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글을 게재하는 신문/방송에 대해
수능 시험이 있던 바로 그 다음날 올렸던 "수능을 망쳤을 때 보는 영화들" http://gerecter.egloos.com/3487020 이라는 것이 최근 몇몇 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늘자로는 일간스포츠에서 블로그 글을 소개하는 지면에 실린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직접 기사를 담당하시는 기자분 보다는, 이러한 지면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지금까지 e메일로 받은 연락을 참조해 봐서는, 담당 기자분 께서는 수동적으로 작업하시는 입장인 경우가 많다고 짐작되고, 그 위치라든가, 실제로 신문이 나오기까지 재량을 발휘하실 수 있는 여지도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단, 신문이 "신문"인 만큼, 당연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글을 편집하거나 수정해서 게재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실을 지면에서 밝히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지면상의 한계도 있거니와, 간혹 신문의 편집방향에 따라 블로그에 실린 글을 일부 첨삭하거나 편집하려는 시도는, 현재 현실 한계 안에서는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그러한 일을 충분히 통보 받아왔고, 적어도 제 글들은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협의하에 편집/첨삭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원 저작자에게 통보하거나, 협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편집하거나 첨삭한 글은, 신문에 게재할 때에도 편집하고 첨삭했다는 말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간스포츠" 같은 경우에는 지난번 같은 경우에는 발췌/편집했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써 주셨습니다만,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면상의 문제로 "편집했음" 이라는 말 한마디를 추가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사실관계를 명확히하고 저작물을 정확히 다룬다는 면에서 이런 점은 잘 지키는 것이, 저작권이 기업의 핵심인 신문사로서는 중요시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는 좀 다른 제안으로, 어지간하면 블로그의 글을 그대로 게재하는 경우에는 최대한 전문을 온전히 살렸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어떤 블로그에 나온 소식, 어떤 곳에 도는 정보를 게재하려 한다면, 그냥 일반 기사의 형태로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 이런 글이 인기다"라는 형식으로 취재/보도 하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왠만한 경우에는 블로그의 글을 게재하려는 협의를 할 필요도 없고, 일반적인 보도 원칙에 따라 적당한 저작권과 사생활 존중에 대한 배려만을 해주면 대부분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당수 매체들은 보다 더 좋은 내용을 싣기 위해, 직접 블로그의 글을 구매하여, 전문을 게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전문을 게재하는 것이 단순히 내용을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즉, 블로그에 실린 글 자체에 완결성이 있어서, 그대로 게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진행하는 일입니다. 블로그의 글을 게재하는 지면을 따로 구성하여, 많은 자원을 할애하는 것은, 단순히 취재내용으로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이 작성한 저작물 자체에 가치를 느껴서 이것을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전파하려고 하는 사업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문 기사를 보면, 이렇게 "블로그의 글"을 게재하는 곳에서 신문사에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글이 재가공되어, 단순히 또다른 기사의 모양만을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지면의 문제와, 여러 글을 다양하게 다루는 분배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가공해서 실어버리면, 원래 블로그 글 자체의 재미나 가치는 살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즉, "신문에 싣기 적합하도록"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글이 재미가 없어져 버린 다는 것입니다. 비록 편집자 입장에서 "신문에 싣기 적합해 졌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대신에 "재미라는 가치가 없어져서, 신문에 실을 이유가 없어지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색한 주객전도 입니다. 장미꽃이 아름다워서 지갑에 넣어 다니고 싶은데, 지갑에 장미꽃이 들어가지 않으니, 꽃잎을 다 떼 버린 뒤에 쭉정이만 들고다니면서 이제는 지갑에 장미꽃을 넣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즐거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 올라와서 기사화 되었던, "역대 국제 인질극 구출작전에 관하여" http://gerecter.egloos.com/3304836 같은 글의 경우, 이 글은, 구출작전 자체를 묘사하고 극적으로 서술하는 말하자면 무용담 문학이나 액션물 같은 재미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수일에 걸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 내용을 소개했지만, 분량문제로 내용은 모두 첨삭되어 건조하게 인질극 구출작전 사실관계만을 알려주는 글로 바뀌었습니다. 내용이 딱딱하고 심심하고 지루한 것은 둘째치고, 이런 내용이라면, 굳이 제가 구성해서 쓴 글을 구매할 필요 없이, 신문사 측에서 직접 자료를 조사해서 기사를 꾸미면 충분합니다.

이번에 기사화된 "수능을 망쳤을 때 보는 영화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목부터 시류에 영합하는 느낌이 강한 이 글은 기실 "수능을 망쳤을 때 보는 영화들"을 정말로 잘 골라내서 소개하는 글은 아닙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려서,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라든가,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들은 그냥 보편적으로 감동적인 영화일 뿐이지, 수능을 망친 상황에 특효약이 될만큼 딱 들어맞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린 까닭은, 그런저런 "감동적인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을 살고, 어려운 일을 극복해 나가는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느끼셨겠지만, 즉, "수능을 망쳤을 때 보는 영화들"이라는 글은 거기에 소개된 영화 자체보다는, 그 영화를 하면서 앞뒤에 늘어 놓았던 배경 이야기들, 영화를 소개하며 늘어놓았던 농담들에 초점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농담과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재미가 있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해보려고 한 것을 읽으시는 분들도 많이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기사화 하셨던 기자분 입장에서도, 분명히 이런 부분은 느끼셨을 것입니다. "수능을 망쳤을 때 보는 영화들"이라는 글에서 영화 목록 소개보다, 영화에 대한 소개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늘어놓은 이야기가 가치있다는 점을 간과하셨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워낙에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구성은 제한되어 있으니, 내용을 잘라내고 첨삭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덜렁 영화 제목만 남아 있는 기사가 되었지 싶습니다. "수능을 망쳤을 때 보는 영화들"이 제목인데, 영화 소개를 아예 안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재미가 없을 지언정, "신문에 싣기에는 적합한 글"을 만들어 그냥 실어버린 것일지 싶습니다.

괜히 말이 너무 길어져 버렸는데, 요컨데, 블로그의 글을 기사로 옮겨 실어서 그 효과를 얻으려면, 정말로 효과를 얻으실 수 있도록, 과감하게 지면과 편집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애초에 신선한 내용, 발빠른 정보를 얻기 위해 블로그 지면을 기획했다면, 정말로 그 기획에 걸맞도록 활용하는 것이 정말로 지면과 신문사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길일 것입니다. 신선한 내용을 얻기 위해 지면을 기획해 놓고, 몇몇 관습적인 문제 때문에 신선한 내용을 버려버리면, 기획만 남아 있고, 실제로는 비용만 소모할 뿐인, 무의미한 일이 될 위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by 게렉터 | 2007/11/26 11:46 | 기타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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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11/26 13: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07/11/26 15:39
생각없이 일을 하면 그리되는 모양이군요.
블로그의 글을 가져와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전에는 많이 없던일이라 아직 미숙헤서 그렇게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미디어에서 익숙해지고 경험이 쌓이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봐야겠네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7/11/26 20:30
장미꽃의 비유가 참으로 적절 OTL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11/28 11:17
비공개/ 지적 감사합니다. 반영했습니다.

사바욘의_단_울휀스/ 누가 먼저 제대로 활용해서 효과를 거둔 사례가 업계에서 대두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전체적으로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잠본이/ 좀 닭살스럽게 왜 하필 장미꽃을 떠올린 것인지는 제 스스로도 좀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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