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무도회 (클루 영화판, Clue, 1985) 영화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추리소설에도 자주 나오는 구도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외딴 저택에서 살인 사건이 갑자기 일어 납니다. 살인이 일어난 순간 저택에 있던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택안에 있는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직업의 여러 인물들을 등장인물로 삼아, 하룻밤 동안, 혹은 어떤 제한 시간이 올때까지 이 중에 누가 범인인지 서로 의심하면서 밝혀 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흘러 가는 것입니다. 이런류의 저택을 배경으로 한 추리극은, 역시 제한된 집안을 무대로 하는 코메디 소극(笑劇, farce)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종종 코메디화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영화가 바로1985년작 "살인무도회 (Clue)" 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저택을 무대로 하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탐정을 찾아라" 같은 살인극을 "피가로의 결혼"이나 "오스카"와 같이 집안으로 무대가 제한된 대소동 코메디로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요즘에는 저택 소극의 전형적인 방법으로 자리잡은 면이 있습니다.

고전으로는 "비소와 낡은 레이스 Arsenic and Old Lace" http://gerecter.egloos.com/3083006 같은 영화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고, 80년대 영화로는 내셔널 램푼(National Lampoon) 영화 중 하나인 "별난 학교 동창회 Class Reunion" http://gerecter.egloos.com/3100300 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우기, 쉽게 흥미를 유발해야 성공한다는 요즘 서울 대학로 연극계에서, 이런 류의 이야기가 연극 무대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자면, 이 영화만 해도, 결정적인 이야기의 핵심을 핑크팬더 시리즈 중 가장 인기있는 1960년대 영화인 "어둠 속에 총성이 (핑크팬더 2) A Shot In The Dark" http://gerecter.egloos.com/3061699 에서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그 영화는 원작이 연극으로 "라이어" 시리즈로 불리우고 있는 연극과 같이 배치할 수 있기도 합니다.


(흡사 대학로 소극장 분위기)

그러나, 이 영화는 확실히 구분되는 분명한 성격이 있습니다. 일단 시작부터 여느 범작보다 유리한 출발을 하는 면이 있습니다. 제목만 봐도 범상치 않은 즉, 바로 말판놀이 "클루 Clue/Cluedo" 를 원작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클루"는 1948년부터 지금까지, 59년동안 "모노폴리"의 아성과 맞설만큼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인기작이며, 말판놀이의 소재 거리들 자체가 저택에서 벌어지는 살인 이야기의 가장 전형적인 요소를 잘 추출해서 농축해 놓은 흥미진진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마분지에 그려진 그림 한 두장이지만, 부억, 당구실, 서재, 식당 등등의 저택 공간은 바로 그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을 그대로 포착하고 있고, 권총, 단검, 밧줄 등의 흉기 역시 선명하게 인상을 남깁니다.

무엇 보다, 정말 추리 소설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이 본 듯한 등장인물의 전형을 잘 포착한 인물 구성이 말판놀이 속에 "말"로 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판 놀이를 만들때 그 "말"의 이름과 모양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사소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말의 모양이 자아내는 말판놀이의 생생한 분위기와 몰입감을 절묘하게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교수, 대령 과 같은 손님들이, 저택의 집사, 하녀, 요리사 같은 인물들과 어울리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말판놀이가 그려내려고 했던, "전형적인 저택 배경 추리물 분위기"의 농축 추출물을 바로 영화로 옮겨냈다고 할만합니다.


(피콕부인이 서재에서 단검으로 상자 속에 선물처럼 들어 있는 흉기)

그리하여, 이 영화는, 가장 전형적인 인물들을 모아서, 정통파 분위기 그대로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저택을 담아내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니만큼, 배경은 50년대까지 거슬러가서, 고즈넉한 저택과 집사와 하녀들,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이 잘 어울릴만한 복고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모습을 멋진 저택 세트에서, 배우들의 동작과 저택의 모습이 눈에 쏙쏙들어오는 안정된 구도로 자아내고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외딴 저택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의문의 살인이 일어나는 그 깊은 밤의 향취를 매끄럽게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러면서도, 이 심각해야할 분위기에서, 사소한 실수들과 어림없는 언어유희가 웃긴표정을 잘 짓는 배우들이 읊어대도록 한 것입니다.


(등장인물들)

여기까지는, 대체로 "5인의 명탐정 Murder by Death" http://gerecter.egloos.com/3064849 과 거의 비슷한 분위기 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반대로 "5인의 명탐정"를 살펴봐도 앞뒤 모양이나 대사를 가만히 볼작시면, 말판놀이 "클루"의 영향을 받은 면이 있기도 합니다.

실상, 이 부분까지만 주목한다면, "5인의 명탐정" 보다 이 영화는 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인의 명탐정"은 알렉 기네스에서 데이빗 니븐, 피터 포크에서 피터 셀러즈까지 명배우들이 총출동해서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이 영화는 좀 개성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군데군데 가끔 웃기기 위해 "황당하면 뒤로 넘어가며 자빠진다"류의 너무 정형화된 코메디 동작을 억지로 끼워 넣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약간 코메디의 노련함도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없잖아 있습니다.


(사투리 억양으로 웃기려는 거 너무 진부하지 않아요?)

그러나, 가면 갈 수록, 이 영화는 점점 더 화려해집니다. 초중반은 원작의 인물을 잘 살려서 흥미를 끈 범작 정도였지만, 후반으로 가면 갈 수록 영화는 재미나고 특유한 향이 감돕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괴력의 결말에 이르면, 어떤 "게임" 원작 영화도 함부로 도전하지 못한 정도로, 게임 원작 영화의 진수를 가히 마음껏 뽑냅니다.

이런 구성은, 이런류의 코메디 소극, 대소동 영화에 무척 좋은 것입니다.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이, 하룻밤 사이에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는 대혼란이 된다는 점층법 코메디에 딱 들어 맞는 것입니다.


(경악)

등장 인물들이 겪는 일이 점점 격해지는가 하면, 예기치 않은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난리에 괜히 끼어들어서 더 소동을 크게 만듭니다. 가면 갈수록, 이런 돌발사태가 벌어지는 간격은 짧아져서 이제는 자포자기 수준으로 가는구나하는 느낌도 들게 합니다. 사태가 황당해져 가면서 점점 지쳐가는 인물들의 모습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그런 하룻밤 동안, 난리통에 짧은 시간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서로 편을 가르게 되거나 한데 뭉쳐 팀이 되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잘 펼쳐지기에,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은채, 이 영화의 결말을 본다면, "제4의 벽"과 영화 서사 구조 자체를 돌파한 혼란을 만들어내는 그 충격이 그야말로 즐겁게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을 만합니다.

"5인의 명탐정" 은 패러디 코메디를 즐겁게 늘어 놓으면서 신기한 장면을 계속 보여주면서 계속 웃겨나가는 정도 였습니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장면을 자꾸 늘어 놓았습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이 영화는 웃긴 영화고 진지한 고민은 없는 영화지만, 사건들은 대체로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말로 가면 갈 수록 정말로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범인의 이름을 말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퇴장해버리는 그야말로 고질적인 수법을 써서 궁금증을 돋구는 방법도 씁니다.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하기도 하고, 서로 싫어하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는 모습 때문에, 관객들이 정말로 진범은 누구인가 하는 고민을 하도록 자꾸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거기에 대한 재미난 답을 주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추리물의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도가 자리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결말이 어떻게 된다는거예요?)

이 영화의 멋스러운 점은, 실제로 관객이 추리를 하고, 사건을 풀도록 자극하는 내용들이 박혀 있어서, 대단찮은 범인 공개이면서도, 흡인력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중요한 단서 중에는 실제로 관객들이 화면을 세밀하게 지켜보고, 기억력이 좋았다면, 영화를 보는 관객도 답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영화 화면의 숨은 그림 찾기를 하게 해서 관객이 직접 사건 현장을 관찰하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수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바로 뭐할때 자리에 없었던 사람이 범인인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많은 다른 이야기에서는 그리고 나서, 탐정이 "그 사람은 바로 당신!" 이러면서 삿대질 해서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장면을 대강 기억날 정도로 언급은 해 줍니다. 하지만, 정작 누가 그 자리에 없었는지는 안돌이켜 주고 잠시 뜸을 들입니다. 그러면, 관객은 스스로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그 때 누가 자리에 없었더라" 아마 기억력이 비상하거나, 영화를 거꾸로 돌려서 문제의 장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본다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알듯말듯 범인을 잘 알수가 없게 되고, 그 호기심때문에 추리에 스스로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장면에서도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계셨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렇게 마지막 결론을 보여주기 위해 언급되는 여러 단서들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를 되돌려보거나, 두 번, 세 번 보기에 재미난 영화이기도 합니다. 별 대단한 반전이 있는 영화도 아니지만, "복선들을 돌이켜 보고, 복기 하기 위해서 영화를 다시 본다"라는 초강력 반전이 있는 영화 같은 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지나치게 사소한 것들을 단서로 들먹이곤 하는 일부 추리물에서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말 부분에서 "뭐? 정말 그때 그랬단 말이야"라면서 다시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서 확인해 보게하는 소설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점이 억지스러워지는 부작용을 가리고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들이 추리의 정교함이나 "천재 명탐정"의 잘난척에 집중할 때, 이 영화는 그보다는 코메디와 소동에 집중하면서 사람들의 웃긴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영화 속에서 총알이 몇 발 발사되었는지를 헤아리는 대목을 언어유희 코메디로 승화시키는 부분은 정확한 예시 입니다. 아예 이 영화는 시작부분에서 모 전설적인 추리소설가가 "추리소설에서 절대로 써먹으면 안되는 수법"이라고 지목한 수법을 태연자약하게 써먹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 내용을 반 코메디로, 반은 영화를 다시볼때 즐길 수 있는 숨겨진 복선으로 잘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황금비율 구도에서 누구를 주목해 볼 것인가?)

이 영화는 연출 역시 점점 소동이 커져가고, 뭐가뭔지 알 수없는 혼란이 커지는 것을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 초반에는 이런 류의 소극을 무대에서 공연하는 연극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세트를 화면안에 담아 내고, 그 속에서 오가는 여러명의 인물을 한 눈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점은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고, 꽤 긴시간 동안 가만히 사람들이 오가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연극을 볼 때는, 여주인공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 볼 것이냐, 축구 선수 남자 주인공의 허벅지를 지켜 볼 것이냐를 관객이 골라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역시 화면 속에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등장인물 중에서 어떤 인물에 주목해서 볼지, 관객이 골라서 볼 수 있도록 배치된 연극처럼 잡은 장면들이 몇 있습니다.

또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세트의 세부가 환하게 잘 보입니다. 그러면서 조명이 바깥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라는 분위기도 살아 있는 듯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빛과 색감도 비슷한 상황에서 연극에서 자주 쓸만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사소한 부분입니다만, 이 영화에서 그린 역을 맡은 마이클 맥킨이 벌이는 슬랩스틱 코메디들은 이런 연극다운 맛을 즐기기 좋은 멋진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이 벌어진 직후, 이 사람이 앉을 자리를 찾아 헤메이는 장면의 엉거주춤 코메디는 멋드러집니다.


(오른쪽이 마이클 맥킨)

한편 이런 무대 위에서 잘통하는 배우들의 연기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도입부를 보면, "갑자기 자동차가 고장났는데, 인물의 외모에 끌린 지나가는 사람이 차를 태워준다" 라는 내용을 불과 10수초 사이에 아무 대사 없이 오직 몸짓 연기만으로 표현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연기 기술상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볍게 지켜보게 하면서도, 말로 하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등장인물의 개성을 심어주게 되기 때문에, 인물간의 개성에 특색을 두는 이 영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자동차 고장)

이렇게 연극적인 화면이 많이 있으면서도, 이 영화는 훨씬 다양하고 넓은 세트를 쓸 수 있는 영화의 이점도 잘 살리고 있고, 또 북적북적 많은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퇴장, 꼭 필요한 부분을 확대해서 보여 주는 것도 잘 들어가 있습니다. 화면을 좌우 혹은 상하로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시선을 교묘하게 유도하는 것 따위도 적재적소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것에 가까운 "노이즈 오프 Noises Off" http://gerecter.egloos.com/3051364 같은 영화와는 명백히 차이가 납니다.

영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소동이 점차 더 커지면서, 장면 속에는 연극이나 소설, 그림으로는 불가능한 영화 고유의 연출이 속속 박력을 드러내게 됩니다. 후반부로 들어서면, 갑자기 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만 집중해서 보여준다거나, 흰장갑을 낀 살인자의 손이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만 화면에 한가득 담아서 보여주는 재미난 장면들이 연달아 나옵니다. 조명효과를 잘 활용해서 어두운 밤에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다거나, 설명하는 와중에 자료화면을 넣어 이해하기 쉽고 또 보기 덜 지루하게 한 것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조명 효과)

등장인물이 뛰어다니는 것에 따라 화면이 따라서 달려가면 긴 거리의 이동을 혼란스럽게 묘사하는가 하면, 편집해서 이어붙임 없이는 도저히 소화해 낼 수 없을법한, 기나긴 대사를 매우 빠르게 읊어대는 긴긴 설명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패러디 코메디로 활용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관계자들을 다 모아놓고, 장황하게 사건의 풀이를 읊어대는 탐정의 습관을 재미나게 패러디해서 코메디로 만드는데 활약한 것입니다.


(뛰어다니기)

한편, 후반부로 갈 수록 배경음악도 훌륭하게 활용됩니다. 다소간 복고적인 배경음악이 있습니다만, 영화의 초반부에는 음악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이르러 뚝뚝 끊어 가면서 두세마디씩만 경쾌하게 울리는 결말부분의 음악은 "이 영화가 소동을 다루는 코메디이다"라는 주제를 아주 잘 자극해 줍니다.

또 영화 속에는 갑자기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옛날 유행가가 레코드판에서 평화롭게 울려퍼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별 배경음악이 없던 영화에서, 문득 들려오는 배경음악이 있는 대목입니다. 그 덕분에, 영화 속 등장인물이 느끼는 의외라는 충격을 더 잘 살려주는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또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미국 정치의 소재가 풍자되지만 기본적으로 장난스런 소동이라는 이 영화의 분위기에도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또 이렇게?)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는 50년대의 매카시즘을 필두로 에드가 후버, 2차대전 전후 문제와 원자폭탄 문제 등등의 굵직굵직한 미국 현대사 소재거리들을 등장인물의 배경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볍기 그지없는 "웃긴 표정으로 웃기기"가 더 재미난 영화치고는 별로 큰 도움은 안될듯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배경 덕택에, 여러가지 정치 풍자 농담들이 조금씩 과하지 않게 끼어들어서 코메디의 종류가 더 다양해 졌고, 은근슬쩍 좀 더 복고적인 분위기를 내는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화의 선악구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조금 하고, 지나치게 거창한 배경을 깔아버리는 덕택에 오히려 그저 한바탕 쇼일 뿐이라는 느낌이 생기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80년대 미국에서 새롭게 대두된 진보-보수 이념 대립의 여러 논쟁거리들과 대응되는 점들을 찾으려면 찾을만도 합니다.


(당신 그거 매국노짓 아니예요?)

배우들은 인기 배우들 보다는 중진급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모두 호연입니다. 가장 대사가 많은 인물인 집사를 연기하는 팀 커리는 탄탄한 기본기를 보여주고, 레슬리 앤 워렌, 에일린 브레넌 같은 배우들도 옷차림새에서부터 말투까지 잘 어우러집니다. 에일린 브레넌은 "5인의 명탐정"에도 출연한 바 있는제, 레슬리 앤 워렌과 함께 각본 속에 제시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아주 잘 녹여서 보여줍니다. 또 멀쩡해 보이지만 갑자기 겁을 잘 집어 먹는 그린을 연기한 마이클 맥킨은 떠드는 그 말투도 웃기거니와, 자빠지고 넘어지는 코메디도 아주 훌륭하게 잘 해냈습니다. 화이트를 연기한 매들린 칸은 실력에 비해 배역의 비중이 너무 적어서 아까운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매우 독특한 분위기의 인물을 첫인상부터 확실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매들린 칸)

하녀를 연기한 콜린 캠프는 그 외모의 매력을 울궈먹는데 일단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어느 영화 못지 않게 그 모습은 잘 살아 나서, 매력적이면서, 멍청하면서, 은근슬쩍 변태스러운 느낌도 끼어 있는 배역의 인상을 잘 남기고 있습니다. 콜린 캠프가 극중에서 읊어대는 프랑스식 말투 역시 피터 셀러즈 만큼 화려하게 그 자체로 재미난 경지는 결코 아닙니다만 노력한 흔적이 있습니다.


(콜린 캠프)

콜린 캠프는 긴 시간 할약한 배우이지만, 큰 역은 별로 맡지 못한듯 한데,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작은 역할이나, "다이하드 3" http://gerecter.egloos.com/2888397 에서 형사 역할 외에는 "폴리스 아카데미"에서 출연한 것 조차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 속에서 콜린 캠프의 모습은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해서, "클루 영화판의 하녀 역할" 하면, 영화를 본 사람은 이 영화속 콜린 캠프의 모습만은 기억해 내기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콜린 캠프 폴리스 아카데미와 다이하드의 전조인가)

이 영화의 환상적인 결말은 영화 상영 당시보다는 비디오테입/TV방영/DVD발매 이후에 훨씬 더 중후하게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거의 비슷한 주제를 활용한 "어둠 속에 총성이"와 견주어보면, 비할바 없이 화려하게 결말의 묘미를 끝까지 뽑아낼 수 있도록 단계적인 구성을 만들어냈다고 할만합니다. 멋진 결말을 비롯해서, 서서히 이야기가 황당해지는 대소동 이야기의 특징을 저택을 무대로한 살인사건 이야기에 잘 결합한 재미난 영화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거물급 인기배우는 없지만, 좋은 세트에서 튼튼한 중진배우들이, 원작의 멋을 정교하게 살린 참신한 생각이 있으면서도 농담도 충실한 각본을 펼쳐내는, 그야말로 알찬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밖에...

영화 삽입곡에 맞춰 편집해 넣은 영화 장면 동영상:


"살인무도회"는 KBS TV 방영 제목이었습니다. 그때만해도, 국내에서는 정식발매판 "Clue" 가 별로 안 알려져서 제목이 그렇게 된 듯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Clue"는 다른 제목의 말판놀이로 포장되어서, 일본 변형판의 번역판, 내지는 일본 변형판의 재변형 해적판 등등이 상당히 유통된 바 있습니다.

"Clue"를 하다보면, "누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인했다"라는 말을 계속 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말들이 가벼운 코메디로 한 번 언급됩니다. 처음 살해 당하는 사람의 이름 역시, 코메디 소재로 볼 수 있습니다.

조나산 린이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나의 사촌 비니", "돈가방을 든 수녀"를 감독했고, 최근에는 "나인 야드"의 감독으로 친숙합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감독 조나산 린이 상당부분 직접 참여했고, 80년대 전후로 대활약했던, 존 랜디스가 작업했습니다. 이 양반은 최근에는 "Masters of Horror" 시리즈의 "Deer Woman" 편이 선명하게 인상을 남겨서 아직도 실력이 녹슬지 않은채 건재함을 증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결말의 멋을 살리지 못하는 형태로 처음에 개봉했습니다. 그 역시 나름대로 신기한 시도였기는 했습니다만, 언론과 관객들이 저마다 서로 평이 "엇갈리는" 통에 영화는 흥행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이 영화 좋아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록키 호러 픽처쇼" 팬들이 팀 커리 나오니까 좋아한 것 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결말이 새로 편집된 비디오 테입, TV방영 이후로 갑자기 훨씬 더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플럼 교수)

플럼 교수를 연기한 배우가 얼굴은 낯익은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싶으시다면, 이 영화가 나온 것과 같은 해에 이 양반이 출연한 다른 영화를 IMDB에서 한 번 찾아 보십시오. 그 영화는 이 영화보다 1천배 이상 흥행수입을 올렸으며, 이 영화처럼 60년동안 이어져온 원작의 힘 같은 것을 빌리지 않고도, 못지않게 널리 기억 속에 깊이 자리잡는 인물을 보여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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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ranberry 2007/10/07 08:21 # 답글

    헉... 정말로 imdb찾아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_-
    그러고 보니 저 얼굴이네요!!
  • 로리 2007/10/07 08:42 # 답글

    결말이 진짜 웃겼다면 웃겼죠.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라면서 그 멀티엔딩이란 -_-;
  • 마니 2007/10/07 12:51 # 삭제 답글

    (아까 장면에서도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계셨습니까?) 라는
    장면 오른쪽에 서있는 그남자 나홀로집에에 나왔던 호텔지배인이네요...
  • 강설 2007/10/07 18:38 # 답글

    이 영화 정말 재밌게 봤죠. 이건 어떨까요? 그렇다면 이건? 사실은 이렇습니다! 의 3단 반전이란 -_-;;
  • 닥슈나이더 2007/10/07 23:18 # 답글

    이 영화... 예전에 TV에서 봤을때.. 정말 신기한 영화다...(결말때문에..) 그렇게 봤었는데...

    난중에 Clue를 해보고 나서 나이 30넘어서 보니... 오히려 더 잘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임을 아주 잘~~ 옮겨온 영화.....
  • srv 2007/10/09 21:10 # 삭제 답글

    링크 신고합니다. :-)
  • 愚公 2007/10/10 18:51 # 답글

    마니 / 그 분이 팀 커리입니다. '붉은 10월'에서 정치장교로, 모 삼총사 영화에서 리슐리외로 나오셨지요.
  • 2007/10/10 21:2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지나가던이 2007/10/12 13:24 # 답글

    이런.. 전혀 몰라봤습니다. 저 교수님이 그 분이었군요.
  • 박민성 2007/10/14 01:08 # 삭제 답글

    플럼교수의 얼굴은 바로 알아보겠는걸요.. '그영화'를 수십번도 넘게 본 탓인지^^
    그런데 살인무도회가 그영화보다 천분의 일정도밖에 흥행못했다니 충격이네요.
    나름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그나저나 네이버에서 콜린캠프의 현재사진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영화나 폴리스아카데미에서의 모습과는 너무 변해버려서...
    벌써 그렇게 세월이 많이 지난줄은..
  • 게렉터 2007/10/16 00:47 # 답글

    지나가던이, Cranberry/ 사실 말투가 좀 달라서 금방 확인하기는 약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로리, 강설, 박민성/ 결말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더 화려한 도전을 한답시고 극장개봉 때 이 멋진의 결말을 못 살렸는데, 이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마니, 愚公/ 위에서 언급한대로, 록키호러픽처쇼 에서 주인공이기도 하고, 고전반열의 뮤지컬영화 "애니"에도 주요배역으로 등장합니다.

    닥슈나이더/ 그 외에도 구석구석 게임을 옮긴 구석이 많이 숨어 있어서 여러번 봐도 찾는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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