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88년도 댄스곡이다 기타


원래는 "15년전의 흘러간 댄스곡들 모음" 처럼, 요즘에는 잘 연주도 안되고, 가수도 상당히 잊혀졌고, 역사적인 위치도 별로 평가 받고 있지 못한, 흘러간 댄스 곡들을 몇 곡 모아보려고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말만 해도 자료가 별로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금으로부터 20년전. 그러니까 1988년의 댄스곡들을 유행했던 것 중심으로 모으고 글을 좀 덧붙여 보았습니다. 1988년 365일에 한정하기에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삼을지 애매해서, 임의로 1988년을 기준으로 1년차이를 포함해서, 1987년곡들과 1989년의 댄스곡들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몇몇 중요한 댄스곡들, 정말로 흘러가버려서 잊혀진 댄스곡들이 분명히 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찾는데 실패해서 유명한 것들 위주로만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하의 모든 영상들은 다음TV팟 에 올라와 있고, 퍼가기를 할 수 있게 허용되어 있는 것들을, 다음에서 지원하고 있는 퍼가기 기능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대를 사랑해 - 세또래

88년도의 반짝 가수로 살짝 인기를 끌고, 별다른 인정도 못받고, 이후에 영향도 크게 끼치 못한채 사라진 가수로는 단연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세또래"입니다. "세또래" 이야기를 하자면, 뭐니뭐니해도 한국 가요계의 유구한 풍습인 일본 가수 모방해먹기 전통에 따라, 일본 가수 이야기를 해야할 것입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일본 대중음악이 공식적으로 유통되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래저래 비공식적으로 유통되어 인기를 끌던 일본 가수들이 몇 있었는데, 80년대에 소리소문없이 인기를 끌던 일본 가수로 "소녀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10대 소녀 세 명으로 팀을 만들어서 발랄한 모습으로 경쾌한 춤을 추게한 것으로, "소녀대"는 그 결성을 따져보자면, "소년대"의 자매팀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소녀대"는 86아시안게임 - 88올림픽에 발맞추어, 서울가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Korea" 라는 곡을 유행시키면서, 국내에서 인기를 더욱 굳히게 됩니다. "소녀대"는 이처럼 한국 홍콩, 대만 등지에서 인기를 끌어서, 중국어권판 "소녀대" 모방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의 결과로, 한국에서는 지금 소개해드리는 소녀대 모방팀 "세또래"가 생겼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세또래"는 "소녀대"와 딱히 다른 개성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찌보면 좀 무모한 모방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위의 노래 "그대를 사랑해"도 일본어 번역투 가사에, "소녀대"의 일본 노래풍 작곡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가사 자체가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세또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10대 소녀 가수로서 상당한 화제거리였습니다만, 결국 여러 한계로 1년여만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세또래 중 한 사람이 거의 10년후인 90년대 중반에, 또다시 유명한 모 10대 소녀 가수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묘기에 가까운 "나이 속이기"를 펼친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한국 가요계에서, 이후, SES, 핑클, 지금의 소녀시대, 원더걸스 까지 계보를 그려볼 수 있는 그 꼭대기 위치에 일본의 "소녀대"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또래"는 그 첫 모방시도라는 정도의 의의로 기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어 - 소방차

일본의 "소녀대"를 모방한 팀이 "세또래"라면, 일본의 "소년대"를 모방한 팀이 "소방차"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또래"와 달리 "소방차"는 대부분의 노래들에 국내 유명 제작진이 참여하여 더 성의있게 제작했고, 또 10대 여중고생 인기몰이에 초반부터 성공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소방차"는 단순히 일본의 "소년대"만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대"등 다른 일본 10대 팀의 다양한 특징들을 골라낸 뒤 비빔밥 처럼 비벼서 모방해버리면서, 표절시비 속에서도 나름대로 개성도 있고, 질 좋은 노래를 뽑아내는 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그 팀원인 김태형, 정원관 등은 개인기 로도 충분히 실력이 있어서, 결국 소방차는 80년대 후반을 휩쓸던 최고의 댄스가수팀으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소방차는 87,88,89,90년 동안 꾸준히 열광적인 인기를 얻으며 다양한 곡들을 자랑했습니다. 일본 가수들의 모습을 잘 모방해 짜집기한 멋진 춤에, 썩 잘어울리는 괜찮은 노래 솜씨, 그럴싸한 화음, 단박에 인상을 남기는 특유의 서커스 스러운 묘기와 무대 연출력까지 어우러지는 재주를 보여줬습니다. "소방차"는 결국 80년대 일본 댄스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노래들을 재미나게 펼쳐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방차는 헬스 클럽에서 만난 세 젊은이가 의기투합해서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기획사에서 이 세사람을 "소년대" 모방작으로 만들어보자라는 작전에 부합해서 데뷔를 했는데,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준 팀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방차는 중간에 팀원이 한 번 교체되기도 했지만, 1995년 "G까페"를 화려하게 성공시키며 탄탄한 실력과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팀원 중 한 명은 성폭행 혐의의 누명을 써버려서(결국 무혐의 판결), 인생이 반쯤 풍비박산 나버리는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만, 정원관은 여러가지 사업을 하면서,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TV버라이어티쇼에서 활약하고 있고, 김태형은 NRG로 유명한 소속사의 사장으로 활동중입니다.


널 그리며 - 박남정

"소방차"가 10대들의 인기를 받은 팀이었다면, 가수 단독으로 10대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넓은 층의 인기를 받은 가수로는 박남정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개해드리는 "널 그리며"는 한국 댄스곡 역사 안무의 전설로 남아 있는 ㄱ ㄴ 춤을 남기면서, 거의 88년도 댄스곡의 화신으로 불타올랐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는 ㄱ ㄴ 춤은 처음에는 고대 이집트 벽화, 상형문자에서 착안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박남정의 특징은 "널 그리며"에도 나오듯이, 노래 자체가 요즘도 한국에서는 "코요태"등의 노래를 통해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트로트 댄스 - 댄스 트로트 노래 성격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 "널 그리며"도 그런식으로 되어 있고, 박남정의 노래 부르는 창법도 그런 노래에 무척 적합합니다. 박남정의 기묘한 점은 바로 이 댄스 트로트 - 트로트 댄스에 당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마이클 잭슨을 잘 모방해 접목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널 그리며"의 노래가 빠르다는 점을 이용해서, 별로 안어울릴수도 있을 듯한, 마이클 잭슨 계열 춤을 현란하게 연결시켜서 색다른 댄스곡을 만들어냈고, 의상, 안무에서 조명, 백댄서 까지 마이클 잭슨 의 여러 요소들을 잘 모방해서 그럴싸하게 써먹었습니다.

박남정은 "널 그리며"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서 비교적 데뷔가 잘 안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도, 첫 데뷔와는 달리 "널 그리며"에서 트로트 댄스 - 댄스 트로트 에 마이클 잭슨 을 잘 결합했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남정은 "전국 디스코 경연대회" 수상자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급성장한 후에도 80년대가 끝나기까지, 후속곡을 유행시키면서 충실하게 인기를 유지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다소간 과장된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 10대 중심 가수들이 인기를 끄는 세태에서, 박남정은 비교적 다양한 연령대의 취향을 넘나드는 TV/밤무대에 동시에 적응한 댄스 가수라서, 적응하기에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서태지와 아이들" 태풍을 견디지 못하면서, 박남정은 최일선에서 완전히 물러서게 됩니다.


나홀로 뜰앞에서/ 리듬 속에 그 춤을 - 김완선

적어도 80년대 한국에서는, 세계 댄스곡 최고의 남자가수는 마이클 잭슨이었고, 여자가수는 마돈나 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일 것입니다.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사람이 박남정이라면, "한국의 마돈나"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은 단연 김완선일 것입니다. 춤재능과 춤의 개성으로만 따지면,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누렸던 가수로, "'춤 잘추는 여자가수'로서는 지금까지도 자신있게 김완선을 능가했다고 할 수 있는사람이 있겠는가?" 라고 말할만큼 재능을 거의 충격에 가깝게 뽐낸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김완선은 10대의 나이에 진작 부터 연예계에 뛰어들어서, 처음에는 인순이의 백댄서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어린 나이이던, 87년 무렵부터, 매우 개성이 강한 기묘한 창법과 인상을 팍팍 남기는 얼굴 표정, 눈빛, 가히 파괴적인 춤실력 등으로 단숨에 인기곡들을 연달아 유행시키게 됩니다. 재미난 것은, 박남정이 트로트 댄스 - 댄스 트로트 에 바탕이 있었다면, 김완선은 한국에서 록음악 작곡하던 사람들이 만든 록음악을 바탕으로한 곡을 종종 응용했다는 것입니다. 김완선은 이런 곡들에 들어 있는 80년대말 유행에 푹 빠진 전자음악 요소들을 이용해서, 자극적이고 살짝 어둡고 퇴폐적인 매력을 내뿜는 음악들을 화려한 춤에 맞춰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표곡이 여기 소개해드리는 "리듬 속에 그 춤을" 입니다. 이 노래는 한국 록 음악 최고의 음악가로 불리우는 신중현 선생의 작곡입니다. 신중현 선생 본인 이야기에 따르면, 신중현이 활동을 재개해서 록음악을 연주하고 다니다 보니, 당시 유행하던 댄스곡에 어울리지 않아서, 밤무대 업소마다 "당신 노래는 발이 안맞는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해서 밤무대에서 쫓겨난 신중현 선생이 백수신세로 암담하게 있을 때, 김완선 쪽에서 곡을 써달라고 하기에, "이번에는 발이 좀 맞도록" 만들어준 노래가 "리듬 속에 그 춤을" 이라고 합니다.

신중현은 이 노래가 "김완선을 보고 느낀 것'을 노래로 꾸민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고보면, 김완선은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노래를 부른 셈입니다. 이 노래의 기타 연주는 신대철이 했다고 하는데, 신중현이 김완선을 보고 작사 작곡한 노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노래가사가 또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현대 음율속에서 순간속에 보이는- 너의 새로운 춤에 마음을 뺏긴다오-")

김완선은 자신만의 강렬한 개성과, 화려한 춤실력 덕분에,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등의 곡으로 90년대 초반까지도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서태지와 아이들 태풍은 위기였고, 업친데 덥친격으로 무슨 재벌 남자와 어쩌고 저쩌고 하는 해괴한 소문에 시달리면서 주저 앉게 됩니다. 그래서 잠시 대만 등지에서 활동하며 최일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 잠시 다시 한국 가요계에 돌아와서도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밤무대의 모습이 달라지고, 가수가 버라이어티쇼 등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실패해서 결국 현재 사실상 은퇴상태 입니다.


난 아직 사랑을 몰라 - 이지연

김완선이 "어둠의 여왕"스러운 모습으로 나이 따위는 조금대 개의치 않고, 모든 연령대를 자극하며 대활약한 10대 소녀 가수였다면, 이지연은 전형적인 10대 소녀 가수 스러운 모습으로, 명랑하고 밝은 모습을 무기로 활약한 가수 였습니다. 이지연은 그런 노래들이 어울리는 외모로 매력을 끌어냈고, 그러면서도 록밴드 리드보컬 스러운 안정된 노래 솜씨도 꽤 괜찮아서 금새 정상에 도전할 수 있었던 가수 였습니다.

이지연은 고등학교 록밴드에서 활동하다가 록밴드 백두산의 유현상 눈에 들면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유현상은 돈좀 벌어보자고, 이지연의 기획사+매니저를 자처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지연은 처음에는 표지 모델 같은 것을 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지연이 인기 가수 대열에 합류하는 계기는 전영록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예계 데뷔 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친분으로 전영록이 이지연에게 곡을 만들어 주면서, 이지연은 전영록이 만든 노래들을 자기 실력껏 소화해 내며 인기를 끌게 되고, 전영록은 여기에 감탄해 계속 도움을 준 것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지연은 아름다운 모습, 맑은 음악, 괜찮은 노래 솜씨 세 부분 모두에서 워낙 강했기에 , 각종 광고, TV프로그램 등을 곧잘 따내며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만큼, 이지연은 온갖 구설수,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자꾸 대상을 바꾸며 마치 도시전설 처럼 떠도는 "연예인 누가 연예인 누구랑 머리끄댕이 쥐어 뜯고 싸웠다더라", "라디오에서 방송 나가는 줄 모르고 상스러운 말을 한 것이 방송에 나갔다더라" 이런 소문들을 20년전의 이지연이 겪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스캔들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이지연은 이런 삶에 회의를 느꼈는지, 돌연 밤무대에서 같이 노래하던 동료와 함께 일종의 "사랑의 도피"처럼 미국으로 건너가서 결혼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지연은 90년대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은퇴하게 됩니다.

지금 소개해 드리는 노래는 88년에 유행했던, "난 아직 사랑을 몰라" 입니다. 영상에서 보면, 전영록과 80년대 일본 10대 여자 가수 처럼 하고다니는 이지연이 함께 노래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말하자면, 원더걸스 와 박진영 이 한 무대에선 모습 비슷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는 명곡인 "바람아 멈추어다오" 를 비롯한 후속곡의 드높은 인기 때문에, 사실 이 노래, "난 아직 사랑을 몰라"는 상대적으로 잊혀진 노래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21세기 들어서, 문근영이 "문근영 효과"를 마음껏 뽐내던 시절에 영화 삽입곡으로 다시 들고 나오면서 요즘에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지연은 88년의 "밝고 명랑한 어린 여자 가수" 중에서는 당시에 얼굴, 목소리, 무대연출 어떤 것의 아름다움으로도 경쟁자가 덤비기 어려운 존재였다고 할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지연은 겉모습이며, 노래며, 무대연출이며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방향에서 등장한 , 상당히 엉뚱한 라이벌 여자 가수의 등장으로 위태로운 도전을 받게 됩니다.


담다디 - 이상은

이상은은 강변가요제 를 통해서 그야말로 혜성 처럼 갑자기 확 튀어나온 가수였다고 할만합니다. 이상은은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80년대 젊은이의 대표격으로 종종 인용되기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첫 인기곡인 "담다디"는 단박에 호기심을 확 불러오는 제목부터, 노래부르는 태도, 의상, 가수의 모습까지 상당히 특이하고 괴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하자마자 이상은은 인상을 주는데 성공했습니다. "담다디"의 재미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 자체는 비교적 고전적이고, 가사도 쉽고, 곡조도 반복이 잦은 매우 기억에 남기 좋은 곡으로 아주 편안한 것이었습니다. 80년대말 방식으로 좀 풍성하게 연주를 해서 그렇지, 노래 악보 자체만 놓고보면, "담다디"는 김세환이 부르던 70년대 포크 노래에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상은의 담다디는 평화롭고 조용한 노래지만 재미난 느낌을 주는 그 통기타 포크송 비슷한 방식으로 친숙한 느낌과 신선한 느낌을 동시에 모두 갖추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상은의 "담다디"는 넓은 연령층에 호소하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혀 안 어울릴 듯한 반바지를 이상하게 입고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춤 답지도 않은 춤을 또 묘하게 재미있게 춤으로 보여주는 재주도 성공을 거두었고, 언제나 명랑한 모습에 고정된 성별의 틀을 넘나들며 항상 자신있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상은은 이렇게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즐거운 대학생"의 상징이 되면서 영화에 출연하는가 하면, 광고도 많이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상은은 이후 표절시비에 한 번 시달린 뒤,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돌연 새로운 도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언젠가는" 같은 곡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흥행을 일정 부분 무시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하면서, "가요" 외에도 다양한 음악들을 만드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상은은 그러한 음악으로 아직까지 꾸준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90년대 말에 나온, "공무도하가", "새" 같은 곡도 88년의 폭발적인 인기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았다 할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달빛 창가에서 - 도시의 아이들

이상은이나 이지연이 바람처럼 인기몰이를 한 젊은 가수들이었다면, 꾸준하게 자라온 가수로는 "도시의 아이들", 그 중에서도 노래 작곡에서 더 활약했던 김창남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창남은 대학가요제 등에서 수상하면서, 가요판에 발을 디딘 사람입니다. 김창남은 노래도 노래지만, 작곡을 잘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창남은 재빠르고 재치있게 곡을 만드는데, 엄청난 명곡을 만들어낸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간단하면서도 듣기 재미나고, 충분히 흥겹고 신나는 곡들을 실수 없이 만들어내는데 빼어난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곡조 자체는 좀 싱겁다 하더라도, 가사와 곡조를 잘 맞아 떨어지게 배치해서, 노래를 듣기에 인상깊고, 부르기에 즐겁도록 만든 경우가 많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김창남은 "도시의 아이들"을 결성해서, 박일서와 함께 이런 노래들을 좋은 화음으로 잘 불렀습니다. 특히, "도시의 아이들"은 한국에서는 다소 남용된 감도 있는 80년대말의 전자음악과 신서사이저 소리를, 그 유행을 이끌어갈만큼 멋드러진 형태로 팍팍 드러나게 활용했습니다. 그리하여 "도시의 아이들" 노래는 음악이 다소간 경박한 면도 개인적이고 가벼운 감상을 읊어대는 곡입니다만, 묘하게도 가사와 곡이 어울릴 때는 시적인 표현이나 단어가 잘 살아나도록 되어서 살짝 예스러운 면이 멋드러진 것도 있었습니다. 김창남은 그 작곡실력으로 "작곡을 소재로하는 버라이어티쇼 코메디" 같은 것을 TV방송에서 잠깐씩 보여주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는 자신의 노래로 다시 한 번 인기를 얻은 "선녀와 나뭇꾼"을 비롯하여, 90년대에도 작곡가로서 매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김창남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등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얼마전까지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김창남은 21세기 들어서 갑자기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김창남은 갑작스럽게 간암 진단을 받았고, 그 어떤 유행 변화나 인기의 흔들림보다 더 무서운 운명의 손에 그만 붙잡히게 됩니다. 여전히 좋은 노래를 들려줄만한 힘이 있어보이던 김창남은, 애석하게도, 지난 2005년 40대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인디안 인형처럼 - 나미

댄스곡 이라는 것이 90년대에 갑자기 생겼으며, 이전의 가요와는 단절되어 있다는 설에 대해서, 반례로 종종 제시되는 사람이 바로 나미 입니다. 나미는 이미 70년대말에 "영원한 친구" 같은 인기곡을 불렀고, 80년대 초중반 부터, 주로 댄스곡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빙글빙글", "보이네" 같은 댄스곡들을 짭짤하게 유행시켰습니다. 특히, "빙글빙글" 같은 곡은 80년대 초중반을 수놓은 명곡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미는 88년도에는 이미 꽤 경륜을 갖고 있는 중견가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미는 이무렵 "인디언 인형처럼"을 유행시켰는데, 이곡은 타악기 소리의 강한 박자감각이 잘 살아나는 곡으로, 그런 곡조의 강세가 노래 가사를 한껏 살려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따지고 보면 매우 울적한 가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나미 특유의 창법과 어울리면서, 별 요란한 꾸밈이 없으면서도, 경쾌하고 박력있는 입체적인 댄스곡의 면모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노래, "인디안 인형처럼"은 그렇게 별 요란한 꾸밈이 없이 단촐하지만, 힘있는 댄스곡이고, 노래의 성격이 입체적인 맛이 있었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여러 댄스 가수들이 자주 불러보거나 다시 녹음하는 곡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나미는 "인디안 인형처럼" 시기가 거의 마지막입니다. 나미가 모 기획사 사장과 사실혼 관계이며, 그 사이에 아들이 있다는 일이 스캔들로 비화되면서, 활동이 저물어갔던 것입니다.


짚시여인 - 이치현과 벗님들

이곡은 사실 댄스곡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당시 밤무대 등지에서 왠만한 댄스곡 보다 더 댄스곡으로 잘 활용되었던 곡이기에 여기에서 언급합니다. 이 곡을 부른 이치현은 70년대말에 이미 데뷔한 가수 인데, 김건모가 부른 판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당신만이" 같은 곡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치현의 특색은 멕시코, 남미,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스페인어권, 라틴문화권 의 음악들을 잘 도입해서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음악들을 한국에서 연주하기 좋게 만들어서 좋은 가사로 잘 뽑아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 "짚시여인"도 그런 노래인데, 노래 가사의 운율과 대구가 곡조와 정석대로 멋지게 딱딱 떨어지는 곡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노래를 좋아하느냐 마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기억하게 되는 곡입니다.

이런류의 설득력 때문에, "짚시여인"은 노래 자체를 사랑하느냐 마느냐와는 별도로 80년대말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노래 내용은 그냥 집시 생활에 대한 묘사이지만, 그렇게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그냥 묘사만 단순하게 하는 내용이, 오히려, 한국 현실 사회에서 어느날 느낀 가수의 감정에 대한 어떤 상징이나, 암시라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효과도 생겼습니다. 덕분에, 이노래는 최정상의 위치에는 올라본적이 없는 이치현에게는 거의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되었습니다.

이치현은 90년대 들어서 카페 클럽 무대 등에서 활동하며, "미사리 카페" 문화의 기관차로서 맹활약했습니다. 그 활동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해 드린 동영상은, 최근에 다시 연주한 판입니다.


호랑나비 - 김흥국

영국과 미국에서 콧수염의 상징은 아마도 찰리 채플린일 것이고, 독일에서라면, 빌헬름 황제나 옛 총통이 콧수염의 상징일 것입니다. 러시아나 옛 소련권에서는 스탈린을 콧수염의 상징으로 꼽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김흥국이 콧수염의 상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호랑나비"라는 이 한 곡의 노래에 연원을 두고 있습니다.

김흥국은 고등학교 밴드를 거친 뒤, 졸업후 주로 록큰롤에 관심을 갖고 록밴드의 일원으로서 여러 밤무대 활동을 하며,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약 10년간 그렇게 저렇게 일하면서, 왠갖 다양한 노래들을 익히게 되고, 그러다가 별 큰 반향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팔리기는 했던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습니다. 김흥국이 이처럼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과, "흑인 음악"이라 불리우는 소울, 블루스, 재즈 계통의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 법한 특징 때문에 좀 더 공들인 후속작을 내는데 성곡합니다. 이것이 바로, 명작곡가 이혜민 작사 작곡의 "호랑나비" 입니다.

"호랑나비"는 괴상한 노래, 괴상한 가사, 괴상한 가수, 괴상한 춤 으로, TV 전파를 타자마자, 바로 시청자들에게 곡을 각인시킨 강렬한 노래였습니다. 특별한 내용 없이 그냥 호랑나비가 꽃 밭에 앉아 있다는 지극히 간단한 가사를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 가사가 즉흥연주가 끼어들기 좋은 약간은 낯설기도 한 소울-블루스 계통의 곡조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게 또 당시 유행하던 한국 댄스곡 풍으로 연주되는 것이 참 절묘했습니다.

여기에 이런 노래를 김흥국이, 김흥국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김흥국 만의 해학을 담아 신나고 즐거우면서도 구성지게 뽑아냈던 것입니다. 김흥국의 해학과 노래가 결합하다보니, 극히 단순한 호랑나비의 가사와 곡이, 그 단순함 때문에 오묘하게도 상징적인 느낌이 나면서, 어떤 상황에도 들어 맞는 암시가 될 수 있는 뜻있는 노래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이런면은 같은 시기 유행했던 이남이의 "울고싶어라"에서도 보이는 것인데, 김흥국의 재능과 댄스곡의 유행, "호랑나비"의 특이한 정도가 훨씬 더 강했습니다.

다리를 다친 사람이 깁스를 한채 춤을 추려다가 실수하는 모습에서 착안했다는, 이전까지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넘어질듯말듯한 춤을 선보였습니다. 이 이상한 춤을 노래에 결합했고, 김흥국의 웃음소리까지 노래에 끼어들면서 이 노래는 아주 제대로 희한해 집니다. 넓게보면, "아빠의 청춘"이나, "해뜰날" 같은 노래처럼, 해학이 가미된, 한국 가요의 계보에 편입되는 노래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같은 계통으로 뒤에 나온 김흥국의 "흔들흔들"만 봐도 대조 되듯이, "호랑나비"는 그런 노래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주제가 드러나는 부분이 특히나 없는 곡입니다. 또한 언어유희에 노골적으로 치중하는 면이 있는등, 훨씬 더 순수한 해학을 지향한 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러다가 도리어 더 심오해진 면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여러 특징 때문에, 80년대말 댄스곡의 쉽게 즐기는 재미가 더욱 신나게 살아났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요소 때문에, 김흥국은 춤 흉내내는 어린이들에서부터, 콧수염 가수의 흥겨운 웃음을 지켜보는 노인층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면서 막강한 지지를 얻었고, 10년 무명시절 동안 고생한 가수가 이 노래 딱 한 곡으로 단숨에 절정의 인기로 치솟게 됩니다. "호랑나비"는 아직까지도 널리 기억되는 명곡으로 자리잡았고, 별상관 없는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선수 김응국이 괜히 "호랑나비"라는 별명을 얻는 등, 일견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는 작은 곡치고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김흥국은, 이후 TV 버라이어티 코메디 쇼에서 주병진, 이경규 등의 코메디언과 화려한 호흡을 과시하며, 훌륭한 코메디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김흥국은 결국 노래 자체의 발전보다는 TV 버라이어티 코메디 쇼 방향으로 선회해서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김흥국의 모습은 한국 가요계에서는 요즘의 탁재훈, 신정환, 김종민 같은 가수들의 선배로서 가장 먼저 안착한 경우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서 소개해 드리는 곡은, 그 김흥국이 같은 시기에 인기의 절정을 누렸던 동료 가수인 박남정과 함께 오랫만에 다시 불러보는 최근의 영상입니다. 변치 않은 김흥국의 소울-블루스 느낌이 나는 목소리와 함께, 박남정이 보여주는 마이클 잭슨 문워크도 놓치지 마시기 바립니다.


- 이것으로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끝입니다. 다른 노래 자료 찾아내신 분 있으십니까? 당시 기억나는 사연이나 개인적인 추억담 들려 주셔도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일전에 많은 분들이 도움 주신대로, 노래들의 모방-표절 관계나, 가수들의 뒷이야기, 당시 돌았던 소문 같은 정보도 올려주시면 매우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핑백

  • 남쪽계단 : 오늘의 목록: 080105 2008-01-06 13:21:19 #

    ... s for 2008 - CenterNetworks (Yahoo!-AOL?)Best Careers 2008 - U.S. News (의외인 직업도 꽤 많더라는)이것이 88년도 댄스곡이다 - 게렉터블로그 (쌍팔년도의 추억)True Films 3.0: 2000 Documentaries You Must See Before You Die - Ke ... more

  • hsketch님의 글 - [2008년 1월 7일, 월요일] 2008-01-07 13:18:10 #

    ... 0 metoo 이것이 88년도 댄스곡이다.. 정말 그리워지는데요 =ㅁ= 오후 1시 18분 88년도댄스곡 추억 ... more

  • 身邊雜記 : 우왕ㅋ굳ㅋ 2008-01-08 11:11:38 #

    ... http://gerecter.egloos.com/3564278http://gerecter.egloos.com/356240715년전 노래야 당연히 안다 치고..80년대 노래들도 거의; 알고 있다는 건..내 나이 ... more

덧글

  • 이녁 2008/01/06 02:24 # 답글

    제가 태어난 해군요
  • showmust 2008/01/06 02:43 # 삭제 답글

    대세를 탔던 tell me 때문에 세또래의 '행복해'란 노래가 잠깐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tell me 가 stacy q 의 two of heart를 샘플링한데 비해,
    세또래의 '행복해'는 한글로 대충 가사 붙이다가 포기했는지 two of heart 영어가사도 중간에 붙이고
    뭐 대충 막장이었죠. 흐흐.
    근데 왜 전 세또래 하면 휘파람새가 겹쳐 떠오를까요.
  • 까를로스 2008/01/06 02:54 # 답글

    소방차가 G까페로 건재를 증명했는지는 좀 의문이네요. 안타깝게도 1995년은 룰라가 천상유애 앨범을 발표하면서 일본곡 표절에 대한 화두를 크게 던져놓은 해라서 덩달아 G까페도 표절시비에 휘말리며 사실상 그룹의 종언을 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상원에서 도건우로 멤버가 바뀐건 김태형-이상원 사이의 불화설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는 방송에도 같이 나오고 하는걸 보니 사실여부는 모르겠지만요. 도건우는 그룹 해체 후 음향 엔지니어를 하다가 지금은 광고회사 대표라고 하네요.
  • 익명의제보자 2008/01/06 03:02 # 답글

    나이 속이기, 10년, 10대 여자그룹...
    베xx복x 일까요? ㅎㅎ;;
    멤버 한 명이 30대라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은데-_-;
  • 동사서독 2008/01/06 03:10 # 답글

    개인적으로, 소방차의 세 사람은 골든하베스트 성룡, 홍금보, 원표 3인방을 연상시켰습니다.
  • 동사서독 2008/01/06 03:15 # 답글

    김흥국 씨는 요즘 풍으로 얘기하면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면서 그 덕에 호랑나비가 크게 뜨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치현과 벗님들 노래 중에서는 <사랑의 슬픔>라는 노래도 좋더군요.
  • 김창 2008/01/06 04:21 # 답글

    이지연, 레깅스 패션이 눈에 띄네요. 유행은 진짜 도나봐요. ㅎ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08/01/06 07:41 # 답글

    옛날 기억이 나는군요^^
  • 제절초 2008/01/06 08:19 # 답글

    나미는 누가 뭐래도 빙글빙글(...). 박남정씨의 노래는 확실히 트로트 삘이예요 'ㅂ' 그래도 좋았죠>ㅅ<
  • 하프오크 2008/01/06 09:03 # 답글

    흐흐..예전에 게렉터님 블로그를 보면 메이저가 될꺼라 생각했던 1인
  • 푸른마음 2008/01/06 10:14 # 답글

    동사서독님 코멘트에 첨언을 하자면....
    MBC의 "인간시대"에서 소개된 것이 그 출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거기서는 "호랑나비" 보다는 "정아" 라는 곡으로 소개되었었죠.
    무명가수인 김흥국, 그가 선배의 딸로 투병중인 소녀 "정아"를 위해 부른 곡....
    그로 인해 김흥국이 세상에 알려졌고, 호랑나비로 완전히 뜬거죠.
  • 鷄르베로스 2008/01/06 10:18 # 답글

    김흥국씨는 호랑나비 이전에 인간시대에 소개되기도 했던 가수였죠.
    국내연예계쪽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탓에 설렁설렁 지나가며 본 프로그램이었는데 희귀병(?)을 앓고있는 아이를 위해 소규모공연도 하며 좋은일도 많이 했던걸로 알려졌었습니다.
    이상은씨는 지금은 자기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가수였지만 당시 강변가요제를 보면서 누구도 이상은이 대상을 받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상우의 슬픈 그림같은 사랑'이 받을 줄 알았었는데 ...
    그리고 이런 괴소문(?)도 나돌았던게
    위에도 소개된 당시 아이돌 이씨 여가수가 마이크줄에 걸려 넘어지는걸 보고서 웃자 그걸 본 이씨가 분기탱천하여 따귀를 때렸다는 소문도 있었구요.
    영11이나 젊음의 행진 짝궁들 출신 가수들이 득세하던 시기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가장 재능이 넘쳤던 그런 팀들 출신 가수는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김형용(?)이었습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이던가 그노래는 참 좋은 곡이라 생각합니다.
    디디디를 부른 김혜림씨는 모친께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유명가수로서도 알려졌지만 그당시엔 정말이지 파격적인 샛노란 염색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었던 기억입니다.
  • JOSH 2008/01/06 10:29 # 답글

    오오.... 추억이 새록새록...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저런 곡들이 있었단느게 이젠 꿈 만 같습니다.
    일년에만 수많은 일들이 있다보니 원....
  • 그와중에 2008/01/06 10:53 # 답글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때. 벌써 20년 전이라니.
  • 썬데이뉴욕 2008/01/06 10:57 # 답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치현과 벗님들'의 '집시여인'은 저도 참 좋아했는데요. 그리고 혹시 '도시의 아이들'이 '소설속의 연인들'을 불렀던가요? 아직도 노래방에서의 애창곡인데. 옛날 생각 많이 나네요.
    88년은 뭐니뭐니해도 온 나라가 올림픽 열풍에 휩쓸렸던 때가 아닌가 하네요. 87년부터 이대 옆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 근처 노점상들 다 쓸려나고 이대옆 판자촌이 다 철거되고 대학생 언니들이 데모하고 늘 데모때문에 손수건에 치약바르고 뒷산 돌아넘어 집까지 걸어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게렉터님 좋은 글들 늘 감사히 읽고 있어요.
  • 탁상 2008/01/06 11:44 # 답글

    사랑하고 싶어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ㅠㅜ
  • 현우 2008/01/06 11:46 # 답글

    밸리돌다 들렀습니다~ 아 정말 추억이네요 ㅜ_ㅜ) 쟤네들 말고 그...롤러스케이트 신고 우루루~떼로 몰려나오던 애들도 기억이나네요~ 또 쌍절곤 돌리면서 차라리 말을 할까~ 하던....아 맞다 세대교체도 기억나구...ㅎㅎ

    지금 다시보니 붐붐은 정말이지 특이한 존재감을 과시하네요~ 어눌한 그래도 그래도 모든것을 잊고~는 참....묘한 중독성이 ㅜ_ㅜ)
  • 닥슈나이더 2008/01/06 12:23 # 답글

    아~~ 이 모든 노래를 즐겼던...(물론 15년전 노래도 분명...)
    생각이 새록새록....

    다시한번 느끼지만...

    저의 절대 사랑은 <이지연>이라는......

    이미연, 채시라, 하희라, 최진실 다~~ 필요없이...

    이지연이 킹왕짱 이라는....
  • 로렐라이 2008/01/06 12:36 # 답글

    그저 80년대말의 전자음악과 신서사이저 소리를 듣고 싶어서 클릭한 글인데 엄청나네요!
    저는 88년에 태어나서 그 때가 아주 먼 옛날만 같은데 생각보다 훨씬 화려한 시절이었군요.
    김완선의 푸르게 빛나는 치마도 인상적이고 이지연은 눈을 뗄 수가 없는...

    올해가 된 지 얼마 안되었지만 올해 접한 블로그글 중 가장 인상적입니다.
    링크 걸겠습니다~
  • SIDH 2008/01/06 12:37 # 삭제 답글

    세또래는 나중에 2인조로 개편해서 "또래"라고 나온 적도 있습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따위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소방차는 특히 할말없는데... 일본 유명그룹 베낀 그룹으로는 89~90년쯤에 일본그룹 히카루겐지를 모방해서 롤러스케이트 타고다니던 그룹 야차라고 있었죠. "애타는 마음"이라는 노래 딱 한 곡 조금 유행하다 들어갔을 겁니다. "젊음의 행진" 프로그램에 통크나이라는 그룹이(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이라면 프로젝트그룹) MC를 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그룹메인이 이규석과 김혜림. 둘다 기차와 소나무, DDD 발표전) 그때 통크나이2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정식데뷔할 때 야차라고 이름바꾼 모양.

    박남정의 ㄱㄴ춤은 티파니의 "I Saw Him Standing There"의 안무에서 따온거라는 설이 있었죠. 저는 상당히 설득력있다고 봤는데 별로 알려지진 않았던.

    김완선은 신중현 이후 손무현과 손을 잡고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 등을 연달아 히트시킵니다. 작곡가가 바뀔 때마다 노래 색깔이 많이 바뀌는데도 김완선이 자기 색깔을 내며 노래하는 걸 보면 단순히 춤잘추는 가수라고 치부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이지연은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라는 발라드곡으로 데뷔한 이후 발라드곡을 많이 부른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기억되는 노래는 "바람아 멈추어다오"라거나 "난 사랑을 아직 몰라" 같은 빠른 템포가 많죠. 혹자는 이지연-강수지-하수빈으로 청순가련형 여가수의 계보가 이어진다고도 합디다만.

    예전에 2580이던가, 이상은이 나왔었는데 본인이 원하는 방향도 음악도 아니었던 "담다디"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더군요. 프로그램 말미에 "그동안은 의식적으로 담다디를 부르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면서 모 공연장에서 담다디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담다디와는 아주 다른 길로 걸어온 지금의 이상은(과 그녀의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주로 왔을텐데도 어쩔 수 없이 담다디에 열광하더군요. 이런게 딜레마.
    사실 이상은이 담다디로 확 뜬 후 정규1집을 냈을 때 타이틀곡이 "Happy Birthday"였습니다. 담다디와는 아주 다른 방향이고 지금의 이상은 노래와 통하는 부분이 많죠. "담다디"류의 발랄한 음악을 기대했던 팬들이 많이 실망했었고 그래서인지 2집에서는 다시 경쾌한 음악의 "사랑할거야"로 돌아왔지만 바로 표절시비(뭐 똑같죠)에 휘말렸죠.

    도시의 아이들은 그후로 "소설속의 연인" "텔레파시" 같은 히트곡들이 있죠. 김창남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예전 sbs에서 신동엽과 함께 노래만드는 코너할 때, (신동엽의 아이디어겠지만) 출산에 관한 노래를 만들면서 "쑴풍쑴풍"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낸 거죠. 그 유행어가 이어져서 나중에 시트콤 "순풍산부인과"가 탄생했고.

    나미라고 하면 "영원한 친구"부터 "빙글빙글" "보이네" "인디언인형처럼" 등 댄스곡 위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만, 개인적인 제 베스트는 "슬픈 인연"이죠. 노래가 막 나왔을 때부터 참 좋아했는데 절대 히트는 치지 못했던;; 나중에 015B가 리메이크하면서 좀더 알려졌죠.

    벗님들은 "당신만이" "다 가기 전에" "추억의 밤" 등으로 꾸준히 이름만 알리던 수준에서 "사랑의 슬픔"으로 대박이 났죠. 아마 가요톱10 첫 1위곡이 이 노래일 거고 5주연속 1위하면 주는 골든컵도 받았을 겁니다. 그후 벗님들의 내부 불화(음악적인 문제라고들 흔히 말하는데... 좀더 상업적으로 가고 싶었던 이치현이 반대하는 멤버들 다 쫓아냈다는 설도 있고 지가 나갔다는 설도 있고)로 "벗님들"과 "이치현과 벗님들"로 찢어진 걸로 아는데 사람들은 그냥 "이치현과 벗님들"이 걔네들 쭉인 줄로 많이 알죠. "짚시여인"은 "이치현과 벗님들"로 재편되고 내놓은 첫번째 히트곡입니다.

    김흥국은 "정아"라는 노래로 인간극장에 출연해서 처음 이름을 알렸죠. 인간극장 이전에도 미담의 주인공처럼 언론에서도 가끔 다뤄지긴 했습니다만 그때까지 김흥국의 위치란 "어려운 처지의 무명가수가 동료의 딸을 위해 어쩌구"하는 식의 미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호랑나비"로 대박이 난 거죠. 사실 "호랑나비"는 리메이크인데 뭐 원곡이 전혀 히트를 치지 못했으니 그런건 다 씰데없는거고... 그후 일밤 등에 고정패널로 나오면서 프로그램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 아들 출산일 카운트다운을 하는 등(당시 아이 이름을 번칠이라고 짓겠다고 했고, "아 응애에요"같은 유행어도 낳았죠. 사실 이 유행어는 주병진이 만들어준 걸 김흥국이 받아먹은 수준이지만) 지금의 무개념캐릭터-_-를 만들어갔죠.

    동영상을 구하긴 어렵겠지만 이 시기에 그나마 댄스곡 풍으로 인기를 모았던 노래 중에
    님 떠난 후 - 장덕 (이건 좀 더 전인가...)
    촛불잔치 - 이재성
    골목길 - 이재민 (이 두 가수는 항상 같이 생각이 나서...)
    벌써 이 밤이 다 지나고 - 안혜지 (얘는 내가 고2때 학교에 방문했었고... 나중에 군복무할 때 위문공연도 와서 두번이나 본)
    핑도는 눈물 - 김승진 (얘는 원래 데뷔곡이 "스잔"이지만 댄스곡으로는 역시 이노래가)
    뭐 이정도가 기억나네요.
  • Cloudia 2008/01/06 12:41 # 답글

    아 막 추억이 밀려오네요....-ㅅㅠ
  • 현우 2008/01/06 12:45 # 답글

    아, 걔도 기억나네요, 오래전에 들었지만 노래들이 특이해서....레베카랑 가나다라마바사 부른...양준일!! 아, 걔는 90년대였던가...?? 여튼 지금 기억을 떠올려서 흥얼거려보니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않을거 같은데~
  • 류노스케 2008/01/06 12:56 # 답글

    하.. 진짜 추억이~~ @_@;;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은 정말 대단한 퍼포먼스군요
    그닥 격렬한 춤은 아니지만 호흡이 너무나 안정적이에요 @_@;;

    신철아저씨의 랩 부분이 너무 뜬금없이 끼어든다는 느낌인데
    그 부분만 살짝 다듬으면 지금 나와도 손색없는 곡이 아닐까하능...
    하.. 정말 그리운 시절에요~~
  • 鷄르베로스 2008/01/06 13:09 # 답글

    낄낄낄
    아~ 추억은 방울방울입니다.
    하지만(은 뭔 하지만)
    80년대 후반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음악은 누가 뭐래도 유로비트 였다고 생각합니다.
    한참이 지난후 닭장댄스니 추억의 롤라장 같은 앨범으로 소개되었지만 종로 국일관 (모두들 디꼬 라고 불렀죠) 명동의 마이하우스, 이태원의 비바체, 일일나이트 대여로도 유명했던 서비스맨 그리고 영등포의 동양최대규모(--;;) 카네기 등등 전국의 나이트클럽을 휩쓸었던 모던토킹, 켄 라즐로,앤지 골드, 사라,데이비드 라임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곡은 nuit de folie 였습니만 춤추기 정말 좋았던 곡들이었습니다.
    대학로의 엠티비, 영등포의 미진,남영동의 송설 같은 곳은 댄스는 아니지만 또다른 추억(개인적으론 더 큰 추억이었고)이 있는 장소였구요.
    그리고 속칭 트래쉬 & 스피드 메탈의 대중화(?)가 막 시작된 때도 그때가 아니였나싶습니다.
    아... 그리고 당시에 스파크 라는 댄싱팀이 있었드랬죠.
    소문만 무성했던 빌리'라고 불리우던 대학로의 유명한 브레이크댄서가 바로 박남정이다'라는 괴소문도 나돌았었습니다.
  • 露彬 2008/01/06 13:20 # 답글

    아, 정말 재미있게 읽고 노래도 잘 들었습니다. 전부 제가 어릴 때 노래들인데 다 기억나요!

    좀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이미 많이들 보셨겠지만 호호호) 이오공감에 추천했습니다^^
  • Limgoon™ 2008/01/06 13:27 # 답글

    글 잘 봤습니다.

    저는 뜬금없이, 배철수 아저씨의 감전사고가 자꾸 떠오르네요. ^^;;;

    처음엔 록그룹이라, 누워서 노래부르는 퍼포먼스인줄 알았거든요.
  • 제3자 2008/01/06 13:39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꼬깔 2008/01/06 14:43 # 답글

    아~ 재밌네요. :) 다 기억납니다. :) 재밌게 잘 읽고, 또 보고 갑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진시연 2008/01/06 15:02 # 답글

    추억이 마구마구 밀려옵니다. 김완선 씨, 이지연 씨 완전 요정 같군요. 나미 씨는 완전 원숙미. 그립네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Chriel 2008/01/06 15:21 # 답글

    저는...... 88년 생입니다만.....
    신기하네요. 소방차는 얼핏 본거 같애요.
  • amalthea 2008/01/06 16:31 # 답글

    잘 보고 갑니다.
    80년생이지만 초등생 때 가요프로그램을 열심히 봐서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전에 올려두었던 김완선의 멋진 영상이 있어서 트랙백합니다.
  • 드림이터 2008/01/06 16:43 # 답글

    정말 잘 들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에도 듣고 정말 좋아했던 곡들을
    다시 들으니 정말 좋네요. 눈물나려고 하네 ㅜ.ㅜ

    좋은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 鷄르베로스 2008/01/06 20:17 # 답글

    큰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던 당시 가수들이 생각나서 다시 방문입니다.
    장혜리 라는 가수 아시죠? "추억의 발라드"
    이대로 그대 남기고 간 추억속에서 영원토록 잠이 들고싶어요~ 하던
    댄스는 아니지만 여가수 중에 자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구축했던 장필순 (89년이던가요?)
    그리고 좀 더 전이지만 (얼마전 회식자리에서 이거 불러서 모두들 뒤집어졌던) 임병수의 치키야 미야 소모스 꼬모 엠 뗌뽀랄 ... 아이스크림 사랑도 뜬금없이 생각나더라능.
    아... 이정현인던가요? 그 누구보다 더' 던가요? 하여간 그런 노래부르던 친구도 있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마삼트리오 유열 노래중 그래도 좀 템포가 있는 화려한 날은 가고'가 아마 그쯤 나왔던 것 같습니다(만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요즘 데뷔했으면 더 인기를 얻었지않을까 싶은 가수중의 하나인 양수경의 1집 바라볼 수 없는 그대'가 나온 해이기도 합니다.
    전영록씨도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고 민해경씨도 그대 모습은 장미'라는 노래로 인기를 끌었지만 - 하나하나 나열하는건 불가능할 것 같아 -
    1988년부터 90년대 초까지 최고의 인기가수는 단연 " 변진섭"이었죠.






  • joplin 2008/01/06 20:27 # 답글

    88년도.. 노태우가 집권한지 얼마 안된 시절이네요. 한국 대중문화의 전성기를 70년대로 볼 것인가 90년대로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을 때, 어째서 80년대의 대중가요는 그렇게 죽어버렸는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뭐, 답은 다들 아시겠죠? 남쪽 지방에서 군홧발이 민간인을 짓밟아 죽이고 있을 때, TV에서는 정수라가 나와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어쩌고'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던 시절을. 그래서 386세대인 어떤 교수님은 절대로 80년대의 가요를 추억하고 사랑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정권에 의해 인위적으로 장려되고 허가되고 강요된 노래들에서 어떤 문화적 진정성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나름의 가치가 지나치게 묻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rumic71 2008/01/06 20:29 # 삭제 답글

    복서동생 홍수철의 '철없던 사랑'도 대략 저 시대 언저리였지요.
  • MCtheMad 2008/01/06 20:59 # 답글

    아....재밌었습니다 후후 영상도 다 보면서 읽느라... 참.. 글 하나 읽고 나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네요.
    옛날노래들의 추억을 되살리며 읽었습니다
  • purple 2008/01/06 22:40 # 답글

    이런. 다 기억 나는데 왜 저는 '세또래'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걸까요? ㅋㅋㅋ 저는 완전 '김완선'의 팬이었드랬지요~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오로지 김완선 만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언제 그게 바뀌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네요.

    하지만 80년대 노래를 추억하면 항상 어려운 것은 너무나 많은 노래들이 흩어져 있었다는 기분이에요. 뭔가. 어쨋든 그런 기분.
  • zenger 2008/01/06 22:50 # 삭제 답글

    조플린 // 386 교수란 사람 가까이 하지 마세요.
    사기꾼 기질이 농후합니다. 그럼 지는 뭐했답니까?
  • 나라라 2008/01/06 23:13 # 삭제 답글

    락은 80년대나 지금이나 커다란 차이를 느낄수 없지만
    댄스곡은 상당히 많이 변했네요;
  • bikbloger 2008/01/07 00:44 # 답글

    위엣 분이 김승진 이야기를 하니... 그 당시 양대산맥이었던 박혜성씨가 생각나는군요. 둘이 상당한 라이벌이었죠. 김승진은 최근에도 복귀를 하려다 철저하게 외면당해버렸고... 박혜성씨는 아직도 미사리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박혜성씨의 '도시에 삐에로'는 가끔 노래방에 가면 부르곤 합죠.
  • showmust 2008/01/07 01:39 # 삭제 답글

    김승진이 2, 3년 전 쯤 복귀를 준비했던 '미카엘밴드'의 프로듀서가 '아라비안나이트'로 유명한 김준선이죠.
    이 포스트에 언급된 분들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문득 생각나 적어봅니다.
  • 리엇 2008/01/07 01:45 # 답글

    81년생이지만 세또래 빼고는 다 기억이 나는군요..
    어릴때 좋아했던 노래들을 이렇게 다시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꾸벅 _ _)
  • 도시의 아이들은.. 2008/01/07 02:06 # 삭제 답글

    김창남 씨 사후에 나머지 멤버는 뭐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작년 쯤 모 성인가요 채널에서 -_- 도시의 아이들이 나오더군요.
    새 멤버를 영입해서 트로트를 부르는 듀오로 변신했던데, 도시의 아이들의 그 발랄하던 분위기를 좋아하던 저로서는 환상이 와장창 깨졌었지요.
  • Kasca 2008/01/07 02:56 # 답글

    저도 81년생입니다~~(으악 반갑습니다 ㅎㅎ)
    김완선 최고에요!!! 좋은 동영상 올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체크포스트로 담아갈게요~ ^ㅡ^)b
  • 초딩KIN 2008/01/07 03:16 # 답글

    아.. 세또래부터 생생하네여..

    몰랐는데 세또래의 맴버가.. 베복2집에 베복 맴버로 참가한거군요.. 재주가 놀랍네요..
    그 맴버들은 이모뻘하고 같이 활동하고 다닌건데.. ㅎㅎ

    흥국이 형은 호랑나비 처음 티비에서 불렀을때 다음날 학교가니 애들이 전부 그 춤을 따라서 추던 기억이 나네요..
    서태지와 아이들을 밀어내고 가요대상.. 뭐 서태지는 아무래도 가요톱텐 5주연속도 절대 안주고 상도 절대 안주던
    방송사 요 마크 인물이었으니 어쩔수 없지만.. 흥국이횽은 아직도 자랑하고 다닐듯.. 내가 서태지보다 그땐 잘나갔으..
  • 속임수 2008/01/07 09:50 # 답글

    맙소사! 보헤미안 이상은의 담다디라니! 동시대에 즐겨들었던 곡이지만, 사실 무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저렇게 촐랑거렸었군요-_-;
    달빛 창가에서는 지금도 애창곡입니다. 하하하
  • Mr.Met 2008/01/07 11:27 # 삭제 답글

    와우 정말 좋은글입니다.
    제 어린시절을 설레게 했던 가수들이 많군요.
    박남정씨 정말 좋아했죠 키가 무척 작았지만 ㅎㅎ

    베복의 그 멤버는 1-2집까지 활동했던 큰언니 멤버이다가,
    3집때 나가고 그 자리를 바로 윤은혜가 채우게 되죠.

    그녀의 은퇴가 현재의 드라마퀸 윤은혜를 만든 셈이네요 ㅎ
  • 박부 2008/01/07 14:35 # 답글

    짚시여인 저도 참 좋아했던 노랜데,
    늘 아쉬웠던게 '낮에는' 요걸 꼭 '나제는'으로 안읽고 '나체는' 요렇게 읽어서 참 거슬렸는데
    요즘엔 '낮에는'으로 올바로 부르네요 ㅎㅎ 한소리 들은 모양이죠?
  • 박남정 2008/01/07 14:36 # 삭제 답글

    박남정씨 ㄱ ㄴ 춤인가? 그거 표절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엔가 일본 80년대 음악프로 저장된 비디오 테입보고 있는데 일본 가수가 똑같이 하더군요 --;

    그리고 위 포스팅엔 안 나와 있는데 세상에!
    해바라기의 이광조씨가 이나가키 준이치 노래 표절했더군요. 얼마나 실망했던지 흑흑흑!
  • Fe☆ぺ 2008/01/07 17:22 # 답글

    아마 그 일본가수는 쿠도 시즈카로 추측되네요'' 저도 쿠도 시즈카가 ㄱㄴ춤을 추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 다문제일 2008/01/07 17:38 # 답글

    박남정 ㄱㄴ춤은 티파니가 원조라는 게 정설입니다. 당시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졌던 사실입니다. 그 춤은 마이클 잭슨도 춘 적이 있죠.

    김완선이 한국의 마돈나로 한창 이름 날릴 때 "내가 춤추면서 노래하게 될 거라고는 데뷔 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는 걸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지연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배우 가수 모델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볼 때마다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게.

    이상은이 강변가요제가 대상 받고 앵콜 공연하던 모습을 있지 못합니다. 탬버린을 흔들며 괴상한 춤을 추는 선머슴같은 여자. 그때 느낌은 한마디로 이거였습니다. 미친 x.

    집시여인은 포스트에 소개된 노래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가요톱텐> 1위 할 때 밴드로는 두 번째이자 몇 년만에 1위를 하는 거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최초의 1위는? 송골매였을 겁니다.

    호랑나비가 어느 해 나왔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어느 해라도 그 해 최고 인기곡이었다는 겁니다. 소방차 박남정 변진섭도 다 소용없었습니다. 지난 해 텔 미 열풍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죠. 그 해 내내 온갖 프로그램에서 온갖 사람들이 호랑나비 춤 흉내내는 모습을 봐야 했습니다.
  • 바비 2008/01/07 17:41 # 답글

    짚시 여인이 밤무대서 잘 팔렸다는 걸 아시는 거 보면 대충 세대가 나오는 것 같아서 ㄷㄷㄷ합니다. (공감서 보고 왔습니다.)
  • wishUWH 2008/01/08 13:16 # 답글

    세또래 말고는 전부 알고 좋아하는 곡이네요^^ 오랫만에 잘 듣고 갑니다
  • 음... 2008/01/08 20:54 # 삭제 답글

    호랑나비 1989년도 히트곡이요~ 골든컵 탔었죠~ 그때 대결했던 노래가 이정석의 여름날의 추억인가 그거였고요.
    계속 후보만 되고 1위는 못하고...볼때마다 안타깝더라 근데 나도 호랑나비응원했어서 ㅋㅋ
    이때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도 나왔고요~이때 김민우의 '사랑일뿐이야'도 나왔어요~ '찬바람이 불면'도 89년도에 나왔을걸요?
    그리고 룰라의 '천상유애'는 1996년도예요. 95년에는 1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날개잃은 천사였답니다 ㅋㅋ
  • 오랜만 2008/01/11 14:21 # 삭제 답글

    좋은 블로깅입니다. 저 역시 아직 젊다면 젊은 이십대지만..저 당시 초등학생때라 기억하고 있거든요 기억에 남는 곡들이 많네요.. 과거 어느시대 보다 자유롭고, 개성이 중시되는 지금..오히려 과거 저 당시의 곡들이 더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곡이 많았다 생각한다면 이상한걸까요?(물론 당시 일본 표절곡들은 제외하구요)
  • 2008/01/11 20:07 # 삭제 답글

    와우...역시나 김완선영상은..네이버붐베를 뒤집어놓더니..
    여기저기서 다들 최고의 그녀무대중 하나로 꼽히는 무대....
    완선씨는 저 80년대를 아우르던 가수중 지존급이었죠..
    오히려...발판삼아 90년대초반은 정말 최고의 가수로서 롱런하시던~~
  • shuha 2008/01/24 17:45 # 삭제 답글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도시의 아이들 히트곡 중엔 텔레파시 란 노래도.. 눈빛만 봐도 알수 있잖아~ **만 스쳐도 우린 느낄수가 있어~ 라는 노래가 히트 쳤었죠-_-;
  • 원심무형류 2008/01/25 14:24 # 답글

    한참 정독 했네요 좋은글 좋은영상 잘봤습니다 ^^ 어렸을때 티비에서 재미나게 보던때가 기억나네요 지금 들어봐도 손색없는 분들입니다.
  • solo 2008/03/03 14:39 # 삭제 답글

    좋은자료입니다...
  • qe 2008/05/05 20:06 # 삭제 답글

    김완선씨는 가수로서의 인기 실력 음악성
    3박자를 다갖췄죠
    춤이야 두말할것없고
    얼굴이 가장 예쁜 여가수1위로
    연속으로 뽑혔었죠
  • deseason 2008/06/03 09:30 # 답글

    모두 오랜만에 잘봤습니다. 언제한번 80년대말 90년대초반 서태지 시절이전의 가수들에 대해서도 한번 써주세요. 민혜경, 원미연, 이재영등등. 그러고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가요는 천편일률적이라서 수준이 낮다 이런 비판은 언제나 있군요 ㅎㅎ.
  • 류쿠잔 2008/07/05 22:22 # 삭제 답글

    www.nbamania.com에 퍼가겠습니다~
  • 원한의 거리 2010/08/13 15:02 # 삭제 답글

    김완선의 '리듬 속에 그 춤을'은 지금 들어도 경악스럽게 잘 만든 노래같습니다.
    지금 영상을 통해 본 김완선의 라이브 영상도 정말 대단합니다.

    김흥국은 '호랑나비'하나로 크게 떠서 여러 TV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영화계에까지
    진출했었죠. 그중엔 김흥국의 어두운 역사인 '반달가면'도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