계와 양적인 풍성함이 부족한 편이고, 극적 구성에서도 조금 덜합니다. "눈먼 시계공"의 바이오모프 에 관한 이야기 때 처럼 과학적인 관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터져나오는 꿈과 모험을 보여주던 감개무량한 맛도 이 책에는 없습니다. 지금껏 좀 장황하게 언급한듯 합니다만, 말미에는 약간 어정쩡한 분노와 저주만이 서려 있어서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 전체적으로 자극적인 단어와 문장을 쓰는데 오락가락한 나머지, 신약성경의 교리에 대한 비판이 의외로 너무 싱겁다든가, 무척 재미있는 내용이었던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을 그저 종교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느낌으로 활용하는데 그칠뿐, 좀 더 다양하게 선기능과 역기능을 설명하는데 활용해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았다는 부분도 아쉽습니다.

그러나, 역시, 제목에서 말하는 "만들어진 신"에 대해 언급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꽤 빼어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해하기 쉬운 전개 순서와 과감한 표현들은 충분히 흡인력이 있어서 즐겁게 책을 읽게 합니다. "종교를 배척하자"라는 주장을 내세우려는 도덕적인 주장이나 의도를 조금 더 줄이고, 좀 더 관찰하고 분석하는 태도로 이야기를 해나갔다거나, 참신한 소재와 자료를 좀 더 많이 소개해 주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겠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를 들면, 중간에 언급되는 "카고 컬트 http://gerecter.egloos.com/2943977 " 이야기 같은 것은 좀 더 깊게 다루면서, 진화론, 동물행동학, 여러 사회학적인 관점을 버무려 구체적인 설명하는 이야기가 풍부해졌다면 싶습니다. 그랬다면, 아무런 종교적 기반 없이도 깊게 한국에 뿌리내린 "혈액형별 성격" 같은 이야기까지 함께 곁들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냥 "기독교나 카고 컬트다 똑같이 열등하다"는 감정을 불러오는 분위기 환기 정도에 그치는 듯할 뿐이라서, 약간 아깝습니다.


그 밖에...

인도 출신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몇년 전 부터 든 생각입니다만, 저는 우리 문화에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이 좀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불교, 유교 문화의 무신론적인 전통이 너무 강해서인지, 세상에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도움도 안되는 일을, 너무나 숭고하고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잘 조절해나가는데 익숙치 않은 듯 합니다.

최근 아시아권 인구의 유입이 폭증하고 있는데, 방글라데시의 이슬람교도들이나,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대거 유입될 때, 과연 우리 문화권이 이 사람들의 종교를 이해하고, 그런 종교에서 나오는 부작용을 잘 조절해서 사회와 종교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슬람교도 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한 것은 신라 무렵 부터이고, 고려, 조선 중기 무렵까지 평화롭게 생활하다가 조선 중기 이후에 이슬람 문화가 사실상 흡수소멸하게 됩니다. 미래에도 그때 만큼만 부드럽게 적응하고, 적응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싶습니다. 그나마 한국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커나간 한국 개신교가 어떤식으로 앞으로 변화하고, 또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은 한 시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우리가, 개신교 문화와 무신론 문화를 잘 융합해서 무리 없이 유지해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종교적인 뿌리가 부족한 일본, 중국, 베트남 보다, 지금 사람들 중에는 뭔가 멋진 것을 믿고 그에 대한 경이를 느끼는 것을 소중히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서, 이슬람권과 힌두권을 더 잘 받아 들일 수 있지도 않겠나 상상해 봅니다.

블루문 특급 http://gerecter.egloos.com/2809462 에서, 시빌 셰퍼드가 브루스 윌리스와 말다툼을 하는 장면 중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양쪽으로 따져볼 수 있는 풍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종교가 대체 인류에게 좋은 것을 준 게 뭐가 있는지 한 가지만 말해봐요."
"한 가지?"
"그래요. 한 가지만."
"... 크리스마스는 어때요?"
by 게렉터 | 2007/07/31 01:04 | 기타 | 트랙백(1)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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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존다리안의 지하세계. at 2007/08/03 22:37

제목 : 드디어 질렀습니다.
강남 교보문고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 반복하는 게 꼴뵈기 싫어서 결국 직접 사서 보기로 했습니다. 이 외에도 어벤저나 유령왕도 살까 했는데 이거라도 다 읽고 나서 사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사지 않았습니다. 어벤저도 분량만은 만만치 않더군요. 그래도 재미는 있어 보입니다.문제는 이 책인데 이건 순전히 내 주관으로 느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대로라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체의 픽션은 해악하므로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옵......more

Commented by 이녁 at 2007/07/31 02:52
야! 진짜 게렉터님입니다. 이 책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정말 간단명료하게 잘 정리해 주셨군요. 여기저기서 언급하는 걸 보니 확실히 화제의 책은 책인가 봅니다. 한번 읽어보렵니다.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07/31 09:50
이녁/ 화제의 책... 이라고 하기에는 내용 자체가 아주 굉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들이 잘 담겨 있고, 리처드 도킨스가 간만에 낸 야심작이라는 면에서 좀 더 주목을 받지 싶습니다.
Commented by 독자 at 2007/07/31 12:20
아주 사소한 오타: 붉어져 -> 불거져 (이 리플은 그냥 지우세요 ^^)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07/31 22:22
독자/ 감사합니다. 수정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07/07/31 23:42
저도 잠깐 읽었지만 오랫동안의 기다림과는 달리 뭔가 끌리는 구석은 없더군요.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08/01 18:43
존다리안/ 외려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분이실 수록 그냥 자극적으로 보일 뿐 약간 식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07/08/03 22:37
트랙백 신고하겠습니다. 이 책을 드디어 구입해 읽었습니다.
게렉터님 설명이 딱 들어 맞네요.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08/04 17:18
존다리안/ 어찌보면, 하나 사두고, 가끔 정신 환기 차원에서 들춰 볼만은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한 번 보면 두 번 보기 싫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Commented by mahlerian at 2007/08/06 11:11
게렉터/
게렉터님. 제가 오늘 전후로 제 사이트에 게럭터님의 <만들어진 신> 비판에 대해서 반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이 다소 신랄하더라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평, 특히 <만들어진 신>과 같은 류의 책에 대한 서평은 영화평과는 달리 감성이 아니라 논리로 해야 되는 법인데, 게렉터님의 글은 유감이지만 그렇지 못하군요.

"해악이 없는 종교인도, 해악이 있는 종교인이 있기 때문에 일단 나쁘다"

사실 리차드 도킨스의 이 말은 정확하게 게렉터님같은 분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아니, 저는 게렉터님같은 분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신실한 종교인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비판보다 더 나쁠 가능성마저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다음에 다른 글로서 뵙지요.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08/06 12:18
mahlerian/ 트랙백 걸어 주시면, 기꺼이 읽어 보겠습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mahlerian at 2007/08/07 01:14
게렉터/
반론 저희 사이트에 올려놨습니다. 트랙백 기능이 없어서...

사실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90% 정도 썼습니다. 그러나 추가로 쓸 내용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지금 제가 쓴 글만으로도 혹시 더 반론을 쓰시거나 할 것 준비하셔도 됩니다.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mahlerian at 2007/08/07 02:58
게렉터/
글 제목은 "종교없는 사회와 그 적들"입니다.
Commented by ㅇㅇ at 2007/08/26 14:27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08/26 21:30
mahlerian, ㅇㅇ/ 소개해주신 글 읽어 보았습니다. 뒤따르는 글들에서 어느 정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언급되지 싶습니다만, 시간이 생긴다면 올린 글에 대한 답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세렌디피티 at 2007/10/13 18:34
안녕하세요. (__)
범신론에 대한 깊은 글을 찾아다니다가 어찌하다보니 우연히 찾아들게 됐습니다.

종교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악일 수도 있고, 유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종교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겠지요.
세상 모든 것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보이는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파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세상이 전부 파랗게 보이고,
빨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세상이 전부 빨갛게 보이고...
그런 걸 겁니다.

종교의 문제점도 정답은 없다고 봐야겠죠.
한 쪽에선 종교의 문제점이 많다고 하지만,
만약 종교가 없었다면... 이라고 가정하면, 세상이 지금과 갖지는 않겠지요.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저의 생각도 어떤 관점에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것입니다.
형이상학적인 모든 문제는 해석의 문제일 뿐입니다.
한쪽으로 편중된 생각을 갖고 살면 가치관이 명확해서 좋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우려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종교의 유익한 면도 많다는 게 보이지 싶습니다.
이건 스스로 체험을 해야할 부분이지, 이런 면이 좋다고 꼭집어서 얘기해줘봐야 공연불일 뿐이더군요.

파란 안경 쓰실래요?
빨간 안경 쓰실래요?

글을 맛깔나게 잘 쓰시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 종종 들리겠습니다. (__)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10/16 00:48
세렌디피티/ 자주 들러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무신론 at 2007/11/21 19:59
한국무신론자협회가 탄생했습니다

국내 무신론정보
해외 무신론정보
종교특혜반대
유일신종교반대
칼럼 등 다양한 정보를 갖추고 있으며

국제무신론자연맹(AAI)와도 연대중이며
세계 무신론 석학들이 모여
세미나, 토론회를 국내에서 가질 예정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많은 참여 바랍니다.

한국무신론자협회
http://www.atheism.or.kr
Commented by 심리 at 2007/11/22 20:19
<만들어진 신>은 지금까지 나온 무신론 주장을 총집합한 책이라고 보면 적절할 듯 싶은데요? 그런 기본적인 이야기들도 모르는 분들은 모르거든요. 이번 기회에 널리 알려지면 좋은 거겠지요. 저도 읽어봤는데 정리 꽤 잘 되어있던데요. 도킨스 님의 명성답다고나 할까요.

논리의 비약은 종교인들도 하시더군요.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논리에 그런 게 있어요. 비탈길 논리라고 하던가요.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게 되면 점점 인간성을 침해하는 쪽으로 연구가 확장될 거라는 주장이지요. 그래서 줄기세포 연구는 아예 허용하면 안된다더군요. 종교 자체를 아예 허용하면 안된다는 주장이나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 피장파장. ~_~

근래에 생겨나는 신흥종교나, 그 신흥종교 믿는 분들을 보면, 결국 종교란 인간의 여러 불안, 공포, 욕망,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공유된다는 걸 알 수 있더군요. 기성종교도 나이만 먹었다 뿐 별 다를 건 없고요. 즐기고 싶으면 즐기고, 거부감 느껴지고 불쾌하면 안 즐기면 되고요. 서로 강요해봤자 불쾌할 뿐이지요. 각자 자기가 타고난 기질, 취향에 따라 살다가 죽는 거지요. 인생 별 거 있겠어요. 자꾸 자기 취향을 남들에게 강요하니까 비극이 전개되는 거지요.

그리고 종교가 개량된 이유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계속 저항해왔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종교인들 내부에서도 비판과 투쟁이 심했다는 건 역사에 다 나오는 거고요. 너무 넓은 범위의 문제에 대해 한 마디로 딱 잘라서 단정 지으려고 하면 무리가 따르기 쉬운 것 같네요.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알아서 믿으라고 하지요 뭐. ^_^ 무작정 믿으라고 겁 주고 강요만 하는 것보다는 의심하고 확인해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긴 하겠군요.

저는 종교 안 믿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그 협박만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교리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요. 교리야 맘대로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종교 교리 때문에 동성애자들 차별하려는 종교인들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11/23 11:49
심리/ "지금까지 나온 무신론 주장을 총집합한 책" 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내용이 너무 가벼운데다가, 후반부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소개하고, 가르쳐준다는 "총집합" 느낌보다는 단순히 공격만하는 주장으로 불타올라서 좀 부족한 듯 싶었습니다. 본문에도 소개했다시피, 대부분의 내용들이 외려 한국에도 널리 소개된 웹사이트 같은 곳에서 더 흥미롭게 이야기되는 것이 많은 듯 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전작들 때문인지 좀 더 독특하고 재미난 내용을 기대했기 때문에 약간은 실망감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 한 물 가버렸지만, 사실 이정도 종교 비판 이야기들은 옛날에 공산주의/사회주의 이야기 유행하던 때 나오던 책에도 꽤 많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setarcos at 2008/05/07 13:06
게렉터님의 블로그를 알게된지 얼마 안되는 사람입니다. 많은 분야에 다양한 관심과 지식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이 책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 가 더 탁월한 것 같습니다.만들어진 신과 한번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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