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가리 (Reptilian 판) 영화

헐리우드판 "고질라"가 개봉된 바로 다음해에 나온 1999년작 "용가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대한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데, 우주에서 온 침입자의 농간으로 그 화석이 살아 움직이는 괴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괴물이 도시를 부수며 휘젓고 다니고, 군대와 싸우며 난동을 부리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미국에서 "Reptilian" 이라는 이름으로 비디오와 DVD로 유통된 판본을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용가리다! 도망쳐-)

먼저 "용가리"에 등장한 배우들의 연기와 배경음악 에 대해 다른 것보다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둘 중에 더 치명적인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력 쪽입니다. 이 영화에는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인 "용가리"가 영화의 절반이 진행되도록 조금도 등장을 하지 않는다는 과감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장면의 과반수 이상을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그 연기를 통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단역과 엑스트라들의 연기들이 매우 조악하며, 그에 더하여 악역의 연기가 무척 나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류의 도시가 부서지고 큰 사고가 터지는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놀라자빠지고, 깔려 쓰러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도망치고 겁먹고 소리지르고 나뒹구는 장면들은 영화가 전달해주는 감정을 전달하는데 핵심이 된다할 것입니다.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제작비의 한계상 꼭 필요한 장면에서도 충분한 숫자의 엑스트라들을 동원하지 못한 부분이 수치상으로도 문제가 될만합니다.


(엑스트라 수치가 너무 낮아요.)

한편, 정말로 도시의 시민 숫자만큼 엑스트라를 동원하는 것이 아닐바에야, 아무리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했다 한들 엑스트라들의 숫자를 최대한 많아 보이게 하고, 제한된 엑스트라 숫자로 치명적인 상황을 표현하려는 재주를 부려야 하는데 그런 노력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겨우 모아놓은 일당 덜드는 엑스트라들마저도, 오히려 그 초라한 숫자가 더 눈에 뜨이고 그만큼 더 가짜 같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클레오파트라"나 "메트로폴리스 http://gerecter.egloos.com/2872205 "를 만들때처럼, 외려 진짜보다 더 많은 숫자의 엑스트라 배우들을 동원해버리는 황당한 모험을 한다면야 모를까, 그렇지 않은다음에야 이런 장면들을 최대한 진짜처럼 보이게 꾸며낼 수 있는 궁리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사실, 그런 궁리는 꽤 어려운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공룡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장면"을 찍는다고 해도, 사실 정말로 사람들이 공룡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상상을 용돈 벌러 온 엑스트라들에게 연기하게 하고, 그것을 어색하지 않도록 화면에 담아내기란 더 어렵습니다. 하물며, "괴물때문에 건물이 무너지는데 가까스로 도망쳐 살아 나오는 사람들" 같은 것을 설득력있게 연기하게 하기란 매우 어려운 도전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도전에 대부분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단역들이 대부분 연기 자체를 안하고 있습니다. 겁을 먹어서 덜덜 떨리는 모습이나, 상관의 무리한 명령 때문에 불만을 품은 표정 같은 것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색한 이해할 수 없는 몸짓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들이, 자주 튀어나와서, 영화를 보는 맥을 빠지게 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나마, "트루 라이즈"에 나오는 폭파되는 다리를 질주하는 모습,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도시 파괴용 불대포 등등, 알려진 다양한 장면들을 시도하고 있기는 하기 때문에, 구경할 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연기는 나쁠지언정 이야기 전체에 지루함을 주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부분만은 좋다고 하겠습니다.


(이상해도 신기하잖아)

그런데 이런 단역들의 모습에 더하여, 그만큼 치명적인 부분은 이 영화의 악역들입니다. 이 영화는 용가리가 절반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사람 사이의 대화와 대립이 꽤 중요하게 잡혀 있습니다. 더군다나 용가리의 행동과 용가리에 얽힌 모험에 대한 모든 설명이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용가리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이냐 고민하는 내용도 그렇고, 용가리의 비밀이 무엇이냐 하는 내용들은 모두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나오게 됩니다. 괴물의 동작을 보여주면서 비밀을 밝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시각적인 다른 연출을 통해서 사연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모두 사람들 사이의 대사를 통해서 언급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간의 갈등을 자아내는 주인공들과 악당들의 갈등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처음에 등장하는 악당 배우의 연기가 아주 나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연기를 하기는 무척 어려운 대사를 맡았습니다. 이 악당은 "위험한 발굴을 강제로 진행하려는 탐욕에 눈먼 학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발굴을 강제로 진행하려는 탐욕에 눈먼 학자"라는 사람은, 남편이 바람나서 고민하는 아내나, 시어머니랑 다투는 며느리에 비해서 무척 보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의 모습과 행동, 말투가 어떨지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자니, 반복되는 진부한 아이디어를 억지로 연결해 놓은 부분도 있고, 배우 자체의 연기력이 안그래도 부족한데, 더 부담을 안아서 더더욱 투박해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이 양반은 그래서 영화 시작하자 말자 얼굴을 들이밀고, 계속 이마에 핏대 새우면서 "지금 당장 하란말이야!" 라고 소리지르기만 할 뿐입니다. 이 양반은 잠깐 나오고 마는 것도 아니고, 거의 용가리만큼 얼굴을 자주 내밀면서 무슨 자기가 이야기의 원동력인냥 행세할 정도로 비중이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걸리는데가 많습니다.

이 악당은 영화 절반 동안 나와서 분위기만 흐려놓고 중간에 왠지 갑자기 퇴장해버립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악당 역할은 "비열한 정부 공무원"에게 넘어가 버립니다. 이 "비열한 정부 공무원"은 첫등장한 악당에 비해서는 훨씬 더 연기도 좋고, 적어도 "학자" 역할 보다는 "공무원" 역할이 더 해내기 쉽기 때문인지 여러면에서 처음 악당보다는 훨씬 더 보기에는 그럴듯 합니다. 하지만, 대신에 이 양반은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주제에, 가장 중요한 악당인듯 행동하고, 그러면서도 또 막판에 맥없이 사라지기에, 등장과 퇴장이 상당히 부자연스럽습니다. "위험한 발굴을 강제로 진행하려는 탐욕에 눈먼 학자" 악당을 빼버리고, 차라리 이 "비열한 정부 공무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악당으로 계속 줄기차게 내세웠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연기 못하신 분들)

그렇다면, 이 영화에 연기가 나쁜 인물들만 쏟아져 나오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연기를 썩 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장 주인공에 가까운 착한 학자 "홀리 데이비스 (자세히 안 들으면 사람이 아니라 오토바이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역할이나, 사태에 대처하는 장군들의 연기는 충분히 그럴싸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미친 과학자 취급을 받는 노인 입니다. 해리슨 영이 맡았는데, 가끔은 정말 미친 박사처럼 보일 때도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중후하고 선해 보이고, "용가리가 다시 깨어난다는 전설이 있다네." 같은 대사도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연기합니다. 비록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해리슨 영과 주인공이 둘이서만 대화하는 장면 같은 곳은,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진지한 SF물 느낌이 충분히 날 정도 입니다. 코메디용 떠벌이 역할을 맡은 브래드 서지도 꽤 그럴싸 합니다. 이 사람은 특종을 찾고 싶어서 용가리를 따라다니는 사진기자 역할을 맡았는데, 주인공과 악역 사이에서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의심을 품는 재미난 인물을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점은, 이렇게 잘하는 배역들의 비중이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코메디용 떠벌이 역할은 중반부를 넘어서면 갑자기 안나와 버립니다. 가장 주인공에 가까운 홀리 데이비스는 연기를 별로 못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사람 저사람 따라다니면서 구경만 할 뿐 아무 역할을 안합니다.


(연기 잘하신 분들)

이 영화는, 이렇게 연기 잘하는 사람들, 처음부터 이야기에 나왔던 사람들은 젖혀 놓고 갑자기 하늘 날아다니는 특공대원들의 사연만 길게 다루어 버리는 이상한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특공대 자체가 현실적인 세계를 공격하는 비현실적인 용가리의 충돌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너무 황당한 불균형이라는 점도 문제이지만, 이런 가장 인상적인 공격을 별 의미없는 단역들이, 조잡한 연기로 해 치우고 마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이 정도로 강렬한 역할을 하는 특공대라면, 적어도 "로켓티어"처럼 주인공이 직접 맡는다든가, "독수리 5형제"의 용사들처럼 한명 한명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영웅 역할을 확실히 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들과 그 연기에 관한 문제를 넘어서서, 또 한가지 이 영화가 바닥을 치는 부분은 이 영화의 음악입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전형적인 트래쉬 무비 배경 음악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서사이저 갖다 놓고, 슬픈 부분에서는 "m" 자가 쓰여 있는 화음 건반을 누르고, 즐거운 부분에서는 "m"자가 쓰여 있지 않은 화음 건반을 누르는 것이 전부입니다. 곡조도 들을 것이 없고, 악기도 조악하고, 언제 음악이 나오고 언제 음악이 나오지 않아야 하는지도 가늠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아주 듣기 싫을 때도 간혹 있습니다. 가끔은 일부러 트래쉬 무비 분위기를 내려고 이런 소리를 들려주나 싶을때가 있을 정도 입니다.

동굴 세트, 용가리의 화석 뼈 등등의 미술적인 소품들의 질이 미비한 것도 훨씬 더 개선될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소품으로라도 이래저래 방어를 해냈다면, 초라한 소품과 조잡한 연기가 서로 힘을 합치고, 거기에 화면색감이 비틀어지고 조명사용이 실패하며 음악까지 이상해지는, 5연타가 겹쳐버려서, 영화에 초를 치는 몇몇 치명적인 분위기를 조금은 더 없앨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놈의 음악좀 꺼버리면 안되겠나?)

이 영화는 거대한 괴물이 도시를 때려 부수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온 1999년은 아직 Windows XP 가 등장도 하지 않은 시기요, 이제 막 처음으로 NVIDA의 GeForce 그래픽 칩셋이 나온 시기였습니다. 지금이야, 90년대 말에 쓰이던 컴퓨터 값은 쓰레기 값이요, 밤하늘의 별 다음으로 많은 것이 한국의 박대받는 컴퓨터 그래픽 종사자들입니다만, 당시로서는 고성능 컴퓨터들과 그 컴퓨터로 그래픽 작업을 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데, 시간과 제작비 상의 한계가 역력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진짜와 똑같은 화면을 만든다는 생각과는 일정 정도 방향을 달리했습니다. 이 영화는 소위 말하는 "극사실주의" 미술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기술진들을 모으면서, 은마 아파트 집값 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때려넣은 "쥬라기 공원"도 극사실주의를 위해서 컴퓨터 그래픽만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정교한 조각과 기계를 자주 활용했고, 화질이나 화면 각도를 이용해서 단점을 감추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영화 "용가리"는 꼭 정말로 진짜와 똑같은 느낌이 드는 환영을 창조하기 보다는, 최대한 줄거리를 자연스럽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정도로 특수효과 수준을 맞춰 꾸몄다고 할만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고지라"류의 영화나, "외계인 알프"류의 TV극에서, 괴물은 사람이 탈쓰고 흉내내는 것이라는 점이 뻔하게 보이지만, 어쨌거나 그런 재료로 이야기를 잘 표현한 것과 비슷합니다.


(일본판 포스터)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면을 만들면, 우선 사람이 직접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동물만의 동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꼬리나 수십개의 촉수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든지, 얼굴 표정을 자연스럽게 바꾼다든지, 난폭하게 날뛰고, 입에서 불을 뿜는 장면을 훨씬 제약 없이 마구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장점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위험한 장면을 찍을 수도 있다는 점을 꼽을 수도 있습니다. 괴물의 목이나 팔이 부상으로 날아가 버리거나, 공격을 당해서 건물의 잔해 위에 널브러지는 장면 같은 것을 찍기도 쉽습니다. 날아다니는 전투기나 헬리콥터와 싸운다든가 미사일을 수십발씩 얻어맞는 장면을 찍기도 쉽습니다.

또다른 장점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면을 만들면, 여러겹의 합성을 통해서 실제 시가지의 모습과 바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괴물옷을 입고 괴물을 연기하면, 실제 시가지를 축소해서 만든 모형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괴물이 실제 시가지에 등장하게 하려면, 다시 화면을 처리해서 합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컴퓨터 그래픽은 어차피 화면위에 컴퓨터로 만든 그림을 덧씌우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실제 시가지에 괴물을 등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컴퓨터 그래픽 자체가 가진 중요한 가능성이었습니다.


(한국 예고편, 포스터에 무척 자주 보인다는, "...시작된다" 클리셰)

이 영화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성공을 거둔 부분이 있습니다만,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용가리가 호쾌하게 불을 뿜고 다니는 모습이라든가, 괴물이 격투를 할 때 온 몸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팔다리를 작살내 가면서 싸우는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의 이점이 십분 살아난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실제 시가지를 찍은 화면과 용가리의 동작을 연결시키는 부분은 무척 미숙합니다.

그래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괴물을 등장시켰으면서도, 전통적인 모형 촬영의 틀에 그대로 갖혀서 영화를 찍은 부분이 많습니다. 용가리가 건물을 때려 부수는 모습, 용가리가 발로 자동차를 밟아버리는 모습 같은 것들이 그 예입니다. 이런 부분들은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살리기 보다는, 전통 방식과 별 다를바 없는 모형 촬영 특수효과의 느낌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실제 모형 특유의 재질감은 없기 때문에 낯설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장면을 만들다보니, 용가리가 도시 외곽에 있는지, 중심에 있는지, 더 부수고 처들어온 것인지, 부수다가 지쳐서 나가고 있는 것인지 잘 전달되지가 않았습니다. 화면이 용가리의 존재감이나 위치를 제대로 표현해 주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더우기,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선전하면, 아무래도 "인디펜던스 데이"나 "트루라이즈" 류의 극사실주의 특수효과를 상상하기 쉬운데, 그에 비하면,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많이 줄 수도 있습니다. 극사실주의 특수효과라기보다는 도리어 애니메이션 합성의 느낌에 좀 더 가까운 용가리의 질박한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의 목표에 분명히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여줄 때 용가리의 얼굴 모습이 정교하지 못해서 세부묘사가 거의 생략되어 있다는 점은 그러한 한계 내에서도 확실히 아쉬웠습니다. 얼굴 표정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컴퓨터 그래픽의 묘미인데 그 부분이 감정과 감흥이 없어서 실망스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과 실제 촬영 부분의 경계선 처리나, 조명, 색감 조정이 미숙해서, 원근감과 양감이 죽어버린 부분이 왕왕 있는 것도 무척 아까운 부분이었습니다.


(이 정도 모습은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이고 그럴싸하지만, 이 장면은 사실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문제점)

이렇게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와 전통적인 모형촬영 사이에서 방황한 것 때문에 가장 손해를 보는 부분은 용가리와 헬리콥터, 전투기와의 싸움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가지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용가리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싸움의 현장감이나 박진감이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용가리 하나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십대의 헬리콥터, 전투기들이 나오다보니, 그만큼 컴퓨터 그래픽과 촬영한 영상이 어긋나는 부분도 더 자주, 많이 드러나게 된다는 점도 드러납니다.

상상해보면, 엄청나게 거대한 괴물이, 빌딩숲에 서서, 수없이 날아다니는 전투기들을 벌떼 처럼 바라보며 싸운다는 것은 잘만 그려내면 무척 화려한 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고야가 19세기에 그린 "거인" 같은 그림은 바로 그런 멋을 신화적으로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모형의 한계에서 헤멜 수 밖에 없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컴퓨터 그래픽으로 자유롭게 괴물을 잡아낼 수 있다면, 그런 미술적인 표현을 여러가지로 좀 더 많이 시도해 보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부족하니, 그저 어두컴컴한 밤에 그냥 그다지 특징없는 큼지막한 덩어리 하나가 뛰어다니는 듯해보이는 부분이 많고, 등장 자체도 영화 후반부에 국한되어 있어서, 가장 열심히 팔아야할 용가리 자체를 강조해 보여주는 부분이 적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사일을 받아라!)

전체적인 줄거리는 시 외곽의 발굴지에서 출발하여, 강을 건너, 도심으로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린다는 단계적인 방향이 잘 잡혀 있습니다. 대체로 하룻밤 사이의 난리로 이야기가 짜여져 있어서, 마지막 장면의 멋을 줄 수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간과 시간이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었던 이야기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좀 재미없게 이야기가 끊겨져 있습니다. 용가리가 줄기차게 움직이면서 서서히 다가오고 설치는 느낌이 나면 좋을텐데, 외계인의 물질전송장치를 등장시키는 바람에, 용가리가 나왔다 사라졌다 해 버리는 것입니다. 비록 용가리를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나타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불필요해 보이는 듯 하기도 합니다. "스타트렉"에서도 물질선송장치가 너무 남발되면 좀 재미없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말입니다.

외계인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도 어울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외계인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았다고 봅니다. 인류가 출현하기도 훨씬 전인 공룡시대에 이미 외계인이 지구에 한 번 다녀갔다는 류의 이야기는 SF의 향취를 자극하는 멋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표적인 SF작가인 듀나도 한 번 단편 소설 소재로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영화에서도, 외계인 이야기를 옛 화석에 불과한 공룡이 되살아나는 이유라든가, 공룡의 부활을 군사 당국이나 정부 비밀 요원이 알아채고 관여하는 빌미로 들먹이기에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계인이 직접 얼굴을 들이밀고 대함대를 이끈채 나타나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내용상 용가리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그냥 구경 다하고 집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거창한 등장에 비해 허무하기도 하고, 또 "공룡 같은 것이 움직인다"라는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이야기 핵심에 비해서, 인공위성과 기계우주선 함대로 되어 있는 외계인 이야기를 잘 연결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비슷하게, 군당국이 관여하는 내용을 담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아예 군사기지 자체를 무대로 삼을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군의 3군 통합 사령부를 그럴싸하게 그려내는 것이 쉽지 않아서 조잡한 무대장치를 꾸미는 데 그쳐버렸고, 그 마당에 주인공들이 직접 모험에 참여하지 못한 채, 그냥 화면만 지켜보면서 구경만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녕~)

그나마 기억에 남을만한 대목을 찾아보자면, 무너지는 빌딩을 용가리가 떠받치는 부분이라든가, 수십대의 화물 헬리콥터가 용가리를 매달고 날아가는 장면 정도 입니다. "킹콩" 시리즈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괴물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옛 영화들 못지 않게 적당한 자리에 잘 배치해 두었습니다. 거대한 괴물의 크기와 그 거창한 느낌을 잘 표현하는 좋은 생각이었다고 느꼈습니다. 하루밤 동안 일어난 대소동을 마친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용가리가 운반되어 가고 있는 모습은 시간상으로도 좋은 결말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용가리"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 보려 한다면, 국내 영화지만 영어로 만들어서 나름대로 팔아먹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꼽을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60,70년대 이탈리아 영화의 흥행작들이 영어로 영화를 찍어서 대대적으로 세계적인 배급에 성공한 것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이 다소 무국적의 내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쉽게 해외에 접근한것과 비슷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도 60,70년대에 소위 "한미합작"영화들이 있었고, 80년대에도 미국 교포 자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새롭게 또 한번 시도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정부의 진흥사업으로 영화의 영어 번역과 영어 더빙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 같은 것이 추진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게 무슨 한류우드 테마파크를 만든다느니 하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용가리"는 제목만 따지면, 1967년판 한국영화 "대괴수 용가리 http://gerecter.egloos.com/3069003 "와 계승관계에 있는 영화입니다. 괴물 이름이 용가리라는 점, 괴물이 두 발로 걸어다니는 공룡 비슷한 모양이며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점에서 일단 두 영화는 중요한 부분이 일치합니다. 또 괴물의 존재를 지구 밖 우주에서 먼저 알게 된다는 점, 괴물이 화석 상태에서 깨어난다는 점, 괴물이 한강 다리와 서울 시내를 부순다는 이야기도 같습니다. 하지만, 괴물의 모양이 확연히 다르고, 괴물이 서울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은 대강 숨기고 그냥 미국의 어느 대도시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듯하게 표현한 점은 현격히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또 괴물에 얽힌 인물간의 갈등사연과 괴물의 싸움형태도 아주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내용 자체에 특별한 연결이나 리메이크, 속편 관계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7년판 "대괴수 용가리"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에는 필름도, DVD도, VHS도 없어서, 미국판을 구해 봐야만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999년판 "용가리"는, 그래도 백만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 보았지만,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DVD나 VHS를 구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역시 도리어 미국에서 미국판으로 나온 "Reptilian" 이라는 제목의 DVD를 구입하는 것이 최선인 듯합니다. 미국판은 2001년판에 기준을 두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상영판과 OST가 좀 다른 것 같아 보이고, 몇몇 장면이 다르게 편집된 듯한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해리슨 영 은 여러 TV극, 영화에서 작은 역들을 많이 맡았습니다. 가장 쉽게 떠올릴 만한 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나이든 라이언 역할입니다.

영화를 선전하기 위해, 우선 "예고편"부터 만들어서 예고편으로 장사를 반쯤 해놓는 제작 방식의 부작용이 컸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산과 인력에 한계가 있으니, 막상 모든 장면을 선전용 예고편 만큼 잘 만들기도 쉽지 않았던 데다가, 제작인력과 제작일정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과제 관리의 여러 문제가 그대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컴퓨터 그래픽 영화라면, 영화제작이 여러모로 소프트웨어 개발과 비슷한 과정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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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rkwang 2007/08/04 18:00 # 답글

    용가리 1999판은 무려 '조성우'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그 본인이 평소 하던 분위기와 달리 미국식의 오케스트레이션류 음악을 했지만, 의외로 잘했죠. 문제는 2001판에서 그 음악을 싹 들어내고, 그야말로 듣보잡인 Chris Desmond라는 듣도 보도 못하던 자의 음악을 썼다는 거죠.

    한국에는 1999건 2001이건 [용가리] DVD가 나온 적이 아예 없습니다. 2001년판 VHS만 나왔는데, 그것도 비디오 전문 회사도 아닌 손오공(...) 출시라, 더더욱 엄해졌죠.
  • 이준님 2007/08/04 18:13 # 답글

    1. 그래도 2001년판이니 다행이지요 1999년판은 외계인 "함대"도 아니고 외계인은 뽀뽀뽀 1980년대판 -_-;;수준을 자랑하고 미군 사령부도 퀸셋 막사에 예비군 복장으로 찍었습니다. -_-;;;;;

    2. 예고편 제작방식은 사실 애니쪽에서는 악명이 높지요. 끝없는 도산의 악순환이라고 할까요. -_-

    3. 해리슨 영은 드럽게 재미없는 악어 영화 "크로코다일"에도 나와주지요. 중간에 악어에게 먹히는 압박이 있지만요.

    4. 연기도 연기만큼이나 일단 여러 장면에 대한 편집이나 기타 감독이 해야하는 곳이 무진장 미숙합니다. 개중에 잘된곳과 안된 곳의 연결도 엉망인게 흠이지요.

    5. 엑스트라 문제야 게렉터님께서 전에 올리신 "석가모니" 에서도 잘 드러나는 거 아닙니까. -_-;;; 사실 게티스버그처럼 "매니아들이 자진"해서 오는것이 아닌이상 필연적으로 나오는 문제이지요. 아예 맘먹고 동원 가능한 공화국의 여러 특촬영화들 (남한에 공개된 "불가사리" -_-;;류)이 아닌 이상은 인원 수급도 문제가 많지요. 80년대 많은 TV 미니시리즈중 대작들이 이런 문제때문에 "연출의 방향으로 커버" 하거나 유명영화 장면 도용하기로 떼웠다는 걸 보면 이 작의 문제만은 아닐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허접하다"거나 "TV물"이라고 하는 것 조차도 보통 이상의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엑스트라 관련 이야기를 하니까. 소시적 대작 "일송정 푸른솔에"에서 북로군정서및 일본 토벌군으로 열연하신 "남한군 장병"들이 "짱박히거나 땡땡이 친다" -_-;;; 고 감독이 학을 뗐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실지 베를린 위기 당시 증파된 나토군 장병들을 동원해서 찍은 "사상 최대의 작전"에서도 "군인들이 촬영때 겁에 질려서 물에 빨리 안 뛰어들었다"고 로버트 미첨이 나중에 회고한 걸 보면 이런 문제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선 문제인가 봅니다.
  • FAZZ 2007/08/04 18:33 # 답글

    뭐 영화에 대해선 포스팅에서 이미 자세히 말씀하셨고 위 두분다 설명을 잘 해주셨기에 할 말은 딱히 없고
    일본판 용가리 포스터를 보고 느낀점인데 오리지널 포스터 보다 더 나은거 같다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아쉬운점은 ヤンガリ-(양가리)라고 표기하지 말고 ヨンガリ-(욘가리)라고 표기해야 더 용가리에 가까운 발음일텐데 왜 저렇게 했지? 하는 의문이...
  • BigTrain 2007/08/04 19:55 # 답글

    제가 본 극장판과는 뭔가 안 맞길래 뭔가 이상하네... 싶었는데 2001년판이 (영상은) 상당히 어레인지됐었군요...
  • 잠본이 2007/08/04 21:01 # 답글

    두가지 개봉판을 다 봤는데 비열한 정부 공무원은 잘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혹시나 렙틸리언판은 2001년판과도 또 다르게 편집되어 있는 걸까요;;;
    2001년판은 전체적으로 영상은 좀 향상된 데 비해 그나마 캐릭터들 중에 개그를 남발해줬던 파커대위와 블랙기자의 비중이 팍 줄어들어서 무지하게 슬펐죠. OTL
  • rumic71 2007/08/05 00:44 # 답글

    파커대위의 연기력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 게렉터 2007/08/05 08:19 # 답글

    mrkwang/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용가리 비디오 테입이 그래서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용가리 OST를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진짜 OST인지 거기에 발맞추어 내어 놓은 가수의 잡음반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정말 이제 사기 어려워져서 참 난감합니다.

    이준님/ 돈만 들인 어지간한 엑스트라 장면도 사실 참 만들기 어려운 장면이라는데 깊이 공감합니다. 이 영화는 한국 거주 외국인들을 그냥 돈 좀 집어 주고 단역을 쓴 부분이 바로바로 눈에 뜨여서 특히 더했습니다.

    FAZZ/ Yonggary 라는 영문명을 바로 옮기려고 하다보니, "영가리"라고 쓰고 싶어서 그런거 아닌가 짐작 해 봅니다.

    BigTrain/ 여러 판본이 다르다는 점도 이 영화의 문제라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잠본이/ 2001년판에도 나오기는 나왔는데, 제가 2001년판을 지금 다시 보지를 못하겠기에 비중이 다르게 편집되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2001년판과 렙틸리언 판이 차이가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다못해 제목 나오는 부분에 Yonggary 대신 Reptilian 이 나온다는 점만해도 다릅니다.

    rumic71/ 최고... 입죠.
  • mrkwang 2007/08/05 10:48 # 답글

    그 잡음반처럼 보이는 OST가 정식 OST 맞습니다.

    조성우 스코어 + 가수 노래 + 조성우 스코어 + 가수 노래 식으로 교차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안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었죠.

    가수 노래는 그렇다고 치고, 조성우 스코어가 매우 훌륭했던.
  • 게렉터 2007/08/06 12:21 # 답글

    mrkwang/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때 유승준 노래도 있었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기 있는 노래들은 대부분 크게 이상한 것은 없었는데, 정말 말씀하신대로 왜 이상한 음악으로 바꿔 넣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재편집 과정에서 음악을 재조정, 재구성, 재배치할만한 여력이 없어서 아예 최대한 돈 적게 드는 작곡가 고용해서 후다닥 넣어버린 것인가...하는 추측도 됩니다.
  • 잠본이 2007/08/06 23:12 # 답글

    문제의 OST(를 위장한 잡음반)를 작년 지방 모처의 폐업하는 레코드점에서 20% 세일가격에 구했는데...
    두려워서 아직도 뜯어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OTL
  • 게렉터 2007/08/07 10:09 # 답글

    잠본이/ 아끼는 마음에 보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가수 노래도, 조성우 음악도 둘 다 당시 제 감상에는 아주 이상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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