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와의 조우, 2001: SO, 디 워 의 장면연출에 대하여 영화

이야기 중심은 1977년작,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에 두겠습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들 중에는 세 번째 극장개봉작이면서, 대체로, "E.T."와 함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영화입니다. 내용은 세계 각계각층 주인공 서너명 정도가 조금씩 이상한 일을 보고 겪으며 전조를 맞이하는데, 이것이 외계인과 인간의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외계인 등장직전)

"미지와의 조우"는 결정적인 막판 외계인 등장 장면의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화면의 감격이 살아나도록, 그전까지 여러가지 장면과 대사들, 연기들을 차근차근 점차적으로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세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오고, 이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여들면서, 절정장면에서 한 장소에서 만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줄거리는 이야기를 풍성해하게 만들기도 했고, 외계인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일대사건이 주는 느낌이, "전 인류에게 충격"이라는 점을 잘 전달해주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앞부분에 잘 깔아놓은 장면들과 사연들의 때문에, 절정장면의 외계인 등장 모습이 매우 멋지게 살아납니다. 좀 과장해서 비교하자면, 베토벤 5번 교향곡 1악장에서 악장끝을 앞두고 울려퍼지는 절정부분의 감격을 떠올릴만합니다.

이렇게 분위기를 고조하면서 내용을 하나둘 전달해주는 앞부분 장면들 중에서, 우선, 인도 장면을 살펴 보려 합니다.

"미지와의 조우" 영화 앞부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가 인간을 찾아 오려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인간보다 얼마나 월등한 존재인가 하면, 인간에게 부족한 기술과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와 정신의 수준, 생각하는 형태와 활동하는 방식 자체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만한 수준으로 높게 발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 감정의 한계나, 인간이 느끼는 고집과 좌절등에 휘둘리지 않고 극복하는 수준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결코 동일하게 여길 수 없는 자아개념의 한계라든가, 부모 고생시키며 태어나서 수십년간 밥먹으며 숨쉬다가 결국 몸이 썩어 없어지는 게 끝이라는 인생의 허무함이나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도, 아마도 이 월등한 존재는 어떤 깨달음이나 해결을 갖고 있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인간을 고민하고 가끔은 겁에 질리게 만드는 "삶의 의미" 같은 주제나, 세상의 실체에 대해서도 답을 갖고 있을만큼 발달한 존재로 상상되는 것입니다.


(대단하군)

이런 엄청난 수준을 가진 어떤 것, 혹은 최소한 인류와는 아주 다른 어떤 거창한 단체가 다가 오고 있고,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하는 점은, 답을 찾기가 무척 어려운 문제입니다. 부활한 예수의 허리를 만져보았다고 주장한 도마 와 같은 상태라면 모를까, 그런 대단한 존재를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대한 기록도 없고, 뛰어난 외계인을 만나는 일은 어떤 분위기가 날지 조사해 볼 방법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화면으로 표현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진짜 그럴싸하다"라고 생각하고, 그런 묘사가 "사실적"이라고 느끼게 하는가 하는 점은,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입니다. 사실로 있지도 않고, 있기도 어렵고, 다른 사람들이 상상도 별로 안 해본 사건을 두고 관객에게 "생생하다"라는 느낌을 전해주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한 번도 사과의 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 사과맛을 완벽하게 설명하기"라는 고전적인 철학우화와 상통합니다. 그런데, 이 멋진 영화는 그런 도전에 훌륭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납득불가)

우선 이 영화는 말그대로 "한 번도 사과의 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 사과맛을 설명하기"라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즉, 외계인은 "한 번도 사과의 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 사과맛을 완벽하게 설명하기"에 대해 해답을 갖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감각과 경험의 한계 속에서 산다는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한계를 초월하는 외계인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면, 엄청나게 대단해 보일 거라는 것입니다. 무슨 "사랑과 영혼" 영화처럼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초월한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그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람의 표정이나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짐작하고 상상하는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창한 외계인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넘어서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초월한 존재"를 들먹여 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결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음악'이 어떤 느낌인지를 설명한다"라는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인이었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한번도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던, 음악이 주는 감흥과 느낌을 전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화 주인공 중 한명이, 갑자기 청각장애인들이 "노래의 묘미"를 깨달았다는 것을 알고,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조사하고 연구하려 합니다. 이런 장면을 영화 속에서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장엄한 존재"를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택은 특히 글귀나 만화가 아닌, 영화로 표현할 때에 매우 적합합니다. 감동한 청각장애인들의 표정이나, 아름다운 음악등을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잘 전달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엄무쌍)

단지 여기에 머무를 뿐 아니라, 이 영화는 화면 연출에 힘을 불어 넣기 위해서, 더욱 더 상징적으로 장면을 짜넣었습니다. 인간의 온갖 번뇌와 고민을 초탈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느낌을 집어 넣은 것입니다. 종교는 바로 그런 엄청난 존재를 상상하고, 삶의 의미라는 불가능한 문제에 답을 구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음악'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는" 내용을, 마치 종교적인 분위기로 표현한다면, 훨씬 더 그 철학적인 충격이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미지와의 조우"는 바로 그런 충격을 그럴싸하게 전해내고 있습니다.

인도의 청각장애인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곡조는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반복되는 것이어서 인상을 성명하게 남깁니다. 그 분위기는 열정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분위기가 나는데, 사람들의 모습과 복장은 도를 구하기 위해 고행을 하던 불교와 힌두교의 수도자들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장면이 불필요하게 기술적인것이나 정신병적인 분위기로 빠지는 것을 막고, 철학적이고 구도적인 느낌을 더 많이 돌게하기 위해서 지역배경도 굳이 "인도"로 잡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과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화는 몰려든 군중의 열정적인 모습을 잡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인상을 드높이기 위해서, 멀리서 군중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까지 점차적으로 확대되면서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경치를 보는 화면에서 시작한 장면은 마침내는 "사람들의 손가락 끝"을 보여주는 강렬한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음향도 여기에 맞춰서 사람들의 소음, 점점 합치되는 노래소리, 부르짖는 음성들로 극적으로 변해 갑니다. 이 영화의 영화음악은 영화음악 사상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의 주제곡과 맞먹으려 하는 노래인데, 영화 전체에 걸쳐서 이 영화의 음악은 기막히게 변주되며 풍성해집니다. 때문에, 음악을 처음 소재로 제시하는 이 인도 장면의 연출은 박력이 넘칩니다. 아마, 영화 시작에 해당하는 이 장면에 강한 호기심과 전율을 느끼는 관객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손가락 끝)

이처럼 이 세상에 없고 상상하기도 힘든 것을, 그럴싸하고 "사실감 있게" 묘사하는 것은 영화 연출의 도전적인 과제 였습니다. 이런 도전에서, "미지와의 조우"와는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내는 예시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꼽아볼만 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의 사상과 사고의 경지가 전혀 다른 수준으로 격상되는, 놀라운 순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미지와의 조우"처럼 관객이 영화의 영상과 음향만으로도 직접 감개무량하게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와는 좀 다르게, 설명을 함축하고있는, "상징"들을 제시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원숭이 비슷한 것에서 인간 비슷한 것이 되는 순간에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하면서 집어 던진 몽둥이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 몽둥이 장면은, 막바로 우주선과 우주정거장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인류가 결정적으로 도약하는 순간을 보여주는데, 그 이후의 발전은 뼈다귀 몽둥이나, 복잡한 우주선이나 결정적인 격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몽둥이든 우주선이든, 모두 비슷한 수준의 물질문명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생겨서 순식간에 보여주는 두 물체는 인간이 사용해온 모든 물질문명 도구들의 상징으로 느낄만 합니다. 그래서, 소리지르며 돌던지던 원시종족과 우주복을 입고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같은 무리로 묶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단순한 영장류 동물이 인류가 된 변화처럼, 더욱더 혁명적이고 거창한 변화가 일어날 조짐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더욱더 간단하고 쉬운 상징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입니다. 이 음악은 신학과 철학,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소재로 해서 작곡된 음악입니다. 그리고 이 음악은 깨달음의 순간이나, 거기에 이르는 번민의 여명을 묘사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이런 음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사용된 것은 이 영화의 내용이 쉽게 묘사하기 어려운 진화상의 도약, 인류의 초월 같은 내용에 걸맞는 분위기를 깔아줍니다. 특히나, 이 음악의 제목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더욱 대놓고 그런 사연을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날 것입니다.


(인류의 여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 뒷부분에서 지금의 인류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순간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묘사는 사실 영화 전체의 다른 부분에 비해서는 좀 부족한데가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느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영화는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정신없이 화려하게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빨려드는 듯 하기도 하고 퍼져나가는 듯 하기도 한 그 모양들은 쉽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미술품들이나 자연풍경과는 아주 다릅니다. 윈도 화면보호기 프로그램 짜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확실히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낯설과 납득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광경일 것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영화속 주인공들이 그런 것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이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인간의 한계 초월"을 겪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이 대목은 묘사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 그 자체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 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계속 보게 되는 것이라서,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렇거니와, 보게 되는 화면에도 그렇게 "초월"이라는 느낌이 쉽게 들만큼 대단하다거나 충격적으로 화려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없는 어떤 것을 이해할만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생생한 감정을 전해 주거나, 실제감이 전해져서 간접체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현실 충격)

실제로는 없고,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을, "실재감 있게" 묘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예들처럼, 그 자체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경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 기묘한 비정상적인 느낌에는 극적인 맛이 살아있기도 합니다. 이런 느낌은, 가끔 철학으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인간 상상력의 한계나, 비현실적인 상상력과 실제감의 대립은 고래로 재미있는 생각할 거리였으니 말입니다. "장자"의 시작을 여는 "소요유"는 지겹도록 언급된 대표적인 고전이고, "회남자'에 실린 다양한 소재들은 누천년간 이런 비현실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거리로 문학에 활용되어 왔습니다. 고야의 "거인"과 같은 그림은 나폴레옹 원정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상징하는 꿈 같은 정경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멋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렇게 현실에 없는 것을 현실에 있는 것처럼 강렬하게 묘사한다는 묘미를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것보다, 더 단순한 형태는, 신화 속 장면이나 초현실적인 존재를 신나게 표현한 여러 영화들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몇가지 또다른 간단한 예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2001... 올해 입학한 꼬마라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옛날을 무대로 한 사극인가?)

거대한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고 합시다. 큰 괴물의 존재감을 전해주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괴물답게 크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거의 항상 사용하는 방법이 크기 비교 입니다. 우리가 보통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과, 상상속의 괴물이 나란히 나오게 해서, 괴물이 훨씬 더 커보이게 하여 위압감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연출을 잘 하면, 정말 괴물이 커보이고, 대단해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조잡하게 해서 이런 연출에 실패하면 괴물이 재미없고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한 예로, 모형과 괴물 옷 입은 사람으로 찍은 영화에서, 모형이 조악해서 간략한 장난감스러워 보이면 실패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 보다 몇십배 큰 괴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장난감보다 몇십배 큰 괴물옷 입은 사람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바닥 고전인 "킹콩" 이래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괴물이 사람을 손에 쥐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괴물의 몸 위를 지나다니는 것으로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보다도 더 큰 괴물의 손이 사람에 비교되어 생생하게 보이기 때문에, 한 번도 보 적 없는 괴물이지만 그만큼 크다는게 쉽게 눈에 보이게 됩니다. 또, 사람을 옴쭉 달싹하지 못하게 쥐고 있기 때문에 괴물이 가진 힘과 무서움도 한 번에 표현됩니다.

만약, 손이 없는 뱀괴물이라면, 어떤 식으로 해야 그 크기와 위력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은 연출상 재미난 도전할 거리입니다. "디 워 http://gerecter.egloos.com/3320023 "에서 보기 좋은 장면은, 뱀괴물이 각종 건물을 휘감고 또아리를 트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이나 단역배우들이 바로 그 건물 안에서 뛰어다니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 보다 큰 건물, 건물 보다 큰 괴물, 이라는 비교 때문에 괴물의 크기와 존재감이 잘 전달됩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느낌처럼, 주인공들이 있는 건물을 장악하고 있다는 괴물의 크기와 위력도 생생히 전달됩니다. 이런 연출로 괴물을 등장하게 하면, 그 존재감이 잘 전달되어 신기하고 재미납니다.


(괴물의 정석)

괴물이 도시를 습격할 때는, 괴물이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우리의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갑자기 난입해온다는 그 충격이 표현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역시 수십, 수백미터 짜리 괴물이 광화문에 들어와 설치는 모습을 본 사람이 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지, 또 어떻게 보여주면 그 감정이 잘 표현될지 짐작하는 것은 장면 연출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일을 재미나게 잘해내면 잘해낼 수록, 괴물이 도시를 부수는 장면은 더욱 격해 보이고, 감정적으로 와닿을 것입니다. 거대한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가장 뻔하게 사용하는 장면은 자동차나 보행자를 발로 밟아서 파괴하는 것입니다.

"디 워"가 사용한 수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디 워"는 교통체증이 있는 답답한 도로를 보여 줍니다. 긴 복도 그림을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릴 때 처럼 소실점이 하나 있는 원근법으로 꽉 막힌 길을 높게 솟은 빌딩과 수평수직구도로 보여 주었습니다. 항상 우리가 도시에서 접할 수 있는 모습이고, 교통체증의 갑갑한 심정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도시의 정경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막힌 도로의 한 끝에서 뱀괴물 이무기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괴물이 길게 뻗은 길을 따라 움직이면서, 그 막힌 도로의 차들을 다 박살내며서 길을 뚫고 오는 것입니다. 도시 안으로 괴물이 쳐들어온다는 그 신나는 파괴감이 잘 표현됩니다. 길게 뻗은 도로로 기어들어오는 긴 뱀의 모습은 모양도 잘 들어 맞습니다. 더군다나, 자동차로 막혀 있는 도로가 일거에 이렇게 뚫려버리는 광경은, 갑갑한 교통체증에서 느껴지는 막힌 느낌을 역이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타격이 화려하게 드러납니다. 이 연출 방법은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매우 화려하게 사용해서 제대로 재미를 본 것인데, 만약 "디 워"에서 앞 뒤 이야기를 애초부터 잘 계획해서 좀 더 중요한 장면으로 살렸다면, 훨씬 신났을 것입니다.


(도로)

비슷한 느낌을 주는 또다른 장면은 빌딩의 벽면에 다닥다닥 까맣게 달라붙은 날아다니는 괴물들입니다. 이 역시 헬리콥터들의 전투 장면과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화면 자체도 짧게 조망하고 넘어가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괴물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능력, 괴물들의 숫자가 많다는 느낌을 보여주는 효과에는 매우 좋습니다.

저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건물이 어두컴컴해져서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어올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블라인드를 걷어보면, 창문을 온통 가린채 빽빽하게 괴물들이 들어차 있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창문 안 건물 속에서 사람이 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놀라서 달아나는 데, 유리창을 깨고 괴물 한 마리가 들어와서 사무실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입니다.

이렇게 괴물이 평화로운 도시로 들어오는 그 박력을 그려내는 연출이, 그 자체로 어떤 경지에 이른 수준을 자랑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았던 "새 http://gerecter.egloos.com/2176560"를 들먹여 볼만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수백 수천마리의 새 떼거리가 마을을 습격하는 느낌을 갖가지 연출로 화면에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미묘한 여자 관계를 조금 암시하는 것 외에는 거의 줄거리가 없는 영화를 박진감 넘치는 재미난 것으로 꾸몄습니다. 이 영화에서 정글짐을 보여주는 전후의 장면은 음악, 동물촬영, 연기, 편집 등등이 연출을 위해 거의 완벽하게 조화된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최근까지 할머니 배역으로 등장한 티피 헤드렌, "새"의 홍보 사진)

보다 더 영화 자체의 순수한 화면 연출에 해당하는 장면으로는, 이무기 괴물이 헬리콥터를 입으로 물어 던지는 장면을 이야기해 볼만 합니다. 일단 이 장면은, 상상력과 계산을 통한 예측이 조화가 되어야 최소한 시도해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입을 벌리면 십몇미터 쯤 될 뱀이 헬리콥터를 물고 흔들면 어떤 모양이 될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서 만들어 넣기 위해서는, 그런 장면의 구도와 크기 비례를 상상하고, 또 헬리콥터가 흔들리는 형태와 날아가려다 붙잡히는 정도를 계산을 해봐야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 설계한 배가 물에 뜰지 가라앉을지 전산모사 소프트웨어를 써서 예측해보는 것처럼, 역학 계산을 통해 그 움직이는 형태와 궤적을 도출해서 자료를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무기가 헬리콥터를 물고 당기는 힘과, 헬리콥터가 날아가려는 힘의 대결이 느껴지도록, 화면속에 잘 담아내야 합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주먹질을 하는 권투 중계도 때리고 맞는 느낌이 잘 전달되는 화면이 있는가하면, 심심하고 재미없게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헬리콥터가 이무기에게 물리는 장면"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것에는 또다른 고민이 필요한 것입니다.

"디 워"의 이 장면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묘사가 부족하고, 또 현실감이 없어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연출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무기와 헬리콥터의 묘사가 그럴싸 해 보이는 것은 연출의 일부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무기에게 내던져지는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후 화면은 헬리콥터를 따라가면서 같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이때, 헬리콥터 추락 보다 화면이 약간 더 빨리 내려와서 헬리콥터가 땅에 떨어져 땅에 처박히는 장면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연출하기에 따라서는, 헬리콥터 추락 보다 화면이 약간 더 늦게 내려와서, 헬리콥터가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영화속에서 때려부수는 흥겨움에 어울릴지는 골라서 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이렇게 무엇인가 추락하는 것을 찍을 때, 같이 추락하면서 그 모습을 찍는다는 류의 화면은 CGI 로만 해낼 수 있는 기묘한 것입니다. CGI가 아니라면, 카메라맨이 번지점프라도 하면서 찍는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이런류의 연출은 더 호기심 생기고 박력넘치는 볼거리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크레인과 레일을 짜넣어서 "줌 인 트랙 아웃"을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만큼 신기한 이야기 거리가 될법한 내용입니다.


(빨리 날아가는 헬리콥터에 괴물이 붙은 뒤에, 순간 그 방향으로 살짝 기울어지며 흔들리게 하면, 괴물이 무겁다는 느낌이 묘사됩니다)

정신없이 때려부수는 이런 장면들은 이처럼 다양한 연출이 뭉칠 때, 그만큼 흥미를 끌고 재미난 파괴 장면을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경험들이 많이 쌓이거나, 월등하게 좋은 것이 있으면, 이런 연출방식들은 어떤 한가지 진부한 것으로 고정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귀신이 튀어나와서 사람을 놀래키는 장면에서는, 조마조마한 음악과 함께 사람 등 뉘에서 귀신이 불쑥 얼굴을 내밀곤 합니다. 혹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로 지나치게 난무한 감이 있는, 난리통에 혼란한 개인의 심정을 드러내기 위해서 카메라를 손에 들고 흔들며 찍는 것도 쉽게 떠오릅니다.

그런 예들에 비하면, 이무기가 분탕질을 치는 영화나, 21세기 LA 도심을 쑥대밭으로 부수는 이야기는 훨씬 더 창의적인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뱀 괴물이 빌딩을 휘감으며 올라갈 때에, 건물 외벽이 조금씩 부서져서 흙먼지와 돌부스러기가 휘날리면 괴물의 힘을 나타내는 맛이 난다든가, 그런 장면에서 뭔가 으스러지는 듯한 효과음을 들려주고, 지진이 난듯 떨리는 느낌을 곁들이는면 재밌다든가 하는 것은 사소한 예시들입니다. "디 워" 영화 속에는, 그 난삽한 제작일정 속에서 이런 연출을 꽤 재밌게 해낸 부분이 있는가하면, 엉성하게 날려버리거나 실수한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좋은 연출들이 잘 모여 있다면, "어쨌건 신나게 부수는 느낌을 재밌게 봤다"라는 감상을 전해줄만할 것입니다.


(연기 제일 잘한 나 한테 너무 작은 배역을 준 것이 대실수 였어요.)

한동안, 데카르트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매트릭스"나 "토탈리콜"을 들먹이는 일은 정말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곁에 나와 있는 수많은 특수효과 영화들과 그 연출 방법들은 "초실재 hyperreality"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무척 좋은 소재입니다. 좋은 고전이나, 흘러간 명작 영화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여러 사람이 많이 본 친숙한 요즘 영화가 있다면 이런 영화를 예로 들고, 따지면서 기호학이니, 마샬 맥루한이니 해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수십미터 짜리 괴물이 울부짖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리를 묘하게 만들어 넣으면, 그 소리가 "진짜 같이" 들리기도 하고, 잘못 짜 넣으면 "가짜 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두마리 커다란 뱀괴물이 엉켜 싸우는 그 육중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괴물 몸 전체를 한 화면에 보여주는 장면은 잘 안보여주고 아꼈습니다. 꼬리 조금만, 머리 조금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 조금, 일부분만이 커다란 영화관 화면 전체에 가득차게 했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한참 이동하고 뒤흔들어야만 그 몸 전체를 다 훑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짜놓은 연출을 보고, 관객은 "진짜 커다란 괴물이 싸우는 듯 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이런 점은 재미난 이야기 거리입니다. 진짜보다 더 멋진 디즈니랜드의 가짜 "마법의 성"이나, 짜고 하는 것인 줄 다 알지만 너무나 무서워서 견딜 수 없는 귀신의 집, 같은 것 만큼, 여러 예술과 학문 분야에서 분석과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껏 나온 많은 특수효과 블록버스터들의 장면들과,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인기를 끈 묘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해보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을 나누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GI의 자유로운 표현 때문에 훨씬 더 그 폭은 넓어졌습니다. 장 보들리아르나 움베르토 에코가 장황한 글로 설명했던 것 만큼이나 인상적인 소재들을, 이제는 영화의 연출과 묘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여기저기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

본문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디 워" 에 나온 것과 같은 습성을 가진 괴물 영화 마지막 부분은 대학교 1학년 교양 수업 같은 곳에서 재미난 소재를 도입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환골탈태하는 생물과 거기에 대한 집착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나'인가?" 같은 우화를 잘 시각화 하고 있습니다. 특히 변신 후에 보이는 마지막 "눈물'은 "토탈리콜" 같은 영화나, "유년기의 끝" 같은 SF 소설과 비슷한 물음으로 풀어낼 수도 있습니다. "디 워"의 경우에는 정작 중심 줄거리는 이와는 별상관 없이, 숙명론과 자유의지에 관한 것으로 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 관리 실패로 6년간 고난과 역경속에서 촬영한 덕분에 이 중심 줄거리의 고민거리는 거의 다 허망하게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합니다.

CGI 연출을 위한 화면 설정, 실제 영상 촬영, 구도 배치, 합성 설정 같은 것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아이디어와 경험을 잘 합칠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 워"의 경우는 이 정도 성과를 얻는데, 미국 현지 제작진의 실력과 노력에도 큰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헐리우드 제작진의 기술과 연출상의 성과들이 한국에서 잘 이해되고 전달되려면, 거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영화 홍보 차원에서도 어차피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적힌 이름들을 봐도, 굳이 영화의 CGI 기술을 굳이 "100%" 자체 기술이라고 애써 선전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조금 의문이 생깁니다. 그냥 "자체 기술"과 "유명 헐리우스 스탭"들의 참여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멋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디 워"의 CGI와 그 연출에 대해서 이글루스에서는 존다리안님께서 이야기 http://zondarian.egloos.com/popular/3679927 를 꺼내주신 것이 있습니다. 저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만, 덧글과 함께 보시면 충분히 좋은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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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녁 2007/08/10 22:01 # 답글

    이건 딴소리지만 미지와의 조우는 정말 제목 번역 센스가 끝내주지 않습니까? 영화 제목을 "3종 근접 접촉" 따위로 했다면 정말 안습이었을 텐데요.
  • 게렉터 2007/08/10 22:53 # 삭제 답글

    그러고보면, 번역제목 멋진 거 많았습니다. "007 You Only Live Twice"도 "007 당신은 두번만 살 수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것보다, "007 두 번 산다"이게 낫고, "007 Diamonds Are Forever"도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이것보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이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번역하기 애매한 "007 Live and Let Die" 도 "007 나 살고 너 죽자" 보다, "007 죽느냐 사느냐"가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 더카니지 2007/08/11 01:34 # 답글

    007 여왕폐하 대작전도 일단 호기심을 끄는데 대 성공이었지요 ^^ 내용과는 완전 상관은 없지만
  • croydon 2007/08/11 16:57 # 삭제 답글

    옛날에는 "제3종 근접 조우"라고들 번역했었습니다. 제3종이라는 말이 "제2종 보통 운전면허" 같이 들려서 생경했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에는 바뀐 모양이지만요.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걸 보면 이 영화 한국에서 개봉 안했나봐요?)
  • 게렉터 2007/08/11 22:28 # 답글

    더카니지/ 맞습니다. 007 번역제목들이 "문레이커" 쯤부터 너무 그냥 외국어 옮기기로 나가버려서 그렇지 꽤 좋았습니다.

    croydon/ 한국에서 개봉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개봉때마다, 방송때마다 조금씩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미지와의 조우"도 통용 제목중 하나인데, 현재 정식 DVD 발매본 제목이기에 저것으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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