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석양의 무법자 (좋은 놈, 나쁜 놈, 못난 놈,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영화

서부 영화 주제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을 꼽아 본다면, 어지간해서는 이 영화 주제곡일 것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이 영화의 주제곡은 개봉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서부영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아서, 무수히 많은 곳에서 차용되거나 도용된 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못본 사람이라도 음악은 다 아는 경지에 이르러 버렸습니다. 바로 1966년작 "(속)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인데, 이 영화는 흔히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우는 이탈리아에서 만들어낸 서부 영화들 중 걸작으로 인기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 바닥의 거장인 세르지오 레오네가 감독을 맡았으며, 역시 이 바닥의 간판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리 반 클리프가 나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깨에 두른 천은 삼부작 영화 세편을 찍는 동안 단 한 번도 교체하거나 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IMDB Trivia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 공연 중 영화 주제곡 동영상)

이 영화는 흔히 "달러 삼부작 Dollars Trilogy" 혹은 "이름 없는 사나이 삼부작 Man-with-No-Name Trilogy" 이라고 묶이는 영화의 세번째에 해당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니만큼, 낡고 더러운 옷을 입은 꾀죄죄한 총잡이들이 황량한 서부를 싸돌아다니며 총질을 하는 영화입니다. 언제나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총을 쏜다는 생각만 하면, 총알이 스스로 날아올라 상대방의 심장에 안착하는 어림없는 기술을 가진 최강의 총잡이로 나와서 정신없을 만큼 폼을 잡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렇게 폼잡는 "좋은 놈" 역을 맡았다면, 리 반 클리프는 어린이고 여자고 눈하나 깜짝안하고 죽이는 냉혹한 살인자역을 맡아 "나쁜 놈"으로 나와 줍니다.

다른 비슷한 영화처럼, 이 영화도 구로사와 아키라가 감독을 맡은 일본 사극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화입니다. 구질구질하고 낡은 넝마를 걸친 몰골로 다니는 사람을 많이 출연시켜서, 꼭 "진짜 옛날 같은 느낌"이 나게 하는 그 수법은 그대로 전수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줄거리도 비슷한 면면을 찾아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에 소개해 드린 영화 중에 골라 보라면, 단연 "숨은 요새의 세 악인" http://gerecter.egloos.com/3170356 과 닮아 있습니다. 제목 부터 비슷한 면이 있는데다가, 숨겨 놓은 보물과 역사적인 사건이 얽히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사소한 주인공들과 전쟁터의 군중장면이 섞여드는 대목도 닮았고, 특히 무엇보다 "좋은 놈", "나쁜 놈", "못난 놈" 중에 "못난 놈"에 가장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주목할만합니다.


(못난놈)

이 영화에서 "못난 놈"은 돈에 눈이 먼 잡법으로 결코 착한 인간은 아닙니다. 치사하고 야비하고, 상당히 비겁합니다. 총싸움을 비교적 잘하는 편이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하는 이름 없는 사나이만큼 엄청난 수준은 아니고, 잔꾀를 잘 부리는 편이지만,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 반 클리프의 배역 보다는 한 수 아래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못난 놈"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이 사람의 시각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을 관찰하는 조로 흘러가는 부분이 많고, 다른 사람들 보다, 이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 자체에 재미난 입체감이 생겼습니다. "못난 놈"도 분명히 악당이고, 날강도이지만, 적어도 별별 악행을 다 저지르면서도 눈하나 깜짝 안하는 리 반 클리프 만큼 비인간적으로 악랄한 놈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러면서, 이 "못난 놈" 배역은 겁먹은 모습이나, 두려워하는 장면, 당황하는 모습, 놀란 표정 같은 것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못난놈"이라는 인물이 좀 인간적인 공감을 얻게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냥 흉악하고 보기 싫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심, 번뇌, 공포, 분노 같은 감정을 잘 드러내는 친근한 인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이 영화는 흘러가면 흘러갈 수록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좋은 놈"이나 "나쁜 놈"이 어디에서 흘러가서 뭐하는 놈인지 별로 알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못난 놈"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옵니다. 가족관계는 어떻고, 어쩌다 이런 세계로 흘러들어왔는지, 좋아하는게 뭐고, 뭘 싫어하는지 장면 틈틈이 알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전체 줄거리에 딱히 훼방은 놓치 않으면서도, 이렇게 이 인간의 사연은 잘 스며들어 관객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좀 더 "못난놈" 인물에 대해 가깝게 느끼게 되고, 못난놈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짜여져 있습니다.


(나쁜놈: 리 반 클리프)

이 배역을 연기한 엘리 월러크는 그 배역을 매우 멋지게 연기해 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엘리 월러크는 이 영화에서 출연 분량으로 보나, 비중으로 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 반 클리프보다 훨씬 더 진정한 주인공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중간에 잡아먹으려는 닭을 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부분 같은 것은 개인기가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혼자 떠돌아다니다 고달픈 몸을 쉬면서, 신세 한탄에 허풍 늘어놓기를 읊어대는데, 이것을 저녁거리로 잡아 놓은 닭을 쳐들고 중얼거리는 것입니다. 죽은 닭대가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면 그 모습이 확실히 추하기도 하면서, 또 사실감과 비정한 느낌도 좀 생기고, 그러면서 분명히 좀 웃기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엘리 월러크는 인간다운 비겁한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해내면서, 거기서 그런 치사한 인간 특유의 웃긴 모습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어서, 살짝 감도는 코메디와 한 몫 잡아보겠다고 추레한짓 하면서 사는 잡범의 신세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앞뒤 전모는 DVD판에만 온전히 실려 있습니다.)

그러한 엘리 월라크의 연기는 정교하기도 하고, 또 뛰고 달리고, 때리고 총을 쏘는 과감한 동작과도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는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의 두 친구 역할을 초월하는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도원에서 나오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로 둘러댔을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려 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슬쩍 이어지는 엘리 월라크의 표정은 그야말로 어떤 경지를 보여줍니다. 수도원에서 잠시 들려줬던 이야기와 연결되면, 그 표정 속에 엘리 월라크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사와 거기에 대한 번민이 녹아내리는 모습이 생겨버립니다. 스쳐가는 잠깐의 순간이지만, 인생사의 희로애락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장중한 느낌마져 서리게 됩니다.

이렇게 엘리 월라크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잘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도 더 좋은 위치에 잘 서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표정으로 때우면서 담배만 줄기차게 피워댈 뿐인데, 엄청나게 그럴듯해 보입니다. 엘리 월라크가 추레하고 비겁한 모습을 잘 보여주여주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대조되어 용감하고 냉철하며 강인해 보이는 것입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살아 보겠다고 기어가는 부분 같은 것은 엘리 월라크의 연기와 어울리면서 극적인 느낌이 더욱 화려하게 살아납니다.


(이 상황에서도 똑같은 표정)

그리하여 이 영화는 남북전쟁 와중에 장교가 몰래 숨겨둔 금화 20만달러치를 찾기 위해, 좋은 놈, 나쁜 놈, 못난 놈이 벌이는 모험담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못난 놈이 주인공이고, 좋은 놈도 딱히 그다지 착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결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세 사람은 직업이나, 먹고 살기 위한 관계 때문에 묘하게 서로 한 무리가 되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금화 행방에 따라 세 사람이 동지가 되기도 했다가 쫓는 입장이 되기도 했다가 붙잡히기도 하고 탈출하기도 하는 이야기가 꼬이면서 이야기는 온갖 난관을 돌파해가며 살아남고 버티는 인간들의 모험극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엘리 월라크는 살짝 정이 들어 의리를 보여주는 면도 조금 있습니다.

도입부는, 좋은 놈, 나쁜 놈, 못난 놈의 면상들을 하나 둘 보여주면서 시작하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얽혀드는 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세 사람의 쫓고 쫓기는 구도가 생기고, 어떻게 세 사람이 금화 20만 달러에 대해서 모두 알게 되는지 연결합니다. 저마다 각자의 추레한 방식으로 서부에서 버티고 살던 세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독하게 쫓는 모험에 뛰어드는지 하나 둘 사건을 일으키며 이야기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느릿느릿 진행되면서 사소한 뜸들이기 장면들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고 느리게 흘러갑니다.

사실 초반부는 좀 지나치게 천천히 흐른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일 그럴듯해 보이는 인간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대사도 별로 없고, 뭐하는 인간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중얼거리는 대사도 "폼잡으며 낮게 중얼거리기" 딱 한 가지밖에 없는데다가, 후시녹음으로 녹음된 것이 어색한 부분도 군데군데 있어서 별로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http://gerecter.egloos.com/2401579 의 찰스 브론슨도 비슷한 역을 맡습니다만, 찰스 브론슨이 그 속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개성적인 모습을 과시했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도입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약간 모자란듯 할 때가 없지 않습니다.

한편, 좋은놈에 비하면 나쁜 놈은 흉악한 짓 하는 부분은 확실히 나쁜놈으로 보이고, 자극적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좀 더 이야기거리는 많고, 리 반 클리프는 더할나위 없이 리 반 클리프 악당표정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만, 역시 무슨 사연이 있는지 뭘 찾아서 저런짓을 하는지 잘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흡인력은 좀 약합니다.

따라서, 세 사람의 대립구도가 자리잡고, 못난 놈의 심정이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전까지는 좀 지루한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돌던 막편집판을 봐도 2시간 20분이고, 미국판은 2시간 41분, 이탈리아판은 무려 2시간 57분에 달하는 상당히 긴 영화입니다. 그러다보니, 초반부가 좀 지루해질 위험이 있고, 이 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영화 전체가 무슨 사연인지도 잘 알 수 없는 방만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세 사람의 관계를 소개하는데 지나치게 긴 시간을 소비했는데, 여기에 괜히 미국 남북전쟁 이야기도 끼어들어 더 알 수 없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사연이 정교하게 맞아 들기 보다는, 음악에 맞춰 폼잡는데 좀 더 비중을 기울이는 영화이다보니, 그런 위험이 확실히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뜸을 들이냐?)

하지만, 대신에, 이야기는 갈 수록 점차 빨라집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총격전과 상황의 국면전환이 빨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느릿느릿 시작되던 이야기가 사정을 알게 되고, 상황 파악이 되어서 관객들이 "이런 갈등이 있구나, 어떻게 해결될까?"하는 호기심을 느끼게 될 시점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갈등상황을 주물러대고 뒤얽히게 하면서 이야기를 흔들어 다음 사연을 계속 기대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기승전결 구도가 잘 살아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말부에 이르면, 서부 영화의 대결 장면 사상 유명한 묘지에서 벌이는 삼자 결투 장면이 펼쳐집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총 한발로 결정되는 결투인데, 총쏘기 전에 뜸들이며 긴장하는 장면을 장황하게 보여줍니다. 그 앞부분에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는 장면까지 합치면 도합 한 5분즈음, 아무것도 안하고 언제 총쏠까 노려보는 모습으로만 때우는 과감한 장면입니다. 이것이, 세 사람이 서로 믿지 못하는 묘한 관계 속에서, 엔니오 모리코네가 집어 넣은 작렬하는 음악과 어울리면서 박자에 맞춰 세 사람의 표정과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면 흥이 달아오릅니다. 이번에도 꼼짝하지 않고 굳건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표정과, 죽느냐 사느냐의 총격전을 앞두고 움찔움찔한 엘리 월라크의 표정이 교차되니 더 분위기가 삽니다.

그리고, 이 그럴듯한 결투가 끝나면,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수미쌍관법으로 근사하게 맺어지므로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 이렇게 서서히 달아오르고, 장중하게 마무리하는 이야기 배치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시작 장면이 지나치게 길었던 지루한듯한 느낌도 쉽게 잊혀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결투)

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미국 남북전쟁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반쯤 전쟁영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깊은 비중으로 전쟁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대규모 돌격장면이나, 대포의 포격장면, 포로 수용소의 모습 같은 것들이 심심치 않게 많이 나옵니다. 전쟁의 혼란속에 찾아온 무법천지에서 범죄자 날도둑놈 같은 인간들이 금화 찾아 다니는 이야기인만큼, 이 양반들의 눈에 비친 전쟁의 무의미함이나, 전쟁 다 때려치우고 탈영하고 싶은 염전사상 같은 것도 상당부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스파게티 웨스턴"하면 떠오르는 생각과는 달리, 이 영화는 이렇게 꽤 많은 돈을 때려넣어서 꽤 장황하게 만든 커다란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전쟁이야기를 굳이 집어내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셔먼의 "초토화 작전"을 상당부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알콜중독 스캔들을 일으킨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언급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외려 셔먼 장군의 초토화 작전 소재에 비하면 간접적인 편입니다.

북군의 셔먼 장군은 남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남군의 자원과 사회기간시설 등등도 닥치는대로 파괴하는 작전을 펼친 바 있습니다. 셔먼 장군은 이것이 빨리 전쟁을 끝내는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무의미한 민간인 공격이며 잔인한 작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셔먼 장군의 초토화 작전이 2차대전 장시 영미 공군의 혹독한 전략폭격의 정신적인 직계 조상이라고 언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민가에 날아드는 포탄과, 초토화작전으로 박살난 유령마을 같은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상당수 들어가 있고, 전체적으로 망해가는 남군의 처량한 모습을 좀 더 많이 비춰주고 있습니다.


(인상만 따지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못지 않은 윌리엄 셔먼 장군)

전쟁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려는 만큼, 승승장구하는 북군보다는, 망해가는 남군을 보여주는 편이 더 좋기는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굳이 편을 가르자면 거기서도 좀 더 남군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가까운 못난 놈과 좋은 놈이 남군 군인인척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좀 더 악당에 좀 더 가까운 나쁜 놈은 북군 군인인척 한다는 구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에 북군 포로 수용소에서 고통 받는 남군 포로들의 모습이 잠깐 나오는가 하면, 전쟁에 대한 혐오를 자기 입으로 읊어대는 인물은 전쟁에 회의를 느낀 북군 장교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이렇게 전쟁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으면서도 서부의 무법자 이야기와 금화 찾기에 대해 갖고 있는 중심이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이고, 많은 인원이 동원대는 커다란 전투 장면도 화려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장면들이 좀 아깝다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 제한되어 조금만 나오고 있습니다.


(돌격앞으로!)

영화 속에 돈에 눈먼 양아치들이 총질하면서 날뛰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간간히 "전쟁 때문에 허무하게 죽은 젊은이들"을 동정적인 시각으로 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으로 아예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미묘하게 잘 엮어서 둘 다 어느 정도 수위로 동시에 표현하도록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반전 선전물이나 감동적인 신파극으로 빠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에서 잘 균형을 잡아서, "전쟁이 분명히 벌이지고 있지만, 전쟁이나 정치 따위와는 상관도 하지않는" 떠돌이 무법자들을 낭만적으로 자유롭게 그리는 감상을 흐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은 비슷하게 하려다가 좀 부족했던 "쓰리 킹즈" 같은 영화보다 훨씬 재밌는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역시 서부 영화 사상 최고의 인기작인 이 영화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장면들 중에는 "음악으로 때우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부분이 상당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사가 죽으면서 "저는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에게 제 소식을 전해주고,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같이 앉아서 놀던 메기에게도 제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남부 만세!" 이런 대사를 하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계속 그렇게 했다면, 남북전쟁에 대한 이야기나, 북군, 즉, 미합중국측을 비난하려는 듯한 태도가 너무 돌출되어 보이면서 재미없어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말 없이 죽는 병사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면서, 애잔한 음악을 까는 것으로 때웁니다. 그 음악에서 흐르는 감상에서 관객이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하는 선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엘리 월라크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다이너마이트 상자를 짊어지고 다 폭파해버리러 가는 장면도 그런 예입니다. 신나게 폭파해 없애버리는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장면에서 의외로 처연한 음악이 흐릅니다. 덕분에 이 장면은 전쟁에 대한 반대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두 무법자들의 해적질 같은 모습을 무정부주의자 영웅심으로 낭만적으로 그려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산당 혁명가 같은 자들이 본다면, "민중을 선동해 서로 피를 흘리게 하는 악덕 자본주의 정치가들의 협잡에 대한 하층민의 거룩한 분노를 표현한 장면"쯤으로 감상을 꾸며대기도 할 것입니다.


(영화 속 북군 진지)

장면 장면 연출이야말로, 보면 볼수록 재미난 대목이 많은 영화입니다. 유명한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거창하게 화면의 좌우대칭 구도를 활용해버리는 장면하며, 수천개의 무덤사이를 내달리는 엘리 월라크의 모습을 보여줄 때, 엘리 월라크의 모습은 선명하게 잡아 화면 중앙에 고정해 보여주고, 배경에 흘러가는 무덤들의 모습은 흐릿하게 흘러가게 보여주는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압권입니다. 터져나오는 음악하며, 수천개의 무덤이 황야에 널려 있는 그 신화적인 광경이 뿜어내는 분위기하며. 관객이 가장 감정이입을 많이한 "못난놈"이 지금껏 그렇게 고생하며 개떡같이 인생 살아 왔는데, 드디어 인생역전의 눈앞에 도달하여, "무덤"들 사이를, 초조함과 기대감, 욕심이 극에 달하여 내달리는 감흥은 멋집니다.

비슷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우들의 표정을 화면 한 가득 보여줘서 총격전 직전의 긴장감과 공포심을 표현해내는 방법들은, 그야말로 노련한 솜씨로 적재적소에 잘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배우들의 표정연기를 드러내기에 좋은데,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력과 어울려 그만큼 효과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입부에 나오는 "나쁜놈과 마주 앉아 잡곡밥 먹는 장면" 등에서는 겨우 잡곡밥 먹는 장면 정도로 상당히 조마조마한 불안감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군복의 회색 먼지를 터는 장면"처럼, 먼지가 털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색깔로 이야기에서 중대한 국면 전환을 표현해내는 수법 같은 기초적인 연출 같은 것도 잘 궁리되어 있습니다. 즉, 어떻게 해서 관객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시각적으로 알릴 것인가하는 부분이 잘 구성된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총알을 잘 쏘아 밧줄을 끊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요즘 기술로 성의 없이 만든다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매트릭스 흉내내서 총알이 밧줄을 끊고 날아가는 모습을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고 치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먼저 한쪽눈을 감고 조심스레 소총을 조준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시각으로 멀리서 보이는 밧줄을 화면 보여줍니다. 이후,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보여주고, 곧 총소리를 들려 준뒤, 밧줄이 끊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소리와 화면을 차례로 늘어 놓으면, 매트릭스 흉내를 안낸다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총으로 밧줄 한 가운데를 쏘아서 끊었다는 것을 알아보기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밧줄 끊기 같은 기초적인 연출 외에도 다양한 표현들이 쉽게 내용을 와닿게 해주는 구경거리들이 군데군데 들어 있습니다.

한편, 장면배치도 이야기를 즐기기에 좋게 잘 되어 있습니다. "수갑 쇠사슬 끊기"라든가, "담배불로 대포 쏘기" 같이 신기한 장면이 중요한 전환점에 끼어들어서 인상을 남기는 것입니다. 상당수 영화들이 멋있는 장면을 만들어내면서도, 이야기상 별 볼일 없는 치장 정도로 써먹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영화는 멋있는 장면, 신기한 장면을 중요한 대목에서 써먹고 넘어가는 "타율"이 좋습니다. 완벽한 고증을 선전한 영화가 아니면서도, 권총, 소총이라든가, 지폐와 같은 중요한 고증에는 정성을 들였다는 점도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주는데 한 몫합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구성되기 전까지가 약간 방만한 듯 하다는 것과, 초반부에 나쁜놈이 엄청난 놈인척 등장한 것에 비해서는 활약이 좀 부족하다는 것. 스페인 군대가 도와주었다고는 하지만, 커다란 군중장면, 폭발 장면등 돈들인 장면들이 사소하게 소모되어 버린 면이 있다는 것.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지나치게 뛰어난 총잡이로 나오기에, 몇몇 총싸움 장면은 앞뒤의 사실적인 분위기에 비해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는 대목이 있다는 것. 그 정도가 비는 구석이겠습니다. 굳이 하나 더 꼽아 보자면, 음악이 좋기는 한데 다소간 남용된 부분도 없잖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이나고, 이 전설적인 음악이 다시 한 번 울려퍼지면, 뭐 그렇게 부족한 게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재미난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그 밖에...

많은 이탈리아 산 서부 영화 처럼, 스페인에서 촬영되었습니다. IMDB Trivia와 Wikipedia 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보면, 이 영화는 당시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어느 정도 협조를 얻어서 스페인 군인들의 지원을 상당수 얻었다고 합니다. 엑스트라로 스페인 병사 수천명을 동원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다리와 묘지는 군인들이 뚝딱뚝딱 만들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수천개의 무덤이 있는 묘지는 스페인군이 단 이틀만에 급조해낸 것이라고 합니다.

제 블로그에서 woopho님께서 정리해 주신 귀중한 자료에 따르면, 이 영화의 개봉제목은 "석양에 돌아오다" 이고, 당시 별칭이 "(속)석양에 무법자" 였습니다. 따라서 통칭 "돌아온 무법자"로 시중에서 불리우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일본 개봉 제목이 "석양의 건맨 - 지옥의 결투"이고, 이 때문에 재개봉이나 TV방영 당시 "(속)석양의 건맨"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헷갈리는 것은 이 영화가 1992년 비디오로 출시되면서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고, 따라서, 이 영화는 최근 출시된 DVD판에도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제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원제)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수입 당시 영어제목)
- 선한 자, 악한 자, 그리고 추한 자 (직역제목)
- 석양에 돌아오다 (개봉당시 제목)
- (속)석양에 무법자 (개봉당시 별명)
- 돌아온 무법자 (시중 통칭)
- (속)석양의 건맨 (일부 재개봉판 및 TV방영판 제목)
- 석양의 무법자 (90년대 이후 비디오, DVD 발매판 제목)

1985년에 나온 최영철 감독, 김인문, 이승현 주연의 코메디 영화로 "삿갓 쓴 장고"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속)석양의 무법자"의 패러디 장면이 잔뜩 들어간 영화입니다. 한편, 최근 제작되고 있는 한국 영화 "착한놈, 나쁜놈, 이상한놈" 역시, 그 제목을 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패러디 로 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등장할 때 배경음악으로 이 영화 주제곡이 깔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누가 등장할때 이런 음악이 다 깔리겠습니까" 라는 농담이 뒤따랐습니다.

영화 예고편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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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만화영춘 (萬花迎春, The Dancing Millionairess, 1964) 2007-11-08 12:46:38 #

    ... 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저는 그런 글을 몇 번이나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부영화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서부영화보다 "(속)석양의 무법자" http://gerecter.egloos.com/3472034 등등의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 소위 "스파게티 웨스턴"들이 더 인기가 많고, SF물 역시 한국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일본 S ... more

  • 게렉터블로그 : 쇠사슬을 끊어라 2007-11-30 15:56:33 #

    ... 바로 만주물 중에서 서부영화 풍으로 만든 것들이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만주물이다.) "쇠사슬을 끊어라"는 "(속)석양의 무법자" http://gerecter.egloos.com/3472034 에 나오는 "좋은 놈, 나쁜 놈, 못난 놈" 구도에 바탕을 두고 만든 영화입니다.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리우던 남궁원이 당연 ... more

  • 게렉터블로그 : 3:10 투 유마 (3:10 To Yuma, 유마 가는 3시 10분 열차, 2008) 2008-03-05 23:55:37 #

    ... 강조되기 때문에, 철도는 실제로 강조되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짜여져 있기도 합니다. (철도 회사는 돈이 많아서 나의 먹잇감) 물론, 이 영화는 "속 석양의 무법자" http://gerecter.egloos.com/3472034 처럼 본격적으로 남북전쟁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http://gerecter. ... more

  • 게렉터블로그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07-20 19:56:34 #

    ... 니다. 황야에서 혼자 도망가겠다고 설치는 송강호와 멀리서 여유롭게 이를 바라보는 장총 잡이 정우성의 모습은 엘리 월러크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온 영화( http://gerecter.egloos.com/3472034 )에서 그대로 가져온 장면입니다. 아무 음악도 없고 사람도 없는 황량한 순간에, 송강호의 모자를 이병헌이 쏘아 맞추는 장면은 리 반 클리프와 클린 ... more

덧글

  • 老姜君 2007/11/06 14:07 # 답글

    정말 오래된 영화지만, 한번 꼭 보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글을 써주셨네요.
  • 택씨 2007/11/06 16:56 # 답글

    설명을 들으니 남북전쟁하고 연관이 깊은 영화였군요.
    (별칭이) '석양에 무법자'였는데 왜 '석양의 무법자'로 기억을 하고 있었을까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쓰는 모양이죠?
    (저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써왔는데, 비슷한 것인가요?)
  • rumic71 2007/11/06 17:39 # 답글

    마카로니는 주로 일본을 위시한 아시아권, 스파게티는 미국에서 많이 씁니다. 정식으로는 '이탈리아 웨스턴'인듯 하고요.
  • 뚱띠이 2007/11/06 19:14 # 답글

    ?영화 예고편에는 리반클리프가 못난 놈으로 나오네요?

    그리고 마카로니 웨스턴 아닌가요? 저 고딩까지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칭했었는데......
  • 택씨 2007/11/06 21:25 # 답글

    rumic71님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뚱띠이 2007/11/07 01:43 # 답글

    rumic71님// 저도 무개념으로 달았다가 지금에서야 봤습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 존다리안 2007/11/07 20:59 # 답글

    게임 메탈기어 솔리드의 악역인 리볼버 오셀롯은 아무리 봐도 리 반 클리프의 오마쥬입니다. 원래 구소련
    장교라는 설정인데 스파게티 웨스턴 팬인데다가 고문광이라네요. 딱 저 영화의 "나쁜 놈"분위기입니다.
  • 게렉터 2007/11/08 12:49 # 답글

    老姜君/ 재미난 영화니까, 소개도 재미나게 되었지 싶습니다.

    택씨/ "석양'의' 무법자"가 맞습니다. 정정하겠습니다.

    뚱띠이/ 리반클리프가 못난놈으로 나온 사연도 꽤나 유명한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이 영화 항목이나 IMDB Trivia에 잘 나와 있습니다.

    존다리안/ 재미난 정보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인용된 것은 여러모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부 영화 FPS 게임인 데스페라도 인가 하는 게임에도 이 영화 오마주가 아마 나올 것입니다.
  • Bolivar 2007/11/16 18:41 # 삭제 답글

    소개하신 글을 1/3쯤 읽다가 '봐야겠구나'해서 읽던것을 멈추고 며칠간 틈틈이 보았습니다.
    그리고나서 나머지 글을 읽었습니다.
    멋진 영화를 접할 수 있어서 매우 즐거운 며칠간을 보냈습니다.
  • 게렉터 2007/11/19 13:24 # 답글

    Bolivar/ 감사합니다. 확실히 "며칠"에 걸쳐서 보기에 더 적합한 영화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 2016/06/07 23:3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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