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희춘(玉女嬉春, The Yellow Muffler, 1972) 영화

언뜻 알기는 어렵습니다만, 제목 "옥녀희춘(玉女嬉春, The Yellow Muffler, 1972)"은 번역하자면, "아가씨께서는 봄을 기뻐하신다" 정도가 될지 싶습니다. 제목이 비슷한 식으로 되어 있는 "만화영춘" 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만든 뮤지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많은 헐리우드 뮤지컬들을 모방, 조합해 만든 영화로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쇼 느낌이 많이 나고, 특히, 후반부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즉, 이 영화 역시, 뮤지컬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뮤지컬을 만드는 일에 관한 뮤지컬 영화"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 "옥녀희춘" 속에 나오는 뮤지컬 영화 "황색위건")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일본인 감독 이노우에 우메지(井上梅次)는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뮤지컬 영화를 여러편 만들었는데, 1967년작 "향강화월야(香江花月夜, Hong Kong Nocturne)" 같은 초기작 영화는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한편, 이 영화 "옥녀희춘"은 이노우에 우메지가 홍콩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홍콩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마지막 영화가 대표작인 "향강화월야"와 상당부분 닮은 점이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 시작 부분에 "향강화월야"가 나오기까지 합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향강화월야" 포스터. 포스터에 향강화월야에 주인공으로 나왔던 하리리의 얼굴이 보입니다. 포스터를 보고 있는 배우는 진의령으로, 두 배우는 이 영화 전에 나온 "아애금귀서(처녀수첩)"에서 같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뿐만 아니라, 보다보면, 음악, 안무, 연출, 줄거리 등등을 여러 영화, 다른 뮤지컬 등등에서 조금씩 따온 것이 눈에 뜨이는 영화입니다. 엉성한 모방에 그치거나, 어줍잖은 잡탕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이런 조각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있고, 가끔 나오는 화려한 장면들에는 공이 들어가 있으며, 그야말로 브로드웨이풍으로 연주되는 현란한 음악들은 낙관주의가 넘실거리는 이 영화의 이야기에 착 달라 붙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꽤 재미나고 그럴듯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이야기들을 빠르고 경쾌하게 진행시킵니다. 여러가지 갈등들이 많이 일어나고, 차례대로 꼬이거나 해결되거나 합니다. 이 영화의 위력은, 이렇게 이야기 진행 속도를 빠르게 갖고 가면서도 충실한 느낌을 주기 위해, 뮤지컬의 독특한 특징들을 잘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이 영화는, 연극, 무용, 오페라, 무대쇼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적인 과장된 연기 관습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꾸민다면, 보통 설득력있는 묘사를 시간을 들여 보여주거나, 조마조마한 감정과 세밀한 연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무대쇼라면, 그냥 남녀 배우가 서로 두손을 마주잡고, 같이 "사랑해요!" 한번 하고 넘어가도 됩니다. 그렇게 상징적으로 단순하게 이야기해서, 빨리 내용을 전달하고 춤과 노래로 연결만 해도 충분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게 더 박진감 넘칩니다. 이런 양식적인 연기를 군데군데 잽싸게 끼워 넣은 것은, 여러 영화의 모방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 가장 핵심적인 연결용 접착제 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초조한 느낌을 묘사하기)

이 영화는 이렇게 노래와 춤, 화려한 장면과 여러가지 굴곡이 있는 이야기들을 교대로 배치해서, 다른 영화에서 모방해온 재미난 점들을 뽑아내어서는 자연스럽게 비벼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 어느 영화, 어느 뮤지컬에서 가져온 장면들이 요소요소에 들어있는지, 여러분들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끝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보러 가는 영화의 한 장면)

시작 장면은 주인공인 세 자매가 영화관에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옥녀희춘" 영화 자체가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출시하고 이노우에 우메지가 감독한 영화인데, 먼훗날 DVD팔릴 것을 선전하는 선견지명이 있던 것인지, 극중 주인공들이 처음에 보러 온 영화도 쇼브라더스에서 출시하고, 이노우에 우메지가 감독한 "향강화월야" 입니다.

세 자매는 "브로드웨이 42번가" 같은 화려한 정통 브로드웨이 쇼 처럼 되어 있는 영화를 보고 매우 즐거워 합니다. 이들은 뮤지컬 영화에 완전히 빠져서 자신들도 언젠가 뮤지컬 배우가 되기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에 빠져서 놀다가, 자매들은 너무 늦게 집에 들어오게 되고, 아버지에게 혼납니다.


(세 딸들과 아버지)

아버지는 상당히 엄한 사람인데, 아버지 직업은 클럽 무대에 서는 마술사 입니다. 마술사이지만, 데이비드 카퍼필드와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주특기는 접시 돌리기이고,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고단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홀아비 입니다. 아버지는 노래와 춤을 잘추는 동료였던 애들 어머니와 결혼했었는데, 어머니는 힘든 삶을 살다가 그만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연예계에 뛰어드는 길은 인생 힘겹게 사는 고난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은 절대 연예계로 안들여 보낸다고 굳게 결심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딸들이 뮤지컬 영화에 푹 빠져 있는 모습에 대해 더 엄하게 꾸중합니다.


(연예인은 안돼!)

하지만 주인공들은 자꾸 노래를 하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오직 뮤지컬 영화의 명랑한 세계에서만 통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웁니다. 어림없는 거짓말 장난으로 마술사 아버지를 기절시켜서, 클럽에서 마술 공연을 못하게 합니다. 클럽에서는 무대에 설 사람이 없으니까 안절부절 당황하는데, 그틈을 타서, "저희들이 무대에 나가서 시간을 때우겠습니다!" 라면서 무대 위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 자매는 처음으로 클럽무대에 섭니다. 세 자매의 노래와 춤을 보고 관객들은 물론, 딸들인줄 모르고 신인가수가 자기 대타로 나간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까지 좋아하게 합니다.


(세 자매의 첫 무대)


(첫번째로 무대에 서는 장면 동영상: 우리의 꿈들~ 꿈~ 꿈~ 이런 내용의 노래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사실을 알고 아버지는 크게 화가 납니다. 마침, 클럽이 사정이 안좋아져서 클럽에서도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는 니들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는, 자기는 대만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영국 가수들은 독일에서 노래부르고, 필리핀 가수들이 한국에서 노래 부르듯이, 대만에서 새 일자리를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한편 첫무대에서 성공으로 계속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딸들은 아버지를 따라 대만으로 가야하나 어쩌나 고민합니다. 결국, 막내만 아버지를 따라가기로 하고, 첫째와 둘째는 홍콩에 남아서 계속 클럽 무대에 오릅니다.


(아버지)

자매들은 클럽 무대에 계속 오르고, 아버지는 대만에서 자리를 잡아 마술을 합니다. 그런데, 자매들의 공연이 점점 인기가 사그러 들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영화사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엑스트라, 스턴트맨 같은 잡다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두 자매는 아버지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편지를 써서 대만에 보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계에 자리를 잘 잡았으며, 대스타가 될것 같다고 써 보낸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두 녀석은 내 딸도 아니다" 라면서 투덜거리며 편지를 읽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딸 걱정 하는 마음이 어디가겠습니까. 아버지는 밤에 아무도 몰래 편지를 읽어보고, 딸들이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매우 즐거워 합니다.


(스타가 됐단 말이냐? 핫핫핫)

하지만, 실상, 딸들은 고생만 점점 심해져가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사에서 푼돈 받고 고생스럽게 일하고 있는 배우지망생, 감독지망생들과 친해지고, 유쾌한 이 사람들의 코메디 정신 때문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갑자기 스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는 상황에서, 대만에 있는 아버지는 갑자기 점점 마술을 못하게 되는데, 이유인 즉슨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버지는 마술을 할 수 없게 되어서, 다시 홍콩으로 돌아옵니다.

딸들은 성공했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는데 어쩌나 하면서 고민을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온다니 너무 반가워서 나갑니다. 딸들은 아버지를 계속 안심시키기 위해, 영화사 동료들에게 성공한 인기배우로 보일 수 있도록 거짓말에 동참해 달라고 합니다. 영화사 동료들까지 이 사기극에 동참해서 일행은 모두 항구로 가서 대만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마중합니다. 이 대목은 프랑크 카프라가 감독을 맡은 1961년 영화 "Pocketful of Miracles"의 영향이 명백합니다. 실제로 "Pocketful of Miracles"를 다시 만든 영화인, 성룡 나오는 1989년 영화 "미라클"과 "옥녀희춘"의 이 부분을 견주어보면 장면 연출 자체도 아주 닮아 보입니다.

딸들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고, 마침내, 대만에서 온 배에서 막내와 아버지가 걸어 나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장님이 되었고, 앞이 보이지 않아 선글라스를 쓰고 있습니다. 딸들은 아버지를 보고 손을 흔들며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는 딸 목소리가 들리니까 기분이 좋아서 손을 흔들며 자기도 딸을 불러봅니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어디로 손을 흔들어야 할지 몰라서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면서 손을 흔듭니다. 딸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계속 아버지를 부르면서 눈물 짓습니다.


(홍콩으로 돌아온 아버지. 옆에는 막내.)

그렇게 엄격해서 무서운 아버지였는데,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초라한 늙은이가 되어 돌아와서, 그저 딸을 반가워 하는 이 대목. 이 대목에서 아버지를 연기한 고문종(顧文宗)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연예인이 되는 것을 그토록 반대했고, 지금은 고생하다가 눈까지 멀어버렸지만, 그래도, 홍콩에서 딸들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뻐서 다시 만나는 그 감상이 전해집니다.

이 장면에서 딸들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 기뻐하면서도, 또 장님이 된 아버지를 보고 가슴아파하고, 아버지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느낍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쾌활한 척 합니다.

이 영화는 명랑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뮤지컬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시력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상당히 충격을 줍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호기심을 끌고 희비가 교차하는 감정이입도 강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신파극 스러운 묘미가 감동을 주는 부분인데, 그러면서도, 영화의 흥겹고 빠른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세 딸과 아버지, 딸들의 영화사 동료들이 함께 모여든 왁자한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또다른 가치입니다.


(아버지와 만나는 딸들)

딸들은 아버지를 데리고 안과 병원에 가서 수술비를 마련해서 수술을 하면 눈을 뜰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백내장이랍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뮤지컬 배우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뮤지컬 영화를 찍고 있는 현장을 구경시켜 주려고도 합니다. 영화사의 허드렛일 꾼에, 감독지망생 조연출, 액션 스타가 되고 싶은 스턴트맨 등등이 눈이 안보이는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면서, 영화사의 중역, 대단한 거물인척 하면서 얼렁뚱땅 속이고 넘어갑니다. 이 부분은 눈 안보이는 사람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희극수법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에서, 이 영화는 갑자기 아주 낭만적인 멋을 부립니다. 딸들은 눈이 안보이는 아버지를 데리고 아무도 안 쓰는 빈 세트장에 데려다 놓습니다. 눈이 안보이는 아버지에게 이곳이 지금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작 뮤지컬 영화를 찍고 있는 현장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합판 조각만 굴러다니는 썰렁한 창고 같은 곳이지만, 화려한 무대와 조명이 꽉 차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뮤지컬 지망생인 딸들이 정말 뮤지컬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짜 카메라 앞에 섭니다. 그리고, 영화 감독 지망생인 조연출이, 정말 영화 감독이 된 것처럼, 현장을 지휘 합니다. 영화 배우가 되려고 하는 스턴트 맨들과 엑스트라들이 이 텅빈 세트에서 아버지를 속이는 거짓말 속에서 영화 배우인척 합니다. 그냥 아버지 속이는 사기지만, 이들은, 그 속에서 자기가 꿈꾸던 그 모습 그대로를 연기합니다. 이 사람들은 열정에 넘쳐서 연기를 하고, 연출을 합니다. 눈이 보이지는 아버지는, 이들의 노래소리와 발소리, 말소리와 이야기만 듣고, 이 장면이 정말 꿈처럼 멋진 영화 촬영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 이곳은 대작을 찍고 있는 환상적인 세트입니다.)

영화가 감개 무량한 것은, 이게 영화기 때문에, 이런 상상속의 모습이 그 순간 정말로 화면 속에 펼쳐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상상 장면, 혹은 아버지 앞에서 인기배운인척 하는 딸의 상상 장면, 혹은 가짜 감독의 상상 장면인것 처럼, 순간 화면이 돌변하면서 진짜 화려한 뮤지컬 영화 화면을 보여줘 버리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상상장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상상장면이 영화 화면 위에 펼쳐지면서, 순간적으로, 이 영화는 초보 영화인들의 꿈과 낭만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이 영화 속에는 이렇게, 꿈이나 공상 장면을 부드럽게 뮤지컬로 연결하는 장면이 있고, 뮤지컬 속에서 배경과 음악이 경쾌하게 건너가는 장면도 많습니다. 이런 장면은 무대 뮤지컬에서는 구사할 수 없는 뮤지컬 영화만의 멋입니다.

텅빈 무대 위에서 가짜로 촬영을 하는 장면이 갑자기, 꿈 같은 상상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여주려면, 무대 뮤지컬 공연은 많은 시간이 필요 하게 됩니다. 초라한 옷을 입고 있는 엑스트라 배우들이 화려한 옷차림을 걸친 인기배우가 되도록 의상이 모두 교체되어야 하고, 빈 창고나 다름 없는 세트가 환상적이고 꿈 같은 세트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렇게 바뀌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이게 상상 장면이라는 느낌은 거의 살아나지 않게 됩니다. 더군다나, 상상장면이 끝나면, 다시 초라한 빈 세트의 현실로 바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는 편집을 쓸 수 있고, 화면이 움직이는 연결수법을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순간적인 전환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상상속의 영화 촬영)

이제 주인공들은 아버지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노심초사 합니다. 결국 큰 딸이 좋아하던 감독 지망생이 악역으로 나오는 "성격 나쁜 인기 배우"와 협상을 해서 겨우 돈을 빌립니다. 이제 부터 이 "성격 나쁜 인기 배우"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리나 라몬트"에 해당하는 역할로 활동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사랑은 비를 타고"를 흉내내기 시작합니다. 큰 딸을 사랑하는 감독 지망생은 돈 빌리느라 "리나 라몬트"와 가까이 하다가 자신의 꿈과 소신이 흔들흔들하게 되어 괴로워 합니다.


("리나 라몬트")

그런데, 빌린 돈으로 아버지는 수술을 하지만, 왜인지 여전히 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을 환불 받고, 감독 지망생은 "리나 라몬트"에게 돈을 갚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독 지망생은 굳게 결심하고 과감한 도전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뮤지컬 영화 견본 예고편을 만들어서 영화사 사장에게 보여줘서 투자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 뮤지컬 영화 견본 예고편을 만드려고 결심하는 부분은 "사랑은 비를 타고"를 그대로 가져 왔습니다. 아주 똑같이 베낀 것은 아니고, 진 켈리가 데비 레이놀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과 영화사에 길이남은 명장면인 빗속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워낙에 원판이 멋진 장면이라서, 이 장면은 여전히 보기 괜찮습니다. "Singin' In The Rain" 대신에 들어간 노래도, 비슷하면서도 가사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괜찮은 곡입니다.


(Singin'~ in the rain~)


(노래장면 동영상: 우산 하나, 두 사람의 마음 어쩌고 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들과 주인공의 친구들은 합심해서 뮤지컬 영화 견본 예고편을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영화사 사장에게 보여주는데, 반응이 괜찮습니다. 영화사 사장은 흥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그러자, 여기에 질투를 느낀 악역 "리나 라몬트"와 그 똘마니 영화 감독이 훼방을 놓습니다. 견본 예고편을 보는 도중에 갑자기 소리가 안나오게 꺼버린 것입니다. 큰일입니다. 간신히 주목 받는데 성공했는데, 소리가 안나와서 어영부영하다가 그냥 잊혀질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영화를 선보이는데 "소리가 문제를 일으킨다"라는 부분도 역시 "사랑은 비를 타고"를 모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부분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에 나오는 아이디어를 멋지게 뒤집어 활용해 버립니다. 소리가 갑자기 안나와서 큰일이 나게 되자, 영화사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시사회 상영실에 몰려와서 모두 즉석에서 노래를 직접 불러버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멋드러지게 그자리에서 합창을 해서, 소리가 안나오는 영화에다가 실시간으로 더빙하듯 상영실에서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이 부분은 카루소가 노래를 일부러 더 크게 불러서 극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가난한 관객들도 노래를 듣게 했다는 이야기 같은 낭만이 서려 있습니다. 혹은 지하철에 끼인 부상자를 구하기 위해서 수천명의 시민이 힘을 모아 지하철을 움직였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한, 뭉클한 맛도 있습니다. 결국 영화사 사장은 영화를 제작하기로 하고, 이제, 주인공들과 감독 지망생은 정말로 영화배우, 감독이 되게 됩니다.


(상영실에서)

한편,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게 수술을 해 주었던 의사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때 관객은 아버지가 눈이 꼭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혼자서 계단을 내려오고 걸어가는 동작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을 영화 화면상에서 강조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화면에 발맞추어 의사가 꺼내놓는 문제도 다름 아닌 그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 자기 생각에는 완벽하게 수술하고 치료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눈이 보여야 할 듯 한데, 왜 눈이 안보이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눈이 안보니야고 재삼 물어봅니다.


(시치미 떼시기는, 하우스 박사를 데려와야 바른대로 답하시겠소?)

아버지는 눈이 안보인다고, 끝까지 잡아 뗍니다. 의사는 마침내 포기를 하고, "그렇다면, 최후의 수법인 '심리 치료법'을 이용해서 눈을 보이게 하는 수 밖에 없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그리고, "심청전"을 변용한 듯한 느낌마저 드는 유쾌한 장면을 하나 펼칩니다.

무엇인고 하니 의사가 가면서, 신문을 하나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넌지시 말을 던집니다. "오늘 당신 딸들 기사가 신문에 실렸는데, 떠오르는 뮤지컬계의 샛별이라고 크게 칭찬하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매우 흥분하고 기뻐하면서, 신문을 집어 들고 딸이 나온 기사를 보면서 감동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딸이 나온 기사를 "읽으려고 하는 모습" 때문에, 사실은 눈이 보인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의사에게 아버지는 모든 사실을 고백합니다. 사실, 아버지는 딸들이 가난하게 지내는 배우 지망생임을 미리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나니, 딸들이 수술비를 빚지게 할 수가 없어서, 수술비를 환불받으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수술에 성공해도 눈이 계속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을 고백한 아버지는 의사에게 지금 딸들을 보러 가고 싶다고 하여, 두 사람은 영화 촬영 현장에 갑니다.


(신문기사)

딸들은 아버지가 눈이 보이게 된 것을 알고 감동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묻자, 멋쟁이 의사는 "새로 개발한 '심리 치료법'이 성공을 거두었다"라고만 답해 줍니다. 눈이 보이는 아버지는 이제 정말로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화려한 무대 앞에 서 있는 딸들을 보고 감격합니다. 그리고 딸들도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예의 엄격한 모습으로 호통을 치면서, "연예인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눈물을 흘리다니, 이 무슨 못난 모습이냐"라고 합니다. 이에, 딸들은 눈물을 닦고 카메라 앞 무대에 올라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 속 뮤지컬 영화인 "황색위건(黃色圍巾)"의 공연을 펼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Show must go on)

이렇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버지와 딸들 간의 베어나오는 정과, 가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꿈에 매진하는 소재를 브로드웨어 뮤지컬의 밝은 분위기와 연결시켜 놓은 모양이라고 요약 할만합니다.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흉내내어 만들던 뮤지컬 영화의 이점을 잘 살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또 그 동안 뮤지컬 영화를 만들면서 쌓아온 인력과 장비를 손쉽게 활용하는 이야기를 잘 꾸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60년대말 70년대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 전성기 시절의 촬영현장 모습을 간접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이, 스턴트맨, 뛰어내려! 뛰어내리라니까!)

전체적으로 단점이 눈에 별로 뜨이지 않는, 정과 희망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굳이 단점을 찾아 본다면, 여기저기서 영향을 받은 음악과 안무가 많아서 독창적인 것이 부족하다는 점과, 주인공 배우들이 좀 미진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남자주인공 비슷한 인물들은 거의 비중이 없습니다. 남는 것은 여자배우들인데, 여자주인공 삼남매 중에 가장 큰 비중을 가지는 사람은 맏딸 역의 정패(丁珮) 입니다. 정패는 강인한 모습에 운동신경이 좋아서 주로 범죄물이나 활극에서 강인한 전사 역할로 우리에게 친숙한 편입니다. 그런만큼, 정패의 모습은 굳건하고 듬직한 맏딸 모습에는 꽤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신파극 이야기지만 기본적으로 유쾌한 뮤지컬이고 코메디 정신으로 만발한 이 영화에는 좀 안울립니다. 오히려, 코메디와 밝은 뮤지컬에 딱어울리는 배우는 둘째를 연기하는 진의령(陳依齡)입니다. 하지만, 진의령은 얼굴은 무척 많이 나오지만, 대사는 아주 적은 비중 작은 역할입니다.


(정패)

(진의령)

(정패와 진의령)

하지만, 배우들이 조금 약한가 싶긴 해도, 역시, 아버지역을 연기한 고문종의 모습은 탄탄한 경험의 멋을 잘 보여줍니다. 양식화된 표현으로 가득찬 이 뮤지컬 속의 "옛날 식 연기"도 아주 잘 하고 있고, 엄한 아버지이지만, 본심은 선하고 자식사랑으로 가득찬 그 모습도 매우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몇몇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이 아버지, 고문종의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뮤지컬 영화만의 박력있는 연출들도 눈에 뜨이는 것이 그 빠른 속도감과 발랄한 느낌을 더합니다. 무대 뮤지컬은 넓은 무대위에서 화면이 펼쳐지고 관객 스스로 자기 시선을 두는 곳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움직여서 보여주고 싶은 것을 정해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무대 뮤지컬에서 우산을 흔들면 그냥 우산 크기의 우산이 흔들리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에서는 우산을 펼칠때 화면이 다가가면, 화면 전체를 우산으로 다 가려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대 뮤지컬에서, 보이는 곳을 전부 우산으로 가리려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우산을 기계장치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냥 공연 영상을 촬영하는 수법이 잘 들어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노래 부르는 한 사람의 얼굴을 먼저 보여줍니다. 그래서 감정을 담은 사람 표정이 먼저 제시됩니다. 그런뒤에, 부드럽게 화면이 물러나서 몸 전체와 무대를 차례로 보여줘서, 춤 동작과 무대 세트들을 그 다음으로 전달해 줍니다. 이런 화면 전환이 춤 자체의 안무와 동선이 어울리도록 짜여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움직이면서 춤의 표현을 더 풍성하게 해 줍니다.


(비누 방울이 사람 얼굴 만하게 보입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노래를 하는 와중에 노래에 담기는 내용에 관한 자료 화면이 시간과 공간으 초월해서 화면에 펼쳐진다든가, 여러 명이 대화 장면에서 한 사람이 말할때마다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따라가는 부분 같은 것도 지혜롭게 활용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은 비를 타고"를 모방한 부분에서는, 이야기 진행에 따라 노래의 부분 부분이 끊기다가 이어지다가 하면서 진행되는데, 이런 편집은 무척 효과적이었습니다.

"노래의 첫소절을 부르는 장면을 찍는 장면"이 나온 뒤, 촬영 뒷 이야기에 해당하는 줄거리가 진행되고, 그 이후에 "노래의 둘째 소절을 부르는 장면을 직는 장면"이 나온 뒤, 뒤이어지는 촬영 뒷 이야기에 해당하는 줄거리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영화를 보는 장면 속에서 마지막 "노래의 세번째 소절"이 잇달아 나오는 것입니다. 한 곡의 이어지는 노래인데, 그 노래의 부분부분이 전혀 다른 시간에서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첫번째 촬영과 두번째 촬영의 상황이 다르고 후반작업을 끝낸 완성된 영화 상영판은 또 다르기 때문에, 이어지는 하나의 노래지만 화면에 펼쳐지는 춤과 세트도 계속 다른 것을 써서 풍성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다양한 것을 보여주면서도, 하나의 노래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일성과 응집성도 마구 높여 줍니다.


(밤에 옥상에서 연습하기)

줄거리만 달랑 적어 놓고 본다면, 사람이 실명하고, 외국으로 건너갔다가 정착에 실패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고생하는 이야기만 줄창 하는 영화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상쾌한 분위기로 끌어나가면서도, 소재 고유의 희로애락은 살려내는 것은 이 영화의 선명한 매력입니다. 의상이나 안무가 깔끔하지 못하고 조금은 엉성한 부분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약간의 실수로 좋은 연주와 노래에 충분히 어울리는 수준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여러 군데서 모방해온 듯한 노래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에 잠깐이지만, 신중현의 "빗속의 여인"이 멀리서 들려오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 록큰롤 밴드인 애드훠 에서 "빗속의 여인"을 발표한 것이 1964년이니까, 이 영화가 나온 1972년에는 충분히 홍콩까지 퍼져나갔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 시간은 1967년경인데, 이 기준으로 봐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영문제목 "The Yellow Muffler"는 극중극인 "황색위건"의 번역입니다. 말그대로 노란색 머플러라는 뜻인데, "노란 리본"처럼 사랑에 대한 기다림의 상징으로 영화 속에 잠시 활용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소재는 아닙니다. 보통 남의 딸을 높여서 "아가씨"라고 부를 때 중국어 "옥녀"라는 단어를 활용하기 때문에, "옥녀희춘"이라는 원제목이 좀 더 영화 내용에는 가깝습니다.

비교적 자료가 적고 덜 알려진 편이며,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도 못 본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노우에 우메지 감독의 마지막 쇼브라더스 영화로 손색이 없는 재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에 모방한 장면 들이 너무 많아서 그동안 언급이 안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영화 내용이나 장면 사진을 보시고, 다른 영화/뮤지컬을 모방한 부분이 있어 보이시는게 생각나실 때, 덧글로 알려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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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쇼브라더스 고전 홍콩 영화 목록 2014-10-05 00:19:41 #

    ... The Web of Death, 1976) 오둔인술 (五遁忍術, Five Element Ninja, Chinese Super Ninjas, 1982) 옥녀희춘(玉女嬉春, The Yellow Muffler, 1972) 용문금검 龍門金劍 The Golden Sword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Killer Clans 제삼류타투 (第三類打?, 제삼류타문, 지옥, ... more

덧글

  • rumic71 2007/11/21 15:32 # 답글

    훗날 브루스와 스캔들 일으킨 그 정패인가요?
  • 게렉터 2007/11/22 15:34 # 답글

    rumic71/ 그 정패 맞습니다. 정패에 관한 이야기는 좀 더 널리 알려진 "정패스러운 역할"로 정패가 나오는 영화를 이야기할 때 한 번 길게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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