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수첩 (처녀의 수첩, 我愛金龜婿, We Love Millionaires, 1971) 영화

1960년대 후반. 좋은 솜씨를 자랑하던, 일본감독 이노우에 우메지(井上梅次) 는 홍콩의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노래와 춤이 화려하게 들어간 영화들을 맡아 몇편 작업하였습니다. 1971년이 되어 이노우에 우메지는 슬슬 쇼브라더스를 떠나는 후기작들에 손을 대게 되는데, 그 중에는 이 영화 "처녀수첩 (처녀의 수첩, 我愛金龜婿, We Love Millionaires, 1971)"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50년대 미국 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과 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비치파티" 시리즈를 살짝 섞어 놓은 것으로, 세 명의 아가씨가 부자 애인을 만들기 위해, 해변의 피서지에 가서 소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 명의 아가씨는, 하리리(何莉莉), 진의령(陳依齡), 그리고 한국인 배우 최지숙(崔芝淑)이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주요 조연으로 "트위스트 김"이 출연하는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안경쓴 진의령, 최지숙, 하리리: 이하,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 입니다.)

(안경 벗은 진의령, 최지숙, 하리리)

영화의 내용은 백화점 종업원으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세 친구를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셋 중에 하리리와 진의령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고, 최지숙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하리리는 좀 더 도전적이고 가장 수다스러운 인물로 셋의 리더역을 자주 맡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진의령은 심한 근시로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인물로, 예뻐 보이기 위해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안보여서 실수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즉, 진의령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에서 마를린 먼로의 배역을 참고한 인물인데, 마를린 먼로와 달리 매우 순진하고 어리숙하며, 겁많은 인물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최지숙은 군것질을 좋아하고 딸꾹질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세 사람은 정신없는 도시, 홍콩의 백화점에서, 하리리는 향수 매장, 최지숙은 넥타이 매장, 진의령은 란제리 매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장면에서 만원버스와 사람이 넘쳐나는 거리를 보여주면서 도시에서 팍팍하게 살아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경쾌하고 즐겁게 되어 있고, 웃긴 분위기로 만들었으면서도, 홍콩이라는 도시의 생동감을 아름답게 묘사해내고 있는 매우 잘만든 부분입니다.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도입부이지만, 이 장면에서 화사한 여름 햇살 아래, 사람 많고, 건물 높고, 바쁘고, 시끄러운 홍콩 모습은 5, 60년대 미국영화에서 뉴욕을 멋드러지게 잡아내던 기술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백화점 종업원, 하리리, 최지숙, 진의령)


(영화 시작장면 동영상: 홍콩의 백화점 종업원, 세 친구: 처음 소개되는 사람이 진의령, 그 다음이 최지숙, 마지막이 하리리)

세 사람이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남자들은 어찌된 일인지, 전부 늙은이, 사기꾼 아니면 변태 뿐인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은 부자 남자친구를 만나거나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될 나날을 꿈꾸고, 마침내 세 친구는 여름 휴가를 부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일본 오사카 근교의 해변으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하리리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이 씌여진 수첩크기의 책을 하나 꺼내들고, 친구들은 이 책대로 잘 따라해서, 월척을 낚아 보자고, 결심합니다.

(어째 남자라고 있는 것들이 다들...)

(늙은이)

(아니면 사기꾼: 퀴즈: 어떤 사기를 치는 것입니까?)

(아니면 변태란 말이냐!: 어느 속옷을 찾냐고 물어보니, 손님이라는 작자가 당신이 입고 있는 것을 파시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합니다.)

아직 시대가 1971년인지라, 또, 50년대 미국 영화를 참고하기도 좋은지라, 세 사람은 대형 여객선을 타고 일본으로 떠나는데, 여객선 안에서 사건의 단초가 될 사람 몇을 만납니다. 마침내, 오사카 일원의 해변에 도착해서, 세 사람은 부잣집 따님인척 행세하면서 부자 애인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영화의 본론입니다.


(배 위의 세 친구)

세 친구의 계획이 순조롭게 풀리느냐. 그러면 영화가 되겠습니까? 문제의 해변에는 부자인척 하는 가난뱅이, 가난뱅이인척 하는 부자, 보석밀매꾼, 조직폭력배, 그리고, 단번에 최지숙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쾌한 록큰롤 밴드 리더 트위스트 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리저리 관계가 얽히고, 서로 신분을 속이기도 하고, 끌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부자 애인을 만드는게 목표인데 어쩌나... 하는 갈등도 생기니 점차 사건은 복잡해 집니다. 마침내, 보석밀매꾼과 조직폭력배의 다툼에 모두가 휘말려,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대소동으로 영화는 맺어집니다.


(난장판 대소동)

따지고보면, 별로 인상적인 내용도 아니고,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이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작업한 다른 영화들에 비해보면 딱히 뮤지컬 영화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히 멋지고, 상당히 재밌습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주인공을 연기한, 하리리, 최지숙, 진의령의 멋드러진 모습에 공을 돌려야 합니다.


(작업 중인 하리리)

(작업 도중 갈등에 빠진 최지숙 )

(작업 성공(?) 진의령)

일단 세 사람은 "어리숙한 안경잡이" 진의령을 제외하고는 줄거리 상에서는 딱히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말하는 표정이며, 옷차림, 동작이며, 모습 등등이 서로 잘 어울리면서도 아주 선명하게 저마다 다른 매력을 마음것 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다양한 표정과 발랄 한 모습을 잘 연기하고 있고, 그러면서 코메디 영화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과장된 동작도 매우 자연스럽게 잘 섞어내고 있습니다.


(일반 표정: 최지숙, 진의령, 하리리: 하리리의 기묘무쌍한 머리 모양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로서는 가히 이해하기 어려운 득도의 경지입니다.)

(코메디 표정: 최지숙, 진의령, 하리리)

영화가 영화인 만큼, 영화는 대사가 많고, 그 대사들이 수다스럽게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영화 입니다. 세 친구들이, 부자 애인 구해 보려고, "맞아맞아" "어머어머" "웬일이니 웬일이니"를 떠드는 영화인만큼, 세 사람의 대사는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세 배우는 이렇게 쏟아지는 대사를 서로서로 빠르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부드럽게 연결하고 있고, 그 내용은 옛 영화다운 연극같은 인공미가 있으면서도, 발빠른 속도감과 자연스러운 편안함도 잘 느껴집니다. 그래서 짤막한 영화이고, 별 대단한 내용도 없지만, 세 친구들은 정말 서로서로 친한 세 친구 같아 보이고, 세 친구가 짓는 장난스러운 표정과, 유쾌한 고민거리들도 꼭 진짜같아 보입니다.


(한동안 여자배우들이 친구로 나오는 코메디물에서는 빠지면 안되는 것으로 여겼던 장면)

이런 영화 속 많은 대사들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모양새는 이 영화가 더빙으로 후시녹음 된 영화라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 입니다. 후시녹음 때문에 영상의 길이와 대사의 길이가 안 맞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말 조금 뿐입니다. 영화 속의 난무하는 수많은 대사들의 조합이 대단한것에 비하면 정말 작은 부분입니다. 대사들과 대사를 하면서 짓는 표정, 대사를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직이는 몸짓은 거의 조율된 춤처럼 잘짜여져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중심을 잡으며 걷기위해 머리에 물건을 올려 놓고 걷는 연습을 하는 친구를 보는 것 같은 단순한 장면에서도, 세 사람의 표정, 세 사람의 동작은 저마나 일사분란하게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느낌과 감정을 재치있게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특히 대단해 보이는 배우는 하리리 입니다. 하리리는 60년대에 "철관음" http://gerecter.egloos.com/3034332 같은 영화에서 현대적인 멋을 뽐내는 007 형 첩보원의 모습을 연기하기도 했고, 쇼브라더스가 사장세로 돌아서던 70년대에는 "애노" 등의 영화에서 관능미 넘치는 노출장면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이 영화는 하리리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별것 아닌 줄거리, 평범하고 가벼운 코메디 영화라는, 마치 백지 같은 무대 위에서 배우로서 능력을 마음껏 보여 줍니다. 하리리 특유의 속눈썹에 짙은 색을 화장한 모습은, 어찌보면, 아주 중국스러운 화장이라할만한 모습인데, 그런 하리리의 모습이 이 영화만큼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잘 없다 싶습니다.


(애고고, 큰일났다)

(트위스트 김의 흥겨운 연주 이후, 클럽에서 하나 둘 짝을 찾아 춤을 춥니다. 하리리는 끌리기는 하는데 가난뱅이라서 멀리하려 했던 사람과 마지못해 춤을 춥니다. 그런데, 춤을 추다 살짝 사고가 생깁니다.)

옛 홍콩 영화는 후시 녹음 작업, 그것도 다른 언어로 된 후시 녹음 작업을 워낙 많이 해서 무성영화 같은 판토마임이 다소 강조된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어권 영화에는 영화 자체에 황매조극이나 경극의 전통이 서려 있는 경우가 있어서, 대사를 하면서, 다소간 과장된 손동작, 과한 표정 변화, 고개를 돌리고 몸을 젖히는 동작을 양식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은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극으로 넘어가면 이런 점은 확연히 눈에 뜨여서, 일전에 "포청천" 같은 것이 국내에 소개 될 때는 그 현란한 손동작과 고개돌리기 같은 것들이 흥미거리로 회자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현대극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따지고 들때 검지 손가락을 굳이 세운다든가, 부정을 할 때 양손을 좌우로 흔든다든가 하는 동작은 한국영화/미국영화에 비하면 매우 크고 선명하게 표현하는 편입니다.

이 영화에서, 하리리는 이런 표정과 손동작 연기의 진수를 한 껏 보여 줍니다. 현란하게 부침하는 대사속에 이런 표정과 손동작이 완벽하게 녹아들어가 있어서, 별로 특이하게 보이지도 않으면서, 대사의 느낌과, 코메디스러운 과장을 더욱더 잘 살려 줍니다.



(어머, 정말로 긴 다리로구나!: 정말로 이렇게 대사를 합니다. 이런 대사를 그다지 낯간지럽지 않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 속에는 하리리가 중앙에 있고, 좌우에 최지숙과 진의령이 있는 구도가 많이 들어 있는데, 이런 구도도 여기에 아주 잘 맞습니다. 하리리가 중앙에서서 고개를 돌리고, 손을 움직이며 대사를 떠들어대면서 중심을 흔들어대니, 다른 두 배우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 박진감 넘치는 대사 전달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포털 사이트 첫화면에 뜨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법!" 글이 없던 시대이기에 부자 애인 사귀는 법이 씌여 있는 책을 봅니다. - 한국어판 제목인 "처녀의 수첩"이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이 책을 같이 보는 장면에서, 하리리의 표정 변화, 고개 돌리기, 손동작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이 영화가 단연 멋진 부분은, 단번에 느낄 수 있는 패션쇼 입니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60년대 홍콩 현실 패션의 진수를 보여 줍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세 주인공들이 입고 나오는 그 옷들은 결코 홍콩에서 팍팍한 생활을 하는 백화점 종업원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들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나치게 과하지 않게, 대체로 어울리는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 주인공들의 옷은 세 주인공들의 모습에 잘 어울리고, 풍성한 60년대 머리 모양과, 60년대 스러운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색감을 매끈한 장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자 보십시오: 최지숙, 하리리, 진의령)

뿐만 아니라, 출퇴근 하는 시작 장면에서, 잠시 비춰주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장면, 배를 타고 가는 부분과 일상 생활복, 수영복, 클럽에서 춤출 때 입는 옷 등등으로 다양하게 옷이 바뀌고, 이것은 주변 건물이나 배경의 색조와도 잘 어울리면서 멋드러진 화면을 꾸려 냅니다. 색채는 항상 다양하고, 그 시원시원한 색깔 사용은 평범한 코메디 이야기를 펼치는 와중에서도, 마치 무대 뮤지컬 화면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을 전해 줍니다.


(수영복: 최지숙, 하리리, 진의령)

(최지숙과 하리리가 목표로 정한 작업대상 앞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하기 위해 잡지를 보며 따라 합니다. 분위기가 잡힌다 싶은데, 갑자기 진의령이 나타나 분위기가 깨어지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속의 발랄한 색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이런 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막판 대소동에 이르면, 아예 페인트 통을 집어 던지며 싸우게 하여, 이런 느낌을 일부러 터뜨려 버리기도 합니다.


(막판 대소동 장면: 보기에 따라서는 일종의 스포일러 입니다.)

음악 역시 좋습니다. 멋드러진 명곡이나, 훌륭한 노래 솜씨를 자랑하는 곡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영화, 있는 노래에서 가져온 곡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다 깨끗하게 연주되어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있고,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상쾌하게 살려주고 있습니다. 트위스트 김이 록밴드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히식스나 키보이스 같은 60년대 한국 록큰롤 밴드의 흥겨움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트위스트 김, 첫등장!)

한편, 중간에 잠시 나오는 트위스트 김과 최지숙이 함께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미국 영화 "비치 파티" 시리즈에서 프랭키 아발론과 아네트 푸니셀로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별로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걸으며 프랭키와 아네트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백사장 뒤의 소나무 숲을 걸으며 트위스트 김과 최지숙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현지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억지스러운 어색함도 없고, 두 사람의 연기와 노래도 잘 맞아 떨어지며, 유쾌하게 춤과 노래를 섞어 넣는 트위스트 김의 개인기도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밴조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트위스트 김)

트위스트 김이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이 영화의 주제곡 역시 평범하고 가벼운 옛날 홍콩-일본 록큰롤 처럼 되어 있지만, 나쁘지 않고, 연주도 꽤 괜찮습니다. 트위스트 김은, 이 영화에서 기타, 밴조, 봉고 같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군데군데 보여줍니다. 이런 장면들은 별로 많지 않고, 영화 중심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모습으로 절제되어 있기에, 도리어 영화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면서 그럴싸하게 가꿔 주는데 큰 힘이 됩니다.


(영화 주제곡에 해당하는 노래를 처음으로 불러보는 트위스트 김과 그 일당 밴드들: 우연히 도로를 달리다가 아가씨들을 보게 되는데, 한 아가씨가 "노래좀 불러보세요!" 라고 요청하니까, 신나게 옆에서 버스를 가까이하여 따라가면서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리하여, 단순한 내용 속에서 충실한 제작과 정성스런 연기, 연출의 맛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만합니다. 시종일관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가득한 이 영화의 모습과 끊이지 않고 재잘거리며 쏟아지는 세 배우의 진짜 같은 경쾌한 대화들은 옛영화의 즐거움에 푹빠져 보기에 넉넉합니다. 밝은 여름 햇살과 명랑하고 상쾌한 세 배우들의 코메디 실력은 과연 기분좋습니다. 어찌보면, 영화가 단촐했기 때문에, 영화속에 등장하는 하리리, 최지숙, 진의령 세 배우의 매력은 오히려 더 멋지게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알록달록 원색 의상: 진의령, 하리리, 최지숙)

세 사람 중에서도, 순박한 모습으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연기도 가장 많이 하는 진의령의 모습은 최고입니다. 표준적인 미인상에 완벽히 부합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런 영화에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좀 큰 듯한 키도 덤벙대며 실수를 잘하는 이 사람의 모습을 더 재밌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진의령)

(안경을 쓴 진의령)

(안경을 벗은 진의령)


60년대 최강으로 군림한 문희, 남정임, 윤정희에 비겨봐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며, 코메디 실력은 남정임을 능가하며, 배우로서의 기본기와 개성은 윤정희에 못지 않습니다. 외국자료를 기준으로 살펴보다보면 진의령과 최지숙을 바꾸어 기록해 놓은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저역시 처음 이 글에서 그것을 그대로 따랐는데, 국내 자료와 다른 영화를 보고 비교대조한 결과 현재 교정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밖에...

영화 자막을 보면, 주인공은 "하리리"와 하리리 상대역 두 사람으로 되어 있고, 진의령은 그 다음에 조연급과 함께 이름이 나옵니다. 하지만, 진의령은 배우들 중에 출연 분량으로 따지면 거의 가장 많은 수준이고, 이야기 상에서도 비중이 커서, 진의령의 상대역 정도 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을 연기합니다. 하리리-진의령이 비중이 큰 주연이고, 최지숙이 비중이 작은 주연, 나머지를 조연으로 보는 편이 합당 합니다.


(빤짝이 의상을 소화해 내고 있는 진의령)

(안경을 쓴 진의령)

(안경을 벗은 진의령)

한편 트위스트 김은 영화속에서 본명 김한섭(金漢燮)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트위스트 김은 본명 김한섭의 표기에 따라, Chin Han Hsieh, Gam Hon Sit, Jin Han Xie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며, 성명을 착각하여 한섭 김이라고 영문식으로 표기한 것을 한이 성이고 섭김이 이름인줄 알고, Han Hsieh-chin 라고 엉뚱하게 기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지숙은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한국인 배우로 보이는데, 여러가지 기록이 몹시 부족해서 매우 아쉽습니다. "崔芝淑"으로 보통 표기되고, 광동어, 북경어 발음, 한어병음 표기 등등에 따라, Chui Chi Suk, Tsui Chih Shu, Cui Zhi Shu (앞의 것이 성이고 뒤의 두 개가 이름입니다.) 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 속, 홍콩-일본을 떠돌며 외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괴도 뤼팽 스러운 보석밀매꾼은 한국계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보석밀매꾼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쇼브라더스 영화사 -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 - 하리리, 최지숙, 트위스트 김 출연- 영화는 한 편 더 있습니다. 마치 이 영화와 자매편 같은 영화인데, 바로 같은 1971년에 나온 "연애도적(鑽石艷盜, The Venus Tear Diamond)"이라는 영화 입니다.


(록큰롤 밴드 리더, 트위스트 김)

이 두 영화에는 KMDB, Hong Kong Cinemagic, Dianyina.com 등등의 자료를 종합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1964년에 일본영화를 파렴치하게 베낀 표절작인 "맨발의 청춘"이 한국에서 크게 흥행한 바 있습니다. 트위스트 김은 이 영화에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불타는 청춘", "위험한 청춘", "맨주먹 청춘" 같은 아류작들도 줄줄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맨발의 청춘"이 표절 영화라는 것을 슬쩍 숨기고 영화사가 돈을 벌었습니다만, 이 사실은 일본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가 의외로 흘러가는 것은, 덕분에,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이 한국판 맨발의 청춘과 그 아류작 시리즈들을 보게 되고, 거기서 트위스트 김의 모습에 인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의 주도로 당시 여러번 합작을 해오던 홍콩 쇼브라더스와 한국의 신필름은 소속 배우 임대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노우에 우메지가 감독을 맡은 두 편의 쇼브라더스 영화에 트위스트 김과 최지숙 등이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전 나온 DVD표지: 진의령, 하리리, 최지숙)

당시에는 "일본"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큰 이미지 손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트위스트 김은 극비리에 작업을 진행했다고 회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찬석염도 鑽石艷盜, The Venus Tear Diamond"는 같은 해에 "연애도적"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바뀌어서 국내에 개봉되었고, 이 영화 "아애금귀서 我愛金龜婿 (나는 금거북이 서방님(백만장자)을 사랑해, We Love Millionaires"는 "처녀수첩"이라는 의외의 제목으로 바뀌어서 1973년에 개봉이 되었습니다.

한가지 더 지적할만한 것은, 때문에, 국내에서는 이 영화의 감독을 이노우에 우메지 로 소개하지 않고, 엉뚱한 다른 홍콩 감독인 엄준으로 속여서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각본가를 신필름의 사장인 신상옥 감독으로 바꿔치기 하여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각종 국내 공식 기록,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이러한 내용은 여러모로 볼 때 거짓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노우에 우메지의 단독 감독으로 보는 편이 옳고, 각본 역시, 이노우에 우메지 각본이 표기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트위스트김의 연주장면)

트위스트 김은 쇼브라더스 영화사 -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 영화인, "처녀수첩"과 "연애도적"을 영화 출연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4편 중 두 편으로 꼽았습니다. 저 역시 무척 좋아하는 영화들입니다. 트위스트 김의 쾌유를 빕니다.


(홍보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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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방문객 2007/11/07 09:20 # 삭제 답글


    이런 영화 이야기를 보면 현재도 한류네 합작이네 하지만 이런 60~70년대도 대단했구나 싶어집니다.
    과거에도 한중일은 가까운(?)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 나노나 2007/11/09 14:40 # 답글

    멋진포스팅에 댓글이 없어 조금 적고 갑니다. 예전의 낭만이 느껴지는 그런 두근두근함? 정말 시간내서 판도라나마 보고싶네요 ㅎㅎ
  • 게렉터 2007/11/09 18:10 # 답글

    방문객/ 일본 작품의 (무단) 번안, 리메이크 같은 것은 오히려 1960, 70년대에 훨씬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노나/ 감사합니다.
  • hime 2007/11/09 18:55 # 삭제 답글

    정말 멋진 포스팅입니다. 솔직히 읽으면서 감동이 들더군요.
    이런 포스팅은 널리 알려야하는데..
    출처 표기와 주소링크를 할테니 퍼가는 것 허락해주세요. ^^
  • 게렉터 2007/11/09 19:02 # 답글

    hime/ 감사합니다. 퍼가시고 어디로 퍼가셨는지, e메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아고라 2008/04/08 20:13 # 삭제 답글

    제가 트위스트김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트위스트김 아저씨가 이 영화들에 대해 어찌나 신나게 얘기하시던지.
    당시 인터뷰를 블로그에 적으면서 자료화면으로 영화 장면 몇개를 옮겨갔습니다. (사진 밑에 게렉터님 출처 밝혔습니다. ^^)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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