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선: 우리의 대통령 선거 진기록들
이하는 제주도 선관위가 인터넷에 공개한 역대 대통령 선거 관련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이하의 자료들은 15대 대통령 선거까지의 자료입니다.


@ 지금까지 15대의 대통령이 있었던 대한민국 정부는 비록 독재 권력이 구색 맞추기 형 간접 선거를 실시했을 망정, 매 대통령 선출때 마다 직접, 혹은 간접 선거를 수행하여 대통령 선거를 수행했다. 유고로 자동승계한 대통령/대리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역대 모든 대통령은 "선거"라는 형식을 어떤식으로든지 겉치레로라도 거쳐갔다.


@ 제1대 대통령 선거는 1948년 국회에서 간접 선거로 이루어졌는데, 기호1번 대한 독립 촉성회 소속 이승만과 기호2번 무소속 김구, 기호 3번 무소속 안재홍이 후보로 등록된 가운데, 이승만 후보가 91.8%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 역대 대통령 중 제4대 대통령만 2명으로 인정하는데, 이는 3.15부정 선거로 당선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4.19 혁명으로 물러나고, 윤보선 대통령이 내각책임제 하에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4.19 혁명의 역사성을 기리기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4대 대통령으로 윤보선을 5대 대통령으로 하지 않고, 두 사람 다 4대 대통령으로 기록한다.


@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큰 득표율로 당선된 사례는 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유신 헌법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된 박정희 후보였다. 1978년 실시된 이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99.961%의 지지를 얻었다. 같은 체계에서 전두환 후보는 1980년 99.960%의 지지를 얻어 11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2위로 기록되고 있다. 3위 역시 박정희로, 1972년 8대 대통령 선거에서 99.91%의 지지를 얻었다.


@ 직접선거로 뽑은 대통령 중에서 득표율 최대는 3.15부정선거 즉 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획득한 88.69%가 최고이다.


@ 한편 대통령 선거 중 가장 낮은 득표율로 당선된 후보는 13대 대선에서 당선된 노태우로, 1987년 실시된 선거에서 단 35.9%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반대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면서도 선거에 떨어진 대선 후보는 1971년 7대 대선에서 43.5%를 획득하고도 패배한 김대중이었다.


@ 기록이 명확히 공개된 대선 후보 중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던 사람은 1971년 7대 대선에 기호 5번 자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이종윤으로, 0.144%의 득표율을 얻었다. 그 다음은 1992년 14대 대선의 정의당 후보 이병호로 0.148%의 득표율을 얻었고, 그 다음은 1997년 15대 대선의 공화당 허경영 후보로 0.150%의 득표율을 얻었다.


@ 가장 간발의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은 박정희가 처음으로 출마한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였는데, 이때 윤보선과 1.4%의 지지율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 다음은 1997년 당선된 김대중 현 대통령으로 2위인 이회창 후보와 단 1.5%의 지지율 차이 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 가장 나이 많은 대통령 후보는 1960년 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승만 후보로 당시 86세 였으며, 소위 3.15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


@ 한편 가장 나이 어린 대통령 후보는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추풍회 오재영 후보로 당시 43세였으며 3.7%의 지지율을 얻었다.


@ 학력으로는 서울대학교 출신 후보자가 가장 많아서, 시대순으로 류치송, 김영삼, 박찬종, 이병호, 이인제, 김한식, 이회창, 권영길 후보가 서울대학교 출신이었다.


@ 그밖에 독특한 학력으로는 2대 대선의 신흥우 후보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의과 수료생, 4대 대선의 변영태 후보는 중화민국 북통주협화 1년 수료생, 12대 대선의 김종철 후보는 일본 메이지 대학교 졸업생, 6대 전진한 후보는 일본 게이오 대학교 졸업생, 1대 이승만 후보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 4대 윤보선 후보는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 졸업생, 2대 조봉암 후보는 구소련 모스크바공산대학교 2년 수료생이었다. 한편 2대 대선의 이시영 후보는 학력란에 "일제 통치이전 조선시대 과거 급제"라고 기록했다.


@ 가장 많이 대선에 탈락한 사람은 김대중으로 1971년 7대 대선, 1987년 13대 대선, 1992년 14대 대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일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대선에서 2번 이상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사람인데, 세 사람은 출마해서 떨어지는 일 없이 출마하면 반드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었다. 반대로 그 외의 대통령 후보들은 대부분 떨어진 경력이 있는데, 예외는 박정희 암살 이후 대통령이 된 최규하와 1987년 13대 대선 당선자였던 노태우이다. 최규하는 임기중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노태우 전대통령은 퇴임후에 5.18 유혈사태와 군사반란의 책임을 물어 징역 2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 아래는 지난 선거인 16대 대통령 선거에 관한 기록입니다.


@ 이번 선거에서 대선 사상 최초로 도입된 전자 개표기는 "한틀시스템"이라는 회사의 제품이다. 이 회사는 1993년 지하철 승차권을 넣는 기계나, 현금 입출금기의 돈을 넣는 부분을 만드는 것으로 출발했다.


@ 이번 대선은 역대 대선 중 가장 투표율이 낮은 70.2%였다.


@ SBS 선거 개표 방송도중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47.5%의 개표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절반이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총투표자수가 가장 적은 지역은 인천 옹진군으로 8164명만이 투표를 하였다. 이에 비해 투표자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 송파구로 34만4989명이 투표했다. 이는 옹진군의 42배를 넘는다.


@ 244개 개표소 중, 1,2위 후보인 노무현, 이회창 이외의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난 개표소는 한군데도 없었다. 1,2위 후보 외에 어떤 후보도 1위 득표 개표소를 차지하지 못한 극심한 양강구도는 최근 9번의 대선을 치르는 동안 구경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간접선거포함)


@ 사회당 김영규 후보는 오직 0.090%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기록 보유자이던 1971년 7대 대선 자민당 이종윤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저의 득표율이다. 이는 15대 대선에 출마했던 공화당 허경영 득표율의 2/3정도이다.


@ 사회당 김영규 후보는 244개 개표소 중 단 한 곳 인천 연수를 제외하고는 243개 그외 모든 지역에서 최하위로 나타났다. 인천 연수에서는 김길수 후보가 최하위를 차지했다.


@ 244개 개표소 중 노무현은 142개 개표소에서 승리했고, 이회창은 102개 개표소에서 승리했다. 이것은 전체 중 58%쯤 되는 지역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 했다는 것이다.


@ 최하위 후보인 김영규 후보가 가장 많이 득표한 지역은 전북 장수로, 이곳에서 김영규 후보는 0.37%를 득표했다. 김영규 후보의 고향 김천의 득표율도 전국 개표소 중 110위로 중간보다도 쳐졌다.


@ 불심으로 대동단결 김길수 후보의 총 득표량은 이한동 후보의 70%에 달한다.


@ 불심으로 대동단결 김길수 후보는 전북 임실에서 무려 1.73%의 지지를 얻었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 최하위 김영규 후보의 10배를 뛰어넘는 지지이다.


@ 불심으로 대동단결 김길수 후보는 전북 임실, 전북 순창, 전북 고창, 전남 영광, 전남 장흥, 전남 신안, 전남 함평, 전남 고흥, 전남 완도, 전남 진도 개표소의 무려 열 개 지역에서 권영길 후보를 앞섰다.


@ 이회창 후보는 46.6%를 득표하고도 패배하여, 대한민국 역사상 패배한 대선 후보중에서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되었다. 이것은 1971년 7대 대선에서 43.5%를 획득하고도 패배한 김대중의 기록을 제친 것이다.


@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울산 북구로 22.16%를 득표했다. 울산 동구와 울산 중구가 이 부분 2위, 3위였다.


@ 경기도 안양 동안 개표소의 개표 결과는 이회창 47%, 노무현 49%, 권영길 4%로 나타났다. 이것은 전국 전체 투표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소수점은 반올림하여 계산함)


@ 이번 선거에서 무효표는 22만3211표였다. 이것은 이한동, 김영규, 김길수 후보의 표를 모두 합한 것 보다도 많고, 김길수 후보가 획득한 표의 4배, 김영규 후보가 획득한 표의 10배 보다도 많다. 즉 사회당 김영규 후보는 잘못찍은 표인 무효표의 1/10 도 못되는 득표를 기록한 것이다.


@ 무효표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경남 의령으로, 전체 득표의 4.5%에 육박했다. 이것은 이 지역의 권영길 득표율 보다도 1%이상 높으며, 김영규 득표량의 40배에 가깝다.


@ 투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북 장수로 80%였으며, 투표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충남 아산의 62.3%였다.


@ 노무현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라남도 목포로 95.92%의 지지를 얻었다. 이회창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대구 중구로 80.42%의 지지를 얻었다.


@ 이회창의 득표율이 가장 낮은 지역도 전라남도 목포로 2.92%의 지지를 얻었다. 노무현의 득표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대구 수성구로 16.60%의 지지를 얻었다.


@ 이번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의 숫자는 1020만을 넘는다. 이것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가되느냐를 결정한 노무현과 이회창 후보 표차이의 18배에 가깝다.
by 게렉터 | 2007/12/18 21:36 | 기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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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돼지에겐 국가도 법률도.. at 2007/12/19 01:17

제목 : 대선 기록에 관한 감상
대선특선: 우리의 대통령 선거 진기록들@ 사회당 김영규 후보는 오직 0.090%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기록 보유자이던 1971년 7대 대선 자민당 이종윤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저의 득표율이다. 이는 15대 대선에 출마했던 공화당 허경영 득표율의 2/3정도이다.@ 사회당 김영규 후보는 244개 개표소 중 단 한 곳 인천 연수를 제외하고는 243개 그외 모든 지역에서 최하위로 나타났다. 인천 연수에서는......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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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7/12/18 21:57
전두환이 언제 두 번 했죠? 선거는 한번 뿐이었을텐데...
Commented by dameh at 2007/12/18 22:16
전두환이 11대랑 12대 취임우표 두개 있는걸로 봐서 두번 한건 맞는듯(..)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12/18 22:29
80년에 5.18 이후 가을에 유신헌법 간접선거로 11대 해먹고, 그해말에 국가보안법 만든뒤
다음해인 81년에 5공화국 헌법으로 다시 간접선거로 12대 해먹었습니다.
Commented by 슈퍼쌤통 at 2007/12/18 23:30
오타가 있네요. 채규하가 아니라 최규하가 맞죠.
Commented by 게렉터 at 2007/12/19 00:18
슈퍼쌤통/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FAZZ at 2007/12/19 00:59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의외로 파워가 셌군요.
Commented by 류즈이 at 2007/12/19 03:50
마지막이 좀 씁슬 하군요 =_=...
Commented by 궁극사악 at 2007/12/19 06:21
김영규 후보가 허본좌의 굴욕을 커버해줬군요;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7/12/19 10:48
마지막 줄이 결론이네요.... '뽑을 사람 없음' 칸을 만들어야 한다니까요!
Commented by 강설 at 2007/12/19 12:42
"일제 통치이전 조선시대 과거 급제" 이 분 비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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