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영화

"우리 동네"는 연쇄 살인마를 다룬 살벌한 내용으로, 전체 이야기의 시작과 구성 방식의 개요는 참신한 뼈대로 출발한 영화 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로 풀어놓은 모양을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인 표현을 보면, 대개 좀 진부한 수법에 젖어 있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렇습니다만, 또 그런만큼 반면에, 낯설고 어려운 시도를 하는 대신에 예전에 다른 영화에서 흔히 보던 방식으로 익숙하게 연출하는 것을 잘 해내기도 하는 영화입니다.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하기에는 좀 답답하고 따분한 면도 있고, 그렇다고 지긋지긋한가 하면,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담배를 문 것은 느와르 형사처럼 보이려고 했기 때문인가?)

내용을 요약하자면, 참신한 것이라고 제안한 출발점은 이렇습니다. 무비클리셰스 닷컴 ( http://www.moviecliches.com/ ) 같은 사이트에 나오는 소위 "연쇄 살인마 영화의 공식" 이라는 것을 일부러 몇 개 위반해서 참신한 것으로 내세워 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보통 악당과 맞서 싸우는 영화 치고, 어린이가 살해당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대부분 어린이는 죽기 직전에 주인공의 대활약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초등학교 학생이 비참한 꼴로 죽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식으로 일부러 "공식을 깬다"를 내세우려는 장면이 이 영화 속에는 몇개 정도 들어 있습니다.

한편, 영화의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려고 넣은 좀 더 의미 있는 개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목 처럼, 영화의 무대가 "우리 동네"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쇄 살인마 이야기의 무대는 보통 도시 배경 느와르 영화 처럼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대도시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만, 이 영화는 나른하고 조용한 중소도시 내지는 대도시 변두리의 평화로워 보이는 지역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연쇄 살인마 영화라면, FBI요원이나 어떤 분야의 천재, 정신과 의사 뭐 이런 사람들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것들이 많지만, 이 영화는 문방구 주인, 수의사, 집주인과 방세 밀린 세입자 등등이 등장인물로 나옵니다.


(원룸 주민 오만석)

이런 참신한 점들이 충분히 살아나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이런 참신한 점 같아 보이는 요소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로는 충분히 참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연쇄살인마 영화"라면, 대표적으로 생각하고 모방하려는 대상이 되는 것은 그 바닥에서 돈을 왕창 끌어모은 "양들의 침묵" 같은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대규모 제작사에서 비싼 배우들을 고용해 돈을 많이 써서 만든 것들입니다. "우리 동네"와 좀 더 가까운 부류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예산을 많이 못 쓴 영화, 좀 덜 알려진 영화, 기타 참신하려고 노력했던 다른 영화 등등을 되돌아보면, 이미 "우리 동네"가 제시한 개성을 짚고 넘어가는 영화는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복수는 나의 것"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 한국 영화의 대표작만 해도, 그 개성적인 면모의 상당부분은 "우리 동네"에서 개성으로 살리려고 끼워둔 부분과 일치합니다. 인기를 끈 유명한 흥행작 영화들에서 "어린이가 죽는 장면"이 안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 영화에서는 어린이나 애완동물이 죽는 장면이 또 꽤 자주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전문지식으로 뭉친 천재 수사관들과는 대조적으로, 투박하고 헛점이 많은 주인공이 활약하게 하는 것은 최근 한국영화 속 형사/탐정들이 무척이나 자주 겪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사는 수갑을 들고)

두번째로 영화가 좀 재미없어진 것은 이런 핵심을 표현하고 꾸며대는 수법이 그나마 그런 개성 적인 면을 내세울 수 있는 소재에 별로 안어울리는 조금은 고루한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이 영화 속에 죽은 어린이가 나오는 장면은 "어린이가 희생 되었다"라는 예외적인 내용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매달려 있는 시체1 역을 아역 배우가 연기하는 것 뿐입니다. "하녀" 같은 영화만 해도, 뭘 잘 모르고 장난기 많은 어린애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갈등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출도 거기에 맞춰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어린이가 희생자"라는 사건이 벌어지기는 하고, 이런 것을 영화의 "특이한 점"으로 내세워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향후 내용에서도 특별히 특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런짓을 하는 살인마가 그런 사건에 견주어지고 어울리는 특색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냥 시체1 역을 연기하는 배우를 성인 배우 대신 아역 배우를 기용해서, "공식을 배반했다"라고 어디가서 소개할 수 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포스터 뒤편에도 보이는 매달린 시체들)

이런 식으로 개성이 있는 소재를 갖다놓고는 막상 펼쳐내는 방법은 별다를 바 없이 한 것이, 전체적으로 영화를 좀 약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중소도시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지역이 무대가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냥 화면에 무심코 지나가는 배경 건물들이 그런 부류일 뿐,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거기에 어울리는 재미난 모습을 잡아내는 부분은 없습니다.

초등학교, 문방구, 동물병원, 대포집 같은 작은 "동네"를 구성하는 배경들이 계속 화면에 잡힙니다. 그런데도, 이런 배경의 독특한 면모를 잘 활용하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동네의 실재감이나 현실감, 건물과 장소들의 위치와 방향감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이 영화에 나오는 "문방구"는 문방구가 아니라 다른 아무 가게로 바뀌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영화 속 사건을 봐도 문방구에서 지우개도 아니고 공책도 아니고 "액자"를 사는 장면이 중요하게 활용 될 뿐입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문방구 위층에 말끔하게 꾸며진 펜트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는 등, 문방구와는 외려 안어울린다면 안어울리는 것이 도리어 더 많이 나옵니다.


(왼쪽이 "문방구 주인")

그런 저런 면 중에 이 영화에서 가장 발목을 잡아 채는 부분은 영화 속에서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 어쩌고를 위해 집어 넣은 이런저런 연출입니다. 이 영화는 옛날 홍콩 무술 영화에서 장철이 감독한 영화 등등에서 자주 나오던, 살짝 변태스럽게 꺾인 "끈끈한" 의리 장면이 거의 정석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는 깊은 우정으로 맺어진 두 남자에게 그야말로 연극적인 장엄한 비극이 닥쳐오는가 하면, 이 두 사람이 괜히 길바닥에서 뒤엉켜서 같이 붙어 구르고 "주먹질 하면서 우정"을 표출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장철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영화 속 남자 등장인물들은 자주 웃통을 벗기 마련이고, 배우들도 왕우, 강대위 처럼, 오만석, 류덕환 이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우리 동네"에는 "내 친구의 원수라니, 가만두지 않겠다. 우와와와와왕!" 하면서 분노의 일격을 가하려는 장면도 어김없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취향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판에 박은 묘사를 그냥 이유없이 따라 하다가 영화 분위기를 흐려 버리는 일이 과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이 영화 속에서는 현실감을 높이는 대사를 만들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그냥 영화 대사 사이에 "거친 남자 스럽다는 욕설"을 좀 섞는 것 밖에 없어 보입니다. 특히나, 이 영화 속에는 "끈끈한 의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학창시절 같이 나쁜 짓 했던 추억"을 제시 하고, 이거 하나만 계속 반복해서 써먹습니다. 대포집에서 소주 마시면서, 학교 다닐 때 담배 피우다가 선생님께 걸렸던 일을 이야기 하면서 "자식 그 때 참..." 하면서 허허 웃는 장면이 나와서, "서민적이고 친근한 감상"을 표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류의 장면들은 자주 나와서 거의 "너 답지 않게 왜이래/나다운 게 뭔데?" 같은 느낌마저 납니다.

지겹고 너무 꾸민 이야기 같다는 것 자체보다, 이런 내용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게 이 영화에 거의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오만석 눈빛 봐라...)

차라리 "친구" 같은 영화 처럼 일부러 복고적인 느낌을 써먹고, 그런 우중충한 느낌을 조직폭력배들이 썩은 짓 하는 이야기에 연결시킨다면 대강 어울릴 것입니다. 하지만, 차분한 동네를 무대로 하고, 그 동네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보여주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한 동네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이 각각 다가오는 연쇄살인을 마주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도움이 되기는 커녕, 현실적인 배경에서 차분한 이야기를 꺼내다가 갑자기 고전신파극으로 휙 꺾여버리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풀려가는 영화를 보자니, 제목은 "우리 동네"라기 보다는 "세 친구" 정도가 오히려 훨씬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다.

다른 영화를 가져와서 설명을 해보자면,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꺼내 볼만합니다. 경쾌하고 저돌적으로 난리를 치다가 갑자기 "사실 나도 비극적인 슬픈 어린시절이 있었어요" 해버리는 대목이 막 끼어 드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게 잠깐도 아니고 영화 중반이후를 다 물들여 놓은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그냥 남용되는 이야기 연결수법을 급하게 갖다 붙인 듯 보이는 것도 몇 있습니다. "여고괴담"에서 "혈의누"까지 맨날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도 막판에는 피/비가 마구 퍼부어 내리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눈물 흘리면서 대사들을 멋부리며 읊어 댑니다. "부모를 엿보는 어린이의 충격"을 보여주는 부분은 "서편제" 이전시절의 유치한 발상에서 별로 멀지 않은 듯 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바람끼 있는 여자는 상처를 남긴다"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그게 무슨 옛날 신성일과 김영애 나와서 이상한 일본 소설 흉내내는 "하와의 비밀"영화나오던 시절 같은 갑갑한 느낌도 납니다.

갑자기 의무감에 사무쳐서 별 연결없이도 그냥 튀어 나와버리는 현실 사회 비판 대사도 한 두군데 있습니다. 영화 제목이 "우리 동네"인 만큼 이 영화에서는 집값 걱정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집값 걱정"은 본격적으로 영화 전체가 쩔어버리도록 광활하게 써먹을 수도 있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냥 한 장면에서 앞뒤와 아무 상관없이 잠시 나올 뿐입니다. 그렇다고, "살인의 추억"처럼 사회 비판 소재가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과도 거리가 멉니다.


(감독님 이래도 될까요? / 괜찮아. 집값, 사채문제 이런거 소재로 넣어서 영화잡지의 "편집자의 말" 같은 데서 대선철에 맞춘 시사 잡담에 우리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보자고.)

이 영화는 영화의 중심 줄거리가 흘러가는 모양은 충분히 흥미진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수께끼의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연쇄 살인에 엮여 들고, 살인범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는 모습도 나오고, 형사들이 차근차근 살인범에게 접근하는 단계도 긴장을 높여 갑니다. 펼쳐지는 사건의 진상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면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영화 앞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이 영화는, 살인자 이야기를 다룬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영화들과 비슷한 재미를 주는 것입니다.

꼽아 보자면, 떠오르는 영화는 "프렌지" http://gerecter.egloos.com/2285001 입니다. 세 사람 구도로 되어 있는 것도 비슷하거니와, 살인이 들킬까봐 걱정하며 조마조마해 하는 살인범의 모습을 재미거리로 삼은 것도 비슷합니다. 영화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살인 장면 하나는 살인 수법은 동일하고 보여주는 방식도 꽤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살인, 죽음, 죄악 같은 엄청나게 어두운 소재를 다루지만, 그런 난리통에 나오기 마련인 부조리에서 씁쓸한 웃음을 끌어내는 대목이 비슷합니다. 이런 씁쓸한 웃음은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에서 송강호 코메디에도 보입니다만, "우리 동네"에 나오는 어둡게 웃긴 장면은 "프렌지"에 좀 더 가깝습니다.


(프렌지에 나오는 그 영국 아줌마는 출연료도 많이 받았다던데.)

아깝게도, 꽤 구도가 안정되어 있던 줄거리 조차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극적인 공포 살육으로 치달으면서 약간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살인범이 들킬까말까 조마조마하던 상황은 간단하고도 심심하게 끝나버리고, 차근차근 연쇄살인의 비밀을 쫓아가던 일도 "앗! 갑자기 생각났다!"로 짤막하게 드러나고 맙니다. 어두운 코메디 역시 처음에는 많이 나올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중반 이후로는 비극의 소용돌이에 빠져 그냥 슬며시 사라져 버립니다. 다채로운 면모를 드러낼 듯 시작하지만, 그냥 다른 것 없는 슬프고 어두운 영화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사건이 점점 복잡해지고 이상해져갈 초장 무렵에는, 소설가 오만석이 "홈즈"로, 형사 이선균이 "와트슨" 역을 맡아서 정통파 수법으로 서서히 범인을 향해 흥미진진하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문득 와트슨이 갑자기 혼자서 홈즈 역할도 해버립니다. 그러면서 홈즈-와트슨의 수수께끼 풀기 구도도 무너져 버립니다. 자연히 주인공의 재미를 보여줬던, 먹고 살기 고달픈 소설가 오만석의 어두침침한 심리 보여주기도 중단되어 버립니다.

특히, 이 영화는 끝까지 보면, 주인공이 십자가 모양으로 시체를 널어 놓는 쇼를 벌일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살인에만 초점을 맞춰 보면, 연쇄 살인마가 십자가 모양으로 시체를 걸어놓는 사건으로 출발해서, 그 전체 진상이 밝혀지면서 끝나는 내용입니다. 이런 짓은 뭔가 예술적인 과대망상증에 빠져야 할만한 짓인데, 이 영화의 살인마는 담백하게 분노-원한-치정 관계로 살인 저지르는 평범한 살인자일 뿐입니다. 괜히 십자가 모양, 십자가 인형 이런 것이 나올 이유도 없고, 그런 모양으로 시체가 나와서 더 재밌어지는 건덕지도 없습니다. 기독교 문화에 대한 소재가 두어가지 등장해서 최소한의 분위기 유지 정도만 해 줄뿐이지, 살인마의 개성과 특색으로 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국의 동네 기독교 문화는 이래저래 이야기거리로 써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 이런 실패는 좀 허망하기도 했습니다.


(신돈 따라다니던 원현스님의 표정)

이 영화에서 연출과 장면 구성이 가장 재미난 장면은 두 군데 였습니다. 하나는 소화기 뒤집어쓴 오만석이 뛰어드는 부분입니다. 이 장면은 멀쩡한 사람을 소화기라는 일상적인 소품하나로 갑자기 악마처럼 보이게하는 영화다운 아이디어도 잘 살아 있고, 죽는가 마는가 하는 아슬아슬한 갈등에다가, 어두운 코메디의 괴기스러운 느낌도 잘 살아 있습니다. 불이 켜진 화장실의 밝은 조명과 어두운 밤, 화장실 바깥 공원이라는 조명의 대조도 강렬합니다. 특히 이 장면에서 오만석이 노래를 무척 잘불러서 장면의 맛을 확 살립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면입니다. 허무할 정도로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듯하고 강렬한 내용으로 꾸민 것치고는 너무 사소한데 배치되어 있습니다.

연출이 재미난 또다른 부분은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얼치기 심리학 "도시 전설" 입니다. 프로이트의 상담사례를 좀 더 극적으로 변화해서 만든 것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한 때 무려 "FBI의 살인자 식별용 심리테스트" 어쩌니 하면서 유행했던 것입니다. (친척 장례식에서 남자를 만나서 첫눈에 반하는데, 어쩌고 왜 죽였을까? 하는 이 이야기 http://hehehe.co.kr/msul/wkct_-BB-EC-C0-CE-B8-B6-C1-F8-B4-DC-C4-FB-C1-EE.htm 말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고, 이제는 좀 철지난 느낌도 드는데, 그래도 영화속 이선균은 "와트슨" 역할을 위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이야기에 빨려들어서 일부러 틀린답도 말해주고 그럽니다.

이야기 자체가 진부한 것과는 별도로 이 이야기는 영화속에서 연출이 썩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환상적인 분위기로 깔끔하게 펼쳐지는 것도 좋았거니와, 흑백 대조하며, 창백한 색감을 강조하는 모양새하며 바로 눈에 들어옵니다. 장면 연출이나 등장인물들의 표정도 공포물 스럽게 잘 잡혀 있어서, 이 이야기를 화면으로 꾸민 좋은 예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 집어 치우고, 그냥 유명한 무서운 이야기들 http://gerecter.egloos.com/3339929 을 차례로 주르르 영상화해서 영화나 TV극으로 꾸며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전체 영화에서 비중은 매우 약합니다. 복선으로서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복선으로 중요하게 활용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너무 널리 알려진 유행지난 일본산 무서운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 참신한 충격처럼 써먹은 구성도 싱겁습니다. 소재는 기괴한 상황에 놓인 작가가 동네에서 벌어지는 꼬인 연쇄살인이라는 개성있는 것인데, 그에 비해서, 안이한 남의 이야기 빌려오기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본격 심리학 버라이어티" 라는 TV쇼를 보는데, 무슨무슨 연구소장이 나와서는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원만한 성격입니다."해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너 거기 어디야? / 바로... 너 뒤에...)

중반에 상당시간동안 주인공 자리를 빌어가는 이선균의 연기는 상당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특유의 한 음절 한 음절이 선명하게 들리는 발음은 효과적입니다. 고뇌하는 비극의 주인공에서, 얼렁뚱땅 생활 농담을 주고 받는 직장인의 모습까지 다 잘 알아볼 수 있게 전달해 줍니다. 좋은 복선이 되는 "왜 죽였어?" 같은 대사를 던지는 부분은 그야말로 영화 속 의도에 딱 맞아드는 면도날 처럼 예리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반, 후반에 활약하면서, 좀 더 주인공에 가까운 오만석의 연기는 이선균에 비하면 좀 오락가락합니다. 아예 쩔어서 우중충하게 살고 있는 소설가 모습을 연기할 때나, 반대로 아예 감정이 치솟아 주체를 못하는 모습 연기할 때는 충실합니다. 하지만, 두 모습을 부드럽게 전환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 각본에 어색한 대사들이 떨어질 때는 대사를 읊는 모습이 좀 부실해 보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편인데도, "정상인의 생각으로는 범인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같은 너무 얕은 대사들을 읊을 때, 이선균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비교되어 버리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출연 분량이 많은, 제일 1등 주인공 스러운 인물치는 가끔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류덕환은 연기력을 화려하게 보여주기에는 출연 분량이 작은 편이고, "세븐"의 케빈스페이시 처럼 짧아도 괴력을 보여주는 영화도 아니라서 일단 반쯤은 조연 급입니다. 하지만, 몇몇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에서는 굳건합니다. 이선균이나 오만석 처럼 선명한 색채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반대로 진짜 현실의 사람 같은 생동감이 광기어린 모습과 잘 이어집니다. 개와 눈싸움 하는 장면 처럼 혼자 화면을 덮어버리는 부분은 출중한 개인기를 뽐내는 장면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어색한 대사에서는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고, 영화 내용에 비해서 너무 어려보이고, 너무 순박해 보이는 모습이 안어울릴 때도 많습니다. 중간에 변장하는 장면이 하나 나오는 데 이 부분은 분명히 고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세인트"의 발 킬머 처럼 변장 자체의 기술을 뽐내지도 못했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처럼, 배우의 동안을 절묘하게 응용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변장한 류덕환으로 보일 뿐으로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옛날 농담: 개보다 더한 사람인가, 개보다 못한 사람인가, 개같은 사람인가)

부족한 내용들이 약간씩 걸리적 거리는 영화이고, 참신한 이야기의 발상에 비해 기술적인 면이 충분히 뒷받침 되지 못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배경음악은 "세븐"등에서 쓰던 살인 사건 하나가 묵시록 적인 대파국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장중한 곡을 활용하는 편인데, 남용되기도 했고, 가벼운 장면에서 안어울리게 끼워넣은 것도 많습니다. 오히려 고딕적인 느낌이 풍기는 바로크 풍의 건반악기 소리를 강조하는 건조한 곡이 더 좋았지 싶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는 그런 부류의 음악이 잠깐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더 아쉽습니다. 그랬다면, 이 영화속에 거의 삭제되어 버린 어두운 코메디 요소를 부활시켜서 비슷한 면이 있는 영국 영화 "죽음의 게임 Death Trap" http://gerecter.egloos.com/3055109 처럼 꾸밀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신에 닳고 닳은 연출들이 그만큼 매끈하게 잘 되어 있는 부분은 괜찮습니다. 살인자의 얼굴표정, 칼질하는 손 등등을 이용해서 장면을 묘사하는 것들은 대체로 멀쩡하게 들어 가 있습니다. 특별히 깜짝 놀래키는 효과를 쓰는 것도 아니고, 몸이 잘리고 쪼개지고 하는 것을 우악스럽게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자극적이고 섬짓한 느낌을 잘 살리고 있으며, 암울하거 어두운 좌절감도 충분히 베어 나옵니다. 좀 비슷하게 반복되는 구석이 있고, 파괴력이나 충격감은 별로 표현되어 있지 않아서,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이런 부분에서는 갑자기 다른 소리를 다 안들리게 한다든가, 비가 내리는 소리나 삐걱거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같은 소음만 잘들리게 확대해서 긴장감을 주는 음향 연출 등등은 차분하게 되어 있습니다.


(암울)

호기심을 환기하는 소재, 적절한 전환점들의 묘사는 괜찮고, 하나씩 하나씩 회상장면을 제시하면서, 얽히고 설킨 관계를 조금씩 드러내서 마지막에 완결된 진상을 다 드러내는 각본도 그 대강의 골자는 적당한 흡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못지않게 미숙한 점도 많아서 확실한 가치를 갖는 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매체를 통해 적당히 알려져 있고 동시에 연기 잘한다는 평판도 있는 배우 세 명을 모아서, 성실하게 짜낸 영화라고 선전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런 바탕에 비해서는, 분명한 초점이라든가, 선명한 매력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 영화에는 횟수는 작지만,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상상속으로 등장인물이 들어 가고, 회상 장면이 현실 장면과 겹쳐지는 등등 시공간을 초월하는 환상적인 연출이 군데군데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양이나 질이 좀 미진합니다. 이런 연출을 기막히게 멋지게 표현한 TV쇼 "하우스" http://gerecter.egloos.com/2470600 의 유명한 121. Three Stories 같은 에피소드에 비하면 확연히 부족합니다. 저는, 기왕 지사 이런 기교를 사용한 만큼, 좀 더 순수하게 환상적인 느낌으로 이런 연출을 더 본격적으로 많이 팍팍 활용했으면 어떤가 하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그래서, 나른한 소도시 오후, 멀리서 아이들 노는 소리나, 학교에서 야구부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그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슴프레한 정신병적인 환영으로 연결되었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그 밖에...

주제로 삼고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독특하다는 말이 있는데, 제 생각에 이런 소재는 이 영화가 모방하고 있는 다른 영화들에서 오히려 더 충분히 잘 펼쳐졌다고 생각합니다. 가깝게는 "올드 보이"만 해도 이 영화의 뒷 사연과 비슷한 이야기를 더 잘 꾸며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모홍진은 "노랑머리2" 에 배우로 등장한 적이 있으며, 각본의 각색자로 되어 있는 김유민은 "노랑머리"의 감독이자, "노랑머리2"의 각본을 맡은 사람입니다. 이 양반은 1988년작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때부터 각본을 쓴 적이 있는 사람인데, "커피 카피 코피"나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의 각본을 맡은 것으로도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한가지는, 막판에 오만석이 무기로 망치를 집어들고 길을 나서자, 갑자기 영화관의 관객들중 상당수가 저마다 "망치" "망치..." "망치." 하면서 키득키득 웃었다는 것입니다. 망치에 무슨 코메디거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까?

문제의 이문세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약간 원망스러울 수 있는 영화 입니다.

주인공들의 이름도, "경주", "효이", "재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일 멀쩡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이선균의 역할이 재신입니다. 대체로 인물들의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재신"의 이름은 마지막 "ㄴ"만 빼면 무척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우디와앨런 2007/12/03 00:32 # 삭제 답글

    우리동네를 보고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어 이것저것 검색해보다 들어왔습니다.
    여러면에서 상당히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저도 역시 이 영화에서 이선균씨 연기가 자연스럽고 참 좋더군요.
    오만석씨는 본래의 목소리가 미성인데다 발음이 상당히 정확한 편이라
    본인 목소리로 대사를 치면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글 잘 봤습니다.
  • 리얼 2007/12/03 15:27 # 답글

    아직 우리 동네를 보지 않아서 글은 일단 도입부와 마무리 부분만 읽었습니다. 조만간 우리동네를 볼까 했는데 보고 난 다음에 읽을지 읽고 난 다음에 볼지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오만석의 망치는 아무래도 오대수의 장도리와 겹쳐지는 부분으로 느꼈기 때문 아닐까요.

    살포시 링크도 하고 물러납니다. 좋은 글 잘읽겠습니다.
  • 게렉터 2007/12/05 01:34 # 답글

    우디와앨런/ 감사합니다. 오만석은 대사가 이상하게 짜여진 부분에서는 헤메는 부분이 분명히 꽤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리얼/ 영화 보시고나서 또다시 돌아와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아테 2007/12/05 22:06 # 답글

    우연히 들어왔다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만석씨 연기에 대해서 "두 모습을 부드럽게 전환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하시는데, 그 연결되지 못한 느낌은 아마도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이 잘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까 7~8씬이나 잘렸더군요. 주로 경주의 내면과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씬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감독분도 기자시사회때 오만석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시더군요^^;
  • 게렉터 2007/12/05 23:19 # 답글

    아태/ 그랬다면, 미리 시나리오에서 자르고, 애초부터 잘린 상태의 비중 줄어든 인물로 연기했다면 또 어떻게 보였을까 싶습니다.
  • 구린동네 2007/12/07 15:41 # 삭제 답글

    항상 재미있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헌데, 게렉터 님은 영화나, 문화쪽 일을 하시는지요 지식의 폭이 넓고 필체에서 전문성이 느껴집니다.
  • 구린동네 2007/12/07 15:45 # 삭제 답글

    아 그리고 저도 우리 동네를 개봉 첫날에 보았는데, 의외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문제점은 영화 끝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x 재미없다' 라고 내뱉더군요 저도 기대 이하였고요
    아마도 광고응-두 살인마의 대결- 이런 식으로 해서 두놈이 서로 머리싸움을 하는 영화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지루한 영화가 아니었나 합니다.

    뭐 나름 탄탄한 구성이긴 하지만, 관객의 기대와 많이 틀렸다고 해야 하나요?
  • 게렉터 2007/12/08 21:00 # 답글

    구린동네/ 전문가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 조별 2008/01/19 14:55 # 삭제 답글

    ㄹㄹㄷㄹㄷㄹ우ㅗㅝㅗ
  • 얼레뽕인데 2008/01/19 14:55 # 삭제 답글

    ㄹㄷㄹㅇㄴㄹ호ㅜ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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